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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면(麵) 요리를 즐겨온 지역은 중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권역 그리고 이탈리아와 중동, 북아프리카에 걸친 이슬람권으로 한정된다. 이렇게 넓은 지역이 하나의 기원을 가지는지 아니면 저마다 독립적인 기원을 지니고 있는지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국수는 인류 최초의 문명이 발생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탄생된 것으로 본다. 즉, 현재의 시리아아프카니스탄 북부 지역인 중동지방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지역의 비옥했던 재배 환경은 풍부한 양의 곡물을 생산할 수 있게 했고 이는 사람들이 곡물을 이용해 국수를 만들게 된 계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국수는 실크로드를 통해 아시아로 깊숙이 전파되었는데 실크로드는 문화를 교역하는 것을 뛰어넘어 다양한 요리문화가 전파되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실크로드의 상인들은 세계 각지로부터 온 외국 무역상들과 만나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었고 다양한 요리법을 교환했다. 이후 이러한 요리법들이 중국, 한국, 일본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으며 동남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전해진 국수는 각 나라의 입맛에 맞게 각기 다른 형태로 조리법이 바뀌었으며 각 나라마다 독특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제각기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는 면은 만드는 방법에 따라서 다양하게 구분된다. 먼저 밀가루 반죽을 길게 늘여서 벌린 막대기에 감아 당긴 후 만들어내는 소면(素麵)계열(일본과 한국의 소면, 중국의 선면), 반죽을 작은 통 사이에 넣고 눌려 뽑아내는 압면(押麵)계열(한국의 냉면, 중국의 하수면), 반죽을 얇고 넓게 민 뒤 칼로 썰어서 만드는 절면(切麵)계열(한국의 칼국수, 일본의 우동), 반죽을 양쪽으로 길게 늘여서 만드는 납면(拉麵)계열(일본의 라면, 중국의 납면), 마지막으로 쌀을 갈아서 찌거나 삶은 후 칼로 가늘게 썰어 만드는 하분(河粉)계열(동남아 쌀국수) 등으로 구분된다.

 

이처럼 다양한 국수 음식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출현한 파스타가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사랑받았다면, 근세 이후 화교들의 진출로 인해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 각국에 국수 음식이 침투되었고 이후 일본에서 개발된 인스턴트 라면이 세계적으로 급속히 보급되면서 동양의 면은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1 쌀국수에 사용하는 면   2 우리나라에서 자주 접하는 얇고 가는 소면   3 반죽을 얇고 넓게 민 뒤 칼로 썰어서 만드는 절면

(칼국수 면으로 주로 사용)

 

 

 

한국 면의 기원

한국 면의 기원은 고려시대 송나라 사신의 여행기인 [고려도경(高麗圖經 1123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여기에 ‘고려인들은 제례 때 면을 사용하고 사원에서 면을 만들어 판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당시 면 요리는 고려인들의 식생활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면’을 ‘국수’라고 일컫는데 옹희잡지에 ‘건(乾)한 것은 병이라 하여 시루에 쪘으며 습한 것을 면이라 하여 끓는 물에 삶거나 물에 넣은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당시의 면은 습면(濕麵) 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면에 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한 것은 [세종신록]이다. 수륙재공양 음식으로 면을 올리고 있는데 이 면의 재료가 메밀로 추정된다. 특히 [음식디미방]에는 다양한 종류의 면 요리가 소개되어 있고 밀가루 국수가 아닌 메밀국수, 녹말국수 등이 성행하였다는 것들을 통해 당시 밀이 대단히 귀한 식재료였음을 알 수 있다.


한반도는 쌀농사에 적합한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부터 밀은 귀한 식재료였다. 삼국 시대 때부터 밀을 중국에서 수입하였으며 그 때문에 궁중이나 귀족층의 잔치 때 밀로 반죽해서 만든 국수가 사용되었다. 이러한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와 잔칫날이나 결혼식을 올린다는 의미의 ‘국수 먹는다’라는 표현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히, 조선 영조 6년(1730년) 윤유(尹游)가 평양풍토의 기록인 [평양지(平壤志)]를 보완해 펴낸 [평양속지(平壤續志)]에 놀랍게도 흙으로 빚는 ‘흙 국수’가 등장할 정도로 국수는 귀하게 대우되었다. 당시 사정이 그러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수는 메밀과 녹말로 만들었다. 조선 왕조 초기 세종대왕은 메밀면을 즐겨 먹었는데 궁중으로 진공하는 메밀이 부족해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에 205섬을 더 할당시키기도 하였다.

 

한국에 전파된 면을 뽑는 방법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국수틀을 사용하여 면발을 뽑아내는 방법. 두 번째는 면본(구멍이 뚫린 바가지)에 반죽을 밀어 넣어 뽑아내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반죽을 밀대로 밀어 길게 썰어내는 방법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면들은 각각의 맛에 따라 다른 국물과 함께 하게 된다.

