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린성 일가 30명 ‘10년간의 한국 정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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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산업연수·초청·방문취업 잇따라 ‘한국행 티켓’
식당·공사판 뿔뿔이 고된 삶…“돈벌어 돌아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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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중동포 이진주(28·여·가명)씨 일가는 중국 지린성 지린시의 한마을에 모여 살았다. 마을 전체 60여 집이 이씨네처럼 친·인척끼리 농사일을 품앗이하며 모여 사는 씨족촌이었다. 그러나 2008년 겨울, 이 마을에 남아 있는 가구는 여섯 집에 지나지 않는다. 이씨네 친·인척은 큰외가 한 집만 남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씨 일가 가운데 맨 처음 한국에 발을 디딘 사람은 이씨의 언니(31)였다.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1999년 경기 광주의 한 중소 전자업체에 취직해 부품 조립일을 했다. 한달 월급 36만원은 대부분 중국 집에 보냈다. 언니보다 앞서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다녀온 이웃은 새 아파트를 얻어 도시로 나갔다. 이씨네는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우리도 나가자’는 얘기로 온 마을이 뒤숭숭했다. 일자리가 많고 임금도 훨씬 높은 ‘한국행’은 한족들과 경쟁해서 살기 힘든 중국 내 도시 취업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이씨 언니는 1년 뒤 공장 기숙사를 몰래 빠져나왔다.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불법체류를 택한 것이다. 그는 수도권 근처 식당에 취직해 하루 12시간 일하고 100만원을 받았다. 연수생보다 벌이는 세 배 늘었고, 집으로 보내는 돈도 그만큼 많아졌다. 이듬해 이씨의 사촌(36)이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이씨의 언니는 사촌이 머물 집을 구해주고 아플 땐 병원에 데려가기도 했다. 그 이듬해엔 이종사촌(39)이 한국인과 결혼했다. 앞서 한국인과 결혼한 동생(36)이 남편감을 소개해 준 것이다. 두 딸을 한국에 시집보낸 이모네는 한동안 이웃들의 축하를 받느라 바빴다.
2002년 ‘방문 동거’ 자격으로 입국한 동포들을 대상으로 취업관리제가 시행됐다. 한국에 사는 ‘8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의 초청으로 취업 비자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취업 대상이 음식점·산업설비·청소업 등으로 제한됐지만, 절차가 까다롭고 돈도 많이 드는 연수생보다 일자리 구하기가 훨씬 편해진 것이다.
이씨네 마을에 또 한 차례 ‘바람’이 불었다. 마을 사람들은 한국에 있는 친척 찾기가 일이 됐다. 이씨의 이모네는 남은 자식을 둘 다 한국에 보냈다. 울산광역시의 한 식당과 충남 천안의 공장에 각각 취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듬해엔 외삼촌(50)이, 몇 달 뒤엔 작은삼촌이 그 뒤를 따랐다.
2007년 ‘방문 취업제’가 실시되면서 한국 취업길은 더 넓어졌다. 연고가 있는 동포는 물론 무연고 동포들도 한국어시험을 통과하면 한해 허용인원 안에서 추첨을 통해 입국할 수 있게 됐다. 이전에 ‘방문 동거-취업관리제’로 입국한 이들은 방문취업으로 체류 자격을 바꿨다. 이씨는 어머니(2006년)와 아버지(2007년)에 이어 올해 한국에 왔다. 10년 만에 온 가족이 다시 모여 살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에 온 이씨의 친·인척은 줄잡아 30여명. 중국에선 한마을에 살았지만 한국에서는 뿔뿔이 흩어져 산다. 경기도의 한 횟집에서 일하는 이씨의 이모는 식당이 직장이자 숙소다.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고 밤엔 식당에서 잠을 잔다. 이씨의 사촌 오빠는 월세 15만원짜리 반지하 방에서 혼자 산다. 아침은 빵과 우유로 때우고 점심·저녁은 공장에서 먹는다. 그는 “중국에 있는 애들을 대학에 보내기 전까지는 무조건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네 가족 넷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원룸에서 함께 산다. 아버지는 일용직으로 도로포장 보조일을 하고,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한다. 언니는 “한국인과 결혼해 국적을 취득하겠다”는 목표로 공장일을 하고 있다.
이씨는 “일가 대부분이 한국에서 돈을 벌어 중국에서 한족들이 사는 도시에 정착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올해 초 경기 이천의 한 냉장공장에서, 지난 10월 서울 논현동의 한 고시원에서 재중동포들이 희생됐을 때 이씨는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그는 “동포라는 법적 지위와 이주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현실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송경화 기자freehwa@hani.co.kr
오락가락 정부 대책
재중동포 입국·취업 “완화” 1년만에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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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는 17일 재중동포 등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외국 인력 취업자의 ‘쿼터’를 제한하는 ‘건설업 취업허가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재중동포 취업 현황과 사업체 수요, 내국인 대체 가능성 등을 따져 적정한 인력 규모를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재중동포들은 그동안 건설업계의 부족한 인원을 채우는 구실을 해왔지만, 최근 경기 침체로 건설업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면서 내국인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눈총’을 받아왔다. 노동부는 올 상반기 기준 건설업 취업자 180만명 가운데 9.3%인 17만명 가량이 불법 취업자를 포함한 외국 인력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취업허가제가 시행되면, 건설업에 취업하려는 재중동포는 안전교육을 이수한 뒤 고용지원센터에서 6개월~1년 단위로 허가를 받아야만 취업할 수 있게 된다.
법무부는 지난 10월부터 재중동포의 방문취업제 개선안을 시행 중이다. 이에 따라 방문취업 초청 인원이 1인당 3명으로 줄었고, 1949년 이전 출생한 고령자의 입국 특례도 없어졌다. 법무부는 “최근 친족 초청으로 입국한 방문취업 동포가 급증했는데, 대부분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아 국내 고용시장 안정 차원에서 제도를 개선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재중동포 관련 단체들은 “방문취업제를 도입해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하더니 불과 1년 만에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취업을 제한한다”고 반발한다. 이호형 서울조선족교회 인권센터 소장은 “재중동포들은 값싼 임금에, 다른 외국인 노동자보다 의사소통도 원활해 노동시장의 맨 밑바닥에서 일해왔다”며 “겉으로는 동포 정책으로 받아들여 놓고 사정이 나빠지니까 잉여 노동력 취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2007년 3월 방문취업제를 시행하면서 “중국 및 옛소련 지역에 사는 동포에 대한 차별 해소 및 포용 정책의 일환으로 이들에게 취업 기회를 확대할 목적”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재중동포 37만명 가운데 30만명은 방문취업 비자로 한국에 머물고 있다. 만 25살 이상이면 국내에 친척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서로 다른 절차를 거쳐 입국해 제조업 등 34가지 업종에 취업할 수 있다.
한겨레 송경화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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