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성경

1. 성경의 정의.

계시적 차원에서의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이다. 반면에 기독교적 차원에서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곧 <하나님의 법>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하여 완성 되어진다.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 되어지는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법에 대한 예표이고 상징으로서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다. 반면에 신약성경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되어진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법을 진행하고 집행하는 <하나님 섭리역사>의 <진행역사>이고 <집행역사>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이 신약성경에 대한 예표이고 상징인 몽학선생이라고 해서 구약성경의 임무가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구약성경을 통하여 세워지고 계시되어진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되어졌으므로 보다 차원 높은 것으로 승화되었지만 그 본래적 의의는 여전히 살아서 완성된 신약성경의 <하나님의 섭리진행 및 집행>에 그대로 적용 되어진다.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역사를 명령하시고 진행하시고 집행하시는 것이다.

2. 성경의 역사.

1) 성경의 시작.

(1) 구약성경의 시작.

구약시대 초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성경, 또는 정경등과 같은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모세가 기록한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율법책 또는 율법서<תודצ-eduth><הדות-torah><דמס-sepher>라고 명칭 하였고 특히 <토라>라는 명칭을 보편적으로 사용하였다.<신28:61; 29:21; 30:10; 31:24,26> <왕하11:12; 14:6; 22:8,11> <대하17:9;25:4;34:14-15> <느8:1-3,8,18; 9:3>
구약시대 후기에 이르러 율법서 이외에 다른 것들이 등장하게 되었을 때에 그들은 그것을 <네비임-Nebiim-예언서> <케투빔-Kethubim-성문서>등등으로 명칭 하였다.

(2) 신약성경의 시작.

아직 신약성경이 형성되지 않았던 신약시대 초기에 <성경>이라는 명칭은 오직 구약만을 의미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승천 후 사도들에 의하여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의 4복음서가 기록되었고 이어서 사도행전을 비롯한 각종 신약 성경들이 기록되었다.

2)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구분.

2세기 말엽에 이르러 유대교 경전과 기독교 경전을 구분하기 위하여 <구약>과 <신약>이란 명칭이 사용되어지게 되었다. 이때에 헬라어 용어인 <디아데케-διαθὴκη- 계약, 언약>와 히브리어 <브리트-Brit-언약>를 역하여 <신약>과 <구약>을 구분하였는데 <AV-영어흠정역 성경-英語欽定譯聖經-Authorized Version.-A.D. 1611>은 <Testament>라는 용어로 역하여 구약을 <Old Testament>로 하고 신약을 <New Testament>로 하였다.

3) 성경의 저자와 기록기간.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성경 66권은 약 1600년간에 걸쳐서 40여명 이상의 저자들에 의하여 기록되어진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저자와 기록연대 및 장소에 대해서는 거의 모두가 정확하지 않다. 학자들 중에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것들이 우리에게 명확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하여 의문을 갖는 경우가 있다. 성경의 저자와 기록연대 및 장소는 성경해석의 중요한 열쇠가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학자들의 이러한 의문들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보다는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의미로 그렇게 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사실을 저자와 기록연대 및 장소에 대하여 어느 정도 추론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신 하나님의 배려를 통하여 확인하게 된다.

4) 성경에 사용된 언어.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으나 그중에 아람어가 사용된 경우가 있다. <단2:46-7:28><스4:8-18><막5:41; 7:34; 15:34>등은 아람어로 기록된 것이다. 이 아람어는 갈대아어라고 지칭되었었는데 바벨론 유배기 이후에 점차로 유대인들의 구어<口語>로서 히브리어와 함께 사용되었던 관련방언<關聯方言>이다. 구약성경에 사용되어진 히브리어는 본래 구두점이 없었고 띄어쓰기와 같은 문법도 적용되지 않았으며 글자들은 모두 <언시얼체-unciial form-획의 폭이 일정하고 모가 나지 않은 글자체>로 씌어졌기 때문에 읽거나 해석하기에 어려움이 많았으며 특히 외국어로 번역하는데 많은 문제가 있었다. 그리하여 주후 5-9세기 사이에 활동했던 맛소라파 학자들이 히브리어 모음 부호를 만들어 붙임으로서 그 문제를 해결하였다.
신약에 사용되어진 헬라어는 코이네<koine-헬라주의적 형태>로서 당시에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던 헬라어 방언이었다. 예수 그리스도 당시에는 코이네가 거의 국제적 공용어로 사용되어졌는데 그것은 주전 4세기에 근동일대를 헬라문화, 헬라 언어로 통일시킨 알렉산더 대왕의 전략적 정책에 의한 결과였다.

5) 성경의 사본.

인쇄기술이 발명되기까지 성경은 손으로 쓴 것들이었다. 구약성경은 말할 것도 없고 신약성경도 무려 1400년 동안 손으로 옮겨 기록한 것이다. 원본을 그대로 옮겨 기록한 것을 사본<寫本-manuscript>이라고 하는데 고대사본은 중세기에 종이가 발명되기 전까지 주로 파피루스<요이1:12-갈대로 만든 것>와 양피지<딤후4:13-양이나 염소의 가죽>를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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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원본은 현재 남아있지 않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로마의 디오클레시안 황제가 모든 그리스도교 문서를 없애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소각되었을 가능성과, 다른 또 하나는 파피루스나 양피지 자체가 견고한 것이 아니므로 자연적으로 소멸되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우리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원본이 전승되어지지 않은 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는다. 만약에 성경의 원본이 남아있다면 무엇인가를 숭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성경원본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여 박물관, 또는 유물관 같은 것을 만들어 원본성경을 신중하게 보관하는 가운데 원본성경은 물론이요 그것을 보관하는 곳 자체를 신성시하고 성역화 하여 참배한다거나 심지어는 경배하는 비 진리적인 일들을 행할 것이 분명하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역사가 진행된 장소들을 성역화하고 <성지순례>라는 명분 하에 그곳을 방문하면서 3류 종교적 우상숭배 행사들을 계속하고 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우상 숭배적 신앙이 조성되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원본성경을 남겨 주시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5) 성경의 번역본.

(1) 구약 번역본.

하나님의 말씀은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아는 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자기계시인 것이다. 따라서 히브리어와 헬라어로만 기록되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전 세계의 언어와 문자로 기록되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 하나님의 이러한 섭리에 의하여 성경이 각 나라의 언어와 문자로 번역 되어지게 되었는데 고대역본<古代譯本>이란 원본 성경을 각 나라 언어와 문자로 번역한 사본들을 말하는 것이다. 고대 구약 번역본들은 <아람어 탈굼역> <70인 역> <라틴어 역> <시리아어 역> <콥트어 역> <고트어 역> <아르메니아어 역> <그루지아어 역> <이디오피아어 역> <아랍어 역> <슬라보니아어 역> 등등, 많은 것이 있으나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70인 역>과 <라틴어 역>이다.

① 헬라어 70인 역 성경 <LXX>.

