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몽골에 대한 일반적 이해



  몽골인 이주 노동자 선교에 대한 현황과 전략을 살펴보기 앞서 먼저 몽골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부분만 아주 간략히 살펴보고, 이주노동자 선교에 보다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경제, 종교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1.1. 몽골의 일반적 이해

  학자들은 기원전 2-3세기에 등장한 흉노족을 몽고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당시 흉노는 몽골고원 지역을 침범하여 몽골족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흉노 이후로는 타타르가 등장하였다. 본래 테무진이 속한 몽골 부 키야트 보르지긴은 지극히 작은 씨족 집단에 불과했는데 약 12세기경 이 약소집단인 몽골부가 역사의 표면에 등장하였다.1)

  몽골 이란 본래 '용감한'이란 뜻을 지닌 부족어였으나, 징기스칸에 의해 통솔된 몽골부의 발전에 따라 민족과 나라의 이름이 되었다. 몽고(蒙古)라는 이름은 중국식 표기로, ‘예로부터 우매한 민족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북방 민족을 비하하기 위해 붙여졌다. 보통 우리가 몽골이라고 부르는 지역도, 중국인의 관점에서 볼 때 외몽고(外蒙古)라 불리고, 중국 영토 내에 있는 몽골은 내몽고(內蒙古)라고 불리고 있다. 이 것은 원나라 이후 고비사막을 중심으로 내외 몽골로 구분된 이후에 붙여진 이름이다.2)

  현재 몽골의 공식 국호는 Republic of Mongolia이며, 러시아와 중국 국경 사이의 평균 해발 1580m의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수도 울란바타르 외에 모두 21개의 아이막(우리나라 도에 해당하는 몽골의 행정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는 1998년 말 현재 242만 명으로 국토에 비해 인구밀도가 매우 낮은 나라이다.3) 몽골의 인구 분포에서 특이한 점은 몽골 전체 인구 중 4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겨우 19%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젊은 사람이 국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이다.

  몽골의 민족은 크게 할카 몽골, 카자흐, 브리야트, 기타 민족으로 나누어진다. 할카 몽골은 전체의 77.5%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17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몽골은 다른 다민족 국가와는 달리 민족적인 갈등이나 구별이 매우 희박하다. 언어는 할카 몽골이 90%의 사용 분포를 가지고 있고, 다른 민족들도 대부분 할카 몽골어를 구사할 수 있다. 문자는 ‘호칭 비치크’라 불리는 몽골의 고유 문자가 있었으나 국민들이 너무 배우기 어려운데다 구소련의 영향력으로 인해, 1941~1946사이에 실시된 문자 개혁을 통해 러시아의 키릴문자를 차용해서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몽골은 징키스칸을 통해 세계사의 무대에 등장하였다. 징기스칸은 유사이래 가장 큰 세계 제국을 건설하였고, 이 후 그의 아들 쿠빌라이 칸이 1279년 원(元) 나라를 세워 국가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원나라는 이후 한족 계통의 명(明) 나라에 의해 멸망했고, 그 후 몽골은 고비 사막 너머로 쫓겨가서 고립된 국가로 남게 되었다. 1616년에는 새로이 성립된 만주계의 청나라의 속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청나라는 비옥한 땅을 모두 빼앗아버리고 몽골인들은 황폐한 초원지대로 밀려나 유목민으로서의 삶이 더욱 고착화되었다. 1911년 한족계통의 사람들이 청을 타도하고 중화민국을 세웠을 때 외몽골은 독립을 선언하였으나 중국이 자신의 영토임을 주장하며 몽골을 침공하였고 결국 독립을 포기하게 되었다. 동시에 러시아의 반혁명 세력도 몽골에 침입해 와서 라마교의 활불(달라이라마)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를 수립시켰다. 그래서 몽골인들은 러시아 혁명 세력의 원조를 받아 중국군과 활불 정부군을 몰아내었고, 1924년 ‘몽골 인민 공화국’으로 완전 독립을 선언함과 동시에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이후 약 70년간 구 소련의 영향력 아래 사회주의 국가로 지내다, 80년대 말 민주화 운동을 통해 1990년 최초의 자유 선거가 실시되면서 사회주의를 완전히 포기하고 ‘몽골 공화국’으로 새롭게 시작하였다.

  현재 몽골의 정치 형태는 의원 내각제에 대통령제를 가미한 형태로, 모두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현재는 구 공산당의 후신인 인민 혁명당이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장악하고 있다.4)

표 1) 최근 몽골 정당별 의석수 변화

구  분

인민혁명당

(구 공산당)

민주연합

(민족민주 사회민주)

몽골전통연합당

의석수 합계

1992년 국회

71석

5석

 

76석

1993년 대통령

오치르바트(민족민주당 당선)

 

1996년 국회

25석

50석

1석

76석

1997.5  대통령

바가반디(인민혁명당 당선)

 

2000.7.2 국회

73석

3석

 

76석

2001   대통령

바가반디(인민혁명당 당선)

 

  몽골은 유난히도 외부와의 관계가 국내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나라이다. 몽골의 정치는 그 나라의 내부적 사정보다 국제관계와 국제정세에 의하여 좌우되어왔다. 징기스칸 시대 외에는 늘 주변강대국의 정세를 살펴야만 하는 수동적인 자세가 되었다. 중국의 몽골에 대한 적극적인 견제로 늘 고통을 당했다. 청은 남하하는 러시아에 맞서기 위해 라마교를 권장하여 몽골족의 사상을 부드럽게 개조하며 장남 이외의 아들들을 라마승으로 보낼 것을 강요하여 인구를 감소시킴으로 북방의 안정을 도모하기도 했다. 몽골은 근대에 와서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근대에 민족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고,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소련은 몽골을 완충국의 역할로서 전략적 안보에 긴요한 과제를 수행하도록 했으며, 몽골지식인의 대학살을 단행한 쵸이발산이나 체뎅발은 소련의 힘에 의지해서 자신의 정권과 몽골의 독립을 유지했다. 또한 현재도 미국, 러시아, 일본, 한국, 중국의 원조나 투자에 크게 의존하는 형편이다.


1.2. 몽골의 경제

  몽골은 공산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약 70년간 구 소련에 의지해 있었다. 그러나 1989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구 소련의 자본과 기술이 빠져나가면서 경제적으로 큰 위기를 겪게 되었다. 게다가 몽골도 시장 경제 체제로 전환하면서, 과도기의 큰 경제적 충격을 얻게 되었다. 이후 빈부격차, 실업, 인플레 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몽골의 1인당 국민소득(GNP)은 1998년말 약 340달러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년간 인플레도 극심한 수준이라 몽골 국민들의 생활은 점점 더 어렵게 되었다. 최근 들어 물가나 인플레는 많이 안정되어가고 있으나, 국가 경제는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다.  아래의 그래프� 몽골의 연도별 GNP/GDP의 변화, 그리고 최근 10년간의 인플레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5)


  몽골의 2000년 국가 예산에서 세입은 2,780억 투그릭, 세출은 3,915억 투그릭으로 1,135억 투그릭의 적자가 발생하였다. 이 부족분은 해외 원조와 차관으로 메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몽골 경제의 문제점을 보면, 먼저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몽골은 세계 10대 자원보유국이며, 유럽과 동아시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가 될 수 있고, 교육받은 값싼 다수의 노동력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지하 자원과 가축의 일차적인 수출에만 의존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장점을 계발하여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아직 그러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잇다.

둘째, 국민전체가 자본주의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주의 국가에서 흔히 보이는 노동생산성의 하향평균화 문제가 심각하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였던 중국의 경우는 국민들은 자본주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에 비교가 된다. 충분한 자본주의에 대한 연구와 준비를 갖추지 못한채 너무 급격하게 체제를 변환시킨 것이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 요인으로 보인다.

셋째, 국제 무역에의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재 몽골의 수출품목은 주로 구리, 캐시미어, 금 등인데,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고, 국가전체 수출이 몇 가지 품목에 너무 집중되어 있다. 97년 수출의 경우 구리가 $1.99억으로 전체수출에서 35.1%, 금이 $1.17억으로 수출에서 20.6%, 캐시미어 관련제품이 $0.27억로 수출의 4.7%를 나타내고 있다. 3가지 품목이 전체수출인 $5.68억의 60.4%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국제상품시장(LME등)에서의 단순한 선물이 아닌, 국제수지의 위험요인을 완화시킬 수 있는 가격충격 흡수상품 펀드를 칠레나 노르웨이 같이 정책적으로 국가가 설치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또한 1차 상품의 미가공수출에서, 가공 수출로 변화를 유도하고, 수출품목을 다양화 해야 할 것이다.

넷째, 몽골 국가 재정의 취약성의 문제이다. 이러한 몽골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 몽골은 현재 GDP의 1/4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ODA6) 의존도를 낮추고 이를 FDI7)로 대체시켜 가야만 한다. 즉 국내에 자본이 형성되어져 있지 않은 경우에는 해외에서 직접투자로 자금을 유치하고, 이것으로 직업을 창출하여 실업을 감소시키며, 그 생산된 재화를 해외에 수출하는 모형이 가장 적합한 모형이 될 것이다. 몽골은 98년에 GDP대비 FDI는 3.5%로서 아시아평균 15%, 세계평균 11%, 키르키스탄의 82%에 크게 미달한다. 몽골의 정책 입안자는 외국에서 자본투자가 가능하도록 법률의 개정, 사회주의적 관료시스템이 아닌 서비스개념의 해외자본투자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몽골의 장점을 찾아내고 조직화할 필요가 있다.8)

  현재 몽골의 많은 사람들은 월 최저 생계비9)에도 못 미치는 수입으로 가난하게 살고 있다. 1998년 말을 기준으로 볼 때,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가정이 전체 가정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렇듯 현재의 몽골은 체제 전환기의 극심한 경제 위기와 혼란으로 몽골 국민의 다수가 가난과 궁핍가운데 고통받으며 살고 있다.


1.3. 몽골의 종교와 기독교 선교 현황

 

  1.3.1. 샤머니즘

  몽골은 한국과 유사한 샤머니즘의 토착적 무속 신앙을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다. 몽골의 샤먼들은 하늘을 최고의 신으로 삼고 인격이나 신격화된 자연계의 모든 신령들을 그 주위에 배치하여 숭배하며 주술을 외운다. 하늘 다음으로는 땅과 달과 별도 숭배하며, 몽골의 산 봉우리마다 우리나라의 성황당과 같이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어버’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는 민속 신앙이 산악 신앙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불은 부정의 제거와 가계의 번영을 상징하는 것으로 믿고 숭배하고 있으며, 조상의 영혼도 자신이나 씨족을 지켜주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간주하여 경배하고 있다.

  샤머니즘은 몽골의 역사 초기부터 16세기 까지 대표적인 종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였으나 몽골 제국의 확장에 따른 고등종교의 전래로 그 명맥만 유지하는 모습으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머니즘은 오늘날까지도 몽골인의 심성 깊숙이 자리잡고 있고, 그 영향력도 지속되고 있다. 어느 곳이든 흔히 볼 수 있는 ‘어버’라 불리는 성황당이나, 무당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10)

 

  1.3.2. 라마불교

  몽골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1570년대이다. 몽골에 전해진 불교는 티베트에서 전래된 라마불교였다. 라마불교는 불교의 여러 종파 중에서 주로 산악과 고원지대, 유목민족들에게 강하게 접근할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처음 라마불교가 몽골에 유입된 것은 1230년대 오고타이 때였다. 그후 쿠빌라이가 1253년 티벳을 점령했을 때, 당시 라마 불교의 동자승인 파스파를 초청하였고 그가 쿠빌라이의 존경을 얻어 라마 불교는 왕실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파스파는 티벳어를 기준으로 하여 몽골 문자의 기원이 되는 파스파 문자를 제정하기도 했다.

  일찍이 라마 불교가 전래되긴 했으나 본격적으로 라마불교가 몽골에 번성하게 된 것은 16세기 후반부터였다. 1578년 군대 장관이던 알탄 칸이 티벳 불교의 황색 종파와 수뇌 회의를 갖고서 라마불교는 자신의 제위의 자격에 대한 승인을 요청하고, 그 대신 라마불교에게는 국가적 보호와 후원을 제공하겠다는 협상을 체결하였다. 알탄은 티벳 불교 지도자에게 ‘달라이 라마(바다의 스승)’ 이라는 칭호를 주게 되는데 이 호칭이 아직도 계승되고 있다. 이 후 라마 불교는 몽골의 전 지역에 퍼지게 되었다.

  티벳 불교는 교리와 경전 연구를 중요시하는 불교의 마하야나와 탄트릭 파의 요소와 더불어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 쫓는 정통 티벳의 의식과 결합된 것인데, 개인을 고통과 환생의 싸이클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몽골의 불교는 티벳의 라마불교에 몽골의 전통 무속 신앙이 결합되어 발전한 것이다.

  라마교는 이후 오랜 시간동안 몽골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쳐왔다. 몽골인의 정신 세계와, 문화는 물론, 실제 정치에 있어서도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라마불교는 여러 가지 폐혜도 가져왔는데, 사람들의 라마승에 대한 지나친 존경으로 인해 한 때, 남자 인구의 40%가 라마승이었고 이로 인해 급격한 인구 감소가 초래되기도 했다. 또한 정권과 밀착되어 정권을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였고, 종교적 타락도 심각하였다. 중국 한족이 거친 몽골족을 순화시키고 자신들을 침략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라마불교의 이식에 적극적이었고, 라마승이 되는 것을 장려해 몽골족의 인구가 억제되기를 바랬다.

  오랜 세월동안 번영을 누리던 라마 불교는 사회주의 문화 혁명이 있던 1930년대 들어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공산 정권에 의해 국가 부의 20% 가량을 보유하고 있던 583개의 수도원과 사찰이 폐쇄되었고, 승려들이 구속되거나, 일반 평민으로 바뀌었다.

  비록 라마불교는 억압을 받았지만 일반 대중들의 삶 속에서 그 명맥은 계속 유지 되어, 각 가정마다 불상과 달라이라마의 사진이 걸려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하여 공산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자유화 되면서 곧바로 라마불교는 큰 힘을 얻기 시작했다. 혁명후 단 1개소만 남기고 모두 폐쇄되었던 라마 사찰이 불과 4-5년만에 250개소가 복구되었고, 불교 학교가 설립되었다. 새 정부는 라마불교를 공공연히 지원하고 있으며, 최근 국비와 일반인의 성금을 모아 높이 26m 높이의 거대한 금동 불상을 제조하기도 했다. 사회주의 해체 이후에 빚어진 국가적 위기를 종교적으로 통합하려는 정치적 목적과 잘 부합되는 모습이다.11)   


  1.3.3. 기독교 선교 약사

  몽골에 최초로 복음이 전해진 것은 7세기경 네스토리안들에 의해 경교가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아직 확실한 근거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별다른 선교의 흔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가 12세기경 고비사막의 북쪽에 살던 몽골족 케라이트에 기독교인이 있었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있다.

