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말>남북 총영사도 함께한 연해주 동포 한마음 행사

조천현 / 본지 전문기자

지난 9월 30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러시아 연해주에서 남북이 하나 된 행사가 열렸다. 분단 이후 남북 총영사관 사람들이 하나 되어 처음 열린 통일 밧줄 당기기. 구호도 조국은 하나였다.

“북조선 남조선 합쳐서 이제 밧줄 당기기를 해야 된단 말이지. 구령 칠 때는 정확히 다 들어야 돼, 밧줄을 꽉 잡고 몽땅 사십오도 각도야, 밧줄을 촘촘히 잡아야 된다고, 각은 사십오도 각도로 딱 버티고 얼굴은 위로하고 시작하면 단번에 잡아 당겨야 해”
밧줄 당기기를 시작하기 전 북조선 나호드까 김현철 영사는 남과 북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작전회의를 했다.

남과 북 어린이들은 처음 만났지만 어색해하지 않고 진지하게 설명을 들었다. 남과 북 어린이가 한 팀이 된 코리아팀과 연해주에 거주하는 러시아 어린이 팀의 대결이었다.

남북이 한팀이 된 어린이들이 밧줄당기기를 하고 있다. ⓒ조천현 전문기자
ⓒ 민중의소리


이날 행사는 고려인 문화의 날을 맞아 남과 북 총영사관 모든 관계자들이 동시에 초청되어 이루어졌다. 고려인들이 자체적으로 기획하고 재정을 부담해 이루어진 행사라 북측에서 자연스럽게 참가할 수 있었다. 해외동포들이 참가한 대부분의 행사들이 한국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져 북조선에서는 그동안 행사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분단 이후 해외에서 남과 북 총영사관 관계자와 민간인이 함께 하는 행사는 이 곳 연해주만의 특색이다. 중국에서 온 조선족 윤운걸 흑룡강 신문 기자는 “남과 북 총영사들이 함께한 행사는 중국에서도 지금까지 볼 수 없는 일이었다”며 “남과 북 총영사관의 화합의 장이 너무 부럽다. 중국에서도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중석에서 한국 풍물패의 공연 사진을 찍던 북조선 나호드까 김룡송 영사는 북조선 아이들을 기자에게 소개시켜 주며 “조선 민족이 다 모여 진짜 감개무량합니다. 이전 같으면 꿈도 꾸지 못했잖아요. 진짜 통일을 향한 길인데...”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옆에 앉아 지켜보는 김 영사의 딸 김영미(15세)양에게 꿈이 뭐냐고 묻자 수줍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김 영사가 법관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최룡권(14세)어린이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 휼륭한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라고 대답하자 김 영사는 최군의 등을 두드리며 러시아말도 잘한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집안에 걸어 놓기 위해 북조선 수예 그림을 구입했다는 이우용 블라디보스톡 한국교육원 원장은 “주제가 이별이 아니고 만남 이라고 해 남북이 오늘 만난 것처럼 가슴에 와 닿는다”며 “연해주 지역의 특성상 남북총영사 공관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동의 행사를 할 수 있는 것이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없는 일이다. 이 행사가 더 큰 행사로 이어져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려인 문화의 날. 고려인들의 행렬 ⓒ조천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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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는 사할린과 함께 고려인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지리적으로도 남과 북에가까워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하고 있는 지역이다.
남과 북, 러시아 고려인, 중국 조선족이 처음으로 함께 모여 준비한 다채로운 행사 프로그램 중 가장 주목을 끈 프로그램은 통일 밧줄 당기기였다.
러시아 연해주 아르쫌시 우골씩 운동장은 2천여 명의 참가자들로 가득 메워졌다. 연해주 고려인 문화의 날이었지만 남과 북 총영사관 관계자들이 중앙 무대에 나란히 앉아 박수를 치며 웃는 모습은 고려인 문화의 날을 더욱 빛냈다.

