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선교한국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해진지 120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 교회는 선교사 파송 제2위 국가에 오를 만큼 양적 성장을 견인해왔지만 질적 선교에는 등한시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 교회의 중국 선교역사인 방지일(94) 목사는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겸손함이 물씬 배어있는 ‘영원한 청년’ 방 목사는 아직도 1년의 절반은 미주 유럽 아시아 남미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집회를 인도하거나 후배 선교사와 목회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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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 Canon EOS 10D (1/25)s iso800 F5.0



어떤 계기로 중국 선교사로 파송됐습니까?

친구인 박윤선 목사가 유학을 떠난 뒤 김진홍 목사와 함께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때 총회 선교부원 김석항 목사님이 연락을 하셨어요. 
중국 선교사를 선택중인데 아버지(방효원 선교사)의 대를 잇는 것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러셨어요. 
소홀히 여길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었고 가족의 동의을 얻어 약 1주일 뒤 ‘예,가겠습니다’고 했습니다. 
외국 유학의 길보다 ‘중국 사람의 생명’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것이죠. 

중국인들을 어떤 방식으로 양육했는지요.?


전혀 중국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떠났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중국인들과 함께 살려고 애썼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성경을 강조했습니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통해 글을 가르쳤습니다. 
각자의 형편에 맞게 ‘도리반’(道理班)이라는 단기성경학교를 개설,성경 66권을 철저하게 익히게 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도록 하는데 집중했습니다. 
성경 10권 이상을 마친 이에게 교회학교 교사 또는 도리반,초급반,교사 자격을 줘 봉사하게 했습니다. 
신·구약을 다 습득했을 때는 성경학교 졸업과 동등한 자격을 주어서 전도사에 응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익힌 교인들은 지역사회의 지도자가 되고 자연스럽게 사회계몽운동에도 앞장설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언제나 살아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인재 양성이 가능합니다. 

현재의 중국 교회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정부가 공인했느냐 안 했느냐에 따라 중국 교회 내부에서도 서로 경원시하고 있는데요. 

아직도 많은 분이 중국 공산당의 실체를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방에 따라 예배당이 지어지고 모임이 이뤄지고 있다고 해서 완전한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오산입니다. 

과거 많은 목회자가 신앙 때문에 죽음을 당했습니다. 
공산당이 공인한 삼자교회에서의 설교는 올바른 설교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때와 같았죠. 
지금은 물론 많이 달라졌지요. 
그러나 아직도 많은 곳에서 비밀리에 기독교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제는 가정교회와 삼자교회간 다리를 놓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가정교회는 삼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을 측은히 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세계 곳곳에 나가시면서도 유독 중국에 가지 않으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제가 그들과 연락할 경우 그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지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원래 공산당 치하에서도 3∼4년은 교회를 순회하며 사역했습니다. 
새롭게 교회를 헌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차례 취조를 받으면서 놀라운 것을 알게 됐죠. 
오래전 어디서 어떤 식으로 성경을 강해했는지에 대해 상세한 내용까지 파악하고 있더라고요. 
저에 대해 면밀히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를 표현한다면 ‘자유로운 감금생활’이었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당시 누구를 만나면 걱정부터 앞섰어요. 
저보다 상대방이 더 걱정됐어요. 
문제가 될 수 없는 장소는 교회 묘지뿐이었어요. 
저는 묘지를 찾아 고인의 무덤 앞에서 그들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중국인의 아들이나 딸들이 성장해 가끔 편지로 내 안부를 묻기도 하고 직접 찾아오기도 합니다. 

오늘날 선교사 및 목회자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자질은 무엇입니까?

세례 요한과 같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메시아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내 뒤에 오시는 분은 흥해야 하겠고 자신을 쇠해야 한다고 분명히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닦는 광야의 목소리에 불과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자신에 대해서는 ‘아니오’라고 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조건 ‘예’라고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목회자와 선교사들은 자신을 부인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물론 자기 부인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면 설교가 변화됩니다. 
우리의 경험담과 인위적인 해석이 설교의 중심을 이룰 때가 많습니다. 
육적 감동이 아니라 영적 감동을 줄 수 있는 말씀이 선포돼야 합니다. 
설교자가 주체가 돼서는 안됩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구원으로 이를 수 있는 설교만이 필요합니다. 

중국선교 지망생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으신지요.?

중국과 중국인,중국문화와 역사를 전혀 모르는 채 떠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중국은 한국보다 앞서 복음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중국인의 신앙심이 매우 깊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이를 가볍게 여겨서는 큰일납니다. 
주고 받는 ‘균등한’ 선교관이 중요합니다. 
주기만 할 때 예속적인 신앙을 강요하게 됩니다. 
아울러 배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한평생 배우며 알고자 할 때 발전이 있습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다’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지식으로 경험상으로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배우려는 자세는 상대방에게 호감을 갖게 합니다. 
또한 마음으로 대화하면 좋겠습니다. 

방 목사는 인터뷰 말미에서 현재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 각성할 때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믿는 사람은 ‘묵시에서 계시로’ 살아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주는 묵시는 일생에 단 한번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는 매순간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예배드릴 때,
기도할 때마다 계시를 받아야 합니다.” 

