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송출 북한노동자 간부 착취 못견뎌 2000명 유랑생활
북한에서 러시아로 송출되는 노동자들 가운데 ‘작업장 이탈자’가 급증하고 있다.
본보 취재팀은 최근 모스크바 주택 건설 현장에서 북한 노동자 10여 명을 접촉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당국이 지정한 작업장에서 탈출한 뒤 일자리를 찾아 러시아 곳곳을 떠도는 노동자가 최근 2000명을 넘어섰다. 3년 전 1000여 명의 두 배 규모다.
작업장 이탈 노동자는 스스로는 불안하기 그지없는 불법체류자 신분이지만 북한에서 새로 들어온 인력의 시간 외 일감과 작업장에서 이탈한 인력의 일자리를 구해준다. 또 이들의 북한 송금길을 열어주는 등 ‘외화벌이 주력군’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송출 노동자를 감시하는 북한 보위부 요원들은 1990년대에는 작업장 이탈자를 적발할 경우 강제 송환했으나 최근에는 이들의 주거지를 알아도 묵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간부 착취 못 견뎌 이탈”=20일 오후 9시 작업장 이탈자 김진경(가명·45) 씨가 한 아파트 건설 현장의 내부 공사를 끝내고 휴대전화로 ‘동무들’을 불렀다.
김 씨와 같은 처지의 북한 노동자 5명이 30분 만에 모여들었다. 한 병에 26루블(1000원)하는 러시아 맥주 세 병을 마시면서 피로를 푸는 자리였다.
김 씨는 “3년 전만 해도 모스크바에 서너 명이 나와 흩어져 지냈는데 이젠 시내에서 작업장 탈출 노동자 전체가 모일 만한 장소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인원이 늘었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이 지정한 작업장을 탈출한 사연은 한결같았다. 2년 전 러시아 극동 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에 왔다는 최기봉(가명·39) 씨는 “간부들이 물리는 ‘날로그’(러시아어로 세금이라는 뜻)가 원수”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의 얘기도 같았다. 간부들에게 내야 할 돈이 너무 많아 작업장을 탈출했다는 것이다. 2005년까지는 상납금이 한 달에 200∼250달러였으나 올해에는 월 330∼500달러로 올라갔다는 것.
최 씨는 “3년간 조국을 위해 일했는데 돌아갈 때 남는 돈이 없다면 누가 더 사업소(북한 회사가 러시아 현지에서 운영하는 인력회사)에 남고 싶겠느냐”고 말했다.
22일 오전 다른 건설 현장에서 이강철(가명·46) 씨를 만나 얘기를 듣는 순간 그가 진짜 북한에서 왔는지 의심이 갔다.
“고저 여기서 돈 벌어 갖구 조국에 보내는 것이 최고디, 그깐 김정일이 말 듣는 게 애국이간?”
그는 1992년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벌목공으로 일하다가 작업장을 탈출한 뒤 15년 동안 러시아에서 생활했다. ‘경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불안한 자유의 몸=작업장에서 탈출한 노동자 대부분은 러시아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이다.
최근 평양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노동자들은 ‘능라’ ‘군표’ 같은 북한 사업소(회사)에 소속된 뒤 여권과 비자를 사업소에 도착하자마자 보위부에 뺏긴다고 했다. 이런 사업소 노동자들이 작업장을 빠져나오면 여권과 비자 등 서류가 없기 때문에 곧바로 불법체류자가 된다.
이 씨와 같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오광열(가명·47) 씨는 러시아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여권과 비자를 암시장에서 사들였다며 “러시아 당국도 우리 같은 인력은 북한이 러시아에 진 외채를 갚는다고 보아 적극 단속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달러가 최고=25일 오전 10시 아파트 내부 공사를 하던 이씨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 씨는 “사업소 노동자들이 간부들 몰래 밤에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 아우성을 친다”고 전했다.
그는 “작업장 이탈자가 사업소 노동자의 일자리를 구해주는 젖줄”이라며 “간부들이 눈치채도 사업소 노동자가 500루블(약 2만 원)만 찔러 주면 다 해결된다”고 털어놓았다.
작업장 이탈 노동자들은 공사장에서 번 돈의 일부를 사업소 노동자가 귀국할 때 인편으로 북한으로 보낸다고 했다. 김 씨는 “돈을 많이 보내면 북한에서 빼앗기기 때문에 매년 500∼1000달러만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고 나머지는 공사장 어딘가에 파묻어둔다”고 말했다.
모스크바=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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