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의 현황


    I. 탈북자의 현황 개요

    1.탈북의 환경요인

    1) 사회적 요인
    1994년 김일성의 사망이후 급속한 경제의 쇄락과 사회 질서의 이완 및 혼란으로 중국과 접경하고 있는 압록강과 두만강변의 국경 지대를 통해 식량을 구하기 위한 일시적 불법 월경 행위와 사회적 절망감 및 반체제 범법 행위로 인한 개인의 도피 등 각양의 동기로 탈북자들이 급증하게 되었다.

    2) 자연 재해 요인
    95년부터 이어진 3년동안의 북한 전역에 걸친 수해로 인해 식량 사정은 최악의 상태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이로인한 흉작은 식량의 부족으로 이어져 일반 백성들에게는 최소한의 양식 분배도 중단이 되므로 자급 자족해야만 되는 핍절한 상태로 이어졌고, 양식 구하기 행렬이 농촌과 중국의 국경 지대로 확산되면서 기존의 엄격한 통행의 통제는 무너지게 되었다. 그러나 밀거래되는 폭등한 양식 가격은 결국 구매력이 없는 다수의 노동자 계층 중 일부는 중국을 향한 불법 월경을 하게 되어 탈북을 불가피하게 택하게 되었으며 해를 거듭하게 되면서 탈북자들도 급증하게 되었다.

    2. 탈북의 지역적 양상

    탈북인들의 지역 분포를 살펴보면 접경 지방보다 함경도 동해 지역의 공업 지대인 청진,함흥.김책 등에 산업 자원과 에너지 부족으로 공장의 약80%정도가 가동이 중단됨으로 산업 노동자들은 급여와 양식의 중단이 이어지면서 가장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어 양식을 구하기 위한 행렬이 동부에서 중국의 국경지대인 서부 지역으로 향하게 되었으며 곡창 지대인 황해도와 평안남도로도 이어졌다. 함경도의 어느 공업 도시의 인구가 60만이었으나 98년초에 대의원 선거 때에는 20만명 이상의 인구가 증발되었다는 현지인의 증언이 있었다. 인육이 거래되고 있다는 소문의 진원지도 대부분 이지역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 탈북인의 성별 및 단위별 양상

    탈북 현상의 초기로 볼 수 있는 95년경에는 대부분 단독으로서 거의 청장년 층이었으며 남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면서 개인에서 이삼명으로 또는 가족 단위의 복수단위로서 집단화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가족 단위는 이미 결손 가정으로서 부부 중 또는 자녀 중 어느 한쪽이 질병 등으로 사망 및 거동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남은 식구가 식량을 구하러 타지방으로 이동하거나, 그러한 가운데 자녀를 더 이상 부양 할 수 없어 시장이나 역에 버리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이러한 어린이들은 내지에서 고아가 되어 일명 꽃젭이로 전락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꽃젭이가 된 아이들은 무리를 이루어 구걸과 도덕질 등으로 생존을 하거나 단속반에 의해 지방별로 소재해 있는 수용소에서 강냉이 죽으로 연명을 하는 가운데 영양 실조로 병들어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 과감성을 띤 아이들은 무리를 이루어 압록강과 두만강을 도강하여 중국의 도문 연길,장백 등의 도시에서 유랑을 하다 중국의 국경 수비대에 잡혀 다시 북한으로 강제 이송되는 사례가 악순환 되고 있는 현실이다.

    가족 단위로 월경하는 경우 대부분 모자녀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많으며, 중국에서의 안전한 체류를 위해서 부모와 생이별을 하여 다시 흩어지게 되므로 결국 분해된 이산가족이 되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 탈북의 성별 성향의 경우 근년에 와서는 오히려 여자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남자의 경우 북한에서는 18세 이후는 군입대로 청장년 층이 군집단으로 흡수되므로 상대적으로 산업에 종사하는 사회 인구의 성별 구성에 있어 여성 인구층이 많아지게 되었으며, 열악한 가정의 경제 형편으로 미혼 여성 증가와 산업 시설의 붕괴로 인한 유휴 여성 노동 인력의 증가로 인해 탈북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들의 탈북도 점차 집단화되어 가는 추세이며 그 배후에는 중국의 인신매매 조직과 북한 내의 조직과 연계 되어 중국에 일자리를 만들어 돈벌이를 해준다고 미혹하여 집단 탈북을 조장하여 도강시킨 뒤 중국의 전문 조직에 의해 중국 농촌의 신부감으로 또는 동북 삼성 일대의 향응 업소의 접대원으로 매매되는 경우가 증가 되고 있으며, 이러한 탈북 여자의 매매 가격은 나이와 건강과 미모에 따라 마치 노예 시장과 같이 가격이 형성되어 중국돈 약5천원에서 1만원($5백~$1천)에 거래되고 있다.

