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약성경의 배열
① 모세 5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② 역사서(歷史書)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③ 시가서(詩歌書)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④ 예언서(豫言書):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 성경은 연대 순서대로 편성된 것이 아니라 특성에 따른 배열이기 때문에 연대 순서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예1) 예언서인 "예레미야書"는 바벨론 포로 이전과 포로시기에 기록된 글로서 예언서 그룹에 편성되어 있는데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후에 기록된 "역대하"는 역사서이므로 앞부분에 배열되어 있다.
[렘 25:11] 유다 민족이 바벨론에 70년간 포로될 것을 예언.
[대하 36:21] 예언 성취됨
예2) 예언서인 "이사야書"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기 100여년 전에 기록된 글로써, 예언서 그룹에 편성되어 있어서 23번째 편성되어 있지만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온 이후에 기록된 에스라書는 역사書로 분류되어 15번째 배열되어 있다.
[사 45:1] 바벨론의 포로 상태에서 고레스에 의해 해방될 것 예언.
[스 1:1 ] 예언 성취됨
2) 신약성경의 배열 : 구약성경과 마찬가지로 연대순서가 아닌, 특성에 따라 배열되었다.
① 4복음서(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성경) :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 마태, 마가, 누가의 3복음서에 비해 요한복음은 20∼30년 뒤에 기록되었다.
② 역사서(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성경) : 사도행전
③ 편지서 :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 여행서신(바울이 여행하면서 보낸 편지서) : 로마서 ∼ 데살로니가후서
- 목회서신(바울이 목회자들에게 보낸 편지) : 디모데전서 ∼ 디도서
- 옥중서신(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에 보낸 편지) : 에베소서 ∼ 빌레몬서
④ 일반서신(특정한 수신자가 정해지지 않은 서신) :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 1서, 요한2서, 요한3서, 유다서
⑤ 예언서 →요한 계시록
(예) 베드로후서는 신약 성경 가운데 22번째 배열되어 있지만 네 번째 배열된 요한복음보다 먼저 기록된 책이다.
[벧후 1:14] 베드로는 자신이 육신을 벗어날 날이 가까웠음을 기록.
[요 21:19 ] 베드로의 사후(死後)에 기록되었음을 증거
3) 성경의 언어
성경이라는 뜻의 영어 번역인 [Bible:바이블]은 헬라어 비블로스(책)에서 유래되었다.
1)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구약성경 중 일부(스 4:8∼6:18, 7:12∼26, 렘 10:11, 단 2:4∼7:28)는 바벨론에서 사용하던 아람어로 기록되었는데 바벨론 포로 이후 유대인들은 히브리어와 아람 방언을 함께 사용하였다고 한다.
2) 신약성경은 당시 세계적으로 사용하던 헬라어를 사용( 헬라어는 주후 1세기경에 로마 제국의 통용어가 됨 )
신약 성경을 기록할 때 히브리어나 아람 방언으로 기록하지 않고 헬라어로 기록한 이유는 이방 지역의 복음의 전파를 위해서였다. (알렉산더의 동방
정복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지방이 헬라어를 사용하였기 때문)
4) 성경의 특징
성경은 구약성경을 맨 먼저 기록한 모세로부터 신약 성경을 맨 나중에 기록한 사도 요한까지 약 1600여년에 걸쳐 기록되었다. 성경의 저자는 수십 명에 달하며, 다윗과 같이 왕의 신분인 경우도 있었고 아모스와 같은 목자 출신(암 1:1)의 저자도 있었는데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상황 속에서 성경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될 사실은, 모든 선지자들에게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성경의 저자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말씀이 일목요연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모든 말씀들이 권위가 있고 또한 예언한 것이 성취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거룩한 경전(經典)으로 읽혀지고 있다.
5) 정경과 외경
1) 정경(正經) → 현재의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을 가리킴.
구약 39권은 히브리 전통적으로 정경으로 인정되었음.
