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부터 문화혁명이 끝날 때까지 하나님은 중국교회에 전통적인 예배당 모임 형태대신 단순한 신앙으로 성경적인 교훈을 따르는 독특한 가정교회 형태를 자라나게 하셨다. 그러나 대륙개방 이후 가정교회는 해외교회로부터 받은 충격과 정부의 등록요구의 압력으로 인하여 변화를 겪게 되었다. 즉 전통적인 예배당 모임의 경향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때에 가정교회들이 지난 오십년간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발자취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성급하게 해외교회의 형태를 좇은 것에 대해 훗날 매우 유감스러운 일로 후희하게 될지도 모른다.
막 변화의 시기에 접어든 가정교회들이 과연 어디로 가야 마땅할 것인가? 그 발전의 형태와 해외 교회 전통 예배의 발전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서로 배울만한 것이 있는가? 이것들은 매우 절박한 연구과제들이다.
1. 전환기의 가정교회
1949년이래 중국교회의 발전은 작은 교회로부터 전체 교세에 이르기까지 대개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 선봉기 : 많은 지역에서 소수의 몇 사람이 모인 집회로 시작되어 하나님이 능력과 기사, 신도의 열정적인 전도를 통하여 구원받는 수가 크게 늘어났다.
2) 개척기 : 이 시기 집회의 인원은 원래 있었던 집회점의 증가에만 그치지 않고, 부근 지역에까지 연이어 일어났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은 묶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3) 안정기 : 교회는 안팎의 환경의 자극으로 인해 조직, 신학 체계, 교육, 발전 과정에 풍부하고도 안정적인 상태를 가지게 되었다.
4) 번식기 : 교회는 일정한 규모 이후 집회점들이 새로 생기는 방식으로 번식이 늘어났다.
5) 전환기 : 대륙 개방 이후의 사회, 경제 형태의 변화는 사람들의 마음에 다원화된 욕구를 불러 일으켰고, 중국 공산당의 정치, 경제관리 방식 역시 환경에 따라 변화하였다. 교회가 본ㄹ해 가지고 있던 비교적 편협한 신학적 세계관은 도전에 직면하였다. 경제, 도시화의 변동에 따라 교회 지도자들의 부족현상을 나타내었고, 교회 역시 공개 등록을 하느냐 안하느냐의 기로에 직면하였다. 이른바 교회 내부의 조직, 교육, 훈련의 양, 관리방식 등 모든 부분은 대폭적인 조정을 요구받게 되었다.
지금 대부분의 가정교회들은 이미 전환기에 들어섰다. 전환기의 가정교회가 직면한 세 가지 주요한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상적 전환이다. 종전에 많은 가정교회들은 주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며, 장차 모든 것이 멸망하고 신자들은 재난 전에 올림을 받는다는 말세론의 관점을 가지고 신도들을 가르쳤으며, 물건을 사는 것은 사악한 세상을 사랑하는 행위로 알았으며, 이에따라 신도들은 마땅히 정결한 태도로 마음을 지키어 하나님이 데려가실 날만 기다렸다. 그러나 문화와 개혁개방에 직면한 이후 말세론의 위기감을 가지고 긴박하게 신도들을 부추기어 전도하게 하는 태도는 점차 사라져 신학교육과 현실 사이에는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신자들은 과연 어떻게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가? 개방사회의 신앙의 기준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이러한 신학으로부터 문화에 이르기까지의 충격은 사상적인 전환을 자극하였다.
둘째, 조직의 전환이다. 대륙의 대다수 사람들은 여전히 이상한 눈으로 가정교회를 바라보며 사교집단이나 혹은 반공개적인 신앙집단 쯤으로 여긴다. 교회와 사회간의 교류는 여전히 많은 벽을 나타낸다. 개방 이후 많은 교회들은 이러한 벽을 부수려고 고심 중이다. 그리고 여러 도시의 가정교회들은 아직은 눈에 띄는 압력을 받아 보지 않았으므로 전통적인 공개예배의 형태로 회구하려고 한다. 온주지역의 가정교회를 예로 들어보면, 근 10년 동안 점차적으로 집회를 공개하는 교회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금년에 이러한 교회들이 도리어 철거를 당하게 되었으며 훼파되는 충격을 받았다. 이러한 충격은 교회들로 하여금 교회조직전환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도록 자극했다.
