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인의 숭배사상의 기원 및 특징

7월의 몽골 꽃밭

숭배(Kyuky iomtty), 이 의식은 몽골인의 가장 오래된 숭배의 형태이다.
토템은 사전에서 “귀하게 여겨지고, 인체에 들어오는 영”이라고 쓰여있다. 몽골의 원시시대 연구 조사에 따르면 신석기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숭배의식 단계까지 이르렀다. 이것은 가축에게 절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훈족, 돌궐족, 거란, 몽골족이 사슴, 말, 소, 늑대등의 짐승들을 우상을 삼아 숭배하게 되었다. 나중에 자신을 브르트 처너(Dfjmt xkyk) 늑대중에 가장 힘이 세고 지도자 역할을 하는 늑대 또는 고아 마랄(Ueg bgjgl) 사슴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지도자 역할을 하는 사슴. 또는 두 부분 모두에게서 나온 것으로 보면서 이를 우상을 만들고, 숭배했던 것이 몽골전역에 퍼졌다.
고대의 몽골족의 원칙은 호랑이같은 힘있는 동물을 숭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동물들을 가장 힘있는 동물이라는 의미로 숭배하였다. 사실 이러한 행위로 인해 이것은 바로 ‘종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중앙아시아(또는 내륙지역)의 씨족, 부족중 먼저 동물 신이, 다음엔 인신(人神)이 나타났다. 우상숭배의 형태는 원시시대 여인의 모습이었다. 청동기 시대에 와서 남성의 형상르로 바뀌었다. 신석기 시대의 매장된 사람의 얼굴을 새긴 22×3.5㎝의 부드럽게 갈아 만든 돌신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그 시대 초기에 씨족 신이었던 것이 점차적으로 씨족 조직을 지배하는 씨족장 체제가 나타나고, 이후로는 각 씨족별로 우상을 섬기는 형태로 변화되었다.
몽골인의 원시숭배사상은 모계(母系) 조상들을 섬기고, 자연의 신비를 숭배하는 현상과 관련하여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금기(金器)-모태숭배사상은 어머니가 자녀를 생산할 때, 집안의 문을 열고, 불을 지키며, 족보를 이어가는 사람이라고 존경을 했다.
지수신(地水神) 숭배사상-지수신을 섬김은 원시시대 몽골인들에게 크게 성했던 부분이다. 이들은 자연의 원천적인 힘들이 변화한다는 것을 묘사하고, 사실상 지와 수를 생활의 기초를 제공하는 자라 하여 섬겼다. 몽골인은 어머니와 같은 땅, 어머니와 같은 세상, 어머니 같은 고향이라고 한다.
원시대에 몽골인이 섬겼던 또 하나의 우상은 불이었다. 그들은 불을 하늘의 하늘이라는 의미가 아닌, 정화시키는 힘으로, 신성한 힘이라는 의미로 섬겼다. 불은 가장 신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불은 모든 것을, 심지어 사람까지 신성하게 정화시켰다. 줄여서 말해서 불은 모든 것을 개끗이 정화한다고 몽골인은 믿었다.
우상숭배와 관련된 초기 연구는 노획물 살아가는 동안 얻어진 물건들 이라면, 무덤에 붉은 황토/일종의 흙칠/를 뿌리고, 동물목, 어깨뼈 어깨쭉지 뒷편의 뼈를 말한다.

