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수 민족의 풍습 (1) 그 자리에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청년이 돌아갈 때 돼지발과 꼬리를 답례품과 함께 바구니에 넣어 보내면 된다. |
소수 민족의 풍습 (2)
⊙ 시보족의 활과 화살
☞ 소수민족의 하나인 시보족(錫伯族)은 遼寧省 藩陽市 주면과 新彊 위굴 자치구의 이리강 유역에 살고 있다. 이 민족은 옛부터 기마와 활쏘기에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풍습도 활, 화살과 관계된 것들이 많다.
시보족 사람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대문에 조그만 활 화살을 걸어놓는다. 그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서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산모가 무사하게 귀신의 저주를 받지 않고 건강해지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아이가 열 번쩨 맞는 생일에 부모는 선물 속에 느릅나무와 소의 힘줄로 만든 활을 넣는데 이것은 빈부에 관계없이 모두가 따르고 있다. 축제의 주요한 행가는 활쏘기 시합으로 수확 후에 여는 축제에도 역시 행해진다.
시합은 개인과 단체 두 종류로 행해지며 패가는 승자에게 소와 양을 증정한다. 승자는 받은 선물, 소와 양의 머리에 자신의 화살을 꽂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그걸 다시 분질러 커다란 솥에 넣고 삶는다. 그리고 나서 모두에게 대접한다. 청년이 구혼을 할때도 활과 화살이 없어서는 안 된다.
마음에 드는 규수가 생기면 청년은 우선 활쏘기 소밋를 보여주며 상대방의 관심을 사려한다. 규수도 마음에 드는 청년을 정하면 같이 활쏘기를 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나타낸다. 또 약혼이 성립되었다는 표시로 활과 화살을 교환하기도 한다.
⊙ 구자족의 포반람
☞ 귀주성 淸水강 주?에 사는 구자족( 家族) 규수들은 모두가 사랑을 전하는 표시인 작은 대나무 바구니를 갖고 있는데 이것을 일컬어 包飯藍이라 한다.
매년, 春節을 전후로 산길이나 마을의 좁은 길에서 이 대나무 바구니를 짊어진 규수의 모습을 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갓 지어낸 찹쌀밥을 바구니에 넣고 밀랍으로 물들인 천으로 씌워 놓는다. 젊은 남져가 서로 좋아하게 되면 규수는 이 포반람을 청년에게 건네준다.
청년은 규수에게 바구니를 받을 때 그걸 되돌려 줄 시간과 장소를 약속한다. 청년은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염식되지 않은 흰 목면천이나 간소한 선물을 바구니에 넣어 규수에게 보낸다. 춘절 이외에 2월 2일, 3월 3일 등의 축제에도 포반함을 이용해서 사랑을 전한다.
다만 이때는 바구니 안에 밥 대신 찹쌀로 빚은 경단이나 다른 음식을 넣는다. 이때 경단의 갯수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한 두 개를 넣었을 때는 한 두 달 동안 변하지 않는 사랑을 나타내는 표시이다. 이 경단은 청년이 점심으로 먹는다. 그러나 만일 이때 청년이 혼자서 먹지 않을 경우에는 다른 친구들까지 불러 모아 같이 먹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규수 쪽에서 남녀 고제가 서툴다던가, 냉정한 사람이라고 생까해 버리기 때문이다.
⊙ 사랑을 노래하는 아찬족의 삼월소
.................................☞ 三月簫는 운남 지방에 사는 아찬족(阿昌族)이 다루는 피리이다.