    4. 탈북인의 생활상

    탈북에 성공한 이들은 중국 공안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조선족 행세를 해야되므로 조 선족들이 몰려사는 상업 도시나 농촌으로 들어가 조선족이 경영하는 식당,공장과 친지를 가장하여 농가의 품꾼 등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주위로부터 의심과 주목을 받을 경우 다른 지역으로 피신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탈북인들의 인권 문제에서 가장 심각한 침해는 탈북 여성들이 인신매매를 통해 유흥가로 팔려져 접대부나 윤락녀로 전락되기도 한다. 향락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 중 일부는 정상적인 생활 환경을 제의해도 이미 타락된 삶에 익식해져 이를 거부하는 사례도 있다. 기혼녀로서 탈북한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서 중국인이나 조선족 농촌인과 결혼을 한 이후에 중국 국적을 취득한 후에도 현지 적응을 하지 못해 타지역으로 도주하여 자활하거나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간혹있다.

    남자들 경우 일부는 그 지역의 조선족 폭력 조직에 빠져 들기도 하며, 자체적인 범죄 조직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는 폭력 조직도 있으나, 이들 대부분은 북한 내에서 살인,강도 등의 강력 범법자들로서 도피성 인물들이다. 어느 탈북인의 경우는 한국의 사업인을 맞나게 되어 안정적인 취업을 하고 있는 이들도 있고, 선교사들을 맞나 신앙인이 되어 보호와 양육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중국의 국적을 취득시켜 주는 사례도 종종있다. 중국에서는 여행,숙박,취업을 위해서는 공민증이 필요한데 신뢰를 받은 탈북인은 이들의 도움을 통해 호적과 신분증을 소지하게 된 경우도 있으며 이런 신분증을 만들기 위해서는 $700~$900정도가 소요된다. 소수의 생활 안정을 누리고 있는 일부 탈북인들은 나머지 가족을 데려오기 위한 시도를 하기도 하며 한국행은 대부분 원치 않고 있다. 이들에게는 조선족 사회가 지역 정서와 대인관계에 있어 한국보다는 친근감을 더욱 느끼고 있으며, 북한이 붕괴되면 언제라도 건너 가겠다는 애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II. 주체별 문제점

    1. 조선족

    탈북인들이 불법 도강하여 제일 먼저 두만강변의 도문,삼합,훈춘,연길 등과 압록강변의 장백.집안,통화,송강,관전 등의 국경 지대의 농촌 마을과 이곳의 기독교 처소 교회에서 도움을 받으나 중국의 국경 수비대의 수색과 순찰 활동으로 장기적인 은신이 불가능하며 또 경제적으로 이들을 장기적인 부양을 할 수 없으므로 동북 삼성의 할빈,목단강, 심양,대련 등의 큰 도시로 이동하며 일부는 벽지 농촌으로 들어가 거주하기도 하나 어느 경우도 안전한 생활이 유지되지는 못한다. 탈북인들에게 가장 위협이 되고 있는 대상이 북한의 국적을 갖고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일명 조교들로서 북한은 이들을 통해 탈북인들의 동태와 중국내 한국인 거주 현황을 감시 및 보고토록 하는 정보 조직을 관리하고 있으며, 대부분 이들이 주변의 탈북인들을 중국 공안 당국에 밀고하고 있고 일부 조선족 가운데서도 친북 성향의 조선족들도 이같은 고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중국 정부

    중국은 북한 정부와 불법 월경 및 도피범에 대해서는 상호 인도해 주기로 외교 협정이 있으므로 인해 이들에 대해서는 공안부와 국경 수비대는 탈북인들을 색출 및 체포하여 북한으로 강제 송환을 해주고 있다. 탈북인들이 증가되면 북측은 중국 정부에 탈북인들은 체포하여 넘겨 줄 것을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요구하기도 하며, 공안부는 상부의 지시에 의해 평상시에 파악하고 있던 탈북인들을 체포하기도 하며 외부의 신고가 들어 올 경우는 출동하여 색출 및 체포를 하기도 한다.

    중국 공안부가 이들을 체포 및 조사하는 과정에서 반항하거나 사실을 부인하는 경우에는 고문 및 폭력 행위를 행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탈북인이 아녀자인 경우는 대부분 동정적인 대우를 한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약 2년전부터 압록강 일대와 두만강 일대의 탈북인들의 월경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강변 일대의 여러 곳에 순찰대와 초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경 수비대의 막사에 탈북인들의 수용소를 설치하여 이들을 수용하며 정기적으로 적정수가 차면 북한에 강제 송환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국경 지대에서 탈북인들의 강도,살인,탈취 행위 등이 성행하므로 수색 및 체포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또한 법적으로도 탈북인들에 대한 도강 및 은신에 도움을 주는 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를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시행령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탈북 행위를 도와주거나 은신시켜 줄 경우에는 7년이상의 구금형이나 약3만위엔(3천달러)에 해당하는 벌금형에 처하고 있다.

    3. 북한 정부

    95년 이후부터 탈북인이 크게 증가하면서 북한 당국은 중국과의 접경 지대에 많은 감시 초소를 세워 탈북을 방지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결코 감소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매년 증가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이로인해 많은 탈북인들이 체포되어 처형되거나 수용소로 보내지고 있는 실정이다. 송환된 탈북인들은 개인별 심문을 하여 단순 탈북의 초범이나 부녀인 경우에는 40일간의 교화소의 수용을 거쳐 본거지로 이송되기도하며 일부의 경우는 훈방되는 예도 있다. 북한과 중국은 밀입국자에 대해서는 범인 인도협정 체결에 따라 상호간에 인도하는 외교관계에 의해 강제 송환을 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그 내용에는 국경지대의 20Km내에서는 자국의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어 관계 기관원이 중국내에서 탈북자들을 직접 잡아가는 경우도 있다. 북한의 공안원들은 탈북자들의 코나 손바닥 또는 어깨 부분에 철사로 꿰어 압송해 가기도 한다. 북으로 송환된 이들은 개별 심사를 통해 한국의 기업인이나 선교사들을 접촉하였거나 장기적인 도움과 교육을 받은 경우에는 상당한 처벌을 받아 중형인 경우 사형 또는 18호라는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지며 사안에 따라 가족까지도 가족 수용소로 강제 이주되는 사례도 있다.

