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삼자교회 신학교육의 현황과 전망

쑤더츠(蘇德慈) 목사


중국기독교 신학교육의 역사를 회고할라치면, 18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150년의 역사는 맹아기인 19세기 하반기, 성장발전기인 20세기 상반기, 그리고 시련과 갱신의 시기인 20세기 하반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기에 개설된 10여개 신학원, 성경학교, 성경훈련반 등은 모두 설교연습을 주요목적으로 하였으며, 실용적인 목회훈련을 위주로 한 학교들이었다. 1877년 샹하이(上海)에서 열린 선교사대회에서 비교적 고급수준의 학교 혹은 학술적인 신학교를 설립할 것이 제기되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아 20세기 상반기까지 설립된 60여개의 신학원과 성경학교(여전도인을 배양하던 학도학교(學道學校)는 포함하지 않는다)중에서 단지 1/4만이 고등교육수준을 갖고 있어서 학위를 수여할 수 있을 정도였다. 또한 이들 학교사이에는 수준의 높고 낮음의 구별만이 있었을 뿐, 그 기본목적은 한결같이 목회자의 배양에 있었다. 신학연구에 뜻을 가진 자들은 극히 적어서 그들은 오로지 해외유학의 길을 통해서만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아마 이것은 식민주의 교육방침의 특징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1950년대부터 중국기독교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서양선교회가 철수하고, 삼자운동이 시작됨으로써, 중국교회는 ‘자아’를 갖기 시작하였다. 이는 고통스러우면서도 가슴 벅찬 과정이었다. 그러나 다들 주지하고 있는 역사적 원인으로 인해, 50년대 말엽부터 다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여 70년대 말엽에 이르러서야, 모든 국가, 사회와 교회는 비로소 안정과 발전의 시기에 접어들게 된다. 중국교회의 신학교육은 이러한 사회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고, 엄격한 시련을 겪으면서 부흥과 갱신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80년대에서 90년대 신학이 당면한 긴급하고 우선적인 임무는 목회자를 빨리 양육하는 것이다. 동시에 일부 신학연구와 신학교육을 위한 인재를 배양하는 일도 시급하다.
현실과 지나간 역사를 비교해보면, 주요한 임무는 여전히 동일하지만, 그 각각은 대략 다음의 몇 가지 측면에서 분명한 구별이 있다.

첫째, 81년-88년의 짧디 짧은 7,8년 간의 세월 속에서 전국기독교협회와 유관 성(직할시, 자치구) 기독교협회의 지휘아래, 전국적으로 18개소의 신학원과 성경학교가 회복되거나 개교하였다. (최근 몇 년동안 또 5개의 성경학교가 개교되었다) 이들 학교들은 진정으로 중국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크신 권능에 의지하여 이루어 낸 쾌거였다. 수많은 신학원과 성경학교들이 외관상으로는 교사(校舍)는 비좁고, 설비는 남루하며, 교수의 자질도 부족하며, 장서(藏書)도 부족하지만, 이들 학교들은 확실히 한 해 도 한 해, 새로운 목회자들을 배출해내고 있다. 1998년까지 졸업생 수는 대략 3,500여명에 달한다.