2) 외경(外經) → 여러 차례의 성경 심사에서 정경에 들지 못한 책(약 14권)
주전 400년경의 말라기 선지자 이후 예수님께서 오시기 이전까지의 역사 시대에 기록된 책들임. 도덕적 수준이 낮고 교리적인 모순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역대의 히브리 전통으로도 정경에 채택된 적이 없음[참다운 가치가 없다고 하여 가경(假經)이라고도 함]. 예수님께서도 외경을 인용하여 설교하신 적이 없음.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3과) | |||||||||||||
3. 성경의 역사적 개관 | |||||||||||||
? 2166 1876 1446 1406 1367 1050 930 586 536 400 4 30 100
창-------출-----민----수---삿---삼상--열왕기--겔--에,느------------신약성경 욥 레 신 룻 삼하 역대기 단 스 바울서신 시,잠,아 호,암,오, 습,학,말 공동서신 욘,미,나, 복음서,행 합,사,렘 요한서신 | |||||||||||||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던 때에 우주를 창조하셨으며, 사람을 지으시고 그들에게 우주를 관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단의 유혹을 받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다가 에덴에서 추방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사단을 정복할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후에 사람들의 죄는 형제간의 살인으로 이어졌으며, 마침내 전 사회를 가공할만한 세력으로 오염시키고 말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홍수를 통해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을 통해 인류를 보존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홍수 후에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그들은 온 땅에 흩어지지 않고 한 곳에 모여 바벨탑을 쌓아 홍수를 막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만들어서 그들을 각 지역으로 흩어지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온 세상에 흩으신 후에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은 때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약간 다릅니다. 아브라함의 출생연도를 주전 2166년(후기설-1800년)으로 보는 경우, 그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대(75세)는 주전 2091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그 친구들과 환경에서 격리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약속 하나만 믿고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무조건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중요한 시점에 구원 역사의 중심지를 남 메소포타미아 지역인 우르에서 전략적 위치인 가나안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들이 하란에 있을 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부친인 데라를 데려가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신앙 공동체의 조상이 될 아브라함의 시대를 여셨습니다.
8. 분열왕국 시대(B.C. 930-586)
우리는 지금까지 성경에 기록된 사건을 13시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여기에서 마치고 다음 시간에는 가나안 종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다음 주에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샬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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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연 대 표
