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의 남한사회 정착문제
김중태 (통일부 남북관리사무소장, 전 하나원장)
탈북귀순 동포의 정착실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1997.1.13) 제2조(정의)의 규정에 의하면, '북한이탈주민'이란 북한에 주소·직계가족·배우자·직장 등을 두고 있는 자로서 북한을 벗어난 후 외국의 국적을 취득하지 아니한 자를 일컫고 있다.
그러나 과거 법령용어는 월남귀순자('62∼'78), 월남귀순용사('79∼'93), 귀순북한동포('93∼'97)등으로 변천되어 왔으며 이외에도 탈북자, 탈북동포, 탈북귀순자, 귀순자, 귀순동포, 자유북한인 등 다양하게 사용되어져 왔다. 본 원고에서는 현행법 체계상 북한이탈주민의 의미는 해외 체류자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입국 북한이탈주민을 '탈북귀순동포'로 정의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북한은 1995년 이후 지속된 자연재해로 심각한 경제난과 식량난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대내외 체제위기 속에서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이라는 구호를 통해 사회통제 시스템을 강화하고 경제난을 타개하고자 노력해 왔다. 하지만 국가배급체계의 붕괴와 북한사회에 만연한 것으로 알려진 부패로 인하여 일반주민들의 식량난은 더욱 가중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식량난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과 인접한 국경지역에서 주민들의 탈북현상이 확산되기 시작하여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들은 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조선족 밀집지역, 즉 중국의 동북 3성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인권유린, 노동력 착취 등의 고통과 언제 공안에 체포되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국체류 탈북동포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물질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남한으로의 입국을 희망하고 있다. 그들은 중국을 통해 여권위조, 밀항 등의 방법으로 남한으로 입국하거나 일부는 몽골·동남아 등의 제3국을 경유하여 UNHCR 등 국제기구의 협조로 한국에 입국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 이후 3년여 동안 남북관계 진전 및 대북식량지원 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생명을 걸고 탈북한 후 자유를 찾아 국내에 입국하는 탈북귀순동포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2003년 9월말 현재 4,010명이 귀순을 했으며, 2003년 현재 국내에 살고 있는 탈북귀순동포들의 숫자는 3,76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1998년도 국내 입국자수가 71명이었으나, 1999년도에는 2배 증가한 148명에 이르렀으며 2000년 312명, 2001년 583명, 2002년 1,140명, 2003년 9월 현재 880명이 입국하는 등 매년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 추세를 보여오고 있으며, 금년에는 작년보다 약간 상회한 수준에서 증가세가 주춤한 상황이다.
또한 1990년대 중반까지는 단독 입국이 대부분을 차지하였으나 최근 들어 가족을 동반하거나 먼저 입국한 국내가족의 주선으로 입국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20∼40대 청·장년층 중심의 귀순에서 현재는 유아에서부터 60∼70대 고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입국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여성비율의 증가와 학령기에 접어든 청소년들의 숫자가 증가 추세를 보여주는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의 탈북귀순동포들에는 탈북, 제3국 은신 도피생활 과정에서 겪은 충격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 북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남한사회의 친척, 친구 등 연고관계가 적음에 따라 나타나는 외로움 등을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생성해 가는 일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더해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새로운 환경 변화와 적응에 대한 걱정으로 인하여 정서적 불안 및 심리적 위축 등으로 초기 적응에 상당한 애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에 대한 이해부족, 언어·사고·생활습관 등의 차이로 인한 문화적 이질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리고 생활방식에 있어 계획·통제사회의 타율적 시스템에서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시스템에 적응하는 데 있어 곤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노동생산성을 강조하는 우리사회의 노동강도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남다른 각오와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정착 초기 상당한 애로를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나원의 사회적응 교육
탈북귀순동포들은 남한과는 체제와 사상이 다른 북한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정착초기 남한사회에 적응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탈북귀순동포들의 부적응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남한사회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응교육을 통해 남한사회에서 살아가면서 겪을 시행착오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남한사회에 되도록 빨리 정착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남한사회 정착교육시설인 하나원이 1999년 7월 8일에 문을 열었다.
2002년부터 국내 입국자들의 증가로 기존의 하나원 시설이 부족하여 정상적인 사회적응교육을 할 수 없게 되어 2002년 9월 30일자로 분당의 새마을중앙연수원 시설 일부를 임차하여 여성만의 사회적응교육을 위한 분원을 설치하여 특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안성본원 130명, 성남분원 80명)
탈북귀순동포들은 대부분 북에서 태어나 자라난 분단 2∼3세대들로서 육체는 남에 와 있지만 가치관, 의식구조, 행동규범 등은 아직 북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차이를 완화시키는 작업, 즉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초 소양을 만들기 위한 준비기간, 본격적인 남한사회에서의 정착생활을 시작하기 전의 완충기간으로서 하나원에서의 남한사회 적응교육 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원의 사회적응교육은 탈북귀순동포들이 남한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삶의 방법을 배우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원에서는 지난 4년여 동안 관계전문가, 정착지원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하여 교육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보완, 발전시켜왔다. 특히 교육 당사자인 탈북귀순동포들의 의견 반영을 위해 교육을 마친 후 정착생활을 하고 있는 수료생을 대상으로 부적응 사례를 수시로 수집한다. 이것을 사회적응교육 프로그램에 반영함으로써 남한사회에서의 초기 정착과정에서 유사한 일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시행착오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탈북귀순동포들이 남한사회에 적응하여 생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한사회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하나원에서는 2개월 동안의 교육을 통해 남한사회에 적응하여 생활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집중적이고 체계적으로 구성하여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첫째, 탈북·제3국 은신·도피 생활과정에서 겪은 일로 인한 정서적 불안과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새로운 환경변화에 어떻게 적응해서 생활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도록 한다. 이를 위해 개별 심리상담, 심성수련 훈련 등을 통해 자기개방·자아인식·타인이해·대인관계 등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교육기간 중 지속적인 심리안정·정서순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둘째,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에 대한 이해부족, 언어·사고·생활습관 등의 차이로 인한 문화적 이질감 해소를 위해 홈 스테이·문화탐방 등 현장체험 학습을 통해 남한사회 내면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교육중점을 두고 있다.
