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상위 1%를 위한 국영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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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말경에 북한의 김정은이 부인 리설주와 함께 백화점 판매대를 지나는 모습이 공개되었다. 김정은 부부가 방문한 곳은 대동강변에 지어진 해당화관으로 의류와 화장품 등 판매장은 물론 수영장과 당구장, 목욕탕 등 주민 편의시설과 연회장과 식당 등 현대적 시설을 두루 갖추었다.
김정은은 이곳을 방문하며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메지 않게 하며 새집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제1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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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백화점이나 최근 개장한 해당화관 등 대형 상점은 평양 특권층이나 간부들이 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평양 소재 대성 백화점 등 대형 백화점과 고급식당 등에는 진열장뿐 아니라 창고에도 식료품이 가득 채워져 있다고 한다.

사실 북한에서 그 규모만 봤을 때 가장 큰 백화점은 '평양 제 1 백화점' 이다. 평양 제 1 백화점은 평양시 중구역 승리거리와 서문 거리 사이에 위치해 있는 10층 건물의 백화점으로 약 300명의 종업원이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부유층의 사치심을 채워 주기에 가장 알맞은 곳은 바로 평양시 중구역 창광동에 위치해 있는 '락원 백화점' 이다. 락원 백화점은 주로 세계 명품을 진열해 놓고 결제도 북한 돈이 아닌 달러나 유로화로 받는다고 한다. 입장에도 제한이 있어 공식적으로는 외국인만이 출입할 수 있는 자격이 있으며, 북한의 일부 상류층은 비공식적으로 이곳을 이용한다. 일부 주민들은 눈길만 이 곳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락원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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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원 백화점이 북한 부유층들에게 관심을 받는 이유는 이 백화점이 노동당 제 39호실 관할의 대성 경제 연합체에 직속으로 속해 있기 때문이다. 외화 수입과 외국 선전용으로 관리되는 백화점은 북한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세련된 건물로서 부유층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또한 그 위치가 고위층 간부들이 주로 거주하는 아파트가 위치한 곳과 가깝고 북한 주민들이 이용하는 수영장인 '창광원'과 가까워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평양 대성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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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대성 백화점'도 북한의 3대 쇼핑 메카 중 하나 인데, 평양시 대동강구역 청류동에 위치한 대성 백화점은 보통 북한 백화점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8시간 영업하는 것에 비해, 늦은 시간에 백화점을 찾는 사람들을 위하여 오후 10시까지 운영한다. 이 외에도 외교단 사업 총국 상점, 외화 상점, 련봉 상점 등이 외국인과 북한 부유층들을 대상으로 수입 명품 등의 외국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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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북한의 백화점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선전용이거나 북한 일부 부유층을 위해 존재합니다. 북한의 상류층들이 백화점에 출입하고 열광하는 이유는 누구의 말대로 '철저히 차별과 불평등을 추구하는 상위 1%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본주의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의 백화점 모습은 결국 사회주의로써의 북한 사회가 결국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하나의 창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백화점은 일부 부유층, 특권층만을 위한 장소가 아닌 누구나 그 시설들을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있는 장소로 인식되고 있는데(물론 일부 명품관들은 들어가기에 겁이 나는 것도 있지만... ㅠㅠ). 영화관과 식당 가 등 문화의 메카로 변모하고 있는 한국의 백화점과 같이 북한의 백화점도 주민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 되는 날이 하루 빨리 찾아왔으면 한다.

[농민시장과 장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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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시장은 식량 및 상품의 공급이 충분하지 못했던 1970년대부터 인민의 생계를 상당 부분 책임지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국가의 식량 및 생필품 공급이 자주 중단되면서 트랙터 부품까지도 거래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농산품 외에도 여러 상품을 거래하게 되면서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는 ‘장마당’으로 변하였다. 한편 유휴자재를 사용한 ‘.3인민소비품’*북한의 김정일이 지난 84년 8월 3일에 부산물과 폐기물을 이용해 생활필수품을 많이 만들라는 지시에 따라 만든 재활용품을 ‘.3인민소비품’이라 부른다)의 생산이 활성화 되었다.