 

평안도와 함경도 지방을 대표하는 냉면(좌), 육수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내는 칼국수(우)

 

 

평안도와 함경도 지방은 주로 메밀국수를 즐겼으며, 경기지방은 녹두나 전분을 사용한 국수, 그리고 충청 이남 지역에서는 밀을 사용한 국수가 발달하였다. 그중에서도 평안도와 함경도 지방에서는 남쪽 지방과 달리 독특한 면들이 나타났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냉면’이다. 생선회에 면을 넣어 먹기 시작한 함흥냉면에서부터 꿩을 삶은 물에 면발을 넣어 만든 평양냉면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면 요리로 발전하였다. 남쪽지방을 중심으로는 칼국수가 나타났는데 산간지방에서는 멸치 육수를 바탕으로, 농촌에서는 닭 육수로, 해안지역에는 조개류를 넣어 칼국수를 끓여내는 특징이 있다.

 

 

중국의 병(餠)

중국은 한대(漢代)에 밀이 전파되었다. 밀로 만든 가루를 면(麵)이라 불렀고, 면으로 만든 음식을 통틀어 떡(餠)이라 하였다. 고대 중국에서는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분식이 발전하였다. 중국의 분식(紛食)은 본래 병(餠)과 이(餌:먹이 이)로 나누어지고, 밀가루를  원료로 하는 것을 병(餠),그 외 곡류(조, 기장, 수수, 콩 등)로 만든 것을 이(餌)라고 불렀다.

 

이러한 병은 조리법에 따라 삶거나 끓인 것, 찜통으로 쪄낸 것, 직화로 구운 것, 기름에 튀긴 것, 피 모양으로 가공한 것과 같이 다양한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송나라(960-1279)때 와서 오늘날과 같은 국수류 음식의 체계가 갖추어졌다. 보통 중국에서는 국수에 간수를 넣어 면발을 발색시키며 간수의 알칼리성으로 인해 밀가루에 포함된 플라보노이드계 색소가 노란색으로 발색되어 글루텐의 점탄성이 늘어나며 면발이 매끈하고 쫄깃하게 된다. 면의 조리방법이 점차 발달하면서 반죽을 양손으로 면판(麵板)위에 치고 잡아당기면서 면발을 가늘고 길게 뽑아내게 된다. 이러한 면발을 화북 지방에서는 '라면(La-mien)', 화남 지방에서는 '타면(打麵, ting-mien)'이라 불렀다.

 

중국의 면 문화는 중국을 넘어 동아시아 전역으로 전해지게 된다. 한국, 일본, 베트남까지 면을 즐겨 찾는 습관은 그 국가의 젓가락 문화에서 공통점을 찾아 볼 수 있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 몽고에서 조차 국수를 먹을 때에는 젓가락을 사용할 정도로 젓가락은 국수를 애용하는 식습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반죽을 양손으로 면판 위에 치고 잡아당기면서 면발을 가늘고 길게 뽑는 중국 화북지방의 라면(La-mien) <출처: Youngjediboy at en.wikipedia.org>

 

지금 중국에 존재하는 국수는 크게 여섯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뜨거운 국물에 삶은 국수를 넣은 탕면(湯麵), 다양한 재료와 함께 볶은 초면(炒麵), 다양한 재료를 넣어 버무린 반면(伴麵), 차가운 소스로 버무린 양반면(凉伴麵), 국물에 넣어 끓이는 외면(煨麵), 국수를 삶거나 쪄서 기름에 튀긴 작면(炸麵)이 바로 그것이다. 

 

 

일본의 면

일본에는 나라시대헤이안 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의 당과자(唐菓子, 당에서 전해진 제법의 과자)가 전해졌다. 홍법대사가 당에서 밀과 동시에 우동의 제법을 가지고 오면서부터 일본인들의 밀가루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트게 되고 분식가공이 급속도로 발달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우동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면인 소바(そば)는 무로마치 시대에 등장하여 매운 무즙과 함께 먹었다고 전해진다. 소바가 발달하기 전에는 소바 가루에 뜨거운 물로 반죽을 한 소바가키(そばがき)가 성행하였다.

 

일본의 면 문화는 관동/관서 지방으로 뚜렷하게 구분된다. 관서지방을 대표하는 우동(좌), 관동지방을 대표하는 소바(우)

 

 

가마쿠라 중기부터 논의 뒷갈이로 밀 재배가 시작되어 밀가루 입수가 수월해지고, 찌고 굽고 기름에 튀기는 기술이 전해지면서 이후 일본의 식문화는 크게 바뀐다. 처음 일본에서는 손으로 잡아당겨 늘이는 소면이 유행하다가 14세기를 지나면서부터 절면(絶麵)이 등장하게 되고 간사이(關西)지방에서 우동이 발전하고 간토(關東)지방에서는 소바가 발전하면서 일본의 면 요리를 이끌어 나가게 된다. 에도시대에는 시코쿠(四國)지방을 중심으로 면발이 연하고 야들야들한 우동이 발달하게 되는데 이것이 후에 사누끼 우동의 시초가 되었다.