아찬족 청년들은 어디를 가든지 반드시 피리를 옷깃에 꽂거나 허리춤에 차고 외출하는데 마음에 드는 규수를 만나면 피리로 감미로운 곡을 붙여서 가슴에서 싹튼 사랑을 전한다. 상대방에서도 싫어하는 기색이 없다고 생각되면 청년은 규수를 집까지 바래다주는데 이때 걸어가면서 피리를 불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삼월소란 봄의 퉁소라는 의미로 가락이 부드럽고 경쾌하며 리듬이 자유로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감을 불러 일으키는데다가 구애와 결혼을 하는데도 한 몫을 하기 때문에 아찬족 청년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 미아족의 사파절
☞ 음력 4월 8일은 미아오족(苗族)의 전통적인 축제일인 '社巴節'이다. 사파절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한때 미아오족은 홍수에 휩쓸려 멸종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때 살아남은 복희(伏羲; 중국 고대의 전설속의 왕. 처음으로 백성들에게 수렵과 목축을 가르쳤으며 문자를 만들어냈다고 한다)는 후세에 자손을 남기기 위해 사촌 누이와 부부로 인연을 맺었는데 이 날이 바로 4월 8일이다.
이렇게 해서 이 날을 미아오족이 새롭게 태어난 날로 삼고 이 후 자자 손손이 오래가도록 이 경사스러운 날을 축복해 왔다. 사파절에 여러가지 행사가 있지만 그 중 규모가 제일 큰 '왜지 잡기'라는 행사가 제일로 꼽힌다.
축제장은 형형색색의 문으로 장식되고 미아족의 민속의상을 입은 영친대(迎親隊;결혼식 때 신랑 측이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 보내는 가마와 악단) 30명이 그 양 옆으로 늘어선다. 주인(덕망있는 연장자)이 양 손에 술병을 들고 문 한가운데 서고 남녀로 구성된 가수 네 사람이 그의 좌우에 따른다. 가수는 신부의 친정의 노인들(사실은 마을 사람들이 지정한 사람들)에게 노래를 청하고 술을 권한다.
손님과 주인이 문을 들어서서 장내를 한 바퀴 돌면 징, 악기, 폭죽이 일제히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한참 지난 후에야 노인들은 돼지를 잡는다. 그리고 주인은 돼지발을 노인들에게 존경의 뜻으로 드린다. 노인들은 정중히 인사를 하고 흔쾌히 받는다. 이 외에도 조상을 기리는 행사로서 여러가지 민속색이 짙은 풍류를 선보인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면 화톳불을 기피고 빔 늦게까지 춤추고 노래를 부르다가 어느 정도 흥이 사그라진 후에야 비로소 집으로 향한다.
미아오족의 대다수는 중국 서부지역에 살고 있다. 달 밝은 밤,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는 저음과 고음을 섞어가며 부르는 노래소리와 거문고 타는 소리가 흘러 들어온다. 이것은 다름 아닌 미아오족의 젊은 남녀가 데이트를 하는 소리인데 서로가 맘에 들면 청년은 규수의 스카프를 갖고 도망가버린다.
이때 규수는 난처해하며 천년을 뒤쫓아간다. 두 사람은 조용한 나무 그늘에 다다르면 멈추어 다정히 앉아 사랑을 속삭이고 결혼을 약속하기에 이르는데 이것을 가리켜 串月亮이라 한다. 결혼을 약속한 두 사람은 '피의 물'을 마시는 의식을 거행한다.
두 사람은 부모와 친구들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하고 시간에 장소를 정하고 손을 잡고 냇가로 향한다. 우선 청년이 양손느오 맑은 물을 뜨면 규수는 머리에 꽂은 은으로 된 바늘을 빼서 청년의 왼손 중지를 살짝 찔러 피를 내서 물에 섞는다.
이 피가 섞인 물을 청년이 다 마셔버린다. 이번에는 규수가 맑은 물을 뜨고 청년이 규수의 오른손가락 중지를 찔러 피를 낸다. 마찬가지로 규수가 그걸 말끔히 마셔버린다. 이 의식을 행하면서 두 사람은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한다.
⊙ 미아오족의 약화산축제
☞ 운남성 文山 일대에 사는 이야오족 마을에서는 매년 봄 꽃의 계절이 되면 躍花山이라는 축제가 열린다. 이날, 규수들은 자기가 집적 수놓은 아름답고 화려안 옷으로 단장을 하고 정교한 은장신구를 몸에 단다. 청년들은 옷매우새를 단정히 하고 花山場으로 간다.