셋째, 교육훈련의 전환이다. 이전 교회들은 단지 신도들에게 단순한 신앙훈련, 즉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께 돌아오게 하며 교회에 등록하고 예배드리며 기도하고 성경을 배우도록 가르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반드시 신학사상, 교회의 노선, 형제자매의 요구가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서는 개방성에 부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떻게 하면 교회와 가정이 긴밀한 관계 속에서 발전할 것인가? 기독교인은 상업이나 정계에서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는가? 횡령과 뇌물과 사기와 시험을 당할 때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공산주의 사회 속에서 기독교적인 교육을 어떻게 시행하여야 하는가? 전도인의 지식수준과 신학훈련의 정도는 어느 정도까지인가 등등, 이런 모든 것은 교육훈련에서 직면하게 되는 새로운 도전들이다.
해외교회들의 자극은 또 다른 전환기의 한 국면을 맞이하는 문제이다. 해외교회들은 빅적 높은수준의 지식과 풍부한 물질, 정기적인 원조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적인 활력, 기독교적인 품성, 섬김의 은사들은 반드시 가정교회들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으며, 능히 가정교회의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러나 가정교회들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성의 태도가 결핍되어 있는 상황 가운데 부지중에 해외교회의 형태를 모방한다면 비판과 반성, 선택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이식은 주의를 요한다.
2. 해외교회 조직의 이식 모델
일반적으로 해외교회는 단지 훈련과 영적인 것을 공급할 뿐 아니라 알게 모르게 자기의 조직과 경험을 가정교회에 확대 적용하려 하는데, 그들이 가정교회에 심으려는 조직형태는 다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2.1 전통적인 당회 관리 방식이다.
이 방식은 교회 안에 장로와 집사를 세우고 모임 시간을 단축하며 정교화된 집회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성전을 예배화 한다. 그에 따라 전문적인 사제들이 성직을 독점하며 봉사하는 사람들은 줄어들어 많은 신도들은 점차로 봉사와 참여의 시간과 공간을 잃어간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만인 제사장"으로 신자들이 봉사의 기회와 공간을 잃으면 교회는 발전할 수 없게 된다. 이는 해외교회의 부흥의 불길이 가정교회를 낙후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2.2 엘리트 관리 방식이다.
일단의 사회 경험, 설교 능력, 영적 은사에 있어서 교회 안에서 특출한 열심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도들을 이끌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교회로 하여금 표면적으로는 엄중하고 보기 좋으며 효율적이고 각 방면의 조직과 집회 형태상의 느낌이 이전보다 나아 보이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갓 신앙을 가진 풀뿌리 신자의 부흥운동에는 도리어 방해가 되고 전체의 자발성, 상호간의 참여와 밖을 향한 무한적인 기능의 확대는 억제된다. 엘리트관리방식은 많은 방관자들을 만들어 내고 이들은 운동경기를 보듯이 목회자나 지도자의 모습을 관망하게 된다.
2.3 교단(종파)조직의 영향이다.
해외교회 선교사들은 교단적 배경이 없는 중국교회 신도들에게 자신의 교단을 받아들이게 하고, 가정교회로 하여금 상위기구로부터의 지도를 받게 하였다. 이것은 다시금 1949년 이전의 많은 서방 선교회들이 고용주의 신분으로 들어와 중구교회를 지도하던 모습의 재현이며 동시에 서방교회의 관리방식을 검증 없이 이식하는 셈이다.
서방교회의 관리방식은 대개 성직자들과 교회 엘리트들에 의해서만 성스러운 일들이 독점된다. 대륙의 가정교회들은 시간이나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곳곳에서 집회를 가지며, 날마다 발전하고 모든 사람들이 봉사할 수 있으며 심지어 그들 스스로 세례를 주기도 하였다. 이런 종류의 기동성과 적극성의 발전은 가정교회에 이미 내재해 있는 성향이다. 그런데 소위 이런 이런 소그룹형태의 교회가 전환되어 대형교회가 될 때에 보이지 않게 무수한 사방에 흩어진 가정교회들이 증가, 증식의 가능성과 생명력은 죽어버릴 것이다. 대다수 신도들 역시 하나님의 동행, 임재의 경험을 상실해 갈 것이며, 전체 교회의 선교에의 생명력은 곧 점차 사라질 것이다. 이것은 교회의 발전에 하나의 커다란 위기이다.
3. 전통적 교회당이냐 개혁적인 새로운 방식이냐
성령에 의해 인도되던 초대교회는 누구나 다 참여하는 교회, 나날이 발전하는 교회, 생명력이 가득한 교회였다. 그러나 국교화된 이후에는 도리어 로마 정부의 관료조직 체계를 따라 교회의 규범을 발전시켜 결과적으로는 능동적으로 발전하던 신앙조직이 일종의 계급관리체계의 조직으로 변질되는 문제를 낳게 되었다.
