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성경은 권세 잡은 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잘 처리하라고 기독교인들을 지도  하고 있는가?
답: 어떤 사람은 “삼자”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반대하는데 이는 “삼자”조직이 정부의 영도를 받자고 제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정부의 영도를 받는다는 것은 우상을 섬기고, 간음죄를 짓는, 곧 대음부(大淫婦 : 곧 음란한 여인)”라고 한다. 해외의 또 어떤 이들은 선동하여 말하기를 “누가 권세를 잡든 그 사람을 반대하는 것은 바로 선지자의 사명이다”
이 말은 맞는가, 틀리는가? 성경 잠언 24장 21절-22절을 보면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라고 했다.
디도서 3장 1절-2절에는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고 했다.
왜 바울은 디도에게 “모든 사람에게 깨우치라”고 했는가?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주를 믿은 이후 여러 가지 원인으로 집권자와 도무지 맞지 않아 대립상태에 처하고 심지어 그들에게서 벗어나 정치와 현실의 생활을 초월해야 비로소 경건하고 영적이라고 여긴다.
이는 “권세 잡은 자들에게 순종하라”는 진리를 소홀히 하거나 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모든 사람을 깨우치고 바로 잡아야 한다. 이 “깨우치는” 임무가 지금 역사적으로 삼자조직의 몸에 지워진 것이다.
정부의 정확한 영도를 받아들이자는 제창은 삼자조직의 하나의 사업이다. “삼자”의 장정에는 명확하게 이 조항을 기록하고 있다.
디도서를 보면, 1장에는 성직자를 세우는데 대하여, 2장은 진리의 바른 교훈에 대하여, 3장은 권세 잡은 자에 대한 순종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1장, 2장은 영적이고, 3장은 세속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3장 역시 성경이며,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의 견해가 치우쳐서는 안 된다.
로마서 13장 1절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했으며, 5절에서 강조하기를 “그러므로 굴복하지 않을 수 없나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교회는 왜 반드시 권세 잡은 자를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가?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첫째,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실 뿐 아니라 만유의 머리이시며, 또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다.“(계1:5)
둘째, “하나님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신다.”(단4:17, 25, 32, 5:21)
셋째,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13:1)
넷째, 권세 잡은 자는 “하나님의 사자”이며(롬13:4), 또한 “목자”이다(사44:28).
다섯째,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는 심판을 자취하리라”(롬13:2),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롬13:5)
여섯째,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13:7)
일곱째,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딛3:1)
여덟째,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벧전2:13)
많은 성경 구절이 증명하듯이 정부의 정확한 영도에 복종하고 애국과 법을 준수하도록 제창하는 것은 각 기독교인의 불변의 진리라는 것이다.
 
37. 그리스도인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가?
답: 할 수 있다. 아래의 예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요셉은 애굽의 바로 왕 밑에서 총리가 되었다(창45:8).
둘째,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 수하의 술 관원(느1:11)이었으며, 후에 유다 땅 총독이 되었다(느5:14-15).
셋째,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 왕의 재상(재宰相)이었다(에10:3).
넷째, 다니엘은 바벨론 왕 수하의 총독이었다(단6:1-3).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성경의 근거를 고려치 않고, 계시록 13장 11절의 거짓 선지자의 “두 뿔”을 크게 잘못 해석하여 말하기를 “뿔은 권세의 뜻으로서 두 뿔이 있다는 것은 바로 정치적 권세를 가질 뿐 아니라 또한 교회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하여, 교회의 권세를 가지면서 정치적 권세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니다. 삼자조직 안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협위원(政協委員), 인대대표(人大代表)을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두 뿔을 가진 짐승’이다.”라고 한다. 만약 이런 견해가 옳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요셉, 느헤미야, 모르드개와 다니엘은 어쩌란 말인가?
여기에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보자. 한 그리스도인이 공민의 권리를 행사하고 정치에 참여하여 국가 대사를 관리하는 것이 신앙의 정조를 잃은 것인가? “우상을 섬기고”, “간음을 범한” 것인가? 성경의 대답은 명확하다. 신앙을 견고하게 지킨다는 전제하에서, 그리스도인은 정치에 참여할 수 있으며, 심지어 믿지 않는 정권 속에서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요셉, 느헤미야, 모르드개, 그리고 다니엘 모두가 이와 같았다. 어느 누가 요셉, 느헤미야, 모르드개와 다니엘과 같은 사람들이 믿지 않는 정권 속에서 정치에 참여함으로 그들의 신앙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무도 없는 것이다.
 
38. 그리스도인은 정부를 위하여 중보하며 축복해야 하는가?
답: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매우 분명하게 설명한다. 디모데전서 2장 1절-3절에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만한 것이니”라고 했다.
