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노동단련대에서 통나무를 들고 기합받는 수감자들 <사진:MBC> |
“이번에 강제송환된 7명의 탈북자들은 방송에 나왔기 때문에 모두 죽는다”
탈북자 이지철(35세, 2002년 탈북)씨는 “모두 죽는다”라는 말을 나지막히 반복하며 강제 송환의 공포를 표현했다.
지난 8월 29일 텐진(天津) 한국국제학교에 진입했던 탈북자 7명은 모두 북송 됐다. 강제 송환된 이들 7명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강제 송환된 탈북자들은 잡히는 순간부터 ‘짐승’ 취급을 받는다. 특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탈북한 것이 밝혀지면 그들은 이지철씨가 말한 것처럼 ‘죽은 목숨’이다.
탈북자들은 한결같이 "중국 간수소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었다"고 증언한다. 중국에서는 그나마 ‘사람’으로 취급받지만 북한으로 넘어가는 순간 ‘동물’로 취급 받기 때문이다.
중국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등 함경북도 맞은편 지역에서 체포된 탈북자들은 변방대, 간수소에 있다가 투먼(圖們)집결소로 보내지고, 결국 북한 온성군의 남양 보위부에 넘겨진다.
▲변방부대 감옥 |
▲ 중국 공안 구치소 |
- 이00 (여, 35세, 1999년 강제송환 경험, 2002년 입국)
“구치소 대기실에 들어서자마자 계호원(간수)들은 구타를 하며 옷을 벗긴다. 남녀 상관없이 옷, 단추, 지퍼, 팬티, 브래지어까지 벗기고 모든 물건과 돈을 회수한다. 그리고 알몸상태에서 신체검사를 받는데 치욕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 김00 (남, 45세, 2003년 강제 송환 경험, 2004년 입국)
“구치소 방에 열흘 있었다. 열흘동안 2명이 죽어 나갔다. 대략 6-7평 남짓의 방에 120명이 생활했다.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하고 다리를 바짝 세우고 잠을 자야 했다. 방에 마련된 소변통이 있지만 사람들 때문에 소변보기 힘들었다”
남양 보위부로 이관된 탈북자들은 북한의 형사소송법에 의거해 '거짓 진술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진술서를 작성한다.
진술서는 탈북목적과 과정, 중국에서의 생활 등을 날짜별로 구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진술서 작성을 마치면 족쇄를 채워 구치소로 호송된다. 각 지역 보위부로 호송될때 까지 남양 보위부 구치소에 감금 된다.
이곳에서 신체검사가 실시되고 탈북자들이 갖고 있던 물품과 돈은 회수당한다. 구치소 작은 방에서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백 명 이상이 생활을 하게 된다. 구치소에서는 옥수수 국수와 옥수수 가루를 볶아 끼니 때마다 세 숟가락을 준다.
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화장실도 간수의 허락을 맡아 간다. 이런 열악한 생활로 인해 각 지역 보위부에 넘겨지기도 전에 사망하거나 극도의 영양실조 상태에 빠진다.
▲평안남도 북창군 인민보안서 감옥 |
▲함경북도 무산군 인민보안서 감옥 |
- 신00 (남, 43세, 2002년 강제송환 경험, 2003년 입국)
“각 지역으로 이동하면서도 우리는 개 취급을 받는다.족쇄(수갑)를 채우고 화물차에 처넣는다. 이동하는 동안 머리를 일체 쳐들지 못하게 하고 눈에 거슬리면 가차없이 구타를 당한다”
- 김00 (남, 51세, 2001년 강제 송환 경험, 2003년 입국)
“각 해당 지역 보위부에서 말을 잘해야 한다. 남한 이야기나 중국 내의 교회 도움을 받았다고 밝혀지면 정치범으로 몰려 수용소나 55호 단련소로 보내진다. 55호 단련소는 10명이 들어가서 6명이 죽어 나온다는 곳이다”
각 지역 보위부원들이 탈북자들을 인계 받아 주소지 지역으로 호송한다. 각 지역의 보위부에서는 탈북자를 취조해 형량을 결정한다. 먹고살기 힘들어 탈북한 생계형 탈북의 경우 상대적으로 적은 형량을 받고 노동단련대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최소 2-3개월, 최고 6개월 동안 강제 노동을 하게 된다.
정치적인 이유가 있거나 자진 탈북한 경험이 여러 번인 경우 중형이 선고된다. 이후 교화소나 정치범수용소 및 55호 단련대로 보내진다. 혐의가 있는 탈북자들은 보위부내 간부들이 직접 형량 결정 문건을 작성한다.
작성된 문건은 시 감찰과, 군 검찰소, 도 검찰소를 통해 중앙 검찰소까지 제출되어 비준을 받는다. 비준이 완료되면 각 해당 지역 감찰과로 내려보내 형을 집행하게 한다.
열 명이 들어가면 여섯 명은 죽어나온다는 '55호 단련대'
- 최00 (남, 39세, 2002년 55호 단련대 수감, 2003년 입국)
“새벽 5시에 일어나자마자 질통(흙,모래 따위를 져 낼 때 쓰는 통)을 매야 한다. 질통에는 각자 이름이 새겨져 있어서 간수를 잘해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 뛰어야 한다. 단련대에서 걸어다니면 가차없이 채찍이 날아든다. 흙을 채워 넣으면 질통의 무게는 20킬로그램에 육박한다. 너무 무거워 뛰기 힘들어도 뛰는 시늉을 해야 한다. 새벽부터 작업을 8시까지 하고 식사를 한다. 식사는 강냉이와 강냉이 줄기를 섞어 가루로 만든 다음 시루에 쪄서 150g정도 주고 간장물에 염장 배추를 띄운 염장배추국을 준다. 식사는 공사현장 땅바닥에서 먹는다. 죽지 않을 정도로 배급된 강냉이 죽을 먹고 바로 작업을 한다. 저녁 늦게까지 작업을 하면 온몸이 천근만근 무겁다. 이렇게 몇 개월을 하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영양실조에 걸리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사람이 속출한다. 결국 10명중 절반 이상이 죽어 나간다”
90년대 후반 탈북자들이 많아지자 북한은 탈북자들만 따로 수용하는 55호 단련대를 2000년 신설했다.
55호 단련대는 함남 함흥 영광에 위치해 있다.명칭은 ‘22호 교화소’를 ‘55호 단련대’로 개칭했다. 이곳에는 죄질이 안 좋은 일반 수감자들도 있지만 대부분 여러 번 탈북을 시도한 탈북자들이 수감되어 있다.
영양실조에 걸릴 정도의 배급과 혹독한 강제 노동으로 몸은 죽기 직전의 상태이고 이 상태에서 항상 뛰어야 한다. 그래서 죽는 사람들이 많으며 살아서 나온 사람들도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한다.
형량을 마치고 나온 탈북자들은 단련대와 별반 차이 없는 북한사회에 대한 회의감이 더욱 커져 십중팔구 재탈북 한다.(데일리엔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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