셋째, 유망직종보다는 실제 취업가능한 틈새시장의 사이드 직업에 대한 직업보도 및 인근 직업훈련기관 등에서의 현장실습, 산업체 견학 등을 통해 남한사회 직업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또한 취업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성취프로그램 운영과 실생활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운전·컴퓨터·제빵·가정보건·피부미용 등에 대한 집중안내 및 기초체험 기회를 제공하여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자립·자활 기반조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넷째, 관련법의 규정에 의하여 서울가정법원에 취적 허가신청을 하고 취적 허가결정에 따라 호적편제·주민등록을 하고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게 된다. 사회편입초기 생활안정을 위해 영락교회·정동제일교회 등에서 주방용품·침구류 등을 지원해주고 있다.
하나원 개원 이후 2003년 9월 현재 2,700여 명이 교육을 받고 남쪽에서의 사회생활에 무난히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탈북동포 문제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분단의 장기화로 인한 이념과 가치관, 생활양식 등에서 이질화가 심화되어 한민족의 동질성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 분단된 민족과 체제를 하나로 통합하여 민족공동체를 건설하는 일, 즉 남북한의 통일은 국토의 통일, 체제의 통일을 이룬 후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일인 사람의 통일이 실현되어야 완성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 주민이 함께 살아갈 통일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남한에서 살다가 북한으로 가서 살고 있는 이들과 북한에서 살다가 남한에 내려와서 살고있는 이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연구가 진행되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후자, 즉 탈북귀순동포들이 그 동안의 삶을 영위해 온 북한체제를 떠나 이질적인 남한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어떤 면에서 힘겨워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통일 후 우리가 경험하게 될 남북한 주민간 사회통합에 대한 제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벤치마킹을 해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탈북귀순동포들의 '남한사회 살아가기'는 바로 통일에 대비한 '작은 시험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남과 북의 주민들은 그 동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이질적인 삶을 추구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이 될 경우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겪게 될 혼란과 충격을 흡수하고 민족화합을 이루는 일은 매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현재의 탈북귀순동포들은 본인 의사에 의해 자유를 찾아 한국에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사회에 적응하여 살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통일한국에서는 북한주민 모두에게 우리의 사고·체제에 적응하도록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뒤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에 적응하여 살아가기 위해 각자 필요에 의한 취사선택을 하게 되겠지만 일정기간 남북 양쪽의 문화는 공존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 탈북귀순동포들의 특징적인 사고·행동 양태를 무조건적으로 이해 못할 것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분단 2∼3세들인 이들이 북한에서의 생활을 통해 갖게 된, 우리와는 다른 의식구조와 행동 양태를 이해하고 이들의 입장에서 배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통일 이후에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문제를 통일 이후에 준비해서는 늦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부터 차분한 사전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탈북 귀순동포 이해를 위한 새로운 인식
완전한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영토적 통일뿐만 아니라 내적 통합의 의미에서 사람의 통일이 필요하다. 탈북귀순동포들이 우리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여 생활할 경우, 우리 국민들은 이들에 대해 긍정적 시각을 갖게 되고 이러한 인식은 법적·제도적 통일 이후 진정한 의미의 통일을 이룩하는 데 결정적 힘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는 달리 이들이 적응에 실패하고 각종 범죄 등 사회일탈행위로 사회문제를 야기할 경우, 우리국민들은 탈북귀순동포들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게 되어 제도적 통일 이후 사람의 통일을 이룩하는 데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될 수도 있다. 탈북귀순동포들의 우리사회 적응문제는 단순히 탈북귀순동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통일한국의 제도적 통일 이후 내적 통합 즉, 사람의 통일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실질적 통일준비 작업의 일환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탈북귀순동포들과 하나원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느낀 인식은 50여 년 분단의 세월로 남북한은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타문화권으로 변모한 상태라는 것이다. 소수자·약자일 수밖에 없는 탈북귀순동포들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나 적응상의 애로점 등은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바로 통일에 대비하여 준비해야 할 중요한 시사점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다른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특정 문화는 인간의 사고·행동 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에 어떤 특정 국가의 말을 잘한다고 해서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인격발달에 대한 이론과 과거 역사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면 남북 주민들간에는 인격발달이 상당히 다르게 진행되어 왔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나와 다른 것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무엇이 왜 다른가를 알고자 하기보다는 '다름'을 우열의 개념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탈북귀순동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과 북의 문화적 차이를 서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고 북한실상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생기는 오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탈북귀순동포들의 적응장애를 인정하지 않고 이들의 조기 정착을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을 우리는 곧잘 인용하기도 한다. 봄철에 식목행사로 나무를 옮겨 심어 놓아도 최소한 3∼4년은 지나야 그 나무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게 된다. 하물며 체제와 사상이 다른 북한 땅에서 태어나서 살아온 탈북귀순동포들에 대해 남한 주민들이 자신들과 같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한 그들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와 포용은 어려울 것이다.