, 말, 양, 염소를 함께 매장하고, 사람을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향하게 하여 매장하였다. 황토칠을 한 이유-황토는 원시인의 습성이 어떻게, 무엇과 관계 있는지를 알게되면 기이하다. 내륙지방의 이런 습성이 원시 사냥꾼과 목축업자의 씨족집단과 관련있다. 산야을 하는데서 유래했을 것이다. 초기 사냥꾼들은 사냥할 때 피를 하늘로 뿌렸다. 이런 습성은 죽은이게 동물의 피를 뿌리는 풍습이 생겼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냥꾼이 사냥감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왔을 때 어떤 한 동물의 피로 사냥꾼의 주머니 옆으로 메고 다니는 주머니로 규모가 작은 사냥감은 이곳에 넣었다고 한다.
를 피로 약간 칠하고, “주머니를 피로 적시다”, 또한 사냥꾼은 사냥한 동물의 피로 자신의 총에 부었다. 이 의식은 아직도 이어져 오고 있다.
원시인마다 구석기시대에 바위에 황토로 동물의 가죽 형상의 그림을 그렸다. 이러한 노획물은 홉드 아이막의 만항군(郡) 북쪽 쳉헤르 동굴에서 발견되어지며, 이는 이분야 연구가에게 흥미를 주는 부분이다. 이것은 놀라웁게도 2만년동안 이어져 왔다.
신석기 시대에도 사람을 매장할 때 흙을 뿌리는 예식이 이어졌다. 기원적 2천년전에 시베리아에서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바이칼 호수 주변, 알타이에서 사람을 매장할 때 무덤 위에 황토를 뿌리는 습성이 있었다. 황토로 피부에 그림을 그리는 것, 무덤에 황토를 사용한 것은 원시인의 하나의 관습이었다. 붉은 색 황토는 사람의 피를 대신한 것인데, 몇몇 학자들은 이것은 부활을 소망했던 원시인의
모습이라고 보고 있다.
이것은 후에 나이와 연결하여 이해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붉은 황토를 매장에 사용한 관습은 내륙지방의 사냥꾼, 근래까지 이른 목축업자 씨족단위에 있었던 것이다.


사슴비석-몽골인의 청동기 유물이다. 사슴비석은 숭배사상의 내용이 들어있다.
사슴비석에 해와 달을 표시했고, 여러 가지 동물(가죽)을 조각했다. 숭배하는 것의 형상을 만든 것은 숭배사상과 관련이 있다.

일월성신은 어떤 심오한 숭배사상을 만들어내고, 태양은 이 세상과 동식물을 양육하는데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숭배하였다. 그러한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동물과 사냥꾼의 노획물은 자연의 은총과 같은 것으로 이해되어 또한 숭배대상이었다. 이 모든 것은 청동기 시대에 어떤 동물의 모습을 흉내낸 것이거나, 몸에 그러한 것들을 남겨 우상이 되게 했다. 사슴을 숭배하는 의식은 무당의
식과 연관되어 내려왔다고 보여진다. 사슴 비석에 그려진 사람의 모습, 무기, 동물등을 조상들이 섬기고 숭배했던 것들의 내용으로 보전된 것이다.
어깨뼈로 존경하는 의식-몽골의 청동기 시대의 사각분(四角墳) 문에는 매장된 것들중 어깨뼈/말, 양등/가 부장되어 있다. 어깨뼈는 점술의 도구였다. 양의 어깨뼈를 태워 점을 치던 것은 12-13C의 일이었다. 어깨뼈를 존귀히 여기는 어워()위에 놓고 어워의 히머리 나무에 묶는다. 어깨뼈는 가장 귀한 손님에게 준다. 그러나 이것을 연장자 앞에서 먹지 않고, 비석, 동상, 신성한 나무 나무에 여러 가지 천이나 줄을 매달고 신성하게 여기며, 기도했던 곳이다.

