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해주의 선교전략 가치와 러시아교회의 전망에 대하여

강석진목사 (1999.3.22)


1992년 러시아와 한국이 국교를 맺으면서 한국 교회의 러시아 선교는 북방 선교의 새로운 장을 열게되어 큰 관심과 VISION을 갖게 되었다. 많은 선교사들이 모스크바와 셍테스브르크(구 레니그라드)와 1937년에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중앙 아시아 지역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와 본래 고려인들이 살았던 연해주(불라디보스토그, 우수리스크, 나홋카 등)를 선교지로 진출하여 러시아인과 고려인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여 왔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중앙아시아 지역에서의 분리 독립으로 인한 민족주의와 회교권의 득세로 인해 그곳에 사는 고려인들에 대한 소수민족 차별 정책이 노골화되면서 고려인들이 조상의 옛 땅으로 대거 돌아오게 되었고 이곳에 정착하게 됨으로 이들을 대상으로한 북방의 새로운 선교지로서 급부상하게 되었다.

1. 연해주 선교의 다양한 인적자원의 환경

이 지역은 러시아로서는 아시아의 가장 끝인 극동의 연안으로서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진출구이며 극동의 함대의 해군기지가 있기도 하다. 뿐만아니라 연해주는 지정학적으로도 요충지로서의 장점도 지니고 있다. 이곳은 한반도와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접경하고 있다. 중국과는 우수리강(흑룡강)을 사이에 두고 양국의 국경 도시를 통하여 물적.인적 교류를 활발히 하고 있다. 그로인하여 불라디보스토크와 우스리스크시에는 중국인과 중국조선족, 북한의 노동자들이 이지역의 이방인으로 많은 교류가 형성되고 있다.

이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인선교사들은 러시아인, 고려인, 중국인, 조선족을 대상으로 전도와 양육 사역을 하므로 다민족(MULTIPLE PEOPLE) 선교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러시아는 중국과는 달리 종교법에 의해 외국인 선교사들도 러시아의 교단에 가입되어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은 선교사들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사역을 보장받고 있다.

< 중국인 >
이곳에 장단기로 체류하는 중국인들은 러시아인들이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을 중국으로부터 들여와 시장에서의 판매까지 하면서 일대의 상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지역에 체류하는 중국인들은 이 연해주와 이 일대의 주민들에게 필요한 곡식과 과일 야채, 의복과 경공업품 등을 공급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상권의 70%이상을 화교들이 장악하고 있듯이 멀지않은 장래에 북방의 상권도 이들의 손에 좌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인중 일부는 조선족들도 이들 가운데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으로 진출이 어렵게 되자 이지역을 출입하면서 중국인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수는 대략 3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이 지역을 출입하는 중국인들은 대부분 동북 삼성의 사람들이나 일부는 남방 지역에서도 들어와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한 단순 전도사역도 상당한 잠재력있는 인적 자원이 될 수 있다. 중국에서 기독교를 접해보지 못한 이들가운데 교회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교회를 찾아오는 중국인들도 있고 성경학습에 참여하는 경우고 있다. 현재로서는 단순히 성경이나 전도지를 나누어 주고 있는 단계이나 이들에 적합한 선교전략이 세워진다면 러시아 내에서는 제약과 방해없이 얼마든지 전도와 양육을 할수 있는 이점과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이곳에서 장사을 마친다음에 중국 각지로 흩어지기 때문이다.

< 조선족 >
이들은 거의 동북삼성의 길림성 흑룡강성 출신들이며 이가운데는 기독교인들이 상당수가 있어 새로운 차원의 선교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들은 시장권에서 장사를 하며 주일에는 이 근방의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러한 기독인들은 이방사회 속에서 또 다른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우수리스크의 중국인들 시장에서는 주일이되면 한 식당에서 교회를 가지 못 한 조선족 기독교인들이 별도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장사를 포기하고 성경 학습을 체계적으로 양육받아 본국으로 돌아가 처소교회를 세우기도 하며 전도원이 되어 교회를 봉사하는 신실한 기독교인들도 있다. 이들의 유리한 인적자원의 장점이라면 조선족과 중국인들을 전도할 수 있는 법적 신분의 양면성이 있다는데 있다. 한국이 선교사들이 러시아에서 이들을 지도자 양육을 한다면 두민족을 복음화 시킬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 고려족 >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한인 교포들을 고려족이라고 한다. 이들은 구한말(舊韓末)인 1860대부터 함경도의 극심한 기근으로 인해 두만강을 건너 이주하기 시작하였으며, 1919년 3.1 만세 운동이후부터 독립 운동을 하기 위해 연해주를 중심으로한 상당수의 독립 운동가들도 있었으며, 이들을 일명 연해주파로 불리었다고 한다. 이 지역에 한인들이(고려인) 가장 많이 거주하던 때가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약 20만명 이상이 살면서 조선인 초등학교로부터 대학까지의 교육 기관이 있어 조선말로 민족 교육과 근대 교육이 실시되었다고 한다.