(2004. 10. 12. 최성관 편. 오픈성경과 New 베스트성경 참조)
BC ? 천지창조ㆍ타락
? 노아 대홍수
? 바벨탑 사건과 인류 분산
족장시대
2166 아브라함의 출생
2091 아브라함의 하란 출발
2091 아브라함의 가나안 이주
2080 이스마엘의 출생
2067 할례언약 체결
2066 이삭의 출생
2006 에서?야곱의 출생
1915 요셉의 출생
1885 요셉의 애굽 총리 발탁
1876 이스라엘 조상들의 애굽 이주
1805 요셉의 죽음
? 욥의 시대
1527 모세의 출생
1487 모세의 미디안광야 도피
1447 애굽에 내린 10대 재앙
출애굽과 가나안정복 (1446-1375)
1446 출애굽
시내산 율법 수여
1445 성막건축
인구조사
레위기 율법계시
제사장 위임식
시내산-광야 방황-가데스로 진행
1406 아론의 죽음
모압광야 도착ㆍ2차 인구조사
요단동편 점령 및 분할
모세의 고별설교(신명기 기록)
후계자 여호수아 등장
모세의 죽음
1405 가나안 입성 및 성전 수행
1400 가나안 정복완료 및 가나안땅 분할ㆍ도피성 설치
1390 여호수아의 죽음
사사시대 (1375-1050)
1374 웃니엘사사의 활동(1367-1327)
1316 에훗사사의 활동(1309-1229)
1216 드보라사사의 활동(1209-1169)
비락사사
1169 기드온사사의 활동(1162-1122)
1103 사무엘의 출생
입다사사의 활동(1078-1072)
1091 사무엘이 소명 받음
1075 삼손사사의 활동(1075-1055)
미스바의 회개운동
통일왕국시대 (1050-930)
1050 사울이 기름부음 받음ㆍ왕정시대의 시작
1040 다윗의 출생
1025 다윗이 기름부음 받음
1020 다윗이 골리앗과 싸움
1017 사무엘의 죽음
1010 사울의 죽음
다윗의 등극(1010-970)
1003 다윗의 예루살렘성 정복
언약궤의 예루살렘성 안치
991 다윗과 밧세바 사건
990 솔로몬의 출생
979 압살롬의 반역
973 다윗의 인구조사와 대재난
970 솔로몬의 등극(970-930)
다윗의 죽음
966 솔로몬이 성전건축 시작
965 아가서 기록
959 솔로몬이 성전 완공
솔로몬왕궁 건축시작
946 솔로몬왕궁 완공
? 지혜문학의 발달ㆍ욥기 저술 추정
938 여로보암의 반역
935 전도서 기록
분열왕국시대 (930-722)
930 솔로몬의 죽음ㆍ분열왕국시대 시작
르호보암 유다왕 등극(930-915)
여로보암1세 이스라엘왕 등극(930-909)
875 엘리야선지의 활동(875-848)-이스라엘에서
874 아합 이스라엘왕 등극(874-853)
863 아합왕의 죽음
858 오바댜선지의 활동(858-840?)-유다에서
853 여호람 유다왕 등극(853-841)
848 엘리사선지의 활동(848-797)-이스라엘에서
나아만장군 치유
841 예후 이스라엘왕 등극(841-814)
아하시야 유다왕 등극
아달랴의 선정
835 요아스 유다왕 등극(835-796)
요엘선지 활동(835-796)
797 엘리사선지의 죽음
796 요엘선지의 활동 종결
793 여로보암2세 이스라엘왕등극(793-753)
790 4차 남북전쟁 개시
785 요나선지의 활동(785-775)-이스라엘에서
773 아슈르단3세의 앗수르왕 등극
763 앗수르의 역병재난
760 아모스선지의 활동(760-750)-이스라엘에서
759 요나의 니느웨 사역
751 요담 유다왕의 등극(750-735)
750 호세아선지의 활동(750-715)-이스라엘에서
748 앗수르의 침입
742 아하스 유다왕의 섭정
740 이사야선지의 활동(740-681)
미가 선지의 활동
735 아하스유다왕의 등극(735-715)
반앗수르 동맹
733 앗수르의 1차 이스라엘침입
732 앗수르의 2차 이스라엘침입
728 히스기야 유다왕 등극(715-686) 및 종교개혁
724 앗수르의 3차 이스라엘침입
722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
남유다왕국시대 (722-586)
714 앗수르의 유다 침입
697 므낫세 유다왕의 등극(697-642)
681 이사야선지의 활동 끝남
664 테베 정복 사건
642 아몬 유다왕의 등극
640 요시야 유다왕의 등극(640-609)
나홈선지의 활동
630 스바냐선지의 활동
626 예레미야선지의 활동(626-585)
622 요시야왕의 종교개혁 및 성전수리
612 앗수르의 멸망
609 요시야왕의 전사
여호아하스 유다왐의 등극
608 하박국선지의 활동
여호야김 유다왕의 등극(609-598)
605 바벨론의 1차 유다 침입
다니엘 등이 바벨론의 1차 포로 됨
애굽의 멸망