 

일본의 면 문화는 관동과 관서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 보통 관서지방은 우동, 관동지방은 소바로 대표되는데 이렇게 분식 문화가 발달한 것은 일본의 분식장려 운동 덕분이다. 상대적으로 쌀의 생산이 부족했던 일본은 부족한 쌀에 다양한 종류의 곡류를 섞어 떡이나 소바를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소바는 대표적인 서민음식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동남아시아의 면

동남아시아의 면 요리는 국물이 뜨겁기 때문에 얇고 긴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서양과 비교해 볼 때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동남아시아의 면 문화는 19세기에 이주한 화교가 절면과 압면 기술을 전한 때부터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전파되고 있다. 중국에서 퍼져나간 면 문화이지만 중국의 출신지에 따라 국수의 종류가 달라진다. 오키나와는 푸젠성, 태국과 베트남은 차오저우,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푸젠성과 광둥지방의 영향을 받았다. 뜨끈한 육수에 면발을 담아내는 식문화가 발달한 동남아시아의 면 요리는 국물이 뜨겁기 때문에 얇고 긴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밀이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쌀을 이용해 면을 뽑아낸다. 이렇게 만들어낸 쌀국수에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해 다양한 건더기와 고명을 얹어 먹기도 한다.

 

 

2000년대 초 국내에 첫 선을 보인 베트남 쌀국수는 건강한 음식을 찾는 한국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굳건히 그 위치를 지키고 있다. ‘웰빙’ 열풍을 타고 낮은 칼로리와 담백한 맛, 여기에 쌀로 만든 국수라는 점이 쌀 문화권인 한국에서 쌀국수가 성공한 배경이 된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 맛있는 베트남 쌀국수 ‘포(Pho)'가 전쟁과 분단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전 세계로 퍼져나가 세계화에 성공한 쌀국수이지만 그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베트남인들의 슬픈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다.

 

 

풍부한 쌀을 가공해서 만든 음식, 쌀국수

베트남은 대표적인 농업국가로서 그 중에서도 쌀이 농업생산량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쌀을 가공한 음식이 발달한 나라이다.

 

 

베트남은 전 국민의 7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대표적인 농업 국가이다. 그중에서도 쌀을 경작하기 위한 최적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연간 최대 3모작도 가능하다. 이러한 자연환경 때문에 베트남의 한해 쌀 생산량은 베트남 전체 농업 생산량의 절반에 육박한다. 이처럼 풍부한 쌀을 가공하여 만든 음식이 바로 쌀국수이다. ‘포(Pho)'라고 불리는 쌀국수는 베트남 사람들이 분주한 아침의 간편한 식사 혹은 출출할 때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대중적인 음식이다. 쌀국수는 쫄깃하게 삶아낸 면발에 쇠고기나 닭육수를 넣고 신선한 야채를 듬뿍 곁들여 먹는 건강식이다.

 

 

쌀국수의 유래

지금은 베트남의 대표 음식이 된 쌀국수의 역사는 의외로 짧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19세기말 방직공업이 번성했던 남딘(Nam Dinh)의 공장에서 하루 일과를 마친 노동자들이 고기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던 것이 쌀국수의 시초이다. 쌀국수의 유래에 대한 또 다른 강력한 설은 프랑스의 야채스프인 ‘뽀오페(Pot au feu)’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19세기 초 베트남에 소개된 프랑스의 요리 ‘뽀오페’가 베트남의 식재료에 맞게끔 변형되었다는 설로서 포의 국물을 만들 때 사용되는 구운 양파와 생강이 뽀오페를 만들 때 사용되는 것과 동일하며, 베트남 이외의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이러한 조리방법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도 이 설을 지지한다. 또한, 예부터 베트남 농경사회에서는 노동력을 중요하게 생각해 소를 신성시하였기 때문에 식용하는 일이 드물었다. 이 같은 사실은 베트남에서 프랑스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포가 만들어 졌다는 설을 뒷받침 한다.


프랑스의 야채스프 ‘뽀오페’에 들어가는 재료들
<출처: André at en.wikipedia.org>

 

 

쌀국수는 하노이 유역에서 서민들에게 사랑받는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은 후, 1950년대에 이르러 남부지방과의 교류가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과정을 통해 베트남의 대표음식으로 한 단계 더 올라서게 된다. 1954년 제네바 협약으로 북부지역은 월맹 공산 정권이 수립되고 프랑스군은 북위 17도선 이남으로 철군하게 된다. 이 당시 남하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정치적 신념이나 종규적인 문제 때문에 사이공 등의 대도시 주변이나 해외로 망명을 신청하게 되고 이들이 생계를 위해 음식점을 차리거나 포를 등에 매고 다니면서 음식을 팔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쌀국수는 짧은 시간에 급속도로 남쪽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물론 전 세계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게 된다.