화산장의 한 가운데는 수십 미터나 되는 삼나무로 된 기둥이 세워져있다. 기둥 앞에는 삼나무로 된 기둥이 세워져 있다. 기둥 앞에는 사각의 깃발과 빨간색 천으로 만든 보따리가 걸려있다ㅣ. 보따리 속에는 대나무 피리, 돼지머리, 白酒 며?이 들어있다.
혈기 왕성한 청년들은 나무타기로 서로 힘을 겨룬다. 제일 먼저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빨간 보따리를 잡는 사람이 승리를 하게 된다. 이때 규수들은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데 느닷없이 기름으로 더럽혀진 밧줄이 규수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온다.
규수들은 곱게 차려입은 옷이 더러워질까봐 달아나지도 못하고 밧줄에 감긴 채 어쩔 수 없이 청년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청년은 마음에 드는 규수에게 꽃으로 엮은 우산을 씌워주고 청년 둘이 짝을 지어 노래경연을 벌인다.
노래경연에서 이긴 청년에게는 규수들이 앞을 다투어 반지를 보낸다. 양쪽 손가락에 전부 반지를 낄 때까지 계속할 수 있는데 만일 자기 분수도 모르고 어려운 문제를 내서 규수들의 미움이라도 사게되면 그 중 현명한 규수가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 여러 사람앞에서 창피를 준다.
약화산 축제에서는 대나무 피리를 불면서 춤을 추기도 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투우와 경마도 열린다. 이렇게 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들은 흠씬 즐기고 대나무 피리소리를 뒤로하고는 아쉬움을 남긴 채 뿔뿔히 흩어진다.
⊙ 미아오 족의 復姓과 데릴사위
☞ 중국인의 대부분은 한 글자로 된 姓을 쓰는데 호남성 城步山區에 사는 미아오족은 두 자 이상의 성을 쓰는 경우가 흔하다.
예를 들면 陽劉라는 두 자의 성이 있는가 하면 楊陳周, 蘭楊陳李 등 세, 네자로 된 성도 있는데 이것은 이 지역의 데릴사위를 들이는 풍습과 관계가 있다. 일단 데릴사위가 되면 처가의 성과 輩分(代에 따라 붙여지는 이름 한 자)에 희해 새롭게 이름을 짓도록 되어 있으며 부부 사이에 생긴 자식은 양쪽의 성을 따른다.
예를 들면 모친의 성이 양, 부친의 성이 류라면 아이의 성은 양류가 된다. 란양진이는 4대째 내려오는 이씨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남편과 자식의 대다수는 부인 쪽 성을 따름으로써 3대를 통틀어 같은 성을 갖는 경우도 흔하다.
이 지방의 게릴사위 제도는 수백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데릴사위를 들이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긴 하지만 데릴사위라고 해서 차별받는 일은 없으며 처가쪽 식구의 한 사람으로서 동일한 재산 상속권을 갖게 된다. 지금은 남편이 부인의 성을 따르는 것과 상관없이 자식은 부모 중 어느쪽의 성을 따라도 무방하기 때문에 이 복성제도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소수 민족의 풍습 (3)
⊙ 고로족의 타친
☞ 귀주성 동북부 일대에 사는 고로族에게는 좀 재미난 풍습니 있다. 혼인식 날 새 신랑은 비단으로 어깨를 감싸고 머리에 쇠방울을 단 갈색말에 올라앉아 힘센 네 명의 장정을 따르게 한다.
장정 중에서 두 사람은 어깨에 대나무 빗자루를 짊어지고 나머지 두 사람은 술과 고기를 싸들고 당당하게 신부의 집으로 향한다. 가는 도중에 허리에 붉은 비단을 두른 장정 수십명이 갑자기 나타나 눈 깜짝할 사이에 술과 고리를 빼앗아 달아난다.