교회역사로는 1909년 조선기독교 장로회에서 최관홀목사를 파송하였고 이 이후 감리교에서도 손정도목사를 파송하여 연합 선교를 하였다. 1922년에는 교회당이 34개가 설립되었고 교인수도 약2천명 정도를 헤아렸다고 한다. 이로보아 이곳에도 만주지역과 같이 조선인이 사는 곳에는 어김없이 예배당이 세워지고 하나님을 믿는 민족의 신앙으로 기독교를 민족의 종교로 정립하였던 것이다. 우리 민족은 이주한 외방마다 복음을 전파한 선민의 기질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 이후 볼세비키 혁명에 의해 이 지역도 공산화가 되었고, 1938년에는 스탈린에 의해 조선인들이 유사시에는 일본군과 연합하여 쏘련군을 대적하는 이적 집단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이 지역의 조선인들을 강제로 열차에 태워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수탄 ,우즈베키수탄 등지로 이주시켰다. 연해주는 한인 동포들에게는 구한말에 배고품을 해결하기 위해 선친 대대로 살아왔던 산하를 등으로 하고 건너온 한맺힌 곳이었고, 이어서 외정 시대에는 나라를 찾기위한 독립 운동을 하기위해 고향 산천을 버리고 건너와 투쟁한 피흘린 땅이었다. 그러나 이들과 그 후손도 역시 오래지 않아 타문화권인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하면서 마치 저주받은 민족과 같이 통한의 대물림이 이어졌다. 이들 후손은 조상들이 피땀흘려 개척했던 고향이나 다름없는 연해주를 떠난 지 60여년만에 쏘련의 붕괴로 부모들이 태어났고 성장했던 땅으로 노부모들 모시고 다시 회귀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1991년 구쏘련이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분리독립국가로 17개의 국가로 나누어지면서 강제로 합병되었던 연방국은 민족 단위로 독립하게 되어 각 나라별로 민족주의가 부활되어 그 지역의 소수의 타민족들은 차별과 박해를 받게 되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 반세기 이상을 살았던 그들은 갑자기 이방인이 되었을 뿐만아니라, 이지역은 회교권이 급부상하면서 종교적인 박해까지 받게 되었으며, 취업과 학업 등의 사회 활동 전반에 걸쳐 심한 차별 대우를 받게 되어 결국 고려인들은 힘써 일구어 놓은 삶의 터전을 하루 아침에 버리고 다시 조상들이 살았던 땅으로 회향(回向)하기 위해 열차를 타고 보장없는 옛 땅으로 다시금 살아남기 위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 60여년 전에 열차를 탔던 세대들은 거의 외방 땅에 뼈를 묻었고 후손들로 교체가 되어 그의 2,3세대들이 돌아오고 있다. 60대이후의 세대들은 모국어를 구사하나 그 이하의 세대들은 오직 러시아어와 그 문화에 익숙해져 있어 한국인이라는 모습은 외관상 이외에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들에게는 한민족의 정체성이 완전히 퇴화되어버린 것이다.

대책도 보장도 없이 연해주로 찾아온 이들에게는 생계의 수단이라고는 시장에서의 좌판장사나 농촌으로가 정부에서 장기 임대하는 농사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것이다. 특히 청년 계층은 붕괴된 경제로 인해 일자리를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러시아인들도 심각한 실업 사태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에게는 기약할 수 없는 기나긴 혼돈과 암흑의 긴 터널의 끝이 보이질 않고 있다. 러시아인들이 추구한 70여년의 공산주의 바벨탑은 한 세기의 수명도 다하지 못하고 1억5천만의 백성들에게 아직도 고통과 좌절을 강요하고 있으며, 이러한 고통의 틈세에서 더 어렵게 생존해 나가야 하는 고려인들의 힘겨운 생존 투쟁의 고통과 소수 민족의 비애는 더 할 것이다.