남북한 문화차이로 인한 적응의 어려움
탈북귀순동포들이 남한사회에 정착하면서 겪는 애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과 북의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각 문화집단의 인성적 특징은 유전이나 혈통 같은 인종적, 종족적 유사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집단이 공통으로 경험한 역사와 각 개인이 어릴 때부터 체험한 양육 및 교육방식을 통해 형성된다고 한다. 부연하면 각자가 태어난 문화적 환경 속에서 체험을 통해 인성적 특징이 형성되고 학습을 통해 재생산되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태국 관광을 가게될 때 흔히 관광안내 가이드로부터 태국에서는 함부로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지 말라는 주의를 듣는다. 이런 행위를 태국인들은 모욕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우호적인 표현이 태국인들에게는 적대행위로 둔갑하는 이유는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우로 LA교민들의 이민 초기 정착과정을 살펴보면 우리 교민들이 형사 입건된 사건이 상당수 있는데, 그것은 언어표현의 문화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다툼이 생겼을 때 화가 나면 언어를 거침없이 사용한다. 우리사회에서는 실제 폭력행사가 아닌 이런 투의 언어폭력은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거친 표현으로도 형사입건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 교민들이 이민 정착 초기에 형사 입건된 숫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신호를 보내는 사람이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미국에서 중학교까지 다니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한 학생이 수업시간에 잘못하여 선생님으로부터 체벌을 받은 경우가 있었는데, 체벌을 당한 학생이 선생님의 눈을 쳐다보자 선생님은 이 학생의 시선을 반항으로 생각하고 체벌의 강도를 좀 더 높였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잘못을 시인하려면 상대방의 얼굴을 피해 고개를 숙여야 하지만 미국에서는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상대방의 얼굴, 특히 눈을 바라보도록 교육받는다는 것이다. 구미인들은 대화 시에 항상 상대방의 눈을 응시한다. 특히 상사가 훈계할 때 상사의 눈을 쳐다보지 않으면 몹시 무례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위의 몇 가지 사례에서 보듯이 탈북귀순동포들의 경우에도 북한에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던 행위들로 인해 남한에서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동일 언어를 사용하고 생김새가 같기 때문에 남북한 주민들은 서로 이러한 문화적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갈등하게 되고, 탈북귀순동포들의 입장에서는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탈북귀순동포들이 남북한 문화차이로 인해 겪는 어려움에는 남한주민들이 갖고 있는 편견이나 선입관으로 인한 경우도 많다. 우리의 관점에서 이들을 평가하고 규정하는 편견으로 인해 탈북귀순동포들이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부분도 상당히 있다. 이런 점에서 문화적 차이와 다름을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없이 그 자체를 부정적이거나 이상한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시각으로 탈북귀순동포들을 평가하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남한 주민들과 탈북귀순동포들 사이의 문화적 갈등은 적정한 수준에서 해결되면 오히려 역시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이루는 촉진제가 될 수도 있다. 서로 다른 견해를 인정하고 적절히 융화시켜 나간다면 앞으로 남북한은 커다란 어려움없이 사회통합을 이루게 될 것이다.
탈북 귀순동포의 직업과 거주지에 대한 선호
탈북귀순동포들은 체제·사상이 서로 다른 북한생활을 통해서 형성된 고정관념, 우리사회에 대한 이해 부족, 그릇된 정보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초기 정착생활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탈북귀순동포들은 법·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무조건 우기거나 큰소리치면 해결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모든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인데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또한 취업·진학·거주지 문제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북한 또는 제3국에서의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는 등 변화된 새로운 환경이나 여건을 고려하지 않으려는 현상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탈북귀순동포들은 북한에서의 직업 경험이나 중국 연변 등지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젊은 남성의 경우 한국에서 운전기사로 취업하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북한에서는 운전기사가 되려면 우선적으로 당원이어야 하며 다른 직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북한사회에서 대접받는 직업이었다는 인식이 남아있고, 중국 연변 등지에서도 대학교수 등 전문직에 종사하던 엘리트들이 자본주의 물결이 들어오면서 택시기사 등으로 전업하여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남한에서의 운전기사는 고노동 저임금에 시달리는 직업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유통회사의 운전기사들은 각자 거래처의 주문을 받아 해당 상품들을 출하 받고 거래처별로 배달한 후 물건 판매대금을 회사에 납입하는 등 1인 2∼3역을 해야 하는 것을 탈북귀순동포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택시 자영업을 위한 개인택시 구입에 소요되는 프리미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으며 지입제로 운영되는 택시 운송회사의 운전기사로 고용되는 경우 노동시간이나 노동강도에 비해 박봉에 시달리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탈북귀순동포들은 북한 생활 속에서 갖고 있던 소위 근로인테리에 대한 동경심이나 북한에서 해보지 못한 일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사무직을 선호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북한에서 근로인테리로 상당한 대접을 받은 사람들이 남한에서 생산직 근로를 하는 것을 자존심 상하는 일로 생각하여 사무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탈북 젊은이들의 경우 대학 진학을 선호하고 있다. 이는 북한에서는 누구나 대학을 다닐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학졸업이 바로 자신의 직업 배치와 출세의 지름길이었기 때문에 남한 사회에서도 대학 졸업이 곧 자신의 신분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데 따른 경우가 많다. 신학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대부분의 탈북귀순동포들은 신자와 성직자에 대한 구분이 애매모호하여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신앙심이 깊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신학대학을 나와 전도사나 목사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들도 많다. 그들 중에는 성직자를 어려운 처지에 있는 탈북귀순동포들을 도와주는 등 자선을 베풀 수 있는 일종의 직업인으로서 존경한 나머지 선호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나원에서 사회편입 거주지를 선정함에 있어서도 서울 등 수도권 집중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 탈북귀순동포들의 경우 평양 구경을 한 사람들이 20% 정도도 안되는 상황이다. 이는 평양에 한번 들어가려면 직계 가족이 있거나 꼭 필요한 공무적인 일 외에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경우에도 평양여행 승인번호를 받은 특별여행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평양에 거주하기 위해서는 계급적 토대(출신성분)가 좋고 당에 대한 충성심이 아주 높아야 하며 가정에 장애인이 한 사람도 없어야 한다. 이러한 평양에 대한 동경심으로 인해 서울지역에 배치되는 것은 마치 평양에 배치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들이 많다. 특히 지방으로 전출된 경험이 있는 탈북귀순동포들의 경우에는 더욱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탈북귀순동포들 중에는 북한사회 생활 속에서 형성된 직업, 거주지, 사고방식 등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남한사회 초기 정착생활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도 있다.
