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의 가정교회- 자료분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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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목사는
총신대(B.A.)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를 졸업하였으며, 독일 뮌스터(Münster) 대학교(Westfälische Wilhelms-Universität)에서 신약학으로 신학박사(Dr.theol.) 학위를 받았다. 독일 아헨(Aachen)과 부퍼탈(Wuppertal)에서 한인목회를 하였고, 서울 녹번동에 있는 염광교회에서 담임목사를 역임했으며, 지금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신약학)이다.
제1강. 초기 기독교의 가정교회 - 자료분석 (조병수) An Analysis of Documents for the Early Family (House) Churches (by Dr.theol. Byoung Soo Cho) 1939년에 Filson이 초기 기독교 가정교회의 의미에 관하여 발표한 짧은 논문1)은 비록 당시에는 큰 반응을 얻지 못하였지만2) 이 주제에 관한 논의의 시발점을 놓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Filson이 가정교회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가정교회들의 공헌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사도 교회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3). 그 이후로 가정교회에 관한 관심은 꾸준히 고조되면서4) 결국 1980년대를 전후로 하여 이 주제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5).
Klauck은 이 시기에 가정교회의 주제가 갑자기 붐을 일으키게 된 이유를 위하여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특히 현실적인 문제들, 예를 들면 오늘날의 가정에 대한 염려라든가 새로운 생동력있는 교회형태에 대한 추구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6).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볼 때 신약학계에서 1980년대를 중심으로 초기 기독교에 대한 사회학이 활성화되면서 가정교회에 대한 관심이 더욱 촉진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7).
이제는 가정교회에 관한 문헌이 엄청나게 되었다8). 이 주제는 신약학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 되었다9). 본고는 초기 기독교의 가정교회를 면밀히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이 글에서는 사도행전과 서신서들 그리고 속사도 문서에 나오는 가정교회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여 분석하고, 이후 다음 글에서는 자료분석에 근거하여 가정교회의 의미를 파악하며 문제점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이 논문의 유익은 두 가지이다. 첫째로 이 논문으로 말미암아 초기 기독교의 교회현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둘째로 이 논문은 오늘날의 교회들이 지향해야 할 성경적인 교회관을 설정하는데 일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I. 자료분석 초기 기독교에서 가정교회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살펴보기 전에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하는 것이 우선적이다. 우리는 신약성경으로부터 능력에 따라 자신의 집을 전교회의 회집이나 개별 그룹모임을 위하여 제공할 수 있었던 그리고 제공할 준비가 되어있었던 남자와 여자들의 이름이 구별없이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다10). 이들을 사도행전, 바울서신, 기타서신, 속사도시대 문서의 순서대로 정리해보자. 1. 가정교회에 대한 사도행전의 증거 사도행전은 초기 기독교의 가정교회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들을 상당수 제공하고 있다11). 사도행전에 의하면 초기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정 중심활동과의 연속성 속에서 예루살렘 교회에서부터 가정집회를 중시하였다. 사도행전은 처음에 다락 (u`perw|/on)에 관한 진술 (행 1:13)과 마지막에 셋집 (mi,sqwma)에 관한 진술 (행 28:30)로 괄호법 (inclusio)을 이룸으로써 마치 가정 (집)이 없으면 기독교도 없다는 듯한 인상을 제공한다12). 1) 팔레스타인의 가정교회 (사도행전 1-12장)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초기 기독교의 모습을 진술하면서 가정을 기반으로 하는 교회의 상황을 여러 곳에서 언급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후에 제자들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한 집의 일부인 “다락” (u`perw|/on)에 올라갔다 (행 1:13)13). 그러나 머지않아 집회는 한 집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를 사용하는 규모로 발전하였다.
누가는 사도 베드로가 사도보충설교를 할 때 120명의 성도가 모인 것과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 제자들이 모인 것을 가리켜 evpi. to. auvto, (행 1:15; 2:1)라고 한다. 문맥을 살펴볼 때 분명한 것은 누가는 이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의식적으로 기독교 공동체의 집회 (한 장소에 모인 그룹이건 전체 공동체이건)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14). 이 표현이 건물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성령강림의 현상이 “온 집에 가득하였다” (evplh,rwsen o[lon to.n oi=kon)는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15).
