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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NTV: http://news.cgntv.net/index.asp?pid=2139&vid=27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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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들소리신문 /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6/board.php?board=toboard&command=body&no=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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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교 계산법
중국선교는 쉽지 않다. 선교 장애 요소가 많아서라기보다는 중국은 우선 외형부터가 큰 나라이다. 우리나라의 수십 배가 더 되는 영토는 물론 문명의 선진을 주장한다. 한국인이 중국의 한자 문화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음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에게 중국은 큰 나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과 관계가 좋을 때, 또는 무난했을 때는 상국(上國)이라 호칭했다. 더 좋을 때는 형님의 나라, 아버지 나라, 심하면 상전의 나라라고도 했다. 그러나 등 돌리고 하는 말은 ‘뙈놈들’이었다.
우선 중국은 ‘제국’의 틀을 2천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그 주변의 종족들을 복속시켜 중국화 하는데 성공한 친화력을 가진 나라이다. 원나라, 곧 몽골 족에게 황제의 자리를 내준 일은 있으나 다시 중국화 되었고, 만주족에게도 국호와 황제의 자리를 내준바 있으나 만주 족은 철저하게 중국화 되어 그 근거도 사라진 오늘의 형국이다.
한 때는 중국보다 더 큰 나라였던 티벳을 굴복시켜 자치구로 만들어 버릴 만큼 공룡의 힘보다 더 큰 세력이다.
그런데 세속과는 별개로 중국은 본디 기독교를 좋아했던 민족이었으나 근대화 과정에서 유럽세력과 큰 갈등을 가져오면서 어려운 선교 현재를 맞이하고 있다.
1. 근대 중국선교의 개척자
로마 가톨릭의 선교역사는 마테오 리치를 선두로 한다. 리치는 1552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583년 중국에 처음 상륙한 예수회 선교사이다. 그는 〈천주실의〉등의 저자로 중국명 리마두로 불린다.
마테오 리치는 단순(순수) 선교사라기보다는 동서 문화 사상사에 이름을 올려야 할 만큼 다양한 업적의 인물이다. 그는 중국에 기독교를 전파했고 서양에 중국사상을 전해준 인물로서 ‘진정한 세계인’이라는 호칭을 가지고도 있다. 일단 그는 이름이나 복장부터 중국 이름이요 중국 선비들과 같았다.
2. 기독교의 중국교회
기독교의 경우는 영국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년)이다. 그는 영국 노덤 벌런드(Nothum Berland) 모페드(Morpeth)에 있는, 스코틀랜드의 혈통을 지닌 청빈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1803년 런던 고스포드 선교학원(Gosport Missionary Academy)에 입학하여 공부하던 중, 1804년 중국선교를 결심했다.
1807년 1월 목사 안수를 받고 런던 선교회(London Missionary of Society) 파송 선교사로 중국으로 갔다. 1807년 뉴욕을 경유, 드디어 그해 9월 4일 중국의 마카오에 도착하였다.
중국에 도착한 모리슨은 중국어 익히기에 주력, 영국 동인도 회사에서 통역요원으로 일하면서 선교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모리슨은 1818년 영화서원(Anglo-Chinese College)을 설립하는 데 공헌하였고, 7년 동안 노력 끝에 1822년 화영자전(華英字典)을 간행했다. 이는 최초의 영중사전이었다. 1834년 별세할 때까지 중국 선교역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모리슨의 요청으로 1813년 영국에 파송을 받은 런던선교회 소속 밀레(William Milne, 1785~1822년) 선교사와 양발(梁發, 1789~1855년) 목사의 활동도 만만치 않다. 그는 중국인 최초의 전도인이며 목사이다.
중국 선교는 순조롭게 발전해 갔으나 영국이 중국의 목을 조여 오는 것을 중국은 알고 있었다. 중국 뿐만 아니다. 영국은 1819년 싱가폴 지배, 1842년 홍콩을 지배했다.
중국은 청나라(1644~1912년)와 중화민국(1912~1949년) 과정에서 서구 열강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했다. 영국은 중국 중부 황해지역, 불란서는 중국의 남부지역, 독일은 상동성, 러시아는 북쪽의 몽골지역, 일본은 만주지역을 식민지로 삼아 마치 큰 황소 한 마리 잡아놓고 여럿이 뜯어먹는 형국이었다.