유대인들의 바벨론 유배로부터 시작되는 유대인들의 분산과 필립대왕과 알렉산더대왕에 의한 근동일대의 헬라 문화정책, 그리고 로마의 유대 식민지정책과 기독교탄압, 등등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히브리문화는 점차 말살되어져 갔고, 따라서 팔레스타인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비록 유대인들이라 할지라도 히브리어를 읽고 쓸 수 없게 되었다. 때문에 팔레스틴 이외의 지역에 있는 유대인들은 히브리어 성경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이유에 의하여 히브리어 구약 원본을 헬라어로 번역하게 되었는데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 성경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70인 역이다. 이집트왕조의 프톨레마이오스2세, 필라델푸스<Ptolemaios, II-Philadelphus-B.C.285-246재위>는 유대인들에게 유화정책을 적용하였고 그들을 우호적으로 대하였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히브리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위하여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게 하였다. 대왕은 유대의 12부족에서 각 각 6명의 학자들을 선발하여 총 72명으로 하여금 성경을 번역하게 하였는데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필사본 성경의 정확성을 알아보기 위해서였고 다른 또 하나는 성경의 숫자를 위해서였다. 학자들은<2명 1개조, 또는 6명 1개조>로 구성되어 각기 흩어져서 성경을 필사본 하였는데 필사본이 종료되었을 때에 그것들을 대조해 본 결과 모든 필사본들이 전혀 오차 없이 동일하여 이집트 국왕과 정부 관리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전해진다.

② 라틴어 불가타 역본.

성경이 라틴어로 번역된 것은 주후 2세기말 경, 북 아프리카의 칼타고<Carthago>로 추정되지만 고대 역본은 이보다 훨씬 앞선 것으로 여겨진다.
헬라문명이 쇠퇴하고 로마의 세력이 확장됨에 따라 헬라어 사용이 감퇴되는 반면에 라틴어가 공용화되어지기에 이르렀을 때 성경사용에도 문제가 발생하였다. 헬라어 성경보다는 라틴어 성경이 더욱 요구되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헬라어와 라틴어를 알고 헬라어 사본이 있으면 누구라도 성경을 번역하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번역이 통일되지 않고 오역<誤譯>이 만연하게 되어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A.D. 382년경에 로마의 감독이었던 다마서스1세<Damasus. I>가 이러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하여 당시의 유명한 성경학자였던 유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Eusebius Hieronvmus-A.D.345-419 현재는 제롬-Jerome으로 알려져 있다>에게 표준적인 라틴어 번역본을 만들도록 위촉하였다. 제롬이 번역한 라틴어 번역본은 라틴 불가타<Latin Vulgate>역이라고 명칭 되었는데 영어로는 벌 게이트 번역본이라고 부르며<Vulg> 표시한다.
라틴어 역본은 라틴어 고대역본과 라틴어 불가타 역본으로 구별되어지는데 제롬이 번역한 것을 라틴어 불가타 번역본이라고 하고 그 이전에 번역된 것을 라틴어 고대역본이라고 한다.

(2) 중세의 성경번역.

① 로마 카토릭의 성경번역 금지.

중세시대란 그레고리 1세<Gregory I>가 교황으로 즉위한 주후 590년부터 기독교 개혁이 시작되었던 <1517년>까지의 약 1천년간을 말한다. 로마 카토릭 교회는 이미 중세시대 이전부터 성경의 일반화를 금지하였다. 저들은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벧후1:20>을 오해하여 <무식한 일반인들이 성경을 읽게 되면 하나님의 심오한 진리를 함부로 해석하거나 오해하여 비 진리에 빠지게 될 것이며 뿐만 아니라 성경의 권위와 교회의 권위가 무너지게 될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림으로서 일반성도의 성경읽기와 지참을 금지하였고, 성경은 오직 사제들만의 전유물이 되게 하였다. 때문에 로마 카토릭은 성경이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는 것을 절대 금지하여 오직 라틴어 성경만을 고집하였으며 사제들만이 그것을 소지하거나 읽도록 하였다.

② 개혁주의자들의 성경 번역.

개혁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땅 끝까지 보급되고 전파되어 천하 만민 누구에게나 제한 없이 읽혀져야 하는 것은 논의나 설명이 필요 없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것을 금지하는 로마 카토릭의 정책은 정죄 받아 마땅한 <대죄>라고 생각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각 나라 언어로 번역하여 보급하는 것이 자신들의 사명이라고 확신하였다. 그중에 특별히 기억해야할 사람이 바로 영국의 위클리프<Wyclif>이다. 그는 1382년에 최초로 영어성경을 번역하여 출간하였다. 그러나 그의 영어 번역 성경은 로마 카토릭에 의해 <이단의 세력(종교 개혁자들)을 유도한 저주받은 죄의 연료>로 정죄 받아 1415년에 이르러 거의 대부분이 몰수되고 소각 당하였으며, 1428년에는 그의 시체<1384년 사망>까지 다시 꺼내어져 불태워졌다. 아울러 로마 카토릭은 <모국어로 성경을 읽는 자는 땅과 생명과 재산을 영원히 몰수한다.>고 선포하였다. 그러나 로마 카토릭의 강압조치에도 불구하고 성경 번역의 불길은 오히려 거세게 타올랐다. 위클리프가 사망한지 100년 후에 태어난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성경번역을 감행하였다. 그는 <평신도들이 성경을 그들의 모국어로 볼 수 있게 하지 않고서는 그들을 진리 가운데 세울 수 없다.>고 천명하면서 <유식한 자>를 자처하는 로마 카토릭의 사제들을 향하여 <만약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살려 주신다면 몇 해 지나지 않아서 나는 쟁기를 끄는 소년이 당신들보다도 성경의 진리에 대해 더 많이 알도록 만들겠다.>고 장담하였다.
틴데일의 번역본 성경은 평신도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얻었으며 순식간에 일반 대중사회에 퍼져 나갔다. 평신도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토론을 통하여 교회의 가르침보다도 더욱 깊은 성경적 지식을 얻게 되었고 따라서 사제들의 성경해석과 가르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로마교회는 지금까지 강압적으로 미러부쳤던 교회와 사제단의 비 진리적 권위들이 속속, 들어남에 따라 위기를 느끼게 되자 1543년에 이르러 <노동계급이 성경을 읽는 것은 전혀 허락되지 않으며 이를 어기는 자는 투옥한다.>는 방침을 다시 선포하였다. 틴데일 번역본 성경을 비롯한 모든 번역본 성경들이 압수되어 불태워졌고 영국에서만도 이 무렵에 300여명의 종교개혁자들과 성경 번역자들이 순교를 당했다. 틴데일도 1536년 10월에 교수형을 당한 뒤 다시 화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로마 카토릭의 만행은 진리를 사수하기 위한 정의구현의 역사적 위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리려는 사단의 눈물겨운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로마 카토릭의 악행에 하나님의 섭리가 정지될 수는 없었다. 수많은 진리자들의 순교에도 불구하고 성경번역의 불길은 날로 날로 더욱 거세게 타올랐으며 도처에서 자국어 성경 번역본이 출간되어지게 되었다. 성경 번역사는 곧 종교개혁사와 그 맥<脈>을 같이 하였다. 성경번역은 종교개혁에 불길을 당겼고 종교개혁을 이끌어 나갔으며 드디어 종교개혁이 결실을 맺게 되었을 때 그 결과로 인하여 자유롭게 성경번역을 할 수 있는 특혜를 받았던 것이다.