처음에는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집회가 성전회집과는 상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성전에서 행한 일과 가정에서 행한 일이 선명하게 구별되어 진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전에서와 달리 가정에서는 주로 식사교제가 이루어졌던 것 같다. 이것은 행 2:46f.의 구조를 살펴보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행 2:46f.의 구조: 2개의 분사 (46a) 주동사 (46b) 2개의 분사 (47a) proskarterou/ntej aivnou/ntej metela,mbanon klw/ntej e;contej 첫째로 두 개의 분사 (proskarterou/ntej, klw/ntej)가 나오고 다음에 주동사 (metela,mbanon)가 따르고 결국에 두 개의 분사 (aivnou/ntej, e;contej)가 이어진다. 처음 두 개의 분사는 장소 (성전과 가정)를 지시하고, 나중 두 개의 분사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태도 (찬미와 칭송)를 묘사한다16). 이것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성전에서 한 일과 가정에서 한 일이 달랐다는 것을 입증한다. 성전에서의 집회는 모든 신자의 공개적인 모임인 반면에 가정에서의 집회는 식사교제에 치중해있었다17). 본 절의 주동사 (metela,mbanon)에 의하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공동식사가 매우 중요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 공동식사는 주로 집에서 떡을 떼는 일로 시행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초기 기독교에서 가정집회의 성격은 상당히 변화 또는 발전한 것 같다. 가정에서도 교육이 이루어졌다. 이런 사실은 행 5:42에서 분명하게 엿보인다. 이 구절에서는 가정이 성전과 마찬가지로 교육과 전도가 시행된 장소로 소개된다. dida,skein과 euvaggeli,zein은 하나의 개념으로서 설교를 가리키는 것이었을 것이다18). 이런 이중표현은 행 15:35에도 등장한다. 또는 euvaggeli,zein은 dida,skein을 내용적으로 자세히 규명하는 것일 수 있다19). 이제 가정집회는 단순히 교제의 차원을 넘어서 교육의 차원으로 전진하였다.
누가는 스데반의 순교사화를 마무리하면서 회심 전의 사도 바울의 기독교 핍박사건을 압축적으로 묘사한다. 사도 바울은 회심 전에 “교회를 잔멸할 때 각 집마다 다니며 남자들과 여자들을 끌어다가 옥에 가두었다” (행 8:3). 이 구절은 교차대조의 구조가운데 각각 하나의 분사를 지닌 두 개의 동사로 이루어져있다20). 첫째로 “교회를 잔멸한 것” (evlumai,neto th.n evkklhsi,an)과 “각 집마다 다닌 것” (kata. tou.j oi;kouj eivsporeuo,menoj)이 연결되어 있으며, 둘째로 “남자들과 여자들을 끌어간 것” (su,rwn a;ndraj kai. gunai/kaj)과 “옥에 가둔 것” (paredi,dou eivj fulakh,n)이 연결되어 있다.
후자의 경우에서 중요한 것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교회의 구성원으로 나란히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잠시 멀리하고 먼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전자의 경우에 나타난 교회와 가정의 관계이다. 이것은 초기 기독교가 가정 복음화에 얼마나 주력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초기 기독교의 교회가 가정을 근거로 하여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진술이다21). 누가는 회심 전의 사도 바울이 교회를 파괴한 것과 성도의 각 집에 진입할 것을 동일한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언급된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가리킨다 (행 8:1 th.n evkklhsi,an th.n evn `Ierosolu,moij).
예루살렘 교회는 성도의 가정들로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가정들은 일종의 가정교회였을 것이다. 이 구절에서 동사들을 제외한다면 th.n evkklhsi,an kata. tou.j oi;kouj는 가정교회를 나타내는 바울의 표현법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22). 누가에 의하면 회심전의 사도 바울은 가정집회를 파괴하는 것이 예루살렘 교회를 파괴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가정교회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로마군대의 백부장 고넬료의 회심사건이다. 고넬료는 기독교의 진리에로 회심하기 전에도 “온 집이 더불어” (su.n panti. tw/| oi;kw| auvtou/)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이었다. 고넬료는 기독교의 진리를 듣기 위하여 사도 베드로를 자신의 집으로 (행 10:22,30; 11:12) 초대하였다. 이때 고넬료는 자신의 집에 그의 “일가와 가까운 친척들” (tou.j suggenei/j auvtou/ kai. tou.j avnagkai,ouj fi,louj)을 모았다 (행 10:24).
고넬료는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구원을 얻을 말씀을 들어야 할 대상이 자신 뿐 아니라 “온 집” (pa/j o` oi=koj, 행 11:14)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을 매우 폭넓은 범위로 이해했던 것이다. 이것은 고넬료의 가정이 실제로 그의 집에서 살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포함하는 확대가정이었던 것을 의미한다23). 그들은 사도 베드로의 구원설교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기독교에 입문하였다 (행 10:48)24).
사도행전에서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 (oivki,a)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진술된다. 그 집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였다 (ou- h=san i`kanoi. sunhqroisme,noi kai. proseuco,menoi)” (행 12:12). 이 구절은 마리아의 집이 두 가지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선 마리아의 집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집회소로 사용되었다25). 여기에 집회를 위하여 사용된 동사 sunaqroi,zein는 누가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으로서 특별한 모임을 서술하고자 할 때 사용되는 것이다26).
이 집에서 충분한 수의 사람들이 집회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집이 상당한 규모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 단락이 대문과 여종을 언급하는 것으로부터 이 사실은 분명하게 입증된다27). 둘째로 마리아의 집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는 기도처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마리아의 집이 핍박의 시기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은밀한 예배처소로 제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28).
