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두려운 사람들-(1)고유가로 타들어가는 농심
없는 사람에게 추운 겨울은 두려운 계절이다. 하지만 올 겨울은 서민들에게 더 춥게 느껴질 전망이다. 기름값은 쉬지 않고 올라 서민들의 월동비가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릴 것으로 전망되고. 연말연시를 틈타 시내버스 등 공공요금이 일제히 인상되기 때문이다. 더 두려운 것은 장기 경제불황이 나아진다는 희망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겨울은 시작됐다. 겨울나기에 들어간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찾아가 봤다.
“자식보다 더 애지중지 키운 것들 아입니꺼….”
다가오는 겨울. 끝을 알 수없는 고유가 행진에 비닐하우스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11일 창원시 대산면의 한 비닐하우스 농가.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이 농가 주인 이모(50)씨의 얼굴에는 깊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다.
지난 6개월간 온갖 정성을 다해 길러낸 방울토마토를 수확하는 기쁨은 생각지도 못한 채 올 겨울 이들을 몽땅 동사(冬死)시켜야 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기름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 게다가 출하비용까지 바닥을 치고 있으니 도저히 답이 안 나온다”며 이씨는 한탄한다.
현재 농업용 면세유는 ℓ당 580 ~ 590원.
약 1천평의 비닐하우스를 기준으로 할 때 요즘처럼 크게 기온이 내려가지 않을 때는 보통 하루에 300ℓ의 기름을 때야 농작물이 피해를 입지 않는다.
한 달 기준으로 540여만 원을 기름값으로 갖다 부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씨는 지난 9월부터 방울토마토를 수확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500만원의 수익만을 올렸다.
지난 6월. 올해 역시 힘들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종비와 시설비 등 인건비를 빼고 투자한 돈이 1천4백만원인데 이제 겨우 초기 투자비용의 3분의 1을 수익으로 얻은 것이다.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마저 혹한기가 되면 하루에 소비되는 기름은 800ℓ에 달해 기름값의 부담은 앞으로 더 커진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갈수록 면세유의 공급이 줄고 있어 농민들의 한숨은 깊어만 갈 뿐이다.
이때문에 인근 농가들은 최소한의 기름을 소비하기 위한 가히 눈물겨운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이씨는 “어떻게든 기름값을 아껴보려고 밤에만 온풍기를 운용하고 낮에는 난방을 하지 않는다”면서 “이러다 보니 벌써 얼어 죽는 작물들이 발생하지만. 기름값 들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동사시키는게 낫다”고 한숨지었다.
주변 몇몇 농가들은 혹한기와 상관없이 지금처럼 최소한의 기름만을 소비한 채. 작물들이 모두 얼어 죽을 때까지만 수확을 할 계획이다.
한 농민은 “이미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라며 “자식보다 귀하게 키운 것들인데 손도 한번 못써보고 죽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심정을 아느냐?”고 반문했다.
이미 일부 농민들은 치솟는 기름값에 반해 추락하는 출하가격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비닐하우스를 포기하거나 빚을 진 채 야반도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씨는 “정부의 50% 지원으로 전기온풍기와 갈탄보일러를 설치하라고 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은행 융자인데 결국 또다시 농민들에게 빚을 지우겠다는 것이 아니냐”며 “대책없이 농촌에 빚지우는 정부는 농민들을 버렸다고 본다”고 깊이 간직했던 한마디를 던졌다.
농심과 함께 농민들의 의욕까지 타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헌장기자 lovely@knnews.co.kr
[사진설명] 11일 오후 창원시 대산면 한 비닐하우스 농가의 방울토마토 잎이 고유가로 기름을 제때 때지 못해 누렇게 변한채 말라죽고 있다. /성민건 인턴기자/
겨울이 무서운 사람들 (2) 차상위 빈곤계층 | ||
정부지원 없어 밑바닥 삶
"최저생계 보장 장기시스템 마련 절실"
김모(67·여·마산시 산호동)씨는 남편과 딸. 그리고 고등학교에서 다니는 손자와 함께 월세방에서 힘겹게 겨울을 보내고 있다. 지난 87년 결혼한 딸(41)은 가정불화를 견디다 못해 극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그러나 현재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의사소통도 불가능한 상태.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남편 역시 3년 전부터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아직도 투병 중이다. 남편과 함께 주 수입원이었던 사위는 가출한 뒤 연락이 끊겼고. 박씨는 5년 전부터 인근 목욕탕에서 청소일을 하며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한 손자까지 돌보고 있지만 생계가 막막하다. 매달 지불해야 하는 방값만 26만원. 몸저 누워 있는 가족들 때문에 이제는 목욕탕 일도 쉽게 할 수 없어 남편의 재활치료비와 손자의 저녁 급식비는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아니 생활비 자체가 부족한 실정이다. 인근에 살고 있는 최모(71)씨 역시 하루하루 먹고 살기 버겁다. 아들 내외와 남부러울 것 없이 생활해 왔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아들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졌고. 이제 혼자 살고 있는 자신에게도 신장질환이 찾아오는 바람에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씨에게 또다른 불편은 잠자리. 4평 남짓한 방의 절반 이상은 약상자로 가득할 정도지만 기초수급대상자가 아니기에 차디찬 겨울을 얇은 이불 하나로 버티고 있다. 최씨는 “당장 죽고 싶지만 자녀들의 얼굴이 어른거려 마음을 다잡는다”고 했다. 차상위계층들의 생활이 밑바닥 삶을 기고 있다. 특히 겨울추위와 칼바람은 이들에게는 더 큰 걱정이다. 도에 따르면 차상위계층은 1만8천290가구로 약 2만3천100여명. 주민등록 말소 등을 포함하면 3~4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대개 친척집에 얹혀 살거나 월세 20만원 안팎의 단칸방 등에서 살며 월소득이 50만원도 채 안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양 가족은 보통 4~5명에 초·중·고에 재학 중인 자녀가 많고. 가족 중 장애인. 환자도 있다. 대다수가 외환위기 이후 실직. 부도 등으로 극빈층에 전락한 경우다. 차상위계층의 경우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기초생활수급자(10만8천447명)보다 생활이 나은 게 없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는 “차상위계층의 경우. 극빈계층과 별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며 “최저생계조차 위협받고 있는 이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장기지원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차상위계층이란 사회복지계에선 통상 기초생활수급자의 생활 수준을 ‘100’으로 보았을 때 ‘100~120’ 범위 내에 속한 층을 말한다. 그러나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간의 생활 수준 차이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김정민기자 isguy@knnews.co.kr [사진설명] 마산시 산호동 김모씨가 뇌경색으로 투병중인 남편과 함께 사회복지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 위). 마산 산호동 최모(71)씨의 4평 남짓한 방이 생활가재도구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전강용기자/
겨울이 두려운 사람들 (3) 위기의 사회복지시설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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