그러나 현재 소수의 그리스도인과 전도인들의 입에서 인민정부를 위하여 중보기도하며 축복하는 소리를 들어볼 수 없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훼방하고 저주하는 말을 한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경건하고 단정한 것인가?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는 것인가?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인가? 이다. 욕을 험하게 하면 할수록 더욱 영적이라고 여기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야곱이 바로에게 한 축복(창47:7)을 보고 또 바울의 권고를 들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 성경의 진리 앞에서 냉정하게 이런 사람의 부정확한 신앙의 태도를 교정할 수 있을 것이다.
 
39.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모든 제도에 순종해야 하는가?
답: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거룩한 나라에 속하며, 영적생활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생활하기에 응당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는 주를 위하여 순복”해야 한다. 베드로전서 2장은 이 두 방면의 내용을 똑같이 고려하고 있다. 1절에서 16절은 신앙상의 영적생활, 예를 들어서 “신령한 젖”을 사모하며, “신령한 집”을 세우고, “신령한 제사”를 드리고,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며”, 13절에서 17절은 곧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응당히 갖추어야 할 품행이다.
베드로전서 2장 13절에서 17절까지의 본문은 곧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란 무엇을 말하는가? 본문 전체를 통해 볼 때, 국가의 사회제도, 경제제도, 정치제도와 민간의 모든 제도(예로 향촌의 자치규약), 그리고 이러한 제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정책과 법령을 포괄함을 의미한다.
둘째, 이러한 인간의 모든 제도에 대해서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모두 “순복하라고 한다.” 왜 순복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15절 말씀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이는 신앙을 고치라는 말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인이 응당히 갖추어야 할 품행이다. 주 예수께서도 이와 같이 행하셨다(마17:24-27). 두 번째는 16절 말씀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하라” 여기에 하나의 모순이 있다. 즉 “자유하나”와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이다. 종이 된다는 것은 마치 자유가 부족한 것과 같이(요8:32) 구속을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특히 하나님의 종이다. 자유를 가지고 악독을 감추거나 자유를 방탕한 정욕의 기회로 삼을 수 없다(갈5:13).
현재 어떤 사람은 자유를 “자기 마음대로”바꾸어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종이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구속을 받지 않고, 또 한편으로는 정책과 법제에 대한 관념조차 없으면서 사람의 모든 제도에 순종하지 않는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런 “자유”는 국가가 허락지 않은 것이며 성경 또한 허락지 않은 것이다. 법을 어기고 어지럽게 하는 사람은 정책과 법령상의 보장이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도 똑같이 보장받지 못한다.
셋째,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의 목적은 무엇인가? 성경은 말하기를 “주를 위하여”라고 했다. 주님의 이름으로 훼방 받지 않게 하고, 주님의 진리의 말씀이 가로막히지 않게 하며, 주님의 교회가 “많은 사람의 기쁨을 얻도록” 함이다. 이로 보건대, 법을 어기며 어지럽히는 사람은 절대로 “주를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사욕과 악독을 드러내는 것이다. 진정으로 주를 위하는 사람은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를 순종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공의 역시 선을 행하는 자에게 상을 주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 벌을 가하는 제도를 통하여 나타난다.
바울은 로마 국적을 가지고 당시 인간의 모든 제도를 순종했다. 왜 그렇게 했을까? 주님의 사역을 위해서였다. 그는 로마 국적의 권리를 이용하여, 핍박을 받을 때 놓임을 받아 주님을 위하여 더 많은 거룩한 사역들을 할 수 있었다(행16:35-40).
따라서 우리 온 그리스도인들은 주를 위하여, 국가의 모든 제도를 옹호하고, 인민정부의 정확한 영도에 순종하며, 인민정부의 각종 정책과 법령을 준수하며, 애국애교해야 한다. 조국의 안정과 단결,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두 개의 문명건설을 위하여 더욱 많은 공헌을 하고,  사회주의 사회와 서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교회를 이끌어, 우리 교회로 하여금 부단히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
 
40. 어떻게 하면 교회가 “자치(自治)”에서 “치호(治好)”로 갈 수 있나?
답: 무릇 잘 운영되는 교회는 대부분 아래와 같이 두 방면의 사역을 잘한다.
하나는 교회가 확실하게 행할 수 있는 규장제도를 제정한다.
이러한 규장제도는 첫째, 교회학습, 회의제도, 둘째, 교회사역 안배제도. 셋째, 교회재무관리제도 등을 포괄한다.
