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창세기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면 첫번째 부분은 창조부터 시작하여 타락과 노아의 홍수 그리고 바벨탑 사건에 관한 것이고 다른 부분은 창세기 12장에서부터 시작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스토리부터 요셉까지의 스토리가 진행이 됩니다. 지난 시간에 잠시 나누었지만 창세기 12장의 배경 스토리를 다시 한번 살펴보고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 땅에서 부르셨는지 성경의 흐름과 함께 나누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아의 홍수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바벨탑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니므롯과 그의 아내 세미라미스는 노아의 홍수로부터 새로 시작한 인류를 자신들이 만들어낸 거짓 종교로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였고 결국 바벨탑 사건으로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데라는 여호수아에 기록된 말씀에 의하면 우상을 섬기던 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의 라인으로 쓰임을 받았던 데라마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던 시대였다면 얼마나 악하고 음란했던 시대였는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인구가 늘어가면서 도시가 형성이 되고 편안한 생활을 이루어 갔을지라도 마음과 생각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죄를 범하고 악이 형통하던 시대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살고 있었던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부르셔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시고 여자의 후손에 관한 언약과 함께 이스라엘 족장들의 스토리를 창세기를 통하여 전개하십니다.

 

물론 창세기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도 공부하면서 배울 수 있는 교훈들이 많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스라엘 그리고 요셉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없는 인물이지만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하신 일과 성경의 주제를 연결시켜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반면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있는 인물이지만 이 글에서는 나누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

*아브람은 나중에 아브라함이라 하나님께서 이름을 고쳐주시는데 이 글에서는 아브라함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성경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가지 예수 그리스도 즉 여인의 후손에 관하여 기록되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도 이 주제와 연관하여 생각해 보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랜 시간동안 ( 1500) 많은 사람들을 통하여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는데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메세지의 주제는 변함없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요셉까지 이스라엘의 족장들의 스토리 역시 그저 하나의 이스라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을 위하여 세우신 인물들의 스토리로 보면 이어지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그냥 성경을 읽기만 하면 넘어가는 부분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이 태어났을 때에 노아가 생존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이 거주했던 곳에 노아도 함께 거주했는지 알 수 없지만 홍수의 심판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하였던 노아가 이 당시에도 살아있었다는 것은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사실입니다. 창조로부터 1556년에 노아가 하나님으로부터 홍수 심판에 관한 계시를 받았고 1656년에 홍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데라는 창조 후 1948년 후에 아브라함을 낳았고 노아는 창조 후 2006년에 하나님께로 갑니다. 노아는 홍수 심판 후에 얼마되지 않아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린 사람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담부터 노아까지 10대이고 아브라함은 아담의 20대 후손입니다. 그러면 홍수 이전의 인구는 아니겠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 시대에 살았던 것입니다. 더더욱 애통해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린 사람들을 향하여 부르짖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비록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우상을 섬겼지만 아브라함은 어떻게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되었는지 또한 신기하면서도 여자의 후손을 위해 얼마나 다행이었던 사실인지 모릅니다. 물론 노아가 이 아브라함이 태어났을 당시에 생존했더라도 아브라함을 직접 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적어도 구전으로 전해지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창조, 타락, 노아의 홍수 그리고 바벨탑 사건과 함께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도 들으며 조금만한 믿음이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에블람 왕국/문명이 건설되었던 곳이 하란입니다. 에블람 문명은 셈의 4대손 에벨이 세운 왕국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이 섬겼던 신이 바로 야 (하나님의 짧은 형태)였습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에벨의 아들 벨렉의 시대에 니므롯과 세미라미스라는 인물들로 인하여 노아의 홍수로부터 다시 시작한 인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져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습니다 (홍수가 일어나고 100년 전후). 에벨이 세운 왕국도 결국에는 수메르 문명이 장악하게 되는데 이 당시에 갈대아 우르로 이주된 사람들이 많았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몇 신학자들은 아브라함이 원래 하란에서 태어났지만 나중에 갈대아 우르로 옮겨졌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있는 내용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전승을 들어보면 아브라함은 하란이 아닌 갈대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란은 그 부친 데라보다 먼저 그의 출생지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창세기 11:28)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창세기 11:31)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전해지는 전승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데라는 여호수아에 기록된 대로 우상을 섬기던 자뿐만이 아니라 우상을 만들어 팔았던 자였다고 합니다. 데라와 아브라함이 거하였던 갈대아 우르 도시는 그 당시에 가장 큰 도시 중에 하나였고 무역이 활발했던 곳으로 우상이 많이 만들어지고 섬겼던 곳이라고 합니다. 데라마저도 우상을 섬겼던 자였는지 그리고 우상을 섬기지 않았던 자였든지 우상을 만들어 팔았던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났던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던 하루 데라가 가게를 비우고 아브라함에게 가게를 맡겼다고 합니다.

