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잠깐만요.
잠깐만 시간 좀 내주세요.
아.. 제 인사부터 해야 겠네요.
저는 여러분들이 매일 밟고 다니는 보도블럭이에요.
그냥 보도블럭이 아니구요. 시각 장애인을 위한 보도블럭.. 정식 이름은 점자블럭이랍니다. 저는 많이들 보셨죠?
저는 '길 위의 길'이라고도 부른답니다.
저는 원래 두가지 모습입니다.
한 방향으로 된 것은... 길이 계속됨을 의미하고...
이렇게 여러개의 점으로 된 것은 길이 끝나거나 꺾어짐, 층계의 시작을 의미해요.
최근에는 동그란 모양에 점이 찍힌 것도 있는데, 이것은 지하철 갈아타는 곳을 의미한다나요.
모든 길에 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횡단보도 앞이나 길의 끝에는 어김없이 제가 있답니다.
여러분들이 타고 다니시는 지하철에서도 매일 저를 만날 수 있어요.
제 얼굴은 보통 노란색이지만, 좀 밝은 색도 있답니다.
주변 색깔과는 달라야 한대요. 어차피 시각 장애인은 앞을 못보시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냐구요?
그건 정말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이에요.
모든 시각 장애인이 앞을 전혀 못보시는 것이 아니랍니다. 희미한 불빛 정도는 구별을 하실 수 있는 분도 계세요. 그 분들은 제 색깔이 길을 걷는데 도움이 많이 되신다고 칭찬을 해주세요.
그런데, 저는 비장애인이 혹시나 걸려서 넘어질까봐 또렷이 구분해 놓은 이유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은 저를 싫어하기도 해요
길을 걸어가는데 자꾸 걸리적거리고 채인다나요.
저 때문에 넘어진 사람이 자꾸 저한테 화풀이를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도 길거리에서 하는 일이 많답니다.
무심코 걸어가다가 저를 밟고서 깜짝 놀라 횡단보도 앞에서 멈춘 경험 있으시죠?
책을 보면서 앞도 안보고 지하철에서 걷다가 저 때문에 위험을 모면하시기도 하셨죠?
열차가 들어오면 적어도 저한테서 뒷쪽으로 한 걸음 물러서야 한답니다.
그래서 저를 안전선이란 다른 이름으로도 부릅니다.
제가 비장애인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 이젠 아셨죠?
하지만, 저도 슬플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병들어 있기도 하구요..
아예 기억 상실증에 걸려서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제 위에 차를 세워놓아서 저의 존재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기도 한답니다.
오토바이도 만만치 않게 위험하죠
아예 이렇게 가게가 들어서기도 하지요
꼭, 두 장의 사진같지만, 윗쪽이 새로 깐 보도블럭입니다.
고급스럽게 한다는 이유로 이렇게 전혀 색깔 구분이 안되게 했습니다. 좋은 재질이라나요?
좋은 재질은 무슨! 이것 보세요. 여기 건물 새로 지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다 조각이 나버렸습니다. 이런 곳은 시각 장애인만 아니라 비장애인도 위험합니다. (그리고 색깔은 왜 구분이 되어야 하는지 아시죠?)
하지만, 가장 무서운 존재는 여기에 있습니다.
차의 진입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곳곳에 세워진.. "돌기둥(볼라드)"입니다.
저 무시무시한 돌덩이는 곳곳에서 저를 막고 시각 장애인을 위험에 몰아넣습니다.
여러분도 저기에 걸려서 넘어지신 적 있으시죠?
저를 보도에 깔아놓고서, 저런 무시무시한 돌덩이로 막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어느정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법률 조항이 있지만... 이런 모습은 정말 안습입니다.
저 돌기둥을 세운 분은 바닥에 깔린 제가 무슨 장식품인 줄 아셨나봅니다.
여기는..길을 보수하면서, 멈춤에 해당하는 점자블럭을 아스팔트로 메꾼 곳이에요. 바로 앞은 횡단보도랍니다.. 이런 곳을 그냥 가다간... 생각도 하기 싫네요.
제가 너무 말이 많았네요.
이제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드릴게요.
제가 필요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많으실거에요.
이 길에서 한 번도 시각 장애인이 걸어가는 것을 못봤는데,
뭐하러 돈들여가면서 쓸데없이 혈세를 낭비하냐는 분도 봤어요.
하지만, 제 친구인 소화전을 아시나요?
이 친구도 저랑 같이 이 길을 지켜왔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사용을 한 적이 없어요. 하지만, 아무도 이 친구를 없애야 된다고 말하지는 않더군요.
정말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것이니까요.
저도 그런 존재라고 생각해주세요. 시각 장애인이 언젠가 걸을 것을 대비하는 것이라구요. 그 분들에게는 제가 생명줄이나 다름 없다구요.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볼까요? 왜 거리에 시각 장애인이 잘 안보일까요? 그건, 우리나라의 길이 시각 장애인들이 걷기에 아직은 상당히 위험하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만약, 저같은 점자블럭이 제대로 모든 길에 제/대/로 깔린다면...아마 여러분은 시각 장애인들을 아주 쉽게 보실 수 있을거에요.
"그가 나를 흰 지팡이로 두드렸을때...
비로소 나는 그에게로 가서 길이 되었다..."
참.. 비장애인 여러분들은 될 수 있으면 저를 밟지 않으셨으면 해요. 원래 규격품들은 잘 안닳게 만들어 놓았지만, 워낙 비규격품이 많이 깔려있어서, 자꾸 닳아서 사라진답니다.
오늘 또 여러분을 뵐 수 있겠네요. 각종 거리에 깔린 저를 한 번 유심히 봐주세요. 혹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주변에 꼭 이야기해 주시구요.
장애인이 편하면... 비장애인은 더 편해진답니다.
시간 나시면...제 친구 이야기도 들어보세요. <저를 눌러주세요 - 또 하나의 신호등, 음성 안내기>
한글로. 2007.4.17.
http://blog.daum.net/wwwhangu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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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장애인'이란 말을 '장애우'로 바꾸어야 된다고 아시는 분이 많지만, "장애자"란 말을 개선하고자 만든 것이 "장애우"란 말이고, 비슷한 시기에 대체된 말이 "장애인"입니다. "장애인"은 법률적인 용어로도 쓰이는 것으로 전혀 비하의 의미가 없는 말입니다. 오히려 "장애우"란 말을 사용하지 말자는 의견도 제법 있습니다. [ 장애인과 장애우에 대한 용어 논쟁에 대한 글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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