탈북 귀순동포의 자율성, 창의성의 결여문제
북한은 철저하게 당과 정부에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정치·사회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선택과 결정도 당과 정부가 내리고 일반 주민들은 오직 상부에서 결정한 것을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상부의 지시 없이 개인의 창의적인 생각으로 내린 결정과 행동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실패의 책임도 전적으로 본인이 져야 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자의적이고 창의적으로 하기보다는 시키는 일만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윗사람에게 물어보고 거기서 내려지는 지령에 따라 타율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북한사람들은 늘 위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지시가 내려지는가 하는 것에만 그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을 뿐 스스로 어떤 일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일에 이들은 매우 취약하다.
탈북귀순동포은 우리사회의 다양성에서 가치체계의 혼란을 느끼고 있으며 특히 자신의 의지로 선택을 해야 하는 문제에 있어서 매우 어려워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 주민들의 경우에 나타났던 공통적인 행태들이 탈북귀순동포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실제 예를 들어보면 특별히 하는 일없이 교회 사택에 기거하던 한 탈북귀순동포는 자신이 알아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교회에서 교회 정원 청소를 해달라는 목사님의 부탁을 듣고, 매우 기쁘게 빗자루를 들고 정원을 쓸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정원에 흩어진 낙엽이며 휴지 등을 쓸어 정원 한 모퉁이에 있는 느티나무 밑에 모아 놓고 청소를 마쳤다. 그 광경을 본 목사님이 "왜 쓰레기는 치우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청소를 하라고 했지, 쓰레기까지 치우라고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2002년도에 지병으로 돌아가신 이웅평 대령도 귀순 초기 가장 어려웠던 일이 무엇이었던가 라는 질문에 "이제부터 모든 일을 자신이 알아서 하라"는 이야기였다고 회고하기도 하였다. KAL기 폭파범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현희 씨의 경우에도 어떤 목사님과의 대화 속에서 그냥 아무것이나 적당한 것을 주면 그만 일 텐데 이것저것 갖다놓고 "무엇을 가질 것인가?"라고 물었을 때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선택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던 일이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탈북귀순동포들이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동안 스스로 선택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현상들은 그 동안 탈북귀순동포들이 살아온 북한의 정치·사회체제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탈북 귀순동포의 인간관계 형성의 어려움
북한에서의 식량난, 제3국에서의 은둔·도피생활을 통해 '생존을 위한 삶'을 살아왔던 탈북귀순동포들에게는 남한사회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을 위한 삶'과 같은 방식의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탈북귀순동포들이 정착과정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할 줄 모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이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자기들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들이 국가에서 당연히 지원되거나 자기들은 약자이고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에 주위의 봉사자들이 당연히 도와줘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런 경향은 북한에서는 필요한 모든 것을 국가가 해결해 주는 배급문화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데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감사할 마음이 없어서보다는 그 동안 똑같이 배급받는 상황에서 별도로 특별히 어느 누구에게도 감사하다고 이야기할 일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직장의 상급자가 쓴 술 한잔을 주더라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우리들 문화와는 사뭇 다른 점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도와줘도 감사인사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몰염치한 사람으로 오해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탈북귀순동포들에게 정착과정에서 남북간에 특별히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남한과 같이 선진화된 국가, 잘사는 나라에서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그것이 가장 큰 다른 점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북한사회가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시간, 돈을 들여가며 헌신하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사회에서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푸는 경우는 손익을 모르는 모자란 사람이거나, 호감을 산 뒤에 역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한다.
진정으로 호의를 베푼 일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유년시절부터 조직생활과 생활총화를 통해 자아비판 내지 상호비판을 해오면서 상대방을 비판하도록 강요받은 생활습관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
금방 알려질 거짓말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그런 상황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상습적으로 해온 습관이 몸에 배어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런 일로 인해 상대방에게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 자주 생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를 그 동안 북한에서의 생활태도에서 엿볼 수 있다. 북한사회는 이동·거주의 통제가 심하고 언론·방송이나 전화시스템 등이 폐쇄적이기 때문에 설사 거짓말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원거리에 는 그러한 소문이 전달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음주문화도 남한처럼 인간관계나 조직 내 친목이나 화합·단결을 위한 자리로 활용되기보다는 취해보자는 생각에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급하게 많은 양의 술을 마셔 쉽게 취하고, 취하면 대부분 시비나 다툼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자유와 방종 개념 정립이 되어 있지 않아 "그런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면 자유민주사회의 장점이 무엇이냐?"는 등 많은 문제를 본인이 유리한 입장에서 해석하는 경향을 갖는 경우가 많다.