  징기스칸 자신은 기독교에 대해서 무관심했으나 종교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12) 몽골족은 자신들의 세계 정복의 장애로 모슬렘 세력을 꼽았고, 이에 카톨릭과 연합하고자 했다. 그러나 별 성과는 보지 못하였다. 

  징기스칸의 며느리가 기독교인이었고, 그녀에게서 쿠빌라이 칸이 태어났다. 따라서 쿠빌라이칸은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그는 원나라를 통치함에 있어서 정신적인 통일을 원했고, 세계 고등 종교 중 기독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는 것을 선호했었다. 그래서 당시 로마 교황청에 선교사 100명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으나, 유럽은 당시 100년 전쟁등의 복잡한 정세로 선교사를 보내지 못하였다. 그 대신 불교가 통치 이념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1305년까지 로마 카톨릭이 한때 6,000명의 개종자를 얻었다는 보고가 있고, 이를 들은 교황은 1308년 극동 라틴 교회의 감독으로 취임하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1335년 무렵 프란체스코의 선교회에서는 몽골의 복식과 유목민들의 마차 위에 휴대용 제단과 제기를 싣고 몽골족의 이동에 따라 함께 ‘움직이는 수도회’를 결성해 활동했다는 보고가 있다.13)

  이 후, 원나라가 몰락하면서 기독교 선교는 막히게 되었다.


  1.3.4. 근 현대 기독교 선교 현황

  근대 선교는 1817년 스웨덴 선교사 코르넬리우스 람과 영국 선교사 부부 스타리브라스가 효시를 이루었다. 초기의 가장 대표적인 선교사는 런던 선교회 소속인 제임스 길모어(James Gilmour)로 그는 1870년 몽골에 도착하여 12년간 몽골 유목민을 대상으로 선교하였다. 그는 자신의 활동 결과를 평가하면서 서구 선교사보다 중국인 선교사가 실제적인 선교 사역을 감당하면 더 큰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수명의 중국인 선교사를 훈련시켰고, 이들은 효과적인 선교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1900년경 위화단 사건때문에 선교사들에 대한 참혹한 박해가 일어나 선교활동은 일시 중단되었다.

1815년 슈미트 박사가 칼무크 방언으로 성경의 일부를 번역한 것을 시작으로 성경 번역이 시작되었다. 그 후 브리야트 방언으로 성경 전체가 번역되었다. 그 후 여러 차례 성경 번역 사업이 진행되었다.

1919년경 다시 선교 활동이 시작되었으나 곧이어 1924년 사회주의 국가 설립으로 인해 모든 선교 활동이 중단되었다. 사회주의 정책 아래에서는 기독교 분만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가 박해를 받았는데, 기독교의 경우에는 제국주의의 앞잡이라는 명목으로 더욱 극심한 탄압이 이루어졌다.14)

1989년까지 단 한명의 기독교인도 없었고15), 선교 활동도 전혀 없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러나 몽골 정부가 1989년 개방 정책을 실시하면서 자본주의 국가의 외국인이 공식적으로 입국하게 되었고, 선교 활동이 재개되었다.

  2000년 4월 말 현재 몽골에는 전체 132개 교회에 12,373명의 그리스도인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조사의 결과는 1988년 5월의 몽골 선교 현황 자료집 발간시 조사된 숫자보다 교회 수로는 53개가 증가한 것이며, 성도의 숫자는 4,933 명 증가한 것이다. 1998년이나 2000년의 조사의 오차를 고려하더라도 지난 2년간 몽골의 교회는 교회의 숫자나 교인의 증가율 면에 있어서 60% 정도 성장하였다고 볼 수 있다.16)


표 2)  몽골의 인구와 기독교인 비율

몽골의 전체 인구 수

기독교인 숫자

전 인구 중

기독교인 비율

1998

2000

1998

2000

1998

2000

2,387,000명

2,420,500명

7,440명

12,373명

0.305%

0.512%


조사에 근거한다면 교회 숫자는 1998년 5월보다 59.5%인 54개 교회가 증가하였으며, 성도의 숫자는 1998년보다 60%인 4,933 명이 증가하였다. 또 몽골 전국민중 기독교인의 비율은 지난 1998년의 0.305% 보다 0.206% 늘어난 몽골 전 국민 중 0.512%가 기독교인으로, 몽골 전 인구 중 200명 당 한명의 기독교인이 있는 셈이다.



  현재 몽골의 교회와 교인의 숫자는 폭발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10여년간의 몽골 선교는 몽골 기독교 선교 역사에 있어 획기적 사건이 될 만큼 급속한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선교사들은 교단과 사역의 내용을 초월해서, 여러 선교사들이 좋은 연합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몽골은 법적으로 선교활동이나 선교사의 입국이 금지된 ‘창의적 접근지역’ 이면서도, 한편으론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다른 창의적 접근 지역보다 덜하며 복음에 대한 반응도 매우 좋은 추수지역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곳에 이제 보다 더 다양한 사역이 요구되어지며, 현지인에게 리더십을 이양하고, 몽골의 지방 도시와 시골로 복음을 확대해야 하는 과제를 또한 안고 있다.


1.4. 소결론

  오랜 세월동안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고, 샤머니즘과 라마불교의 깊은 영향력 아래 놓여있었고, 징기스칸 시대를 제외하고는 정치적으로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70여년의 공산 사회주의 정권의 압제 아래 있다가 이제 막 민주화와 개방의 바람이 불어닥쳐 정신적, 경제적 공황 상태에 놓여있는 몽골은 복음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져 있는 이 때, 사람들이 복음을 잘 받아들이고 있는 이 때에 더욱 집중적이고, 전략적으로 몽골 선교를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선교하기에 적절한 때를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그 기회를 한국 교회가 잘 활용하여서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인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몽골 선교에 있어 매우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한국과 몽골 사이에 최근 정치적, 경제적 관계에서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고,17) 한국을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 둘째, 몽골과 한국은 문화, 인종, 풍습 등에서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어 정서적인 거리가 매우 가깝다. 한국인과 몽골인은 몽골 반점을 가지고 태어나는 같은 민족이라는 인식이 몽골 일반 대중들 사이에 퍼져 있고, 대한(對韓) 감정도 좋은 편이다. 셋째, 몽골어와 한국어는 언어의 구조에 있어서나 어휘에 있어서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다른 외국인 보다 한국인은 몽골어를 2-3배 빠르게 배운다.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 땅에 복음의 문이 막 열려, 복음이 크게 확산되고 있는 이 때, 더 많은 한국인들이 몽골 선교에 헌신하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다.





2. 이주 노동자의 이해



2.1. 이주노동자의 개념

  외국에서 한국으로 와서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흔히 외국인 근로자, 또는 외국인 노동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정확한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다. 외국인노동자(foreign workers)는 사람을 내국인과 외국인으로 구분한 한국인 중심적 구분 방법으로, 노동 장소를 이주하지 않더라도 외국인이기만 하면 외국인 노동자가 되므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외국으로 가서 노동을 하는 사람을 정확하게 표현해 주지 못한다. 반면 이주노동자(migrant workers)라는 용어는 다른 사람에 의하여 고용될 목적으로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주하거나 이주하였던 사람을 가리키는 공식 용어로 사용된다.18) 그 외에도 이민노동자(immigrant workers)가 있는데 이는 이주노동자와 비슷하지만 이민 노동자는 거주국가에서 영주를 전제로 한 개념이고 이주노동자는 영주를 전제로 하지 않는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 한편, 미등록노동자(umdocumented workers)는 합법취업자와 산업기술연수생과 같은 등록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라 일종의 잔여 범주로 정의되는 노동자(관광, 방문 등 단기 비자로 입국 후 취업하거나, 산업연수 사증을 발급받은 후 지정 사업체를 이탈한 경우, 밀입국 등)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또한 불법체류자(illegal workers)는 외국인의 ‘자격외 취업’ 혹은 ‘체류기간 초과 취업’의 출입국 관리법을 위반한 체류자라는 의미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나, 외국인 근로자, 불법체류자라는 용어를 가장 흔하게 사용한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라는 용어는 내외국인 차별과 국수주의적인 함축을 내포하고 있고, 불법체류자는 출입국 관리법을 위반한 사실을 나타내는 말인데, 법적으로는 불법 체류자가 사실이라고 해도, 한국의 현실에서 이들이 3D 업종의 부족 인력을 보충해 주는 필수적인 인력임을 감안해 볼 때 실제로는 이들의 노동력을 이용하면서, 근로자로서는 인정해 주지 않는 불합리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불법체류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결국 이들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는 이주노동자라는 용어이다.


2.2. 이주노동자의 유입배경

  현재 국내에는 약 30만명의 이주 노동자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국내 전체 근로자 1천 2백만명의 약 2.5%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이들은 대체로 산업연수생이나 단기 관광 비자를 통해 입국한 뒤 불법 체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외의 다른 경로를 통해 유입되는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의 통계를 통해 이들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지만 중국 등지에서 들어오는 상당수의 밀입국자들이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조차 이들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갖기 어려운 현실이다.

  여기서는 먼저 국제 노동력 이동에 관한 이론들을 살펴보고 이에 비추어 몽골인 이주 노동자가 한국의 노동시장으로 유입되는 원인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19)


  2.2.1. 행위이론

  행위이론은 배출-흡입(push-pull) 이론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신고전파 경제학의 미시이론에 기반을 둔 비용 편익 분석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개인 행위자는 스스로의 합리적 계산의 결과 모국에 남아있는 것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취업하는 것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알고 타국으로 이주하여 노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 노동력을 송출하는 국가에서 발생하는 배출 요인과, 노동력을 유입하는 국가의 흡입 요인에 따라 노동력이 이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배출요인은 보통 노동력 송출국의 과잉인구, 낮은 생활수준, 저임금, 경제 기회의 결여(높은 실업률), 정치 종교적 탄압, 출국의 용이성 등을 들 수 있다. 노동력 유입국의 흡입 요인으로는 폭넓은 취업의 기회, 유휴토지, 높은 임금과 삶의 질, 정치 종교적 자유, 입국의 용이성 등이다. 여기에다가 이 둘을 연결하는 매개 요인으로 송출국과 유입국간의 물리적, 생태학적, 사회적 거리감 등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행위이론은 노동력의 이동에 대해 배출-흡입 요인을 통한 합리적인 설명을 해 주고 있다. 그러나 국가간의 배출-흡입 요인에 따른 개인의 행위에 그 초점이 너무 맞추어져 있다는 약점이 있다. 행위이론은 특정한 역사적 단계를 상정하지 않고서, 국제노동력이동을 노동력의 수요-공급에 따라 시장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파악하므로 저개발 출신의 이주노동자가 선진국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러한 배출-흡입 요인이 존재하였지만 노동력 이동이 발생하지 경우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역사성과, 사회적 요인에 대한 설명이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2.2.2. 구조이론

  행위 이론의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며 등장한 것이 구조이론인데, 송출국과 유입국의 배출-흡입요인에 따른 개인의 행위에 초점을 두던 것에서 보다 경제적, 사회적 요인에 초점을 두고 접근하였다. 구조이론에는 상대적 과잉인구이론, 노동시장 분절이론, 세계체계이론이 있다.

  상대적과잉인구이론이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발달로 인해 식민지배를 받은 저개발국가의 전통적 산업이 왜곡되고,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 자본이 축적되면서,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는 저렴한 노동력의 수요가 증가하게 되고, 저개발국가에서는 잉여 노동력이 발생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국제 노동력 이동이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노동력의 이동은 단절된 요인의 산물이기 보다, 역사적인 산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노동시장분절이론은 선진국 노동시장이 자본집약적 노동시장과, 노동 집약적 노동 시장으로 분절됨에 따라, 선진국의 노동자들이 취업을 기피하게 된 노동집약적 노동시장의 노동력 수요 공백을 이주 노동자가 채워주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즉, 선진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의 노동시장 분절이 주변 저개발국가의 노동자를 이주하게 만든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세계체계이론은 상대적과잉인구이론의 연장선상에서, 국제노동력이동이 선진국의 노동시장 분절 때문이 아리라 중심부 자본의 주변부 사회에 대한 시장 침투의 결과로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국제노동력이동은 자본주의의 확대로 어느 국가가 세계경제 속으로 편입된 후 일어나는 현상으로 주변 국가의 저임노동력이 중심부 국가로 이동하는 것이다.

  구조이론은 행위이론에서 밝히지 못했던 역사적 흐름과 사회적 요인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었다.20)


  2.2.3. 관계이론

  국제 노동력 이동에는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요인 이외에도 개인과 집단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도 영향을 받게 된다. 사회적연결망이론은 국제 노동력 이동이 지속됨에 따라 사람들은 연결망을 형성하고, 이 연결망은 이동비용과 위험을 낮추고 기대 순이익을 증가시키므로, 재차 국제 노동력 이동의 가능성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본다. 즉, 친척이나 친구가 이주해 감으로써 그와 관계를 맺게된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인데 이럴 경우 비용과 위험 부담이 크게 줄어들게 되는 이점이 있다. 이 사회적 연결망은 보다 확대되어 자체적으로 노동력을 노동시장에 연결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며, 노동자가 유입국에서 정착하는데 필요한 정보와 자원을 제공하기까지 한다. 이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송출국의 더 광범위한 계층의 노동력 이동에 참여하게 되면 이 연결망은 사람들이 국제 노동력에 대한 접근 통로를 확보하기 위한 사회적 자본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2.2.4. 재한 이주 노동자의 현황

  국제 노동력 이동에 대한 이론들은 각기 장단점을 가지고 있어 어느 하나만을 가지고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노동력이 이동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세계적으로 볼 때 이주 노동자는 1965년에 7천 5백만명이던 것이, 2000년 3월 현재 1억 2천만명으로 증가하여, 세계 인구의 약 2%를 차지하고 있다. 이중 불법 체류하는 이주 노동자의 수는 1천~1천 5백만명에 이르며, 이들을 위한 여권 및 서류 변조 시장이 연간 50에서 70억 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21)

  현재 한국에는 약 30만명의 이주 노동자가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01년 3월 현재 법무부 출입국 관리소에서 발표한 미등록 이주 노동자가 20만 6천명이라고 밝혔다. 2000년의 149,192명에서 1년동안 약 35%가 증가하였다. 여기에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노동자 수와 밀입국해서 취업한 노동자를 합하면 대략 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들을 국가별로 살펴보면 중국(조선족포함)이 109,000명으로 50.3%를 차지했고, 그 다음으로 방글라데시(약 15,000명), 몽골(약 14,000명), 필리핀 (약 13,000명) 순이었다.22)

  이들은 1990년대 초부터 국내에 유입되기 시작해 이 후 약 10년동안 지속적으로 그 숫자가 성장하였다. 1997년 말에 닥친 IMF 한파로 그 숫자가 주춤하는 듯 하였으나 곧 다시 증가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초창기에는 조선족을 중심으로 한 해외 동포들이 주로 이주 노동을 하였으나 점차 다른 동남아 노동자들과 남아메리카, 동구권, 아프리카까지 확대되었다.

