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혈인 농구선수 장예은 자매 간증/제 꿈은 이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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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혈아 농수선수 장예은 “하인스 워드 만나고 싶어요” [2006.04.03]

 

 

[장예은 선수와 워드는 아프리카계 혼혈아다]


“워드를 꼭 한번 만나고 싶어요.” 3일 오후 어머니 김영희씨와 함께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하인스 워드(30·피츠버그 스틸러스)의 방한을 누구보다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여자프로농구 장예은(19· 178cm· 우리은행)선수다.


아프리카계 혼혈아인 장 선수의 피부는 워드처럼 까맣다. 어린시절 생김새 때문에 남몰래 눈물지으며 부모를 원망한 적이 있는 장 선수는 지난 2월 미국 프로 풋볼 리그(NFL) 슈퍼볼에서 워드가 최우수 선수로 선정됐을 때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워드는 장 선수에게 보이지 않는 힘이 됐다.


“워드의 성공기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장식한 이후부터 혼혈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경계의 눈빛이 살아가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었는데 워드가 그 장벽을 무너뜨리는데 일조를 한거죠.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쳐다보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어요. 우리나라의 혼혈아는 대부분 워드처럼 홀어머니와 사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엄마와 단둘이 살았어요. 힘겹게, 아주 힘겹게….”


 

 

[식당, 공사장, 파출부…, 고생했던 우리엄마]


지난해 12월 우리은행에 입단한 장 선수는 첫 월급을 고스란히 어머니 장영신씨(49)손에 쥐어주며“엄마 병도 치료하고,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옷 사 입으라”고 말했다. 장씨는 딸의 손을 꼭 잡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엄마는 식당, 공사장 인부, 파출부 등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오직 저 하나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헌신하셨어요. 우리나라에서 혼혈인으로, 그것도 흑인계 혼혈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마치 가시밭길을 걷는 것과 같아요. 상처받고 그 상처가 아물기 전에 또 다시 상처받고.”


장 선수는 4살 때 두 남동생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난 주한미군 출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어릴 적 집에 불이 나 아버지의 연락처를 적어둔 쪽지가 타는 바람에 미국에 있는 아버지, 남동생들과의 연락이 두절됐다.


“아빠가 우릴 찾으려고 맘만 먹으면 찾을 수 있을 텐데….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죠. 엄마에게 아빠가 어떤 분인지 묻지 않았어요. 엄마 마음이 더 아프고 아릴 것 같아서요. 때가되면 친구 소개로 아빠를 만나 연애하던 시절의 이야기며 두 남동생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던 지난날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시겠지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일초등학교에서 농구를 시작한 장 선수에게 농구는 안식처이자 희망이었다. “사춘기 때 자신의 처지와 가난을 비관해 엄마에게 반항하기도 했다”는 장 선수는 “그 때 엄마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고 고백했다. 장 선수는 철없던 시절 엄마를 힘들게 한 기억을 떠올리며 슬럼프가 찾아와도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뛰고 또 뛰었다.


 

[농구는 나와 엄마의 희망]


“농구는 저의 희망이기도 하지만 엄마의 희망이기도 해요. 엄마는 2년 전부터 당뇨와 협심증을 앓고 있어요. 아픈 엄마를 보면 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저에게 늘 미안해 하셨어요. 슬픈 눈으로 절 바라보곤 하는데. 그럴때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곤 해요. 우리은행에 입단이 결정되자 ‘엄마 병원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라고요. 엄마의 건강도 되찾아 드리고 단칸방 신세도 면하게 해 드릴 거예요. 지금까지 엄마가 저를 위해 모든 삶을 바쳤는데 이젠 제가 엄마를 돌봐 드려야죠.”


“워드처럼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다”는 장 선수. 가난과 갖은 편견을 딛고 우뚝 선 워드를 만나 그의 손을 잡고 “나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는 장 선수의 작은 소망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흥국생명 - 세상엿보기] 김순희 기자

혼혈의 편견을 딪고 우뚝 선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 장예은 선수

▲ 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장예은 선수

여자프로농구(WKBL) 겨울시즌이 열리는 서울 장충체육관. 아직 경기시작 전이지만 시합 전에 몸을 푸는
선수들의 짧은 기합소리와 날렵한 몸짓이 경기장을 달구고 있다.
열심히 뛰어다니는 선수들 틈에서 유난히 밝은 표정과 여자선수 특유의 경쾌한 파이팅소리를 외치는 선수가 
있다.  외모는 분명 같은 팀 미국에서 온 용병 캐싱선수와 똑같이 생긴 흑인의 모습인데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분명 유창한 우리 말이다.

여자프로농구(WKBL) 춘천 우리은행에 작년 11월 입단한 장예은선수. 그녀는 흔히 말하는 혼혈인이다.

주한미군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장예은선수가 4살 때 그녀와 그의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버렸다.
“어린 시절은 울었던 기억이 많아요. 아빠가 떠나버린 후론 엄마 혼자 우는 일이 많았죠. 
엄마가 울 때마다 제 마음도 너무 아팠어요. 모든게 저 때문인 것 같았거든요.”