북한체제의 특성상 특별히 감사해야 할 일이 별로 없고, 도움을 받게 되는 경우에도 이에 상응하는 뇌물·상납 등의 뒷거래가 이루어졌던 생활에 젖어있는 탈북귀순동포들에게는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한다.
탈북 귀순동포의 잦은 이직과 취업부진
하나원 교육이수 후에는 희망거주지 등을 고려하여 주택지원, 정착금 등을 지급하고, 초기 6개월 동안 경찰관을 배정하여 우리사회 현장체험, 생활안내, 신변보호 등을 담당토록 하고 있다. 그리고 취업 이전 기간동안 의료보호·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하여 지원하고 취학자에게 대학 학비지원과 직업훈련자에 대해서는 직업훈련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2000년도부터는 탈북귀순동포들의 취업지원과 직업훈련 업무지원을 위해 전국 지방노동청·사무소의 고용안전센터에 별도의 취업지원 창구를 설치 운영하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별로 거주지 보호담당관을 지정하여 각종 애로사항 및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북한이탈주민후원회, 북한이탈주민지원 민간단체협의회의 지원 등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민간차원의 정착지원망을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다. 안정된 취업을 위해 북한이탈주민을 고용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일정기간(2년) 고용임금의 1/2을 정부에서 부담하는 등 정착초기 취업보호를 위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부는 2000년도부터 탈북귀순동포들의 보다 안정된 정착생활 지원을 위해 관련법을 개정하여 취업보호제를 도입하는 등 보다 실질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탈북귀순동포들의 안정적인 취업 지원 문제는 정부만의 몫이라고 하기보다는 '1기업 1명 채용운동' 등 민간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탈북귀순동포의 취업은 소득 획득의 수단이면서 동시에 직장생활을 통해 사회적 연대관계를 형성하여 남한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리를 구축하는 결정적 요건이다. 실제 일부 탈북귀순동포들은 남한사회 정착과정에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소위 3D업종 등은 회피한 채, 봉급 많고 화려한 일자리만 찾아다니다가 허송세월을 하는 이들도 있다. 또 탈북귀순동포들의 대부분은 북한에서나 제3국에서 정상적인 노동을 해본 경험이 오래되어 본인들의 의지와는 달리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정도의 노동강도를 따라갈 만한 능력이 대부분 부족한 실정이다.
IMF이후 우리 사회의 문제로 되어 있는 노숙자 생활도 6개월 이상 하게 되면 영원히 노숙자 생활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경제난이 계속된 몇 년 동안 정상적인 노동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우리사회의 노동강도를 따라가기에는 정신적·체력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노동생산성과는 별 관계없는 북한사회에서의 생활이 몸에 배어 있는 이들에게는 남한사회에서의 노동이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이런 취약점으로 인해 탈북귀순동포들은 잦은 이직을 하게 되고 자신의 전문성이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사무직을 선호하거나, 식당 등 자영업을 통해 빠른 시간 내 돈을 벌어야 하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앞서 실패를 자초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탈북 귀순동포의 언어소통의 어려움
남북한 사회통합의 기본은 언어 통일이다. 언어의 사회적 속성과 사회통합 기능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 체제 속에서 50여 년의 분단상태를 지속하여 온 남북한간에는 어휘와 어미, 발음과 억양, 화법, 언어예절 등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탈북귀순동포들은 남한사회 정착과정에서 언어차이로 인한 남한사회 적응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남한의 경우 상용 한자 1,800자가 일상에서 사용되기도 하고, 남북한 언어중 의미가 다른 뜻으로 이해되는 어휘가 약 3,000단어 정도 된다고 하니 분명 남북한 주민사이에는 의사 소통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2003년 9월 16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남북한 언어차이와 통일언어 교육의 실태'에 관한 토론회가 있었다. 이 토론회에서 '북한교과서를 통해본 남북한 언어이질화 실태'에 대한 연구 보고가 있었다. 분단세월 만큼이나 멀어진 남북간 언어는 이질화가 심각하여 많은 부분에서 번역을 요구할 정도로 크게 달라져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언어이질화 사례로 고등중학교 1학년(중학교 1년) 국어교과서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일남이는 고기를 잡느라고 물참봉이 된 바지를 억이 막혀 내려다보았다 《야, 너 물고기구 뭐구 어서 바지나 짜 입어라.》《일 없어, 난 오늘 물고기를 꼭 잡아야 해, 못 잡으면 꽝포쟁이가 되거던…》.
예문 중에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표현이 눈에 띈다. 우리말로 해석해 보면 일남이는 고기를 잡느라고 물에 흠뻑 젖은 바지를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야, 너 물고기고 뭐고 어서 바지나 짜 입어라," "괜찮아, 난 오늘 물고기를 꼭 잡아야 해, 못 잡으면 허풍쟁이가 되거든……"이란 뜻이 되는 것이다.
북한 사람의 '일없다'는 말은 남한의 '괜찮다. 좋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남한 사람의 '일없다'는 '당신 상관할 일이 아니다'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 '아글타글'이라는 말은 북한에서 많이 쓰이지만 남한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다. '아글타글'은 '무엇을 이루려고 몹시 애쓰거나 기를 쓰고 달라붙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로서 우리의 '필사적으로', '전력을 다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북한에서는 '오징어'를 '낙지'로 '낙지'를 '오징어'라고 한다. 그래서 탈북귀순동포들과 안주로 마른 오징어를 시키면 영락없이 "아, 낙지"라고 한다. 낙지가 아니고 오징어라고 하면 "이게 왜 오징어냐"고 반문하게 된다.
이처럼 어휘 등의 차이로 남한사람들이 탈북귀순동포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문제이다.