3. 성경의 권위.

1) 성경의 신적 권위.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 일체에 대한 계시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전지전능하시고 완전무결하신 하나님의 신적 작정에 의하여 수립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진행되어진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법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절대적 권위를 행사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법인 성경을 다만 아멘으로 믿고 받아 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피조들은 성경을 이해할 수 없거나 또는 자신의 뜻과 다르다하여 성경에 어떤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만하거나 거부하는 등등의 불경스러운 행위를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행위를 다음과 같이 불허하셨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 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

2) 성경의 필요성.

성경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 사이의 <계약법전>이고 <교통통로>이다. 그리고 성경은 또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영원한 역사>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다. 하나님의 종들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받으며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지침을 또한 하달 받는다. 성경은 하나의 구절로 그들에게 주어지지만 그들은 그 한 구절 속에서 다양한 하나님의 음성과 하나님의 계약과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의 지침들을 듣고 받는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의 구절을 통하여 각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다양한 약속들을 받으며,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의 구절을 통하여 각자에게 부여되는 다양한 사명과 다양한 은사들을 확인하며 자신들에 전개해 나가야 할 사명의 방법론을 또한 깨닫고 배우게 되는 것이다. 성경의 절대적 필요성은 또 다른 차원에서도 절대적으로 요구되어진다.
하나님의 기독교는 하나님의 절대적 완전성으로 인하여 모든 면에서의 절대적 완전성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종교가 갖추어야 할 필연적인 요소들을 완벽하게 갖추어, 모든 종교들의 권위위에 좌정하여야하며 언제나 출현하게 되는 사이비 이단들의 비 진리를 꾸짖고 퇴치해야할 현재적인 근거자료를 존재시켜야할 필연적, 필요성을 갖는 것이다.

3) 성경의 명료성.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난해성을 주장하고 있다. 저들은 성경의 초자연적인 부분들을 난해한 것으로 구분하면서 그것들에 대한 특별하고 독특한 해석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떠한 구절에서도 난해함이 없다. 성경이 난해한 것으로 느껴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1)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총체적인 집합계시 이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 <특히 하나님의 종>들에게 하나도 남김없이 상세하게 열려지고 알려지고 이해되게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성경의 여러 부분들이 완전하게 열려지지 않고 묵시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아직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종들에게 그 부분들을 상세하고도 구체적으로 계시하실 것이다.

(2) 우리의 부족함 때문이다.

성경이 난해한 것은 실제로 성경이 난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부족 때문에 성경이 난해한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보고 깨달을 수 있는 신학적 경지를 갖추어야 한다. 성경을 바로 해석할 수 있는 신학적 능력을 갖추기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는 가운데 기독교 역사를 깊이 연구하여야하며 학자들의 연구논문들을 포괄적으로 섭렵하는 가운데 진리와 비 진리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3) 성경을 잘못 해석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총체적 집합계시이다. 따라서 성경은 언제나 어떤 경우에나 하나님의 섭리적 차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적 차원에서 해석하지 않으면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대로 해석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까지 성경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적 차원에서 해석되지 아니하고 인간에 대한 구속사적인 차원에서 해석되어진 결과들이 증거 한다. 오늘날 많은 학자 <특히 자유주의 학자>들에 의하여 성경이 인간의 구속사적 차원에서 해석되어 왔다. 때문에 기독교 신학은 어느 사이엔가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신학>에서 빗나가 <인간을 위한 인간의 학문>이 되어 버렸다. <하나님을 위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하나님>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늘날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되어졌고 또한 존재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사실에만 집착한다. 때문에 <하나님을 위한 자신>들의 존재를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들을 위한 하나님>만을 의식하는 것이다. 성경의 이와 같은 오류적 해석으로 인하여 성경은 도처에서 난해한 것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적 차원에서 해석하면 지극히 당연하고 간단한 것이 인간적 차원에서 해석하려니까 도무지 이상하고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고 그리하여도 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4) 성경의 충족성.

하나님의 말씀<성경>의 완전함과 충분함은 성경 스스로의 선언에서도 증거 되지만 성경의 내용을 통하여 입증 되어진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섭리일체가 전혀 빈틈없이, 전혀 하자 없이, 완전무결하게 그리고 참으로 충분하게 수록되어 있다. 우주의 출발에서 현재까지 그리고 미래에서 종결까지,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충분하게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조직신학을 공부한 사람은 이점에 대하여 전혀 이의가 없다.> 성경의 충족성을 느끼지 못하고 다른 어떤 것에서 보충하려고 하는 자들은 성경을 보는 방법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틀림없이 성경을 하나님의 주권적 입장에서 보지 않고 자신의 주관적 입장에서 보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입각하여 성경을 보면 성경은 참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완전하고 충분하다. 그러나 성경을 인간의 주관적 입장에서 보면 성경은 너무나도 부족하고 불완전하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존하는 신앙적 삶을 살고 있다. 특히 <기도하는 사람>들 중에 이러한 신앙형태가 많은데 그것은 기독교의 신앙원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신앙형태이다. 기독교의 신앙원리는 기독교의 신학을 기초로 하여 형성되어지는 것이 원리이고 원칙이며 기본이고 기초이다. 그리고 그것<기독교의 신학>은 곧 하나님의 말씀의 토대위에 세워진다. 따라서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의 토대위에 세워진 신학으로부터 출발 되어지며 그 신학적 토대위에 신앙이 세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원칙은 하나님의 말씀<성경>의 완전성과 충족성에 대한 보증적 선포이기도 하다. 또한 성령의 역사하심은 독단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말씀<성경>과 병행하여, 혹은 말씀 안에서 진행되어진다. 이러한 원리원칙을 무시하고 말씀보다는 <기도, 또는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존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헤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이거나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섭리 자체를 무시하고 거부하는 행악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자들과 함께 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섭리를 거부하고 무시하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기도와 성령의 초자연적인 계시>만을 선호하는 자들과 함께 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세운 법을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앞장서서 무시하고 거부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당당하고 단호하게 선포하신 성경의 완전성과 충족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4. 성경의 특성.

1) 성경은 하나님에 의하여 기록되어졌다.

종교의 경전은 인간에 의하여 세워질 수 없으며 오직 그 종교의 신에 의하여 세워져야한다. 인간은 신이 알려주지 않는 한 신에 대하여 무지할 수밖에 없으며 신이 목적하고 의도하는 바를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전은 오직 그 종교자체의 신적존재에 의하여 세워져야 한다는 절대적 불문율<不問律>을 스스로 가지고 있게 되며 또한 경전은 신의<신적지식과 신적지혜와 신적안목과 신적완전성>을 토대로 하여 수립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수립한 경전은 인간이 수립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신의 말이 아니라 인간의 말이며 신의 법이 아니라 인간의 법이며 신적계시가 아니라 인간적 계시이며 신의 섭리에 대한 총체적 집합이 아니라 인간의 소망과 목적에 대한 총체적 집합이다. 따라서 이것은 신적목적이나 신적속성들이 전혀 포함되지 않았음이 분명하고 다만 인간적 <경험, 감정, 소망, 목적> 등등으로 구성되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한 경전은 결국 종교적 경전일수 없는 것으로서 다만 인간들의 철학적인 사상이 될 뿐이다.