함태경기자 zhuanjia@kmib.co.kr

 

97세의 '영원한 현역 선교사' 방지일 목사/평양장대현교회 전도사 출신..중국 사역 중 추방당해
  2007/01/13


▲ 97세의 영원한 현역 선교사 방지일 목사 *사진 : 국민일보

올해 97세의 방지일 선교사는 영등포교회 원로목사이자 예장 통합 총회장을 지낸 한국 교회의 원로목사 중 원로목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지일 선교사는 여느 젊은 목사 못지 않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방 선교사는 원로목사라는 직분보다는 선교사라는 직분이 훨씬 잘 어울리는 분이다. '방지일 중국 선교사'. 한때는 주일학교 아이들까지도 그의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100년 전 이 땅에 영적 대부흥의 지진을 일으켰던 평양장대현교회 전도사 출신으로 대부흥운동의 주역이었던 길선주 목사를 섬겼던 그의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생각이 났다.

지금이 100년 전 평양장대현교회 사경회 기간이고, 이 기간 중 대각성부흥운동이 일어난 때라서 그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싶기도 했다. 그의 근황도 궁금했다.

"내일은 주일이라서 안되고, 월요일에는 목사들과 성경공부를 하고, 월요일에는 기독공보에서 모임이 있고, 화요일에는 인도네시아에 가요".

방 선교사는 해가 바뀌었어도 늘 푸른 소나무처럼 변함없이 선교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지난 해에도 캄보디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캐나다, 나성(LA), 태국 등 여러 나라를 다녀왔어요. 선교사들도 만나 이야기 들어주고, 이야기하라고 하면 하고…".

방 선교사는 해외사역만이 아니라 한국의 섬들도 찾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한다. 지난해 가을, 전라남도 완도 보길도를 함께 방문한 한 목사는 "방지일 목사님께서 건강하게 지내시고,  힘있게 말씀을 전하시는 것을 보면서 큰 은혜를 받았다"고 말했다.

매주 월요일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강서구의 한 노인아파트에서 4~50여명의 목사들을 모아놓고 성경을 가르친다. 또한 목회 행정, 설교, 심방 등 신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는 평생 사역 경험에서 체득한 사역의 원리와 지침을 전수한다.

이처럼 방 선교사가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건강의 비결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특별한 것 없어요. 막 사는 것이지". 의외로 답이 간단했다. 그저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은혜의 손에 의탁하고 사는 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지난 7일 저녁 '트랜스포매이션 코리아 2007 대회' 개막예배에서는 개회선언을 했다. "부흥을 넘어 변화를" 주제로 열린 대회는 평양대부흥운동 100년을 기념하여 한국 교회의 회복과 부흥을 열망하며 열리고 있는 연합성회다.

평양신학교를 입학한 뒤 평양장대현교회 전도사로 시무했던 방지일 선교사는 장대현교회에 대한 기억을 선명하게 하고 있다.  "장대현교회는 그 당시 1500명이 모였어요. 교회가 본당이 있고, 유치원이 있고, 교육관이 있고, 당회실이 있었어요".

방 선교사의 목소리에는 그리움이 묻어있었다. 장대재는 현재 만수대로 명칭이 바뀌어서 그 곳에는 김일성 동상과 김일성 혁명기념관, 만수대 학습당, 소년궁전 등이 들어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길선주 목사님은 요한계시록을 1만독을 하셨어요. 한국인 제1호 목사이고, 장대현교회 제1대 원로목사이지요. 한국 교회 부흥의 불을 지핀 분이지요".

지난 10년간 14만 4천명이 감소했다는 통계청 보고가 지난해 한국 교회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한국 교회 부흥운동을 경험한 방 선교사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감소라고 말하고, 쇠퇴라고 말하지만 꼭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에요. 아이들을 많이 낳지 않아 자연적으로 주일학교가 줄어들었어요. 그래도 영등포교회는 한 명이라도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않았어요".

모두가 한국 교회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며 절망의 눈으로 보고 있지만, 노 선교사는 그래도 희망의 눈으로 한국 교회를 보고 싶어했다. 마치 못난 자식을 바라보면서 그래도 잘 하는 점을 보고 인정하고 칭찬하고 격려해 주고 싶어하는 아비의 심정처럼 말이다.

방지일 선교사는 '영원한' 중국 선교사다.  방 선교사는  1937년 27세의 나이에 총회에서 중국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부친 방효원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던 중국 산동성을 중심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그런데 중국이 공산군에 의해 점령당하면서 교회에 대한 핍박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서구 선교사들은 모두 철수하기 시작했다. 방 선교사는 그러나 마지막까지 선교 현장을 지켰다. 교인들이 처형당하고, 교회는 폐쇄되는 고난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5,000명의 선교사가 활동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공산화되면서) 나 혼자만 남아 9년을 사역했어요. 중국 정부가 홍콩으로 나를 추방했어요.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최후까지 사역했던 유일한 외국인 선교사로  21년을 사역하고 1957년 귀국했다. 그러나 귀국은 했을 뿐 선교사역에서 은퇴하진 않았다. 스스로 선교사역에서 손을 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중국 선교와 세계 선교에 대한 열정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방 선교사는 한국 화교교회 설립의 산파역할을 감당했고, 재한 중화기독교유지재단 이사장을 맡아 못다 한 중국 선교의 꿈을 대신하고 있다. 또 전세계의 선교지를 방문하여 선교사들을 격려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의 중국 선교 사역 이야기는< 20세기 중국 선교사>에 기록될 만하다. 실제로 세계 선교사들의 사역을 다룬 책에 소개되기도 했다.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영원한 현역 선교사'로 전세계 선교지를 다니며 후배 선교사들을 만나 선배로서의 사역의 지혜와 전략을 전수하고 말씀으로 격려하며 위로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방지일 선교사. 최후의 남은 한 방울의 땀과 눈물까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다 쏟아 붓고 가고 싶어하는 모습에서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의 일부가 떠올랐다.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5~8)

김철영 bitsongzigi@newsp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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