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노동개조소와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참상 (상)
▲ 북한의 정치범들이 강제노동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을 하고 있는 모습.(후지TV제공) |
그래서 나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내가 겪었던, 그리고 현재 세계 곳곳에 만연해 있는 고통스런 강제노동을 통한 전체주의의 강제탄압이 어떠한 것인지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지난 20세기는 인류역사상 불행했던 재난의 세기로 평가할 수 있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동안 대부분의 나라들은 살인적인 파괴와 혼란에 뛰어들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세계는 화학전쟁, 강제수용소, 남경대학살, 그리고 핵무기의 개발 등 부끄러운 인류의 잔혹성을 목격하였다.
우리는 지난 시기 발생했던 르완다의 대량학살, 전 유고슬라비아의 인종청소를 통해 인류가 아직 대량학살 같은 범죄를 근절하지 못했음을 상기해야 한다. 세계대전은 피로 얼룩진 불행한 역사를 남겼다. 20세기의 또 다른 재앙은 전쟁보다 더 오랜 기간 수많은 사람들을 감금과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러한 참극의 공통적인 뿌리는 정치 이데올로기와 공산주의의 확산에 있다.
공산주의는 소련의 1917년 10월 혁명을 시작으로 동유럽 전체를 휩쓴 후, 냉전을 초래하였다. 잇따라 우크라이나에서 기근이 발생했고 수감자들의 대부분이 정치범으로 구성된 수없이 많은 희생자들을 낸 악명 높은 강제수용소(gulag) 체제가 생겨났다. 공산주의는 급속히 아시아 전체로 퍼져나가 베트남 전쟁, 캄보디아의 죽음의 벌판 크메르 루주 등의 비극을 낳았다.
또한 40년대 후반에는 공산정권이 북한과 중국대륙에 들어섰다. 중국의 부패한 공산주의와 이데올로기는 대약진 운동, 잇따른 기근과 문화대혁명 같은 파괴적인 사회운동을 부채질하였다. 한반도에서는 다국적 전쟁이 발생하여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으며 1953년에 38선을 기준으로 불안정한 휴전협정을 맺었다.
지금까지 언급한 이 재앙들을 살펴본다면 모두 독재주의라는 공통된 뿌리를 갖고 있다. 많은 실례에서 소수의 독재자들이 자신의 국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권력을 거머쥐었다. 히틀러 정권이나 일본의 천황주의 역시 공산국가와 마찬가지로 여기에 포함된다. 모든 전제정권은 전체주의 권력유지와 인민의 통제를 위해 공포를 불러일으키며 반대를 억압하는 장치를 갖고 있다. 그 첫 번째 예가 구 소련의 강제수용소 '굴락'이다. 이는 금세 다른 이름으로 중국, 북한, 베트남과 다른 나라들에서 세워졌다.
공산주의는 '노동을 통한 개조' 라는 역사상 어떤 체제와도 비교할 수 없는 양식규범을 갖고 있다. 전체주의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은 이견을 억제하고 정권을 위한 이익을 창출하는 도구로 이용되었다. 북한과 중국의 강제노동수용소는 이러한 체제에서 일어나는 극악한 인간성 말살을 보여준다. 수감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노동하며, 모욕과 구타, 고문을 당한다. 북한과 중국에서 식량은 수감자들의 목표 노동량 달성 여부에 따라 배급한다.
만일 수감자가 목표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배급은 거의 끊겨 많은 사람들은 굶어죽는다. 수감자들은 단지 국가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일하므로 어떠한 개인적인 발전도 있을 수가 없다. 그들은 더는 인간이 아니다. 잠시 이용하다 버리는 가축들에 지나지 않았다.
강제노동수용소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우선, 북한, 중국, 베트남, 그리고 구 소련의 수용소 체제는 국제법상 정당한 절차의 개념이 완전히 결여된 법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정부가 전체주의적 규범을 요구할 때 정부는 시민들에게 공정한 재판을 통한 범죄장치여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중국과 북한에서는 일단 수감자들이 라오가이나 사상교육촌에 들어가면 중노동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상개조'라는 명목 하에 공산주의사상의 재교육 수업을 받아야 한다. 이는 수감자들에게 현 체제와 이의 부패한 사상이 완전무결한 것임을 철저한 교화를 통해 세뇌하기 위함이다. 재교육은 수감자들이 풀려난 후에도 국가의 전체주의 통치자들의 합법성을 인정하거나 이들의 권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감히 당이 제정한 어떤 법에도 이견을 제시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들 전제주의 수용소의 마지막 공통점은 놀랍도록 많은 수의 양심수가 그 안에 투옥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범죄란 신앙을 가진 것과 학문적 견해 차이, 그리고 인권신장과 민주화 요구였다. 이러한 정치적, 학문적, 종교적 탄압은 어떠한 형식이라도 통치자들에 반대하는 것으로 간주되면 강제수용소행 선고가 충분히 가능하도록 했다. 집권을 위해서 전체주의는 어떤 형식의 이견도 사회에 존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것을 용납할 경우 급속도로 번질 것이고 궁극적으로 체제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공산주의 정권은 공포탄압 체제를 갖추어 모든 형태의 반론을 제거하고 민주적 개혁을 정면으로 막았다.