 

"여러분 형제들 그리고 부친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셨더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거기서 그의 아버지는 죽었고, 하나님이 그를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사도행전 7:2-4)

 

갈대아 우르 땅에 있을때 하나님께서 언제 아브라함에게 위 구절의 명을 주셨는지 모릅니다. 전승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데라의 가게에서 다음과 같은 일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가게에 혼자 남은 아브라함은 가게에 있던 많은 우상들 중에 한 큰 우상의 손에 도끼가 쥐어져 있었는데 그 도끼를 빼어 큰 우상을 제외한 모든 다른 우상들을 부서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끼를 다시 큰 우상의 손에 쥐어주고 태연하게 아버지 데라를 기다렸는데 데라가 다시 가게에 돌아왔을 때 부서진 우상들을 보고 아브라함을 책망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가게에 유일하게 서 있었던 큰 우상이 도끼를 가지고 다른 우상들을 부서버렸다고 말하는데 데라는 아브라함에게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꾸중합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데라에게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은 우리의 섬길 바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를 섬겨야 한다고 말했다 합니다. 이 일 후에 아브라함은 아버지인 데라와 가족들과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으로 향한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지는 전승을 보면 아브라함이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던 인물로 보입니다. 하지만 창세기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굳건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셨을때 분명히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생존해 있었는데 가족들 그리고 친척들과 함께 가나안 땅이 아니라 먼저 하란 땅에 가서 거주하게 됩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거주했는지 모르지만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분의 말씀만 의지하였더라면 하란 땅에 들리지 않고 친척을 두고 가나안 땅으로 바로 왔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란 땅에 아버지인 데라가 죽고 다시 하나님께서 창세기 12장에 기록된 대로 말씀하신 후에야 조카 롯과 가족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 당시에도 조카 롯은 함께 대동지만 이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성경에 기록된 대로 단련시키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가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 관한 스토리는 '하나님의 성호'라는 글을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성호를 통하여 그리고 여러 사건들을 통하여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믿음의 사람으로 변해가는지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선 밑에 있는 요약된 내용을 참고하시면서 이삭과 모리아 산에 있었던 내용을 좀 더 하나님의 나라와 여자의 후손과 연관시켜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소

일어난 사건

애굽

(창세기 12-13)

1. 아내 사래(사라)를 누이라고 속이지만 바로에게 빼앗김

2. 하나님의 은혜로 아내와 함께 제물을 바로에게 받음

3. 돌아오는 길에 조카 롯과 헤어짐 (비로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

가나안

(창세기 14)

1. 4 왕의 군대가 5 왕의 군대를 파하고 롯과 재물을 노략함

2. 아브라함이 318명을 데리고 4 왕의 군대를 파함

3.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을 만나 축복을 받고 십일조를 받침 (살렘 왕 멜기세덱 =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 / (엘 엘리온)

가나안

(창세기 15-19)

1. 하나님과 언약을 맺음 (아도나이 하나님)

2. 사래의 청으로 아브라함이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태어남 (하갈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이름 = 엘 로이)

3.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사래에서 사라로 이름을 바꾸어 주심

4. 언약의 징표로 할례를 행하게 됨

5. 하나님의 천사들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을 약속하심

6.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그랄

(창세기 20-21)

1.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사라를 누이라고 다시 속이지만 하나님께서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주심

2. 이삭의 탄생 / 이스마엘과 하갈이 쫓겨남

3. 아비멜렉과의 계약 (엘 올람)

모리아 산

(창세기 22)