    북한의 보위부에서는 중국을 친지 방문하는 민간인에게도 탈북인의 소재 파악을 하라는 지시를 하며 이에 대한 성과가 있을 시에는 재 방문의 특혜를 부여하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탈북인들의 색출 행위를 중국 주재의 영사관 및 여러 도시에 산재된 무역 대표부나 북한이 경영하는 식당의 종사자들도 동일한 특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근년부터는 탈북자를 위장한 정보원들을 중국으로 보내어 동일한 임무를 하고 있다.

    4. 한국 정부

    탈북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으로 망명 요청을 하였으나 당사자들의 인적 사항을 심사하여 선별 처리하고 있으며, 여기에 요구되는 인물일지라도 비공식적인 제 3국을 통한 입국 처리로 행해지므로 공식 채널을 통한 한국으로의 귀국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국 자체의 공식적인 절차에 의한 난민으로서 당사자가 원하는 제3국행 자체도 중국의 외교법으로 불가하므로 이들을 위한 합법적 망명처리는 불가능하다. 중국은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며 오랜 동안 겉으로는 북한과 혈맹 관계를 갖고 있으므로 한국 정부가 공식 외교 채널을 통한 탈북인들의 망명 요청은 황장엽씨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부간에 일반 탈북자들의 망명을 위한 협조 요청이 불가능하다.

    중국은 밀입국자에 대해서 강제 송환을 해야하는 외교적인 의무 조건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한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같은 동포라는 이유만을 가지고 한국으로의 출국 처리를 요구할 때 중국의 외교권과 자국의 법적 질서를 손상시킬 수 있는 미묘한 문제라 볼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수많은 탈북 동포들의 망명 요청을 거부할 수 밖에 없는 법적 테두리에서 많은 한계를 갖고 있는 가운데 탈북인들의 인권과 생존권에 대해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서라도 지대한 관심과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적극적인 동포애를 대내외적으로 구체화 했는지의 문제는 제기될 수 있다고 본다.

    만일 통일 이전의 서독이 동독의 동포들이 북한 탈북자들과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우리 정부와는 분명히 다른 인도적인 차원의 초법적인 외교 활동과 실질적인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우리는 동독이 붕괴되면서 수많은 난민들이 홍수를 이루었을 때 서독 정부가 취한 동포애적인 적극적인 그 모습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III. 주체별 인권대책

    1. 북한 정부

    북한이외의 어떠한 제3국도 탈북인들의 인권 문제를 국제 언론이나 인권 단체에 호소하고 압력을 행사한다 해도 저들로부터는 그 어떤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 할 수 없다고 본다. 북한 정부는 탈북자의 인권 보호의 대해 조금도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할 뿐만아니라, 이들을 도와 주어야 할 인권보호의 대상자들이 아니라, 탈북자들은 자신들의 고난의 행군에 이탈하여 조국을 배신한 인민의 배반자라고 단정하고 있다. 중국내의 탈북자들 자신도 조국과 고향과 가족을 버리고 이국 땅에와 배를 굶지 않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쇄뇌된 애국 의식의 한 구석에 그러한 자격지심과 가책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북한이 탈북자들에게 대한 집요한 추적과 체포 행위는 북한 자체로서는 체제 유지의 관건이 될 수 있는 문제이므로 이러한 이탈 주민의 상태를 방관한다면 주민 통제에 혼란과 치안 질서뿐만아니라 국가 존립의 위기까지 이어 질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벼랑 끝에 서있는 상황의 북한은 모든 희생과 대가를 치루더라도 공격적인 방어를 할 것이며, 외부에서 압력을 가하면 가할수록 탈북자들에 대해서 더욱 강압적인 방법으로 대처 할 것이다. 실제적으로 북한외의 탈북자들 보다 더 가혹한 환경에서 인권의 유린을 당하는 정치범수용소의 30만명의 인권과 정확히 추산할 수 없는 중국과 러시아의 탈북인들의 인권 문제는 분리해서 생각 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 대해 우리는 인권 문제로 이ㅆ화 해야 되지만, 무력과 탄압으로 주민을 통제하고 있는 북한은 오직 그 체제를 유지하기에 급급할 뿐만아니라 배고푼 그들에게 인권이라는 말 자체가 사치스런 미사어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2. 중국 정부

    불법 월경자들인 북한 사람들이 중국내에 거주하고 있다는 자체가 중국으로서는 피해 당사국의 입장에 있는 것이며 이들로 인해 심심치 않게 국경 지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범법으로 자국 주민들이 인명과 재산상에 폐해를 감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 정부로서는 1천Km 이상의 국경 수비를 위해 막대한 인력과 예산을 소비하고 있는 실정이며, 북한과 혈맹이라는 정치적 이유로 매년 10만톤 이상의 식량까지 지원하고 있는 입장이다.