3. 중국식 기독교 시대
드디어 중국의 자존심을 보여주는 때가 왔다. 모택동의 중화인민공화국 선포(1949년 10월 11일)와 동시에 중국에 거주하는 135개 선교단체에 소속된 기독교 선교사 5천943명이 위기에 몰렸다. 그들은 1950년 1월 안에 선교사 전원 추방령을 내렸다. 간신히 사정하여 1950년 10월 14일까지 3천 1백명의 선교사가 떠났고, 나머지 선교사들도 중국의 신자들을 위하여 비인간적 대접을 받으면서라도 남아 있으려 했으나 1952년 안에 전원이 중국을 떠나야 했다.
우리는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를 알고 있다. 그가 1865년에 세운 중국 내지 선교회(China Inland Mission)는 1934년에 1천368명의 선교사를 관리했으나 그들도 1950년까지 6백명을 제외하고는 중국을 떠났으며, 나머지 선교사들도 1952년까지 모두 추방 당했다.
1978년 이후 지하(가정)교회는 물론 소위 3자(三自)교회가 공식화되어 중국의 선교가 진행되고 있으나 중국의 3자신학(三自神學)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교회는 손을 쓰지 못하고 있으며, 지하교회들은 전체를 균형 있게 관리해낼 시스템이 없어서 고전하고 있다.
(편집국)
중국선교 200주년, 보완돼야 할 부분 산적
올해로 중국선교가 시작된 지 200년이 된다. 선교 200주년을 맞아 중국교회는 ‘선교중국’비전을 위한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선교연구원(대표 인병국 목사)은 “선교중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선 중국기독교가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성장해야 한다”며 “중국기독교는 세계교회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충분한 잠재력이 있으므로 중국선교의 방향을 세계선교와 세계 복음화에 두고 동반자적 입장에서 한국교회는 중국교회가 자생력을 가지고 세계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1807년에 시작된 중국의 기독교는 그 후로 중국 내에서 크게 성장하지 못하다가 문화혁명(1966~1976년)을 거치고 난 1978년부터 본격적으로 부흥이 일어났다. 30여 년 동안 중국의 기독교는 크게 부흥하여 현재 신자의 수가 1억 명에 이르고 있다.
선교 200년을 맞는 중국교회는 새로운 복음의 물결이 일고 있다. 도시의 청년 지식인들에게 복음이 강력하게 전해져 복음의 청년화, 지식화를 바라보고 있고 한쪽에서는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사도 바울 이후 서쪽으로 계속 이어진 선교 릴레이에 중국 선교인들이 동참해 기독 선교정신을 예루살렘까지 전하는 데 뜻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는 아직 넘어야 할 선교적 과제가 많이 남아있다. 동 연구원에 따르면 “삼자교회는 교회내부 부패현상이 심화되어 복음사역보다는 교회의 기득권을 차지하기 위한 권력다툼에 열을 올리고 있고 심지어는 성경말씀을 고쳐서 세속의 이익을 취하는데 이용하고 있다”는 것. 또 가정교회는 중국의 기독교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해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신앙으로의 위험성을 안고 있으며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교육 또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으로 알려졌다.
이런 시점에서 선교중국을 빠르게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목회자 배출을 위한 체계적인 신학교육 △중국교회를 위해 헌신할 건전한 청년 지식인들의 배출 시급 △유^초등부 및 청소년 교육 사역을 위한 교회시설 확충 △교회의 체계적인 조직력 강화로 일부 책임자들에게 치우친 조직체계 정비 △성경안내서, 주석, 기독교서적 보급 등 문서선교 활동 필요 △중국교회의 헌금문제 해결 △세속화되고 느슨해진 영성 회복 등이 보완돼야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세계 최대의 미전도 지역인 중국은 현재 법률상 외국인이 중국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사실상 드러내놓고 선교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서 중국선교연구원은 “200주년을 맞는 중국기독교는 지금껏 주님의 뜻으로 주도되어 왔으며 선교중국으로 가는 길도 함께 하여 주실 것”이라면서 “앞으로 우리는 선교중국을 주도하시는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의 손길을 바라보면서 중국교회를 섬기는 사명을 끝까지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원본:들소리신문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6/board.php?board=maboard&page=2&command=body&no=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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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http://www.cornerston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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