규장제도를 제정하면, 교회는 그 규장법규에 의거하여 교회를 잘 다스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담임자와 목회자들이 모범적으로 회의에 통과된 교회 내의 모든 규장제도를 순종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민주를 실행하여 교회를 관리한다. 잘 운영하는 교회가 되려면 인사안배, 사역계획은 물론이고, 경비예산까지도 회의를 통한 민주토론을 거친 후 실시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일언당(一言堂)”이라는 가부장적 모습을 피할 수 있고, 또 “군언당(群言堂)”이라는 집체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 교회를 잘 운영하려면 반드시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도록 하며, 교회 내의 각종 사역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41. 어떻게 교회가 “자양(自養)”에서 “양호(養好)”로 갈 수 있나?
답: 우선적으로 교회는 형제자매들에게 “부지런함으로 부요한 자가 되어야 영광스러운 것이다”와 같은 적극적인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고,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더욱 영적”이라는 잘못된 관념을 버리고, 신앙 상에 있어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금전관(金錢觀)을 심어주어야 한다. 이러한 기초 위에 우리가 강대상에서 말씀을 공급하기만 하면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의 열정이 타오르게 되고 교회에 헌금하는 것도 자연스레 증가하게 된다. 그 다음 교회의 부동산을 효과적으로 개발하면 비교적 큰 경제적 유익을 발휘할 수 있다. 조건을 갖춘 교회는 기업을 운영하여 교회의 자양 능력을 증강시킬 수 있다.
 
42. 교회가 “자전(自傳)”에서 “전호(傳好)”로 가자면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가?
답: 진정으로 “전호”를 하려면,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다.
첫째, 인재양성에 힘써야 한다.
둘째, 신학교를 잘 운영해야 한다.
   ①1985년 절강 막간산 중국기독교 신학교육 좌담회(浙江莫干山中國基督敎神學敎育座談會)에서 확정된 우리나라 신학교운영방침은 영(靈), 덕(德), 지(智), 체(體), 군(群)의 통합적인 발전에 있다.
   ②인재선발은 각 교회가 추천하여 신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고자 하는 학생의 선발을 포함한다.
   ③신학교육을 규범하여 우리나라 자체의 신학교육체계를 형성한다.
   ④신학 졸업생의 배치와 사용
셋째, 봉사자 양성
1998년 중국기독교 농촌사역위원회에서 통과된 “중국기독교 의공배훈반강요(시행)”를 조직 실시한다.
넷째, 신학사상건설을 강화하고, 또 정확한 신학사상을 갖추도록 지도한다.
 
43. 왜 국내의 어떤 사람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삼자”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답: 이러한 현상을 초래한 데에는 첫째, 일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일관되게 삼자애국운동을 훼방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미혹을 받았기 때문이다. 둘째, 삼자조직 안의 소수 사람들의 행위가 “삼자”의 이미지를 손상시킨 것은 분명히 있다. 셋째, 어떤 사람들은 “삼자”의 깃발을 들고 “삼자”를 반대함으로 사람들에게 “삼자”는 단지 하나의 허황된 구호이며,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역할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인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넷째, 어떤 사람들이 반(反) “삼자”를 표방하여 스스로 영적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끌어들여 딴 살림을 차리기 때문이다. 다섯째, 어떤 지역은 종교정책이 아직까지 뿌리 내리지 못해서 “삼자”의 교량역할을 상실함으로서 삼자애국조직의 호소력은 자연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었다.
 
44. 해외에는 여전히 “삼자”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답: 있다. 상대적으로 말하자면 단지 소수에 불과하다. 여기서 주요한 것은 일부 반화세력(反華勢力)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기독교 삼자애국운동을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우리나라의 기독교를 통제하는 지위를 회복하고자 기도(企圖)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어떤 사람들이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근거도 없는 것을 조작하고, 과장해서 말하고, 부화뇌동하여 발생한 이롭지 못한 영향이다. 세 번째는 우리나라 교회가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일에 다소 부진한 까닭이다.
근 50년 동안 중국기독교 삼자애국운동을 통해 삼자의 정의성, 합리성 및 필요성은 날이 갈수록 국제 기독교회 및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앞으로는 우리나라 교회가 실시하고 있는 삼자원칙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틀림없이 갈수록 적어질 것이다.
 
45. 해외의 교회는 우리나라 교회의 삼자원칙을 어떻게 보는가?
답 : 이 방면의 자료는 참으로 많다. 여기에서 몇몇 해외교회와 단체가 우리나라 교회의 삼자원칙을 객관적으로 보고 발표한 성명과 결의을 요약 소개한다.
1. 미국 기독교회 연합회
1983년 5월 12일 정기총회에서 통과된 “중국의 정책에 관한 성명” (요지)
“중국 기독교 지도자들은 중국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국 기독교인들 자신의 임무라는데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들은 해외교회를 향해 선교사를 중국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중국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신앙과 기구(機構)로부터 ‘양교(洋敎)’라는 꼬리표(標籤)를 제거하려는 바램은 복음사업 자체에 기초한 것이다. 그들은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성취를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고 있다. 해외 기독교인들은 마땅히 중국 기독교인들이 인민들 가운데서 행한 노력을 존중해야 하며, 더 이상 구시대의 선교사업을 회복시키고자 기도(企圖)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아래에 열거한 의무를 이행할 것을 밝힌다.
