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A Terra/중국] 타클라마칸 사막의 위성사진
타클라마칸 사막은 중국의 북서부에 위치하며 광대한 모래사막입니다. 이 사막은 북쪽으로는 텐샨산맥과 남쪽으로는 쿤룬산맥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촬영위성 : Terra
* 촬영센서: MODIS
* 촬영일자 : 2001년 10월 27일
* 저작권 : Jacques Descloitres, MODIS Land Rapid Response Team, NASA/GSFC
| ||||||||||
| ||||||||||
![]() |
실크로드의 발자취를 따라..타클라마칸사막 | ||||
중국 신강성...그중..큰 핵을 자리하며 뜨거운 숨을 내쉬는 곳..타클라마칸 사막이다.![]() 먼옛날 캐러밴행렬들은 줄을 지어 이런 모습으로 사막의 험난한 길을 지났을려나.. 실크로드의 행로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타클라마칸사막은 오늘날 새로운 모습이다. 곳곳에서 유전을 뚫어서 기름불기둥이 솟고.. 개발의 소리와 함께 곳곳에서 공사가 벌어지고.. 실크로드의 낭만을 따라 찾아오는 행렬은 또 이어지고.. 사실..여행으로 가서 타클라마칸사막을 마음속 깊이 담아오긴 힘든 일이다. 쿠차 민풍 호탄을 거쳐 카쉬카르를 다녀보지 않는 한은... 가도 가도 끝없는 모래사막을 느껴보지 않는 한은.. ![]() 사막을 들어서면 보이는 하얀 ..마치 눈이 온듯한 그런 모습을 군데 군데서 만난다. 간혹은 양들이 그 소금바닥에서 자라난 풀을 먹고 있는 모습도 앙증스레 보이기도 한다. 천연 간이 베인 풀을 먹고 자라서인지..이지역 양고기는 유난히 맛이 좋다. 이 소금지역은...타클라마칸사막지역이 그 옛날 바다였다는 증거라는데...바다로부터 수천킬로 떨어져 있는 곳이 바다였다니.. 억겁의 세월을 담고 소금으로 남은 곳인 듯 하다. ![]() 사막안 동네에서 만날수 있는 식당풍경이다. 양을 직접 잡아서 매달고 그자리에서 고기를 잘라 꼬치를 굽고..밀전병같은 빵과 함께 ..또는 수타면과 함께 먹기도 하고.. 사막이라고 황량한 모래와 척박한 땅만 있는게 아니다. ![]() 오아시스를 품어서 푸르름을 선물하는 그런 여유로움도 가지고 있다. 지름이 1미터를 넘는것서부터..자라고 있는 나무까지.. 자라는데 천년, 사는데 천년, 죽어서 천년...삼천년을 산다는 호양림이다. 사막에서 만나는 호양림숲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가을에 단풍이 들면 아름다움이 더하다니...한계절만 바라보고서 느끼는 것이 얼마나 모자란 소견인지..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자연에 적응하며 질긴 삶을 영위하는지..타클라마칸 사막에선 수시로 느끼게 된다. 힘들게 찾은 호양림숲에서조차..우리는 좌판을 놓고 파는 상인들을 만나게 되다니...웃고 만다. 하루에 찾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 사막에서 맛보는 하미과..그야말로 달콤한 맛이 목마른 자에겐 오아시스의 샘물이 된다. 신강지역을 여행하면서 수시로 찾게 되는 하미과..멜론의 일종인지..우리는 그맛에 중독이 된다. 사막은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여행자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
오늘날의 타클라마칸사막은 개발이란 이름으로
그 모습을 매일같이 새롭게 해서 다시 우리가 실크로드를 찾을땐...
또..새로움 모습으로 변해 있겠지만..
사막은 여전히...여러가지 이야기로 우리를 맞을 것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서쪽 끝 도시 카시카르에 도착했다. 예로부터 이 도시는 실크로드의 요충지로서 캐러밴(隊商)에 의한 동서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오랜 역사를 가진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일요시장이 열린다.
