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보다 무서운’ 요즘 애들과 대화하기
고교생 22% 중학생 17% 아버지와 하루 1분도 안해 ?
5분 이상 ‘설교’ 말고 아침밥부터 함께 드세요
김윤덕기자
대한민국 10대들의 반란이 시작됐다. 공부 때문에 더 이상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다고 외치며 피켓을 들고 광화문으로 나섰다. 집에서도 아이들은 묵직한 자물쇠로 입을 닫아 걸었다. 청소년보호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22%, 중학생의 17.4%가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하루 1분도 안 된다’고 응답했다. 우울증, 심하게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택하는 자녀들의 행동에 난감한 건 부모들이다. 아이와의 사이에 가로막힌 장벽을 어떻게 뚫어야 할까. 전문가들은 “원인이야 어찌 됐든 일단 부모가 열쇠를 쥐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 비법을 들어봤다.
■‘설교’로는 절대 ‘설득’ 못한다
송미경 한국청소년상담원 연구원은 “아이들의 우울증, 자살 충동의 표면적 원인은 학업성적 또는 친구 문제이지만, 본질은 (부모 또는 친구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내가 인생을 더 오래 살았으니 교훈이나 충고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하면 절대 안먹힌다. “10대들이 학교에서도 나이 든 교사를 싫어하는 이유는 자기 엄마와 비슷해서에요.” 단답형 대답을 즐기는 10대 자녀에게 5분 이상 길어지는 말은 ‘설교’에 불과하다. 차라리 달라진 행동을 보인 뒤 아이 방문에 ‘네가 원해서 엄마가 오늘 이렇게 해봤다’라는 내용의 쪽지를 써붙이는 게 효과적이다.
■외모를 두고 잔소리 말라
이 시기 외모는 아이들 자존감으로 연결되는 첫 번째 척도다. 남자는 덩치와 근육, 여자는 예쁜 얼굴에 매달린다. ‘공부는 안하고 만날 멋만 부린다’고 다그치면 반항심만 키운다. 초등학교 때까지 오줌싸개에 성적이 바닥권을 돌던 아들 원상씨를 영국의 경제명문대학 UCL에 보낸 주부 박현수씨는 “가능하면 칭찬하고 격려해준 것이 비결”이라고 말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때, 이상한 색깔로 염색을 하든, 한겨울에 반바지나 반팔을 입고 나가든, “개성이 있어 좋다”고 칭찬했다. 성적이 나쁘면 “엄마는 네 나이 때 더 못했었다”, 만화책만 빌려다 보면 “엄마가 함께 봐도 되겠니?” 하는 식이다. 대신 엄마가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이런 엄마를 보면서 아이는 중학교 들어가면서 스스로 공부하게 됐다.
■“엄마도 그때는 힘들었어…” 고통공감(苦痛共感)
예슬(고1), 정빈(초3)을 키우는 엄마이자 경북여자정보고등학교 교사인 이영미씨는 “부모가 조급해하면 아이가 병든다”고 말한다. 성적이 그리 좋지 않은 예슬이는 ‘내신 9등급제 상대평가’의 중압감에 시달렸지만 점차 자신감을 얻고 있는 중이다. 1단계가 고통공감. 엄마도 공부 때문에 힘들었노라고 솔직히 이야기해준다. 2단계는 꿈 만들기다. “무조건 공부하란 말 대신 앞으로 뭐가 되고 싶은지 함께 고민했어요. 공부는 그 길을 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니 1·2등을 할 필요는 없다고 안심시켰지요.”
■‘배 아픈’ 것도 참아라
민수(가명·17)는 중학교를 중퇴했다. 시험 때만 되면 잠을 거의 못자고 배가 아파 떼굴떼굴 굴렀다. 내내 반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아이다. 극도의 긴장 속에 2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망친 뒤 자살을 시도했다. 민수를 상담하고 있는 신철희 아동청소년상담센터 소장은 “당연히 부모가 원인”이라고 말했다. “시험을 한 번이라도 잘못 보면 부모의 태도가 싸늘해지는 것이 두려웠던 거죠. 민수가 진심으로 두려운 건 성적이 아니라 그로 인해 부모의 사랑을 잃을까봐서입니다.” 임정희 밝은청소년지원센터 소장은 “아이들 방황의 원인은 성적에 집착하는 부모들 때문”이라면서, “배고픈 건 참아도 배아픈 건 못참는 부모들이 사라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아빠와 함께 아침밥을!
10일 오전 7시30분 서울 옥정중학교 앞에서는 등굣길 학생들에게 주먹밥과 우유를 나눠주는 이색 행사가 펼쳐졌다. ‘얘들아, 밥 먹자’는 제목의 이 캠페인은 아침에 조금만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함께 먹으며 자녀와 대화를 해보자는 취지로 서울YWCA가 마련한 행사. 이날은 특히 자발적 참여를 희망한 ‘우리홈쇼핑’ 아빠 직원들이 나와 더욱 화기애애했다. 이 학교 교사이면서 중학생 딸을 둔 허익배(50)씨 역시 사춘기의 예민한 딸아이와 아침 식탁에서 대화를 나눈다. “아이가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마세요. 아이는 아빠가 먼저 말 걸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