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예은 선수와 워드는 아프리카계 혼혈아다]
“워드를 꼭 한번 만나고 싶어요.” 3일 오후 어머니 김영희씨와 함께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하인스 워드(30·피츠버그 스틸러스)의 방한을 누구보다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여자프로농구 장예은(19· 178cm· 우리은행)선수다.
아프리카계 혼혈아인 장 선수의 피부는 워드처럼 까맣다. 어린시절 생김새 때문에 남몰래 눈물지으며 부모를 원망한 적이 있는 장 선수는 지난 2월 미국 프로 풋볼 리그(NFL) 슈퍼볼에서 워드가 최우수 선수로 선정됐을 때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워드는 장 선수에게 보이지 않는 힘이 됐다.
“워드의 성공기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장식한 이후부터 혼혈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경계의 눈빛이 살아가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었는데 워드가 그 장벽을 무너뜨리는데 일조를 한거죠.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쳐다보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어요. 우리나라의 혼혈아는 대부분 워드처럼 홀어머니와 사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엄마와 단둘이 살았어요. 힘겹게, 아주 힘겹게….”
[식당, 공사장, 파출부…, 고생했던 우리엄마]
지난해 12월 우리은행에 입단한 장 선수는 첫 월급을 고스란히 어머니 장영신씨(49)손에 쥐어주며“엄마 병도 치료하고,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옷 사 입으라”고 말했다. 장씨는 딸의 손을 꼭 잡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엄마는 식당, 공사장 인부, 파출부 등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오직 저 하나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헌신하셨어요. 우리나라에서 혼혈인으로, 그것도 흑인계 혼혈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마치 가시밭길을 걷는 것과 같아요. 상처받고 그 상처가 아물기 전에 또 다시 상처받고.”
장 선수는 4살 때 두 남동생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난 주한미군 출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어릴 적 집에 불이 나 아버지의 연락처를 적어둔 쪽지가 타는 바람에 미국에 있는 아버지, 남동생들과의 연락이 두절됐다.
“아빠가 우릴 찾으려고 맘만 먹으면 찾을 수 있을 텐데….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죠. 엄마에게 아빠가 어떤 분인지 묻지 않았어요. 엄마 마음이 더 아프고 아릴 것 같아서요. 때가되면 친구 소개로 아빠를 만나 연애하던 시절의 이야기며 두 남동생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던 지난날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시겠지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일초등학교에서 농구를 시작한 장 선수에게 농구는 안식처이자 희망이었다. “사춘기 때 자신의 처지와 가난을 비관해 엄마에게 반항하기도 했다”는 장 선수는 “그 때 엄마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고 고백했다. 장 선수는 철없던 시절 엄마를 힘들게 한 기억을 떠올리며 슬럼프가 찾아와도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뛰고 또 뛰었다.
[농구는 나와 엄마의 희망]
“농구는 저의 희망이기도 하지만 엄마의 희망이기도 해요. 엄마는 2년 전부터 당뇨와 협심증을 앓고 있어요. 아픈 엄마를 보면 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저에게 늘 미안해 하셨어요. 슬픈 눈으로 절 바라보곤 하는데. 그럴때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곤 해요. 우리은행에 입단이 결정되자 ‘엄마 병원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라고요. 엄마의 건강도 되찾아 드리고 단칸방 신세도 면하게 해 드릴 거예요. 지금까지 엄마가 저를 위해 모든 삶을 바쳤는데 이젠 제가 엄마를 돌봐 드려야죠.”
“워드처럼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다”는 장 선수. 가난과 갖은 편견을 딛고 우뚝 선 워드를 만나 그의 손을 잡고 “나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는 장 선수의 작은 소망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흥국생명 - 세상엿보기] 김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