10월17일, 일요시장(바자르)가 열리는 날이다. 날이 밝기 무섭게 차를 타고 가축시장으로 향한다. 10여 년쯤 전에 이곳에 왔을 적에는 당나귀 마차를 타고 일요시장에 갔었다. 그 때의 기억들을 되돌려 보지만 카시의 거리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다. 고층 건물들이 들어선 시내 중심가에서는 마차 보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시내 변두리에 위치한 가축시장은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아 반갑다. 여전히 사람들은 당나귀나 말이 끄는 수레를 끌고 “뽀시뽀시(길을 비키라는 말)”를 외치며 시장으로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시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새로 지은 시장 건물은 물론이고 온 시가지가 장터로 변하고 있다. 파미르고원이나 텐산산맥 자락에서 사는 유목민들이 손수 짠 카펫과 치즈 등을 가지고 며칠씩 산길을 내려와 이곳 시장에 팔기도 하고, 인근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이곳으로 시장을 보러 온다고 한다. 캐러밴 낙타에 실려온 아라비아의 향료나 로마의 유리그릇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이곳 시장은 활기를 띠고 있다. 오늘 장은 라마단을 앞둔 장으로, 우리의 명절 대목과 비슷해서 유난히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비단과 옥의 고장 호탄
10월19일, 카시를 출발해 타클라마칸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인 호탄(和田)으로 길을 잡는다. 카시에서 호탄까지는 500km. 백양나무 가로수 길을 따라 길은 계속된다. 오른쪽으로 눈 덮인 쿤룬산맥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칼 만드는 곳으로 유명한 잉사르(英吉沙)라는 마을에서 잠깐 쉬어간다. 따라오던 쿤룬산맥도 모래바람 속으로 숨어들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녘 유서 깊은 도시 호탄에 도착한다.
호탄은 쿤룬산에서 발원한 백옥강(위룽카스강)과 흑옥강(카라카스강) 사이에 위치해 일찍부터 땅이 비옥하고 기후가 온화해 서역 최대의 오아시스 왕국을 건립할 수 있었다. 비단, 면화, 모직물, 그리고 옥으로 대상무역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으며, 이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서역의 대 왕국이 됐다. 13세기 호탄을 지나갔던 마르코 폴로는 그의 저서 동방견문록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이곳에는 없는 것이 없이 풍족하다.’
동방견문록의 기록처럼 이곳은 지금도 풍요로워 보인다. 호탄은 가을이 한창이다. 백양나무 가로수는 황금빛으로 물들고 “뽀시뽀시”를 외치며 목화 수레를 끄는 농부들의 목청도 우렁차다.
예로부터 장수촌으로 유명해서인지 마차를 몰고 다니는 노인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띤다. 한 노인을 따라 집으로 들어가 본다. 올해 백열 살인 할아버지는 아직도 정정하다. 옆집에 사는 백열다섯 할머니는 폴라로이드 사진 속에 담긴 당신의 모습을 보며 소녀처럼 수줍게 웃는다.
이곳 사람들의 장수비결 중 하나를 옥으로 꼽기도 한다. 현장의 대당서역기에도 등장하는 호탄옥은 특수한 성분이 있어 인체에 아주 좋다고 한다. 그 신비의 보석을 줍는다는 백옥강에 나가본다. 강은 가운데 약간의 물만 흐르고 나머지는 자갈들로 채워져 있다.
쿤룬산맥의 빙하가 녹아 강물이 범람하는 여름이 지나면 호탄 사람들은 옥을 줍기 위해 백옥강을 거슬러 오른다고 한다. 이때 사람들은 맨발로 옥을 찾는데, 옥은 그 느낌부터 돌과 다르다고 한다. 강변에는 몇 사람이 자갈을 뒤지고 있었지만, 아직 제대로 된 옥은 줍지 못하고 작은 돌멩이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전설 속의 산인 쿤룬산에서 옥이 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옥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으로 여겼다. 달빛이 정화되어 만들어졌다는 옥을 중국인들은 특히 귀하게 여겼다. 옥과 관련된 문자가 500여 종에 이른다고 한다. 중국 황제의 옥새도 금이 아닌 옥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옥을 찾아 강변을 뒤지던 두 사내가 기도시간이 되자 메카를 향해 엎드렸다. 천 년 전에는 불교가 번성했던 이 땅이 지금은 알라신의 기도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호탄의 자랑 중 다른 하나는 비단이다. 7세기경 당나라 현장법사의 기록에 의하면 그 당시에도 이곳 사람들은 비단과 무명옷을 즐겨 입었다고 한다. 호탄에 비단이 들어 온 유래는 이러하다. 먼 옛날, 중국에서 호탄 왕에게 시집 오게 된 공주는 비단 옷을 입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억울하여 국법을 어기고 시집 올 때 화관 속에 몰래 누에와 뽕나무 씨앗을 숨겨 왔다고 한다.
아름다워지고 싶었던 공주의 전설을 뒤로하고 오늘은 민펑(民豊?니야)으로 길을 잡는다. 가야할 거리는 330km, 점점 사막 내륙으로 들어간다. 호탄 시내를 벗어나자 마치 바다를 항해하듯 망망평원을 달린다. 이따금씩 나타나는 오아시스 마을들이 섬들처럼 나타났다 멀어진다. 계속 따라오던 쿤룬산맥도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쭉쭉 뻗은 도로 위로 바람에 실려 온 모래들이 물처럼 흐르고 있다. 내가 꿈꿔왔던 사막여행이 이런 풍경이었던가? 막막한 풍경에 가슴이 아리다.