아르쫌시에 거주하는 고려인 이춘웅(62세)씨는 “남북이 함께 모인 자리에 참가해 뜻 깊다”며 “분단의 길에서 통일의 길을 여는 뜻있는 날이 되기를 염원 한다”고 참가 소감을 말했다.
한국에서 공부한다는 고려인 김가은(21세, 단국대 1년)양은 “남북한 사람들을 함께 만나게 돼서 너무 좋다. 앞으로 이런 축제가 계속 열렸으면 좋겠다고”싱긋 웃었다.

행사를 주최한 연해주 아르쫌 민족문화센터 박 알랜찌나 대표. 조국이 갈라져 있는 것이 불만이라는 그는 “하나인 조선이 둘로 갈라져 시합을 하는 것 보다 둘이 하나가 되어 러시아팀과 시합을 하는 것이 좋다”는 제안을 했다. 남북의 어색한 거리를 좁히기 위해 연해주 고려인들이 중간역할을 하면 남북의 화합과 평화의 길에 도움이 된다고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심판의 호각 소리에 남과 북 어린이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밧줄을 잡아 당겼다. 관중석 에서는 코리아팀 아이들의 구령소리에 맞춰 “영차! 영차! 영차!“를 연발했다.
덩치가 큰 러시아 어린이팀은 코리아팀의 구령소리에 기가 눌린 듯 2번 연속 지면서 밧줄 당기기는 싱겁게 끝났다. 밧줄 당기기에 진 러시아 어린이팀은 땅바닥에 주저 앉고, 코리아팀 어린이들은 손을 높이 쳐들고 만세를 불렀다.

북남 총영사가 박수를 치며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북측 나호드까 심국룡 총영사(왼쪽)와 남측 전재완 총영사. ⓒ조천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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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관중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졌다. 이를 지켜본 고려인 강 니꼴라이(73세)할아버지는 “남과 북이 한 팀이 되어 러시아 팀을 이겨 즐겁고 재밌다”며 연신 박수를 쳤다.
관중석에 앉아 자신의 딸이 즐거워하는 표정을 지켜보던 북조선 나호드까 김응순 영사는 “북남이 힘을 합쳐서 조국 통일을 하는 것이 외세에 의존하는 것 보다 더 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이제는 북남이 협력하고 자기 민족의 공동이익을 위해서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경기장의 남북 어린이들은 뒤섞여 손뼉을 부딪치며 승리의 환호성을 외쳤다. 기자가 남측 어린이들에게 참가 소감을 묻자 “통일, 통일, 통일이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북측 어린이들이 “조국통일”을 소리 높여 외쳤다. 순식간에 하나가 된 남북 어린이들의 구호는 ‘조국통일! 조국통일! 조국통일!’이었다. 밧줄당기기에 참가한 북조선 어린이 김수양(15세)양은 “조국은 하나다”며 밝게 웃었다. 북조선 나호드까 김현철 영사는 기쁨에 들뜬 아이들을 불러 관중석 앞으로 데려가 2번 인사를 시켰다.

관중석에서 보자기를 두르고 아이들을 유심히 지켜보던 나이 지긋한 류엘라(73세)할머니가 다가와 “저 애들이 조선 아이들인가”라며“남북이 통일되면 부모님 고향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눈물을 글썽 거렸다.

남과 북 어린이들의 함성 소리가 계속 울려 퍼지자 중앙무대에서 관전하던 남과 북 총영사는 운동장으로 내려와 아이들을 격려했다. 심국룡 북조선 나호드까 총영사는 “조선 사람이 북에 있건 남에 있건 해외에 있건 다 하나의 핏줄이고 한민족이고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민족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며 “조국 통일은 조선 민족에게 있어 더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업 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은 반드시 이룩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측 참가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담소를 나눈 전재완 한국 블라디보스톡 총영사는 “연해주에서 우리 한민족 동포들이 다 모여 가지고 이런 화합의 장을 마련하고 있어서 너무 기분이 좋다”며 “연해주가 남북의 평화와 통일로 가는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수백 개의 풍선에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아 하늘에 띄웠다. 오색 풍선이 높이 날아오른 연해주의 가을 하늘은 맑고 아름다웠다.

북측 어린이들 ⓒ조천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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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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