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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교를 위한 제안

일송정


지금 중국 내에는 수를 정확히 헤아릴수 없는 많은 사역자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비거주의 형태로 사역을 하기도 하고, 그리고 다수의 사역자들은 도시에 거주하면서 비공식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사역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000명이 넘는 숫자에 비해 열매는 미미하며, 더러는 엄청난 선교비를 헛되게 쓰고 있습니다. 필자는 그 이유를 나름대로 분석하였습니다.

정확한 리서치를 위해 현지 삼자교회 지도자와 가정교회 지도자, 그리고 오래된 선교사들과의 면담을 이용하였습니다.

1. 중국과 중국기독교를 이해해야 한다.
중국의 기독교 역사는 한국보다 훨씬 길다. 다만 중국의 공산화로 인해 1966년 부터 1979년 개방 때까지 교회는 엄청난 고통을 당하였다. 이 시기 대다수의 교회는 지하로 잠적해야만 했다. 한국교회는 이 공백기의 중국교회를 기준으로 모든 선교의 정책을 세우고 있다.

2. 중국사회의 기본을 이해해야 한다.
중국에는 1946년 부터 공식적으로 공산정부가 들어섰다. 모든 토지는 국가 소유가 되었다. 정부는 모든 기업을 국유화하였고, 인민들에게는 각자의 능력에 일맞는 직장을 배치 하였다.

각자의 능력에 맞게 무상으로 교육을 실시하였다. 학업에 재능이 있는 자는 상급학교에 진학을 시켰고, 학업에 재능이 없으면 기술을 가르쳤다. 기술습득에도 재능이 없으면 일반 노무자의 일을 배정하였다.

1979년 등소평에 의해 개혁개방이 이루어 질 때까지 "강요된 공동체"는 지속되었다. 그러나 공동체를 지향했음에도 식량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인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바로 이러한 현실을 타개한 지도자가 등소평이다.
모택동이 공산당을 창건한 지도자였다면, 등소평은 인민의 기본문제를 해결한 위대한 지도자로서 13억 중국인의 우상이 되었다.

공산주의의 피해는 수고한 만큼 얻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능력이 없어도, 수고를 덜 했어도 집단에 소속만하면 생업이 해결된다는 안일주의였다. 바로 공짜심리이다.

공산주의에 길들여진 중국인민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점은 한족보다도 조선족에게서 더욱 폐해가 심각하다. 이들은 당이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인식하에서 자신들보다 능력이 있는 한국의 선교사나, 기업으로 부터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고마움의 개념은 전혀 없다.

하지만 한국의 선교사들은 이 점을 거의 참고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상상도 못했다. 7년 이상의 사역을 하고난 이후에서야 비로서 깨달은 뼈아픈 진리였다.

3. 선교현장의 실제 모습
지금 중국내에 거주하는 선교사들은 나름대로 외관상으로 직업을 갖고 있다. 직업이라기 보다는 직무에 임한다고 봐야 한다. 과기대의 경우 한국인 직원이 170명이다. 이들은 모두 자비량이다. 그들의 비용을 대 줄만한 곳은 기독교인 뿐이다. 교회일수도 있고, 기독실업인 일수도 있다.

기술계통의 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이 있다. 이 곳에서 근무하시는 분들도 200여명 이상이다. 그리고 복지병원이 있다. 이곳도 교회말고는 지원할 곳이 없다. 그 외에 각종 복지기관이 있다. 사역자들은 나름대로 능력껏 분산하여 외견상 이들과 협력사역을 하면서 각자 능력껏 제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들에 의해 관리 육성되는 계층은 대부분이 조선족들이다. 과기대의 경우 조선족을 우선하지만 한족도 입학을 하고 있고, 나머지 전문대들도 만찬가지이다. 이외의 고등학교는 철저히 조선족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수요자의 필요에 의한 교육인가? 아니면 공급자의 필요에 의한 교육인가? 답은 공급자의 필요에 의한 행위가 다수라는 점이다. 조선족들은 절대로 공부를 원치 않는다. 다만 "먹여주고 재워주고 용돈 받는 재미"를 누릴 뿐이다. 그리고 선교사는 "실적"을 필요로 한다. 잘못된 만남이다.

4. 중국선교를 위한 제안
중국의 바탕을 이해하지 못한 중국선교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이다. 그 결과가 바로 조선족 사회에 대한 한국교회의 실망이다. 실로 10여년 동안 한국교회는 물심 양면으로 엄청난 투자를 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조선족으로 부터의 배신이었다. 그들이 모두 공산주의에 길들여진 자들이었음을 무시한 까닭이었다.

삼자교회는 모두 어용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필자는 중국에서 복음주의 교회를 발견했다. 연길시 하남지구에 있는 하남교회는 1995년도에 개척된 8년 된 교회이다. 현재 일천여명의 교인이 출석한다고 하며 매주 3부로 예배를 드린다. 현재의 예배당은 창고를 매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100%자체 구입이다.

하남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김두성 목사는 도문출신이다. 그의 조부는 함북 길주가 고향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장로였다. 그러나 문화혁명 때, 전도를 했다는 죄목으로 투옥되어 11년을 복역하다가 반신불수로 석방되어 일년 후 별세하였다. 다시말해서 순교를 한 것이다.

순교자를 조상으로 둔 김목사의 설교는 대단히 보수적이면서 복음주의이다. 그는 철저히 본문 중심의 설교를 한다. 현재 3부 예배는 청년중심의 열린예배를 실시하는데, 찬양단의 인도는 깜짝놀랄만하다. 그래서 예배자는 여기가 중국인지, 한국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중국정부는 철저히 자양을 고수한다. 스스로 해야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국선교사들을 색출하고 처벌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의 이러한 반대가 아니라 할지라도 한국인에 의한 선교는 실효가 없다, 그러나 대안이 있다. 바로 하남교회와 같은 건전한 교회를 발굴해서 그들과 협력하는 것이다.

정부의 종교(공인교회)에 대한 간섭은 갈수록 느슨해지고 있다. 그대신 파룬궁을 비롯한 신흥종교나 사이비에 대한 단속은 강화한다. 아울러 외국인 선교사들의 단속도 병행해서 강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효과가 없는 개별선교 전략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건전한 복음주의 삼자교회 지도자와 협력을 해야 하되, 절대로 자신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공인교회가 앞장서서 일할 수 있도록 온갖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연길교회는 교회당의 규모가 엄청나다. 전 중국에서 가장 큰 예배당이라고 한다. 통합측의 김창인 목사님이 총회장시절 건축한 예배당이다. 당연히 한국의 자본으로 건축을 했다. 중국 종교국에서는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교회가 가장 크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준공검사를 내주기 전, 예배당을 헐 것을 명했다. 담임인 유모 목사는 사정 사정을 해야만 했고, 여기에서 나온 타협안이 " 연길시에서는 일체의 신규 교회허가를 동결한다"는 것이었다.

결론
중국선교는 계속되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은 중앙아시아를 책임질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방법을 바꾸어야 합니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 교단은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여 능력있는 사역자를 선발하여 철저히 현지상황을 교육한 후 파견하여야 합니다.

http://www.lovedp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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