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에 대한 이해
율법 이전 시대의 십일조
십일조는 소득이 발생했을 때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곳이 창세기였습니다. 율법 이전부터 있어왔다는 것입니다.
(창 14: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 28: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율법시대의 십일조
(레 27:30)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레 27:31) 또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십일조를 무르려면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할 것이요
(레 27:32) 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의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
(민 18:21)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민 18:2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 고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민 18:26) 너는 레위인에게 고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취하여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취할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민 18:28)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
(신 12:6)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신 12:1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한 곳을 택하실 그곳으로
나의 명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신 12:17) 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우양의 처음 낳은 것과 너의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너의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너의 각 성에서 먹지 말고
(신 14:22)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신 14:23)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신 26:12) 제 삼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역사서에 보이는 십일조
(삼상 8:15)그가 또 너희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취하여 자기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대하 31:5)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처음 것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
(대하 31:6)유다 여러 성읍에 거한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왔고
또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릴 성물의 십일조를 가져왔으며
그것을 쌓아 더미를 이루었는데
(대하 31:12)성심으로 그 예물과 십일조와 구별한 물건을 갖다두고 레위 사람 고나냐는
그 일을 주관하고 그 아우 시므이는 버금이 되며
(느 10:37)또 처음 익은 밀의 가루와 거제물과 각종 과목의 열매와 새 포도주와 기름을 제사장들에게
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에 두고 또 우리 물산의 십일조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였나니 이 레위 사람들은 우리의 모든 성읍에서 물산의 십일조를 받는 자임이며
(느 10:38)레위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을 때에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 하나가 함께 있을 것이요
레위 사람들은 그 십일조의 십분 일을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 곧 곳간에 두되
(느 12:44)그 날에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법에 정한
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인하여 즐거워함을 인함이라
(느 13:5)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갖추었으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기명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라
(느 13:12)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예언서에 나타난 십일조
(암 4:4)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말 3:8)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말 3:10)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특별구제를 위한 십일조
(신14:28~29)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3년마다 따로 구제를 위한 십일조를 모아서 구제를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국민들로부터 십일조를 받아서 그 십일조의 십분지 1은 제사장들에게 드리게 하였고 나머지를 레위인들이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구약 성경서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만 신약 시대에는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유대인들이 아니고 레위 지파도 없으며 제사장도 없습니다. 단지 구약의 교훈을 따라서 십일조를 드리고 있는 것뿐입니다.
사용하는 원칙도 구약시대의 직제와는 다르기 때문에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만약 성도 가정이 12 가정밖에 안되고 목회자 가정이 한 가정이라면 구약 시대의 십일조 원칙에 따라서 하면 무난할 것입니다.
12 가정에서 1/10 을 드리면 목회자 가정에서는 일반 가정의 평균소득 정도의 목회자 생활비가 마련되어 무난한 제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일반생업이 없이 교회 일에 전무하게 되는 사람의 수가 전체성도 수의 1/12 정도 되어 있는 구조라면 그렇게 구약 성경의 제도를 따라서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는 그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드려진 십일조를 은퇴목사, 담임목사, 부목사, 전도사, 사무장, 사무원, 운전기사, 사찰, 등의 직임을 맡아서 일하는 분들의 생활비로 사용하고 남으면 개척교회, 혹은 작은 교회, 또는 해외 선교사 등 주님의 일을 위해서 생업이 없는 모든 분들의 생활비로 사용하고 그리하고도 여유가 있다면 신학생들의 학비와 신학대학교의 교수들 생활비로 사용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는 교회는 대한민국에 단 한 교회도 없을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십일조를 내게 해서 자기 교회 발전을 위해서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십일조의 사용
십일조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구제를 위해서는 우리가 3년마다 다른 십일조를 하는 교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정부에 세금을 내고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 구제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나 정부의 구제가 미흡한 곳에 교회가 돌아보아야 하지만 이것마저 목회자들의 욕심 때문에 거의 이루어질 수 없는 공론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구약 성경에 나오는 율법은 지금과 같은 사회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그 때는 이른바 신청통치 시대였습니다. 왕이 없었고 공무원도 없었습니다. 단지 재판하는 사람들만 있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사사들입니다. 종교가 정치를 겸하고 있었던 시절입니다. 즉 제정일치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십일조와 첫 열매만 드리면 다른 세금은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사울 왕이 등극하게 되었고 이어서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지나면서 남북 왕조가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왕정이 들어서면서부터 국민들은 십일조 외에 세금을 내게 되었고 부담이 커졌습니다.
처음에 십일조 제도를 명령하실 때는 왕정이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오늘은 국민들이 상당히 많은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게다가 다시 교회에서 너무 많은 헌금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힘에 지나도록 헌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욕심과 야망 때문에 성도들이 혹사를 당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불신자들도 교회가 너무 많은 헌금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로만 가톨릭은 1/30 정도를 내고 있지만 그나마도 온전하게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독일 국민들은 약 1%~2% 정도의 종교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거기 비하여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과도한 헌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끝없이 헌금과 십일조에 관한 질문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달라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 옛날 제사장들이 하던 일들을 정부가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약성경에 기록된 십일조 제도가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신청통치 시대에 다른 세금이 없이 드리는 제도였다는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어떤 목회자들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 1천 번제, 3천 번제, 5천 번제, 1만 번제, 3반 번제, 5만 번제, 심지어 지금은 10만 번제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검색해 보시면 실제로 10만 번제를 드린다고 자랑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은혜도 진리도 사랑도 바르게 가르치지 않으면서 과도한 헌금만을 강조하면서 기복주의 신비주의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교회를 바라고 보면서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어느 한 사람도 인식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성경을 보실 때에 단지 문자로만 보시지 말고 그 시대의 특성과 배경을 함께 살펴 보셔야합니다.
제 드리는 말씀은 십일조를 드리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부에 세금을 내고도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성도들에게는 힘에 겨운 일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사용하는 교회는 성경이 가르치는 정신을 따라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십일조만 해도 부담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일천번제나 과도한 임직헌금을 강요하는 작태는 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육시간에만 가르칠 것이요 예배 시간에 설교자가 헌금과 십일조와 같은 소리들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허구한 날 헌금 바치면 복받는다는 미신 같은 소리가 강단에서 흐르고 있는 한 한국교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정리를 하자면 지금의 교회가 십일조를 드리게 되는 것은 율법을 따라서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신약시대의 교회가 흘러오는 중에 교회법으로 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성도가 드리는 것은 율법을 따라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교단에서 그렇게 정한 것을
교회가 수용하였기 때문이며 세례교인으로 세례를 받을 때에 그렇게 드리겠다고 스스로 서원을 했기 때문에 드리는 것으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세례문답할 때 그렇게 배우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이제와서 십일조에 대하여
질문하는 것은 세례를 받을 때에 형식적으로 혹은 건성으로 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활절 이미지 모음 (0) | 2016.03.26 |
---|---|
고난절 이미지 모움. (0) | 2016.03.26 |
5만번 기도 응답받은 '뮬러'를 변화시켰던 성경구절 (0) | 2015.05.26 |
한눈에 보는 구약성경 연대기로 분류 ~ 한눈에 보는 신약성경 (0) | 2015.03.19 |
12 사도의 최후 (0) | 2015.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