성경은 이와 같은 종교적 경전으로서의 필연적 특성을 완전히 갖추었다. 성경은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에 의하여 기록되었으나 성경의 원 저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으나 그들의 전반적인 부분 <지혜 ,지식, 특성,>에 간섭하시고 조명하시어 성경을 기록할 수 있게 하시고 또한 기록하게 하시었다. 그리하여 성경은 인간이 기록했으나 인간이 성경의 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경의 저자가 되시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며 인간의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이며 인간적 계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이며 인간적 <경험, 감정, 소망, 목적> 등등에 대한 철학적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적작정과 하나님의 신적속성에 의한, 하나님 섭리의 총체적 집합이 되는 것이다.

2) 성경은 독립적이다.

종교의 경전은 지극히 독립적이어야 한다. 종교적 경전은 결코 인간에 의하여 세워질 수 없으며 또한 타종교의 경전을 인용한다거나 적용할 수 없고, 오직 그 종교가 섬기는 신적존재의 직관<直觀>에 의하여 완전히 독립적으로 수립되어져야 하는 절대적 필연성을 갖는다. 종교의 경전은 신적 경전이기 때문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대적 최고성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만약에 타종교의 경전에 비하여 열악하다면 그 열악성 자체로 인하여 이미 종교적 경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신적존재란 최고, 최대, 최상의 완전성을 필연적으로 요구받게 되며 따라서 경전 역시 최고, 최대, 최상의 완전성을 필연적으로 요구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종교의 경전을 인용한다거나 적용하는 것은 이미 자신의 최고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결과를 자증하는 것으로 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종교학자들은 인류 역사의 수많은 종교들 중에 기독교, 힌두교, 불교, 유교, 회교를 가장 차원 높은 5대 종교로 구분한다. 그러나 기독교 이외의 다른 종교는 차원이 지극히 열악하다. 때문에 기독교는 그 종교들과 같은 위치에 세워지는 것을 거부한다. 힌두교의 경전인 <베다경>은 종교 경전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요소들을 전혀 갖추지 못하였다. 불교의 경전인 <불경>은 누구나 기록할 수 있기 때문에 종파마다 다른 경전을 만들어 사용하므로 불교 교주인 석가모니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것들을 수없이 수록하였거나 또는 석가모니의 교훈을 서로 다르게 기록하여 통일성이 없다. 유교의 경전<사서삼경-사서육경>은 종교적 경전이 아니라 하나의 사상집이다. 회교의 경전인 <코란>은 기독교의 성경을 도용<盜用>하여 각색, 편찬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독립적인 계시로서 인간의 어떤 요소나 또는 타종교의 어떤 요소들을 인용하거나 적용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참고조차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나 이외에 다른 신은 없다.>고 선포하심으로서 하나님 이외의 어떤 신적존재를 단호하게 거부하신다. <일단의 고고학자들 중에는 구약 <특히 모세의 율법서>가 하무라비 법전을 모방하고 인용하였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을 능가하는 어떤 신적존재란 있을 수도 없으며 실제로 있지도 않다. 따라서 성경을 능가하는 종교적 경전은 있을 수도 없으며 실제로 있지도 않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성경이 언제나 인류역사상 최고의 경전으로 인정된다는 사실에서도 증명되어진다.> 때문에 일반종교의 어떤 것들을 인용한다거나 적용할 만한 것들도 없지만, 또한 이용하거나 적용할 만한 이유도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법, 계시, 섭리> 등등의 총체적 집합으로서 더 이상 추가하거나 삭제할 것이 없는 오직 유일한 최고, 최대, 최상의 완전무결한 독립적 경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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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 The Law of Hammurabi>

고대 바빌로니아의 바벨론 제1왕조 제6대왕, 하무라비<주전1729/28-1686재위>에 의해 발포된 것으로서 현존하는 고대 오리엔트 최고의 성문법전<成文法典>이다. 당대 최고의 성문법으로 알려져 있고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를 아는데 중요한 것으로서 석주<石柱>에 새겨져 있다. A.D.1902년에 페르샤의 고도<古都>인 <수사>에서 발견되었고 현재 <루브루>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이 석비는 원추형<圓錐形>으로서 높이 2.25m. 상부의 주위 1.65m, 하부의 주위 1.90m인데 상부에 태양신으로서의 정의의 신<神> 샤마쉬<Shamash>가 하무라비에게 법을 주고 있는 정경<情景>이 있고 그 아래에 표리<表裏> 약 3000행의 설형문자의 법전이 새겨져 있다. 하무라비 법전은 282조로 되어있고 당시의 <사회, 경제, 생활>의 전체를 규정하고 있다. 모세의 율법과 유사한 곳이 많아 모세의 율법이 하무라비 법전을 모방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모세의 율법은 종교적, 윤리적인 것으로서 하무라비 법전의 수준을 크게 능가한다. <참고문헌-G.R.Driver & J.C. Miles: The Babylonian Laws, vol. I. 1952>

3) 성경은 하나님의 신적목적이 선포되어져 있다.

경전에는 신이 목적하고 추구하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분명하게 증거 되어져야 한다. 경전에 신의 목적이 분명하게 증거 되어 않으면 그것은 신적 경전이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의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 것은 신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며, 또한 그것은 신을 믿고 섬기는 자들에 대한 기만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경전에 신의 목적이 분명하게 증거 되어 있지 않으면 신을 섬기는 자들은 신의 목적하는 바를 알지 못함으로서 신을 바르게 섬길 수 없으며 따라서 오해와 혼돈 속에서 신이 목적하는 바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따라서 경전에는 신에 대한 다음과 같은 것들이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한다.

(1) 경전에는 신에 대한 모든 것이 들어 있어야 한다.

경전에는 신의 근원, 신의 속성, 신을 섬기는 방법, 신의 섭리와 그 섭리에 순종하는 방법에 관한 일체가 완전하게 들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신을 섬기는 자들이 신의 존재와 속성에 대하여 온전히 알아 신을 바로 섬기게 하여야 하고 신의 섭리를 바로 알아 신이 추구하고 목적하는 바를 온전히 알아 신의 뜻에 부합하는 삶을 살게 해야 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자존원리>에 의한 자존하심과 <절대성,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 등등, 하나님의 신적속성이 완전하게 증거 되어지고 있으며 하나님에 의하여 수립되어진,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과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제반 규정들이 하나님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선포되어져 있다. 때문에 기독교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사명적, 신앙적,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2) 경전에는 신과 섬기는 자와의 역사적인 관계가
증거 되어 있어야 한다.

