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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본 중국, 그리고 북한
[2011-02-05, 17:33:02] 온바오    
▲ 지난 2일 후지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바오딩시의 여성 노혁명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지난 2일 후지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바오딩시의 여성 노당원 옌더수(闫德书)씨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온바오 회원 런투코리아(runtokorea)님 온바오 커뮤니티의 '교민의 소리'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설날 풍경을 근거로 중국과 북한의 현황과 차이에 대해 예리하고 균형 잡힌 견해라고 판단돼 온바오 뉴스사이트 '오피니언'으로 보도합니다. 
(편집자 주)

음력 섣달그믐날인 지난 2월 2일, 중국 국가주석 후진타오(胡锦涛)는 하북성 바오딩(保定)시를 방문했다. 주민들의 생활현장 - 이른바 ‘기층(基层)’을 탐방하는 일상적인 정치 일정이다.

가장 먼저 시외버스터미널을 방문했다. 버스표를 구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는 시민들과 악수하고 매표소 직원과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으로 군부대를 방문했다. 군인들의 소박한 공연을 하급병사들과 똑같은 테이블에 앉아 관람하고, 함께 만두를 빚었다. 거기서 식사를 하고 겨울가뭄에 신음하는 농촌의 들녘으로 향했다.

바오딩시의 혁명박물관을 둘러보고, 노(老)혁명가의 집에 방문하여 부엌의 솥뚜껑을 열어보며 살림에 어려움은 없는지 살펴보고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쭈그렁 할머니가 된 그 여성 혁명가는 “당신은 인민의 몸이니 건강을 잘 살펴라”고 후 주석에게 당부했다. 발길을 옮겨 인근의 아파트 단지를 방문한 후진타오는 마이크를 잡고 주민들에게 “여러분과 함께 설을 쇠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당(공산당)은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주민들과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직접 북을 치면서 어울렸다.

2월 2일 저녁부터 설날이 하루가 지난 오늘(4일)까지 중국중앙텔레비젼(CCTV)는 이 뉴스를 줄기차게 첫 보도로 내보내는 중이다. 1~2분 정도로 간단히 대통령의 동정을 소개하는 한국의 뉴스보도와는 다르다. 짧게는 5분, 길게는 15분 정도로, 어디서 무엇을 했고 무슨 말을 했으며 주민들의 반응은 어떠한지 세세히 육성과 화면으로 보여준다. 반복해서 보다보니 마치 그 현장에 같이 있는 듯한 기분이다.

혹자는 어용언론의 실상이라 치부할지 모르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갑자기 북한의 ‘김일성 시대’가 떠올랐다. 김일성이 정치 일선에서 정력적으로 뛰던 때에 북한도 그랬다. 주민들의 생활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남녀노소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며 눈물 흘리며 주석을 얼싸안는 모습이 화면으로 보여졌다. ‘김정일 시대’에 이런 것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비록 ‘쑈’라고 할지라도 ‘인민들과 함께 하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부각하는 정치행사가 사라졌다. 지금 북한 인민들은 자신들의 지도자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하나도 모른다. 신문 지상을 통해 어디어디를 시찰했다더라 하는 보도만 이어질 뿐이다. 그것도 주로 군부대다. 인민들은 그의 얼굴을 먼발치에서나마 볼 수도 없다.

한국의 설날에 해당하는 춘절(春节)은 중국의 최대명절이다. 춘절 TV프로그램의 정점은 역시 춘절연환만회(春节联欢晩会)다. 음력설 전날 저녁 8시부터 다음날 1시까지 5시간동안 계속되는 종합예능프로그램이다. 노래와 춤, 꽁트, 기예, 연주 등이 이어진다. 춘절이 있기 몇 달 전부터 올해 춘완(春晩 ; 춘절연한만회의 줄임말)에는 누가 출연을 하니 빠지느니 하는 기사가 중국 신문에 오르내리며 춘완의 분위기를 돋운다.

가장 인기가 높은 코너는 자오번산(赵本山)이 이끄는 샤오핀(小品 ; 중국의 꽁트)인데, 거의 모든 시청자가 TV앞에 몰려 앉을 시간인 자정 바로 직전에 배치된다. 올해에도 11시 40분쯤에 시작되었는데, 이 꽁트가 끝나고 노래가 하나 이어진 후 사회자와 관중의 카운트와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북소리가 울린다. 중국 도처에 일제히 폭죽이 터지는 것도 바로 이 시간이다. 화려한 불꽃과 함께 또다시 웅장한 노래가 이어진다.