  이들은 부푼 코리안 드림(Korean Dream)을 가지고 이 땅에 왔지만 실상 그들의 삶은 그다지 풍요롭지 못하다. 70, 80년대의 우리 나라 최 하류 노동자 계층을 이들 이주노동자들이 차지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그 숫자가 크게 증가하였다. 이들은 주로 소위 ‘3D'업종23)이라 불리는 기피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대부분이 출입국 관리법 상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이들은 자연히 한국 사회에서 신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약자 그룹을 형성하였다. “현대판 노예제도”가 실시되고 있다는 표현을 어렵잖게 들을 만큼 한국인들은 이들에 대해서 다양한 인권유린을 해 온 것도 사실이다. 임금체불과 건강 악화는 가장 흔하게 겪는 이들의 어려움이며, 산업 재해, 폭행, 욕설, 성폭행, 단속에 대한 두려움, 언어와 문화의 장벽등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이들은 살고 있다.


  2.2.5. 한국 정부의 이주 노동자에 대한 태도.

  한국 정부는 내부적 필요에 따라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는데 이들을 환영하지도, 거부하지도 않는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를 관련 법규를 통해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이들을 받아들이는 법체계의 제정과 개정의 흐름을 간단히 살펴보면, 이주노동자들과 관련된 한국의 법률적체계는 1991년 대기업들에 의한 해외 투자업체 연수생 제도의 신설로 해외 인력이 유입되면서 시작되었고, 93년11월에는 외국인 산업 연수생 제도가 생겨서 94년부터 중소기업협동중앙회의 관장하에 시행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이주노동자의 인권문제가 대두되자 98년에 법률개정이 있었다. 그러던 중 2000년 3월 20일 해외 20개 인권 NGO가 이의를 제기, 한국을 ‘유엔이주노동자 보호협약 우선조약 대상국’ 에 지정할 것을 건의했다는 서한을 통보하자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ꡐ부끄럽고 개탄스러운 일ꡑ이라고 지적했다24). 이전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법률개정의 필요가 대통령의 발언으로 사회적인 이슈가 되어, 산업 연수생 제도를 고용허가제로 바꾸려는 정부와 여당측의 시도가 있었다. 원래 2001년에 시행할 고용허가제를 2000년 중에 의원 입법으로 추진하려고 했으나 재경원, 산자부, 중소기업체들과 경제5단체의 반대성명서 발표 등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자 정부는 다른 개혁 조치와 함께 고용허가제의 도입을 사실상 포기하고, 합법적인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만은 인권이나 법률적용을 정의롭게 하도록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그리하여 현재 표면적으로는 법의 보호가 강화된 합법적인 이주노동자와 내팽개쳐진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대별될 수 있다.

또한 현실적인 부분에 있어서 합법체류자가 미등록 이주근로자(불법체류자)보다 급여 부분에서 적게 받고 있어, 국내 법률이 미등록 이주근로자를 양산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위의 법체계를 운영하는 측면에서의 정책 당국의 법집행 의지 측면을 추정해 보도록 하겠다. 현재 한국의 법 체계상 이주노동자는 출입국관리법상에서 정의하고 있는 연수생제도를 근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철저히 한국의 필요에 의해서 운영되는 것이다. 즉, 노동부는 한국의 3D업종에서의 인력난을 외국인근로자로 대체하고자 하는 필요에 따라, 한국내 3D업종의 부족 인력 약 13만명에서 15만명(최대20만명)을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적정인원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한국에서 2001년 6월과 7월에 대대적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추방이 있었는데, 한국에서 생각하고 있는 적정인원이 위에서 말한 2001년 3월말에 도달되었고, 이 숫자를 초과한 이주노동자의 존재는 여타 다른 한국인의 일자리를 잠식한다고 판단해서 이루어지는 단속이라고 하겠다. 즉, 현실적으로는 한국의 경제적 필요에 의해서 이들의 노동력을 사용하면서, 한편으론 이들을 합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아 언제든지 이들을 추방할 수 있는 여지를 두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산업연수생 제도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사실상 연수가 아닌 노동을 시키면서도, 저임금 속에, 노동권의 보장도 받을 수 없고, 고용의 안정성도 보장받을 수 없도록 이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3.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

 

  2.3.1. 몽골인 노동자의 이주 배경

  다른 국적의 노동자와는 달리 몽골인들은 주로 1997년 이후부터 국내에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구 소련의 영향력 아래에서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해 오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롭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면서 일대 혼란과 격동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몽골에게 한국은 아직 낯선 땅이었다. 1990년 한국과 몽골이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한 이후 양쪽에 서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교류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전환기의 혼란과, 한국과의 오랜 단절의 시간등으로 인해 몽골인은 조금 더 늦게 한국땅에 오기 시작했다.

  먼저 유입국인 한국의 흡입 요인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배출-흡입 이론을 통해 볼 때, 많은 흡입 요인이 발생하였다. 한국 경제의 성장으로 인해 1인당 GNP가 $10,000 에 육박하였고, 민주화 이후 인건비가 급속히 상승하였으며, 대학 졸업자의 증가로 인한 소위 3D 업종 기피 현상이 더욱 뚜렷이 나타나게 되었다. 노동시장 분절 이론을 통해서 볼 때, 한국의 산업은 노동집약적 2차 산업 중심에서 정보와 기술 서비스 중심의 3차 산업으로 변화되는 과정 속에 노동시장이 분절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실제로 한국인중에서 많은 실업자가 있지만 막상 노동 집약적 2차 산업의 현장에는 일손이 부족하게 되는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몽골인에게 있어서 한국은 역사적, 문화적, 인종적, 언어적 거리감이 상당히 가까운 곳이다. 전통적 우방이던 구 소련은 몰락하였고, 중국은 역사적으로 오랜 적대 관계에 있고, 일본 역시 2차대전의 상처를 남긴 곳이고, 유럽이나 미국은 정서적, 지리적 거리감이 멀다. 이에 비해, 한국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몽골인에게 있어 한국으로의 흡입 요인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몽골 측에서의 배출 원인을 살펴보면, 이미 언급했듯이 공산정권의 붕괴와 함께 밀어닥친 일대 혼란으로 경제는 더욱 어려워 지고 국민들의 삶의 질은 소수의 신흥 재벌 외에는 더욱 낮아지게 되었다. 몽골의 1인당 GNP가 약 300 달러 선에 불과한 빈국이고, 노동자의 평균 월급여가 5만 투그릭(한화 약 5만 5천원 선) 에 채 미치지 못하는 것을 감안할 때, 한국으로 가는데 드는 제반 비용과, 위험 부담을 다 감안하더라도 비용-편인 계산에서 충분히 이주 노동을 할 요인이 발생하게 된다. 또한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인해 국민의 40%가 실질적인 실업 상태에 놓여 있는 상황은 더욱 몽골인 노동자들의 해외 배출을 압박하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몽골 전체 인구 250만명중 10만명 이상이 외국으로 나가 이주 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일하는 15,000명의 몽골 노동자들이 1년에 몽골로 송금하는 금액은 대략 77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25) 이 돈은 몽골 1년 GDP의 7.1%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몽골인들이 송금하는 금액이 이보다 조금 적다손 치더라도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이 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고 할 수 있다.26)

  몽골인들은 또한 오랜 유목민으로서의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어 새로운 환경에 비교적 잘 적응하는 편이며, (어족에 대한 논란이 있긴 하지만) 우랄 알타이어 계통의 비슷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어 타 외국인보다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또한 집단적으로 이주하는 성향을 바탕으로 본국의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려와서 함께 가족 단위로 거주하며 노동을 하는 경향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3.2. 2001년 현재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의 현황 및 특성

  법무부 출입국 관리소의 자료에 따르면 2001년 3월 현재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몽골인 이주 노동자중 출입국 관리법상 불법 체류자는 약 14,000명이다27). 이 외에도 합법적 체류자 등을 합치면 그 숫자가 15,000명에서 20,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국내에서 불법으로 취업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206,000명의 약 7%에 해당하는 숫자이며,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 방글라데시인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숫자를 차지했으며, 불과 몇 년 사이에 필리핀, 태국, 베트남 국적 미등록 노동자의 숫자를 추월하였다.

  이들의 입국은 1995년 경부터 시작되었고, 1997년 이후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다른 이주 노동자들에 비해 한국으로의 이주 노동의 역사가 짧아 국내에 들어와서는 주로 수도권 지역에 대부분이 거주하고 있다. 구 소련의 영향력 아래 오랫동안 있던 이들은 러시아인들의 한국내 중심지인 서울 동대문 일대에 모여들어 몽골인들의 경제, 정보 교류의 중심지를 형성하였다.28) 실제로 한국에 연고가 없이 입국한 경우 몽골과 국내의 알선책을 통해 동대문에 투숙하여 일자리를 알선 받아 노동을 시작하게 된다.29)

  이렇게 들어온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은 서울 동대문과 신당동, 장안동 인근의 소규모 의류 공장, 마장동 인근의 정육점, 그 외 인천, 수원, 안산 등지의 생산 공장, 수도권 일대의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다른 국적의 이주 노동자들이 전국 각 지역으로 흩어져 일하고 있는 것에 비해, 아직은 이주 노동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아 수도권 일대에 밀집해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산업 연수생 제도를 통해 들어왔다가 불법 체류하게 된 다른 여러 동남아시아 이주 노동자들과는 달리, 산업 연수생 제도가 아닌 일반 단기 비자로 입국해 불법 체류, 취업하였다.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몇가지 두드러진 특성을 살펴보면 첫째, 이들은 이동성이 강하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유목민이 가축들의 먹이가 있는 곳으로 이동을 하듯이 이들은 정적이기보다 동적인 특성을 나타내 보인다. 이후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30) 이들은 거주지와 직장을 매우 빈번하게 옮겨 다니고, 늘 새롭고 신선한 것을 지향하여 움직이지 정착하여 안정을 누리려고 하는 특성은 잘 발견되지 않는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이동성이 강하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과 깊은 관계를 나누기보다는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음을 전제로 관계를 맺어, 부부 관계에 있어서도 이들은 대체로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하다가 또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경향이 많이 나타난다.31) 교회도 한곳에 꾸준히 출석하기 보다, 더 좋은 곳을 찾아 이동하는 특성을 보여 준다. 이렇게 동적인 특징이 강하여 축제나, 파티, 격렬한 운동을 즐긴다.

  둘째, 이들은 타국적 이주 노동자에 비해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적응력이 매우 뛰어난 특성을 보이고 있다. 일단 인종적으로 한국인과 가까워 일반적으로 외모만 가지고는 한국인인지 외국인인지 분간할 수 없는 데다, 언어도 한국 생활 6개월 정도면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언어를 대개 습득하고 있다. 한국어는 언어적 거리가 가까워서 빨리 배우기도 하지만 이들은 러시아어, 영어, 중국어 등도 단기간에 습득하는 언어적 재능을 보여준다. 중국의 조선족이나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을 제외하고 순수 외국인 이주노동자로서 몽골인들은 가장 빨리 한국의 언어와 문화에 적응해 간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또 강한 학구열을 보여 새로운 언어와 지식 습득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셋째로,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은 젊은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몽골 현지의 연령 분포와 비례하는데, 몽골 현지에서도 30대 이하의 인구가 40대 이상의 인구의 두 배 가까이 된다. 특히 한국에 온 노동자들은 더욱 청년의 비율이 높다. 이들 청년들은 몽골의 전통적인 문화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 한편으론, 매스 미디어의 영향으로 국제적으로 보편적인 젊은이 문화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2.4. 소결론

  지금까지 몽골인들이 한국에 이주 노동자로 오게 되는 여러 사회학적 요인들을 살펴보았다. 몽골인들은 그들의 개인적인 비용 지출과 기대 수입을 합리적으로 계산해 본 결과 한국 땅으로 이주하여 노동을 할 경우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한국으로 오게 된다. 몽골보다 보통 10배 이상 높은 고임금과 취업의 기회를 생각할 때, 또 몽골의 가난과 실업 등을 생각할 때 이들은 한국으로 올 것을 결심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또 한편 한국은 신흥 개발 도상국가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과도기 사회 구조 속에서 노동 시장이 분절되고 몽골은 노동 인구가 산업 시설에 비해 노동력의 과잉현상이 있어 구조적으로도 한국에 올 수밖에 없는 형편으로 몰리고 있다. 또 한편 한국은 몽골과의 물리적 거리가 인접하고 정서적으로도 친근하여 몽골인들은 한국을 선호하며 초창기에 한국으로 온 이주 노동자들이 이제는 그들의 가족과 친지 이웃들을 초청하여 나름대로의 사회적 연결망을 형성하고 있는 중이다.  

  약 700여년 전 한반도에 침략자로 왔던 몽골 민족이 이제는 이 땅에 이주 노동자로서 다시 찾아오고 있다. 이들은 15,000명에서 20,000명에 이르는 숫자로 몽골 10대 도시의 인구와 맘먹을 수 있는 숫자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땅에서 희망을 찾아온 몽골인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고, 도와주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해야할 시대적인 사명이다.




3. 몽골인 이주 노동자 선교의 성경적, 선교학적 고찰


  앞서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이 어떤 사람들이며 어떻게 한국에 와서 이주 노동을 하게 되었는지 살펴보았다. 이제 여기서는 성경에서는 이주 노동자 선교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그리고 선교학적인 측면에서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3.1. 긍휼과 보호의 대상으로서의 이주 노동자


  3.1.1. 원어적 고찰32)

  오늘날의 이주 노동자와 가장 가까운 성경의 표현은 ‘나그네’이다. 나그네는 히브리어로 רג(게르) 인데, 이는 자기 혈족과 종족을 떠나 어떤 개인이나 공동체의 보호에 의존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רג는 나그네 외에도, 이방인(foreigner), 외국인(alien), 객(stranger), 체류자(sojourner) 등으로 번역되기도 했는데 실제적인 의미상에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아무튼 이들은 그 나라에서 혈연 관계로 자기 몫의 땅도, 법적 권리도 없는 사람이다. 사회적 약자로 억압과 압박의 대상이던 사람들이었다. 

