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는 사람들』은 6.25 당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훗날 수출에 기여하고 사업가로도 성공한 소위 성공시대 주역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인생의 후반부에 문득 깨달음을 얻어 남은 평생을 흩어진 북녘의 한민족에게 헌신하기로 한 어느 노선교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이 책은 70대의 나이로, 그것도 해외에서 반평생을 보낸 사람의 입장에서 한국의 젊은이와 동년배들에게 보내는 삶의 메시지이기도 하며, 평생 자신의 곁에서 함께 길을 걸어갔던 아내에게 보내는 감사와 사랑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언제나 일관되게 지켜왔던 저자의 곧은 신앙의 글 역시 책 곳곳에 점점이 박혀 빛을 발하고 있다.
출판사 서평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믿는 평범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중앙일보 기자로 시작한 사회생활, 삼성물산 해외본부장으로 수출에 헌신한 반평생, 그리고 성공한 기업인으로서의 나날, 그 이후 찾아든 회의와 선교사로의 헌신, 그리고 위암 선고 후 오늘날까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이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보여주는 사람이 또 있을까. 김종수 장로는 경북 대구시에서 1939년 12월에 태어나 1963년 3월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불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군복무를 마치고 중앙일보 외신부기자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삼성물산으로 직장을 옮긴 후 캐나다, 프랑스, 영국 지사를 돌며 한국 상품의 시장 개척에 헌신하다가 85년 삼성반도체를 마지막으로 퇴사, 86년 미국 산호세에서 Acecom,Inc.,라는 개인 회사를 설립한다.
"그때만 해도 우리가 살길은 '수출밖에는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어서, 어려운 줄을 모르고 미친 사람같이 일하였습니다." 당시는 Personal Computer가 세상에 나오기 시작한 때였기에 그 흐름을 타고 그의 회사 역시 성장했으며, 그러면서 신앙 역시 같이 성장해나갔다. 그러던 즈음, 중국, 방글라데시, 인도 등의 단기선교 여행을 통해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경험하고 난 이후, 사업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는 반면 주님의 일꾼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 보자는 마음이 점점 뜨거워져 점차 선교 사업에 헌신하게 된다. 2003년 3월, 그는 아끼던 회사를 정리하고 그때까지 18년간 섬기던 임마누엘 장로교회의 파송을 받아 그 해 9월 선교사 자격으로 중국으로 떠났다. 그 후 선교지에서 몸에 이상을 발견하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그의 4년은 봉사와 헌신으로 점철된 참기독교인의 삶, 바로 그것이었다. 이 책은 수술을 받고 요양 중에 적은 그의 한평생의, 그리고 지난 몇 년 간의 사역의 기록이다.
■ 단동_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이름 갑작스런 화폐개혁, 인권운동가의 무단 입북……. 북한에 관한 이슈가 흘러나올 때마다 우리의 귀에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지역이 있다. 바로 중국 단동, 혹은 단둥이라고도 부르는 지역이다. 그러나 자주 언급되는 정도에 비해 전형적인 중국식 이름이 붙은 이 지역은 사실 우리 귀에는 조금은 생소한 느낌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잘 해야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거나 탈북자 문제에 헌신하고 있는 사람이 안타깝고 애틋한 심정으로 그곳을 떠올리는 정도이리라. 그러나 용정이나 연변, 길림성 같은 지명을 얘기한다면 아마 우리 중 대부분은 아, 하면서 애절한 감상에 젖어들 것이다.
■ 단동_ 다른 체제, 같은 역사를 지닌 사람들이 만나는 곳 중국 단동은 압록강 줄기가 좁아져서 중국과 북한이 겨우 야트막한 하천을 사이에 두고 접하는 무척 특이한 국경지대이다. 남과 북이 어렵사리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장소이기도 해서, 북한으로 오가는 물자나 구호물자 역시 종종 이곳을 지나 흘러간다. 탈북자와 그들을 도우려는 사람들, 그리고 생계를 위해 목숨을 걸고 북한과 중국을 왕복하는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곳.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감시와 호의가 끊임없이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공존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편 이곳은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의 시기에 중요했던 여러 지역을 포함한 곳이면서 아울러 이제는 우리 귀에 익숙한 카레이스끼가 사는 곳이기도 하다. 한때는 빨치산이라는 어원을 낳은 일제강점기 무장독립군이 훈련하던 곳이기도 했다. 사실 이곳은 한민족 역사의 초엽부터 우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 근처에는 광개토대왕비를 비롯한 고구려 시대의 유물들을 어렵사리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문제로 아직 답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미답의 지역이기도 하다.