중국 공산당이 기독교를 엄격하게 제한하려는 의도는 종교사무국에서 처리하던 종교문제를 국무원의 감독과 통제로, 심지어 이붕과 강택민이 직접 종교정책의 실행을 위해 사람들을 지명하는 방향으로 강화되고 있다. 이것을 통해 기독교에 대한 압력이 장기화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식의 종교통제에 대한 압력은 교회지도자들로 하여금 고민에 빠지게 하였다. 당연히 삼자들과 거리를두어 소원해지고, 도피하며 숨은 노선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삼자교회들과 타협을 할 것인가? 삼자교회들은 최근 3,4년간 계속해서 왕성하게 자라왔다. 이러한 성장은 전도나 교회르세움으로써 된 것이 아니라 은밀히 감춰져 있엇떤 많은 가정교회들을찾아내어 채찍과 당근의 수법으로 그들을 삼자교회에 편입시킨 결과이다.
무신론을 주장하는 중국공산당 정부는 더욱 쉽게 통제하기 위해 교회들이 전통적인 교회당 방식으로 나가는 것을 희망하고, 해외교회들 역시 열심히 전통적인 교회당 방식을 도입한다. 따라서 가정교회 지도자들은 의문을 갖는다. 교회는 왜 정부가 정한 규율을 따라야 하며 하나님의 뜻과 그들(정부)의 뜻이 일치될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해 하고 있다.
로마정부가 말하는 바, 기독교가 국교로 된 후에 계급관리는 완전히 교회조직 가운데 이식되어 중앙으로부터 대주교, 지역의 주교, 사제 … 하는 식의 조직 계층을 형성하였고, 이는 정부 조직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종류의 조직이 정형화되고 강제화 되자 곧 선교의 생명력은 제한되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며 어느 때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보다 쉽다. 어떤 면에서 환경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작용하는가?
1) 대륙 사회가 개혁 개방 이후 큰 폭으로 변화하여 조용한 농촌 사회도 상공업 사회로 변화함과 동시에 수많은 소외자들과 그에 따른 실망감, 부작용 등을 낳게 되었다. 반면 사람들은 영적인 요구와 복음에 대한 갈망이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바, 이것은 좋은 경향이다.
2) 경제 발전의 측면에서 교회를 분석해 보면 교회는 안목과 자원과 기회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안목이 열리고 국내외의 자원이 늘어났으며, 신도 등의 경제적인 풍요로움은 교회 헌금의 증대를가져와 교회 사업에 필요한 자원의 개선을 가져왔다.
3) 전도인과 신도들은 자기개발의 당위성을 느끼게 되자 곧 자신에게 충실하게 되면서 신학의 수준도 높여 간접적으로 교회의 발전과 함께 신도들이 모임도 성숙하게 되었다.
중국교회의 형태는 사회가 봉건적 폐쇄 시기에는 온전한 성장으로 나타났으나, 하나님은 오히려 정부의 통제를 통하여 오히려 교회의 성장을 지속하게 하셨다. 현재 대륙의 개혁개방은 가정교회의 안정적 성장 이후 이제는 변화에 적응하는 방식을 배우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기회다. 대만의 전자업계의 경우 10년 전에는 백 가구를 상회하는 규모의 큰 공장들이 십 년이 지난 다음에는 1/10만 남았다. 어떤 큰 전자회사는 개혁을 채 이루지 못하여 몽땅 도산하였다. 그 원인은 그들이 변화에 적응하거나 준비하는 개념이 없어서이다. 교회는 반드시 변화에 적응하는 관리방식을 배워야만 한다.
사실상 환란은 교회에 있어서 일종의 품질검사의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은 매 시대적인 전환기에 신자와 교회를 검사하여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낸다.(마13:37,38) 주님께서는 커다란 환경적인 충격을 통하여 품질검사를 하고 불량품을 도태시키는데, 특별히 전도인의 정화과정이 그것이다. 1949년에서 1955년은 첫 번째 전도인 정화의 시기였고, 1955-1996년간 10년은 교회가 정화의 과정을 통하여 불과 소수의 사람들과 불씨만 남았다. 그리고 부흥을 방해하던 종파분리주의, 경직된 당회관리, 성직요원의 전문직화된 제도의 한계들이 모두 훼파되었다. 이 처음 기간은 하나님께서 부흥을 예비해 놓으신 과정이었다. 1966-1976년은 하나님께서 일단의 지도자들을 일으키신 때로, 1976년 정화의 작업은 끝났다. 중국은 1976-1986년에 이르는 사회개혁개방 이후 이어서 일단의 종교에 대한 충격을 불러왔다. 이 타격 이후 주님은 또다시 일단의 충성스러운 종들을 선별하였다. 1986년 이후 또 한차례의 충격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중국교회의 주인으로서 매우 엄격한 요구를 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대만교회와 해외교회의 상황은 눈에 띄는 시대적인 자극이 없었기 때문에, 마치 천천히 태워지는 가마솥안의 청개구리처럼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했다. 대만교회는 1949년(50년대)부터 시작하여 근 11년간의 핍박기에 특별히 외부 성(省)에 적을 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1950년부터 1960년까지는 장로교회의 풍성한 수확기였고, 1960년부터 1980년까지 대만교회는 사회의 거대한 변화 가운데 시의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해 이십년간 전도인과 지도자들의 역량이 부족하여 교회의 발전은 고사하고 퇴보하게 되었다.