자오번산의 꽁트가 있고 자정을 전후해 불려지는 노래는 대부분 혁명가요다. 중국공산당을 찬양하고, 중국의 오늘을 찬미하며, 중국 인민의 휘황한 앞날을 기약하는 내용들이다. 춘완의 요소요소에 약간씩 정치적인 선전이 곁들여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때가 유독 정치색이 짙다. 올해에는 사회자가 “금년은 중국공산당이 창립 99주년을 맞는 해입니다”라고 강조를 한다. 물론 중국의 주요언론과 방송매체가 공산당의 휘하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능프로그램의 사회자가 노골적으로 특정정당(?)을 지칭하는 대목에서는 ‘아, 여기가 아직 사회주의 국가이구나’하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지난해 춘완의 자정 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자정을 넘기고, 새해의 북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어린이 합창단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붉은색 깃발을 휘날리며, 어린이들의 영롱한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는 <没有共产党就没有新中国>이었다. “공산당이 없으면 새로운 중국도 없습니다”라는 뜻이다. 온 몸에 소름이 확 돋는 것을 느꼈다. 거부감 때문이 아니라 ‘참, 정치선전이 교묘하면서 훌륭(?)하구나’하는 감탄의 마음 때문이었다. 이런 공산당이 쉽게 무너질 수 있을까, 다른 무엇이 (수년 사이에) 공산당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我)의 흥을 돋고, 적(敌)의 기를 흔들고 빼앗는 것이 정치선전의 요체라면, 지난해 춘완의 그 공연에는 100점을 주고 싶었다. 이런 사례 이외에도, 중국에 살면서, 중국공산당의 정치선전 방식이 대단히 절묘하다고 감탄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투박한 듯 하면서도 여유롭고 부드러운, 오랜 세월을 갈고닦은 깊이 있는 세련됨까지 느껴질 때도 있다.

이번에 후진타오가 춘절 기층 방문의 도시로 바오딩시를 선택한 것도, 그냥 하릴없이 그곳으로 달려간 것이 아니다. 바오딩 인근은 1930~40년대 항일혁명전쟁 시절 중국공산당의 주요한 근거지 가운데 하나였던 진찰기변구(晋察冀边区)가 위치해있던 곳이다. 앞서 소개한 <没有共产党就没有新中国>이라는 노래도 1943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이렇게 유명한 혁명전적지를 찾아가 ‘오늘의 중국공산당(혹은 신중국)을 만들어준 당신(인민)들의 은혜를 우리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보은(报恩)의 방문인 셈이다. 비교하자면, 한국의 대통령이 새해를 맞아 자신을 열렬히 지지해 주었던 과거의 지역구를 찾아간 모양새라고나 할까.

중국이 이렇게 아직도 혁명과 전통이 살아있는 곳이라면, 북한은 그런 것 따위는 수년(아니 수십 년) 전에 사라져버린 땅이다. 기어이 3대째 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겠다는, 실패한 지도자의 노욕(老欲)만 진물처럼 흘러가는 곳이다. 어제 CCTV에는 북한의 설 풍경도 소개되었다. 평양 시민들이 전통놀이를 하는 광경이 흘러가고, 엉뚱하게도 “친구들에게 설날 축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어느 북한 여학생의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그것만으로는 뻘줌했던지 평양냉면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뒤이어 설날 귀성행렬에 바쁜 남한의 터미널 풍경이 이어졌다.

이것이 오늘의 중국이고, 지금의 북한이다. 세련된 정치선전으로 ‘공산당이 없으면 중국도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는 중국이 있는 반면, ‘수령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는 구호마저 이제는 사라져버리고 ‘청년대장 척척척’이라는 홍두깨같은 노랫말과 함께 스물댓살 애송이를 다시금 수령으로 모시라고 윽박지르는 북한이 있다. 이런 두 나라가 ‘사회주의 혈맹’이라니, ‘형님’된 중국이 퍽이나 머리가 아플 것 같다. 이것은 단순히 경제력의 수준에서 나오는 ‘여유’와 ‘긴장’의 차이가 아니다. 기본적인 마인드 - 철학의 차이다. 인민을 조금이라도 공경하며 두려워하느냐, 벌레만도 못한 존재로 깔보며 내리누르려 하느냐, 바로 그 차이인 것이다.

춘절 연휴, 반복되는 후진타오와 춘완을 피해 채널을 돌리며 (그 해의 춘완은 그 뒤로도 며칠동안, 아니 일년내내 CCTV 여러 채널을 통해 지겹도록 재방송된다) 제발 북한이 저 정도 방송이라도 만들어보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보았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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