네 명의 장정들은 저항도 하지 않고 뒤쫓아가지도 않는다. 새신항은 호를 내기는 커녕 내심 흐뭇해 하는데 왜냐하면 다름 아닌 신부집에서 보낸 장정들이기 때문이다. 신부의 생가에는 술과 고기가 잔뜩 있으니 가져올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해서 부락의 입구에 도착하면 손에 몽둥이를 든 남녀가 함성을 지르며 말을 향해 뛰어와서 몽둥이로 새신항을 두들겨주는데 이것을 打親이라 한다. 이 매 한대로 언쟁을 삼가하고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금실 좋은 부부로 지내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한편 장정 두 사람은 빗자루를 휘두르며 방어에 힘쓰지만 앙갚음은 금물.
이 소동은 새신랑이 신부집으로 들어가면서 비로소 조용해진다. 새신랑은 장인, 장모에게 敬親酒를 올리고 감사의 뜻을 전한다. 그 다음 부모는 신부를 불러 서로 맹세의 잔을 교환하게 하고 친척과 친구들에게 술을 돌린다.
이 행사가 끝나면 새신랑은 말을 몰라 신부를 데리고 자기집으로 떠난다.
⊙ 고로족의 연애와 혼례
☞ 귀주성 광서 치와족 자치구에 사는 고로족 젊은들의 사랑은 마을에 있는 커다란 보리수 나무아래에서 시작된다.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통한다고 생각되면 청년은 손수건에 보리수 잎 한 장을 싸서 규수에게 던진다. 그리고 나서 청년은 규수집으로 가서 들고 온 붉은 종이에 싼 젖가락을 내밀고 구혼을 한다. 부모의 마음에 들게되면 이듬해에는 술을 들고 들어가는데 이때 청년은 규수측의 대환영을 받는다. 그리고 다시 그 다음해 처음 만난 날로부터 만 2년이 되는 길일에 혼례를 하게 되는데 그 고장에서 '천을 던짐'이란 말로 통한다.
이날, 새신랑은 3미터나 되는 감색 목면을 들고 친구들과 함께 신부집으로 간다. 신부집에 도착해서 새신랑은 친구들에게서 건에받은 목면 한쪽을 움켜쥐고 다른 한쪽 끝을 대문 앞에서 건네받아 신부의 허리에 감아준다.
새신랑은 움켜쥐고 있던 천을 잡아당겨 신부를 데리고 간다. 이날 신부는 흰신을 세 번 갈아 신는데 이것은 신부의 마음은 항상 정숙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 비아족의 용조제
☞ 운남성 서북부의 鶴慶縣 동부로 이주한 바이족 (白族) 사람들은 용을 민족의 무속 신앙으로 삼아 일년 열두 달, 즉 한달에 한번씩 축제를 벌인다. 그 중에서도 음력 2월 2일에 열리는 龍祖際가 가장 화려하소 성대하다.
해가 뜨면 남자는 이발을 하고 여자는 머리를 감는다. 이것을 洗龍頭라고 하며 이 의식을 행함으로써 무병장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점심때가 가까워지면 각 마을 사람들은 옷을 잘 차려입고 '용조'아래 있는 '용샘' 옆으로 모여 성대한 축제를 시작한다.
이때 각 마을에서 색을 입혀 만든 용이 속속 등장한다. 용춤을 추는 젊은이는 용의 해에 태어난 젊은이들 가운데 선발되며 각기 십이간지의 동물로 분장을 해서 가죽털 옷을 걸치고 머리에는 새의 깃털을 꽂음으로써 고풍스러운 아취를 자아낸다.
그 다음은 쇄라용(鎖懶龍)이다. 쇄라용이란 지난 일 년간 마을에서 게으름뱅이로 낙인찍힌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들은 쇄라를 둘러싸고는 "너는 어째서 일을 하지 않느냐, 왜 집안일을 돌보지 않느냐." 등 노래 형식으로 질문을 퍼붓는다. 그리고 대나무가지와 오이덩굴로 짠 바퀴에 쇄라를 매달아 놓으려고 한다.
쇄라는 이리저리로 피해다니며 뉘우침과 사죄의 뜻을 노래로 전하면 비로소 사람들은 용서를 해주고 준비해 온 곡물의 종자와 생활용품 등을 쇄라에게 준다. 쇄라는 이 선물을 받으면 흥이 나서 밭농사와 사냥을 의미하는 춤을 추며 사람들의 성원에 감사해 하면서 이제부터는 착실히 일할 것을 다짐한다.
