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 앞두고 외국인 선교사 대대적 추방…

한인교회 타격 중국선교 비상

 


중국 정부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자국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 선교사를 대거 추방시키는 ‘타이펑(台風) 5호’라는 비밀작전을 수행중인 것으로 12일 드러났다. 중국 내부에 정통한 선교 전문가 그룹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지난 2월 ‘타이펑 5호’ 작전에 들어간 이래 4월부터 6월까지 최소 100명의 외국인 선교사를 불법 종교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 출국시켰다.

이 때문에 선교사들은 심적으로 크게 위축되고 있으며 중국 내 한인 교회들도 더이상 예배를 드릴 수 없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이번 선교사 추방 작전은 1954년 중국 공산당이 외국인 선교사들을 대거 추방한 이래 최대 규모. 주요 추방 대상은 미국 한국 싱가포르 캐나다 호주 이스라엘 등지에서 온 시니어급 선교사다.

외국 선교사 추방은 중국 상당 지역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신장위구르자치구는 특히 심해 한국인을 비롯, 60명의 사역자를 추방했다. 이밖에도 지난 5월 베이징에서 선교사 부부를 비롯해 15명이 추방됐으며, 5월31일에는 이스라엘과 미국에서 온 교회 지도자들이 산둥 린이가정교회에서 체포됐다.

미국 인권선교단체인 중국구호협회(CAA)에 따르면 지난 1일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온 미국인 목회자가 베이징에서 체포된 뒤 강제출국당했으며 미국영어학회에서 파견한 미국인 교수 2명도 티벳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중 추방됐다. 미국영어학회는 중국에 가장 많은 영어 교사 및 교수 요원을 파견하고 있는 기독교 기관이다.

중국이 외국의 선교사를 집중 추방하는 이유는 내년 8월8일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해 외국 선교단체들이 대거 중국에서 활동할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에서 최근 입국한 왕백산 선교사는 “그동안 자유롭게 신앙생활하던 베이징 등지의 한인교회들도 직격탄을 맞아 목회자 등 교회 리더들이 속속 권고추방되거나 출국을 종용받았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은 2005년 3월1일 새로운 종교사무조례(국무원령 426호)가 발효된 이후 어느 정도 예견돼 왔다. 중국 정부는 개혁개방을 심화하면서 내부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는 종교 세력의 득세를 우려하고 가정교회(비공인교회) 지도자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왔다. 종교사무조례에 따르면 ‘종교활동 장소등기증’이 없는 시설에 대해서는 재정 지원과 출판물 제작·공급 등이 원천적으로 불허된다. 정부 승인이 없으면 종교기관의 해외 접촉도 금지된다. 모든 종교서적과 인쇄물은 정부가 승인한 기관에서만 제작·인쇄·판매될 수 있다.

중국에서 10년 이상 선교를 해온 장원 선교사는 “중국 선교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만큼 외부 과시형 선교에서 벗어나 현지 교회 지도자와 성도들을 측면에서 돕는 등 선교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중국  내륙선교에 새 장을 연 "허드슨 테일러"선교사>

 

 
 

 

                               <중국  내륙선교에 새 장을 연 "허드슨 테일러"선교사>

허드슨 테일러의 생애, 중국 내륙선교에 새 장을 연 선교사!
주님을 의지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중국 선교의 선구자 "허드슨 테일러"

마침내
허드슨이 스물 두 살의 나이로 
약 다섯달간의 위험한 항해를 거쳐,
중국 상해에 도착하였습니다.

그가 상해에서 
자리잡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전쟁터와 방불한 곳에서
불안감을 느꼈고  물가가 폭등하여
생필품을 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는 별수없이 
누더기만 걸치고
거치처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무더운 여름철이  되면서는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렸고,

심한 먼지 때문에
눈병까지 앓게 되었습니다.

이런 비참한  땅에서
사는 가련한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복음밖에는 희망적인 소식이 없다고 생각한다.

허드슨은
한차례의 전도여행이 끝나면
미처 쉴  사이도 없이 다음  차례의
전도여행을 준비하였습니다.

이렇게 강행된 전도여행은
15개월동안  무려 10차례 이상이나 되었습니다.

그 기간에
중국어 신약성경
1천 8백권과 2천권이  넘는
전도 책자들을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중국인들은
문맹자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만큼의 책자를 나누어 주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테일러는
여러곳을 여행하며
많은 중국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는데,

이는 그가 설교를
유창하게 잘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해박한 지식 때문도 아니라

잃은 영혼을 향한
그의 간절함 때문이었습니다.

"한달에 100만명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죽어가고 있습니다"는

그의 호소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많은
선교의 자원자가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하여
선교회가 조직된 것입니다.

중국 내지 선교회는
허드슨 테일러의 선교경험과
성격이 반영되어 독특하게 조직되었습니다.