숭배나무, 기도기둥 기둥밑에 둘렁처진 원형의 받침으로 그 주위를 돌면서 이것을 만지고 기도했다.
등에 매달았다. 어깨뼈-점술 도구라 한다.
첫 번 사냥감을 점술로 미리 알아보았던 것은 목축업자 씨족그룹에 있었던 것같다. 석화(石花)속에 대단히 큰 사슴, 사람의 기이한 모습, 쌍으로 된 사슴, 동마(銅馬) 등이 있는 것은 그 시대의 사람들의 우상, 수호령(守護靈)을 대표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하늘숭배-몽골인들은 1년 4계절 천기의 상황에 맞추어 유목을 해온 사람들이다. 좋은 모습은, 하늘을 모든 것의 뿌리라고 높이어 섬긴 부분이다. 몽골인 들은 보통 말할 때 하늘과 관련된 단어, 쌍으로 된 단어 예를 들어 입는 옷을 말할 때 바지, 웃옷을 따로 말하지 않고 함께 세트로 말하는 것이다.
, 문장을 많이 만들어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하늘은 많은 눈이 있다”, “진위(眞僞)를 하늘이 안다”, “거짓말하면 하늘이 친다”등이 있다. 하늘을 숭배하고 높이는 관습이 굳어졌다. 예를 들어, 주된 것으로, 여름의 첫 번달에 하늘에서 나오는 첫 번 소리를 듣자 마자 게르집단 예전 유목민의 거주 방식중의 하나였다. 몇몇 게르들이 모여 함께 공동생활을 하였는데 보통 2-3가구에서 많게는 20가구에 이르기까지 생활하였다. 이를 게르집단이라 한다.
의 가장 나이 많은 여자연장자가 그릇을 가지고 우유를 하늘에 뿌리고 집 주변과 하늘을 달래는 기도를 했다. 이러한 관습은 여럿이 있다. 이러한 것은 한 의식에서 하늘을 향한 은총을 구하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심정적으로 달래는 것이다. 칭기스칸의 하늘 숭배는 민중의 마음을 모아서 이것을 가장 중심이 되게 하고, 영원히 있는 다수를 숭배할 때 의존했다. 칭기스 칸 시절 하늘 숭배 사상은 보편적인 것이었다.
나무숭배-고대에 몽골인들의 시각으로 나무는 하늘로 향해 자라고 있음으로 이것을 통해영혼이 하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이 나무 숭배사상을 만들어냈다. 몽골 몇몇 지역에서는 “울창한 나무의 기쁨”이라는 것이 책에 여러번 나온다. “울창한 나무”-하일라스 나무를 말한다. 이 나무 아래서 하늘을 숭배하고, 혼례, 춤잔치를 하였다. 몽골인이 나무를 숭상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무엇보다
도 몽골 게르속에 잇는 생필품인 한(Hgyg), 오인(Ey,), 터너(Mkkyk), 문(Hgglug)에서 시작하여 상자, 선반(찬장), 아동용 놀이감에 이르기까지 나무로 만든 것이 많다.
산딸기, 초산류(醋酸類), 작은 열매()들을 얻었다. 나무는 몽골인의 주요한 땔감이었다. 이러한 사람들의 필요는 나무를 귀하게 사랑하고, 존경하고 숭배하는 개념을 세웠다.
사람의 수호자, 영-우상을 숭배하게 된 연유로 수호자를 숭배하게 되었다.
수호자는 “탁월자 수호자”, “영적 수호자”라 한다. 수호자를 높이고 그를 숭배하는 모습은 초기 유형이다.