    탈북자의 불법 월경 행위가 김일성의 사망전에도 있기는 했으나 그 때만해도 소수의 탈북자들의 문제를 정부차원에서 대책을 세우거나 법적인 대응을 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95년이후로 급작스럽게 증가되는 탈북자들로 인한 피해가 사회화 되자 97에는 중국 내륙으로 들어오는 지방 도로에 검문소를 설치하여 이들을 단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탈북 현상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자 중국에서도 상당수의 군대를 증강시켜 만일의 대량 난민 유입 사태를 대비하게 되었다. 중국 정부는 자국의 보호 차원에서 최소한의 방어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중국 자체로서도 인권의 개념이 선진화 되어있지 않은 상태이므로 탈북인들의 개별적 또는 집단의 인권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에 대해 이들은 민감한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단지 양국의 국경 조약에 의해 불법 밀입국자들을 본국에 송환 조치 해주는 방어적 조치만 취하는 것이며, 중국은 사회주의적인 법의식과 그 체제 유지와 통치 차원에서 내외국인에 대해 객관적인 법치권을 행사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 자체가 반정부인사와 양심수에 대한 비인권적인 초치를 행하고 있으므로 국제적으로도 인권 후진국인 이들에게 불법체류자인 북한 탈북인에 대한 신변 안전 보장과 인권보호라는 제삼자의 요구는 그들에게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또한 한국 정부가 탈북인들의 인권보호에 대한 문제를 공식 또는 비공식으로 제시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방향을 잡을 수 없다.

    3. NGO

    북한을 대상으로한 식량 및 의료품의 구호 사업이나 인권 및 선교 활동 등 모두가 제삼국인 중국을 통해 간접적 혹은 우회적인 활동과 대부분의 경우 비공개로 추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NGO의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규모로 시행되고 있는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작년 일본의 모 인권 단체에서 북송교포 중 한가족이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내에 밀입국 한 3식구가 일본내에 있는 그들의 친지 앞으로 연락을 하므로 이들을 돕기 위한 조치가 취해지므로, 이들을 일본으로 재입국시키기 위해 일본의 외무성 및 관계 정부 기관에 구명 활동을 취한바가 있었으나 긍정적인 대답을 얻지 못하고, 중국 내에서 불법적인 방법을 통한 구명활동을 취한바 있다. 그 당시 그들을 제3국으로 이송 했다면 그곳에서 난민으로 취급 하여 일본의 재입국이 가능도 했을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현지의 은밀하고도 치밀한 준비를 통해 불법 월경을 시도해야 되며 상당한 위험과 자금이 소요된다.

    중국 내에서의 탈북인들을 위한 NGO의 인권 활동이나 구호사역 자체가 금해져 있으며, 제삼국으로의 이송 방법은 많은 복합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단지 개별적이며 불법적인 보호행위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 와서 외국의 모 인권 단체에서 한국으로 망명한 탈북인이 외국의 인권 단체에서 북한의 수용소에 대한 비인간적인 행위와 그 참상을 폭로하여 외국의 매스컴에 소개된 바가 있다. 이로인하여 세계에 북한의 정권이 정치범과 그 가족들에게까지 폭력과 비인간적인 가혹한 행위를 하고 있다는 북한의 인권 실상을 알리므로 국제 사회가 북한의 인권문제 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러한 대외적인 보도 활동은 국제 기구를 통해 북한 당국에 압력을 가하는 간접 압박 방식이 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이러한 압력에 언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지 기대하기는 난망하다. 그렇지만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계속 이슈화 하여 국내외의 관심사가 되도록하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 나갈 필요와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4. 한국 정부

    현 정부는 대북 정책으로서 과거 정부보다 유연성있게 햋볕정책을 추구하고 있으나 수시로 불거져 나오고 있는 대남 무력도발 행위는 민간 차원에서도 그에 대한 찬반을 달리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북 정책은 대립과 일관성이 결여된 무원칙한 정책으로 일관해 오므로 가시적인 성과가 없었다. 물론 여기에 대한 원인 제공은 북측에 있어 왔다. 지금의 햋볕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대남 정책상에 근본적인 변화는 별무한 상태이다. 신뢰성이 없는 북한을 계속 포용하며 인내해야하는 정부 입장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대응할 경우 남북간의 긴장은 더욱 고조될 것이며 남북의 화해나 관계 개선은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내적으로 인민들을 더욱 통제하며 단속해 나갈 것이다. 김정일의 정부가 98년 9.9절 이후 당과 행정의 인물들을 대거 물갈이 하면서 강경한 군부 출신들과 새로운 소장파의 강성 인물들로 인사 조직을 단행하고 있다. 또한 일반 백성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도 최근에 더욱 강화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의 공개적인 대북 인권 정책은 북한을 자극하므로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민간 차원의 인권 단체와 종교 기관에서 국제 인권 기관과 공조 체제를 이루어 북한내의 인권 문제와 제삼국의 탈북인 인권 문제를 부각시킬 수 있도록 그에 대한 정보 제공과 환경 지원을 하여, 국제 인권 단체와 U.N을 통해 공론화 시킴과 국제 여론을 이용해 북한 정부가 인권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며 문제 의식을 점진적으로 갖도록 유인하는 초보 작업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시적이고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북한으로 하여금 인권 문제에 눈을 뜨도록 계도를 하는 것이 북한의 인권 개선을 하게 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아울러 민간 단체나 정부가 중국내의 탈북인들에 대해 적극적인 동포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중국 정부에 간접적으로나마 표출할 때에 그들도 정부 차원에서 탈북인들에 대해 북한과의 쌍방만의 관계에서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인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을 일깨워 주며, 한중간의 외교적 비중을 경제뿐만 아니라 인권 문제까지 비중을 둘 수 있도록 새로운 외교틀을 만들어 정부는 지혜로운 접근을 통해 인식의 변화를 주어야 할 것이다.

