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탈북자 난민구류소의 인권과 북한교화소 실태
중국 내의 탈북자 수용소인 탈북난민구류소 내에서 단식 등의 저항행위가 보도 되자 구류소 내의 인권 상황에 대해 관심이 모여지는 가운데 한기총 산하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는 소식지를 통해 구류소 내의 탈북민 인권 상황을 전했다.
구류소란 중국 공안에 의해 체포된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강제송환되기 전까지 머무르는 임시대기소라고 할 수 있다. 운동본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현재 구류소는 투먼, 롱징, 훈춘, 산허, 허롱, 선양 등 두만강변과 단동, 창바이시엔 등 압록강의 국경지대에 설치되어 매월 수백 명 규모의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송환되고 있다. 구류소 내에서 발생한 단식투쟁 등 농성에 대해 구류소 내에서 인권 유린 사례가 있기도 했지만, 구류소에 수용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가까운 시일 내에 북한으로 송환될 것이 확실해진 것이고, 특히 중국에 떠돌면서 한국인들이나 탈북자 지원활동가들과 접촉한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구류소에 수감 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저항과 투쟁의 이유가 된다.
물론 인권유린 사례도 있다. 구류소에 수요되어 있는 이들이 인간적인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들은 북한인이지만 북한 당국이 이들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지 않았다고 중국에 항의하거나 문제제기를 할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투먼구류소에 머물러본 기억이 있는 한 탈북자는 개처럼 취급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하면서 고문의자라는 기구를 사용하여 박스 형태의 의자 속에 탈북자를 집어 넣어 사지를 꼼짝 못하게 하거나 전기봉 등을 이용한 고문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추가자료:~좋은벗들 북한연구소
* 북한인권상황
1. 회령 전거리 22호 교화소 1) 기초사항 ① 증언자 - 중국 도강죄로 1년 8개월 복역, 2004년 출소 ② 규모 - 죄수 약 1,200명, 간수 약 500명, 그 외 간수의 가족 포함 총 약 2,500명 수용. 죄수는 전원 남자, 형량은 최소 6개월 이상 최고 15년. ③ 위치 -청진에서 회령으로 가는 전거리역에서 15리 가량 골짜기로 들어간 곳. 교화소 주변에 4-5m 높이의 담장을 쌓았고 그 위에 철조망을 쳤음. ④ 하루 일과: 05:30~06:00 기상(겨울은 06:00) 06:00~07:00 세면 07:00~08:00 아침 09:00~12:00 작업 12:00~14:00 점심 및 휴식 14:00~17:00 작업 18:00~19:00 저녁 19:00~22:00 학습 22:00~05:30 취침(겨울은 21:30) ⑤ 식사 - 강냉이밥이나 밀밥에 콩을 넣은 것, 양은 150g으로 하루 세 끼 동일함. 국은 염장배추국(소금에 절인 배추를 띄운 국)을 주며 반찬은 없음. ⑥ 작업: 구리광산에서 주로 일을 하고, 약 300명 정도는 감자농사를 함. 유사시 김일성, 김정일 부자 초상화를 모실 수 있도록 구리광산 갱도 안에 방을 만드는 일을 하기도 함. 2) 한 감방 안에 20명이 살았는데 그 중 7-8명은 영양실조. 영양실조가 심한 경우 요양겸 잠시 집에 보내주며 회복이 되면 다시 복역해야 함. 3) 1년 8개월 복역기간동안 교화소 내 사망자는 약 30여 명. 사인은 주로 영양실조와 합병증인 경우가 많음. 4) 단순 도강자는 최소 6개월 이상, 성경 공부를 했거나 남한 정보기관의 지시를 받은 경우 취조가 심함. 5) 증언자와 함께 있었던 20명 복역자 중 최고 형량자는 인신매매 죄로 13년 구형받음. 중국 비법(불법) 월경죄로 걸린 3명 중 한 명은 비법월경죄의 최고형량인 3년 받음. 소 매매는 7년형. 공장기물 판매자는 5-6명, 나머지는 장마당에서 절도죄로 들어온 사람이 5-6명 가량 되었음. 2. 함흥 영광군 55호 단련대 1) 기초사항 ① 증언자 - 중국 도강죄로 1년형 선고. 2004년 1월 출소한 여성 ② 55호 단련대란? 꼬빠쿠(노동 단련대)는 재판 없이 최소 형량 2-3개월, 최고 6개월. 