597 바벨론의 2차 유다 침입
593 에스겔선지의 활동(593-571)
588 바벨론의 3차 유다 침입
586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예루살렘 함락)
유다백성의 포로 및 귀환(BC586-432)
586 유다민족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감
580 다니엘 세 친구의 풀무불 기적
562 느부갓네살의 죽음
550 다니엘의 네 짐승 이상
539 고레스바사왕의 바벨론 정복(바벨론의 멸망)
538 고레스 바사왕의 포로귀환 칙령
다니엘과 사자굴
537 1차 포로귀환(스룹바벨의 인도)
536 스룹바벨의 성전재건 착공ㆍ중단
530 다니엘의 죽음
520 학개, 스가랴선지의 활동(520-480)
성전재건 재개
516 성전재건 완공
483 아하수에로왕의 잔치ㆍ왕후 와스디 폐위
479 에스더가 아하수에로왕의 왕후로 피택
474 하만의 음모 및 하만의 죽음
473 부림절 제정
470 스가랴선지 사역 종결
458 2차 포로귀환(에스라의 인도)
? 에스라의 개혁운동
444 3차 포로귀환(느헤미야의 인도)
예루살렘성곽 수축 완공, 낙성식
말라기선지의 활동(440-430)
433 바사로 돌아간 느헤미야
432 느헤미야가 귀국 및 개혁운동 시작
신구약 중간시대 (BC432-AD5)
343 바사의 애굽 정복
331 헬라의 바사 정복
37 유다대제로 헤롯 즉위(BC37-4)
27 로마의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황제 즉위(BC27-AD14)
5 세례 요한 탄생
아구스도의 호적령
그리스도의 탄생
4 예수의 탄생
AD 8 예루살렘 성전의 예수
26 로마의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 총독부임(AD26-36)
27 세례 요한의 사역 시작
그리스도의 공생애
27 예수께서 세례 받으심
예수의 공생애 시작ㆍ가나에서의 예수 첫 이적
요한이 제자 됨
베드로가 제자 됨
베데스다 연못가의 이적
28 세례 요한의 죽음
12제자 임명ㆍ12제자 파송ㆍ베다니 전도
29 예수의 오병이어 이적ㆍ변화산 사건ㆍ베드로의 신앙고백
30 삭개오의 구원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최후의 만찬, 십자가 수난과 운명, 부활, 승천
초대교회
30 오순절 성령 강림과 교회 형성
스데반의 순교
34 사울의 회심
37 바울의 1차 예루살렘 방문
베드로의 투옥
44 야고보사도의 순교
베드로의 투옥과 출옥
45 팔레스타인 대흉년
바울의 2차 예루살렘 방문(구제헌금 전달)
47 바울의 1차 전도여행(47-49)-남갈라디아 방문
49 바울의 3차 예루살렘방문
예루살렘 종교회의
바울의 2차 전도여행(49-52)-북갈라디아 방문-고린도에서 1년6개월 체류
50 글라우디오의 유대인 추방
51 데살로니가전서/후서 기록
53 바울의 3차 전도여행(53-57)-에베소, 마게도냐, 고린도, 드로아,
밀레도 전도-에베소 체류
54 네로 로마황제 통치(54-68)
55 고린도전서 기록
56 갈라디아서 기록
57 고린도후서 기록
로마서 기록
58 바울의 체포와 로마 호송
60 베스도 유대총독 취임(60-62)
61 바울의 로마감옥 투옥(61-63)
62 빌레몬서 기록
야고보서 기록
주의 동생 야고보의 순교
빌립보서 기록(62-63)
63 에베소서 기록
골로새서 기록
바울의 석방
디모데전서 기록(63-65)
64 로마의 대화재와 네로의 기독교 박해(64-68)
베드로전서 기록
66 디도서 기록
베드로후서 기록
유대인의 로마에 대한 반란
디모데후서 기록(66-67)
67 바울사도의 순교
68 베드로사도의 순교
70 디도의 예루살렘 점령
유다서 기록(70-80)
81 도미티아누스의 기독교 박해(81-96)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기록
95 요한사도의 밧모섬 유배
요한계시록 기록
100 요한사도의 죽음
필립포스 2세와 올림피아스의 아들.
알렉산더대왕, 알렉산드로스 3세라고도 합니다.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대왕으로, 탄생에 관해서는 그리스의 작가 플루타르코스(영웅전 작가)가 “올림피아스가 벼락이 배에 떨어지는 꿈을 꾸고 임신하였다” 또는 “필립포스가 아내의 곁에 있는 뱀을 보았다” 등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대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마케도니아 수도인 펠라의 궁정에 초빙되어 3년 동안 그에게 윤리학·철학·문학·정치학·자연과학·의학 등을 가르쳤습니다.