북한주민에게 농민시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국영상품의 부족으로 사업소가 운영되지 않으면서 주민들은 필요한 물품들을 조금씩이나마 장마당에서 구입하게 되었으며 개인들의 사적 생산물이나 탈취품도 농민시장에서 거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상품이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농민시장이 더욱 활성화되었다. 한국 및 국제사회의 지원품들도 장마당에서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종합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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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2002년 7월 1일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실시하여 물가와 임금의 대폭적인 인상을 단행하였다. 이와 병행하여 2003년 농민시장을 ‘종합적인 소비품’시장으로 확대하여 농산품 이외 상품들의 판매를 공식적으로 허용하였다. 일반 주민들도 시 상업국으로부터 매대를 임대해 각종 공산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전부터 농민시장은 ‘종합시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으나, 북한 정부가 뒤늦게 이를 ‘현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북한에서 시장이 확산되면서, 정부의 간섭과 감시도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확산을 막아야 할 간부들조차 시장이 없이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 종합시장을 운영하는 주체는 각 행정단위들이기 때문에 폐쇄가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을 통해 세금이 징수되고 있는데다가, 지역 당 간부들의 불법적 수입원이기도 하므로 폐쇄가 쉽지 않다. 현재 북한의 시장은 당 간부를 포함한 권력자들의 주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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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인 종합시장인 신의주 채하시장의 경우 매대에 진열한 중국산 제품은 플라스틱 접시, 사기그릇, 유리컵, 물병, 슬리퍼, 샴프, 화장품, 세제, 칫솔, 등이며 특히 북한 대도시의 신축주택은 샤워시설을 갖추고 있어 고위층, 부자집 아줌마가 선호하는 샤와기와 여름옷이 매대에 가득 차 있었다. 또한 수입되는 수박, 바나나, 복숭아, 자두 등도 목격되었으며 시장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현미쌀, 옥수수, 수수, 감자, 콩기름(페트병), 고춧가루, 생선 등을 판매하는 식품매대였으며, 상인들은 추가달린 저울을 이용하여 곡물의 무게를 재어 판매하고 전자저울은 틀린 경우가 많아 사용하지 않는다.

시장 한곳은 국밥, 냉면, 음료수 등을 판매하거나 배달 판매하는 곳도 있으며 상인들 간에는 당장 현금을 받지 않고 외상장부 거래를 하는 등 우리의 시골장터와 다를 바 없다.
한편 남자가 장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원래 50세 미만 여성은 장사행위를 금지하도록 되어 있으나 보안원이 단속하려고 하면 온 몸을 던져 저항하는 경우가 허다하여 예전처럼 단속하지 못한다고 한다.

북한의 종합시장은 통일거리사장을 본보기로 중구시장이 문을 열고 해주시장을 비롯해 지방도시에서도 현대식으로 새로 지은 시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평양에는 송신시장, 칠골시장, 서성시장 등 18개 구역(남쪽의 구에 해당)별로 1∼3개의 시장이 있고, 전국적으로 300여개의 시장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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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열차는 전력사정으로 시골마을에서 오랫동안 정차하는 경우(심지어는 2∼3일간)가 많은데 그 때 마을 주민들이 열차 탑승객을 대상으로 야시장을 열어 음식을 판매하면서부터 생겼다고 한다.
2010년 7월초 평안북도 국경지역에서는 최근 밤에도 시장수요가 급증하고 당국의 시장통제가 약해지면서 새벽까지 장사하는 야시장이 암암리에 운영되고 있었다.
상인 20∼30명의 노점규모로 마을 입구에 좌판을 깔아 놓고 기차를 타고 밤에 도착한 여행자나 늦게 귀가하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꽈배기, 순대, 건어물 등 식사용의 먹을거리를 손전등으로 손님과 흥정하며 새벽녘까지 장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야밤에 소규모 상인들의 장사행위를 단속하는 보안원은 없으나 개인의 상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시’식량배급이 중단되자 식생활에 도움이 되고자 야시장이 활발해지기 시작했으며 장사꾼들은 손전등이나 카바이트 램프를 켜고 음식, 잡화, 의류를 판매하는데 통상 야시장은 아파트로 둘러막힌 공터나 골목길 등에서 새벽 6시까지 열린다고 한다.

 

[메뚜기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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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북한에서 장마당이 합법화되면서 북한 당국은 시장 건물을 지어 상인들에게 장사할 공간을 배분했다. 판매대 폭은 좌우 70cm 내외다. 양강도 혜산에서 약장사를 했던 김정화(가명․40)씨는 “짐을 풀면 가득 찰 정도로 비좁은 자리”라며 “한줄에 80~100명의 장사꾼들이 앉아 같은 종류의 물품을 판다”고 설명했다. 그녀에 따르면 상설시장 매대는 쌀, 공산품, 옷, 고기 등 품목별로 구분돼 있고, 상인들도 품목별로 같은 색의 옷을 입는다.
하지만 상설시장에서 장사하기 위해서는 장세(자릿세)를 내야 한다. 김씨는 “장세는 매일 내야하며 판매하는 물품에 따라 액수가 다르다”고 말한다. 장세를 받는 사람은 시장관리원들이다. 이들은 돌아다며 장세를 받고 영수증으로 매일 다른 표시가 된 딱지를 나눠준다. 또 금지 품목을 파는지 단속한다. 김씨는 “물건을 뺏기지 않기 위해 관리원들과 다투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담배나 돈을 조금 쥐어주면 봐준다”고 설명한다.

장세를 낼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은 상설시장 밖에서 장사를 한다. 함경북도 청진에서 군부대 외화벌이를 했던 강철(가명․54)씨는 “허가된)장마당 이외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단속대상”이라며 “이들은 항상 도망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다. 일명 ‘메뚜기장사꾼’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단속원이 나타나면 잽싸게 물건을 챙겨 달아났다, 단속원이 사라지면 다시 판을 벌려 장사한다. 우리나라의 노점상에 해당된다고 보면 된다. 북한관련 소식통에 의하면 "화폐개혁으로 인해 크게 손해 본 중간층 사람들이 하층민으로 전락한 탓"이라고 한다.

 

[출처 : 남북만남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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