둘째, 50년대의 교수들 중에서 남아있는 이들은 얼마 되지 않는데, 18개의 신학원과 성경학교의 교사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가? 신학을 가르쳐 본 적이 없는 많은 노인 목사님들이 용감하고도 과감하게 후진들을 양성하기 위해 떨쳐 일어섰다. 그들 대부분은 이미 고령으로, 이들이 교회당의 회복, 목양사역 뿐 아니라 후진양성을 위한 교수직까지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주님에 대한 사랑, 헌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이 교수경험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사역경험과 헌신적인 열정은 인재배양에 있어서 훨씬 풍부한 실천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학생들에게 훌륭한 본보기를 보여줄 수 있었다. 이는 목회자를 배양해낼 임무를 지닌 신학교육에 있어서 큰 장점으로 작용하였다. 반가운 것은 80년대 졸업한 학생들이 속속 교사대열에 합류하고 있다는 점인데, 1998년까지 그들은 이미 전체 전임강사 중에서 이미 70% 이상을 점하고 있다.
셋째, 18개 신학원과 성경학교는 모두 중국교회의 교파이후시대에 들어와서 중건(重建)되거나 개교된 학교들이다. 학생들은 교회사 과목을 통해 교파가 출현한 역사적인 원인이나 역할, 그리고 그 영향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었다. 동시에 그들은 역사를 통해 과거에는 교파의 선전이나 교파의 확장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현실 속에서 교파배경을 지니지 않은 복음전파가 진실 되고 순수한 것임도 체득하게 되었다. 교파이후시대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는 신학원의 생활은 젋은세대로 하여금 다음의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였다.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일!” 그들은 앞으로 중국교회가 하나됨을 향해 나갈 때 견실한 기초가 될 것이다.
넷째로 18개의 신학원과 성경학교가 각기 지닌 초교파성은 토론을 거쳐 중국교회에 필요에 적합하여, 모두가 받들어 지킬 수 있는 교육방침을 제정하는 것을 가능케 하였다. 이 교육방침은 바로 띵구앙쉰(丁光訓)주교가 1984년(혹은 더 일찍)경 제기한 영(靈), 덕(德), 지(智), 체(體), 군(群:대중성)을 고루 함양한 교회인재를 배양하는 것이다. 1985년에서 1987년 수 차례의 전국적인 신학교육회의를 거쳐 이 방침에 대해 깊고 세밀한 토론을 진행한 결과 공통된 인식에 도달하게 되었다. 각 신학원과 성경학교는 이를 지도방침으로 하되, 각 학교의 운영경험 속에서 끊임없이 탐색하며 전진할 것이다.

이상의 몇 가지 점은 보기에서 평범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만일 우리들이 중국기독교의 과거와 중국교회의 지난 반세기 경험을 연결시켜 생각한다면, 중국교회는 성장하고 있고 중국교회의 신학교육사업이 부흥과 갱신을 거듭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중국교회는 세력이나 재능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의존하였다. 성령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들이 처한 시대를 인식하게 하셨고, 우리를 인도하여 어떻게 이 시대 속에서 적응하며 복음이 널리 전파되도록 하셨다. 삼자애국운동은 50년대에는 확실히 정치적인 태도를 표명하는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중국교회로 하여금 새로운 활동공간을 마련하도록 하였었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삼자원칙의 신학적 의의를 밝히는 일에 치중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점과 과거의 역사를 비교해보면, 이제 중국교회는 자아, 즉 부름 받았고, 책임을 다하는 자아를 갖게 되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부흥과 갱신의 전 여정으로 볼 때 우리들은 여전히 초급단계에 처해져 있지만, 주께서 가르쳐주신 방향을 따라 계속하여 노력하며 전진해갈 것이다.


이는 결코 우리들이 현실에 만족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 우리들의 뜻보다 훨씬 높으며, 하나님의 길이 우리들의 길보다 훨씬 높아서 그가 우리들로 하여금 보다 높은 곳에 서서, 보다 멀리 봄으로써, 원대한 목표를 지니는 사람이 되게 하고, 또 끊임없이 새로운 이상(異象)을 볼 수 있는 이, 그리고 자신이 본 이상을 위해 분투 노력하는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심을 의미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들은 주께서 우리들에게 맡기신 소명과 직분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다.

30년 전의 폐쇄와 제재는 중국을 거의 폐쇄 상태로 몰아넣었으나, 최근 1, 20년의 개혁개방으로 중국과 세계는 다시 연결되었다. 중국사회가 개혁개방의 길을 걸어가면서 중국교회와 세계교회는 또한 더욱 깊고 넓은 교류와 친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세계의 미래학자들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21세기는 아시아가 주도하는 세기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어떤 이는 2010년, 2020년, ...에 이르면 중국의 국민 총생산량(GNP)이 세계 제 1위로 떠오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우리들은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다. 인구가 너무 많음으로 인해 저급한 생활수준은 상당히 오랜 기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결코 소홀히 여길 수 없고 또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한 점은 바로 중국이 지금 막 비약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며, 이로 말미암아 생기는 변화와 영향은 실로 엄청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들 신학교육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이 점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왜? 경제발전은 필연적으로 문화변혁을 동반하기 마련이며, 그 충격파는 종교, 신학의 영역에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이상(異象)을 여러분 모두와 함께 나누길 원한다.

새 천년을 바라보면서 중국교회의 신학교육사업과 신학연구소는 최소한 다음의 4가지 문제를 직시하면서 사고와 행동을 전개시켜야 할 것이다.