그것은
교파에 속하지 않았고
노동자 계급에 의존하였습니다.

테일러는
지식인들과 정식 목회자들로서는
중국의 복음화가 요원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영국의 많은 노동자들
중에서 헌신된 남녀 일꾼들을 모집하였습니다.

그것으로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른 선교 단체들과의 쓸데없는 경쟁을 피하고,

중국에서의
선교노력을 극대화 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복음화 선교회에서
일해 본 결과 선교본부는
중국에 두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야만
선교사들의 모든 필요를
제때 채워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26살이 되자
허드슨은 영적으로 스승이나 다름없는

윌리암 번즈 목사와
동역하여 드디어 꿈에 그리던 내륙지방으로
진출하였습니다. 

이때 노예 매매가 성행하는
광동성 산두지방에 위험을 무릎쓰고

가서 복음을 전함으로
그 지방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는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온종일 복음을  전하고
저녁 때 거처로  돌아올 때는
몸이 피곤에 지쳐
다리를 겨우 끌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댓시간 후면
다음날의 전도를 위해서
다시 침상에서 일어났습니다.

외국 선교사들은
주로 상해에 몰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해의 중국인들은
선교사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내지의 사정은 달랐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테일러는 자신이 신기한 존재로
느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복음에 대한 메시지보다는

그의 복장과
태도에 호기심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즉 중국인의 옷을 입고
풍습을 따르는 중국인이 되자는 것입니다.

오래 전
예수회 선교사들은
이런 방식으로 많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신교 선교사들은

이런 것을,
전통적 방법을 떠난
파격적인 것으로서 올바른 선교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가 서양 문화의 옷을 입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푸른 눈에다
회색 머리를 한
요크셔 출신의 테일러에게

중국인이 된다는 것은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허리에 걸쳐 있기엔 너무 헐렁한 바지",
"갑갑한 비단 옷", "굽 없는 신발" 등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으나
중국인사이에 섞여 살려면 무엇보다
검은 머리털과 변발을 갖춰야만 했습니다.

첫 번째 머리털 염색은
큰 소동만 일으키고 실패하였습니다.

머리에 부은 암모니아가
살갗을 태워 하마터면 장님이 될 뻔하였습니다.

다행히
의사인 선교사가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잘 치료해 주어
다시 염색할 수 있을 만큼 회복하였습니다.

이런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계획을 밀고 나갔습니다.

이번에는
이발사에게 맡겼기 때문에
우습지 않게 잘 염색되었습니다.

그는 "난생 처음 머리털을 밀고나니
햇볕이 따가워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염색도 5-6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러한 고통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런 수고는 값진 결실을 나타내었습니다.

비록 중국인들이 보기에는
잘못된 변발을 하였지만 테일러는
이제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고서도

중국인들 사이에
낄 수 있었습니다.

"만약 내가 다른 중국인들과
섞여 있을 때 당신이 나를 만나게!
된다면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이제
외국인이라는 의심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변모된 모습을
테일러는 무척 대견하게 생각했지만,

다른 선교사들은
대부분 불쾌감을 표시하였습니다.

그들은 테일러를
처음에는 골칫덩어리로 여기다가
나중에는 웃음거리로 삼았습니다.

이런 소식을 듣자
식구들까지 못마땅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약
테일러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테일러란 존재가
있는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중국 옷을 입고
중국식대로 사는 것은
이제 그의 특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중국 내지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중국에서 생활하기에는
서양 옷보다 중국 옷이 훨씬
더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테일러와 동행하며
여행을 하던 윌리암 번즈는
테일러가 편리하고 편안하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중국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중국 옷을 입었다고 해서
내지에서 사역하는 모든 어려움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골로 여행하면서
의료활동을 하는 동안
그는 자신이 그 지역 의사들과
직접 경쟁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전통적인 방법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지방 의사들이 그를 쫓아낸 적도 있었습니다.

여행 자체도 매우 위험했습니다.
한번은 중국인 짐꾼이 테일러가 가지고 있던
모든 돈과 물품을
다 가지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할 수 없이 상해로 돌아가
개인적인 헌금이 영국으로부터 올 때까지
동료 선교사의 신세를 졌습니다.

그것은 어떤 후원자가 보낸 헌금액수?

자기가 잃어버린
액수와 똑같은 40파운드였습니다.

중국 선교 초기에
이런 개인적인 헌금이 없었더라면
아마 테일러는 견뎌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선교본부와
불편한 관계를 가져오다가
1857년 테일러는 정식으로
중국 복음화 선교회를 탈퇴하였습니다.

그 후로부터
그는 아무 곳에도 정착하지 않고
중국 내지를 돌아다니며,

한 선교사의 말처럼
"열심히 그러나 목적없이"
선교를 하였습니다...




▷ 이사야 40장 31절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