4. 가정교회의 위기
역사적인 관점에서 대만과 비교해 볼 때 중국교회의 장점과 폐해를 살펴보면, 하나님이 중국교회에 매 십년마다 선별과 품질관리의 과정 가운데서 중국교회 지도자의 역량은 갈수록 높아졌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폐해의 측면에서 4가지 지적할 수 있다.
1) 중국교회의 재무관리, 감독제도가 건전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교회 사이의 분쟁을 야기하게 되었다. 그 결과 가장 명백한 위기는 해외교회로부터 유입되는 대량의 헌금에 대한 적절한 감독과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그 결과 무수한 개인착복과 교회의 분열을 초래하는 등의 손해를 가져왔다.
2) 해외교회 조직을 이식하게 되면서 가정교회에 대한 신학적이고, 교회사적인 관찰을 간과한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했다. 해외교회들은 당연히 중국의 신도들을 심도 깊게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왜 그들은 가정을 통해 모이며, 비밀집회의 형태를 취해야 했는가? 교회에서 섬기는 사람을 왜 조심하는 사람 혹은 모통이 돌로 부르고 그들을 장로라고 부르지 않는가? 그들을 이해하지 않고 편협하게 그들을 고치려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실 이런 명칭들을 고쳐 장로와 집사로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사실 이런 명칭들을 고쳐 장로와 집사로 부르는 것은 도리어 교회 지도자의 안전을 노출하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의 명분을 통하여 내부적인 불화를 조성할 뿐이다. 이것은 해외교회가 도입하는 과정 중에 부주의하여 중국의 환경에 나쁜 영향을 끼친 것들이다.
3) 어떤 교회들은 발전하는 과정에서 해외교회의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해외에서 오는 전도자들에 대한 불만으로 인하여 문을 닫아버리고 완전히 자신들의 경험과 노선에만 만족한다. 그들은 문을 닫는 정도를 넘어서 밖으로의 지원을 받지 않고 더욱 위축되어 나아가려 한다. 이것은 일종의 종파주의적인 표현이며 위태롭기까지 하다. 이러한 위험은 교회의 인구와 연령의 노령화를 초래하며, 특히 젊은 지식인과 활기 있고 다원화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에 오는 것을 바라지 않게 되어 선교의 길은 갈수록 좁아져 간다.
4) 중국교회의 훈련교재와 신학교재의 토착화가 부족하다. 수준도 높지 않으며, 해외교회들은 항상 일단의 번역이나 저작, 성경검색 자료들을 가지고 들어오긴 하지만 교회지도자들의 서방문화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여서 실제적으로 응용함에 있어서 부조화의 문제를 초래한다. 예를 들어 농촌교회의 집회형태는 중국문화의 영향이 아주 깊어 고지식하고 보수적이다. 예배를 드릴 때 찬양을 부르며 춤추는 방식이 들어왔을 때 아무런 창의성 없이 모방하였는데 이것은 농촌의 사회기풍과 언어에 체면이 서지 않는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결과적으로는 이익보다는 폐해가 많았으며, 쉽게 교회 내부에 분열을 초래했다. 또한 단지 소학교를 졸업했을 뿐인 전도인들에게 복잡한 서방의 신학서적들에 대한 이해는 아무래도 어렵고 공연한 부담만 된다. 이렇게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 것은 모두 해외 선교와 전도방법, 신학적 견해가 들어올 때 어떤 전환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중국문화에 대한 윤곽이 나타날수록 교회가 취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도무지 적합하지 않다.
5. 성령에 의지하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중시해야.