  성경에서는 창세기 15:13에 하나님께서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라고 말씀하신 곳에서 처음으로 이 개념이 나타난다. 이 말은 또, 아브라함이 헤브론으로 이주하여 살면서 헷 족속에게 자기 아내 사라의 무덤을 위해 땅을 팔 것을 청할 때 자신을 가리켜 스스로 나그네라고 한 말이기도 하다.(창23:4) 야곱의 온 식구들이 애굽으로 이주함으로 이스라엘은 רג의  삶을 살게 되고, 요셉을 알지 못하는 바로왕에 의해 오랜 압제를 경험한다. 그리고 모세가 미디안 땅으로 도망하여 이드로의 사위가 되었는데, 그가 아내 십보라를 통해 첫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게르솜’ 즉, ‘타국에서 객이 되었다’라는 뜻의 이름을 지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רג 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1.2. 나그네를 사랑할 근거로서 이스라엘의 애굽 생활

  그러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그네였던 과거를 기억하며, 현재 백성 중에 거하고 있는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고 보호할 것을 명령하셨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 (출 22: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 (출 23:9)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객이 되었더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 19:33, 34)


  3.1.3. 나그네를 사랑할 근거로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께서는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그네를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근거로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친히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을 보호하시는 것으로 말씀하고 계시다.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신 10:18)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시 146:9)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말 3:5)


  3.1.4. 나그네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은 당시 사회의 최 약자로서 항상 가난과 억압에 노출되어 있는 외국인 나그네의 생존권을 보호하시기 위해 세세한 관심을 보이고 계신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궁핍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방인들을 항상 도와주라고 명하셨다. 심지어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에 대한 수입중 일부를 이들을 위해 줄 것을 명령하고 있다.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 14:28, 29)


  또한 하나님은 이들이 생계를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추수할 때에 땅에 떨어진 것은 거두지 말고 남겨둘 것을 명령하셨다. 예수님의 조상이 된 보아스의 아내 미디안 사람 룻도 외국인 이주 노동자로서 이삭 줍기를 통해 연명해 갈 수 있었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 19:9-10)

  3.1.5. 동일하게 법을 적용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이들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법률의 보호를 받기 어려웠다. 이는 오늘날에도 비슷한데,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하게 법을 집행하라고 명령하셨다. 이것은 형벌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외국인이든지 본토인에게든지 그 법을 동일히 할 것은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라“ (레 24:22)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 외국인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레 24:16)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은 나그네된 자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특별히 보호해 주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즉 사회적인 약자와 소외계층을 우선적 긍휼의 대상으로 여기시고, 하나님의 백성들 역시 그들을 우선적인 긍휼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사랑과 긍휼을 베풀기를 원하신다. 예수께서도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사회적 약자를 영접하고 돌보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돌보는 것과 같은 일임을 분명히 하셨다.

  오늘날 한국 땅에 있는 사회적 약자이며, 본국을 떠나있는 나그네는 바로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의 많은 교회는 이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심지어는 배타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오랫동안 단일 민족, 단일 문화권에서만 생활해 오고 외세에 폐쇄적인 태도를 굳게 견지해 온 우리 나라 사람들과, 그 토양 위에서 자라난 한국 교회가 이주 노동자들을 반갑게 맞아들이기는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시고, 또 명령하신 명령을 좇아 이주 노동자들을 사회의 약자로서 우선적으로 섬기고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야 할 것이다.


3.2. 복음 증거 대상으로서의 이주 노동자

  이주 노동자들을 마땅히 우선적으로 섬기고, 긍휼과 자비를 베풀 책임이 있지만 그들은 단지 우리의 긍휼의 대상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 마땅한 우리의 복음 증거의 대상이다. 여기서는 성경이 외국인 이주 노동자 선교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신구약 전반에 걸쳐 간략히 살펴보겠다.

 

  3.2.1. 구약에서의 이주노동자 선교

  외국인에 대한 선교는 성경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첫 번째로 창 12:1-3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 직접적인 말씀가운데 잘 나타난다. 여기서 모든 족속은 70개의 나라들이 기록된 창세기 10장의 세계와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다.33) 사실 아브라함의 삶 자체가 이주 노동자로서의 삶이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선교적 사명을 주셨고, 이방인들에게 복의 통로로서의 삶을 살도록 하셨다. 


  두 번째로, 민수기에서 구원은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이방민족에도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발견된다. 그것은 도피성 제도를 통해 알수 있다.


“이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이스라엘 중에 우거하는 자의 도피성이 되리니” (민 35:15)


도피성은 구원을 상징하는 것인데, 이 도피성이 이스라엘 민족뿐만 아니라 타국인과 나그네들에게도 열려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이주노동자들도 피할 곳이 있으며 구원을 얻을 길이 있는 것이다.34)


  세 번째로, 외국인 이주 노동자에 대한 직접적 복음 전파의 명령이 구약에도 등장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이스라엘 민족 뿐 아니라, 우거하는 타국인들도 듣고 배우고 행하게 하라는 명령이다. 즉, 복음을 들어야 할 대상에 함께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포함됨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신 31:12,13)


  네 번째로, 열왕기상에서 솔로몬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에 보면 외국에서 온 이방인 역시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할 때 그 기도를 응답해 달라고 함으로써 선교적 의미가 다분히 담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저희가 주의 광대한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무릇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으로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옵시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왕상 8:41-43)


  솔로몬이 이러한 기도를 드렸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진영에 거하는 외국인에 대해서 관용하며 그들을 선대하고 가르치고 배우게 하여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이며 이 일은 솔로몬 개인의 일이 아니라 민족 전체의 일임을 말하는 것이다.35) 예수께서도 인용하셨던 말씀처럼 성전은 만민(萬民, all nations)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도 마찬가지로 만민이 나아와 주님을 경배하며 주의 영광을 찬미하는 선교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


  다섯 번째로, 시편에서도 이방인들에게 여호와를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노래하고 있다. 시편에서 역시 여호와께서는 만백성들 앞에서 그분의 이름이 구속주와 의의 통치자로 높이 들려지기 원하셨다. 이스라엘 백성 뿐 아니라 이스라엘 안팎에 거하는 모든 외국인들까지도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고 경배하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여섯 번째로, 이사야서에서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 여호와 종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자기 고토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에게 가입되어 그들과 연합할 것이며” (사 14:1)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사 56:6,7)


  일곱 번째로, 미가서 4장은 많은 민족들이 여호와의 산에 몰려들 것임을 말하고 있다. 구약에서의 선교가 주로 그러하듯이 와서 보라는 형태의 구심적 선교 형태가 드러나고 있다. 이주 노동자가 복음이 있는 곳으로 와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구약에서 나타난 이주 노동자 선교의 성경적 기초를 살펴보았다. 이스라엘의 여호와 종교는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모든 민족과 나라들을 위한 종교로서 모든 민족과 열방에 전파되어야 할 종교이다. 특히 구약의 선교가 주로 구심적인 선교의 측면이 강하였다는 점에서 이주 노동자 선교의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36)


  3.2.2. 신약에서의 이주노동자 선교

  신약은 구약보다 더 빈번하게 이방인에 대한 선교가 다루어지고 있다. 먼저 누가복음 7:1-10에 나타나는 백부장과 그의 종에 관한 사건이다. 백부장은 종을 보내 예수님께 병고쳐주실 것을 청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방인인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병을 고쳐주셨다. 즉, 이방인이나 이스라엘인이나 복음 안에서는 차별이 없음을 잘 드러내 준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만이 선민이라는 사상이 팽배해 있던 곳에서 예수께서 의도적으로 이방인의 믿음을 부각시키신 것이라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마태복음 5:21에 나타난 예수님과 수로보니게 여인과의 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수로보니게 여인 하나가 예수께 나아와 귀신들린 자신의 딸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 예수는 그 대답을 차갑게 거절하셨다. 그리고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이스라엘만이 여호와의 구원의 계획 속에 있다는 유대인의 보편적인 생각을 반영한 것이었다.37) 그러나 이 여인이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잡으려는 믿음을 보이자 예수는 그의 구하는 것을 들어주셨다. 역시, 이방인도 주님이 사랑하시며 구원의 대상이 됨을 반증해 주고 있다.

  예수님의 지상 명령도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라고 하심으로 모든 족속이 복음을 들어야 마땅한 대상으로 강조되고 있다. 이 모든 족속은 지역적 개념이라기 보다는 종족의 개념으로 이주 노동자로 와 있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임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을 위임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이주 노동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사도행전은 이주 노동자 선교의 중요성을 가장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땅끝 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고 말씀하신 후 얼마후 오순절 사건에서 성령세례를 받고 베드로는 능력있는 설교를 하였다. 이때 그의 설교를 들은 많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세례를 받고 제자가 되어 나중에 그들의 본향으로 가서 복음의 증인이 되었다.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타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부르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행 2:9-10)


  이주 노동자로 와 있는 사람들도 이렇게 복음을 듣고난 후 성령 충만한 새 사람이 되어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 동족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

  빌립은 또 예루살렘을 방문한 에디오피아 사람 내시에게 성령의 이끌림을 따라 복음을 전하여 그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게 되었다. 이 사건은 에루살렘에서 가사로 가는 중간지점, 즉 유대 땅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즉, 본국에서 이방인 선교를 하게된 것이다.

 

  성경은 시작부터 끝까지 이방 선교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요한 한 측면으로 자국 내에 머물고 있는 이방인 나그네에 대하여 주의 복음을 증거 해야 하며, 그들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3.3. 선교 메카니즘을 통해서 본 이주 노동자 선교

  이제까지의 한국 교회가 취한 선교의 방식은 주로 타 문화권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방식이었다. 한국인 중에서 선교에 헌신한 사람을 훈련시켜 해외로 파송하고 교회는 그 선교사를 후원회 주는 정도였다.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있긴 했지만 주로 서구권에서 온 사람들이었기에 우리가 그들에게 긍휼을 베푼다거나 선교를 한다거나 하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였다. 외국인은 언제나 부유하고, 강하고, 뛰어난 사람들인 것으로 여겨져 왔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풍토에서 국내에 있는 외국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해야 한다는 운동이 강력하게 일어난 것은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때였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입국하였고, 또 이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로 헌신한 수많은 다국적 선교 자원들도 입국해서 한국인과 연합으로 선교 활동을 벌였다. 이러한 계기로 구심적 선교 방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것이 이후 90년대부터 입국하기 시작한 외국인 이주 노동자에게까지 적용되었다. 국내에서 하는 이러한 사역도 선교라는 인식이 점차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성클러(Bengt Sunkler)는 구약성경에서 주요한 선교 전략은 이스라엘이 빛을 비추어서 이방을 이스라엘에게로 끌어들이는 것이지만, 신약성경에 와서는 외부를 향해 나아가는 외향적인 선교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였고, 화란의 신학자 요하네스 블라우(Johannes Blauw)는 위의 사상을 이어서 구약의 힘을 구심력(Centripetal), 신약의 힘을 원심력(Centrifugal)적 선교라고 불렀다.38) 그러나 랄프 윈터(Ralph Winter)는 위의 두 가지 선교의 메카니즘이 구약과 신약에 골고루 드러날 뿐만 아니라 교회사를 통해서 본 모든 시대에 항상 작용해 왔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선교 메카니즘을 통해서 볼 때 이주노동자 사역은 구심적 선교라 할 수 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실 때의 ‘땅끝’은 흔히 이해되어지는 것처럼 장소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 그렇게 본다면 이 땅에 와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바로 복음을 들어야 할 ‘땅 끝’이 된다. 비록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땅에 자발적으로 찾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구심적인 선교라 볼 수 있지만, 그것이 한국 교회가 이들을 수동적으로 대해도 좋다는 것으로 이해되어져서는 안된다. 도리어 더 적극적으로 이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가서’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을 제자 삼아, 세례를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들어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 선교를 ‘구심적 구조 안에서의 원심적 선교’라고 말하기도 한다.39)

  다음은 랄프윈터(Ralph Winter)가 제시한 신구약과 교회사에 나타난 선교의 메카니즘을 요약한 것이다.40) 

 

표 3) 선교의 구심력과 원심력 구조

메카니즘

구약

신약

초대교회에서

1800년까지

현대 선교 시대

자발적으로 감

원심적

(팽창적)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감

-소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부근의  다른 나라들에 전파함

-바리새인들이 바다와 육지를 건너감         

-사마리아에서의 예수님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감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 여행들

-바벨론,로마,구브로 등에 거주하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증거

-성 패트릭이 아이랜드로 감

-켈트족 유랑민이 영국과 유럽으로 감

-아우구스티누스회 수사들이  중국, 인도, 일본, 미국으로  감

-모라비안 교도들이 미국으로 감

-윌리암 캐리와 제1세대 선교사들

-허드슨 테일러와 제2세대 선교사들

-제3세대부터  현재까지

-현지 거류 선교사들

비자발적으로 감

원심적

(팽창적)

-애굽에 종으로 팔린 요셉이  바로에게 증거함

-나오미가 기근 때문에 룻에게 증거함

-내키지 않아 하는 선교사 요나

-히브리 소녀가  나아만의 집에 잡혀감

-바벨론에 포로로 간 히브리인들이  자기들을 잡아간 사람들에게  증거함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아  거룩한 땅에서 나와 로마 제국 전역과 그 너머까지  가지 않을 수 없게 됨

-울리파스(Ulifas)가 고트족에게 종으로 팔림

-추방된 아리아족 감독들이 고트지역으로 감

-바이킹들에게 잡혀 간 그리스도인들이 바이킹을 개종시킴

-이주자들과 청교도들이 미대륙으로 추방되어 인디언들에게 선교함

-제2차  세계대전  때 전세계에 파병되었던  그리스도인 병사들이 돌아와서 150개의 선교단체를 시작함

-우간다 그리스도인들이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으로 도피함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북쪽보다 덜 기독교화된 남쪽으로 피난하고, 후에 사우디 아라비아, 이란 등에 근로자로 나감     

자발적으로 옴

구심적

(흡인적)

-수리아  사람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옴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궁정으로 찾아 옴

-룻이 모압에서 유대로 가기로 선택함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찾음

-고넬료가 베드로를 부르러 보냄

-마케도냐 사람이 바울에게 도움을 청함

-고트족이 기독교화된 로마를 침략하여 기독교 신앙에 대해 더 알게됨

-바이킹이 기독교화된 유럽에 침략하여  그  접촉을 통해  궁극적으로 신앙을 갖게됨

-기독교화된 서구에 세계 각국의 방문객들, 유학생들, 사업가들이 유입됨

-이주근로자들

비자발적으로  옴

구심적

(흡인적)

-이방인들이 고레스 대제에 의해 이스라엘에 정착함

-로마 군대가   ‘이방인들의 갈릴리’ 지역을 점령하고 침투함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노예들을 데려옴                 

-공산주의에서 피해 나온 난민들

-보트피플,  쿠바인들이 강제로 추방됨


3.4. 소결론

  본 장을 통해서 이주 노동자 사역은 나그네를 보호하고 도우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임을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여러 예를 통해 살펴보았다. 또한 선교학적으로도 ‘가라’는 원심적 선교 메카니즘뿐 아니라, ‘오라’는 구심점 메카니즘 역시 신구약과 교회사를 통해 이어져 내려오는 무시되어서는 안되는 선교의 중요한 흐름임을 살펴 보았다.