⊙ 티벳족의 합달
☞ 哈達이란 본래 티벳불교 겔파의 의식에 쓰이는 용품이지만 지금은 티벳족 사이에서 고귀한 선물로 사용되고 있다. 면직물과 비단이 있으며 길이는 보통 1미터 정도이지만 3미터가 넘는 것도 있다.
색은 흰색이 주를 이루며 황색, 청색도 있지만 이것은 首長에게 바치는 것으로 보통 사람들에게는 사용하지 않는다. 합달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여러가지 의미를 타나낸다. 신년에는 행복한 생활이 되기를 서로 기원하는 의미로 결혼식에서는 부부의 변치않는 사랑을 기원하는 의미로 쓰인다.
멀리서 온 손님에게는 환영과 경의를 표하는 뜻을, 장례식에서는 죽은 자에 대한 애석함과 유족에게 조의를 표하는 듯으로 쓴다. 합달을 올릴 때는 형식을 중시한다. 먼저 합달을 두번 접어 반득이 펴서 정중히 절을 하면서 두 손으로 손님에게 드린다. 이때 받는 사람도 정중히 절을 하면서 두 손으로 받아든다.
생불과 웃어른에게 합달을 올릴 때는 경례를 하고 두 손으로 합달을 머리위로 들어 올린다. 아랫 사람에게는 합달을 상대의 어깨에 올리던가 두 손으로 건네주면 된다.
⊙ 나시족의 요화회
☞ 운남성 서북부에 사는 나시족(내西族)은 불의 신에 제사를 지내는 要火會라는 행사를 벌인다. 農曆 6월 24일이 되면 남녀 노소가 잘 차려입고 산꼭대기에 모인다.
마을 사람들은 붉은 색의 갖가지 꽃을 산에 오르면서 나뭇가지에 매다는데 이 광경은 마치 산에 불이 휩싸인 것처럼 보인다. 산 꼭대기에 올라가면 백 년된 노송을 골라 붉은 꽃, ?은 비단, 붉은 깃발로 장식을 한다.
이것을 가리켜 火樹라고 한다. 그 다음으로 화수 앞의 아홉군데에 소나무 장작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소나무 가지로 만든 탑을 올려 놓는다. 노을이 지면 마을 사람들은 화수와 소나무 탑에 둘러 앉는다.
하늘에 별이 뜨기 시작하면 일제히 폭죽을 터뜨리고 나팔을 분다. 그걸 신호로 축제 주최자는 횃불을 손에 들고 차례차례로 장작에 불을 붙인다. 먼저 주최자가 노래의 첫 소절을 부르면서 불타오르는 장작 주변을 춤추며 돈다.
마을 사람들도 각기 장작에 불을 붙이고 노래를 부르며 장작더미 주변을 세 번 돌고 환호성을 지르며 들판으로 달려나간다. 장작이 불바다를 이루어 사방으로 흘러들어가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다음으로 모두가 춤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각기 자기네 논으로 가서 횃불로 벼이삭을 밝힌다. 불로 해충을 퇘치하고 농작물을 보호함으로써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그리고 나서 마을을 빠져나와 횃불을 자기집 주변과 정원 한 가운데에 세우고 가족들이 모여 횃불을 둘러싸고 동이 틀때까지 춤추고 노래를 부른다.
소수 민족의 풍습 (4)
⊙ 뚱족의 조상숭배
☞ 귀주성 뚱족이 사는 마을에서는 立夏부터 첫토끼날(卯日)에 걸쳐 대규모의 화려한 행사가 열린다.
아침 일찍 집집마다 가장은 소쿠리를 짊어지고 논으로 나선다.
논의 동쪽 방향에서 잘 익은 옥수수 세 개를 골라 따서 왼손에 들고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 간다.