 

 

쌀국수의 종류

베트남의 쌀국수는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서, 혹은 육수의 종류에 따라 수십 가지 맛으로 나눌 수 있고, 각 지역마다 독특한 특색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쌀국수는 쇠고기 육수에 숙주나물과 고수를 얹은 뒤 새콤한 라임즙을 짜 넣어 함께 먹는다.

 

쌀국수의 맛을 내는 중요한 요소는 바로 육수에 있다. 쌀국수는 소꼬리와 갈비, 사태에 계피, 향료 등을 함께 넣어 오랫동안 우려낸 달콤한 육수에 소고기 편육을 얹어 먹는 소고기 쌀국수인 ‘포보(Pho bo)’, 그리고 닭의 고기와 뼈를 푹 고아서 만든 담백한 닭 국물에 닭살을 찢어 올린 닭고기 쌀국수인 ‘포가(Pho ga)’등 두 가지 종류로 나눠진다. 달고 기름진 음식을 선호하는 베트남 남부 사람들은 ‘포보’를 즐겨 먹는 반면, 담백한 맛을 즐기는 북부 사람들은 ‘포가’를 선호하는 등 쌀국수를 통해 베트남의 지역 간 입맛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닭고기를 넣은 ‘포가‘(좌)와 소고기를 넣은 ’포보‘(우)

 

 

쌀국수의 종류에 따른 조리 방법 차이

베트남 남부지방의 쌀국수는 삶은 쌀국수를 대접에 넣고 쪽파, 파슬리, 숙주나물, 육계피 등을 얹은 다음 위에 얇게 썬 쇠고기나 닭고기를 얹어 고기 뼈로 만든 육수를 부어 먹는다.(호치민 지방 : 국수가 약간 가늘고 질기며 중국 국수와 비슷한데 맛이 독특하다.) 반면에 북부지방의 쌀국수는 숙주나 계피를 넣지 않고 육수도 담백하며, 여기에 쇠고기나 닭고기를 동그랗게 만든 것이나 유부를 넣기도 한다. (하노이 지방 : 국수 위에 날 쇠고기를 얹기도 한다.)

 

 

베트남 쌀국수와 태국 쌀국수와의 차이점

베트남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는 국가인 태국도 쌀국수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나라이다. 주식으로 밥을 먹고 있는 태국은 쌀가루로 만든 쿠이티오, 셈미, 카놈친 등의 면이 존재할 정도로 쌀국수를 즐겨 먹는 국가이다. 베트남 쌀국수와 태국의 쌀국수의 차이는 육수에 있다. 태국 음식은 중국, 인도, 유럽의 음식문화가 융합되어 다양한 향신료가 독특한 향을 낸다. 태국 쌀국수에는 마늘, 고추는 물론 생선으로 만든 장류(類)인 남플라와 새우, 보리새우를 발효시켜서 만든 된장 같은 가피, 고수, 라임, 코코넛 밀크 등도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베트남 쌀국수에 비해 태국 쌀국수는 자극적이면서 맛이 더 진하고 양념이 강하다.

 

태국 쌀국수는 베트남 쌀국수와 외관은 비슷하지만 육수에 있어서 차이가 나는데, 태국 쌀국수는 향신료 맛이 강해 더 자극적이며 양념 또한 강한 편이다.

 

 

쌀국수 더 맛있게 먹는 방법
1. 생 숙주는 국수를 받자마자 면 아래로 넣어 숨을 죽인다.
2. 레몬은 국수 위에서 충분히 즙을 낸다.
3. 칠리소스와 해선장을 3:1 비율로 뿌려서 먹으면 더욱 얼큰한 맛을 느낄 수 있다.
4. 고기는 칠리소스와 해선장을 3:1 비율로 종지에 담아 찍어 먹으면 맛있다.
5. 절인 양파에 칠리소스를 적당량 넣어 버무려 먹으면 쌀국수와 조화롭게 먹을 수 있다.