우전(于田)이라는 곳에서 잠깐 쉬어간다. 호탄의 고대 이름인 우전과 같은 지명이다. 이곳이 고대의 우전국인가? 우전국은 불교경전인 화엄경의 본산이며, 중국에 대승경전들을 전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역경된 화엄경이 7세기경 당나라를 거쳐 신라로 들어왔다고 하니 화엄경을 중시하는 한국 불교와는 인연이 깊은 땅이다.
해남 달마산 미황사 사적비에는 사찰의 창건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신라 경덕왕 때 달마산 아래 사자포구(獅子浦口)에 석선(石船) 한 척이 와서 닿았다. 배 안에는 화엄경과 금인(金人)이 실려 있었다. 한 스님이 꿈을 꾸었는데 그 금인이 말하기를 ‘나는 본래 우전국 왕으로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경상(經像)을 모실 곳을 구하고 있는데, 이곳에 이르러 산 정상을 바라보니 만불(萬佛)이 나타나 여기에 온 것이다. 소에 경을 싣고 가다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는 곳에 경(經)을 봉안하라.’
미황사의 전설 때문인가, 이곳의 풍경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환하게 웃는 어린 소년들의 얼굴에서 나는 선재동자의 모습을 본다.
사막공로(沙漠公路)를 가다
타클라마칸 사막에 유전이 개발되면서 1998년 10월 중국정부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개설했다. 실크로드 천산북로의 롱타이(輪台)에서 천산남로 민펑까지 이어지는 도로가 사막공로다. 일명 탑중공로라고도 부르는 이 도로는 길이가 530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사막도로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사막공로가 시작되는 민펑은 작은 도시였다. 탐험가 오렐스타인이 발견했던 니야 유적을 보고 싶었지만, 그곳은 사막 안으로 80km를 더 들어가야 하고, 미리 허가를 받아야만 들어 갈 수가 있다고 한다.
10월22일, 드디어 타클라마칸 사막 중심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날씨는 쾌청하고 아침 기온은 10℃ 이하로 떨어져 아주 쌀쌀하다. 민펑 시내를 벗어나자 광활한 늪지들이 나타난다. 갈대숲 사이로 목동이 양떼를 몰고 지나가고 있다. 이곳이 사막 언저리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풍경이다. 30여 분 더 달리자 초지는 사라지고 본격적인 사막이 펼쳐진다. 어느새 사막공로에 들어선 것이다.
사구 사이로 호양목(胡楊木)이라는 나무가 몇 그루 서 있다. 사막에 자라는 세계적인 희귀종 나무라고 한다. 노랗게 물든 이파리만 아니라면 마치 아프리카 바오밥나무를 연상시킨다. 호양목은 삼천 년을 산다고 한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 썩는 데 천 년. 태백산 주목(朱木)만큼이나 오래 사는 나무인가 보다.
몇 그루 호양목을 끝으로 이제 완벽한 사막길을 달린다. 온 사방이 모래바다다. 사구들이 파도의 물결처럼 스쳐 지나간다. 수많은 공룡떼들이 지나가는 듯한 사구를 만나기도 한다. 반복되는 사막 풍경에 지루할 즈음 차가 길가에 멈춘다. 사진을 찍기 위해 사막으로 걸어 들어가 본다. 모래가 어찌나 고운지 마치 분가루 같다. 바람 한 점 없는 한낮의 사막풍경은 적멸의 시간이다. 나는 그 적멸의 아름다움에 취해 한 걸음 한 걸음 사막 안으로 들어갔다. ‘타클라마칸’이란 한 번 들어가면 되돌아나올 수 없다는 뜻이라는데, 나는 사막의 유혹을 뿌리치고 되돌아나온다.
도로 양쪽으로 키 작은 나무들이 줄지어 심어져 있었다. 어떻게 이 사막에서 저 어린 나무들이 자랄 수 있을까? 설혹 자란다고 해도 그 모래폭풍은 어떻게 견딜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무리였다. 자세히 보니 나무 사이사이로 고무호스들이 연결되어 있고, 호수의 작은 구멍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도로 3~4km마다 세워져 있는 건물의 실체를 알았다. 지하수펌프장이었다. 530km의 사막공로를 모래바람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녹화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사막과의 끝없는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신 우공이산(愚公移山)이다.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는 다음과 같은 우화가 실려 있다.
먼 옛날 우공(愚公)이라는 90세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사방 700리에 높이가 만 길이나 되는 두 큰 산이 집 앞뒤를 가로막고 있어 왕래에 장애가 됐다. 그래서 우공은 두 산을 파내기로 했다. 우공은 세 아들과 손자들을 데리고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로 발해까지 갖다 버리기 시작했다. 한 번 갔다 돌아오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어느 날 지수라는 사람이 죽을 날이 멀지 않은 노인이 정말 망령이라며 비웃자 우공은 태연히 말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하고, 아들은 또 손자를 낳고, 손자는 또 아들을…. 이렇게 자자손손 계속하면 언젠가는 저 두 산이 평평해질 날이 오겠지.”