     

    탈북자 현황과 실태  

    이호택 : 희년북한이주민상담소 상담실장, 피난처간사

    -2002.9. 시민과변호사 기고문, -2003.11.24. 수정


    1. 탈북자 문제의 중요성

    대량 탈북 행렬이 절정을 이루었던 1997년과 1998년간에 필자는 중국에서 많은 탈북자들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탈출구를 찾아 1년 반동안 온 중국 땅과 국경지역을 헤맨 일이 있다. 그로부터 오늘까지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는 탈북자 구호작업에 참여하면서, 필자는 탈북자들의 상황을 묻는 질문엔 언제나 그들의 얼굴에 하나같이 깊이 밴 두려움과 절망을 말하곤 한다. 공포 ! 그것은 인구의 1/10이 주려죽었다는 북한기근소식을 듣고 달려간 두만강 압록강변에서 거기 흩어진 동포들의 주검들을 확인하고, 까마귀 나는 산중에서 두려움으로 웅크린 탈북자들을 처음 끌어안은 날로부터, 필자가 탈북자들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그들의 얼굴과 온 몸에서 배어 나온 단어였다. 도대체 그들은 그들의 조국에서 얼마나 모진 두려움을 경험하였길래 주려죽지 않으려 헤멘 것조차 그토록 큰 죄가 되어 붉게 물든 가을 산에 단풍 물이 베어나 듯 온 몸에서 절망의 빛을 띤 공포가 뚝뚝 떨어지는 것일까.

    1980년대 말 이후 지속된 북한의 경제난과 1994년 이후 심각해진 북한의 식량난으로 2000여만 북한인구 중 200만이 아사하였으며 20만이 난민으로 국경을 넘었다. 세계에는 대략 2000만의 난민이 있고 어떤 난민 그룹은 200만에 이르기도 한다. 20만의 북한난민이 만일 전쟁이나 기근을 피하여 일시 이웃나라로 도피한 아프가니스탄, 코소보, 아프리카 난민과 같은 경제난민이라면, 우리는 숫자 이외에서 탈북자 문제의 중요성을 설명할 근거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탈북자들의 온 몸에 서린 이 공포와 왜 그들이 북한 땅으로 끌려가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인지 조차 알 길 없는 가려진 세계최악의 북한인권현실에 탈북자문제의 중요성이 있다고 본다.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들은 인간으로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모든 종류의 두려움과 박해가 있는 거대한 도살장! 도살할 소처럼 인간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탈북자문제는 단 한사람의 문제가 될 때 까지라도 우리의 사명이 되기에 넉넉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Ⅱ 국내 북한이주민 현황

    2002년 8월 6일 발표된 통일부 '월간교류협력동향' 에 의하면, 2002년 6월 현재 국내거주 북한이주민은 2,316명으로서, 1998년 71명이던 숫자가 해마다 2배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주석1). 전체적으로는 남성이 여성의 2배이지만, 최근 여성탈북자의 숫자가 남성탈북자의 숫자를 앞지르고 있으며, 두만강유역인 함경북도의 20-30대 일반노동자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먼저 입국한 탈북자가 자신의 잔여가족 입국을 지원함으로써 가족단위 탈북과 입국이 증가하고 있다.