첫째, 중국기독교인들이 강조하는 중국기독교 단체의 자주성과 완정성(完整性)을 존중한다. 바로 중국기독교협회와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이 강조하는 바와 같이 말이다.
둘째, 중국교회와 관련된 업무에 대하여 전반적인 협상을 진행해야 하며, 또한 쌍방이 공동으로 결정을 내린다.
셋째, 미국 기독교회연합회 및 우리의 소속교회들은 교회를 돕고자 하는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데 있어서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중국기독교인들과 전 중국인민들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에 대하여, 그리고 세상에서의 그들의 당면한 사명과 진정한 보편적 실질에 대하여 하나의 새로운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2. 루터교세계연맹(信義宗世界聯盟)
다음은 1987년 7월 4일에서 9일까지 서독 뮌헨에서 거행된 루터교 세계연맹 집행위원회에서 통과된 우리나라 교회와 관련된 두 가지 결의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교회의 상황과 관련된 이해에 근거하여, 중국교회 삼자원칙을 전적으로 존중하는 것과 해외교회와 기타 단체들이 중국사회발전사업에 참여하는 데 있어서 애덕기금회(愛德基金會)가 중요한 경로 역할을 담당해 준 데 대해 경의를 표한다.
결의:
첫째, 루터교세계연맹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진행되는 재정 및 인력 지원의 매 항목에 대해 알려줄 것이며 또 애덕기금회의 의견을 물을 것이다.
둘째, 루터교세계연맹은 애덕기금회와 중국기독교협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어떠한 사업도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진행하지 않는다.”
3. 영국순도감리회(英循道衛理公會)
중국교회와 관련된 결의를 통과시켰다.
1984년 7월 4일 영국 순도감리회는 전국대회에서 아래와 같이 중국교회와 관련된 결의를 통과시켰다.
“대회는 필립 몰간 박사와 켄터베리 대주교가 인솔한 영제국 교회연합회 대표단의 중국 방문보고를 관심 있게 청취했다.
대회는 중국교회가 어려운 시기에 나타낸 믿음에 대해, 그리고 중국교회가 일치된 길을 따라 전진하고 중국 교회의 성도들의 수가 부단히 성장한데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대회는 중국교회의 신념인 자양, 자치, 자전의 원칙이 교회생활을 잘 영위해 나감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것임을 확인하고, 지지한다.
대회는 새로운 합당한 방법을 모색하여 중국교회와의 관계를 유지할 것을 보장한다.”
 
46. 해외교회 지도자들은 우리나라 교회가 견지하는 “삼자”원칙을 어떻게 보는가?
답: 이 방면에 대한 평가는 참으로 많지만 몇몇 해외교회 지도자들의 평가를 요약하여 이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1. 영국의 켄터베리 대주교 룬시박사
A. 1982년 1월 6일 홍콩 성 요한교회 설교(요지)
“과거 우리는 때때로 기독교를 서방문화와 혼돈해서 말했었다. 복음은 다소 영국의 면모를 띤 채 아시아로 전해졌다. 기독교는 양교(洋敎)의 형식을 갖게 되었다. ... 그러나 그러한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여기 태양이 솟는 동방에서, 기독교는 이제 중국의 면모를 지녀야 마땅하다.”
B. 1982년 1월 9일 남경에서 중국 및 외신기자들에게 행한 성명(요지)
“나는 띵(丁)주교와 함께 여러 시간 담화를 나누었다. 나는 지금 그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다는 데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떠날 때, 그가 국외기독교인들의 신임을 얻기에 적합한 인물이며, 중국인민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바, 삼자애국운동은 기독교가 그 속에서 적극적인 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려고 한다. 나는 어느 누구도 삼자애국운동을 파괴하려는 일을 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하려고 한다.”
2. 캐나다 캐서린? B? 후오진의 담화
캐나다 기독교연합회대표단은 1981년 6월 중국을 방문했으며, 아래는 연합회 캐나다 ? 중국위원회 회장 캐서린 B 후오진의 중국방문 소감이다(요지).
“역사적 사실의 진상은 우리로 하여금 ‘외국선교사’는 과거 제국주의가 중국으로 하여금 극심한 재난을 당하도록 한 것과 분명히 관계가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 중국을 찢어놓은 불평등조약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복음의 큰 문을 여는 선구적인 일로 여겨졌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자연히 중국 교회로 하여금 교회의 우선적인 임무가 교회를 진정한 중국인 자신의 교회로 만드는 데 있다고 여기게 하였다.”
