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의 노래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
30일 서울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재소 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전 2권·화남)의 출간을 알리는 자리였다. 이 책의 채록 및 편저를 맡은 김병학(42) 시인, 기획 및 감수를 담당한 김준태(59) 시인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재소 고려인 강제이주 70주년을 맞아 세상에 선을 보인 책은, 그간 멀고먼 동토(凍土)에서 온갖 고난을 겪은 동포들의 삶이 오롯이 담긴 기록물이었다. 책에 수록된 568곡의 노래 악보 및 가사, 고려인 강제이주의 역사를 담은 사진 70여 점 등은 세월을 뛰어넘어 생생한 증언으로 다가왔다. 그 증언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민족의 비애이자 고통이며, 나아가 고난의 극복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고려인 강제 이주. 그 역사는 1937년 8월 2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비에트 중앙인민위원회와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이날 일본 간첩 침투를 차단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들어 연해주 거주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이주시키기로 비밀리에 결의했다. 인민위원장 몰로토프와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이 서명한 이 비밀결정서에 따라 같은해 9월 25일부터 두 차례에 걸쳐 참혹한 강제 이주가 실시됐다. 총 124대의 화물열차(사람이 탈 수 없는 마소 운반용)에 실려 블라디보스토크 등 연해주에서 쫓겨난 고려인은 모두 17만1781명. 이중 9만5256명은 카자흐스탄으로, 7만6525명은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송됐다. 이주 기간에 강제이주를 반대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고려인 인텔리와 군 장교 등 2800여명이 비밀리에 체포돼 학살당했다. 척박한 중앙아시아의 황무지에 내팽개쳐진 이들은 곧이어 몰아닥친 추위와 기아로 속절없이 생명을 접어야 했다. 1937∼38년 겨울을 나는 동안 무려 2만여명의 고려인들이 풍토병과 추위로 쓰러졌다. 고려인 최초 강제 이주지였던 카자흐스탄 우스토베시 바슈추베 언덕엔 당시의 참상을 기록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 곳은 원동에서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이 1937년 10월 9일부터 1938년 4월 10일까지 토굴을 짓고 살았던 초기 정착지다’고 쓰인 이 기념비는 황량한 들판을 배경으로, 평범한 돌판에 삐뚤삐뚤한 글씨로 당시의 비극을 전한다. 군더더기 없이 단문 하나로 사실만 기록한 기념비에서 오히려 눈물마저 말라버린 고려인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 기념비가 마치 뼈만 남은 고려인처럼 참상을 증언한다면, 이번에 출간된 채록가요집은 그 살과 피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최남선이 작사한 것으로 전해져오는 ‘망향가’는 모두 5절로 이뤄졌다. 1절의 가사는 “고국산천을 떠나서 수천 리 타향에/산 설고 물 선 타향에 객을 정하니/섭섭한 생각은 고향뿐이요/다만 생각나노니 정든 친구라”며 이국생활의 애통함을 전하고 있다. 1933년 연성용 작사·작곡의 노래 ‘씨를 활활 뿌려라’는 고난의 와중에도 잃지 않은 희망을 보여준다. “즐겁은 마음에 새 봄이 와/파종시절을 재촉한다/뜨락또르 뜨르릉 밭 갈아라/큰드름 잔드름(큰 두둑 잔 두둑) 빨리 짓자/에헤헤 뿌려라/씨를 활활 뿌려라/땅의 젖을 짜 먹고/와싹와싹 자라나게.” 이 얼마나 희망찬 농부가인가. 이 가요는 재소 고려인들이 시대를 초월, 애창해온 노래이기도 하다. 채록자 김 시인은 “고려인들이 강제 이주라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가능한 한 낙천적인 노래를 지어 부르고, 희망을 찾으려 했던 그 지혜에 가슴을 저렸다”면서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점점 잊어지는 고려인 구전가요들이 전승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의 바람이 이뤄지길 간절히 바란다. [[김영번 / 문화부 차장]] zerokim@munhwa.com <문화일보 2007-07-31> |
출처 : 력사를 찾아서
글쓴이 : 야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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