    o 북한이탈주민 입국현황 총괄   2003.9.30 현재

    구분

    ’89

    까지

    ’90- ’96

    ’97

    ’98

    ’99

    ’00

    ’01

    ’02

    ’03

    합계

    사망․

    이민 등

    국내

    거주

    인원

    607

    183

    86

    71

    148

    312

    583

    1140

    880

    4,010

    250

    3,760



    o 유형별 현황


    - 성별 현황

    구 분

    ’89까지

    ’90-’96

    ’97

    ’98

    ’99

    ’00

    ’01

    ’02

    ’03

    564

    158

    56

    53

    90

    180

    294

    515

    334

    2,244

    43

    25

    30

    18

    58

    132

    289

    625

    546

    1,766


    - 출신지역별 현황

    출 신 지

    함북

    함남

    평안

    양강․자강

    강원

    황해

    기타

    ‘89까지

    48

    55

    177

    5

    31

    117

    174

    607

    ‘90-’02

    1,484

    293

    276

    136

    75

    95

    164

    2,523

    ‘03.8월까지

    556

    96

    51

    18

    18

    19

    22

    780


    - 연령별 현황

    나     이

    10세

    미만

    10-19세

    20-29세

    30-39세

    40-49세

    50-59세

    60세

    이상

    ‘89까지

    -

    104

    288

    131

    55

    25

    4

    607

    ‘90-’02

    145

    333

    716

    802

    275

    137

    115

    2,523

    ‘03.8월까지

    28

    97

    203

    273

    109

    32

    38

    780


    - 직업별 현황  

    직     업

    관리직

    전문직

    예술

    체육

    노동자

    봉사

    분야

    군 인

    기 타

    ‘89까지

    13

    14

    -

    141

    1

    386

    52

    607

    ‘90-’02

    123

    117

    60

    1,165

    156

    52

    850

    2,523

    ‘03.8월까지

    24

    11

    11

    308

    37

    2

    387

    780


     

     

    Ⅲ 재외 탈북자의 현황

     

    1. 규모

     

    재외 탈북자의 최대 체류국인 중국정부의 강경한 탈북자정책으로 말미암아 탈북자의 현황과 실태에 관한 체계적인 조사가 행하여지지 못함으로써 재외 탈북자의 전체 규모나 현황을 통계로 말하기는 어렵다. 가장 많이 인용되는 민간 NGO (사)좋은벗들의 1999년 현지조사 결과 발표는 중국내 탈북자의 규모를 30만명 정도로 추산하였고, 탈북난민유엔청원운동본부나 UNHCR은 10만, 정부는 3만정도로 추정한 바 있다. 1998년 재중 탈북자 실태에 관한 최초의 학문적 연구조사를 실시한 윤여상 박사는 현지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재중 탈북자의 규모를 약 10 만명, 재러시아 탈북자의 규모를 2,000명으로 발표하였다.

    1999년 이후 국제사회의 원조증가로 북한 식량난이 다소 완화되면서, 국경지역에서 유동하던 탈북자들이 일부 귀환하였고, 2001년 6월의 장길수군 가족 UNHCR 망명사건을 전후하여 한층 강화된 중국정부의 체포 송환작전으로 말미암아 많은 탈북자들이 강제송환되었고, 체포를 면한 탈북자들은 단속을 피해 내지로 이동하면서 탈북자들은 동북3성 조선족 거주지역을 넘어 중국 전역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1999년 이후 신규 탈북의 발생 규모도 줄어들었고, 매년 수천 내지 수만명의 탈북자들이 강제송환 되었으며, 특히 2002년 3월 스페인대사관 기획망명사건 이후 중국정부는 대대적인 탈북자색출 전쟁을 수행하여 대부분의 유동하는 탈북자들이 강제송환 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년동안 누적된 탈북자들이 중국 전역 심지어 동남아와 몽골, 러시아 등지에까지 흩어져 숨어들었고, 외부세계의 변화를 맛본 송환 탈북자들이 끊임없이 재탈북하고 있어 재외 탈북자의 규모가 감소한 것인지는 속단하기 어렵다고 본다.

    2. 탈북의 배경과 현황

    1996년 이후 대량 탈북자 발생의 직접 계기는 식량난이었다. 1994,5년의 대홍수라는 자연재해가 북한체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준 것도 사실이지만, 북한의 식량난은 근원적으로는 비민주적 사회주의 폐쇄사회 북한의 생산력저하가 장기간 누적된 데다가 1980년대 말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면서 고립에 빠진 북한체제가 개방과 체제개혁의 길로 나아가는 대신 폐쇄와 주민통제의 길로 치달았기 때문에 체제 붕괴를 자초한 정치적 귀결이었다. 초기에 식량을 구하면 돌아가겠다던 단순한 탈북의 행렬이 북한체제의 기만성에 눈뜬 탈북자들의 귀환거부로 이어지고 체포, 강제송환, 재탈북의 과정이 반복되는 동안 탈북자문제는 단순한 식량난민의 문제를 넘어 거대한 수용소로서의 북한체제의 인권침해 현실을 국제사회에 노출한 창문이 되었다.

    고대 이래 우리민족의 역사적 무대였던 만주벌로 이어지는 두만강 압록강의 국경은 탈북행렬로 또 한번 우리민족 이동의 역사적 나들목이 되었다. 홍수기를 제외하면 강폭이 좁고 수심이 앝으며 수량이 많지 않아 어린이와 여성이라도 쉽게 건널 수 있는 두만강지역이나 중국 공안의 접근이 어렵고 은신처 확보가 용이한 백두산지역은 탈북이 용이한 지형적 요인을 제공하고 있으며, 국경지역을 따라 널리 펼쳐있는 조선족마을의 분포는 탈북을 돕는 사회적인 요인을 제공하여 주었다. 탈북자들은 2-5명이 조를 이루어 정보를 교환하면서 탈북을 감행하여, 북한 국경수비대에 뇌물을 주거나 전문브로커의 도움으로 국경을 넘는다. 산중의 토굴이나 비닐막에 은신하면서 피난처와 식량을 얻기 위하여 국경지역 조선족 민가나 교회에 도움을 호소하게 되고, 이 지역 조선족들은 민족애에 입각하여 이들에게 최대의 은신처를 제공하여 주었다. 하지만 중국당국이 탈북자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조선족들에게 무거운 벌금을 부과하였고, 극한적 상황에 몰린 탈북자들이 생존을 위하여 살인이나 절도를 저지르게 되거나, 조선족들이 탈북자를 인신매매 등으로 착취하면서 조선족과 탈북자간에 증오의 분위기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Ⅳ 재외 탈북자의 실태