도중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어, "이번 작황은 어떻겠는가?" 하는 질문을 받으면, "오곡 풍년이 들 것 같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자기 집에 도착해서도 집에 들어가지 않5고 아내가 밭에서 가지, 오이, 고추 등 신선한 야채를 따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두 사람은 나란히 문지방을 건너 안방으로 들어가 햇 곡식과 신선한 야채를 불단에 올린다.
식구들은 새 옷으로 갈아입고 무릎을 꿇고 앉아 기다린다.
햇곡식과 야채가 불단에 올려지면 연장자가 향과 초에 불을 붙이고 지폐를 태운다음 무릎을 꿇고 염불을 외운다.
"조상님의 음덕으로 금년에 풍년이 들었습니다. 내년에도 아무쪼록 보살펴 주시기를 빕니다."
그런다음 햅쌀로 밥을 지어서 가족 한 사람 앞에 한 그릇씩 그 밖에 반천을 곁들여 미리 준비해 놓은 한 그릇을 식탁의 上座에 올려놓고 조상께 바친다.
가족들은 잠시 묵묵하게 있다가 조상이 먼저 드신 다음에 서열에 따라 나누어 먹는다.
이 풍습은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으며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 뚱족의 두춘우
☞ 호남성 서부의 뚱족이 사는 산골 마을에는 逗春牛라는 풍습이 전해져 오는데 이것이 일종의 마을 축제이다.
매년 입춘이 되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풀밭이나 탈곡장에 모여 일년에 한번 밖에 없는 두춘우로 떠들썩하다.
먼더 '춘우'로 분장한 청년 두 사람, 즉 한 사람이 머리에는 종이로 소머리 모양을 만들어서 쓰고 검은 천으로 된 몸통을 두르고 손에는 종려나무로 만든 꼬리를 들고 등장한다.
그 뒤로 도롱이를 쓰고 왼손에는 채찍을 쥐고 오른 손으로 쟁기를 끄는 청년이 뒤따른다.
타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춘우'는 자연스럽게 밭농사를 하는 동작과 소 특유의 다양한 몸짓을 춤으로 보여준다.
'춘우'의 양 옆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거지 등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분장한 사람들이 소를 조롱하며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무도회장에서는 젊은 남녀가 큰 원을 만들어 리듬에 맞추어 손뼉을 치며 춤추어 흥을 돋군다.
이렇게 마을사람 모두가 아침부터 함께 즐긴다.
기록에 의하면 당나라 말엽에 미이 이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춘우'로 분장하고 춤을 추는 것은 '農神''으로 여기는 소를 받들어 모셔 풍년을 기리기 위해서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두춘우'는 점차적으로 뚱족 사람들의 봄을 맞이하는 의례적인 행사로 바뀌었으며 또한 뚱족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사교적인 모임이 되었다.
⊙ 고로족의 연애와 혼례
☞ 귀주성 광서 치와족 자치구에 사는 고로족 젊은들의 사랑은 마을에 있는 커다란 보리수 나무아래에서 시작된다.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통한다고 생각되면 청년은 손수건에 보리수 잎 한 장을 싸서 규수에게 던진다.
그리고 나서 청년은 규수집으로 가서 들고 온 붉은 종이에 싼 젖가락을 내밀고 구혼을 한다.
부모의 마음에 들게되면 이듬해에는 술을 들고 들어가는데 이때 청년은 규수측의 대환영을 받는다.
그리고 다시 그 다음해 처음 만난 날로부터 만 2년이 되는 길일에 혼례를 하게 되는데 그 고장에서 '천을 던짐'이란 말로 통한다.
이날, 새신랑은 3미터나 되는 감색 목면을 들고 친구들과 함께 신부집으로 간다.
신부집에 도착해서 새신랑은 친구들에게서 건에받은 목면 한쪽을 움켜쥐고 다른 한쪽 끝을 대문 앞에서 건네받아 신부의 허리에 감아준다.
새신랑은 움켜쥐고 있던 천을 잡아당겨 신부를 데리고 간다.
이날 신부는 흰신을 세 번 갈아 신는데 이것은 신부의 마음은 항상 정숙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북풍표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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