호메로스의 시를 애독하여 원정 때도 그 책을 지니고 다녔으며, 학자를대동하여 각지의 탐험·측량 등을 시킨 일, 또는 변함없이 그리스 문화를 숭앙한 일 등은 스승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부왕으로부터는 전술·행정 등의 실제적인 일을 배웠고, BC 338년의 카이로네이아전투에 직접 참가하기도 하였습니다. 부왕이 암살되자 군대의 추대를 받아 20세의 젊은 나이로 왕이 되니, 그리스 도시의 대표자 회의를 열고 아버지와 같이 헬라스 연맹의 맹주로 뽑히기에 이르렀습니다. 때마침 마케도니아의 북방에 만족이 침입하고 서방에서도 반란이 일어나 친정하였는데, 이 싸움에서 그가 전사하였다는 소문이 퍼지자 온 그리스가 동요하고 테베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즉시 테베를 토벌하고 테베시의 전시민을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BC 334년에 알렉산더 대왕은 마케도니아군과 헬라스 연맹군을 거느리고, 페르시아 원정을위해 소아시아로 건너갔습니다. 먼저 그라니코스 강변에서 페르시아군과 싸워 승리하고,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의 여러 도시를 해방하였으며, 사르디스 그 밖의 땅을 점령한 뒤 북시리아를 공략하였습니다. BC 333년 킬리키아의 이수스전투에서 다리우스 3세의 군대를 대파하였으며, 이어 페르시아 함대의 근거지인 티루스(티로스)·가자 등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리고 시리아·페니키아를 정복한 다음 이집트를 공략하였습니다. 이집트에서는 나일강 하구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시를 건설하고 1,000 km가 넘는 사막을 거쳐 아몬 신전에 참배하였습니다.
여기서 '신의 아들’이라는 신탁을 받았는데, 이후로 그는 만인동포관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BC 330년 다시 군대를 돌려서 메소포타미아로 가서, 가우가멜라에서 세 번이나 페르시아군과 싸워 대승하였습니다. 이때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는 도주하였으나 신하인 베소스에게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계속하여 바빌론·수사·페르세폴리스·엑바타나 등의 여러 도시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는 여기서 마케도니아군과 그리스군 중의 지원자만을 거느리고 다시 동쪽으로 원정하여 이란 고원을 정복한 뒤 인도의 인더스강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군사 중에 열병이 퍼지고 장마가 계속되었으므로, 군대를 돌려 BC 324년에 페르세폴리스에 되돌아왔습니다.
BC 323년 바빌론에 돌아와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던 중, 33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죽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정복한 땅에 알렉산드리아라고 이름지은 도시를 70개나 건설하였다고 합니다. 이 도시들은 그리스 문화 동점(東漸)의 거점이 되었고, 헬레니즘문화의 형성에 큰 구실을 하였습니다. 그의 문화사적 업적은 유럽·아시아·아프리카에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여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킨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한 데 있습니다. 그가 죽은 뒤 대제국 영토는 마케도니아·시리아·이집트의 세 나라로 갈라졌다.
성경대학 첫 개강 시 질문 사항입니다.
천하(마케도니아,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 일부)를 통일하다시피 한 알렉산더 대왕이 급사(BC 323년, 33세)한 이후 그의 헬라(그리이스) 제국이 4개의 나라로 분리되어 통치하게 되었는데 각 나라의 왕들은 알렉산더의 수하 장군들이었다.
알렉산더의 이복동생인 카산드는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본토를
미시마코스 장군은 소아시아 근방을
셀루커스 장군이 메소포타미아 유역의 시리아 지방을
프톨레미 장군이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를 장악하게 됩니다.
(출처 : "성경통독 이렇게 하라" 조병호 지음)
마케도니아는 안티고누스 왕조가 들어서게 된다.
70인역(Septuagint=LXX)
BC 3~1세기경 등장한 70인역은 이집트 왕 프톨레미(Ptolemy Ⅱ Philadelphus)의 요청에 따라 BC 80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70(또는 72)일간 번역했다고 전해진다.
'터툴리안', 성 '어거스틴', 성 '제롬' 등등의 초기 교부들은 모두 이 번역 본들이 신의 영감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저스틴 교부는 70인이 따로 번역 했으나 글자 하나 까지 일치 된 신의 영감에 의한 작품이라고 치켜 세웠다. 그러나 저스틴은 프톨레미 왕이 헤롯 왕에게 친서를 보냈다고 말하면서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헤롯은 프톨레미보다 200년쯤 뒤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LXX)은 하나의 통일된 번역 이라기 보다는 번역 기술이나 히브리어 지식이나 문체 등에 있어서 서로 매우 다른 여러 사람의 번역들을 모은 것으로 보인다.