경전에는 신과 섬기는 자의 신분적 상호 관계와 역사적인 관계가 분명하게 정립되어져 있어야 한다. 신과 섬기는 자와의 관계는 창조주와 피조의 관계를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신과 섬기는 자와의 관계가 창조주와 피조의 관계가 아니라면 신은 다른 신의 피조물을 착취한 것이 되므로 신적속성에 어긋나는 것이 된다. 신을 섬기는 자들은 경전을 통하여 그러한 관계를 확인하여야 하며 그러한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신을 섬길 이유가 없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신분적 상호 관계와 역사적인 관계가 명시되어져 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창조주 와 피조의 관계로서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과 기뻐하심을 위하여 창조된 하나님의 피조이다. 성경은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과 인간의 역사를 구체적이면서도 적나라하게 증거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하는 하나님의 섭리 역사적 전개를 증거하고 있다.

(3) 경전에는 피조에 대한 모든 것이
증거 되어 있어야 한다.

경전에는 피조에 대한 모든 것, <피조의 근원,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것이 분명하게 증거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한 것이 증거 되어 있지 않다면 피조는 신을 믿을 수 없으며 따라서 신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길 수 없다. 특히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면 자신의 미래를 보장해 주지 않는 신을 믿고 섬길 수 없는 것이다.

성경에는 인간을 비롯한 우주만물의 시작과 현재와 미래에 대한 모든 것이 완전하게 증거 되어 있다. 성경에는 특히 하나님에 의하여 선택 되어진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위에 아름답게 보장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삶을 유감없이 살게 되는 것이다.

(4) 경전에는 피조간의 관계에 대한 제반 문제들이
정립되어져 있어야 한다.

인간은 신과의 관계 못지않게 인간과의 관계를 바르게 유지하여야 하며 또한 자연과의 관계도 바르게 유지하여야 한다. 신에게만 모든 초점을 맞추어 인간 <가족, 사회, 국가, 세계>과의 관계나 자연 <우주, 동, 식물, 조류, 물고기, 치산치수>과의 관계를 도외시하거나 함부로 홀대하게 되면 신의 섭리자체가 무시되어지고 거부되어짐으로서 모든 세계가 혼란에 빠지게 되고 결국은 붕괴되어지게 된다. 법과 질서, 윤리도덕, 등등이 무너짐으로서 무질서, 성적문란, 약육강식, 등등의 사태가 발생하여 무법천지가 되고 자연의 관리부족으로 인하여 각종 재해가 발생하여 결국은 모든 세계가 붕괴되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피조는 경전을 통하여 피조세계의 모든 문제를 배우고 익히며 피조세계가 신의 섭리 하에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며 공존해야할 책임과 의무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성경은 인류사회에 대한 제반규정과 질서를 선포하고 있으며 윤리적 도덕적 규범들을 또한 선포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시행함에 있어서 법률적인 차원보다는 <사랑>의 실천원리를 선포하고 있다. 최초의 인간에게 주어진 <번성, 충만, 정복, 통치, 관리>의 절대적 사명<창1:28>은 자연세계와 인류세계에 모두에게 적용되어지는 사명이며 그 사명의 구체적인 적용은 우주정복과 치산치수<治山治水>에 이르는 자연적인 것과 <정치, 경제, 과학, 종교, 예술, 문화> 등등은 물론이요 인간의 <정신세계>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힘<力>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랑>에 의한 것이라는 진리를 성경은 선포하고 있다.

4) 성경은 완전하다.

종교의 경전은 완전해야 한다. 경전은 신에 의하여 저작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절대적 완전성을 필연적으로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계속해서 어떤 것이 보강된다거나 또는 중간에 어떤 것이 삭제된다는 것은 경전의 완전성을 무효화하는 것으로서 경전으로서의 권위와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된다.

성경은 완전하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역사적 관계에 대하여, 인간이 알아야할 모든 것이 완전하게 수록되어 있으며 또한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완전하게 들어 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더 이상의 어떤 것을 추가한다거나 또는 제한하는 것을 엄중하게 금지하셨다.<계22:18-19>

5. 성경의 정경 정립.

1) 정경<正經>의 의미.

정경이라는 용어는 신약성경에 두 번 나온다. <고후10;12-16><갈6:16> 정경이라는 용어는 히브리어로는 <카네>라고 하며 헬라어로는 <카논-Kanon>으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본래 <막대기> 또는 <갈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서 석공<石工>이나 목수가 사용하는 자<尺>와 같은 도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겔40;3>이 용어를 <고후10:12-16>에서는 직분상의 한계<限界>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하였고 <갈6:16>에서는 성도들이 행하여야 할 규례의 표준으로 사용하였다. <카논>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것을 조절하고 확실하게 하는 의미로 사용되어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어떤 것의 표준이 되는 단어로 결정되었다. 초대교회는 신앙과 행위의 규칙으로 받아들여진 교리를 지칭할 때에 이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주후 266년 안디옥 종교회의는 사모사타의 바울의 교리<The Doctrine of Paul of Samosata>를 <교회교리-Kanon-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정죄할 때에 이 용어를 사용하였던 것이다. 주후 325년에 열렸던 니케아 종교회의에서는 <정통주의 교리>를 <카논>이라고 하였으며 4세기 중반에 이르러서 모든 종교회의에서 결정된 규범들을 <카논>이라고 하였다. 성경에 <카논>이라는 용어를 적용시킨 최초의 사람은 교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350>였으며 제59차 라오디게아 종교회의<A.D.363>에서는 카논을 <표준적 성경>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이 용어는 특히 교회가 외경과 위경을 성경으로부터 제외하게 될 때에 성경을 지칭하는 용어<정경>로 사용하였다.

2) 정경 결정의 역사

(1) 구약정경의 정립

현재 사용되어지고 있는 39권의 구약성경이 정전화<正典化>된 것은 1천년 가까운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구약성경의 정경형성은 역사적, 또는 내용적 차원에서 3개로 구분된다.

① 제1차 정경. < 율법서-토라>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등의 율법서는 구약성경 중에 가장 먼저 정경화된 것으로서 기원전 400년경에 정경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바벨론 포로시기에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 생활하게 된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서가 삶의 기본적 규칙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되었다. 율법서중에서도 신명기는 이미 기원전 621년에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통하여 경전화 되었다.

② 제2차 정경. <선지서 -예언서- 네비임>

전기예언서 <여호수아서>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와 후기예언서<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스겔서> <12소선지서>들은 기원전 200여년 경을 전후하여 결집되어 정전으로서 공인되었다.

③ 제3차 정경 <제서諸書-케스빔>

<시편> <잠언> <욥기> <아가> <룻기> <예레미야애가> <전도서> <에스더서> <다니엘서> <에스라> <느혜미야> <역대상,하> 등등은 기원전 300년경에서부터 결집되기 시작했으나 기원전 150년에 이르러서도 일부만 정경으로 받아들여졌고 기원전 90년에 구약정경이 총체적으로 결집되었던 얌니야 회의에서 경전으로 채택되었다.