만약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관찰과 그것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결핍되면 하나님이 부수려 하는 것을 다시 세우려고 노력하므로 도리어 성장기에 있는 가정교회에 상처를 입히는 결과가 될 것이다. 전환기 가정교회는 해외교회의 지원과 돌봄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해외의 역량은 당연히 중국교회의 상황과 어우러질 때에야 비로소 효과적으로 그들의 성장을 돕게 되고, 기존의 특성은 더욱 강화되어 교회로 하여금 원래의 생명력을 유지하게 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푼 인도하심을 존중하며, 진리에 대해서는 그들이 흔들림이 없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들은 더욱 겸비하여 그들로 하여금 많은 신앙경력과 신학적인 진리를 습득하게 하여야 한다. 이러한 그들의 부흥의 불시를 해외로 가져와 국내외 교회들이 서로 돕고 의지하며, 서로 배우고, 국가적인 교회로 함께 선교하기 위해 연합 결속되어야 한다.
6. 국내외 교회들이 서로 빛을 비추게 하자.
이상으로 가정교회의 여러 면들을 관찰하면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다시금 실제로 증명하여 보여준 것이 "초대교회의 성장방식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더욱 다시 새롭고, 또한 실행 가능한 진리이다."라는 것이다. 단지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약간 조정되어 현재의 교회에 적용되었을 뿐 아니라, 교회의 다원적인 발전과 전체적인 귀의와 돌파의 안내서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선교정책과 방식을 통해 역대 교회의 선교를 계시하고 두 가지 중요한 목표를 가르쳤다. 첫째는 성장 및 지역교회의 운명은 교단교회가 맡아야 하며(롬16;3-16), 둘째는 사람들을 돕는 것은 은사를 구비해야 하며, 단체에 참여하고, 교회의 신도를 세워야 한다(엡4;11-16)는 것이다.
바울은 두가지를 겸하여 섬겼는데, 교회를 세울 때 동역자들은 여행 전도단이였고(골4:7-17), 그들은 동시에 직업을 가지고 섬기는 사람들로 작은 예배당의 조직을 키워갔다.(딛3:13) 다원화된 방식을 통하여 사람들이 주님을 믿은 후 집회를 조직하여 신도들 스스로 훈련을 시키고, 체계적인 진리의 가르침을 베풀었다.(살전2:8-10) 교회 신도들이 늘어나고 교회의 모습을 구비한 후에 바로 인재를 키우며, 지역교회의 동역자들을 구성, 양육관리, 교육, 목양 등의 책무를 맡겼다. 지도자들을 장로, 집사, 혹은 감독이라 칭하고, 섬김의 시간이나 정도에 따라 신도들의 봉헌과 섬김을 받고 그들은 전심으로 전도와 치리를 하였다. 여행전도단들은 부정기적으로 순회하며 살피고, 지도하며 혹은 인재를 양성하러 나아갔다.(딛3;12) 개별교회들이 단지 독립적으로 발전의 주도권과 생명력을 유지해 나갈 뿐 아니라동시에 여행전도단과 의논하여 지도를 받는다든지, 지역교회의 인재, 자원, 업무, 경험의 교류를 함께 향유하도록 하였다.(고전16:2-12) 지방교회 역시 사람과 물질을 보내어(골4:12,1lf4:18) 여행전도단을 지원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선교하고 교회를 세우며, 목양하고 자원을 교류하며 서로 돕는 교단 교회망을 형성하였다. 신도는 지역의 교단조직을 통해 교회를 이끌어 나갔으며 전체의 교세는 전도여행단을 운영하여 장기적인 영적활력의 발전과 지도를 맡았다. 교회성장은 이렇게 상호 보완, 협력해 나가야 한다.
대부분의 가정교회들이 이미 이런 종류의 운영방식으로 교단교회를 형성하고 있다. 해외에서 뜻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방식의 성령운동에 헌신하기를 기도한다.
중국가정교회의 부흥은 교회 역사상 최대의 기적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가정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 역시 교회 역사상 최대의 위기중의 하나인 것도 사실이다. 바라기는 주님께서 우리들을 당신의 뜻에 제대로 반응하도록 인도하시고, 국내외 교회들의 교류가 멀지 않은 장래에 찬란한 빛을 서로 비추는 것이 되길 바란다.
중국인의 백년간의 고난이 여전히 지속되는 가운데, 예수를 모르는 중국인들이 여전히 이 땅에서의 안위를 찾고 있다. 풍랑에 흔들리며 심령이 핍절함에 이르렀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 가정교회들을 일으켜 중국인들이 돌아가 쉴 수 있도록 하셨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유일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니, 그의 행하신 바가 어찌 아니 신기하며, 그의 판단을 어찌 측량하고, 자취를 어찌 따를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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