대책없는 고통의 연속 속에서 이들에게 유일한 소망을 주며 한 맺힌 삶에 치유의 공동체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가 이곳에서 활발하게 형성되어 가고 있다. 다름아닌 한인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가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되어 주고 있다. 뿐만아니라, 모든 고려인들에게 모든 세대에 이르기까지 삶의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어 주고 있으며, 한민족의 정체성이 교회라는 신앙의 공동체를 통해 생명력을 얻어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특히 청년층들은 새로운 삶의 개척지에서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그 나름대로 공동체 의식을 갖기 원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마땅한 문화 공간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쉽게 찾고 접근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한국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이다.

90년대 초만하더라도 교회에 모인 세대들은 거의 50대 후반의 노인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방황하는 젊은 세대들이 교회에 모이고 있으며, 이들에게는 교회가 하나의 문화 공간이며, 서로의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맞남의 장소가 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인적 환경이 교회로서는 이들을 복음화시킬 수 있는 유용한 요건으로 작용되고 있다. 이러한 청년들을 잘 양육할 경우 앞으로 고려인들 뿐만아니라 러시아인들까지 복음화 시킬 수 있는 구심점이 될 수 있으며, 현지에 가장 적합한 선교 사역자의 인적 자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고려인들의 연령층은 아직도 노령자들이 많으며 이들은 한국어를 충분히 구사할 줄 안다. 어느 교회에서는 러시아 어린이들과 고려 어린이의 주일학교와 러시아.고려 청년들에게도 제자 양육을 하고 있다.

한인 선교사들이 많이 있는 모스크바와 같은 지역의 큰 도시에서는 러시아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러시아 본토 사역자들을 최근에 배출하고 있다. 멀지 않은 장래에 러시아의 복음화의 주역은 이들로 대체될 것이다. 현재 러시아의 경제는 파탄 지경이 되어 대학생들이 졸업을 하여도 취업하기가 어려워 자신들의 장래에 대해 비관하고 있다.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이러한 청년들에게 오히려 복음을 전하며 사역자로 양육하기에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 북한 노동자 >
북한에서는 달러벌이를 위해 오래전부터 연해주나 시베리아 지역에 벌목공들을 투입하여 노역을 시켜왔으나, 근래에 와서는 벌목뿐만 아니라 농장과 공사장 또는 개인 장사를 통해 다양한 형태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 벌목공들은 제한된 지역에서 집체 생활을 하지만 그외의 노동자들은 몇 사람씩 짝을 지워 노동과 행상을 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1년정도의 노동 계약을 하여 벌이를 통하여 일정액은 상부에 상납을 하고 난 차액을 자신의 수입으로 만들어 1년후에 돌아갈 때는 약2백불 정도를 챙길 수 있다고 한다. 이 돈을 통해 한 가족이 몇 년은 살수 있는 생활비가 된다고 한다. 북한에서 보통 노동자들의 한달 수입이 약 칠팔십원이나 달러 암시장에서 미화 1백불에 북한 돈으로 약1만4천에서 1만8천원 정도로 교환되며, 농촌에서는 조그만 집한채를 살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한다.

연해주의 북한 노동자들의 수는 약 1만명정도로 추산하고 있으며 수시로 교체되고 있다. 이들 중에는 한국의 선교사와 개인적인 친분을 갖고 도움을 받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들이 선교사를 지칭할 때는 아무게 "목사선생"이라고 하며 개중에는 옛날 자신들의 조부모나부모들이 해방전에 기독교인이었다고 스스럼 없이 고백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전도나 제자 양육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선교사나 당사자들에게 도 신변상에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몇 년전 하바로브스크에서는 미국에서 파송받은 한인 의료선교사 부부가 정체 불명의 괴한에게 피살된 적이있었다. 이 선교사들은 탈북한 북한 사람을 도와 주었다고 한다. 이지역의 북한 사람들을 대상으로한 선교사역은 아직은 시기 상조인 것으로 보고 있다.