“영국 선교사 페이따웨이(裴大衛)는 <성공회의 자아비판> 중에서, 서양 선교기구와 선교정책이 불평등조약을 체결하는 데 분명히 참여했으며, 제국주의 시기의 전 역사 가운데, 해외 무역 발전과 기독교 지경의 확대라는 이 두 가지가 실제적으로 복잡하게 서로 뒤엉켜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캐나다 대표단의 구성원들은 반드시 캐나다로 가지고 가야할 공통된 메시지가 있다고 느꼈다. 그것은 바로 중국 기독교회는 자신의 교회를 잘 운영하려고 하고 있으며, 또한 이 시기에 중국 교회의 중요한 책임은 스스로를 중국 교회로 발전시키는 것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기독교와 중국 교회는 조국을 뜨겁게 사랑하며, 정부와 공산당의 영도를 옹호한다.
중국교회는 사회주의의 경제체제와 사회체제를 찬성한다.
중국에는 다만 하나의 교회가 있을 뿐이며, 이 교회는 여러 가지의 표현 형식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억지로 중국교회를 지하교회와 애국교회로 구분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3. 오스트레일리아 지뿌란(吉布蘭) 주교의 강화(講話)
오스트레일리아 기독교연합회 대표단은 1982년 5월 중국을 방문했으며, 아래는 연합회 회장 동방정교회 지뿌란 주교의 전국 양회 좌담회와 환영 연회(宴會)석상에서의 강화(講話)(요지)이다.
“우리 연합회의 정식 입장은 중국 교회 내부 업무에 대한 어떠한 간섭도 반대하는 것이며, 또한 성경을 몰래 반입하는 것도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중국 교회 및 그 삼자 입장을 위해 큰소리로 변호해 줄 것이다. 또한 교리적으로 기독교인들은 마땅히 애국해야 하며, 국가와 개인은 분리될 수 없으며, 각국의 교회들은 모두 각자의 특색을 갖고 있으며, 중국교회가 삼자를 실현하는 것은 완전히 합리적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4. 예진하오(葉金豪) 목사의 강화(講話)
아시아 기독교회의(亞洲基督敎會議)의 총간사인 예진하오 박사는 우리나라 전국삼자 주석이며, 중국기독교협회 회장인 띵꽝쉰 주교의 초청으로 1980년 10월 20일부터 11월 2일까지 상해, 남경, 북경, 광주 등지를 방문했다.
예목사가 말레이시아로 돌아간 후 “아시아 기독교회의통신(亞洲基督敎會議通信)”은 그의 이번 방문에 대해 보도하면서 우리나라 기독교 교회의 상황에 대해 매우 높은 평가를 했다. 그는 “나의 방문은 매우 적시에 이루어졌다. ---종교의 자유에 대해 말하자면 중국 교회는 지금 가장 좋은 시기에 처해 있다.” “30년 동안, 중국 교회는 중국사회에서 이미 새로운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자치, 자양 원칙을 실행하여, 자신을 중국의 한 조직으로 건립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사람들에게 기독교신앙이 서양의 종교가 아니라 중국인민의 생활과 신앙의 일부분임을 표명하고 있다.” “중국 교회는 지금 중국사회에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했다.
 
47. 우리나라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삼자애국운동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답: 근 50년 동안, 우리나라 교회 지도자들은 “삼자”에 대해 확실한 소견을 적지 않게 발표했다. 여기에 목회자 몇 분의 발언을 소개한다.
1. 우야오쫑(吳耀宗)(1883-1979;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 1대, 2대 주석 역임) 은      “삼자” 4주년의 업적을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중국기독교회 및 단체는 기본적으로 제국주의의 통제를 벗어나, 점차 중국 성도가 스스로 주관하는 종교단체가 되었다.
둘째, 기독교에 있어서 제국주의가 미친 영향을 말끔히 제거하기 시작했다.
셋째, 전국의 성도들이 삼자혁신운동을 통하여, 반제애국(反帝愛國)의 인식을 드높이고, 많은 애국운동과 세계평화 수호운동에 참가했다.
넷째, 신중국의 교회는 애국애교(愛國愛敎)의 기초 위에서 새롭고 생기 있는 기상을 드러냈다.