① 얌니야 회의

기원전 90년경에 텔아비브의 남쪽 20km지점에 있는 성읍 얌니야에서 구약정경 정립을 위한 <랍비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현재의 구약성경 39권이 정경으로 확정되었고 그것이 현재까지 그대로 적용되어지고 있다.

(2) 정경의 정립.

신약성경은 현재의 27권이 정경으로 정립되었는데 신약성경의 정립에는 우여곡절<迂餘曲折>이 많았다. 학자들 중에는 4복음서가 모두 정경으로 채택하는 것에 반대하는 경우도 있었고 바울서신들을 정경으로 채택하는 것에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은 종교회의를 통하여 현재의 27권이 정경으로 인정되었는데 그 종교회의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히포회의<Councils of Hippo>

A.D. 393년에 북아프리카의 히포에서 종교회의를 열어 신약의 정경을 확립하였다.

② 카르타고 회의<Councils of Carthago>

A.D.397년에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종교회의를 열어 신약의 정경확립을 재확인하였다.

③ 퀴니섹스틴 회의<Quinisext Synod/Trunan Synod>

A.D. 692년에 동방의 주교들이 제5차 및 제6차 종교회의의 결정들을 재확인하기 위해 교회 규율법령을 통과시킨 <콘스탄티노플회의>에서 동서양교회가 현재의 신약 27권을 다함께 쓰기로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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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카토릭교회는 현재의 정경 외에 <토비트> <유딧> <에스더서추기> <솔로몬지혜서> <집회서> <벤시락의 집회서> <바룩서> <세 청년의 노래> <수산나> <벨과 뱀> <마카비1,2서>등을 정경으로 인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3) 정경결정의 원리.

현재의 성경들이 정경으로 확정되는 과정에서 그것들이 정경으로 인정받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원리가 적용되었다.

(1) 구약정경의 결정원리.

① 성서의 증거.

구약성경의 정경결정에 있어서 가장 우선하는 원리는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구약성경의 기록들은 시내산 언약이후로 계속하여 발전하고 있으며 이 기록들은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야할 의무를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역사적 관계에서 그 모든 것들이 성경을 통하여 역사적으로, 실제적으로 보증되어지고 증거 되어질 수 있느냐?하는 것이었다. 구약성경의 36권들은 이러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관계를 역사적으로 실제적으로 분명하게 보증해 주고 있다.

② 외부 문헌과의 비교.

구약성경의 정경성은 그것들이 근동일대의 역사에 의해서 보증 받을 수 있느냐?하는 것 이었다.주전 15-14세기의 힛타이트 문서들을 살펴보면 고대근동의 종주권<從主權>형태를 볼수 있는데 이것은 구약의 계약문서들에 대한 구조적인 형태와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의 각종 사건들에 대한 것들이 근동일대의 역사문서들을 통하여 보증되어지고 있다.

③ 성경의 구조적 단서.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할 때에 언제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내려진 말씀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은 각각의 구약성경들을 통하여 전해질 때에 거의 같은 구조적 문맥을 형성하고 있다. 선지자들은 성경을 기록할 때에 시대와 장소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같은 구조적 문맥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약성경의 단일한 구조적 문맥은 구약성경을 정경으로 결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원리가 되었다.

④ 그리스도의 입증.

그리스도께서는 자신과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함에 있어서 언제나 구약성경을 인용하였고 또한 구약성경의 신적권위에 대하여 언급하셨다.

<마4:4,7,10;5:17,18;11;10;21:13,42;26:31> <막12:10,11,24> <눅24:25,44> <요10:35>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구약성경 인정과 인용은 구약성경을 정경으로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2) 신약정경의 결정원리.

① 그리스도의 말씀.

신약성경을 정경으로 결정함에 있어서 그것이 과연 그리스도의 말씀이냐? 하는 것은 당연한 요인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그리스도의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심에 있어서 구약성경을 인용하였으나 구약성경의 전통과 권위에 의존하는 대신 하나님과 자신의 말이 곧 하나임을 천명하였다.
<....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마5:21,22>라는 식으로 <권세 있는 자-막1;22>로서 가르치셨던 것이다.
복음 전파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파하였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것을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였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정경결정의 중요한 원리가 되었다. 어떠한 권위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권위보다 우선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② 사도적 권위.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자들로 선발되어진<진리의 보수자> <진리의 보존자> <진리의 보전자>들이다. 그들의 전하는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으며 그들의 기록 문서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따라서 신약 성경의 정경 결정은 그것이 곧 <사도들의 말씀>이냐? 하는 것과 그것이 곧 <사도들의 기록>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③ 내용의 보편성.

신약성경의 정경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또 하나의 원리는 그것의 내용이 과연 보편타당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성경의 보편성<Universality>이란 그것이 기독교 전체에 보편적으로 인정 되어지는가? 하는 것인데 그것은 주로 교회의 통일된 <신조>나 <교리>에 부합하는가?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록문서의 내용이 과장되어진 것이나 전설적 신화적인 것, 그리고 비상식적인 것 등등은 정경에서 제외되어졌으며 교회회의들을 통하여 확립되어진 신조나 교리에 어긋나는 것도 정경에서 제외되었다.

④ 성경의 영감성.

성경이 정경으로 정립되어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또한 최종적인 원리가 되는 것은 그것이 과연 <성령하나님>의 영감<조명>을 받았느냐? 하는 것이다. 기록문서의 내용이 아무리 훌륭하고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성령 하나님의 조명을 받은 것이 아니라면 결코 정경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6. 성경의 해석.

1) 성경해석의 역사.

(1) 유대인들의 성경해석.

구약시대에 성경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일은 서기관들과 랍비들의 임무였다. 서기관들과 랍비들은 선민사상에 의하여 성경을 해석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입장에서 성경을 해석하지 않고 오직 이스라엘 민족의 입장에 맞추어 해석하였다.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국가적 민족적 비극을 자초하였다. 저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섭리적 차원에서 해석했더라면 다윗과 솔로몬 같은 자들을 성군으로 받들어 섬기지 않았을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구약 시대 마지막 교법사였던 힐렐<Hillel> 가말리엘<Gamaliel> 샴마이<Shammai> 등등의 성경 해석을 통하여 입증된다. 힐렐은 탈무드 체계를 창시한 사람으로서 가말리엘의 스승이며 조부<祖父>이다. 그는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언제나 이스라엘과 연관된 하나님을 전제하였고, 따라서 절대적 왕권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는 메시야를 대망하였다. 힐렐의 신학 사조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나타난다. 사도 바울은 힐렐학파의 후계자이며 손자인 가말리엘에게서 신학을 전수 받았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박해한 것은 그들의 주장이 이스라엘적인 성경 해석과 완전히 반대였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이스라엘적 성경 해석을 고집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기독교를 거부한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성경해석.

예수 그리스도의 성경 해석은 서기관과 랍비들의 성경 해석과는 정반대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섭리적 차원에서 성경을 해석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 섭리의 핵심임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제한하는 유대인들을 크게 책망하였고 그로 인하여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오하고 거부하였던 것이다.