    1. 어느 남성탈북자의 사례

    교회 등 종교단체나 민간단체, 사업가나 개인활동가 등이 운영하는 은신처에서 보호받는 소수의 탈북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조선족 가정이나 이들의 일터에서 거처를 마련하고 있지만,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거나 산속에서 야영하는 탈북자들도 적지 않다. 일정한 거처를 마련한 탈북자들도 신변안전의 문제로 끊임없는 이동이 불가피하여, 일시적이든 장기적이든 정처없이 산중토굴이나 외딴 폐가, 축사, 하수구, 아파트 옥상, 비디오방, 시장, 역전 등등을 전전하게 된다. 2001.11.2. 필자에게 도움을 호소하여온 사범대학졸업의 27세 탈북청년은 1999.2. 북한을 탈출한 후 3년동안 길림성, 료녕성, 산동성, 절강성, 복건성, 광동성 등 중국땅을 한바퀴 돌았다면서 그 고달픈 날들을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중국에 온 지도 어느덧 3년이라는 세월이 되는 군요. 그 3년에 저는 인생의 쓴 맛, 단맛을 다 느꼈습니다. 아마 쓴 맛을 더 많이 느낀 것 같애요. 비를 맞고 들어갈 곳이 없어 모기가 성화를 부리는 다리 밑에서 지낸 적은 몇 번이며 눈보라가 치는 겨울밤에 바람을 피해, 공안을 피해 아파트 구석을 찾아들어 갔던 날은 몇 백 밤이였던가…다음날엔 한잠도 자지 못해 눈에 피발이 서서 먹을 것을 찾아 다니던 일, 일을 하겠다고 찾아 갔다가 중국 사람들에게 수모를 당하던 일, 다른 사람들이 먹다가 남긴 해물탕도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떠나던 일….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어델 가서 밥을 빌어먹을가, 한국사람들이라도 만나야 돈이라도 좀 빌겠는데!”하고 생각합니다. 저는 상해나 광주에 가서 식당들을 돌아다니며 밥을 빌어 먹어 소문난 사람입니다. 저의 힘으로 돈을 벌어 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국분들을 만나서 돈을 빌고, 돌아서서는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하고 생각하지만 이 중국땅은 제가 초보적인 인간의 체면마저도 지키는걸 허용하지 않는군요, 그 체면을 지키려고 하면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고… 저는 올해 27살입니다. 저는 북한에서 김형직 사범대학을 졸업한 사람입니다. 저의 전공은 영어입니다. 저는 컴퓨터도 잘 압니다. 어떤 날에는 너무도 배가 고파서 밥을 빌어먹으려고 조선족식당에 들어 갔다가 쫓겨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밥을 빌어 먹으려고 식당으로 들어 갔다가 올해 19살, 20살,-저의 동생벌이 되는 식당 복무원 아가씨들에게 쫓겨 날 때에는 이 가슴에서 피눈물이 떨어 지군 합니다."

    2. 어느 여성 탈북자의 사례

    여성 탈북자에게서 가장 문제되는 것은 인신매매이다. 대부분의 여성탈북자들이 중국에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하여 강요받는 유일한 선택은 성을 파는 것이다. 한족 홀아비나 조선족 농촌노총각, 불구자 등에게 시집가 공민증을 얻어 그나마 안정된 삶을 사는 탈북여성들도 많이 있지만, 이들의 결혼생활도 그 실질은 인신매매적 성격이 강하고, 도시지역 유흥업소 매춘부로 팔려나간 여성들은 국경지역에서부터 널리 활동하고 있는 인신매매조직으로부터 강간을 당한 뒤 나이와 외모에 따라 1000위안(한화 16만원) 내지 1만위안의 돈으로 수요자에게 팔려 가고 있다. 10여차례에 이르기까지 팔려 다니기를 거듭하면서 몸과 영혼이 지친 여성 탈북자들은 탈출할 기력마저 잃고 그 사슬을 끊어줄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2002.4.8. 필자에게 도움을 호소하여 온 한 여성 탈북자는 다음과 같이 그의 상황을 호소하고 있다.