2. 띵꽝쉰(丁光訓; 현재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 명예주석)
1982년 9월 16일 전국삼자와 전국기협위원회 회의에서의 발언(요지)
“동역자 여러분,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는 삼자의 의의에 대해 비교적 깊은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삼자는 애국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정확하고,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가 증인의 사명을 감당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도 피할 수 없는 추세입니다. 교회의 비전 성취라는 관점에서 볼 때나, 역사의 종말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삼자는 더욱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니케아신경은 말하기를 “나는 사도들이 전한 유일하고 거룩한 공(公) 교회를 믿습니다.”라고 하여 교회의 일체성, 성결성, 보편성, 사도성을 언급했습니다. 삼자는 이 네 가지의 실현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해외의 어떤 이들은 삼자를 공격하며 또한 방송매체와 같은 수단을 통해 중국을 향하여 삼자가 잘못된 것이라고 암시하고 과장합니다. 또한 이로써 우리를 서로 이간시키고 분열을 조장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명확히 알아야 하는 것은 교회 역사상 삼자는 잘못된 것이 아니며 교회가 자아를 실현함에 있어서 반드시 나아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이 길을 걸어야만 국가와 민족의 교회는 비로소 진정한 교회가 되며 궁극적으로 기독교와 같은 세계적 종교가 그 보편성을 진정으로 실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쟈위밍(賈玉銘; 1878-1969, 前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 제2대 부주석)
“삼자애국운동은 그 근원이 혼탁하지 않다.”
4. 삐용친(畢빙琴, 前 상해 전도인 수양원 원장)
1984년 8월 5일 삼자 성립 30주년 기념 리셉션 상의 발언
“내가 과거 오랫동안 삼자운동에 참가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기독교를 믿은 이후 기독교인은 단지 교(敎)만 믿고 전해야지 꼭 애국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라는 잘못된 사상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또 공산당은 유물주의자이기에 종교를 소멸하려고 한다고 여겼습니다. 삼자애국운동은 단지 기독교내 일부 사람들이 공산당을 도와 우리의 신앙을 제거하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겼습니다.
나는 현재 삼자애국운동이야말로 우리가 처해있는 시대의 산물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이라고 여깁니다. 만약 삼자운동이 없었다면 중국 기독교는 양교의 모자를 벗어버릴 수 없었으며, 복음 전파 사역 역시도 잘 발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자치, 자양, 자전’의 정신으로 중국 기독교인 자신의 교회를 잘 운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애국조직이 필요합니다.
근년에 와서 삼자애국 조직은 큰 업적을 이루었다. 신도들로 하여금 넓게 퍼져있는 동포들과 일치단결을 이룰 수 있게 했고, 한마음 한 뜻으로 4개 현대화 건설에 참가했으며, 또한 빼앗겼던 교회당을 되찾았고, 성경과 신앙서적 및 간행물을 인쇄 판매하고, 전국교회를 섬기고, 신학교와 성경학교를 설립하여 교회의 일꾼을 배양했습니다. 삼자운동이 신앙을 없애려 한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사실 무근입니다. 삼자운동의 선배, 지도자, 동역자들에 대해 내가 지금 분명히 보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용하셔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일부 인민대표로 또 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 뽑힌 동역자들은 적시에 나의 의견을 반영해주었고 또 교회가 정상적이고 순리적으로 발전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5. 천쩌민(陳澤民, 現 중국기독교협회 부회장, 금릉협화신학원 부원장, 교수)
“먼저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삼자”는 우리가 창조하고 발명한 것이 아니며 또 우리 스스로 생각해 낸 무슨 새로운 방법이나 새로운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삼자의 원칙은 성경의 근거를 갖고 있으며, 또한 2천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모든 교회가 준행한 하나의 원칙입니다. 거의 모든 종교의 각파들의 조직마다 모두 어느 정도의 삼자원칙을 갖고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오랫동안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경 가운데 없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정신과 교회는 성경 가운데 관통하고 있습니다. 삼자라는 이 원칙의 정신 또한 이와 같습니다. 성경의 근거를 갖고 있으며 신학적 이론에 근거한 것입니다. 교회 역사상 혹은 기독교 사상 모두 삼자가 필요한 원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6. 쟝페이펀(蔣佩芬 1914-1995, 前 중국 기독교협회 부회장, 금릉 협화신학원 교수)
“기독교의 삼자애국운동은 바로 기독교인의 애국운동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애교(愛敎)의 구체적 운동입니다. 우리나라가 삼자의 지방성(地方性) 교회를 건설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것으로서 이는 하나님의 걸작입니다.”
7. 뤄꽌쫑(羅冠宗, 現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 제6대 주석)
반드시 삼자원칙에 따라 교회를 잘 운영해야 한다. ‘삼자원칙’, ‘삼자조직’, ‘삼자종사자’ 등의 개념을 분명히 해야 한다.
(1) 삼자원칙은 바로 중국기독교가 반드시 외국의 지배를 벗어나 자치, 자양, 자전으로 독립과 함께 스스로 교회를 운영한다는 방침을 실현하여, 신도들이 애국애교의 길을 걷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중국기독교는 반드시 정확한 이 원칙을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
삼자원칙은 바로 아래의 “사개필수(四個必須)” 곧 반드시 해야 할 네 가지이다. 즉, 
반드시 독립자주를 견지해야 한다.