(3) 사도들의 성경해석.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교육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신학적 경륜이 없었다. 때문에 저들의 성경 해석은 랍비들의 해석과 같은 차원에 속했다. 신약 성경의 기자들 중에 공식적인 랍비 교육을 받은 사람은 사도 바울이다. 그러나 바울을 제외한 다른 사도들도 성경 해석에 있어서 랍비들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하였다. 그들의 종교생활 자체가 랍비들의 영향 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신약 성경에는 랍비주의적인 해석 방법들이 등장한다<롬9:25> <갈3:16> <히2:1>.

(4) 교부 시대의 성경해석.

초대교회 시대 교부들의 성경 해석은 유대적이거나 사도적인 것이 아니라 헬라 철학적이었다. 특히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 중심의 동방 교부들은 성경을 헬라철학으로 해석함으로서 기독교 신학을 크게 오류 시켰다. 반면에 칼타고와 힙포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 교부들은 교회의 전통과 권위에 입각하여 성경을 해석함으로서 교권주의적 기독교 신학을 발전시켰다.

(5) 중세기독교의 성경해석.

중세시대<어거스틴에서 종교개혁까지> 동안의 성경 연구는 거의 수도원에게 맡겨졌다. 그러나 당시의 수도원 관계자들은 대체적으로 학력이 짧았으며, 신학보다는 신앙 중심이었고 교회 중심이었으며 교권주의 적이었다. 때문에 그들의 성경 해석으로 인하여 로마 카토릭의 교권주의는 크게 확장되었던 반면에 성경의 진리는 점점 오류되고 왜곡되었다. 교회는 완전히 교권 주의적 독재가 성행하는 가운데 성경의 메시지는 실종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6) 스콜라 신학자들의 성경해석.

A.D. 1천년 경에 이르러 후대의 르네상스<Renaissance>를 예고하는 지적 각성 운동이 종교계에 일어났다. 그러나 이 각성 운동은 전통적인 교권주의의 한계를 초월하지는 못했고 다만 헬라 철학의 원리에 의존한 영역적<演繹的>인 종교 철학을 산출하였는바 그것이 바로 저 유명한 스콜라 신학이다. 이 운동은 사실상 교부들의 가르침에 부합되는 전통과 해석을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스콜라 신학은 거의 전적으로 우의적 해석 방법을 사용하였지만 더 나아가서 헬라철학의 변증법을 적용함으로서 성경의 진리를 더욱 왜곡시켰다. 스콜라 신학을 주도한 사람은 캔더베리 대주교였던 안셀무스<Anselmus>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였다.

(7) 종교 개혁자들의 성경해석.

종교 개혁자들은 로마 카토릭의 교권주의와 전통주의를 철저하게 거부하고 비판하였다. 그들은 기독교의 중심을 성경에 두었고 성경의 해석을 교회의 전통에 두지 아니하고 성경 자체에 두었다. 종교 개혁자들 중에 대표적인 성경 해석학자는 루터와 칼빈이었다.

① 마틴 루터<Martin Luther>

루터는 로마교회의 전통주의를 통렬하게 반박 했음에도 불구하고 교부시대의 영향권아래 있었으며 특히 어거스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루터는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문자적 의미를 중요시 했으며 문맥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연구하여 성경을 좀더 폭넓게 해석하려는 노력을 하였으나 크게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② 죤 칼빈<John Calvin>

칼빈은 성경을 인본주의적 차원에서 해석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적용하여 해석한 신학자였다. 그는 특히 역사적인 면을 중요하게 다루었는데 그것은 그의 저작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역사적 자료의 부족 때문에 보다 훌륭한 성경 해석을 하고자하는 열망에 버금가는 성경 주석을 쓰지는 못했으나 본문의 역사적 관련성을 언제나 강조하였다. 칼빈의 성경 해석에 의하여 <기독교의 본질><기독교의 사명><기독교적 국가관> <기독교적 사회관> 등등의 신학 사상들이 보다 성경적으로 수립되었다. 그러나 칼빈은 계시의 점진성과 구약 성경에서 신약 성경으로 계승되는 하나님의 섭리적 메시지를 인정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기독교 신학 역사상 성경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가장 많이 찾아 낸 신학자로 인정받았으면서도 하나님의 우주적인 섭리를 분명하게 규명하지는 못했다.

(8) 현대의 성경해석.

현대에 이르기까지 개혁주의 교회는 개혁주의 신학자들<특히 칼빈>이 수립한 하나님 주권주의적 성경 해석을 전통적으로 지켜왔다. 그러나 현대 기독교는 성경을 오직 구속사적 차원에서만 해석함으로서 하나님의 우주적인 섭리 계시인 성경의 메시지를 지하실에 매장시켰다. 그리하여 현대 기독교는 칼빈에 의하여 수립된 <기독교의 본질> <기독교의 사명> <기독교적 국가관> <기독교적 사회관> 등등의 신학사상을 더욱 발전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크게 후퇴시켰다.

2) 성경해석의 방법.

기독교 역사에는 앞에서 고찰한 것 이상의 다양한 성경 해석의 역사들이 있었다. 기독교 역사의 성경 해석들은 우리에게 역사적인 지식과 상식을 주는 것이며 또한 성경 해석의 방법론을 제시해 준다. 그러나 우리가 논증하고자하는 것은 성경 해석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것보다는 성경 해석의 적절한 방법론이다. 따라서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증하지 않기로 하고 이제부터는 성경 해석의 방법론을 논증하기로 한다.

(1) 문법적 해석법.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으로 주어졌을 때 그것은 인간의 언어로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성경을 해석하고자 할 때에 당연히 인간의 언어로 주어진 원리에 의하여 문법적인 해석이 필요하게 된다. 성경을 문법적으로 해석할 때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그 문장이 어떤 것을 설명하고 있느냐? 하는 것을 고찰하여야 한다. 성경을 해석할 때에 성경이 어떤 문법으로 기록되어 있는가를 고찰하여 그 문법이 의미하는 바를 살리어 해석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때에 있어서 가장 유의할 것은 문장을 형성하는 품사<品詞>인데 그 품사의 사용법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따라서 성경을 문법적으로 해석할 때에 그 점에 유의해야 한다.따라서우리는성경을기록한히브리문학,헬라문학을특별히연구해야한다. 성경은 특히 하나님의 섭리를 계시하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문법적 특성이 있다.