그리고 탈북귀순동포들은 우리사회에 범람하고 있는 영어·외래어·한자성어 등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원활한 언어소통이 되지 않아 초기 정착생활에 상당한 애로를 겪고 있다. '식료상점' 등 상점수준의 상호만 접해온 이들에게 있어서 '미니슈퍼'부터 시작하여 '슈퍼마켓', '원스톱', '쎄븐일레븐', '베스토아' 등 다양한 종류의 상점들에 대한 이해도 어렵다. 빵집이란 상호도 '크라운베이커리', '파리바케트', '하이몬드베이커리', '엠마' 등 여러 가지 브랜드로 사용되어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이질화된 언어로 인하여 탈북귀순동포들이 의사소통 및 교감에 있어 장애를 느끼게 되면, 사람 만나는 것을 기피하거나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 등의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처럼 언어 부적응은 전반적인 남한사회 적응과 연계되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탈북 귀순동포의 심리적 특성
탈북귀순동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이들의 심리적 특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심리적 특성에 개인차가 있듯이 탈북귀순동포들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탈북귀순동포들은 탈북 이후 완전히 이질적인 환경에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에 대처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는 탈북귀순동포들은 이러한 환경의 변화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고, 무력감, 좌절감에 빠지거나 위축되기도 한다. 또한 탈북귀순동포들은 자신의 탈북으로 인해 북에 있는 가족, 친지가 받게 될 처벌 때문에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와 함께 부모 친척을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 사회적 관계의 단절로 인해 심각한 정서적 공황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죄책감, 외로움은 낯선 환경에서 오는 두려움, 갈등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이들의 적응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외로움의 문제는 심리적 갈등의 주요인으로 작용하여 우울증 등 심리적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최근 남한으로 입국하는 탈북귀순동포가 급증하면서 탈북 경로 또한 다양화되고 있다. 제3국에서 무국적자로 체류하면서 법적 제재를 피하기 위하여 극심한 피해를 감수한 이들은 정서적으로 피폐화되었으며 공격적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인권유린이나 모욕은 자존심이 강한 탈북귀순동포들에게 자칫 잠재된 공격성으로 내재될 수 있다. 특히 제3국에서 경험한 한국인에 대한 지극히 단편적인 체험을 전체인 것처럼 받아들여 남한사람에 대해 피해의식과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또한 무국적자로 다년간 제3국에서 체류하면서 당한 멸시, 천대로 인해 상대방의 말을 오해하여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탈북귀순동포들에게 있어서 제3국 경험은 정서적으로 왜곡된 인식을 가지게 하고 또 다른 의미의 고통 경험을 갖게 했다.
이처럼 탈북 상황에서 겪은 많은 위협적인 사건들은 탈북귀순동포들에게 정서적 불안을 유발시키며 이러한 증상은 사건이 종결된 후에도 계속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심리적 스트레스는 계속 감정적, 심리적으로 각성 상태에 머무르게 하고, 불면을 유발하며 계속적인 악몽에 시달리게 한다. 이러한 반응은 추후 심리적·감정적 무감각증으로 나타나 다른 유형의 감정에도 무감각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즉 기쁨과 즐거움과 같은 긍정적 감각에도 무감각해질 수 있고 심한 경우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이중적인 입장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의사소통, 사고방식, 생활습관 등에서 느껴지는 차이들이 이러한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제3국에 체류했던 탈북귀순동포들은 자본주의를 다소 이해하게 되고 남한 사회 적응에 대한 스트레스가 다소 감소되는 효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실례로 제3국 체류 시 남한사람이 다수 있는 곳에 있던 탈북귀순동포들은 사회적 지지기반에 대한 불안감이 적으며 남한인에 대한 두려움, 적응에 대한 막연함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삶의 환경이 반드시 문제 상황을 발생시킨다고 볼 수는 없다. 이전의 상황보다 더 좋은 환경으로 변화하였을 경우 그것이 반드시 심리적·정신적으로 부정적인 증상으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탈북귀순동포들은 남한이라는 새로운 삶의 환경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능력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부적응 양상은 성격, 연령, 학력, 사회적 계층 등의 개인적 배경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대체로 다수의 탈북귀순동포들은 심리적으로 적지 않은 갈등을 겪고 있다.
또한 기존에 탈북한 가족의 권유로 북한에서 바로 탈북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북한체제에서 인식된 반미·남한에 대한 적대감으로 인하여 우선적으로 공포감을 느끼며 생명에 대한 위협까지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들은 남한사회 정착과정에서 발전된 한국의 경제·산업·도시화를 체험하면서 북한체제에 대한 배신감과 불신을 표출하며, 발전된 한국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어떻게 정착할 수 있을지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향수병
북한에서 태어나 삶의 대부분을 북한에서 살아온 탈북귀순동포들은 북에 두고 온 가족과 친지에게 죄책감을 느끼거나 외로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북에 남은 가족들이 조국과 민족의 배반자라고 자신을 욕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탈북 사실을 알리지 않고 남한에 도착했을 경우에는 자신을 찾기 위해 걱정하고 있을 가족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기도 한다. 한국에 온 기쁨보다는 북에 남은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이 누리고 있는 남한에서의 풍요·행복이 오히려 죄책감이 되어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명절 때면 고향에 계신 부靜ㅔC뇟ㅔ1링涌?대한 그리움이 가중된다고 한다.