  그러므로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은 나그네와 소외된 자를 사랑하고 섬기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귀한 사역이다. 따라서 우리는 마땅히 재한 몽골 이주 노동자 선교를 해야 한다.





4.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 선교의 현황 및 과제



4.1.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의 의식과 생활 조사41)

  몽골인 이주 노동자를 선교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며 어떤 의식을 갖고 어떻게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앞서 개괄적인 연구를 통해 이주 노동자들이 국내로 유입되게 되는 배경과 요인, 그리고 일반적인 현황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이런 일반적인 연구를 보완하기 위해 몽골인 이주 노동자를 직접 설문 조사를 하여 그들이 스스로에 대하여 밝히는 것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의 일반적인 현황, 경제 생활과 노동관, 의료 및 건강 생활, 종교생활, 그리고 사회 생활의 다섯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83항목의 질문을 만들어 조사를 실시하였다.42) 조사의 모집단은 현재 몽골 이주노동자 사역을 하고 있는 교회 중 수도권 인근에 소재한 5개 교회43)에 출석하고 있는 몽골인들을 대상으로 하였고, 이들중 102명이 유효한 응답을 해 주었다. 이들이 작성한 설문지를 SPSS 프로그램을 통해 통계 처리를 하였다. 이들 102명은 재한 몽골인을 총 1만 5천명으로 잡았을 때 약 0.7%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표본집단의 한계는 이들이 수도권지역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종교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재한 몽골인들 전체를 평균적으로 대변해 준다고 보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교회를 통한 방법이 아니고는 불법체류를 하고 있는 재한 몽골인 이주노동자를 직접 접촉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에 이 방법을 취하였다.


  4.1.1.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일반적 조사


    4.1.1.1. 응답자의 신상에 대한 조사

  응답자의 나이는 유효비율로 볼 때 10대가 10.8%, 20대가 62%, 30대, 40대 이상이 각각 16.2%, 10.8%로 응답자의 과반수 이상이 20대였다. 이것은 몽골인 인구 자체가 30대 이하의 비율이 높고, 또 한국에 있는 몽골인들은 이주 노동이 용이한 젊은이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들은 또한 남성이 53.5%, 여성이 46.5%를 차지해 남녀가 비슷한 성 비율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이 한국에 입국한 년도는 1999년이 30%로 가장 높고, 2000년이 24%였다. 조사가 실시된 2001년 6월 전까지 입국한 사람의 비율도 15%나 되는 것을 볼 때, 년말까지 더 많은 사람이 입국할 것으로 보인다. 몽골인들의 입국은 1998년부터 급증하여 계속 많은 사람들이 입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중 한국에 혼자 온 사람은 42.3%, 배우자와 함께 온 경우는 37.1% 로 혼자 온 사람의 비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혼자 와서 혼자 외국인 노동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정서적, 성적, 사회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경험적으로 볼 때, 배우자나 가족이 함께 이주해서 노동하는 사람과 혼자 온 사람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과 유혹은 더욱 큰 것을 볼 때,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 역시 이러한 어려움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학력을 볼 때, 전문대 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78%에 달하는 고학력자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대 졸업 미만의 학력을 가진 사람도 나이가 어려서 대학을 미처 공부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실제적인 저학력자는 얼마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와서는 이들이 비록 3D 업종에 종사하는 공장, 건설 현장 노동자의 신분이지만 이들이 본래는 고학려자들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들을 대하는 전략도 알맞게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일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선교하는 방법을 활용하면서도, 이들의 독특한 지적인,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도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4.1.1.2. 출입국 사실에 관한 조사

  이들이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받은 비자를 보면 단기 관광 비자가 5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동남아 인들이 초기에 산업 연수생 비자로 대량 입국한 뒤 불법 체류자가 된 것과는 달리, 몽골인들은 산업연수생이 많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이들은 이 비자를 받기 위해 현지 브로커에게 거액의 돈을 내고 온 것으로 드러났다. 입국 초기에는 매우 저렴하던 것이 1년 뒤에는 미화 500불, 그리고 본격적인 입국이 시작된 지 5년여가 지난 현재는 미화 약 3,500불 정도를 내야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비자 발급 시세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비자를 발급받기 어려운 사람일수록 더욱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본 설문에 응답한 사람들은 입국 연도와 나이, 신분등이 다양한데, 평균 미화 500불 정도를 내고 편법으로 비자를 발급받았다. 몽골의 평균 급여가 월 50불 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 이들이 이러한 거액의 돈을 마련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러면 이들이 이 돈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초창기에 한국에 온 사람들은 주로 몽골에서 고리대금을 통해 자금을 마련해 한국에 왔고, 최근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먼저 한국에 가 있는 가족과 친지가 보내준 돈으로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볼 때 몽골에서 돈을 빌려서 온 경우가 34%로 가장 많고, 한국에서 송금해 준 경우가 28%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이주 노동을 결심하는 것은 앞서 여러 사회학적 이론을 통해 살펴보았다. 그런데 왜 이들이 다른 나라로 가지 않고 한국행을 결심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한국에 있기 때문에 온 경우가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일자리를 구하기 쉽기 때문이었다. 미국, 독일, 일본 등은 불법취업에 대한 단속이 심하고, 고용주들도 불법 고용을 꺼리지만 한국은 당국이나 고용자들이 이들을 묵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에 온 몽골인들의 90%가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타르에서 왔으며, 이들중 73%는 중국과 러시아등의 외국을 한번 이상 방문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한국에 오기 전에 다른 나라에서 이주노동을 경험해 본 사람도 12%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주 노동을 해 본 다른 나라는 주로 구 동독, 러시아, 폴란드, 체코등의 구 공산권 국가들이 대부분이었다.


  4.1.2. 경제와 노동관에 대한 조사


   4.1.2.1. 몽골인 이주 노동자의 직업.

  한국에서 이주 노동을 하는 몽골인들이 몽골에 있을 때 가지고 있던 직업은 학생이 31%, 회사원이 22% 순이었고, 노동을 하던 사람은 2%에 불과하였다. 그런 반면 한국에서 갖고 있는 이들의 직업은 의류공장 31%, 의류 외의 공장 38%, 건축공사장 3%로, 기타 노동이 17%로, 89%가 육체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한국에 와서 노동을 하며 사회 계층의 변화로 겪게될 어려움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이들이 받는 평균 월급은 80만원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일이 숙련되지 않은 초봉은 보통 60-70만원 선이며, 1년 이상의 경력이 있고, 한가지 이상의 기술이 있을 경우 90-100만원 사이의 월급을 받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들이 몽골에 있을 때는, 몽골인 평균 월급인 5만투그릭의 약 두배인 월평균 10만 투그릭(한화 약 11만원)을 벌던 중상류 계층이었고, 한국에서는 몽골에서의 약 8배 가량의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렇게 고임금 노동을 하였기에, 몽골에 다시 돌아가게 될 경우, 다시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적응하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그래서 개인 사업을 하거나, 부동산 투기를 하거나, 아니면 있는 돈을 계속 소비하는 실업자로 있게 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은 몽골로 돌아가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생각하고 결정한 사람이 32%밖에 안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앞으로 몽골에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이므로, 이들에게 올바른 성경적 직업관에 대하여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이 국내에서 직장을 구할 때 고려하는 여러 조건들을 이들이 몽골에서 직장을 구할 때 고려하는 조건들과 비교해 보겠다. 몽골에서는 월급이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압도적이나, 한국에서는 월급과 근무 조건이 1% 차이밖에 나지 않는 거의 비슷한 조건임이 나타났다.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의 직장을 선택하는데 있어 근무 조건의 중요성은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근무 조건 중에도 기숙사와 식사 제공여부, 노동 시간이 매우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다. 


   4.1.2.2. 한국에서의 근로 조건과 노동 환경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0-12 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월급 이외의 수당도 77% 정도가 받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는 일반적으로 외국인들은 수당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는 통념을 뒤집는 결과로 주목된다. 국내에 오래 체류한 이주 노동자들은 과거 착취와 인권유린의 위협을 받던 단계를 어느정도 지나 이제 사회의 한 계층으로 그 지위를 서서히 찾아가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판단해 볼 수 있다. 실제로 근로중 한국인에게 구타를 받은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92%가 받은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1990년대 초창기의 “현대판 노예”라는 오명이 2000년대 이후 많이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이들은 이주 노동자로서 어려운 노동환경속에 있다. 응답자의 76%가 임금 체불의 경험을 했다고 대답했으며, 임금 체불 금액은 1인당 평균 892,500원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임금체불 외에도 42.5%가 인격적인 모욕을 경험했다고 응답하였다. 회사 부도등의 부득이한 사정이 아닌데도 한국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일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일방적인 해고를 통보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열악한 노동 환경과 임금체불 등의 문제는 고용주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이주 노동자들에게도 역시 책임이 있다. 이들이 보다 나은 급여와 근무 조건에 따라 너무 자주 이직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은 평균 2년동안 한국에 체류하며 평균 3번 이직을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일년에 한 두번씩 직장을 옮겨 다닌 셈이 되는 것이다.


   4.1.2.3. 송금, 저축, 소비 행태

  몽골인 이주 노동자의 이주 노동의 가장 큰 이유는 돈을 많이 벌어서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가급적 소비를 억제하고 저축하여 본국에 송금하기를 원한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은 월평균 80만원의 소득을 얻어, 몽골로 429,921원을 송금하고, 월세로 157,188원, 식비로 85,000원, 의류 구입비로 78,421원, 그리고 통신비로 45,000원을 사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이한 것은 몽골인들이 의류 구입비로 많은 돈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몽골인에게 외모와 겉치례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몽골에는 아직 은행 시스템이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월급을 몽골로 보낼 때 은행을 이용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이용한다. 아는 사람의 인편을 통해서 송금하는 경우가 47%, 전문 운송 업체에 송금을 의뢰하는 경우가 46%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돈은 몽골 현지에 있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내어지는데 몽골에서는 이 돈으로 보통 3-4명의 식구들이 생활하는 생활비로, 집을 구입하고, 저축해 두는데에 주로 사용된다.

  이렇게 한국에 있는 몽골 사람들이 몽골로 송금하는 금액은 몽골 국민 총생산의 10%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그리고 그러한 외화가 몽골로 유입되어 집값 상승과 물가 상승을 유발시켜 몽골 경제의 빈인빈 부익부의 구조가 더욱 고착화 되는 폐단을 낳고 있다. 따라서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그들의 고국 경제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불법 체류자의 신분으로 국내 은행 계좌 개설이나, 해외 송금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어, 이들이 현금을 집에 보관하면서 도난사고가 빈번히 발생되고 있는데, 불법 체류자라 할지라도 정상적인 은행 거래를 할 수 있는 방안이 연구되어야 한다고 본다.


  4.1.3. 건강 및 의료생활에 대한 조사

  고향을 멀리 떠나 타국 생활을 하고 있는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은 변화된 환경 속에서 많은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이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은 크게 임금과 직장문제, 문화충격을 포함한 정서적 문제, 의료문제, 출입국 관련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의료 문제는 가장 절실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의 신분으로는 국내 의료 보험에 가입할 수가 없고,44) 따라서 엄청난 금액의 돈을 내고 일반 진료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2000년부터 시행된 의약분업 이후 약국에서 임의로 조제하는 것이 금지됨에 따라 병원에 가기 어려운 이주 노동자들은 더욱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필자의 4년간의 사역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상당수의 이주 노동자들이 언어의 장벽과 높은 진료비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통증을 참고 지내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에게 몽골에 있을 때에 비해 현재 한국에서의 건강 상태가 어떠한지를 묻는 질문에 51%는 별 차이없다고 대답했지만, 38%가 악화되었다고 대답하였다.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면 무슨 문제였는지에 대한 조사에서는 위장병과 음식물관련 사고가 42%가량으로 가장 많았다. 이 외에도 기타 질병으로는, 과도한 노동으로 인한 근육통, 잘 씻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발생하는 피부병, 치아 관련 문제, 산부인과 관련 질병이 있었다.

  건강상 이상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약국을 이용한다는 응답이 50%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일반 병원과 무료 진료소 등을 꼽았고, 그냥 참는다는 사람도 11%나 되었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 사역을 하는 대부분의 교회나 단체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의료사역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응답자의 18%만이 교회에서 하는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정서적인 측면에서 슬픔이나 우울증을 심각하게 느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체의 25%가 그렇다고 대답했고 외로움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전체의 63%가 정신 건강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는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정서적 문제에 있어서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4.1.4. 종교생활에 대한 조사

  설문조사를 실시한 대상이 교회에 나오고 있는 몽골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종교생활에 대한 조사는 일반 몽골인 이주 노동자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몽골인 이주 노동자에 대한 정보라고 보아야 한다.

  종교가 무엇이냐를 묻는 질문에는 48%가 기독교, 18%가 불교, 17%가 종교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예수를 나의 구원자로 영접했느냐는 질문에는 52%가 그렇다라고, 33%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죽음 이후 어떻게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서는 29%만이 천국에 간다고 믿고 있고, 37%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였다. 또한 교회에 오게된 동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33%가 믿기 때문에, 42%가 기독교 신앙에 대해 알고 싶어서라고 대답하였으며, 다른 몽골인을 만나기 위해, 혹은 심심해서 온 경우도 많았다.