 

쌀국수 맛있는 집 찾아보기

 

 

 

일본에서는 12월 31일(大晦日おおみそか)에 ‘소바’를 먹는 풍습이 있다. 전통적으로 이날 소바를 먹는 것은 장수의 의미가 있어서 매년 마지막 날이 되면 집집마다 소바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처럼 일본의 소바는 역사가 깊고 스시, 덴푸라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요리 중 하나이다. 소바는 메밀가루로 얇게 뽑아낸 국수를 차가운 간장 국물에 넣고 무와 고추냉이를 곁들여 먹는 음식으로 일본에서는 면요리를 모두 '소바(蕎麥)'라 하며, 소바 그 자체 또한 메밀을 지칭한다. 최근 들어서는 '소바기리(蕎麥切)'라는 말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소바는 종류에 따라 뜨거운 국물이나 차가운 국물을 선택할 수 있으며, 차가운 간장 국물에는 조금씩 덜어서 먹고 채썰어놓은 파와 갈아놓은 무를 듬뿍 올려 육수와 섞어 먹는 것이 특징이다. 

 

삼색소바, 소바는 면을 만드는 재료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낸다.

 

 

에도시대부터 먹었던 소바

소바의 기원은 17세기 무렵의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은 지리적으로 간사이(교토, 오사카)와 에도(현재의 도쿄지방)로 나뉘어 있었으며 두 도시권을 중심으로 일본의 전반적인 식문화가 발달하였다. 당시 일본의 수도는 교토였고 상업의 중심지는 오사카였기 때문에 화려함을 자랑하는 가이세키 요리정진 요리 등은 모두 간사이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이와 달리 에도지방은 일본 내에서 새롭게 성장하는 지역이었으며 사무라이들의 도시였기 때문에 에도지역의 음식은 간사이 지방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간사이 지역 음식이 화려함을 자랑하였다면, 에도지방은 정갈하고 실용적인 부분을 강조했다.


그 당시 에도지방에는 새로운 정치를 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남성들이 많았는데 매일 저녁 이들은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했다.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야타이(포장마차)이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든든한 한 끼를 책임졌던 포장마차 음식들은 이시기에 모두 탄생되게 된다. 소바뿐 아니라 스시, 튀김, 덮밥 등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생겨났고 이후 이러한 음식들은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세련된 맛을 지니게 되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소바는 관동지방의 음식


일본에서는 크게 두 가지의 맛이 존재한다. 교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형성된 관서지방과 지금의 도쿄지방인 관동지방의 맛이 그것이다. 소바는 철저하게 관동지방에서 생겨난 음식이다. 도쿄에는 그 역사가 에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사라시나(更科)와 스나바(砂場), 야부(藪) 등 이른바 3대 노포 계통의 소바집들이 지금도 성업 중이다. 소바는 처음 관동지방에서 생겨난 이후로 많은 서민들에게 환영받았고, 4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가다랭이포와 고등어포를 함께 넣어서 우려낸 육수에 진한 간장을 넣어 맛을 낸 관동지방의 소바는 가다랭이포와 다시마를 넣고 육수를 우려내는 관서지방의 육수보다 훨씬 더 맛이 진하고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검소하고 실용적인 관동지역의 문화에도 잘 들어맞는다고 볼 수 있다.

 

  • 1 면과 육수, 파, 갈은 무로 소박하게 만든 소바는 일본 관동지역의 문화에 잘 들어맞는 음식이다.
  • 2 소바의 육수는 가다랭이포, 고등어포 등을 우려내 만든다.
  • 3 사람들의 다양한 입맛을 고려하여 최근에는 튀김소바 등 변형된 소바들도 등장하고 있다.

 

소바의 영양

소바의 주재료인 메밀은 일본인들에게 부족한 비타민 B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메밀은 다른 곡류들과 달리 영양소가 고루 퍼져 있기 때문에 제분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영양 손실이 적다. 피를 맑게 해준다고 알려진 메밀은 특히 혈압강하에 효능이 있다. 비타민의 일종인 판토텐산은 두통과 피로를 쉽게 덜어주며, 루틴(rutin)은 모세 혈관을 튼튼하게 하여 혈압을 내려준다. 메밀은 다른 곡류와 비교해 볼 때 아미노산의 조합이 뛰어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메밀의 겉껍질은 원활한 변통과 활발한 이뇨작용을 돕는다. 이와 더불어 콜린은 술의 해독작용을 돕는 성분을 가지고 있어 간을 보호한다.

국내 1호 소바전문점 ‘미진’의 소바 상차림. 소바는 몸에 좋은 메밀로 만들기 때문에 한국사람들이 여름철 별미로 많이 찾는 음식이다.

 

 

소바 면의 비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메밀의 색깔을 검은색 한 종류로만 생각하지만 메밀가루의 등급이 높을수록 흰 색을 띈다. 소바 면을 만들기 위해서 메밀가루에 일정량의 밀가루를 첨가하여야 하는데, 이는 메밀가루의 점성이 약한 것을 보완하기 위함이다. 최근 들어서는 밀가루 대신 해조류를 추출하여 가공한 가루를 사용하기도 한다. 메밀가루는 효소가 빠르게 활성화되어 면들 만들어 놓으면 금방 메밀가루 고유의 맛이 없어지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주문 즉시 면을 만들거나 미리 만들어 놓을 경우에는 4°정도의 서늘한 공간에서 보관해야 한다.