죄책감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앞으로 가족을 만나게 될 경우 물질적으로 보상해야 한다는 강한 욕구로 바뀌어 오로지 가족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돈을 벌어서 성공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게 만들기도 한다. 앞으로 통일이 되거나 제3국을 통해서라도 가족을 만날 수 있으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만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모에게 사죄를 하기 위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은 탈북귀순동포들의 가족에 대한 보상 심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빨리 성공해야 한다는 조급증에 비해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에는 좌절감으로 인해 우울증을 초래하게 된다. 계속된 좌절감은 고향산천을 등지고 부모형제를 떠나 헤매던 긴 여정의 타국 생활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게 한다.
탈북귀순동포들은 남한에 정착해 생활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없음으로 인해 외로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아무런 연고가 없이 막연하게 혼자라는 고독감을 경험하게 될 때 이들은 적극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을 개방하기보다는 자신을 더욱 소외시키고 단절시킨다. 심리적인 고충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만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염려하게 되고, 약점이 드러나 소문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불안해한다. 즉, 자신의 우울증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관계를 더욱 확장시키고 지지기반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는 자신 혼자라는 생각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될 경우 불행감, 무력감 등의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로 상습적으로 폭주를 하기도 하고, 외로움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걸맞지 않는 탈북귀순 상대자와의 결혼을 서두르는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신앙생활을 통한 정신적 안정과 폭넓은 교우관계를 통하여 인간관계를 넓혀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일로 힘들어하고 고통 속에서 번민하고 있는 탈북귀순동포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마음속으로부터 끌어 안아주고 안정적으로 생활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진정한 마음의 동반자가 주위에 많다는 점을 인식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탈북 귀순동포의 피해의식으로 인한 공격성
남한사람에 비하여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많이 보이는 것이 탈북귀순동포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탈북귀순동포들이 남한사람들에 대해 표현할 때 흔히 예술적이고 유순하고 부드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할 정도로 이들의 언행은 매우 직선적이고 거친 면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행동화하려는 성향과 인내심 부족, 조급성, 자존심, 고집을 억제하지 못하여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우선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인다.
이러한 성향으로 인해 탈북귀순동포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사소한 일에 과격하고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다거나 심한 욕설을 하거나 격렬한 몸싸움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흑백논리식으로 대응하며, 자신의 뜻을 좌절시키거나 자신에게 비판을 가하는 사람에게는 갑자기 심한 욕설을 하는 등 강한 공격성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탈북귀순동포들이 보이는 공격성에 대한 원인들을 살펴보면, 이는 유아기부터 정체된 욕구 불만이 공격성으로 표출된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욕구불만이 강해지면 공격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데, 적의나 분노가 쌓이면 공격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고 더욱 격화되면 심한 파괴적 행동이 나타난다. 욕구불만의 대상에 대해서 자기의 적대감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며, 직접적으로 공격할 수 없는 경우에는 다른 대상인 동료와 말다툼을 하거나 싸움을 한다. 욕구불만과 심리적 스트레스로 인하여 성격이 거칠어지고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습관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성향은 북한사회의 보편화된 인권유린과 인간존중 의식의 결여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체제유지를 위한 인간경시 풍조는 자신의 일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북한주민이 일주일에 1회 이상 실시하고 있는 생활총화가 그 원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일거수 일투족이 불특정 다수에 의하여 철저히 규제되고 비판된다고 생각할 때 우선적으로 긴장하게 된다.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을 때 자신을 피해자라고 간주하며 가해 당사자에 대한 응징과 복수심을 축적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주의 정권은 모든 개인이 원자화가 되어야 국가의 통제가 용이하다고 보기 때문에 인민대중이 다른 대상에 충성하는 것을 예방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북한사회에서도 인간관계가 원자화되어 있으며, 당의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주민상호간의 인간관계를 억제한다. 인간관계의 원자화를 조장하는 제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상호 고발제도인데, 고발하지 않으면 고발하지 않는 사람이 처벌을 받게 된다. 누가 보위부 정보원인지 모르기 때문에 친구에게조차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서로를 불신하게 된다. 매주 실시하는 생활총화도 인간관계의 원자화를 조장하여 근본적으로 사람을 믿지 못하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생활을 경험하면서 성장한 탈북귀순동포들은 남한사회에 대해서도 자신의 귀중한 재산과 생명을 노릴 수 있다는 의심으로 인하여 경계심을 나타낸다. 대인관계에 대한 불신풍조로 서로에게 적대감을 표현하게 되며, 표출하지 못할 경우 분노가 내재되어 심리적으로 불안정감을 초래하게 된다.
탈북귀순동포들은 제3국에서의 은둔·도피생활을 하는 동안 생존을 위한 불안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거나 신뢰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갖고 있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화풀이식 음주습관을 버리고 가급적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나 서로간에 나쁜 감정을 갖고 있는 탈북귀순동포들 상호간의 접촉을 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어른들의 경험담을 듣거나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탈북 귀순동포의 권력과 법에 대한 태도
우리 사회에도 지도자 그룹의 실세나 실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직위에 있는 사람에 대해 지극히 예민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탈북귀순동포들의 경우에는 이런 성향이 북한에서의 삶을 통해서 체질화되어 있는 측면이 있다.
북한사회는 철저한 권력사회, 계급사회, 집단사회이다. 인류의 보편적인 공동선이 존재하기보다는 김일성, 김정일이라는 무조건적인 최고 권력으로부터 모든 하부조직과 각 개인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서열로 조직화되어 있고, 옳고 그른 것 역시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하여 판단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것에 익숙해져 있는 탈북귀순동포들은 남한에 와서도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남한 사람들과 그 힘에 대하여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자신이 파악한 그 힘에 따라 대하는 태도에 큰 차이를 보인다.