반드시 애국애교를 견지해야 한다.
반드시 단결을 강화해야 한다.
반드시 ‘삼호(三好)’를 관철해야 한다.
(2) 삼자조직은 삼자원칙을 집행하는 기구이다. 40여 년 동안 삼자조직은 삼자원칙에 따라 교회를 잘 운영하기 위해서 많은 사업을 했다. 물론 어느 시기에 어느 지역에서는 삼자조직이 어느 정도의 실책이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삼자조직의 성과는 괄목할만하다. 어쨌든 삼자조직에 어떤 착오와 실책이 있었다고 해서 삼자원칙의 정확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3) 삼자종사자는 절대다수가 애국애교하며, 주님의 사역을 전적으로 섬기는 동역자들이다. 그들의 수고와 노력이 없었다면 삼자애국운동은 오늘의 성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삼자종사자 가운데에도 이러 저러한 결점들은 있다. 실수와 착오의 일부를 이미 바로잡았으며, 일부는 개선하고 있는 중이며, 일부는 아직 그대로 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사랑에 입각하여 진솔한 말을 하고 서로 권면하고 서로 도와야 할 것이다. 어쨌든 삼자종사자 가운데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의 어떤 착오로 인해서 삼자조직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으며, 이로 인해서 삼자원칙의 정확성을 부정할 수는 더더욱 없다.
 
48. 오늘 우리나라 교회는 왜 여전히 삼자원칙을 견지하려고 하는가?
답: 이는 “삼자”의 임무가 아직까지 완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자”는 발기 초에나 지금이나 그 목표가 바로 교회를 잘 운영하려는데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지금 우리나라 교회는 비록 “운영”이라는 면에서는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 적지 않은 성과도 얻었지만 “삼호”의 요구와는 아직까지 거리가 있다. 이것이 그 첫 번째이다. 두 번째는 해외 반화세력(反華勢力)의 존재이다. 이 세력은 우리나라 교회의 “삼자견지”원칙을 “삼자교를 믿는다.”라고 말하면서 무릇 삼자원칙을 견지하는 교회는 모두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들은 하나님과 사람의 대립이라는 관점으로 교회의 자치를 부정하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사람의 말을 듣지 말라.”라고 강조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혼란시키고 우리의 “삼자”역량을 와해하여, 이로써 우리나라 교회로 하여금 삼자원칙을 포기하게 만들어서 결국은 다시금 우리나라 교회를 통제하려는 그들의 목적을 실현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헌법 제36조에는 중국종교단체와 종교 사무는 외국세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내용을 명문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삼자애국의 성과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오늘, 그리고 앞으로 상당한 기간동안 우리나라 교회는 반드시 삼자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49. 어떻게 하면 삼자원칙의 정확성, 정의성, 합리성, 필요성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깨닫게 할 수 있는가?
답: 우리나라 각 지역 교회는 삼자원칙에 대한 선전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 그 형식은 전단이나 게시판, 소식지 등을 통해서 할 수 있으며, 또한 설교 가운데, 혹은 각 지역 교회의 성경학습반 가운데 삼자애국의 내용을 포함시켜 더욱 많은 형제자매들로 하여금 삼자원칙이 교회를 잘 운영하고자 하는 하나의 원칙이며, 우리나라 교회의 주권을 보호하려는 원칙이며, 평등과 우호의 기초 위에서 각국 교회와 상호교류를 하고자 하는 원칙이며, 더욱이 애국의 원칙이라는 점을 진정으로 이해하도록 한다. 정의감과 강렬한 애국심과 경건한 신앙을 가진 중국기독교인들은 모두 삼자원칙의 정확성, 정의성, 합리성, 그리고 필요성을 마땅히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교회가 삼자원칙을 견지하여 중국특색을 갖춘 교회를 잘 운영해 나갈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
 
50. 삼자애국운동의 앞으로의 임무는 무엇인가?
답: 띵꽝쉰(丁光訓) 주교는 <회고와 전망>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삼자의 성과는 매우 크다. 그러나 삼자의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나라 교회의 삼자애국운동의 임무가 아직도 요원하며 완성되지 않았음을 명확히 지적한 말이다. 우리나라 교회, 특히 널리 퍼진 농촌교회의 상황에 근거해 볼 때, 우리는 계속적으로 아래 몇 가지 방면의 사업을 잘 이행해 나가야 한다.