1. 자신의 가치를 향상시켜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사회의 모든 학교는 고등, 중등, 초등 등의 등급으로 분류된다. 이 등급은 스스로 정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평가가 명실상부한가의 여부는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 오늘, 중국의 신학원과 성경학교가 하나둘씩 건립되면서, 활동의 공간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또 사회의 지지와 인정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들은 이 신학원과 성경학교들이, 대학 본과(本科;4년제 대학과정), 대학전과(轉科;전문대학과정) 혹은 중등전과(실업계 고교과정)에 명실상부하게 해당되기를 바란다. 만일 우리들이 80년대 이후의 15년을 중국신학교육사업재건의 제 1단계로 본다면, 이 단계의 특징은 방치되었던 것을 다시 세우고(百廢待擧),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며, 인재양성을 주요목표로 부족하나마 있는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면 2010년에 이르기까지의 다음 15년은 마땅히 잘 정돈되고 세련되고 점점 잘 다듬어진 형태를 갖추는 제 2단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유명무실해져서 스스로의 지위와 가치를 상실하고야 말 것이다. 이 과정도 또한 매우 어려운 과정일 것이며, 엄청난 노력을 요할 것이다. 우리들은 이 점을 거행된 전국신학교육위원회 회의에서는 이미 이와 관련한 일련의 결의를 통과시켰는데, 학위조례, 교원자격심사 및 직위조례, 규범화를 위한 대강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제도개선을 위해 노력함과 동시에, 또 다른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오늘 중국신도의 대부분이 농촌에 있으며, 이들을 위한 목회자가 절대로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지난 15년 동안 우리들이 이를 위해 채택했던 방법은 단기훈련으로 만 명이나 되는 평신도사역자(義工)들을 훈련시켜 2-3만개에 달하는 처소교회에 가서 목양사역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헌신과 노고는 길이 기억되어야 하며, 그들의 사역의 열매에 대해서는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규 신학훈련을 받지 않았으며, 이단사설에 대응하는 면 등에서는 확실히 부족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우리들은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훈련반의 수준을 향상시켜서 훈련기간을 1년 혹은 2년으로 연장하고, 조금씩 이들을 정규신학교육기관으로 전환시키려는 계획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중국신학교육사업은 정규화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힘을 다해야 할 것이며, 사회 안에서 자신의 지위를 확립하는 것은 기층교회의 건설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2. 더 많은 학과와 전공을 가진 학교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중국의 신학교육은 목회자배양을 주된 임무로 하여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교회인재가 어찌 목회자뿐이겠는가? 중국교회의 신도수가 총인구에 차지하는 비율이 그렇게 크지 않고, 또 역사도 길지 않지만, 하나의 독립자주한 온전한 교회이다. “참새가 비록 작아도, 오장육부를 다 갖추고 있다.” 교회는 다방면의 인재가 필요하다. 예컨대, 관리인도 필요하고, 교회음악, 미술 등 예술인재, 연구인재, 교육인재, 대외사업을 위한 인재도 필요하며, 문서, 영상, 음향 등의 출판을 위한 인재 등등 다양한 인재들이 필요하다. 지난 세대의 많은 전문인재들이 이미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이제 다시 배양에 힘을 쓰지 않으면, 일부학과나 전공은 중단되어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 교파후기 교회가 갖는 장점중의 하나는 인재의 숫자는 많지 않더라도 상대적으로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방면의 인재의 숫자는 목회자의 숫자를 능가할 수 없을 것이므로, 각 신학원과 성경학교의 구체적인 조건과 인적자원에 근거하여 하나의 전국적으로 통일적인 방안이 나와야 할 것이다. 한 학교의 특정학과와 전공이 전국을 향하여 전 중국의 교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이렇게 힘을 집중하고 서로 협력할 수 있다면, 배가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3. 기독교와 중국문화의 만남의 연구를 중시해야 한다.