70인역의 욥기는 히브리어 사본보다 6분의 1정도 짧으며, 예레미야서는 히브리어 사본보다 8분의 1정도 짧고 그 순서도 서로 다르게 되어 있다.
내용 또한 많은 부분이 잘못 번역 되었는데, 70인역에 의하면 창조의 시점이 1195년이나 담겨져 있고 '무드셀라'가 '노아'의 홍수가 나고도 14년이나 계속 살아 남은 것으로 계산 된다.
초대 기독교인들의 구약성경이 70인역이었다. 그들은 70인역 성경에서 기독교에 유리한 내용을 찾아내기 시작했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기독교적인 내용들을 덧붙이게 되었다. 카톨릭백과사전은 70인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교회는 70 인 역을 채택 하였다. 70 인 역은 히브리 원본과 달랐다. 몇 권의 책과 구절들이 더 추가 되었을 뿐 아니라.....(중략)....... 부분적으로 번역의 실수가 있었고....(중략)..... 더구나 70 인들은 유대 랍비들이 쓰는 것과는 다른 히브리 경전을 토대로 번역하는 바람에...." [카톨릭백과사전 vii, 316]
"70인역은 믿을 바가 못 되니 제 멋대로 번역되고 변조 되었으며....(중략)....따라서 교회에 의해서 거부 되었다" [카톨릭 백과사전 iv, 625]
한편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구약으로 증거하기 위해서 유대교의 경전을 위조했다고 비난하는 유대인들이 나타났다. 따라서 AD 2세기경에 히브리 본문에 맞도록 새로운 헬라어 역본 들이 등장하게 된다. 2세기초 기독교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아퀼라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증거하기 위해 위조한 70인역의 구약의 메시야 관련 위조 부분을 히브리 원전에 맞게 번역함으로 아퀼라역(a')이라는 헬라어 축어적 역본을 만들었고, 2세기 말엽 심마쿠스는 아퀼라의 축어역과 달리 히브리적 표현을 없애고 순수한 헬라어를 사용한 의역본을 내놓았다. 이 외에도 레오도티온역, 역자가 알려지지 않은 다른 세 개의 역본이 전해지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증거하기 위해서 구약을 위조했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AD 230~240년에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Origen)은 6500쪽이 넘도록 각 쪽에 여섯 란을 두고서 그 때 구할 수 있던 히브리 성경, 그것의 발음을 헬라어로 바꾸어 적은 것, 아퀼라 번역본, 심마쿠스 번역본, 70인역, 레오도티온 판을 각각 적어 넣어 서로 비교하도록 하는 헥사플라(Hexapla)를 편찬했다. 오리겐은 히브리 원문을 근거로 하여 기독교인들이 70인역을 위조 한다고 비난하는 유대인들의 논쟁을 적당히 무마시키기 위해서 이 6가지 본문을 비교 하면서, 그 나름대로 다섯번째 란의 70인역을 새롭게 수정했다.
이 70인역이 나중에는 헥사플라와는 따로 떨어져서 그것만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는데 이것을 70인역의 헥사플라 개정판(BHK의 GH) 또는 오리게네스 70인역(BHS의 GO)이라고 부른다. 그 뒤로도 70인역은 그 나름대로 여러 가지 개정판 사본이 생겨났다.
70인역의 가장 중요한 사본으로는 알렉산드리아 사본, 바티칸 사본, 시나이 사본을 들수 있다.
현재 여러가지 70인역 사본들을 비교하여 만들어 놓은 비평판 헬라어 성경으로는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 것은 괴팅겐의 70인역으로써 여러 사본을 비교하여 가장 원본에 가까와 보이는 본문을 재건한 것이로 1931년부터 나오고 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두번째는 1935년에 출간된 랄프스 70인역인데, 이것은 70인역 사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를 중심으로 엮은 것이다
신약성경은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 정복으로 인해 당시(B.C.300-A.D.300)공용어처럼 사용되었던 헬라어, 곧 코이네 방언으로 쓰여졌고 지금부터 약 400여 년 전에 영어로 번역되었는데 현존하는 번역성경들은 대부분이 그 원어인 헬라어를 기초하여 번역한 것이 아니라 그 영어성경을 재번역한 것들이다.