 

  • 소바 면은 메밀가루의 등급이 높을수록 밝은 색을 띈다.
  • 1 회색을 띠는 소바 면
  • 2 삶은 후의 소바 면

 

 

소바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에서는 100%의 메밀함유량을 자랑하는 ‘주와리소바’에서부터 ‘1:10’의 비율을 지닌 ‘소토이치’, 2:8의 비율인 ‘니하치’ 등 다양한 종류의 소바를 다룬다. 밀가루가 첨가된 비율만큼 제각기 맛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다양하게 즐기려는 사람들도 많다. 껍질을 벗긴 배유 부분으로 만든 가루를 1번 분 이라하며, 껍질의 함유량에 따라 2번, 3번 분으로 구분한다.

 

소바 맛집 찾아보기

 

 

과거 한국에서는 입학식 날이나 졸업식 날과 같이 특별한 날이 되면 온가족이 모여 중국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지금이야 먹거리가 다양해져서 많은 음식들이 유혹하지만,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자장면에 대한 추억이 하나쯤 있을 정도로 자장면은 우리에게 친근한 음식이다. 불과 백여 년 전 중국인들에 의해 우리나라로 건너왔던 자장면. 이제는 한국인 8명 가운데 1명은 매일 자장면을 먹으며, 전국 2만 4000개의 중국 음식점에서는 하루 평균 600만 그릇의 자장면이 소비될 정도로 인기 있는 음식이 되었다. 자장면은 외래음식으로는 유일하게 한국의 100대 문화 상징에 들어가며 정부의 중점물가 관리 품목으로 선정되어 있기도 하다.

 

 

자장면의 유래

1882년 임오군란당시 청나라 군인들을 따라 국내로 들어온 중국 상인들은 다양한 종류의 중국 음식을 우리나라에 소개한다. 인천에 청관이 설정된 후 많은 청나라 상인들이 거주하게 되었고 1920년 항구를 통한 무역이 활성화 되면서 중국 무역상들을 위한 많은 음식점들이 생겨났다.

 

값싸고 쉽게 맛볼 수 있는 중국의 대중 음식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1945년 해방 직후, 우리 정부는 한국에 건너와 있던 중국 상인들에게 강한 제재를 가하면서 중국 상인들에게 무역을 금지시키자 수입원을 잃은 많은 중국인들은 손쉽게 할 수 있는 음식점을 차리게 된다. 이 당시 생겨난 중국음식점의 개수가 기존의 것보다 무려 다섯 배나 될 정도로 많았다.

 

이처럼 중국 음식점이 증가하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게 되자 청나라 상인들은 부두 근로자들을 상대로 싸고,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개발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음식이 바로 ‘자장면’이다. 이후 이들은 특유의 상업적인 면을 활용해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자장면의 맛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였는데, 국내에서 많이 생산되는 양파와 당근을 넣은 뒤 춘장에 물을 타서 연하게 풀어낸 뒤 소스로 곁들였다. 6.25 전쟁 이후 미국은 전쟁의 피해를 입은 한국에 많은 식품들을 무료로 원조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지원된 것이 바로 ‘밀’이었다. 때마침 쏟아져 나온 값싼 밀가루와 자장소스의 만남은 자장면이라는 모든 한국인이 즐겨먹는 음식을 탄생시켰다.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음식, 자장면

 

 

최초의 자장면은? 인천 차이나 타운의 ‘공화춘’

자장면을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자장면’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판매되기 시작한 곳은 1905년 개업한 ‘공화춘’으로 알려져 있다. 공화춘은 일제시대 때에도 중국 음식으로 상당히 유명한 인지도를 갖고 있던 고급 음식점이었다. 인천에서 공화춘이 성업을 이루자 중화루, 동흥루 등 많은 고급 중국 음식점들이 생겨났으며 그곳에서 제공하는 음식들은 차츰차츰 우리의 입맛에 맞게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 1 자장면의 시초로 알려진 인천 차이나 타운의 공화춘, 건물은 개보수 중이며 자장면 박물관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출처: 네이버캐스트 ‘소읍기행 인천 차이나타운’>
  • 2 인천 차이나타운에 새롭게 문을 연 ‘공화춘’
  • 3 새롭게 문을 연 ‘공화춘’의 자장면

 

 

자장면 가격의 변천사

1960년, 처음 자장면이 대중화되기 시작했을 당시 자장면 한 그릇의 가격은 15원 정도로 상당히 비싼 음식으로 대우받았다. 미국의 밀 원조를 통해 원재료가 저렴한 음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방 초기 자장면은 서민적인 음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장면이 점차 대중적으로 확산되면서 자장면은 서민을 대표하는 음식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후 1970년대에는 200원대를 유지하고 88올림픽을 거치면서 자장면 가격은 서서히 오르다가 1990년에서 2000년대 사이에 급등하게 된다. 1990년대 초기만 해도 1300원이었던 자장면 가격은 2000년 IMF를 지나면서 3000원까지 치솟게 된다. 현재 자장면 한 그릇은 4000원 정도로 판매되고 있지만 자장면 한 그릇의 가격이 여전히 서민들의 피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정도로 자장면은 서민적인 음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자장면