① 교리적....신학적 정립을 요구하는 교리적인 내용
② 신앙적....신앙적 정립을 요구하는 내용
③ 교육적....윤리적, 도덕적, 교훈적 내용
④ 소명적....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시는 것과 하나님의 종들에게 소명의식을 일깨워 주는 내용
⑤ 사명적....하나님의 종 또는 교회에 주어지는 사명적 내용
⑥ 명령적....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
⑦ 비유적....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비교적인 예화를 사용하는 방법
⑧ 풍유적....하나님의 뜻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우회적으로 설명하는 방법
⑨ 은유적....하나님의 뜻을 지정된 자들에게만 알리기 위하여 은밀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
⑩ 묵시적....하나님의 섭리를 공개하지 않기 위하여 일정기간 동안 감추어 두는 방법
⑪ 강조적....뜻을 더욱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문법
⑫ 환유적....정신적인 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문법
⑬ 제유적....물질적인 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문법
⑭ 상징적....어떤 의미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는 문법
⑮ 예표적....미래의 어떤 것을 의미, 또는 암시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방법
* 점진적....일시에 확정하지 않고 단계적으로 진행시키는 방법
* 역사적....실제적인 사실성을 증명하는 방법
* 전통적....실제적으로 계승 되어지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

(2) 역사적 해석법.

성경이 하나님의 섭리적 계시라는 것은 이미 전제되어진 것으로서 의심의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해석자는 성경의 역사성을 면밀하게 고찰해야 한다. 그 이유는 성경의 역사성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성경의 역사성을 상세하게 고찰함으로서 성경을 통하여 주어지는 하나님의 참 메시지를 바로 알기 위함이다. 따라서 해석자는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의 지리적, 국가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교육적, 문화적, 예술적, 종교적, 풍습적, 전통적, 등등의 역사성들을 고찰해야 한다.

(3) 신학적 해석법.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 중에 절대적으로 배제될 수 없는 것이 신학적 방법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대한 총체적인 집합이므로 성경 해석자는 성경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주권적 섭리를 교리<조직신학>적으로 정립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앞장에서 논증한 성경해석 방법들이 무시되어져서는 안 되지만, 그 방법들은 사실상 참고 되어져야하는 반면에 신학적 해석방법은 절대적 필연성을 갖는다. 기독교가 일반 종교와는 당연히 구분되는 또 다른 차원의 종교적 특별성을 갖는 것은 기독교는 일반 종교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완벽한 절대적 교리체계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완벽하고 절대적인 교리 체계는 오직 성경에서 인출되어진 것이다.

3) 성경해석의 원리.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론은 독자적, 독립성을 가질 수 없다. 성경의 해석이 만약에 독자적, 독립적 특성을 갖게 된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와는 전혀 무관한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성경이 문자적, 또는 문법적인 차원을 참고로 하여 교리적, 조직 신학체계를 이루는 해석을 통하여 매우 훌륭하게 정립되어졌다 할지라도 그것에 하나님의 목적하는바가 제외되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성경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는 이와 같은 원칙을 무시하여 왔다.

거의 대부분의 성경 해석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외면하고 오직 <하나님의 인간구원>에 입각한 성경 해석만을 고집해온 것이다. 물론 때때로 지혜로운 자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언급했으나 그들 역시 하나님의 섭리를 <하나님을 위한 섭리>로 인식하지 않고 <인간을 위한 섭리>로 격하시켜 버렸다. 때문에 수많은 성경 주석들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인류구원>과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나라>로 결론지어져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은 오류를 바로 잡아야한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성경 해석의 원리를 제시한다.

(1) 하나님의 주권.

우주 만물의 역사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주권 하에 존재한다. 현존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떠나서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성경은 언제나 이와 같은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고 있으며 인류 역사를 포함한 우주적인 역사가 오직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다는 사실을 또한 선포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을 근거로 하는 해석일 때에 비로소 바른 해석이 된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일점일획의 하자라도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해석이다.

(2) 하나님의 속성.

성경 해석의 두 번째 원리는 하나님의 속성이 확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의 <자존성, 영원성, 불변성, 불멸성, 완전성, 절대성, 무한성, 무량성, 유일성, 거룩성, 공의, 자비, 사랑,> 등등의 절대적 속성들을 선포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속성이 제외되는 성경 해석은 절대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 하나님의 속성이 제외된 것은 하나님과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섭리.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오직 순수한 하나님의 역사이다. 성경이 아담으로 시작되는 인간의 역사를 말하고 있고 아브라함으로 시작되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하고 있으며 사도들로부터 출발하는 복음의 역사를 말하고 있으나 그러한 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에 사용되어지는 하나의 영역적 역사일 뿐이다. 성경은 결코 그들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아우르고 이끌어가면서 당신의 역사를 진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역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 성경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하는 인류 구원의 역사를 예표하고 상징하며 신약 성경이 온통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죄제를 중심으로 하는 인류 구원의 역사를 증거하고 선포하고 있지만 성경이 궁극적으로 선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영광과 기뻐하심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하여 당신의 섭리역사를 진행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기뻐하심이 곧 성경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목적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적 차원에서 해석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과 기뻐하심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섭리가 배제되어진, 그리하여 인간의 구속적 차원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적 차원에서 성경이 해석되어 진다면 그것은 기독교와 무관한 것이고 하나님과 무관한 것이다.

7. 한글성경.

1) 한글 성경의 기원.

한국<조선>에 기독교가 처음 전래 될 때에 여러 경로를 통하여 한국에 성경이 전래되었으나 그것은 모두 한문성경 이었으므로 일반인들에게는 어려움이 많았고 따라서 한글 성경의 번역이 필연적으로 요구되어지게 되었다. 초기 한글성경 번역은 한문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것인데 한글 성경 번역은 선교사들과 초기 기독교인들의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졌는바 그 대표적인 것이 <로스-Ross>역 성경과 <이수정>역 성경이다. 로스목사는 백홍준, 김진기, 서상륜등과 함께 1882년 봉천에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출판하였다. 한편 이수정은 홍문관 교리로서 농학<農學>연구를 위하여 일본에 갔다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쯔다>박사에 의하여 기독교인이 되었고 일본주재 미국 성서공회 총무였던 루미스<Henry Loomis>목사의 권고로 한글성경 번역을 착수하였다. 그는 1883년에 <현토한한신약성서-懸吐漢韓新約聖書>를 완역하였고 이어서 마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번역하였다.
1885년 초에 미국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 아펜셀러가 동경에서 이수정에게 한국말을 배운 후 그가 번역한 마가복음을 가지고 한국에 왔다. 선교사들이 한국 선교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면서 한글성경의 번역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언더우드, 아펜셀러, 스크랜튼이 1887년에 한국성서위원회를 조직하였고 1893년에는 언더우드, 아펜셀러, 스크랜튼, 트롤롭, 게일, 레이놀즈, 등이 주축이 되어 공동성서 번역 위원회를 조직하여 성경번역을 전개하였다.

2) 공인번역 성경.

선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한글성경이 출간되었으나 오늘날과 같은 신, 구약 정경은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미흡하였다. 그리하여 1900년에 신약성경을 완역하였으나 사정은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완전한 성경을 번역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고 1908년에 김정산, 김명준, 이창직 등 한국인으로만 구성된 성경번역 위원회가 처음으로 조직되었다. 1910년 4월 2일 오후 2시에 드디어 한글로 번역된 구약성경이 완료되었고 1911년에 그것이 출간되었으며 동시에 신약성경과 합본된 성경전서가 출간되었다. 그 후 1912년에 성경개역위원회를 결성하였고 1937년에 드디어 공인개역 성경을 완간하여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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