그의 어린 시절은 눈물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나보다. 자기 어린 시절을 들려주던 그의 눈가엔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아직 여자 프로농구 선수 장예은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않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단 한번도
시합에 출전해본 적이 없는 이제 프로에 갓 입단한 신출내기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여자프로농구 경기장면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얼굴을 쉽게 기억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그의 외모 탓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곱슬고습한 머리카락, 4살 때 그와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버린 흑인 아버지를 닮았다. 남들과 다른 그의 피부색은 다른 사람보다 곱절이나 힘든 삶의 굴곡을 겪게 했다. 우리 사회의 폐쇄적인 인종주의와 순혈주의 때문에 아버지 없는 설움을 겪기보다는 그의 피부색에 대한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그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그런 그에게 농구가 친구가 되어줬다면 신앙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아빠가 떠나고 엄마는 자주 우셨어요. 엄마가 울 때마다 꼭 저때문인 것 같아 밖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녔죠. 그러다가 6살 때 처음 교회란 곳엘 가봤어요.”
혼혈인 그의 외모 탓에 사람들이 언제나 이상한 눈길을 보냈지만 그가 다녔던 엘림교회에서만은
그렇지 않았다. 가족이 그리웠던 그에게 따뜻한 사랑이 되어줬고 교회에서 드리는 찬양은 그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교회에 있는 시간이 그에게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교회에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 일주일
내내 주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했었다.
농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것일까.
“사실 집이 가난해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됐지만 학교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
그런데 마침 앞집에 근처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사셨는데 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죠. 그리고 엘림교회 이영주목사님(현재 효진교회)이 제 이름을 ‘예수님의 은혜’라는 의미로 예은이라고 바꿔주셨어요.”

그는 힘들고 외로운 삶이지만 지금 이순간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름의 의미대로
예수님의 은혜라고 믿고 있다.
“농구를 처음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때였어요. 저를 도와주시던 목사님 한분이 하루는
 ‘예은아, 축구해 볼 생각없냐’고 물어보시면서 잘 아는 축구선생님 한분을 소개해주셨어요. 그런데 그 분이 저를 보시더니 ‘축구로 성공할 수 있는 몸은 아니고 농구를 하면 잘 하겠다’며 농구를 권해주시더라구요.”

농구를 시작하기로 결정한 뒤 그는 다니던 문산동초등학교에서 농구부가 있는
선일초등학교로 전학을 갔고 농구부에 들어갔다. 가난한 형편에 많이 먹지 못해서 또래보다 마른 편이었지만 큰 키와 좋은 탄력으로 초등학교 6학년 쯤에는 덩크도 쉽게 하곤하는 유망주가 됐다.

농구라는 새로운 희망을 찾았지만 그의 인생에서 고난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질긴
인연인가보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뒷바라지를 위해 새벽4시부터 일어나 쉬는 날도 없이 노무일이며 식당일을 해왔지만 평소에도 건강이 좋지않았던 그의 어머니는 지금 심장병과 협심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철이 들지 않았을 때는 원망도 많이 했어요. 커가면서 여기 한국에서 혼혈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게되면서 왜 나를 태어나게 했냐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많이 따지기도 했어요.”

그러나 혼혈에 대한 주위의 시선이 따가워 상처받고, 집이 가난해 학교조차 다니기 어려울
때에도, 농구에 슬럼프가 찾아와 더 이상 농구공을 잡고 싶지않을 때에도 그는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었고,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그에게 위로해주셨다.
“제가 힘들 때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응답하셨어요. ‘너는 내 딸이다. 내가 너를 낳았고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대장장이가 좋은 칼을 만들기 위해서 더많이 때리고 달군다고 했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시절을 딛고 일어선 경험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장예은 선수가 겪은 고난의 순간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준비한
연단기간이 아니었을까.
장예은 선수 역시 이런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를 힘들게
 만들었던 수많은 고난의 순간들을 이기고 지금 이 순간까지 앞만 보며 달려온 것이다.

매년 여자프로농구(WKBL) 협회가 드래프트를 통해 뽑는 신인의 수는 대략 40여명.
그 중에서 실제로 각 팀과 계약하게 되는 선수가 25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장예은

선수가 드래프트에 뽑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가능성있는 선수라는 것을 말해준다.
“예전에 ‘공부해서 남주자’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위대한 자가 꿈꾸는 것이 아니라 꿈꾸는
자가 위대하다고 하더군요. 하나님 앞에서 영광을 돌릴 수 있는 훌륭한 농구선수가 되는게 제 꿈이예요.

 혼혈에 대한 주위의 안좋은 시선들이 많지만 전 똑같은 하나님이 창조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하나님이 제게 주신 농구라는 재능으로 영광돌리는 사람이 되겠어요.”


[기독교연합신문] 김찬현 기자 [chkim@igoodnews.net]     2006-02-28

 
장예은자매님의 간증과 기사내용을 보고, 저희 성도들 모두가 은혜속에서
 
뭉클한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모든 고난의 연단과정을 꿋꿋하게 믿음과 기도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장하시는 아름다우신 장예은 자매님의 모습속에,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크나큰 감동과 감사한 마음속에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장예은 자매님과 어머님을 위한 1차 기도제목*:
 
1)당뇨병과 협심증을 앓고 계시는 어머님의 병환 완괘를 위해서 
 
                  2)가정에 평화와 안정된 생활을 위해서
 
3)하나님께서 내리신 은사의 달란트를 받으신 장예은자매님의 손길과 지혜를 통하여
 
세상끝까지 훌륭한 믿음의 농구선수로서 승리의 나날이 되시길
 
저희들 모두가 소망하는 마음속에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장예은 자매님! 힘 내세요... 저희들은 장예은 자매님이
 
축복속에서 승리의 나날이 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축복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리라,<약1:2~3>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 아멘 "
 
<세명공동체 회원,성도,사역자 일동올림>
 
   [세명선교교회 & 세명의료복지선교회]
http://www.smmiss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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