■ 성공시대의 주역이 들려주는 또 다른 우리 민족 이야기 이런 민감한 지역으로 사역을 떠난 사람이 있다. 한데, 그의 이력이 심상치가 않다. 나이 역시 만만치 않은 70대이다. 호적에는 본적이 충남 대전시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 글의 저자인 김종수 장로는 경북 대구시에서 1939년 12월에 태어났다. 해방이 되어 부모님이 자신들의 고향인 대전시로 옮겨가자, 그 역시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리고 6.25전쟁을 맞는다. 1963년 3월,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군복무를 마치고 1965년에 당시 새로 창간한 중앙일보의 외신부기자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67년 중앙일보에서 삼성물산으로 직장을 옮기고, 뉴욕 지점 근무를 시작으로 캐나다, 프랑스, 영국 지사를 돌며 현지에서 한국 상품의 시장 개척과 판촉에 헌신하는 삶을 보냈고, 그 덕에 국가에서 수출에 관한 훈장을 받기도 했다. 1985년, 그는 미국 산호세의 삼성반도체 현지 판매총책을 사임하고 이듬해인 1986년 2월에 Acecom,Inc.라는 컴퓨터와 모니터를 수입, 판매하는 개인 회사를 산호세에 설립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나름 성공한 사업가로 살아간다. 그러나 이후 몇 번의 단기 선교 여행을 통해 중국 단동 지역에서 바라본 조선족과 북녘 동포들의 삶에 충격을 받고는, 남은 생을 그곳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바치기로 결심한다. 2003년 3월 말, 그는 자신의 개인 회사를 정리하고 그동안 다니던 임마누엘 교회의 파송을 받아 중국 단동의 단동복지 병원에 본부장이자 선교사 자격으로 떠난다. 그러나 몇 년 후, 그곳에서 위암 선고를 받고 집으로 돌아와 세 번의 수술을 받게 된다.
■ 개인사와 한국의 역사, 그리고 신앙이 섞여 빛을 발하는 책 이 책은 김종수 장로의 위암 선고 후 투병기간 동안에 쓰여졌다. 이 책은 6.25 당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훗날 수출에 기여하고 사업가로도 성공한 소위 성공시대 주역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인생의 후반부에 문득 깨달음을 얻어 남은 평생을 흩어진 북녘의 한민족에게 헌신하기로 한 어느 노선교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이 책은 70대의 나이로, 그것도 해외에서 반평생을 보낸 사람의 입장에서 한국의 젊은이와 동년배들에게 보내는 삶의 메시지이기도 하며, 평생 자신의 곁에서 함께 길을 걸어갔던 아내에게 보내는 감사와 사랑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언제나 일관되게 지켜왔던 저자의 곧은 신앙의 글 역시 책 곳곳에 점점이 박혀 빛을 발하고 있다. 책 속에는 전쟁 이야기와 소위 '한강의 기적'의 시기에 벌어진 갖은 사건들, 그리고 최근 일어난 아프가니스탄 참사며, 룡천 폭발 사고 등 우리가 겪어 왔고 알고 있는 여러 사건에 대한 저자의 소회가 가득 들어 있다. 때로는 변한 현실과 세대 차이에 대한 감상을 토로하거나, 아내에 대한 미안한 심정을 가득 적어낸 글들도 있다. 말 그대로 격변기를 살아온 70대의 전 생애의 이야기가 골고루 들어 있는 셈이다. 물론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북한과 연변 동포들 이야기가 주가 되는 편이며, 단동 지역에 얽힌 역사 이야기 역시 책에서 만만치 않은 분량을 차지한다.
■ 변하지 않는 한 가지 그렇다면 우리는 이 책을 어떤 책이라 불러야 할까? 어쩌면 그것은 읽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지은이 또래의 독자(지은이는 1939년생이다)라면 이 책이 지난 과거에 대해 지은이와 함께 깊은 소회에 빠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세대가 다른 젊은 독자들(지금 보도자료를 쓰고 있는 나는 1973년생이다)이라면 왜 세대 사이에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혹시 독실한 신앙인이라면 책 속에서 신앙인의 자세를 발견하고 숙연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건 간에,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그가 지금도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동포들을 찾아 헌신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천상 그리스도인이자 천상 한국인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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