당시 사람들은 당시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의 영향을 받아 성령이 충만치 못하여 하나님의 바른 뜻을 잘 알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헬라어에 대한 확실한 지식도 없었으므로 그들이 영역한 성경이 오역된 부분이 많은데 현존하는 번역성경들은 이 영어성경을 재번역한 것들이 대부분이니 오역된 부분들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어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나타내기에는 적당하지 못한 언어라 영어성경으로는 하나님의 바른 뜻(영적 의미)을 알아내기가 어렵다. 차라리 우리말성경을 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기가 더 쉬울 수도 있다.
그 좋은 예를 들자면 복음서에 자주 나오는 '고기'는 헬라어로 '익두스'로 말씀하셨다면 이는 '주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고(마14:17, 15:34-36, 17:27, 막6:38, 눅5:6, 요21:6, 21:11) '옾사리온'인 경우는 '사악한 마음'이며(요6:9, 6:11) '플로스파기온'이면 '은혜'라는 뜻인데(요21:5) 영어성경에는 'fish'로 우리말성경에는 '물고기'로 기록되어 있으니 그 뜻이 '사악한 마음'인지 '주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겠는가? 또 '백부장'의 경우 '헤카톤타르코스'로 말씀하셨을 때는 '은혜시대의 처음 천년이나 다음 천년을 살아가게 될 백성들'의 뜻이고(마8:5) '켄튀리온'으로 말씀하신 경우는 '라틴문화권의 사람들 중 사단을 따르는 자들'의 뜻이다(마27:58, 막15:39). 그런데 영어성경이나 우리말 성경으로 이를 어떻게 알아낼 수 있겠는가?
구약의 배경
1. 지리적 배경(우주-지구-고대 근동 지방)
1) 팔레스타인은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의 세 대륙이 만나는 요충지이다. 따라서 이 장소는 각종 문화가 자주 충돌하는 곳이며, 세계에서 가장 이권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장소이다.
2) 팔레스타인은 흥망성쇠의 악순환이 자주 반복되었던 곳이다. 이 곳은 각 시대마다 세계를 지배하던 애굽과 앗수르, 바벨론, 파사, 그리고 헬라와 로마의 세력이 활동했던 곳이다. 따라서 그 사이에 끼여 있는 나라들은 이러한 강대국들이 전쟁을 할 때마다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강대국들은 팔레스타인 지방을 통과하여 전쟁을 하러 갈 때마다, 팔레스타인에 들려서 식량과 군수품들을 강제로 약탈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이스라엘은 독립하여 자주권을 행사한 기간이 불과 수백 년에 불과하였다.
3) 그 당시의 사람들은 전쟁이 각 나라의 신들의 싸움이라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정복하게 되면, 그 나라의 신이 승리한 것으로 간주하였고 승리 국의 신상을 세우거나 그 종교를 믿도록 강요하였다. 그러므로 여호와 유일신 신앙을 가진 이스라엘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수많은 연단을 받아야 했다.
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러한 땅으로 인도하셔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연단시켜 나가셨다.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의 역사가 이스라엘의 신앙과 함수 관계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주변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신앙을 연단 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는 말이며, 따라서 이스라엘의 신앙 역사는 세계사이며, 세계사는 또한 인류 구원의 구속사라고 할 수 있다.
2.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
1) 애굽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시대(족장 시대)부터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들어간 시기에 애굽과 크게 연관을 맺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 애굽은 이 시기가 가장 역사의 황금기였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면서 애굽은 다시는 최강국으로 세계의 최강국으로 역사의 무대에 나타나지 못하였다.
2) 앗수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하게 되자 서서히 주변 국가들을 강대국으로 만드시고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연단 시키시고 징계하셨다. 앗수르는 다윗 왕 시대까지는(주전 1,000-961년) 이스라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으나, 그 후부터 서서히 강대국으로 부상하여 주전 841년에 이스라엘을 속국으로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 2세 때에 앗수르가 잠시 약해진 틈을 타서 이스라엘에게 독립의 기회를 주셨으나, 이스라엘이 계속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의 말을 거역하게 되자. 결국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게 만드셨다(주전 721년).