춘장에 물을 넣고 연하게 풀어서 만드는 자장면. 그러나 조금만 속을 들여다보면 자장면은 여러 형태로 우리의 입맛을 공략하고 있다. 처음 자장면을 만들 때만하더라도 옛날자장이 주를 이루었지만 시대를 거치면서 간자장, 유니자장, 쟁반자장 등 대중들의 입맛에 맞게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 1 가장 흔한 자장면, 옛날자장
  • 2 옛날자장보다 기름진 맛이 느껴지는 간자장
  • 3 돼지고기를 곱게 갈아 만드는 것이 특징인 유니자장

 

 

옛날자장은 양파, 양배추, 감자를 굵직하게 썰어서 춘장과 함께 볶다 물과 전분을 넣어 만든 자장면으로 우리가 흔히 자장면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옛날자장이다. 반면 간자장은 춘장에 물과 전분을 전혀 첨가하지 않고 기름에 볶아낸 자장면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바로 볶아내기 때문에 좀 더 기름진 맛이 느껴진다. 유니자장은 유니 혹은 유미 자장으로 불리며 돼지고기를 곱게 갈아서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유니자장은 모든 재료를 곱게 갈아서 사용하기 때문에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삼선(三鮮)자장은 3가지 이상의 해산물이 들어간 자장면을 말하는데 보통 새우나 갑오징어, 건해삼을 넣어서 만들며 재료의 씹는 맛이 충분하게 느껴진다. 쟁반자장은 춘장과 면발을 함께 볶아낸 뒤 커다란 쟁반에 담아내는 자장면으로 2000년대 들어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였으며 부추를 첨가해 볶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과 중국의 자장면

‘장’을 볶는다는 의미의 자장면(炸醬麵). 실제 중국에도 자장면이라는 음식은 존재하지만 한국의 자장면과는 모습부터 다르다. 중국의 자장면은 삶아낸 면 위에 춘장, 숙주나물, 오이, 완두콩 등 다양한 재료를 곁들인 채 비벼 먹는다. 한국의 자장면 맛이 달다면 중국의 자장면은 짠맛이 강하고 중국 특유의 향신료 맛도 강하다. 이에 반해 한국의 자장면은 춘장을 볶다 물을 넣어 짠맛을 연하게 풀어주며, 양파와 양배추 등 야채를 듬뿍 넣어 전체적으로 단맛이 나게끔 만든다.

 

참고 문헌: 양세욱, [짜장면뎐], (프로네시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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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흥하는 자장면 발상지

 

 

예부터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음식을 향토 음식이라 지칭한다. 가장 한국적인 맛이면서도 토속적인 맛이 곁들여져 있는 향토음식은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다른 지방과의 왕래가 쉽지 않았던 제주도의 향토 음식은 육지의 음식과 비교해 볼 때 지방 고유의 특색과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양념을 거의 쓰지 않고 재료 그대로의 맛을 살린 조리법 때문에 제주를 찾는 사람들은 제주의 향토 음식을 빼놓지 않고 즐긴다. 그중에서도 서귀포를 중심으로 마을의 잔칫날이나 큰 행사가 있던 날 즐겨먹던 고기국수는 제주의 삶과 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어 제주를 찾는 이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육수에 수육을 올려 만든 국수

마을의 잔칫날이나 경조사 때 빠지지 않는 제주도 음식, 고기국수

 

 

제주도의 ‘고기국수’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국수 요리로 흑돼지를 고아낸 육수에 수육을 올려 만든 국수이다. 고기국수는 돼지를 한 마리 잡은 후 남은 뼈와 살코기들을 처리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큰 솥에 남은 재료를 모두 넣고 푹 고아낸 뒤 면을 삶아 곁들어 먹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돼지 머리와 살코기들을 사용해 국물을 만들며 건면을 삶아 곁들여 먹는다. 고기국수는 육지에서처럼 마을의 잔칫날이나 경조사 때 손님들에게 대접하며 간단한 식사나 해장을 위해서 제주도 사람들이 즐겨 찾는 향토 음식으로 제주 시내 동문시장과 관광지 삼성혈 주변에는 고기국수 전문식당이 밀집되어 있는 거리가 조성되어있다.

