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5,16. 최초로 세워진 초가 교회 모습

 

 1884년의 소래교회  (출처- http://blog.daum.net/theword1472)

 

최초의 소래교회 (김학수 화백 그림, 100주년 기념관) 

 

1895 두번째 세워진 8칸 기와지붕 교회

 

1895년 와가교회 

 


1895 두번째 세워진 기와지붕 교회

 

1895년 와가교회,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사진  

 


두번째 예배당 모습

 

복원된 소래교회 

 


뒷면

 

 

1988년 총신대 양지캠퍼스 구내에 복원된 두번째 소래교회 모습

 

전면

 

앞 마당

 

예배당 출입문

 

예배당 내부 강대상 편

 

강대상

  

예배당 출입문 쪽 

 

최권능 목사 순교기념비

 


  

 

정원 기념비

 

소래교회 창시자 서상륜 기념비

 

이수정 기념비

 

기념비에 새겨진 사진은 1883년 이수정이 일본 기독교도 친목대회에 참석한 후 찍은 기념 사진이다. 아래줄 가운데 한복을 입은 이가

이수정 선생이다.     (출처- http://cafe.daum.net/kchistory)   

 

 

소래교회

 

원래 소래교회는 1883년 5월 16일 서상륜, 서경조 형제에 의해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솔래(松川理)에 세워진 초가집 예배당으로서 순수한 우리 조상들에 의하여 세워진 최초의 교회요, 한국의 뿌리가 되는 교회이다. 이후 1895년에 8칸 기와집 예배당으로 건축 되었으며, 1896년에는 다시 8칸을 증축하여 총6칸 32평이 되었다. 이 교회가 세워진 송천리의 명칭은 순 토박이말로 '솔샘'이었다. ‘솔샘’은 ‘솔내’로 변했고, 다시 그것이 '소래'가 되었는데, 마을에는 소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을 흐르는 물은 황해로 들어간다.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의 작은 마을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1883년 5월.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 기록되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1885년 4월 이 땅에 들어오기 2년 전의 일이었다. 소래교회를 만든 주역은 평안도 의주 출신의 서상륜·서경조 형제였다. 의주 사람으로 인삼 장사를 위해 만주를 오가던 서상륜(1848∼1926)은 장사에 실패하고 형 상윤이 장티푸스에 걸려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었을 때, 스코틀랜드 장로교 선교사 로스 목사와 매킨타이어가 구조의 손길을 폈고, 정성을 다한 간호를 받아 병석에서 일어나자 아우 경조와 함께 신자가 되었다. 그리고 1879년 형제가 로스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로스 목사의 성경 조선어 번역을 도와서 일을 했고 출판이 끝나기까지 로스 목사와 함께 지냈다. 1882년 10월 한글 성경 등 개신교 책자를 가지고 국내로 들어오던 그는 불심검문에 걸려 투옥됐고, 간신히 탈옥한 뒤 가족과 함께 친척이 살던 장연으로 이주하여 1883년 개신교회를 그의 고향 황해도 장연군 솔내에 설립했다. 그리고 서경조는 한국에서 최초로 안수를 받은 장로교 7인 목사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초가집으로 시작한 소래교회는 서씨 형제의 열성적인 전도로 활기를 더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전체 58세대 중 50세대가 교회에 나올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형이 서울로 활동무대를 옮긴 후 소래교회를 이끈 이는 동생 서경조(1852∼1938)였다. 그는 1901년 문을 연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편입해서 1907년 한국인 최초의 목사 7인 중 한 명이 됐다.  소래교회는 한국 개신교의 초기 역사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했다. 언더우드가 1887년 초 본격적인 선교 활동을 시작했을 때 처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소래교회 신자들이었다. 또 그해 9월 장로교 최초의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가 세워졌을 때 그 주축이 된 것은 서상륜을 비롯한 소래교회 출신들이었다. 언더우드 등 서양선교사들이 잇달아 이곳을 방문했고 한국에 새로 오는 선교사들은 으레 소래교회에서 한국의 전통과 선교 방법을 익혔다. 일제시대 소래교회는 개신교의 영향력이 강한 서북지방에서 규모는 작지만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교회였다. 해방 후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선 후 교회 신자들이 대거 남한으로 내려오면서 문을 닫은 것을 지난 1988년 총신대 구내에 복원했다. 북한 땅에 있던 약 3200개의 교회 중에서 유독 소래교회만 남한에 복원된 것은 이것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첫 번째 개신교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총신대 양지캠퍼스의 소래교회는 1895년 처음 세워지고 이듬해 증축된 두 번째 예배당의 모습이다. 한국기독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 초대교회 믿음의 선배들의 자주적 신앙 전통의 계승과 한국 기독교의 문화유산으로서 역사의 산교육 현장이 되며, 북한 교회의 수복과 남북통일을 위한 기도 처소가 되게 하기 위하여 1988년 9월 30일 다시 증축되어 보존하고 있다. 

출처 : 성화사랑
글쓴이 : 성화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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