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넘나들면서 기술 쌓고 교육열 지펴
구정은기자 koje@munhwa.com |
지난 8일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고려인 마을 시온고를 찾았다. 여느 한국 시골마을을 그대로 옮겨다놓은 듯한 한적한 농촌 마을 가운데엔 한국-중앙아시아 교류진흥회 박강윤 회장 도움으로 지어진 노인회관과 문화센터 건물이 들어서 있고 제법 너른 길 한쪽으로 고려인 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1937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이어진 스탈린의 ‘극동 조선인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연해주를 떠나 부모 손에 이끌려 머나먼 우즈베키스탄에 내쳐졌던 고려인 소년들은 이제 고희를 훨씬 넘긴 나이가 되어 지나온 70년 험난했던 시간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지금은 물기를 찾기 힘든 메마른 땅으로 보이지만 70년 전만 해도 이 곳은 동식물조차 제대로 못사는 뻘밭이었다. 1937년부터 1941년 시온고 조합이 만들어질 때까지 고려인들의 고생을 말해 무엇하랴. 1940년대 초반은 최악의 시기였다. 2차 세계대전에 말려든 소련이 1942년 독일과 ‘조국전쟁’을 벌이면서 궁핍은 기근으로 이어졌다. 비타민이 모자라 아이들은 이가 빠졌고 병에 걸려 죽어나갔다. 낯선 땅에 이식된 고려인들은 채소와 독초를 구분 못해 아무거나 뽑아먹다 중독돼 죽고, 학질·천연두에 시달렸다고 한다. “뭘 먹어야 할지 몰라 못 먹어 죽고, 아무거나 먹다가 독 올라 죽고, 참 힘든 시기였댔어.” 연해주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열네살 때 끌려왔다는 한 니콜라이(84)씨는 “9월9일에 기차를 탔다”며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고생담을 털어놓는 노인들의 눈가는 어느새 축축해졌다. 말할 수 없이 열악한 조건에서 뻘밭을 일궈 논을 만든 것은 고려인이 아니면 못할 일이었다. 고려인들은 당시 진흙을 이겨 만든 집을 고치고 손봐가며 아직까지 살고 있다. 스탈린 사후 흐루시초프 시절부터 고려인들은 불모지를 개간한 공로와 기술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강제이주 과정에서 억울한 죄를 쓰고 죽은 이들의 복권도 일부 이뤄졌다. 1960년대엔 이 마을에 650호가 살았는데 교육열이 높고 근면해 지역에서 가장 부유하고 활기찬 마을이었다고 한다. 고려인들의 자랑은 특히 높은 교육열과 배우려는 마음. 어린 자식을 이끌고 온 고려인 1세대들은 배 굶어가며 자식들을 가르쳤다. 한 니콜라이씨는 대학을 나오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아이들 다 키워 보낸 뒤인 1966년 늦게나마 인근 치르치크 지역의 전기전문학교에 진학해 공부를 했다. 생후 일곱달 만에 우즈베키스탄으로 옮겨왔다는 안 로베르트(한국명 안용선·70)씨는 과거 시온고 조합 트랙터 공장에서 일했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아이을 키운 뒤 50세에 공업대학에서 늦깎이 공부를 했다. 이 마을 노인 중에는 엘리트여서 지금도 상(喪)이 있거나 마을 잔치가 있으면 준비를 맡아한다. 그는 “고려인들은 자식들을 되도록이면 꼭 대학에 보내고 자신들도 늦게라도 반드시 공부를 했다”면서 옛소련 시절 낯선 땅에서도 인정받는 공동체를 만들었던 것이 그런 열정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눈에 보기에 시온고 마을에서도 젊은이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노인들과 어린아이들만 거주하는 조용한 마을이 돼버린 것이다. 소련 시절 조합 중심의 지역별 생산단위에서 일했던 고려인들은 현재 월 3만~5만 숨(약 2만~4만원)의 연금을 받는다. 시온고의 노인들은 텃밭에서 나는 곡식과 외지로 일 나간 자녀들이 보내주는 돈, 그리고 얼마 안 되는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신생독립국 우즈베키스탄은 실업률이 높았으며, 경제발전도 인접한 카자흐스탄 등보다 뒤처졌다. 일할 수 있는 청장년층은 농촌마을을 떠나 러시아, 카자흐스탄, 한국 등지에 일하러 떠났다. 다행히 한국과의 경제교류가 많아지고 한국에서 온 교민들도 늘면서, 시온고 마을에는 한국 교민의 도움으로 마을회관이 지어지고 노인회 등 새로운 모임들이 조직됐다. 마을회관에서는 젊은이들이 우즈베키스탄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우즈베크어를 가르치며, 한국 등지에서 교사를 초빙해 영어와 컴퓨터, 한글도 교육시키고 있다. 2005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하는 등 한국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많아졌다. 교민들은 한국 붐과 함께 상대적으로 한국어 습득이 용이한 고려인들도 활기를 찾기 시작하면서 이민 4세대들 사이에 조금씩 희망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시온고 = 구정은기자 koje@munhwa.com <문화일보 2007-08-14 화요일 16쪽> |
출처 : 력사를 찾아서
글쓴이 : 야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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