 

 

고기국수의 유래

제주도에서 일반적으로 고기라고 함은 쇠고기나 닭고기가 아닌 돼지고기를 지칭한다. 이는 과거 제주도에서 행해졌던 모든 의례음식에 돼지고기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털과 내장을 제거하지 않은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제단에 올려놓고 지내던 제례뿐만 아니라 무속 제의에도 사용할 정도로 제주도에서 돼지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토산 일렛당에서는 ‘여신이 돼지 발자국에 고인 물을 빨아먹고 일곱 쌍둥이를 낳았다’라고 할 정도로 돼지는 다산과 생산의 주술적 의미로서 중요하게 여겨졌다. 보통 제의식이 끝나면 돼지를 추렴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음식을 만들었는데, 수육을 위해 발라놓은 뼈다귀와 자잘한 고기 덩어리들은 고기국수를 위한 좋은 재료들이었다. 큰 가마솥에 모든 재료를 넣고 마을 행사가 끝날 때까지 푹 삶아낸 뒤 고기는 두툼하게 썰어내고 육수를 담아 고기국수를 완성한다.

 

고기국수의 주재료인 돼지고기와 육수

 

 

하지만 지금의 모양과 같은 고기국수는 1950년 일제 해방이후 만들어졌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건면이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국수를 넣고 말아 먹기 시작하였으며 지금까지 이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논농사를 지을 수 없는 제주도의 경우 메밀과 같은 거친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부드러운 식감을 가진 건면의 등장은 제주 인들에게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건면이 제주에 상륙한 이후 고기국수는 담백한 고기 국물과 곁들어져 자연스레 제주를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고기 국수의 과거와 현재

제주의 향토 음식이라고 알려진 고기국수가 지금의 명성을 얻은 것은 불과 30~40여 년 전의 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일제시대와 6.25 전쟁을 거치며 다양한 식재료와 음식들이 제주에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 이러는 과정 속에서 제주도가 가지고 있었던 전통음식들은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몇몇 집만을 통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고기국수는 1970년대부터 향토음식으로 알려져 육지 사람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박정희 대통령이 시행하였던 국민 식량 자급자족 운동 중 혼-분식 장려 정책을 통해 많은 이익을 얻게 된다.

 

최근 들어 고기국수는 방송과 언론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제주의 지자체 또한 고기국수를 향토 음식 문화체험 대표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주도는 매달 11일을 고기국수데이로 지정하여 국수 거리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즐길 수 있게 하였고 이러한 노력을 통해 고기국수는 제주를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이다.

 

 

고기국수의 맛의 비결

담백하고 깔끔하지만 돼지 특유의 잡냄새가 없는 고기국수

부산의 돼지국밥, 뽀얀 육수를 자랑하는 고기국수는 부산의 돼지국밥 맛을 연상시킨다.

 

 

고기국수의 맛은 담백하고 깔끔하지만 돼지 특유의 잡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얇은 소면으로 삶아낸 면발에 하루 이상 고아내어 뽀얀 육수를 자랑하는 사골육수는 부산의 돼지국밥 맛을 연상시킬 정도로 뛰어나다. 대부분의 업소에서는 돼지 사골 뼈와 돼지 머리를 함께 넣어 육수를 만들며 생강과 통마늘을 넣어 잡냄새를 잡아내는 경우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흑돼지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방과 살의 함량이 육지의 돼지와 비교해 볼 때 월등히 뛰어나기 때문에 고기국수 특유의 ‘배지근한(담백하다는 제주도 방언)' 맛이 나온다.

 

 

닮은꼴 국수 ‘고기국수와 돈코츠 라멘’

 

지리적으로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는 제주와 일본 후쿠오카에서는 닮은꼴 음식을 찾아 볼 수 있다. ‘고기 국수’와 ‘돈코츠 라멘’은 생김새만보더라도 두 음식이 매우 흡사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더욱더 비슷함에 놀라게 된다.

 

잘 삶아낸 편육에 뽀얀 빛깔을 가진 고기 육수는 차슈가 올려진 돈코츠(豚骨) 라멘과 생김새가 똑같다. 그리고 일본 음식이지만 빻아놓은 마늘과 생강을 곁들여서 먹는 것까지 한국식 식습관과 매우 동일하게 느껴진다. 돈코츠 라멘은 진한 국물의 기름진 맛이 인상적인 것에 반해 고기국수는 돈코츠 라멘보다 한층 더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도드라진다는 차이가 있지만 돈코츠 라멘 맛의 유사함 때문인지 제주를 방문하는 일본인 관광객들 또한 제주도의 고기국수를 스스럼없이 즐긴다.

 

일본의 오키나와 지방에는 과거 제주의 음식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그리고 예부터 후쿠오카는 일본 내에서도 오키나와와 빈번히 교류하였고 다양한 문화와 식습관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것을 통해 제주와 후쿠오카에서 비슷한 음식이 탄생된 배경에 돼지가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제주도의 고기국수와 닮은꼴 음식인 돈코츠 라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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