2. 러시아 교회의 현황과 전망

러시아의 개신교가 전체 인구에 차지하는 비율은 1.8%정도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교회 성장율은 어느 나라 교회에 못지 않게 급성장하고 있다. 러시아 교회가 근래에 들어 종교법이 강화되므로 오히려 더 힘을 받아 활기를 띠고 있다. 몇 년전에는 외국인 선교들이 자신들 나름대로 개별적인 사역 활동에 치중하였으나 그것이 오히려 본 러시아 교회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러시아 종교법에 따라 외국인 선교사들은 러시아 교회의 교단에 가입이 되어야 선교사역이 가능하도록 법률이 강화되었다. 현재 러사아의 개신교는 크게 침례교,오순절교,루터교, 복음주의교, 장로교 등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이나 외국인 선교사들은 러시아의 교단을 선택하여 의무적으로 가입을 해야했으며, 그 가입 조건을 수용할 수 없는 선교사들은 본국으로 철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로 인하여 선교사들은 러시아 교단에 가입이 되므로 러시아 교회는 새로운 힘을 얻게 되어 현지의 복음화에 러시아교회가 주체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외국인 선교사들은 이들과 함께 협력 선교를 하거나 이들을 협조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러시아교회와 함께 공동으로 신학교를 세워서 운영하거나 선교 프로그램을 만들어 동역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러시아 교회가 현재 급속히 성장을 하고 있으나 여기에 드러난 가장큰 문제점은 사역자의 절대 부족과 사역중인 교역자들이 정규적인 신학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으므로 인해 교회의 건전한 복음주의적인 교회 성장을 장기적으로 기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예를들어 신비주의에 치중하거나 인본주의 신학 교리로 인한 비복음교리가 교회성장의 병폐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나라의 교회성장 과정에서도 나타나는 과도기적인 현상이기도 하나 이러한 문제가 초기에 정립되지 않으면 고질적인 체질화로 이어질 수 있다. 러시아는 문화와 교육 수준이 높으므로 인해 이러한 문제를 짧은 기간내에 극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해주 지역에서 복음 사역을 하고 있는 러시아 사역자들 중 복음주의 교단은 우크라이나와 그외의 북 시베리아의 복음 사역의 기초를 다져 놓고 새로운 전도 지역을 찾아 동쪽인 연해주로 진출하여 새로운 사역지로 개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역자들에게는 전도된 신자들은 있으나 예배를 드릴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극장이나 강당을 빌리거나 규모가 적으면 가정에서 드리기고 하며 외국의 지원을 받은 교회들은 예배당을 건축하기도 했다.

이들이 사역을 수행하는데 가장 큰 애로점은 경제적인 능력이 부족함으로 인하여 좋은 사역 대상을 놓고 충분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감옥 선교이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인구 비례로 볼 때 감옥 입소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인구 1백명당 1명이 감옥에 있는 셈이라고 한다. 즉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강도,사기, 파괴범 등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로서도 이들에 대해 최소한의 식사와 의복, 위생품 등을 배급해 주지 못하고 있으며 최소한의 시설이 절대 부족이라고 한다.

이곳의 사역자들은 옥중 선교를 위해 물질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매주일 감옥을 방문하여 결신한 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전도를 하고 이들이 필요로하는 비누,치약,생리대,편지지 등을 나누어 주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감동이된 죄수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모습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전반적인 열악한 조건에서도 이러한 귀한 사역을 통해 옥중의 많은 영혼들을 구하고 있다. 이 사역자들의 복장은 마치 노동자와 같이 남루하지만 어느 나라 사역자보다 그 열정이 대단하다. 이들을 보노라면 마치 초대교회의 갈릴리 출신들인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최근에 러시아 교회서는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새로운 전도계층의 연령이 점점 젊어지고 있고 지식인층도 늘어나고 있다.

러시아는 동양과 서양의 두 대륙에 걸친 광대한 나라며 소수민족 또한 120개가 넘는 많은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러시아 자체가 하나의 선교의 신천지(新天地), 신대륙(新大陸)과도 같다. 이나라는 과거 약 1천년동안 기독교 문화를 누린 나라였기에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타민족에 비해 복음화에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러시아가 경제,사회,정치만 안정되면 자국의 선교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수십개 나라와 민족에게 많은 기독교의 영향을 줄 것이다. 과거 공산정권인 쏘련이 1917년의 볼세비키 혁명과 2차대전후에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엄청난 힘으로 도미노 게임을 하듯 공산주의의 세계화를 단 시일내에 이루었던 역사가 있었던 것 같이 새로운 세기에는 러시아가 공산주의 종주국인 아닌 선교의 새로운 종주국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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