1.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아브라함에게 명하심

2. 하나님께 순종한 아브라함 (여호와 이레)

 

아브라함은 훈련을 통하여 창세기 22장에서는 100세에 낳은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게 되었습니다. 99세의 나이에 할례를 행하여 더 이상 이스마엘처럼 사람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와 느엵으로 자손을 받게 되는데 이 부분에 관하여는 이삭에 대해 나누면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을 받고 어떠한 생각이었을까요? 이 부분에 관하여는 여호와 이레에 관하여 나누면서 자세하게 다루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간단하게 다시 살펴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삭을 능히 다시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밑에 있는 구절들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옅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에서는 이같이 아브라함에 관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압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고, 그가 약속으로 받은 자 곧 자기 독자를 드렸으며 그에 대하여는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삭을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줄 생각하였으니, 예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았느니라." (히브리서 11:17-19)

 

위와 비슷한 구절은 로마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4:16-25)

아브라함은 여자의 후손에 관한 언약 또한 붙잡고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므로 아직 받지 못한 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태움제로 드리려고 하는 믿음을 보였을 때에는 장차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릴 수양을 하나님 앞에 태움제로 드렸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있었지만 이렇게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으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이어나가셨습니다.

 

믿음으로 유언한 이삭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요셉까지의 스토리를 보면 다른 인물들에 비하여 성경에 등장하는 이삭의 스토리의 비중은 매우 적습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연대기를 만들어보면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인물이 바로 이삭입니다. 그러나 그에 비해 이삭이 한 일은 기록에 없으며 다른 인물들에 비해서 뛰어나거나 놀라운 사건이 있지 않습니다. 물론 이삭은 어린 나이에 아브라함과 함께 모리아 산에 올라가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질뻔 했던 인물입니다. 이삭은 혼자 산에 장작을 지고 올라갈 수 있었을 정도로 장성했었을 때이므로 충분히 아브라함이 제물로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했었을 때에 거부하거나 도망칠 수 있어겠지만 그러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이 후의 스토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삭은 나이 37세에 어머니 사라가 죽었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위로하기 위해서 다메섹 엘리에셀을 통하여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맞이하게 해 줍니다. 이때가 바로 이삭의 나이 40세 였으며 처음에는 아버지인 아브라함처럼 오랜 시간 자식을 낳지 못하다가 하나님께 간구하여 60세의 나이에 쌍둥이를 낳게 됩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창세기 25:23)

태중에서부터 쌍둥이 형제가 싸우자 리브가는 하나님께 간구하게 되는데 바로 위 구절이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리브가는 이런 모든 것을 남편인 이삭에게 전해주었을텐데 이삭은 나중에 야곱이 아니라 이삭을 축복해 주기 위해 사냥을 하여 별미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라면 개인적으로 에서를 야곱보다 사랑했더라도 축복은 야곱에게 해주는 것이 옳았던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이삭은 에서를,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여 패가 나누어 졌으며 나중에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려고 하자 리브가와 야곱은 거짓말을 하여 야곱으로 하여금 축복을 받게 합니다.

 

그러면 질문을 해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정확히 언제 이삭이 별미축복을 한 장면이 나왔는지 연도를 알 수 없지만 에서가 40세 이후에 일어난 것으로 보면 이삭의 나이는 적어도 100살이었던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인 아브라함과 함께 모리아 산에 올라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났던 이삭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기에, 아니면 어떠한 삶을 살았기에 이런 모습으로 나중에 변하게 되었을까요? 그렇다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만 나타나시고 이삭에게는 나타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이삭 역시 아브라함처럼 별미축복을 하기 전에 그랄 땅에 들어가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자신의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이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아무런 해를 당하지 않고 나중에 리브가를 아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이삭에게 복을 베푸셔서 엄청난 수확을 얻게 하시어 거부가 되게 하시기도 합니다 (창세기 26:12-13). 이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여 우물을 가지고 문제가 있었을때에 이삭은 묵묵하게 새로운 우물을 파 르호봇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라는 의미)를 얻게 되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이삭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처럼 보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삭 앞에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을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니다.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인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창세기 26:24)

 