  이런 통계 자료에 근거해 볼 때, 현재 한국의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 중 절반 가량만이 신앙을 가지고 있고, 그 외에 상당수의 구도자 그룹과 타종교인들이 교회 공동체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이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사실은 교회가 그들에게 있어 종교적인 부분 이외에도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선교적 측면에서 볼 때 매우 긍정적인 모습이라 볼 수 있다. 절반 가량이 불신자 그룹인 것을 감안할 때 교회의 예배나 프로그램도 그에 맞게 조정되어 그들이 복음에 대해 도전 받고 신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몽골에 있는 교회와 한국에 있는 몽골인 교회에 대한 인상에 대한 질문에서, 몽골에서는 36%정도가 교회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한국에 와서는 51%가 교회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렇게 교회에 대한 인상이 한국에 와서 많이 좋아진 것은 그만큼 더 복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되므로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 교회에 출석하는 몽골인 이주노동자들중 원래 몽골에서부터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은 22%에 불과하며 몽골에서 한번도 교회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59%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으나,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하는 사역이 매우 효과적임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한국에 있는 몽골인 교회들의 책임이 더욱 크다고 볼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과반수 가량 되는 불신자들로 인해 교회 공동체가 그 본연의 예배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해 버리고, 교회의 순결성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교회를 다니면서 여러 프로그램중 어느것이 가장 유익했느냐의 질문에, 응답자의 31%는 몽골 예배라고 대답했고, 성경공부가 22%, 한국어 강좌가 17%로 나타났다. 이는 기존에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의료 사역이나, 컴퓨터 교육, 이미용 사역등의 프로그램이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에게 더 매력적일 것이라는 통념을 깨뜨리는 것이다. 몽골인 이주 노동자를 위한 사역 역시, 보다 본질적인 예배와 말씀 사역이 더 중요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4.1.5. 문화, 사회생활에 대한 조사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한국어 실력이 요청된다. 이에 한국어 실력에 대한 본인 스스로의 평가를 내려보도록 한 결과 20%가 한국어를 잘한다, 51%가 조금 한다 라고 대답한 반면, 최소한의 의사소통만 한다도 25%, 전혀 못한다도 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몽골인들은 몽골어가 한국어와 언어학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다른 국적의 이주노동자들에 비해 매우 빨리 언어를 습득하는 특성이 있다. 보통 1년 정도 있으면 상당한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뛰어나서, 기회가 되면 한국어를 정식으로 배우고 싶은 의사가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90%에 이르렀다.

  한국과 몽골을 비교할 때 문화적으로 가장 큰 차이가 나는 것이 무엇이었는가의 질문에 대해 일을 정신없이 빨리 빨리 하는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34%, 자본주의적 물질만능주의 풍토가 27%, 그리고 음식을 중시하는 문화적 차이가 24%로 나타났다. 바꾸어서 말하면 몽골인은 한국인에 비해 여유가 많아 일을 천천히 하고, 아직도 공산주의적 의식이 남아있으며, 음식 문화가 많이 발달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웃에 있는 한국인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46%는 친하게 지낸다고 답변한 반면 37%는 알기는 하지만 별로 친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한국인과 나쁜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은 없으나 이들은 한국인들이 자신들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불편한 이유는 언어의 장벽, 정보부족, 지리에 대한 무지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이들이 자주 이용하는 시설은 주로 수퍼마�, 목욕탕 등이고, 은행이나 우체국 등은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한국에 대한 종합적인 안내 서적이 몽골어로 제작된 것이 없고, 몽골인 사이에서도 정보 교류가 이루어 질 수 있는 통로가 매우 제한적인게 문제이다. 이들을 위해 한국 생활 정보지와 같은 안내 책자를 만들어 주는 것도 필요하다.


  4.1.6. 소결론

  이제까지 몽골인들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 조사를 한 결과를 간략히 살펴보았다. 어떤 사람이 한국에 오게 되고, 한국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직장에서 어느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지, 그들의 건강 상태는 어떤지, 종교생활, 사회 생활은 어떤지, 그리고 이들이 겪게되는 일반적인 어려움이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을 가지고 그에 적합한 사역을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이제까지 몽골인 이주 노동자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에 알맞은 사역을 하기 보다는 한국인들이 교회에서 이제까지 해 오던 방식대로 진행되었다. 아니면, 몽골 현지의 상황에 비추어 선교 사역이 진행되어 오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땅에 와 있는 몽골인 이주 노동자 집단은 한국적이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 완전히 몽골적이지도 않은 특수한 집단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몽골에서 중상류층의 사회 계층이면서 동시에 한국에서 하류층을 형성하고 있는, 지금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별 영향력이 없지만, 얼마후 몽골에 가서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독특한 그룹임을 직시하고 이에 적합한 사역을 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서, 다음 절에서는 현재 하고 있는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의 현황과 실태에 대해 살펴보고 평가를 내려보고자 한다.


4.2.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 선교 현황 조사.


  4.2.1. 선교 현황 조사의 취지 및 조사 방법

  여러 교회와 선교 단체 등이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들을 돕기 위한 사역을 펼쳐 오고 있다. 특히 1997년 이후 이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단체가 급속히 증가하여, 현재 약 30곳의 교회 및 단체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교회들은 초창기 의료, 임금체불 상담 등의 긍휼 사역에서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다 전략적인 몽골 선교의 차원으로 발돋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이제까지 이들의 사역을 통해 많은 몽골인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성과가 있어 왔다. 그러나 한편 여러 가지 사역에 있어서의 한계와 제약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능숙하게 몽골어를 구사할 수 있고, 몽골 선교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있는 전문 사역자를 확보하지 못한 채 사역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한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점에 재한 몽골인 선교 사역의 현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조사, 분석하여 사역의 방향성을 가늠해 보고, 국내 사역자간에 그리고 몽골 현지와의 협력을 이룰 수 있는 기초 자료를 제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라 생각된다.

  먼저 재한 몽골인 사역을 하는 단체들의 분포와 사역 내용을 “2000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 주소록”45)을 통해 살펴보고, 여기에 사역자들간의 인맥과 소문을 통해 알려진 몽골 사역 교회와 단체를 50여곳 추려내었다. 이 50여곳 중 타종교와 일반 인권단체등을 제외한 38개 단체를 대상으로 전화를 통해 실제 사역 내용을 확인하고, 몽골인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 28개의 교회와 단체를 대상으로 설문지를 통해 사역의 내용을 조사하였다. 이 28개의 단체중 설문에 직접 응답을 해 준 15개의 단체46)를 중심으로 사역 단체의 일반적 정보, 사역 내용 및 프로그램, 출석하는 몽골인들의 현황,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 네트워크에 대한 필요성 등을 조사하였다. 설문은 실무를 직접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응답을 하여 응답의 정확성을 기하였다.


4.2.2. 사역 교회 및 단체에 대한 일반적인 조사


4.2.2.1. 사역 단체의 지역별 분포

  재한 몽골인들을 위해 선교 사역을 하는 교회 혹은 단체는 30개 정도로 알려져 있고47), 그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단체가 더 있을 것으로 추정이 되어 전체적으로 약 30-40개의 단체가 재한 몽골인들을 위해 사역을 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서울, 인천, 경기도 등의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고, 그 중에서도 서울에 거의 절반의 단체가 집중되어 있으며, 그 외의 지방에는 몽골인들을 위해 사역을 하는 알려진 단체가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는 조선족이나, 기타 동남아인들을 위해 사역하는 단체가 수도권 뿐 아니라 지방 거점 도시에도 고루 분포되어 있는 것과 비교가 된다.

        

  이렇게 서울에 사역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먼저 서울에 거주하는 몽골인들의 숫자가 많고, 서울에 몽골인 사역을 할만큼 규모가 큰 교회들이 많이 있어 주변 경기도 일대에 있는 몽골인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주로 대형 교회에서 차량을 운행해 이들을 데려오고 있는데 그 해당 지역에 다른 몽골 사역하는 교회가 있을 경우 해당 지역 교회들로부터 반감을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몽골 사역 교회의 분포와 몽골인들의 거주하는 지역 분포를 비교해 볼 때, 앞으로 지방의 주요 거점 도시에 몽골인을 위한 사역이 적어도 한 곳 이상 필요하며, 또 경기 동남부 지역(광주, 성남, 마석, 수원, 군포 등)에도 더 많은 사역 교회가 생겨야 함을 알 수 있다.


  4.2.2.2. 재한 몽골 사역 단체의 전문성


        

  재한 몽골인 사역을 하는 교회들은 처음부터 몽골 선교를 위해 몽골인 사역을 하게된 경우 보다는 주로 일반적인 외국인 근로자 사역을 하는 데 몽골인들이 참여하게 됨으로 인해서 몽골 사역에 동참하게 된 경우이다. 따라서 이들 단체에 처음부터 전문성을 기대하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단적인 예로 이들 단체들이 대부분 통역자는 확보하고 있으나 몽골 선교사48) 또는 몽골어 가능한 한국 사역자는 확보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그리고 몽골인을 주 사역 대상으로 삼고 있는 곳이 26%이며 절반을 조금 넘는 몽골 사역 단체는 다른종족과 몽골인들을 비슷한 사역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렇게 여러 종족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곳은 명성, 충현, 온누리, 주안 장로교회 등 초 대형교회이거나 외국인 근로자만을 위해 설립된 선교단체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한 단체가 여러 종족을 대상(target)으로 사역하는 것에 대하여 사역자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이는 사역자들이 사역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게 된다고 본다. 그것은 이들이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인권보호, 구제 및 긍휼 사역에 초점이 있느냐 아니면 복음전도와 교회 사역에 초점이 있느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가를 떠나서 이제까지 국내에서의 몽골인 사역은 주로 구제와 긍휼사역 쪽으로 많이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국내 몽골 사역을 몽골 선교라는 전략적 차원으로 접근하는 사역자들은 여러 종족과 문화권, 종교권을 동시에 사역하는 것이 비효율적임을 인식하고 한 종족을 주 사역 대상으로 삼고 사역의 에너지를 집중하려 하고 있다. 교회나 단체의 구조적 이유로 이렇게 사역의 대상을 좁히기 어려운 초대형 교회는 각 종족별 선교 활동을 점차 독립적으로 운영하여 해당 문화와 종교에 적합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야 할 것으로 보이고, 중소형 교회는 그곳에서 잘 감당할 수 있는 한 종족에 집중하여 사역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들 몽골 사역 교회는 대부분 기존 교회의 선교 위원회 등의 기관에 소속되어 있어, 인적 물적 자원의 동원에는 매우 유리한 장점이 있으나, 몽골 선교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전문성 결여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초대형 교회의 몽골 사역은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의 후원이라는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의사 결정과 집행에 있어 자율성과 독립성의 결여, 절차의 복잡성 등으로 몽골 사역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소속 교회에서 인적, 물적 지원을 받으면서 독립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사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몽골인들이 구제와 긍휼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 자립 가능한 이민 교회의 형태로 발전할 수 있도록 재정이나, 리더십의 부분에 있어 독립심을 계발하여야 할 것이다.


  4.2.3. 사역 내용 및 프로그램


   4.2.3.1. 몽골인 예배

  몽골인 예배는 51%의 교회가 몽골인들 별도로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교회가 다른 종족과 함께 통역을 통해 예배를 드리며 심지어는 통역조차 없이 예배를 드리는 경우도 21%나 있음이 드러났다.  몽골인들의 상황에 적합한 메시지와 예배 형식을 디자인하며,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복음이 전달될 수 있도록 몽골어로 몽골인들을 위한 예배가 드려져야 하며, 이를 위한 제반 여건의 조성이 중요하다. 몽골어 찬양이나 설교 테잎등과 같은 자료는 대부분의 교회가 보유하고 있지 않음을 볼 때 예배를 돕는 여러 자료들의 보급이 더욱 원할해져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4.2.3.2. 지도자 훈련 

  예배와 더불어 성경공부는 대체로 다 하고 있으나, 몽골인 세례자나, 리더 등의 지도자 훈련은 대체로 하고 있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몽골인들의 한국 체류 기간이 짧고 언제 귀국하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의 불확실성, 과도한 노동시간과 힘든 생활로 훈련할 시간이 거의 없다는 점, 지도자를 훈련할만한 한국인 또는 몽골인 사역자가 부족하다는 점 등이 지도자 훈련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4.2.3.3. 제공하는 사역

  몽골인 사역 교회에서 몽골인들에게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는 매우 다양한데, 그 중에서 의료 사역은 모든 교회가 다 제공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임금 체불 상담, 한글 교육 등의 순으로 집계 되었다. 이러한 긍휼 사역은 몽골인들이 외국에서 불법체류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들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으로, 그 사역 자체가 본질적인 선교 사역임과 동시에, 복음 증거를 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접촉점이 되고 있다.


   4.2.3.4. 특별 행사

  특별행사로는 체육대회, 야외 예배 등이 많이 실시되고 있다. 몽골인들은 타 외국인 근로자에 비해 이러한 이벤트성 특별 행사를 더 많이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바다를 여행한다든지, 에버렌드와 같은 놀이 공원에 간다든지, 농구 등 체육 행사를 할 때는 평균 출석 인원의 두 배 이상이 참석하기도 한다. 수련회는 근로자들이 휴일에도 일을 하는 특성상, 주로 설날이나, 추석 때를 이용해 실시되고 있는데, 한 교회가 단독으로 진행하기 어려울 경우 연합 수련회를 개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양, 평강, 장충 교회는 작년과 올해 두 차례 연합 수련회를 통하여 보다 알찬 수련회를 함께 준비하고, 진행할 수 있었다.


   4.2.3.5. 주중 프로그램

  재한 몽골인 사역을 하는 교회는 주일 이외에 다른 날 모이는 모임을 그다지 활발하게 하고 있지 못한데 그것은 몽골인 노동자들의 일의 특성상 함께 모이는 시간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이곳 몽골인들의 신앙이 성숙하지 못했고, 사역이 아직 기초 단계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주중에 모이는 모임이 별로 없는 중에도 심방은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보다 효과적인 사역을 위해 주일 예배 외에도 주중에 모여 기도하고 말씀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이 반드시 있어야 하리라 본다.

  국내에서 몽골인 사역을 하는 대표적인 단체는 서울 구의동 소재 서울 외국인 근로자선교회(서울 선교교회, 유해근 목사)로서 평균 150여명의 몽골인들이 모이고 있으며, 몽골 문화원49), 재한 몽골 초등학교50), 몽골 인터넷 방송국51)을 운영하고 있고, 울란바토르에 울란바토르 선교교회(유준상 목사)를 개척하여 사역중에 있다. 국내에서 몽골인 예배를 모범적으로 드리는 대표적인 교회는 온누리 교회로, 찬양과 말씀, 기도 등이 몽골인 지도자와 몽골 선교사의 협력 아래 은혜스럽게 드려지고 있다. 그룹 성경공부(GBS)는 장충교회가 자체 제작한 교재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편이고, 제자훈련은 주안 장로교회가 FJTS라는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어 훈련하고 있는 특색이 있으며, 충현교회는 LMTC 평신도 선교 훈련을 몽골인들에게도 심도있게 시키고 있다. 의료, 임금체불 상담, 쉘터 운영 등의 긍휼 사역은 명성교회 등이 비교적 모범적으로 활발하게 실시하고 있다. 수련회는 한양, 평강, 장충 교회를 중심으로 2차례에 걸쳐 연합으로 진행되었는데 개 교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특별행사를 연합으로 추진하는 좋은 예가 되었다. 