수호자-사람의 생명을 보증해 준 주(主)이다. 이것을 몽골인들은 “생명의 수호자”라 했다. 수호자를 잃어버리면, 사람은 저절로 죽는다. 수호자가 죽으면 사람도 죽고, 영이 된다. 영, 수호자는 원시시대부터 무당을 통해 믿어왔다. 무당이 숭배할 때 했던 “수호자 부르기”, “수호자 깨우기”는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무당의 의식으로, 수호자가 �겨가면 허리띠를 풀고 흔들며 점을 친다. 빛을 때리면서 점을 치면, �겨갔던 수호자를 되돌아 오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수호자, 영은 상호간에 관련되어 있다. “영 부르기”, “수호자 깨우기”는 사람의 수호자가 �겨 나가기에 죽음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수호자 부르기”를 하면, 원래 사람은 산다. 그렇게 함으로 영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영: 주(主)가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과 함께 산다. 가장 좋은 차를 드린다. 영은 육체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 사람의 수면시 영은 나왔다가 되돌아 간다.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사람이 원래부터 모르는 것 중의 하나가 ‘영’이다. 고인의 영의 한 부분은 반드시 친인척중의 하나로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면, 다른 부분은 고인이 전에 살았을 때 가축중의 하나로 반드시 태어나고, 그 다음에 다시 사람이 된다고 가르친다. 가축중에서는 보통 개로 태어난다고 믿고 있다. 그렇지만 고인의 영이 매우 선한 행적을 나타냈으면, 반드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어린이들을 “그의 영”, “우리들의 후의 모습”이라고 보는 그는 출생표시를 하고, 확증하는 것은 몽골인의 관습이다. 고인들이 남겨놓은 은밀한 흔적은 가까운 사람들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출생표시로 표시했다는 보편적인 믿음은 몇몇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심리학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완전히 수긍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고령이 된 M. 구르세드 씨가 “진실”이라는 신문(1996.29호)에 영적인 부분에 대해 쓴 것을 흥미있게 확인해 보자.
영을 어떻게 부르나?-영이 어떤 사랑하는 사람이나 존경하는 사람 속에 피했다
고 보는 점술가, 승려들 중에 광범위하게 있었다는 것을 나는 어린 시절부터 쭉 들어 알게 되었고, 여러 번 깊이 생각해 보았다. 우리 어린 시절에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종교를 없애고, 집가축의 우상과, 이에 연관된 모든 예술품도 없애고, 산의 바위에 숨기어 없애버렸다. 내가 친구와 함게 바위에 올라가 비밀리 놀고 있을 때, 화가난 사람-흰 치아에 매우 검은 신체, 검은 얼굴, 그리고 목에 금색의 원뿔모양의 긴 것을 한 작은 사람이 나를 보고 서 있었다. 나는 사실 무어라고 소리를 지르는지 알지 못하고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손발에 상처가 나는 것도 모르고 온 힘을 다해 집으로
달려 내려왔던 것이 생각이 난다. 나의 친구도 나를 따라 껑충껑충 뛰며, 울음대신 어린시절 배운 노래를 부르며 달려왔다. 집에 있던 어른(할머니, 어머니)들이 달려나와 나를 맞으며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 내가 본 것들을 말했을 때, 어머니는, 아들의 영이 �겨나간 것 같으니 어머니의 옷자락을 풀고 오른쪽 젖꼭지를 물리고 나를 쓰다듬어 주면서, “얘야 너 혼자가 아니고, 엄마가 여기 있고 아버지도 있단다. 아들의 영아, 엄마 의 젖꼭지로 다시 와라”고 부르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럴 때 우리 집 식구중의한 사람이 토신(土神)을 바위에 가져다 숨기는 보았을 때, 귀신은 무서워 당황하게 되었다. 그 이후 늑대, 개에게서 놀라면, 어린이들에게 젖꼭지를 물리고 영을 부르는 어머니들을 여러번 보았다. 그렇게 함으로 영이 가장 가장 사랑하는 사랑하는 것에 내려서 그와 함께 있게 된다는 것은 점술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지, 공적인 것이 아니며, 몽골 어머니들이 어린이들의 영을 부르려고 아이들을 젖꼭지에 물리는 이유가 되었다.
남자의 중요한 부분 한국사람들은 남자 아이들의 성기를 고추라고 우회하여 불렀다. 몽골도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를 잃어버렸다-M. 구르세드씨는 어머니의 동생 아들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몇 년후 어머니에게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딸이 어렸을 때 두려워했던 것을 이야기 했다.
“제가 엄마를 잃어버려서 찾으려고 여기저기를 쏘다녔어요. 그러다가 아아가() 몽골에서는 어린시절의 아이를 부르는 명칭이 있었다. 자신의 이름대신 여자아이와 남자 아이에게 불러주던 명칭이 있었는데, 아아가는 남자를 부르던 명칭이다.
를 만났는데, 소떼를 몰고가는 아아가를 따라 왔는데 그 때 엄마는 물레질을 하고 계셨어요. 두 엄마(할머니와 엄마)는 놀라 당황하여 아아가에게 ”얘야, 고추를 잃어버렸니?“라고 물어 보았을 때, 딸을 주저 없이 대답했다. “엄마를 찾아 호린보가트 언덕이 있는, 아주 멀리까지 갔었어요. 호린 보가트 언덕은 운드르 항가이군의 시내에서 동북쪽 항흐흐 호수를 넘어가는 유명한 고개다. 머리가 희셨던 우리 할아버지는 그곳을 중심으로 해서 봄가을로 교대로 이사하여 거주하셨다. 그 이후 할머니는 동생을 특별히 사랑하게 되셨는데, 이것은 마치 꾸며낸 이야기처럼 또는 아이들을 위해 지어낸 것처럼 생각되어진다.

울란바타르대학교 몽골학과 남질 교수의 몽골학강좌 중에서 - 번역 박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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