교화소는 정식으로 재판을 받아 가는 곳. 55호 단련대는 정식 재판을 받지 않고 안전부에서 서류 결재를 하고 가는 노동 단련대의 일종. 일반 노동 단련대보다는 형량이 길지만 교화소보다는 짧음. ③ 규모 -함경남도 영광군에 위치한 본부에는 남자 재소자 1,500여 명, 지부에는 여자 400여 명 수용. ④ 위치 - 여성 수용시설은 본부에서 30리 떨어진 영광군 죽산리에 위치. 남자 수용소는 시멘트 담장이 2.5m 높이로 둘러싸여 있고 그 위에 철조망이 쳐져있음. 여자 수용소는 흙담장이 2m 높이로 있고 철조망은 없음. ⑤ 하루 일과: 06:30~07:00 기상 및 체조 07:00~08:00 식사 08:00~08:30 작업준비 08:30~11:30 아침 출력(출근). 중간에 30분 휴식 12:00~13:00 식사 13:00~13:30 작업준비 13:30~17:30 오후 출력. 중간에 30분 휴식 17:30~18:00 위생사업(세면) 18:00~19:00 일 총화 19:00~20:00 식사·내용물은 동일 20:00~20:30 학습 준비 20:30~22:00 학습(김일성 부자에 대한 것) 22:00 취침 ⑥ 식사: 한국이나 미국에서 들어오는 지원 양식을 먹음. 통강냉이밥, 가끔 쌀밥. 2003년 1월부터 3월 사이 대한민국 쌀이 많이 들어옴. 부식은 간장물에 염장 배추를 띄운 염장배추국이며 반찬은 없음. 하루 한 끼 155g 총 465g 배급. 예전보다 식사량이 늘어난 것임. ⑦ 작업: 여성 수용자 400명 중 죄질이 나쁜 50명은 축산반, 나머지는 세 개 반으로 나누어 1개반은 남새(채소)반, 2개는 농산반. 축산반은 오리, 개사니(거위), 돼지, 소 등. 농산반은 주로 감자와 옥수수 농사. 남새반은 여러 종류의 야채를 심는데 이 생산물로 55호 단련대 직원과 단련대의 부식물을 해결함. ⑧ 감시체계: 모든 죄수들을 조로 나누고 각 죄수에게 고유번호를 붙임. 한 사람이 앞 번호와 뒷 번호 죄수들을 감시하는 식. 1개조는 20명 내외로 구성. 1개반에 125명 내외가 배치되었다면 그 안에 조가 6개, 각 조장과 보조감시자 12명이 됨. 1개 반에 반장과 총감시자 2명이 따로 선발됨. 이들 총 14명이 초급일꾼으로 간부 역할을 함. 만약 10번이 도주하면 9번과 11번이 처벌받고, 반장, 조장, 총감시, 보조감시자 모두 형량이 연장되는 처벌을 받게 됨. 2) 식량난이 극심할 당시 55호 단련대를 ‘죽음의 소굴’이라고 했으나 요즘은 사망률이 떨어짐. 영양실조 상태에서 중노동을 하게 되어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갔으나 지금은 개선이 많이 된 것. 몇 년 전만 해도 죄인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사례가 많았으나 요즘은 많이 없어짐. 또 죄수들 중에 힘 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때리던 현상도 없어짐. 약한 사람에 대해 무분별한 구타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이 엄격히 적용되어 단속되고 있기 때문. 3) 증언자가 속한 반은 120명. 140m2 크기의 한 방에서 120명이 자게 됨. 다리를 펴고 눕지 못할 정도. 이불이 없어서 면회자가 오는 사람은 이불을 받기도 함. 이불이 있어도 자리가 없어 사용하기 힘듦. 한 겨울엔 동복을 입은 채로 자기도 함. 4) 증언자가 속한 반의 120명 중 88%가 비법 도강자, 12%가 일반 범죄자들이었음. 일반범죄는 도둑, 매음, 사기, 협잡, 인신매매 가담자, 미신행위자 등임. 5) 죄수들은 약 99%가 영양실조, 열병, 옴, 파라티푸스 등의 질병에 시달림 55호 단련대는 4대 질병을 통과해야 졸업한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 죄수들 중 생명이 위태로운 사람들은 20-30% 가량 됨. 기본적으로 위생상태가 나쁘고 물도 소독하지 않아 오염된 물을 쓰기 때문에 피부병이나 각종 전염병에 걸리게 됨. 6) 감시자들이 주로 감시하는 사항은 첫째 도주하는 것, 둘째 풀 먹는 것임. 도주보다 더 막기 힘든 것이 풀을 먹는 행위. 밭에서 김을 매면서도 배가 고프니까 아무 풀이나 뜯어먹게 됨. 그러다 독풀을 잘 못 먹어 사람이 죽기라도 하면 감시자들이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풀 먹는 것을 강하게 단속하지만 별로 소용이 없음. 7) 사망자는 한 달에 400명 중 8명 죽을 때가 제일 많이 죽을 때였고, 한 달 평균 4-5명 사망. 약 90%는 영양실조로 죽고, 10%는 간복수로 죽지만 간복수도 영양실조로 볼 수 있음. [분 석] (1) 생존형 범죄 (2) 점진적 처우 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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