        

  4.2.4. 출석하는 몽골인들의 현황


   4.2.4.1. 교회 출석 현황

  현재 국내에는 약 만 오천명 가량의 몽골인들이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한국에 와서 도움을 얻을 목적을 가지고, 또는 한국인들의 전도를 받고 주변에 있는 한국 교회들을 찾아갔는데 이렇게 찾아오는 몽골인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교회가 이들을 위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교회가 먼저 이들을 찾아 나갔다기 보다는 도리어 몽골인들이 교회로 하여금 몽골인 사역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보는 편이 합당할 것이다. 교회에서의 몽골인 사역은 1997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01년 5월 현재 재한 몽골인들의 평균 교회 출석인원은 28개 몽골 사역 교회에 736명이며, 최대치 출석을 기준으로 잡으면 1346명으로 집계되었다. 여기에다가 알려지지 않은 몽골 사역 교회, 그리고 일반 한국 교회에 출석하는 몽골인들의 숫자를 더하면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략 1000명 가량의 몽골인들이 한국에서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는데, 이것을 비율로 보면 재한 몽골인의 약 7%정도가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몽골 현지 0.6%의 복음화율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괄목할 만한 수치이다.


   4.2.4.2. 신앙 수준

  그러나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 32%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 것으로 사역자들이 판단하고 있으므로 실제로 기독교인은 약 700명 정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몽골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으나 한국에 있는 교회의 사역을 통해 복음을 들은 사람이 56%로 약 560명 가량에 이른다고 볼 때 한국에서의 몽골인 사역이 얼마나 유리한 조건이고 효과적인지 알 수 있다.

 

   4.2.4.3. 후속 관리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유리한 조건에서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몽골인 사역은 몽골 선교라는 차원에서의 전략적인 선교 사역이 충분히 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몽골 사역은 아직까지 개 교회나 사역 단체간이나 몽골 현지와의 협력이나 연계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형편이다. 아래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몽골로 돌아간 몽골인들의 관리는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몽골로 돌아간 몽골인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53%에 이르고 한국에서 몽골로 돌아간 사람들 중 지속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20%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에 나오던 사람중 27%만이 몽골에 돌아가서도 신앙생활을 계속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반대편의 경우에서도 비슷한 형편으로 볼 수 있는데, 다시 말해 몽골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한국으로 오게 되는 경우 본 교회 지도자로부터 한국내의 몽골 사역 교회를 소개 받고 연결 되어 온 경우 역시 많지 않았다. 실제로 국내에 어느 교회가 몽골인 사역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몽골 현지 교회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몽골 현지와 한국의 사역자간에 긴밀한 협력과 네트�이 앞으로의 몽골 선교 사역에의 성공 여부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4.2.5. 몽골인 이주 노동자 선교를 위한 네트워크의 필요성

  몽골인 선교를 위한 네트워크의 필요성은 오래 전부터 제기 되어 왔다. 그 필요성은 상호 정보 교환과, 자료의 공유, 거주지 이동이 잦은 몽골 이주 노동자의 특성상 근거리에 연계해 줄 몽골 사역 교회의 정보 확보, 사역의 경험과 어려움 등의 나눔 등의 필요들이 부각되면서 인식되어졌다

.


  일 예로, 한국내 몽골 사역자들 중, 몽골어 성경, 성경공부 교재, 신앙 서적, 찬양 테이프 등의 사역에 필요한 기본적인 자료들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사역하는 교회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몽골어 성경은 대체로 충분히 구비하고 있는 편이나 이것도 구입하는 루트를 잘 알지 못해 어려움을 겪은 교회가 많았다. 또한 아쉬운 것은, 몽골에서 사역을 하고 국내로 철수하였거나 안식년으로 들어온 선교사들중 국내 몽골인 근로자를 위해 사역하고 있는 사람들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소수 밖에 되지 않는다.

  몽골 사역하는 교회들의 87%가 어떤 모양으로든 재한 몽골인 사역을 하는 단체들간의 네트워크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네트워크를 구성했을 때 동참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단체가 하나도 없을 만큼 연합에 대해 열려있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네트워크를 구성하려고 할 때 교단과 신학적 차이에서 비롯된 기존 교인과 당회의 부정적 시각, 그리고 지역적으로 떨어져 있고, 모일 시간 이 없는 등의 이유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연합 사역을 하게 된다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으로 사역의 경험과 어려움 등을 나눌 수 있는 장의 마련을 꼽았고 그 다음으로 각종 자료의 공유와 전문 사역자 및 통역자의 수급으로 꼽았다. 이러한 것을 중심으로 앞으로 몽골 미션 네트워크의 한국내 활동이 이루어 질 필요성이 제기된다.


  4.2.6. 소결론

   4.2.6.1.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의 유익

  1997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주한 몽골인 근로자 사역은 이후 지속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그 이전에 그리스도인이 거의 없었다가 현재 약 1000명이 주일날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주일날도 자주 일을 해야하는 이들의 현실을 고려하면 더 많은 사람이 교회에 나오고 다닌다는 것이다.

  이렇게 몽골 현지에 비해서 약 10배 가량의 높은 비율의 사람들이 한국에서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자문화권을 이탈하여 외국에 거주하면서 겪는 문화충격의 과정에서 자신에게 오는 다방면의 변화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몽골에서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사고 체계에 혼란이 생기면서, 종교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관이 서서히 와해되어 변화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갖추어지는 것이다. 둘째로, 이들의 신분이 대부분 불법 체류자들로서 인권이나 사회 복지 혜택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이 복음의 수용성을 높여 주었다는 점이다. 사회적인 약자인 이들에게 혜택을 주는 기관은 90% 가량이 기독교 관련 단체인데52), 이러한 점이 몽골인들로 하여금 복음의 수용성을 높여 주었다. 교회에 가면 의료혜택, 한글 교육, 임금문제 해결 등의 많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몽골인들 사이에 많이 알려져 있다. 셋째로, 다른 외국인들과는 달리 몽골인들은 아직까지 독자적인 사회적 연결망 혹은 교제권을 구축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몽골 식당 등을 중심으로 이들의 정보 교환이나 교제권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기는 하나 교회를 통한 몽골인들간의 사회적 연결망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넷째로, 국내 교회나 선교단체들이 몽골인들을 대상으로 활발하게 선교 활동을 벌이고 있음을 들 수 있다. 많은 평신도들이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직접 선교 현장에서 사역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고 헌신적으로 사역하고 있고, 교회도 이들에게 필요한 재정과 시설을 주기에 인색하지 않은 편임을 알 수 있다.


   4.2.6.2.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의 한계

  이렇게 국내의 상황은 몽골인 사역을 하기에 좋은 여러 가지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또 한편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몽골 사역의 전문성의 결여를 들 수 있겠다. 우선 몽골어가 안된다. 처음에는 몽골어를 잘 못해도, 베푸는 사랑으로 사람들을 교회 공동체 안으로 이끌 수 있지만, 이들이 말씀 위에 든든히 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매우 중요하다. 한국어로도 기본적인 복음을 설명할 수는 있고,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지만, 신앙이 성장하고,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내려 한다면 반드시 몽골어를 익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몽골인을 대상으로 전문적으로 선교하겠다는 의지가 몽골에 비해 많이 약하다. 선교 훈련을 받고 파송 받은 전문 선교사가 사역하는 몽골과는 달리, 훈련되지 않은 평신도를 중심으로 의욕과 열심만 가지고 사역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몽골인만을 전문적으로 사역하려는 전략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이 아니라 몽골인들이 교회에 하나 둘씩 찾아오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들을 위한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으로 전문적인 몽골인 선교를 하겠다는 의지는 매우 약해질 수 밖에 없다. 28개의 몽골 사역을 하는 교회중 몽골어로 설교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전문적 인력을 보유한 교회는 장충(송기태 선교사), 온누리(권오문 선교사), 명성(이대학 선교사), 게르방(몽골인 신학생부부), 부천천산중앙(서기원 선교사)교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성경책 이외의 다른 자료들 또한 충분히 확보하고 있지 못한 교회가 상당수 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앞으로도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 매우 많다.

  이러한 여러 문제점들이 보완되고, 한국내 몽골 사역의 장점이 극대화 될 수 있다면, 몽골 선교에 재한 몽골인 사역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전략은 다음 장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5.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 선교 전략



  이제까지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 선교의 전략을 수립하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에 대해 접근해 보았다. 몽골에 대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대한 간략한 이해,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이해, 이주 노동자 사역의 신학적, 선교학적 이해, 재한 몽골인의 의식과 생활, 몽골 사역 단체의 현황 조사등을 통하여 얻어진 통찰들을 국내 몽골인 복음화를 위한 전략과 몽골 현지 선교를 위한 전략으로 크게 나누어 살펴 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전략을 계획, 실천, 평가할 수 있는 전략적 대안으로서의 ‘디아스포라 몽골 네트워크’ 프로젝트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5.1. 국내 몽골인 이주노동자 복음화를 위한 사역 전략

 

  5.1.1. 긍휼 사역 중심에서 말씀 사역으로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이 국내에서 이루어진 것은 불과 최근 4-5년 정도이다. 그전부터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위한 인권 단체나 선교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몽골인들의 숫자가 1997년 이후 급격히 증가하면서 자연히 몽골인들도 그러한 인권단체나 선교단체의 사역 대상에 포함되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일반 지역 교회에 이주 노동자들을 섬기는 사역이 시작되었는데, 역시 몽골인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교회에 출석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 교회의 이주 노동자 사역에 포함되게 되었다.

  초창기 이들 단체들과 교회의 사역은 어디를 막론하고 대체로 비슷한 양상을 보여 왔다. 주로 이주 노동자들이 겪는 일반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임금체불 상담이나, 의료 사역, 한글 교육이 이러한 사역의 대표적인 모습이었다. 국내에서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사역하는 단체의 90% 이상이 기독교 관련 단체이고, 그 밖에도 기독교인들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아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교회의 이미지는 매우 긍정적으로 형성될 수 있어서, 이들이 복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으로 준비된 것이 사실이다. 초창기의 이러한 긍휼 사역 중심의 선교는 나름대로 많은 효과를 본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몽골의 신문에서는 ‘한국 생활에서 성공하는 10계명’ 중 하나로 ‘교회에 가라, 그러면 진정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문구를 넣었다고 한다.

  그러나 재한 몽골인 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된지 5년여의 시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이렇게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만 주는’ 사역의 효과와 열매에 대해 의구심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많은 경우 이주 노동자들이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의 서비스를 이용하기만 하지 근본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거나 예배의 공동체로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교회에 대한 이미지도 자선단체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섬기는 사람들은 막대한 예산과 에너지를 소모하다가 결국 스스로 탈진해 버리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이주 노동자들, 특히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이 교회에서 베푸는 자선 사업에만 관심이 있어, 지속적 의료와 임금체불 상담 서비스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쉽게 교회를 옮겨 버리거나 아예 떠나게 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 그들이 몽골로 돌아갔을 때에 교회를 떠나고 다시 원래의 세속적 모습으로 살아가는 일이 비일비재 하였다.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재한 몽골 이주 노동자 선교를 하는 많은 사역자들은, 실제로 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훈련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로잔 언약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반드시 복음증거만이 선교라고 생각하는 편협한 사고 때문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선교를 하며 사람을 끌어 모으는 데 집중하는 동안 막상 복음 증거와 말씀 훈련이 그 본래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이다. 선교가 법적으로 제한된 창의적 접근지역에서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복음의 문을 열고 접촉점을 마련하는 사역이 중요할지 모르나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재한 몽골인 사역에 있어서는 긍휼사역과 함께 복음 증거와 말씀사역이 균형있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재한 몽골인 이주노동자들이 이제 한국 언어와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 짐에 따라 저임금, 인권유린과 건강 악화 등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 갖추어 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이제 선교의 방향도 조금씩 수정될 필요성이 있다. 선교를 총체적으로 접근한다는 미명하에 막상 선교의 핵심이 되는 말씀과 전도를 소흘히 하는 접근이 큰 효과를 나타낼 수 없음은 앞선 연구 조사를 통해서도 이미 밝혔다.

  총체적인 접근을 통해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를 선교해야 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복음 증거와 말씀 훈련에 우선순위를 둔 총체적 접근이어야 한다. 복음 증거를 약하게 하고 긍휼 사역을 강하게 해서 일시적으로 사람을 많이 불러모아 스스로 만족감에 빠질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몽골인 이주 노동자를 변화시키는 것은 말씀이다. 몽골 사람 스스로도 예배와 말씀이 가장 유익한 프로그램이라고 답변하고 있는 것 역시 이를 잘 반증해 준다. 한국 선교 초창기에도 네비우스 원리의 핵심을 이루는 ‘성경말씀 중심의 선교’를 통해 많은 열매를 거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5.1.2. 몽골 사역의 전문성 확보

  이제까지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에 있어서 현실적으로 가장 큰 약점은 사역의 전문성 결여를 들 수 있다. 전문성 결여의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먼저 이 사역의 본질을 인식하는 의식이 올바르게 형성되지 못한 것을 꼽을 수 있다. 한국 교회는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 선교를 외국인 근로자 선교라는 일반적인 사역중 하나라는 정도 이상으로 이 사역을 바라보지 못해왔다. 따라서 다양한 나라와 민족, 언어권, 문화권, 종교권에서 온 각기 다른 사람들이라는 다양성을 간과하고, ‘외국인 노동자’라는 통일성만 염두에 둔 사역을 해 올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도 이들이 몽골인이라는 독특성은 무시된 채, 많은 다른 이주 노동자 중의 하나로 인식되어, 이들을 위한 효과적인 사역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려면, 한 교회나 단체가 한 문화권 혹은 종교권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여 집중력을 높여야 한다. 즉,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을 제대로 하려면 한 교회에서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한 곳에 집중하고, 다른 사역은 인근 다른 교회나 단체와 네트워크를 이뤄 분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회의 규모와 실력에 따라 약간씩 차이를 둘 수는 있겠지만 백화점식으로, 문어발식으로 사역을 확장하여 전문성을 잃으면 아무 것도 얻는 것이 없게될 것이다.