하지만 그런 이삭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채 별미축복을 에서에게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냥 축복을 해 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즐겨먹는 별미를 가져오면 축복을 해주겠다고 에서에게 말함으로 에서가 사냥을 간 사이에 리브가와 야곱은 이삭을 속여 야곱으로 하여금 축복을 받게 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삭은 자신의 욕심을 따라 에서에게 축복을 해주려고 했던 것이고 그냥 해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별미를 원했으며 에서처럼 변장을 한 야곱에게 축복을 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하셨던 언약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에서라고 오해를 했지만 야곱을 처음 축복할 때에는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하나님의 언약을 언급하지 않았고 나중에 야곱을 리브가의 오라버니인 라반의 집에 보낼 때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여 다시 야곱에게 축복을 해줍니다.

 

야곱에 대해 나누기 전에 우리는 또 몇 가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선 왜 에서와 야곱 (그리고 리브가)는 이삭의 축복에 집착을 하였을까요? 만약 야곱이 잘못된 방법이기는 했지만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받지 못하였더라면 여자의 후손의 라인으로 쓰임을 받지 못해었을까요? 이삭은 속임을 당하여 야곱을 축복하지만 에서가 나중에 와서 자신을 축복해 달라 했을 때 이미 야곱을 축복하였기 때문에 에서에게 줄 축복이 없다 하였는데 이삭은 무슨 생각으로 이러한 말을 했었을까요? 별미축복은 또한 요즘 교회에 문제점을 가져오는데 바로 목사님들이 교회에 헌금한 만큼 축복을 해주겠다는 말도 안되는 단어입니다. 어느 목사님들이 주장하고 있는 축복권이나 저주권 또한 성경에 없는 내용이며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을 미혹하여 헌금을 내게 하는 것입니다.

 

이 후에 이삭에 관한 스토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에 관하여 기록한 내용이 있는데 이 글 마지막 부분에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에는 다음 구절이 있습니다.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여인에게서 났다' 하였나니 여종에게서 난 자는 육신을 따라 났고, 자유 여인에게서 난 자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라디아서 4:22-23)

비록 기록에는 없지만 이삭 역시 가나안 땅에 거하며 아직 나그네 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을 기억하며 회개하며 살아가지 않았을까 히브리서 말씀을 통해 추측을 해 봅니다.

 

야곱 / 이스라엘

 

창세기를 읽다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에서와 야곱을 비교해보면 야곱이 절대로 에서보다 더 정직해 보이거나 착하거나 의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왜 에서보다 야곱을 선택하셨나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말라기에서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에서가 야곱의 형이 아니냐? 나 여호와의 말이라. 그러나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용에게 붙였느니라." (말라기 1:2-3)

 

야곱은 어려서부터 장막에 거했다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에 대해 나누기 전에 야곱이 태어났을 당시에 아브라함이 생존해 있었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 봅시다. 아브라함은 175세에 하나님께서 부르셨는데 100세에 이삭을 낳았으니 이삭이 75세였을때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이삭은 리브가에게 60세에 에서와 야곱을 낳았으므로 야곱이 15세까지 아브라함은 생존했다는 것입니다. 사냥을 좋아하여 들에 있었던 에서와는 달리 야곱은 장막에 거하며 아브라함에게 스토리를 듣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부르셨으며 애굽에서 그랄에서 그리고 모리아 산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어떠한 언약을 주셨는지 아브라함으로부터 스토리를 들은 야곱은 어려서부터 자신 또한 이런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았을까 라는 추측을 해 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남달리 에서가 가지고 있던 장자권에 욕심을 가지게 되었고 어미니인 리브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하셨던 말씀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 주었던 언약과 함께 장자권이란 특권을 향한 사모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방법대로 얻으려고 노력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에서에게 팥죽으로 장자권을 샀으며 (물론 여기에서는 에서가 장자권이란 하나님의 선물(?)을 등한히 여겼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어머니인 리브가와 함께 이삭을 속여 축복을 받았으며 라반의 두 딸 레아와 라헬을 얻었을 때에도 자신의 방법대로 하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부분이 정확히 별미축복의 때는 모르지만 야곱이 장성했었을때까지 이어지는데 야곱이 라헬을 만났을 때가 76세라는 사실을 보면 어렸을 때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교제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부친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며,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창세기 28:20-22)