우공의 끈기에 감동한 옥황상제는 역신(力神)에게 명해 각각 두 산을 업어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사막공로에 가로수가 무성해지는 그 날을 기대해보며 다시 길을 떠난다. 민펑를 출발한 지 3시간만에 사막 가운데 위치한 휴게소에 도착한다. 이 부근에 석유개발기지가 있어서인지 많은 트럭들이 세워져 있고 식당에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이다. 휴게소 앞 철탑에는 사막 개발을 독려하는 이런 문구들이 크게 적혀 있다.
‘황량한 사막은 있어도, 황량한 인생은 없다.’
오후에도 황량한 사막은 계속됐다. 한낮의 사막은 많이 건조하다. 습도계가 17%를 가리킨다. 차는 점점 타림분지(Tarim Basin) 속으로 들어갔다. 타림분지는 남북 길이 500km, 동서 길이 1,500km로 서쪽은 파미르고원, 북쪽은 톈산산맥, 남쪽은 쿤룬산맥에 둘러싸여 있다. 주위의 산맥이 모두 높고 산꼭대기는 만년설에 덮여 있기 때문에 수량이 많아 타림(물을 모으는 곳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분지라 해발고도가 낮을 줄 알았는데 고도계가 1,360m를 가리키고 있다. 쿤룬산맥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다.
3시간쯤 더 달리자 사막 곳곳에서 고사목들이 나타난다. 호양목들이다. 살아 천 년이라 했는데 천 년도 살지 못하고 말라죽은 것일까?
해는 기울고 습도계는 점점 올라가 47%를 가리킨다. 타림강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다. 롱타이(輪台) 기점 95km쯤부터 사구들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기름진 평원지대로 바뀐다. 민펑을 출발한 지 8시간, 드디어 타림강에 이른다. 타림강은 길이 2,179km로 쿤룬산맥에서 발원하는 호탄강과 예얼창강, 텐산산맥에서 발원하는 카스거얼강, 퉈스한강 등 네 개의 강이 합류한 다음 동쪽으로 흘러 타클라마칸 사막의 움직이는 호수라 불리는 롭노르([羅布泊湖)로 흘러든다.
호양목 노랗게 물든 타림 강변에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본다. 강물을 볼 때마다 흘러 가 닿을 바다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타클라마칸 사막을 흐르는 저 강물은 끝내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사막에서 방황하다 사라질 것이다.
타클라마칸 사막공로 끝에서 저 강물이 내게 화두처럼 다가온다. 내가 가닿을 인생의 바다는 어디쯤일까? 방황하는 강물처럼 해 저무는 강변에서 나는 서성이고 있었다.
/ 글·사진 이해선 사진작가
[타클라마칸 사막]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곳’
타림분지 중앙부의 중국 최대 사막
타클라마칸(Takla-Makan) 사막은 중국의 신장위그루(新疆維吾爾)자치주에 있는 사막으로, 동서 길이 약 1,000km, 남북 약 500km, 면적 337,600㎢. 북쪽은 톈산산맥(天山山脈), 남쪽은 쿤룬산맥(崑崙山脈)으로 둘러싸인 타림분지(塔里木盆地) 중앙부에 있는 중국 최대의 사막이다.
유동사구(流動沙丘)가 85%를 차지하고, 사구 높이는 보통 80~150m이나 200~300m에 이르는 것도 있다. 타림강과 쿤륜산맥에서 발원하는 호탄강(和田河)과 예얼창강(葉爾羌河), 텐산산맥에서 발원하는 카스거얼강(喀什恩爾河), 퉈스한강(托什罕河) 등이 사막으로 흘러든다.
타클라마칸은 위구르어로 죽음(kakkiri)과 끝없이 넓은 지역의 합성어로,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중국 기행타클라마칸사막] ‘황량한 사막은 있어도, 황량한 인생은 없다’ 카시~호탄~사막공로~민펑~타림강~우루무치 답사 | |
'† CHINA > 중국사진>동영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티벳 라싸의 포탈라궁 그리고 조캉사원 (0) | 2007.10.09 |
---|---|
티벳 라싸시장의 모습과 상과초원(桑科草原) (0) | 2007.10.09 |
[NASA Terra/중국] 타클라마칸 사막의 위성사진 (0) | 2007.10.09 |
중국TV 뉴스 / 동영상모음 (0) | 2007.09.27 |
중국 네티즌의 베이징 올림픽 홍보 영상 (0) | 2007.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