    "저는 북조선을 탈출해서 중국에 숨어있는 탈북녀성 입니다. 2001년 1월 탈출하다가 중국국경 지대에서 조선족의 소개로 중국돈 8000원에 팔려 요녕성 무순으로 시집을 가게 되였어요. 저와결혼한 남자는 한족이고 나이는 32세입니다. 저의나이는 20살이예요. 저는 이 남자와 나이 차이도 심하고 민족도 달라요. 그래서 작년 3월 도망쳐 나왔어요. 그때부터 저는 갈 길이 없어 요녕성 심양시에서 술집에 출근했어요. 솔직히 말해서 저의 생김새나 몸매에 반해서 남자들이 많이 찾아왔어요. 술집주인은 날보고 손님들하고 동침을 하래요. 저는 생각다못해 주인의 말대로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갈곳이 없지 않아요. 이렇게 3달을 참으면서 지내왔어요. 그 동안 눈물을 흘리면서 지샌 밤이 더 많아요. 어떤 때는 그만두고 차라리 좋은 남자를 만나서 살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하지만 술집에 들어갔다가 나오자면 힘들어요. 우리는 탈출자이기 때문에 리용해 먹을려고 주인이 아주 위험하게 대해주어요. 술집에서 나가면 깡패들한데 시켜서 몫숨을 잃게 하겠대요. 다른 방법으로는 공안부에 신고하겠다는 거예요. 술집에는 저같은 탈북녀성이 2명이였어요. 저는 그들과 도망치기로 마음먹었어요. 2002년 1월 13일 도망쳐 나오는 데 성공을 했어요, 우리들은 한국으로 가려고 마음 먹었어요. 하지만 어떻게 갈지 방법없어 그냥 지금까지 심양에 머물고 있었어요. 그동안 우리들이 가는길 로정과 로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알아냈어요. 지금 우리 일행은 합해서 녀자 4명에 남자 2명이예요. 우리들이 한국으로 갈 수 있도록 꼭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Ⅴ 재외 탈북자의 구조

    생존에 지친 탈북자들은 남한행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고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탈북초기에는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도 빈약하고 남한에 대한 적대감을 조장한 북한의 사상교육의 영향으로 남한행을 생각하는 탈북자들이 드물지만, 거듭된 정착시도 실패 심지어 중국인 공민증을 얻어 10년이상 중국에 체류하다가도 어느날 북한으로 끌려가는 주변 탈북자들의 강제송환 소식이나 송환된 탈북자들이 겪는 가혹한 처벌에 관한 소식을 듣고 이제 탈북자들의 한국행은 재중 탈북자들의 유일한 희망이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한국행 꿈을 도울 구조단체의 활동은 턱없이 부족하며 북한의 위협과 중국의 탄압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한국에 입국한 북한 이주민들이 정착과정에서 보여준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이들의 한국행이 과연 탈북자문제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인지 고민하게 한다. 최근 스페인대사관 기획망명사건 이후 중국정부는 탈북자와 탈북자지원단체활동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하여 많은 탈북자 보호조직이 와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체제가 세계 최악의 인권침해국가로 남아있고 중국정부가 탈북자 강제송환정책으로 이를 비호하는 한, 한사람의 탈북자가 해외에서 유리할지라도 이를 구조하기 위한 우리의 활동은 멈출 수 없는 우리의 사명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세계일보] 1999-11-19 (종합)

    탈북난민보호유엔청원운동본부(본부장 김상철.金尙哲)는 18일 중국 체류 탈북자가 최소 10만명에서 최대 20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운동본부는 탈북 난민 조사팀이 10월2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중국 현지의 탈북자 1383명을 직접 면담한 뒤 작성한 '중국내 탈북난민 현장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탈북자들은 가고 싶은 나라로 △한국(82.4%) △미국(3.1%) △일본(2.2%) 등을 꼽았으며,이들이 북한에서 가졌던 직업은 △노동자-농민 44.2% △학생 25.2% △노동당 당원 14.1% △기술자 8.3% △군인 3.0% 등으로 조사됐다.
    탈북자의 중국내 현 주거지로는 △임시 은신처 35.2% △일반가정 31.7% △산속 25.0% 등으로 나타났으며,조사 대상자의 87.4%인 1209명이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않다'고 응답했다.
    또 탈북자중 61.2%가 식량을 훔친 경험이 있으며 69.6%는 최근 사망한 가족이 있고 54.3%는 북한에서 구호 식품을 전달받은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김 본부장은 이날 미국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이 보고서를 미 언론에동시에 공개,중국내 탈북난민 보호를 위해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선종구기자>

     

    [한 겨 레] 1999-11-19 (종합)

    적어도 1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중국 체류 탈북자 가운데 97%가 굶어본 적이 있으며 77%가 적어도 한명 이상의 직계가족이 기아로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탈북난민보호유엔청원운동본부(본부장 김상철)는 18일 이같은 탈북자들의 실태를 담은 '중국내 탈북난민현장 보고서'를 발표했다.
    유엔청원운동본부는 10월2일부터 11월2일까지 5개 파견조사팀과 중국 현지 선교사팀이 중국 동북 3성에서 숨어지내는 탈북자 1383명을 면접설문조사한 뒤 보고서를 작성했다.
    조사에 응한 탈북자들은 89%가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했으며, 가고 싶은 나라로는 압도적인 수(92.8%)가 남한을, 3.5%가 미국을, 2.5%가 일본을 꼽았다. 북한으로 돌아가길 희망한 11%는 대부분 굶어죽고 있는 식구들이 북한에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탈북자들은 또 체포.송환에 대한 극도의 공포 속에 숨어 살고 있으며, 그 첫번째 공포는 고문 등 구타로 인해 불구가 되는 것이며 그 다음이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지는 것이라고 응답했다. 한두번 체포됐던 경험이 있는 탈북자들은 30%가다음에 체포 송환됐을 때 사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응답자 가운데 55.5%가 체포 송환된다면 "차라리 자살하겠다"고 답했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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