 

하지만 라반의 밑에서 레아와 라헬을 위하여 14년 그리고 품삯을 위하여 6년을 봉사하면서 야곱의 생각은 조금씩 변화하지 않았을까도 생각하지만 아직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는 점이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라반과 함께 품삯을 정할 때입니다. 다시 야곱은 자신의 고향 본토로 돌아가기 위해 라반 앞에서 품삯을 정하는데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법대로 하려는 모습이 보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아무리 "야곱이 푸른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가지를 취하여 그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서 가지들 속에 있는 흰색을 드러냈다고" 새로운 새끼들이 얼룩얼룩한 것들과 점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야곱을 도우신 것으로 라반으로부터 품삯을 얻게 하셔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주신 것입니다. 라반으로부터 야곱이 가족과 함께 도망을 칠 때에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라반으로 하여금 야곱을 상하지 못하게 하셨으며 이런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지 알아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고 야곱이 완전히 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라반으로부터 벗어난 야곱은 이제 가족들과 함께 형인 에서를 대면하러 갑니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한 사람과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고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창세기 32:7-8)

하지만 이 와중에서도 야곱은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또 주께서도 말씀하사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후손으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창세기 32:12)

사람의 방법으로 다시 떼를 나누고 에서를 기다리던 야곱은 신기하게도 압복나루 쪽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 밤새 씨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떠한 생각을 야곱이 했는지 모르지만 날이 샐 때까지 씨름을 끝까지 한 야곱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내가 가게 하지 않겠나이다" (창세기 32:26)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바꾸어 주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라는 의미로 '속이는 자'에서 이름이 바뀝니다. 항상 옳은 길로 간 것은 아니지만 야곱의 삶에서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끈기입니다. 장자권도 축복도 그렇고 라헬을 위하여 봉사하는 모습과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는 부분도 끈질기게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점점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귀하고 언약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아가면서 야곱/이스라엘은 죽기 전에 애굽 땅에 가게 되어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고 죽게 됩니다.

 

"보라,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며 또한 내가 네 형제들보다 한 부분을 더 네게 주었나니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속족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창세기 48:21-22)

"내가 내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헷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 내 선조들 곁에 나를 장사하라." (창세기 49:29)

 

나그네로 평생을 살아오던 야곱/이스라엘은 비록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에 정착을 하여 안식을 얻지 못하였지만 장차 여호수아와 자손들을 통하여 주실 그 약속의 땅을 기억하며 그 믿음으로 죽기 전에 위 고백을 한 것입니다.

 

야곱/이스라엘은 요셉의 스토리가 시작되고 등장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발견할 수 있는 사실들은 야곱/이스라엘은 바로의 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미리 보여주신 대흉년 때에도 식량이 있는 애굽 땅으로 내려오지 않고 가나안 땅에 있었다는 것과 요셉을 통하여 애굽 땅에 내려왔을 때에 바로 앞에서 그를 축복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흉년이 들었을 때에 애굽 땅이나 그랄에 갔는데 야곱/이스라엘은 그렇지 않고 아들들을 보내어 식량을 얻게 하였습니다. 물론 나이 때문에 거동이 불편했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에 있으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도 당당히 그 당시의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던 바로를 축복하는데 히브리서 말씀처럼 큰 자가 작은 자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47:10; 히브리서 7:7)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단련시키시고 여자의 후손의 라인으로 쓰셨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하면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 곧 내 조상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겼고 내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과 또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그 천사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창세기 48:15-16)

야곱/이스라엘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해 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므낫세가 형이었지만 야곱은 장자인 므낫세가 아닌 에브라임 머리 위에 오른손을 올리고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방법으로 받으려고 했던 장자의 축복을 요셉의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주었습니다. 옛 생각이 안 날 수가 없어겠지만 이런 일들을 통하여 모든 시간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배웠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이스라엘과 애굽을 구한 요셉

 