탈북귀순동포들은 남한에서의 정착생활을 하기 전에 약 2개월 동안 하나원에서 남한사회의 적응교육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일부 교육생들은 이 교육기간 중에 하나원 원장 등 간부들과 거주지 배정직원, 물품보급관(소위 '창고장'이라고 호칭) 등과의 인간관계 개선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측면이 있다. 물론 남한사회에서 자신의 애로 사항 등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당사자란 측면에서 순수한 부분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상대하고 있는 사람들의 '힘'에 대하여 매우 민감하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원 입소전의 기관인 군이나 정보 계통의 사람들을 상대할 때에는 매우 순종적이지만 자신들에게 부드러운 태도로 대하는 공무원이나 자원봉사자들에 대하여는 비교적 그 권위와 힘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남한사회 정착 초기 일부 탈북귀순동포들은 남한의 실무담당 공무원들에게 요구사항을 제기하였다가 규정상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 매우 분개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개인적으로 봐주고 도와주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을 해주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무원보다 더 높은 공무원을 직접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식의 태도를 보여 남한 공무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이것 역시 북한에서의 이들의 경험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은 모든 선과 가÷?근원인 존재들이다. 그것은 북한이 어떤 상식이나 인류의 보편적 가치, 그리고 그와 연관된 규정과 법에 의하여 운영되고 통치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김일성, 김정일 그 개인의 뜻과 생각에 의하여 운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북한에서는 이러한 통치와 운영방식이 김일성, 김정일의 최고위급에서만이 아니라 가장 말단의 작업장에서조차도 그대로 적용된다.
규정보다도 상급자의 개인적 생각과 의지가 더 중요하고 실제적인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 사람들로 하여금 규정이나 법을 무시하려는 태도, 그리고 힘을 가지고 있는 개인과의 관계에 더 예민하게 되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에서는 누가 힘있는 사람인지를 파악하고 그와 어떻게 연관을 맺어야 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생존의 방법이 되어 왔던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탈북귀순동포들에게는 법치주의 국가의 실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민주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왜 준법정신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교육이 필요하다.
북한사회에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을 일들이 이곳 남한사회에서는 법의 저촉을 받을 수밖에 없는 명확한 이유를 설명해주고 납득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한사회는 법과 제도에 의해 모든 행정이 처리되며, 관계자의 힘이나 상부의 지시에 의해 안되는 일이 되는 사회가 아님을 분명하게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다.
탈북 귀순동포의 명분을 강조하는 태도
2002년 여름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에 모습을 드러낸 소위 북한의 '미녀 응원단'은 우리사회에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양궁경기를 위해 예천 김진호양궁장으로 가던 예천 시내의 도로변에서 일어났다.
예천 시민들이 준비한 북한선수단 환영현수막에는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악수하는 사진이 들어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던 북한 응원단이 길거리에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보자 갑자기 차를 세우게 하고는 수십 명의 북한 여학생들이 뛰어가 그 현수막을 떼어낸 사건이 벌어졌다.
"장군님의 사진이 저렇게 길바닥에 걸려 있다가 비를 맞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눈물을 글썽이는 이들의 태도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코미디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섬뜩한 생각이 드는 사건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배자의 카리스마와 이미지 상징조작이 일상화되어 있는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착 초기 일부 탈북귀순동포들이 보이는 심리적 특징 중 하나는 그들이 탈북과 남한에 들어온 행동에 대하여 공적인 가치와 명분을 앞세운다는 점이다. 위의 예를 염두에 두고 살펴보면 탈북귀순동포들의 이러한 태도를 이해하기 쉽다. 즉 많은 경우 개인적인 이유로 말미암아 탈북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반대와 통일을 위하여 탈북했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솔직한 생각의 표현을 중시하는 남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과장하고 왜곡하며, 공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인간의 노동에 대해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보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그런 보상을 주지 않으면서도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하여 열심히 일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의 개발이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된다. 그런 방법 중 특히 북한에서 강조되는 것은 집단을 위한 공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다. 즉 국민들로 하여금 작은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민족과 국가, 집단의 이익과 승리를 위하여 헌신하여야 그것이 올바른 인간이 되는 길이라는 식의 생각을 가지도록 강력한 사상 주입을 하는 것이다.
어느 사회이건 부분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이지만 북한에서는 이것이 매우 극단적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즉 유치원에서부터의 모든 공적인 교육, 사회 교육, 신문과 TV 등 대중매체의 모든 내용은 그런 사회주의적인 가치관을 가지도록 하는 데 철저히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 조국의 건설, 공산주의적 도덕과 양심, 충성과 효도 등 북한을 뒤덮고 있는 표어들은 모두 개인적인 생각을 버리고 집단주의적 가치에 자신을 헌신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개인적 생각, 개인의 행복과 이익을 추구하려는 태도 등은 철저히 매도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한 사람들은 개인적인 생각과 행동에서도 공적인 가치와 명분을 붙이는 것을 중시하며 그것을 강조하는 표현 방식과 사고 방식이 발달해 있다는 점이 남한 사람들과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남한사회에 정착하면서 흔히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벽돌 한 장 쌓지 않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환대해 준 데 대해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깊이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처음 이런 이야기를 듣는 남한주민들은 마치 정치인들의 기자회견 내용 같아 너무나 생소한 이야기로 들려 이질감을 느끼거나 오히려 거부감을 느낄 정도라고 한다.
정착 초기 탈북귀순동포들의 이러한 감사표현은 차츰 줄어들긴 하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는 예외없이 나오는 일이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기분 나쁘지 않게 지적해주면서 거창한 이야기보다는 실질적이고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도록 지도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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