<다음호에 계속>
해리 우(미국 라오가이 연구재단 회장)
2004년 10월 09일
기사전재 - 2005년 3월
중국 노동개조소와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참상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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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경북도 회령에 있는 제22호 정치범 수용소를 인공위성이 촬영한 사진. 이곳에 정치범 약 2만 여명이 수용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그 동안 나는 탄광에서 일하기도 하였고 대약진 운동기간에는 거의 굶주림으로 생명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1965년에는 허가 없이 편지를 보내려 했다고 하여 시멘트로 된 감옥에 열흘동안 갇혀있기도 했다. 이 독방은 높이가 4피트도 안되며 춥고 습하다. 그 기나긴 세월동안 나는 여러 번 구타를 당했고, 한번은 탄광내부가 붕괴된 후 거의 죽기 직전까지 방치되기도 했다.
나는 나만큼이나 운좋게도 혹독한 환경을 견뎌낸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나는 또한 감옥에서 많은 사형현장을 목격했다. 1979년에 석방되자마자 나는 비록 조국을 사랑하지만 이러한 냉혹과 억제를 조장하는 체제에서는 견딜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1985년에 미국으로 이민하였고 몇 년간 기반을 쌓아 일을 시작하였으며 나와 많은 다른 사람들이 중국에서 겪었던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증언이 강제수용소에서 감금과 고문, 굶주림과 인권유린을 당한 수백만에 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 해도 나는 우리들 모두가 이러한 체험을 계속 이야기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고 싶다. 국제사회는 지난날의 참사와 오늘 현재 이 순간까지도 존재하는 끔찍한 현실들을 알아야만 한다. 강제수용소체제의 생존자로서 우리 모두는 진실을 증언할 책임이 있다.
얼마 전 워싱턴에서 라오가이(노동개조소) 연구재단과 로버트 케네디 기념관은 중국 라오가이 생존자들 8명을 초청하여 그들의 증언을 듣고 50년간의 수난과 정치적 박해를 알리는 회의를 주최하였다. 이러한 회의는 모두 굴락이나 라오가이, 사상개조소를 세계에 알리는 임무를 완성할 중요한 시도이다. 이는 역시 이러한 인권유린이 점차적으로 근절될 것을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투쟁에서 또한 중요한 것은 공산국가 정부들과 외교관계를 가지고 있는 국제사회의 대응이다. 우리는 모든 정부들이 그들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연합군이 나치수용소를 해방했을 때 그들은 세계를 폭정의 위협에서 구출한 영웅처럼 대접을 받았다. 70년대에 공산당이 구 소련을 통치하고 있을 당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소련의 굴락을 비판하고 이의 생존자를 기념하는 자신의 저서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국제법의 발전은 르완다의 대량학살, 전 유고연방, 그리고 최근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에 이르기까지 전범의 기소를 가능케 했다. 심지어 캄보디아처럼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곳에서도 크메르 루주 공산당 지도자들에 대한 재판을 계획 중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책임이 중국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최혜국대우를 받고 있고 유엔안보리에서도 거부권이 있으며 세계가 눈감아 주는 동안 계속해서 자국의 이익을 챙기고 있다.
최근 수십 년간 많은 나라들은 여러 번 북한정부의 일련의 행동에 대한 대응으로 무역을 인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군부가 핵무기실험을 하고 기아구제에 응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는 아직도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그들 인민의 굶주림을 도구로 원조를 얻어내려 하고 아시아의 불안정을 지속시키는 위협요소이다. '북한동포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시민연합'이나 방위포럼재단과 같은 인권단체는 북한 사상개조소에서 계속되는 참사를 증언하는 보고서를 발표해 왔다. 그러나 공식적인 국제적 비난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사상개조소에 들어가는 모든 연령층의 희생자들이 어떤 고문과 인성말살을 겪는지, 또 거의 대부분이 다시는 풀려나지 못할지를 잘 알고 있다. 중국에서도 누구든 감히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자는 라오가이의 담장 안에 갇혀서 국익이라는 미명하에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와 같은 전체주의 정치범수용소 생존자들이 라오가이와 사상개조소의 날카로운 철조망과 감시탑 아래 숨겨진 참극을 폭로할 때, 세계가 수용소 내부에 숨겨진 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의 고통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우리는 국제사회가 이러한 인식을 외교에 반영하여 라오가이와 사상개조소의 참혹한 실상을 종식시키는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
1989년 11월 9일, 세계는 베를린 장벽이 수십 년 동안 감금해 온 포로에 의해 무너지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이 장벽은 한 도시와 민족, 국가를 분리한 공산주의가 만들어낸 비극의 상징이었다. 이로부터 2년이 채 되기도 전에 소련체제가 붕괴하였다. 구 소련과 동유럽은 힘들지만 오랫동안 고대했던 민주화를 진행해 오고 있다. 구 소련 붕괴직전 동유럽 공산당은 마지막 수단으로 정치제도와 경제정책을 수정하여 그들의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정의와 자유는 통제와 전제주의보다 우세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베를린에서는 공산주의의 억압의 상징으로 수년 동안 장벽이 존재해 왔다. 베이징에서는 독재자 모택동의 거대한 초상화가 걸려 있다. 한국에는 비무장지대라는 선이 엄존하고 있다. 현재 중국과 북한의 공산체제는 50년간 존속해 왔고 중국의 개혁개방정책과 북한의 고립정책이 계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근 100년에 가까운 비극에서 공산주의실험의 결과는 온 세계에 증명되었다. 현실적으로 공산주의가 집권에 실패한 원인은 구조적으로 이견과 개혁, 발전을 막았기 때문이다.
해리 우 (미국 라오가이 연구재단 회장)
2004년 10월 23일
기사전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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