요셉은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도 드문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라헬의 아들로써 아버지인 이스라엘의 사랑을 독차지 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형들의 시기도 받았던 인물입니다. 어린 나이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 이스마엘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 애굽 땅으로 끌려가지만 17세의 나이 요셉은 노예로 팔렸음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켰던 인물입니다. 다음 구절들을 살펴보면서 요셉은 어떠한 인물이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요셉이 태어났을 당시에 이삭은 아직 생존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 보내리라" 하니, 요셉이 부친에게 "제가 그리하겠나이다" 하매" (창세기 37:13)

요셉은 세겜에 가서 형들을 찾지 못하였지만 도단까지 가서 아버지의 심부름을 합니다. 평소에 형들의 미움을 받는다는 것을 요셉이 모를리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형들의 잘못 또한 아버지에게 알림으로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아버지가 없이 혼자 형들에게 갔으면 핍박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께서 명하신 일에 충실합니다. 하지만 드단에 가서 예상치 못하게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 요셉이 한번도 가보지 못한 애굽에 가게 됩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말하되 "보라, 나의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맡기셨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리이까?" (창세기 39:8-9)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그 간수가 옥중 죄수들을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창세기 39:21-22)

 

보디발의 집에서나 감옥에서나 요셉은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요셉은 자신을 지키는 이유가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꿈으로 인하여 어떻게 보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팔려 온 것인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감옥에 간 것도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한 것이었는데 누명을 쓴 것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든지 신실한 모습으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감옥에서도 구분하셔서 인자를 베풀어 주십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완전한 대답을 주시리이다" 하니" (창세기 41:16)

그리고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 감사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을 의지했던 인물이었던 거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태양신을 포함하여 여러 신을 믿었으며 신으로 추앙을 받던 바로 앞에 나아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꿈풀이를 해 주었으며 애굽의 총리가 되어 이스라엘과 그의 가족만 구한 것이 아니라 큰 흉년으로 인하여 죽을뻔한 많은 사람들을 살린 인물이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선포하였습니다. 정말 요셉이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알았고 사모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도 사람입니다. 형들에게 버림을 받고 보디발의 집에서는 억울하게 누명이 씌어 감옥에 갇혔던 요셉입니다. 그런 요셉의 마음은 나중에 바로 앞에 나아가 애굽의 총리가 되고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아내로 맞이하여 얻게 된 아들들의 이름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므낫세 =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내 부친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에브라임 = 하나님이 내 고난의 땅에서 나로 번성케 하셨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마소서. 이는 하나님이 생명을 보존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낸 것이니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시고 당신들을 세상에 남겨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창세기 45:4-8)

 

요셉은 시편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더니" (시편 105:17-19)

 

요셉의 스토리를 살펴보면 요셉이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형들을 미워하여 복수를 할 수도 있었고 보디발의 부인과 음행을 범할 수도 있었고 다신교였던 애굽 땅에서 다른 신들을 섬길 수도 있었지만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붙잡고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타지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없었을 그 곳에서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한 가지 소망으로 살았다는 것은 요셉이 죽기 전에 했던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요셉이 그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뼈를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창세기 50:24-25)

 

요셉은 애굽의 총리로써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마음 속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주었던 언약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언약을 지키실거라는 믿음과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실 거라는 확신이 요셉에게 있었다는 것을 위 구절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의 유골에 대하여 명하였으며" (히브리서 11:22)

요셉 역시 애굽 땅에서 죽었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한 소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족장들의 공통점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요셉까지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들 하나님께서 주셨던 언약을 붙잡으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여 죄를 범하여 에덴에서 쫓겨나며 세상은 하나님께 등을 돌렸지만 이 와중에서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로 통하여 여자의 후손 곧 예수 그리스도의 라인을 이어가셨습니다. 창세기 3:15 부터 시작한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 때 가서 구체화 되었으며 그 언약의 가치를 깨달은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며 그 언약을 붙잡았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며 영원한 안식처인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믿음을 지켜간 인물들의 스토리는 우리에게 도전과 함께 지금 악한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 안에서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ㅇ르 멀리서 보고 확신을 가지고 받아 드렸고 또 땅에서는 자신들이 '이방인과 나그네라' 고백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그들이 본향 찾는 자들임을 나타냄이라. 참으로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는 이제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나라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리우심을 부끄러우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도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1:13-16)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나중에 모세에게 나타나셨을 때애도 다른 구약에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이라고도 소개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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