  다음으로, 국내 거주 이주노동자 선교 사역은 많은 경우 지역 교회의 평신도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선교 동원의 측면에서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일 수 있으나 실제 사역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많은 한계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몽골인에 대해, 선교에 대해, 몽골어에 대해, 교회 사역에 대해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다수의 사람이 열정만 가지고 선교 사역을 하기에 효과적인 사역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러한 어려운 여건을 최대한 극복해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금방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점들이 많이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재한 몽골인 이주노동자 선교의 전문성을 제고할 수 있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몇가지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몽골 이주 노동자 사역을 다른 이주 노동자 사역에서 독립시켜야 한다. 현재 한국에 와 있는 여러 국적의 이주노동자들과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은 몇가지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먼저 티벳의 라마불교권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다른 이주 노동자들은 주로 회교, 힌두교, 카톨릭, 불교권에서 왔고, 라마불교 권에서 온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이들은 유목민족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이들의 문화는 대부분 ‘정착’을 중심으로 한 다른 민족과는 다르다. 또한 이들은 한국인과 인종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서적으로 타 이주 노동자들보다 매우 가깝다는 것이다. 이러한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몽골인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하려면 이들에게 초점을 두고 이들의 정서에 맞게 사역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언어의 한계를 가지고 있더라도 몽골 예배를 독립적으로 드리고, 성경공부나 찬양, 다른 사역들도 보다 전문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몽골어를 할 수 있는 한국 사람이나, 한국어를 잘 하는 몽골사람을 속히 확보하여, 원할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그들에게 적합한 말씀으로 양육해야 한다. 

   둘째, 이렇게 몽골 예배와 사역을 독립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몽골 사역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을 하는 교회들은 성경책 이외의 자료는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채 사역을 하고 있는 실정인 것드로 드러났다. 1999년에 완간된 신구약 성경, 몽골 찬송가, 신앙서적, 전도지, 찬양 테잎, 비디오 자료등을 구비해 놓고, 적절하게 사용하여야 한다. 몽골은 현대 기독교 선교 역사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기에 사역할 수 있는 자료가 다양하지 않은 단점이 있으나, 최대한 자료를 구비해 놓아야 한다. 그 외에도 몽골 사역에 통찰을 얻기 위해서 재몽 한인 선교사회에서 발간하는 몽골 선교 자료집, 그리고 인테넷을 통해 가능한 많은 자료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몽골인 이주 노동자를 위해 특별히 성경공부 교재, 한글 교재등을 제작하여 사용할 필요가 있다.

   셋째, 몽골 사역에 필요한 자료를 많이 구비하고, 예배를 독립적으로 진행한다 해도 결국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역자를 훈련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몽골 사역하는 한국인들을 몽골 사역에 적합하도록 몽골에 대한 이해, 몽골어, 선교에 대한 이해, 성경에 대한 이해를 지속적으로 훈련하여야 한다. 그리고 몽골 사역자 자신들도, 현장에서 선교를 하고 있는 선교사라는 의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훈련에 임해야 할 것이다.


  5.1.3. 몽골인 리더십 세우기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은 그 역사가 짧아 아직까지 두드러진 몽골인 지도자가 배출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이 대부분 출입국 관리법상 불법 취업, 체류자라는 신분상의 한계를 가지고 있고, 한국에 노동자의 신분으로 있으면서 충분히 양육 받을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교회의 지도자로 세워지기는 어려운 여건속에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한국인들이 몽골인들을 리더로 세우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지도력을 이양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지도자가 배출되지 못 한 것일 수도 있다.

  이제 보다 발전적인 몽골인 이주 노동자 선교를 위해서는 몽골인들을 양육시켜 지도자로 세우고 한국인 사역자들과 동역자의 위치로 협력하여 사역을 하여야 한다. 한국인들은 언어에 있어서나 몽골인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나, 여러 측면으로 볼 때, 사역의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몽골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국 선교 초기의 네비우스의 원리대로 자치, 자전, 자립의 방식을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에도 적용할 때, 사역의 열매는 배가될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몽골인들에게 리더십을 이양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훈련하여, 영적 지도력을 갖도록 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몽골인 이주 노동자를 대상으로한 제자훈련 및 리더훈련을 실시해서 말씀으로 훈련된 몽골인 지도자가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지도자를 훈련시키는 일은 단기간에 되어질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사역이 아니다. 따라서 좀더 빠른 시간 내에 몽골인 지도자를 세울 수 있는 방법은 몽골 현지 지도자를 디아스포라의 선교사로 파송받아 사역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몽골 현지 교회에서 지도자로 검증되었고, 한국어가 가능한 사람을 선발해서 한국에서 신학 교육을 받도록 하는 동시에 교회를 통해 사역할 수 있도록 한다면 몽골 현지 교회나, 한국의 몽골 사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5.1.4. 몽골 사역 단체간의 연합과 네트워크 형성. 

  필자는 장충교회에서 만 3년째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을 하고 있다. 처음에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을 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그 때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보고 배울 만한 좋은 모델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 장충교회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고,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을 하는 모든 교회와 단체들의 고민인 것을 알게 되었다. 서로 비슷한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어 왔던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현재의 재한 몽골인 이주노동자 사역은 전문성이 많이 부족하므로 사역하는 교회들간의 협력이 더욱 절실하다. 사역의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고, 서로 가지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직도 많은 교회들이 성경책 이외의 찬송가, 성경공부 교재, 전도지 등의 기본적 자료들도 갖고 있지 못한데, 이런 네트워크를 통해 그런 자료들도 공유할 수 있다.

  몽골 사람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거나 직장을 옮겼을 경우 가까운 지역의 몽골 사역하는 교회로 연결해 줄 수 있는 지역별 네트워크도 중요하고, 의료, 인권, 교육 등의 사역별 네트워크도 필요하다.

  연합과 네트워크를 통해 개 교회에서 필요하지만 추진하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연합 수련회와 찬양 집회를 여러 교회가 연합하여 보다 알차게 준비하고 진행할 수 있었다.


5.2. 몽골 현지 선교를 위한 이주노동자 선교 전략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은 한국에 와 있는 만 오천명의 몽골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것 이상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은 고국인 몽골로 돌아갈 것이기에 이주노동자 선교는 몽골 현지 선교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여기서는 몽골 현지 선교라는 측면에서 이주노동자 사역의 전략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5.2.1. 몽골 현지에 직접 복음 전파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은 몽골 현지에 가족, 친지, 친구 등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고 있다. 한국에 있는 몽골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될 때, 몽골 현지에 미치게 될 영향력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이들이 몽골에 있는 지인들과 전화 또는 편지를 주고 받으며 자신들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들이 많이 바뀌고, 도리어 교회에 대해 고마운 생각을 갖게 된다. 더 나아가서는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이 고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복음을 증거하게 된다. 한국에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하기 어렵겠지만 이들이 몽골로 돌아가서는 더욱 직접적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하게 된다.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은 궁극적으로 몽골인 이주 노동자를 전도하고 양육시켜 고국에 돌아가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로서 재 파송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을 통해 몽골에 복음이 증거되는 것 뿐만 아니라 몽골인 이주 노동자들을 매개로 해서 한국인이 직접 복음을 증거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 몽골인들을 섬기는 사역자들이 단기선교 여행을 통해 몽골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몽골의 가족들에게 한국에서 자신들의 가족을 돕고 있는 사람들이 오는 것은 다른 선교사나 일반적인 단기 선교팀이 오는 것과는 그 의미가 아주 다르기 때문에 보다 효과적으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몽골인 이주 노동자를 비디오와 사진기로 찍어서 그들이 직접 준비한 선물, 편지, 돈과 함께 몽골의 가족들에게 전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또 몽골에서 생활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비디오와 사진에 담아 한국으로 전달해 주면 그들의 보고싶은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준 것에 감사해서 복음을 잘 받아들이고, 교회의 사역에 대해 큰 호감을 갖게 된다. 몽골에 있는 이주 노동자들의 가족을 한데 모아 전도집회를 열어 현지 교회에 연결해 주는 것도 효과적인 선교의 방법이 된다. 실제로 이런 방법으로 2001년 여름 몽골에서 전도집회를 열어 200여명의 몽골인 가족들이 참석하여 복음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있는 그들의 가족들이 영접한 그 예수님을 영접하는 역사가 있었다. 몽골에서 공공연한 선교 활동은 법으로 제약이 되어 있지만, 이러한 이주 노동자의 가족을 대상으로 한 집회는 법적 제약도 쉽게 돌파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단기간의 선교 사역을 통해서도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몽골로 귀국하는 몽골인 이주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사실 한국에서 이주 노동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몽골에 귀국했을 때 그들은 커다란 역문화충격(reverse culture shock)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고국 몽골보다 월등히 앞서있는 경제 생활에 익숙해 있다. 따라서 귀국시 이들은 몽골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또 몽골 현지 교회에도 잘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몽골로 귀국하게 되는 몽골인들이 갈수록 증가하는 시점에 귀국하는 몽골인 이주노동자를 위한 특화된 교회나 혹은 연합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이러한 취지로 설립된 교회가 울란바타르에 2곳이 있다. 하나는 오마르딩천산교회로 한국의 부천천산중앙교회에서 몽골 이주 노동자 사역을 하다가 몽골 선교사로 파송된 서기원 목사가 개척하여 사역하고 있다. 또 하나는 아우랄링자르교회로, 한국의 서울 선교교회에서 이주노동자 사역을 하던 조유상 목사가 개척하여 사역하고 있다. 물론 이 두 교회가 이주 노동자만을 위한 교회로, 이주 노동자들만이 출석하는 교회는 아니지만, 한국에서의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과 연관성을 갖고 시작된 교회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5.2.2. 몽골 현지 교회를 강화시킴

  재한 몽골 이주노동자 사역은 몽골의 현지 교회를 강화시키는 전략적 효과가 있다. 먼저 한국에서 예수를 믿은 사람이 몽골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점에서 몽골 현지 교회를 강화시킨다. 앞서 조사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재한 몽골인 이주노동자의 복음화율은 7%에 가까워 몽골 안의 0.6%의 10배에 가까운 높은 복음화율을 보이고 있다. 몽골에 있었으면 예수님을 믿기 어려웠던 중상류 계층의 사람들이 한국으로 이주해 와서 예수를 많이 영접하게 되어 그만큼 몽골 현지 교회를 강화시키고, 몽골의 복음화를 촉진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53) 

  두 번째는 몽골 현지 중상류 계층 복음화에 기여함으로 몽골 현지 교회를 강화시키는 전략적 효과가 있다. 몽골의 기독교인은 주로 어린아이와 젊은 학생, 여자들이 주된 구성원이고, 어른 남자들이나 중상류 계층으로부터는 무시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복음이 가난한 자에게 소외된 자에게 전파되는 것은 일면 바람직한 현상이면서도 복음이 지나치게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만 여겨질 때 나타나는 문제점도 많이 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이주 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주로 중산층, 고학력자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한국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본국에 돌아가게 될 때, 몽골 현지의 중상류 계층 복음화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주노동자 사역은 몽골 교회의 재정적 자립을 촉진시킴으로 몽골 현지 교회를 강화시키는 전략적 효과가 있다. 현재 몽골의 교회는 재정적으로 거의 자립하지 못하고 선교사의 선교비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많은 한국 선교사들이 한국 교회의 헌금으로 몽골 교회의 건물을 지어주고 있어, 이것이 몽골 교회의 자립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한편 현실적으로 볼 때, 해외 원조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가난한 나라에서 국민 중의 극빈자들로 구성된 몽골 현지 교회가 재정적으로 자립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 있는 몽골 현지 교회에 재한 이주노동자들은 몽골 교회 재정 자립 문제에 있어 하나의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재한 몽골인들이 1년에 벌어들이는 소득은 약 1.09조원이며, 몽골로 송금하는 금액은 약 774억원에 이르는데 이는 몽골 현지에서는 막대한 금액이다. 이중 기독교인들이 약 7%인 것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표시로 십일조를 낸다면 년간 5억원의 헌금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중의 십분의 일만 십일조를 몽골 교회에 보낸다고 해도 연간 5천만원의 자금이 몽골 교회로 유입될 수 있다. 즉, 해외에 있는 몽골 교포들이 본국 교회의 재정 자립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결론이 된다.  

 

   5.2.3. 한국 교회를 몽골 선교에 동원시킴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은 또 한국 교회를 몽골 선교에 동원시킴으로 몽골 현지 복음화에 기여하는 전략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옛말에도 백문이 불여 일견이란 말이 있듯이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있어서 보이지 않는 선교지 보다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이주 노동자들을 통해 선교에 대한 열정을 더 강하게 품게 된다. 실제로 이주 노동자 사역은 한국 교회에 있어 생소한 사역이기에 이 사역에만 전담하는 교역자를 두지 않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주로 평신도들에 의해 이 사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점이 전문성 결여의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한국에 있는 평신도 자원을 비거주 선교사로 동원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는 것이다. 한국에 와 있는 몽골인 이주 노동자를 섬기면서 직접 선교 현장을 체험하게 되고, 자연스레 몽골 현지와 현지 선교사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그들을 사랑하며 후원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재한 이주 노동자 사역을 하다가 이들을 사랑하게 되어 실제로 몽골 선교사로 헌신할 수 있는 동기가 유발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몽골 이주 노동자 사역은 이미 몽골 선교사로 헌신된 한국인이 몽골 현지로 가기 전 미리 몽골 사람과,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실제 사역의 현장 경험을 할 수 있는 현장학습소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몽골 선교사로 나가기 전 한국에서 6개월에서 1년정도 몽골 사람과 교제하면서 몽골 선교 현장을 체험하면 몽골에 가서 겪을 수 있는 문화 충격 등의 어려움을 완화시킬 수 있고, 몽골에 갔을 때 보다 잘 적응하고, 현지에서 더 필요로 하는 사역자로 잘 준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몽골 선교 헌신자가 재한 몽골 이주 노동자 사역을 경험하면 재한 몽골 사역에도 도움이 되고, 본인도 사역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유익도 있고, 현지에서도 보다 잘 준비되고 경험을 쌓은 사람을 맞이함으로 유익함을 얻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최근 한국 교회에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단기 선교 여행에 있어서도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2001년 여름 3개월 동안 몽골을 다녀간 단기 선교 여행팀이 5,000명 가량이 된다는 얘기가 있다.54) 이들이 단기 선교 여행을 위하여 쏟아 부은 돈과 시간과 열정은 막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중 많은 단기 선교 여행팀은 준비가 부족하여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선교 현지에 끼치고 간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재한 몽골인 이주 노동자 사역은 단기 선교 여행팀에 실제적인 도움을 줌으로써 궁극적으로 몽골 선교에 기여할 수 있다. 몽골 단기 선교 여행을 가기 전에 국내에서 이주 노동자 사역을 경험하도록 하고, 몽골인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하여 현지의 필요에 부합하는 준비를 하도록 함과 아울러, 단기 선교 여행이라는 단회적 선교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계속 지속될 수 있도록 단기 선교 여행 후속 프로그램이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몽골 선교로 동원하고 훈련하여 장기 선교사로 헌신하도록 할 수 있는 좋은 훈련의 장이 될 수 있다.

몽골에 대한 일반적 이해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