중국과 서방세계의 경제교류에 수반하여, 중서문화의 교류도 이에 비례하여 부단히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의 대세는 결코 역전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21세기 중서문화교류는 더욱 광범하고 더욱 심도있게 발전해 갈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 서방문화가 기독교문화를 핵심으로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 중국대륙에서, 수 많은 사회과학연구기구와 고등교육기관이 속속 종교와 문화연구센터를 세우고 있다. 부언할 필요없이, 여기서 종교라는 것은 바로 기독교를 가리킨다. 80년대 이후, 기독교와 관련된 서적이 출판계의 중점 관심이 되고 있다. 이는 아마 중국현대에 있어서 ‘기독교의 제2차 중국도래’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제1차와 완전히 다르다. 제1차는 종교의 모습으로서 나타난 것으로, 대량의 서방선교사들이 전파의 주인공을 담당했으며, 서방의 정치, 군사, 경제적인 힘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고, 서방이 동방을 억압하는 태도를 취했으며, 중국은 피동적인 위치에 처했었다. 제2차의 과정은 전혀 다른데, 문화적인 측면에서 출현하였다. 전반적으로 보아, 중국이 주인공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개방정책으로 사방의 경제와 문화를 끌어들임으로써, 서방을 중국을 위해 활용하는 즉, 서방의 장점으로 중국의 단점을 보완하는 국면을 형성하고 있다. 오늘, 중국의 대지 위에는 이미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졌으며, 복음을 전하는 사명은 자연스럽게 중국교회의 책임으로 맡겨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교회는 중서문화의 교류를 통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야 하지 않을까? 중국사회가 중국교회를 향하여 학자를 요청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것은 하나의 현실적 도전이다. 우리들의 신학원과 성경학교도 또한 기독교학자들을 배출하는 것을 자신의 특수한 사명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소위 기독교학자는 그리스도나 정통신학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아주 튼튼한 사회과학적 기초를 지녀서 기독교가 직면하는 다양한 도전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들이 이 방면에서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면, 장래 중국사회에서 기독교에 대해 발언하는 사람은 모두 비기독교인사들로 채워지고 말 것이다. 이는 우리들이 직면한 심각한 도전이며, 우리는 결코 이를 수수방관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도전을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 자전(自傳) 연구를 진행하는 임무중의 하나이다.

4. 중국신학의 상황을 고민하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진리와, 변화의 와중에 있는 각양각색의 사회가 서로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은 것이 바로 신학의 사명이다. 그러므로 모든 국가의 교회는 모두 자신의 신학사상이 있어야 한다. 신학의 상황화(處境化;inculturation)에 대한 사고의 정도가 해당 교회의 성숙여부를 가늠하는 지표가 되며, 그 신학사상의 독특성은 세계교회에 대해서 그 자신만의 독특한 가치를 지니게 한다. ‘삼자’원칙을 견지하고 있는 중국교회는 더더욱 자신만의 독특한 사고를 지녀야 할 것이다. ‘교회론’을 예로 들어서, 간단한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교회론은 마땅히 상황화되어야 한다. 교회는 사회 안에서 존재한다. 세계의 수많은 국가의 사회제도, 전통풍속, 문화배경은 모두 크든 작든 차이점을 갖고 있다. 교회가 이러한 외부조건과 어떻게 서로 조응하고 적응하느냐의 문제는 비단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요구만은 아니며, 교회적인 요구이며, 신학적인 필요이기도 하다. 예컨대, 중국은 중국특색을 지닌 사회주의사회이며, 그리스도의 교회는 2,000년의 역사를 통해 단 한번도 이러한 사회와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어떤 역사적 혹은 세계 여러 국가의 교회론도 전혀 아무런 변화없이 중국교회의 모범으로 직수입 될 수는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따라서 보편합일성을 갖는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결코 단절적으로, 혹은 고립적으로 자신만의 교회론을 사고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국가, 민족, 지역적 속성을 지닌 교회는 또한 특수한 개별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교회가 공통적으로 자신만의 교회론을 사고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국가, 민족, 지역적 속성을 지닌 교회는 또한 특수한 개별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교회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특성에 기초하되, 주어진 상황과 사로 조응하는 점에서 사고하며, 중국교회의 교회론을 세워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중국교회는 전반적으로, 교파이후시대에 처해있는 교회이며, 이는 또한 현재 세계각국의 교회와 다른 특징적인 것이다. 어떠한 새로운 사물도 역류를 만나 전진하기는커녕 후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질 수 있다. 현재 중국교회 앞에 놓여 있는 선택의 길은 한 방향으로 계속 탐색하면서 전진할 것인가 아니면 정체하여 퇴보할 것인가의 두 길이다. 만일 정진하려면, 경험을 종합하여 세운 교회론과 상응하는 나무를 세워야만 하며, 이로써 실천을 지도해가야 할 것이다.
주께서 과거에 이미 주신 풍부한 은총에 감사드리며, 주께서 새 천년의 이상(異象)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하는 바이다. “위를 향해 발전하고, 아래를 위해 봉사하자”(向高層發展, 爲基層服務) 이것은 아마 다가올 새로운 단계의 중국신학교육사업을 위한 지도사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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