마리아의 집은 예루살렘 교회에 속한 여러 가정교회들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헤롯은 예루살렘 교회 (h` evkklhsi,a, 행 12:1)를 파괴시키기 위하여 야고보를 처형하고 (행 12:1), 베드로를 체포하였다 (행 12:4). 이때 예루살렘 교회 (h` evkklhsi,a)는 체포당한 베드로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행 12:5). 예루살렘 교회의 기도는 여러 개의 가정교회에서 행해졌던 것이 틀림없다.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으로 해방되어 찾아간 마리아의 집은 분명히 여러 개의 가정교회들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가 마리아의 집에 도착한 후에 자신의 해방에 관하여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전하라 하고 다른 곳으로 갔다” (행 12:17)는 사실로부터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점이 돋보인다. 첫째로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 vIakw,bw| kai. toi/j avdelfoi/j)는 다른 가정교회들이 집회장소와 예배처소로 제공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로 베드로가 “다른 곳으로” (eivj e[teron to,pon) 갔다는 것은 제3의 가정교회를 의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29). “누가는 (오순절 후에) 공동체 전체가 한 장소에 회집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기록이 정확하다고 할 때, 신자의 수는 오순절의 결과로 3000명에 달하였다 (행 2:41; 참조. 4:4; 5:14; 6:7).
이렇게 많은 숫자는 신자들이 한 집에 모이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베드로 자신이 마리아의 집에 모인 그룹에게 자신이 해방되었다는 것을 아마도 다른 곳에서 모이고 있는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말하라고 지시한 것은 집회장소가 여러 곳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예루살렘의 초대교회 내에 (잠정적으로건 그밖에 무엇으로건) 분쟁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이것으로부터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신자 (심지어 다수를 이루고 있는)를 한 지붕 아래 모이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는 사실이다”30). 2) 이방선교의 가정교회 (사도행전 13-28장) 누가는 이방선교에서 가정교회의 형성을 팔레스타인의 가정교회보다도 훨씬 더 분명하게 기록한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루디아의 경우이다31). 빌립보에서 사도 바울의 말을 듣고 기독교 신앙에 들어오게 된 루디아는 집과 함께 다 세례를 받았다 (행 16:15 “저와 그 집이 세례를 받고” evbapti,sqh kai. o` oi=koj auvth/j). 여기에서 누가 “집” (o` oi=koj)의 구성원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32).
어쨌든 루디아가 자신의 집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이 사건으로 이미 가정교회가 건설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33). 루디아의 집은 사도들이 빌립보에서 활동하는 동안 거점이 되었고, 나아가서 빌립보 초대교회의 본부가 되었으며34), 빌립보에서 선교교회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 틀림없다35). 이러한 사실은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나온 후에 “루디아에게 가서 형제들을 보고 위로하였다” (eivsh/lqon pro.j th.n Ludi,an kai. ivdo,ntej pareka,lesan tou.j avdelfou,j, 행 16:40)는 말에서 분명하게 입증된다36).
사도 바울이 복음사역에서 가정을 매우 중요시하였다는 것은 빌립보 감옥의 간수장과의 대화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감옥의 간수장에게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 16:31 swqh,sh| su. kai. o` oi=koj sou)고 말하면서 “그 사람과 그의 집에 모든 사람에게” (행 16:32 su.n pa/sin toi/j evn th|/ oivki,a| auvtou/)37) 복음을 전하였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개인전도만큼이나 가정전도에도 총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로 말미암아 빌립보 감옥 간수장은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았다” (행 16:33 evbapti,sqh auvto.j kai. oi` auvtou/ pa,ntej). 결국 간수장과 함께 그의 “온 집이 하나님을 믿게” (행 16:34 panoikei. pepisteukw.j tw/| qew/|) 된 것이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의 간수장을 대상으로 사역한 가정전도는 그의 온 집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 놀라운 열매를 맺었다.
사도행전은 가족이 복음화되었다는 증거를 많이 제시한다.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서 작별하기 전에 마지막 집회를 가졌을 때 (행 20:7-12), 청년 (행 20:9 neani,aj)이자 아이 (행 20:12 pai/j)인 유두고가 그 집회에 참석한 것은 가족이 함께 참석한 것임을 암시한다. 이런 의미에서 드로아 집회는 가족교회들의 연합집회였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기 위하여 두로를 통과하였을 때 (행 21:4-6), 두로의 제자들은 “다 그 처자와 함께” (행 21:5 su.n gunaixi. kai. te,knoij) 사도 바울을 전송하였다. 이것은 두로의 신자들에게 가족이 복음화되어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 결국 가족의 복음화는 가족교회 (Family church)를 형성하게 되었다. 가족교회는 신약성경이 제시하는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조직이다38).
누가는 사도 바울이 전체 집회만큼이나 가정집회를 중시했다는 것을 증거한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 대한 설교 (행 20:18-35)에서 자신의 사역을 요약하면서 자신의 목회는 전파 (avnaggei/lai)와 교훈 (dida,xai)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되었다고 말한다 (행 20:20). 사도 바울이 거리낌없이 전파하고 가르친 것은 “유익한 것들” (행 20:20)이었다. 그런데 이 전파와 교훈은 “공중 앞에서나 집에서나” 행해졌다 (행 20:20)39). “공중 앞에서” (dhmosi,a|)는 아마도 전체집회를 의미하는 것이며40), “집에서” (kat v oi;kouj)는 가정집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목회에서 전체집회 뿐 아니라 가정집회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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