3) 바벨론
앗수르는 매우 잔인한 민족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바벨론을 일으키셔서 앗수르를 치게 하셨다. 바벨론은 주전 621년에 압제자인 앗수르를 물리치고 세계의 강자로 등장하게 되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도 계속하여 반역하는 유다를 이 바벨론을 통하여 멸망당하게 만드셨다. 바벨론 1차 침공 때에 다니엘과 함께 유다 민족이 포로로 잡혀갔으며(주전 606년), 2차 포로 때에는 에스겔과 함께 유다 민족들이 사로잡혀 갔다(주전 597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3차 침공 때에는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당하게 되었다(주전 586년).
4) 메대(메디아)와 파사(페르시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때가 이르게 되자, 다시 페르시아의 고레스를 통하여 바벨론을 점령하게 하셨다(주전 536년). 고레스는 유대 민족을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도록 귀환 명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유대 민족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과 성벽을 쌓게 된다. 이 기간 동안 유대는 파사의 속국으로 지내게 된다.
* 1차-스룹바벨과 여호수아-성전 재건
* 2차-에스라-영적 부흥
* 3차-느헤미야-성벽 완공
5) 헬라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은 주전 336년에 왕이 되었다. 그는 약 10여년 만에 세계를 정복하였다. 그러나 그가 바벨론 전투 중에 갑자기 죽게 되자 그의 부하였던 4명의 장군들이 그 영토를 나누어 가졌다(카산더-헬라 본토, 톨레미-애굽, 셀류코스-수리아, 리시마쿠스-그 외 지역들). 그런데 그 중에 애굽을 차지한 톨레미 왕가와 수리아를 차지한 셀류코스 왕가 사이에 팔레스타인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게 되었다. 유대는 후에 수리아의 지배를 받게 된다.
6) 로마
그러나 그 후에 일어난 로마는 이 모든 나라들을 정복하고, 세계 최대의 국가로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유대인들은 이런 환경 속에서 주전 165년경에 어느 정도 자치권을 인정받아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주전 63년에 폼페이가 수리아를 점령하게 되면서부터 팔레스타인은 또 다시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3. 구약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배경
1) 사울 왕 시대의 판도
2) 다윗 왕 시대의 판도
3) 솔로몬 왕 시대의 판도
4) 르호보암 시대의 판도
5) 파사 제국의 한 지방이었던 유다
6) 마카베오 시대의 판도
4.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배경-남신들과 여신들
1) 엘: 최고의 신이며, 모든 신들의 아버지
2) 바알: 엘의 아들로서 엘의 후계자/ 풍요의 신이며 하늘과 비와 땅과 폭풍을 주관한다고 믿음.
3) 못-악신, 전쟁의 신으로서 바알과 싸워 바알을 죽이나 바알의 누이인 아낫에 의해 죽임을 당함
4) 얌-바다의 신
5) 고대 근동의 3대 여신
* 아세라(목신)-엘의 아내이며 풍요와 번영의 여신으로 모든 신의 어머니
* 아스다롯-성을 주관하는 여신, 성적 매력과 미를 상징함.
* 아낫-전쟁의 여신, 바알의 누이이며 애인, 정열과 흥분을 상징. 못을 죽이고 바알을 다시 살림.
6) 몰렉(밀곰)-암몬인의 민족신, 자녀를 불에 태워 드리게 함.
이 신은 여러 나라에서 섬겼다. 그러나 그 이름은 각 나라마다 달랐다(바벨론: 탐누츠, 이스탈,
애굽: 이시스, 오리시스 등).
7) 농경 사회와 다신교
그들이 이러한 신들을 숭배한 이유는 이러한 신들이 농사를 지을 때에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은 남신과 여신이 성적인 관계를 맺을 때에 자연에 생동력이 생긴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리하여 농부들은 성전에 창녀를 두고 창녀들과 성관계를 가짐으로써 바알과 아스다롯을 흥분시켜서 그들이 성관계를 갖게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러한 음탕한 풍습을 가진 종교를 따르는 것을 강하게 금지시키셨다.
8) 다신교냐? 여호와 종교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러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우상을 섬길 것인지, 아니면 여호와 한 분만을 섬길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들이 이러한 환경에서 유일신 사상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으며, 단호한 결정을 내려야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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