첫째, 삼자애국운동을 선전하는데 더욱 힘써 새신자나 기존신자에 대해 애국주의교육과 재교육을 진행한다. 특히 갓 예수를 믿은 수많은 새신자들은 영적으로 어릴 뿐 아니라 정상적인 목양을 받지 못해서, 삼자애국운동의 유래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르고 있다. 우리는 삼자가 신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훌륭한 기독교인은 마땅히 훌륭한 공민이어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그들에게 교육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진리를 알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애국주의의 각오를 다지고 주님을 위하여 빛을 발하고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사람들에게는 유익을 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둘째, “포도원을 파괴하는 작은 여우”를 늘 경계해야 한다. 삼자애국운동이 시작된 이래, 절대다수의 신도들로부터 진심어린 옹호를 얻었지만 제국주의 선교의 정치입장의 영향을 비교적 크게 받은 일부사람들은 여전히 상반된 태도를 갖고 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는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한다. 더 많은 사람들은 겉으로는 복종하나 속으로는 따르지 않으며 입으로는 ‘옹호’ 하지만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는 파괴를 일삼는다. 또 어떤 이는 상호 존중하는 신앙심의 특성을 이용하여 자신을 표방하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며, 종파의 파벌을 더욱 깊이 심고, 지금 우리가 헐고자 하는 가로막힌 담을 다시 세워 그리스도안에서의 대 연합을 파괴하고자 기도한다. 어떤 이는 식민주의가 교회 내에 퍼뜨린 성경의 진리를 벗어난 그릇된 이론들을 주워 담아 은밀히 전파하여 주님의 진리를 혼란케 한다. 어떤 이는 전도자라는 이름으로 신자들을 속이고 재산과 생명을 갈취하고 있다. 어떤 이는 국외교회의 반화조직(反華組織)과 은밀히 결탁하여 화를 자초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고 삼자를 반대하는 이러한 행위에 대해 우리는 고도로 경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 가르치고 인도하는 일을 잘해야 한다.
셋째, 국외교회의 반화조직의 침투활동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 적은 저절로 역사의 무대를 떠나지 않는다. 과거 선교회와 중국에 있는 그들의 대리인들도 이와 같았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국경 밖과 해외에서 “선교”라는 깃발을 걸고 기구를 조직하여 사회주의 신중국을 악랄하게 공경하고 있다. 유언비어를 퍼뜨려 모독을 하고, 우리나라 교회가 삼자애국의 길을 걷지 못하도록 파괴공작을 한다. 어떤 이는 원래 있던 종파관계를 이용하여 관광이나 친척방문을 구실로 은밀히 결탁하여 종파의식과 정치상 반동의식이 농후한 서적을 대량으로 배포하고 개인숭배활동을 일삼고 있다. 어떤 이는 대규모로 몰래 들어와 우리나라 연해지역에 소위 “원조(援助)”성경을 몰래 대량으로 운반해 와서 우리나라 교회의 성경 출판 사업을 파괴하고 있다.
물론 삼자애국운동은 결코 배외운동(排外運動)이 아니다. 우리나라 교회는 세계의 많은 나라의 우호교회나 단체와 정상적이고 우호적인 교류를 하고 있다. 또한 그들이 우리나라 신학교육 등을 지원하기 위해 보내주는 서적이나 자료, 그리고 헌금이나 물질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대로 다른 의도를 지닌 반화세력의 파괴활동에 대해서는 삼자애국의 대 기치를 내걸고 그들의 활동을 반드시 제지해야 한다.
넷째, 교회를 잘 운영하고 주님을 위하여 아름다운 간증을 드러내야 한다. 독립과 자주를 견지하면서 교회를 잘 운영한다는 것은 단지 삼자애국의 첫걸음을 내딛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또한 자신의 교회를 잘 운영해서 우리 중국 교회로 하여금 세계 교회 가운데서 주를 위하여 아름다운 간증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자면 애국사상의 기초 위에서, 그리고 동일한 신앙의 전제 하에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야 한다.”
다섯째, 새로운 세기 가운데 우리나라 기독교는 “삼자”에서 “삼호”로의 질적인 변화가 이어야 한다. 반드시 삼자의 50년 경험으로 풍성하게 쌓여진 신학사상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교회 사역을 지도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를 볼 때, 우리나라 기독교 신학 사상을 강화하고 활성화하는 것은 기독교와 사회주의 사회가 서로 적응하고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사람들에게는 유익을 가져다주는 중국 교회로 잘 운영하고 삼자운동의 남은 사역을 완성하도록 적극 유도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목회자들과 헌신자들은 모두 제 6회 2차 전국위원회에서 결의한 “신학사상의 건설을 강화하는 결의에 관하여”에 부응하여 중국기독교의 삼자사업으로 하여금 더욱 견실한 신학적 근거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출판 : 중국기독교 농촌 사역위원회
저자 : 리빠오러(李保樂)
번역 : 하영인/중국사역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