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 저편에 우리 이웃이 삽니다. 내전으로 파탄이 난 우간다. 똑같이 숨쉬고 웃고 우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1950년대 대한민국이 세계 각국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났듯,
  • 이제 우리가 이들을 도울 차례입니다. 세계는 가족입니다./박종인 기자
  • ‘내전·기아의 공포’ 우간다 북부 난민촌 르포
    내전 틈바구니서 ‘性노예 악몽’ 소녀들 손·귀 잘린 소년들…
    “학교도 책도 없지만 공부하고 싶어요”

     

    키트굼(우간다)=박종인 기자 seno@chosun.com
    입력 : 2007.04.14 00:58 / 수정 : 2007.04.14 06:16

    에티오피아에서 비행기 갈아타는 시간을 포함, 대한민국 인천국제공항에서 우간다 엔테베 공항까지 딱 22시간이 걸렸다. 만 하루도 걸리지 않은 땅. 그곳에서 사람들은 절망을 씹으며 살고 있었다. 우간다 북부 키트굼(Kitgum) 근처에 무치위니(Muciwini) 난민촌이 있다. LRA(Lord’s Resistance Army·신의 저항군)라 자칭하는 반군을 피해 정부가 세운 숱한 난민촌 가운데 하나다. 무치위니에 살고 있는 난민은 8000여 명. 다닥다닥 붙은 흙집 사이로 오물과 생활하수를 그대로 버린다. 상수도도 없다. 콜레라, 장티푸스 따위의 병이 수시로 돌지만 약품은 절대 부족이다. 경제활동은 아예 불가능하고, 그저 마을 주변 밭에 기른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며 산다.


    키트굼에서 무치위니로 가는 한 시간 가량, 노변에는 옥토(沃土)가 지평선을 이뤘지만 아무도 농사를 짓지 않았다. 길 안내를 했던 기아대책 현지 직원 데이비드씨는 “반군들이 무서워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내전은 공식적으로는 끝났다. 하지만 여전히 반군이 장악중인 북부 우간다 일부 지역은 언론도, 정부군도 출입이 불가능하다.

    난민촌 실태조사를 나온 기아대책 각국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리자 맨발에 누더기를 걸친 아이들이 사람들을 에워쌌다. 디지털카메라 액정을 보고 마냥 신기해하는 아이들 뒤 나무 그늘에서 10대 아이들 몇몇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군에게 끌려가 ‘미치광이짓’을 당하고 탈출한 아이들이었다. 조프리 오비가(19)도 그 중 하나였다.

    2003년 5월 29일 오전 8시, 조프리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무치위니에 살면서 매달 기아대책 한국지부를 통해 결연을 맺은 한국인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공부를 하던 소년이었다.

    등교 준비를 하던 아침, 반군이 마을에 들이닥쳤다. 조프리를 끌고서 산으로 데려간 반군은 아이의 두 손을 묶은 다음 귀를 자르고 손가락을 모두 자르고, 입술을 도려내 버렸다. 울부짖는 아이에게 그들은 악마처럼 웃었다. “돌아가서 우리가 얼마나 잔인한지 사람들에게 말하라.”

    밤새 걸어서 마을에 돌아왔지만 사람들은 다 도망가고 없었다. 사람들은 다음날 점심 무렵에야 돌아와 피투성이가 된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이제 나이 겨우 열아홉. “나한테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에요. 세계가 우리를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조프리는 “손가락 대신 마우스를 쓰는 컴퓨터 기술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 ▲우간다에는 160만 명 넘는 사람들이 반군을 피해 환경 열악한 난민촌에 살고 있다. /무치위니(우간다)=박종인 기자

    열일곱 살 소녀 크리스틴도 무치위니에 사는 중학생이었다. 크리스틴이 말했다. “2003년 어느 여름밤이었어요. 반군들이 우리를 마구 때리면서 산으로 끌고갔어요. 일을 막 시키면서 여자애들을 부려먹더니, 어느날이었어요. 군인 한 명이 나에게 큰 칼을 주며 할아버지 한 명을 숲속으로 끌고 가랬어요. 돌아올 때 칼에 피가 안 묻어 있으면 나를 죽인다고 했어요. 죽기 싫어서…, 나는 울면서 그 할아버지를….”

    그러다 반군과 정부군이 교전을 벌일 때 ‘죽을 힘을 다해’ 달려서 탈출했다. 납치된 지 3년 만이었다. 이제 크리스틴은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는 봄도, 학교도 없다.

    • ▲조프리(19)는 고등학교 때 반군에게 끌려가 귀와 입술과 열 손가락이 잘려 나갔다. /무치위니(우간다)=박종인 기자

    조지 코마굼(16)에게 닥친 일도 끔찍했다. 2000년 어느 날 조지가 살던 마주페(Madaope) 마을에 반군이 들이닥쳤다. 반군은 횃불을 들고서 사람들을 집합시켰다. 한쪽에 모여 있는 친척들 앞에서 반군이 조지에게 한 명을 고르라고 했다. 삼촌을 지명하자 반군들이 조지에게 무언가 이상한 액체를 먹이고 칼을 쥐여줬다. 그 뒤 기억은 혼미하다. “그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삼촌 코를 잘랐어요. 귀를 자르고, 팔을 자르고… 삼촌이 넘어지니까 배를…”

    • ▲손가락 없는 조프리의 두 손은 우간다 참상의 상징이다. /무치위니(우간다)=박종인 기자

    아홉 살이었다. 아이는 그대로 산으로 끌려가 환각제를 수시로 먹으면서 사람을 죽였다고 했다. 2년 뒤 정부군과 교전 도중 구출된 아이는 두 번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조지는 5년 동안 반쯤 미쳐서 “내 속에 악마가 있다!”고 고함지르며 거리를 떠돌다가 지난 2월 키트굼에 있는 기아대책 미혼모 재활센터를 찾아왔다. 기아대책 현지 상담가는 “조지는 지금 가치판단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라며 “조지 같은 소년병들을 심리치료할 인력과 자금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지난 2월 키트굼에는 유니세프와 기아대책이 만든 미혼모 재활센터가 생겨났다. 기아대책 우간다 지부장인 한국인 이상훈씨는 “인프라 재건에 드는 자금은 물론 개개인의 삶의 의지를 북돋아줄 지원이 필요하다”며 “내전이 끝난 지금이 바로 우간다 지원을 시작할 때”라고 말했다.

    • ▲열 일곱 살 소녀 크리스틴도 중학교 때 반군에 납치되어 살인을 강요받다가 탈출했다. /무치위니(우간다)=박종인 기자

     

    • 지구 저편에 우리 이웃이 삽니다. 내전으로 파탄이 난 우간다. 똑같이 숨쉬고 웃고 우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1950년대 대한민국이 세계 각국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났듯, 이제 우리가 이들을 도울 차례입니다. 세계는 가족입니다./박종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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