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 몽골 Care-workshop 기행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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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6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시베리아의 3개 지역 및 몽골의 울란바토르를
방문하여 선교사님들 care-workshop을 하면서
느낀 점을 적은 글입니다.
선교사 Care 를 위한 책의 원고이기도 합니다.
도움이 되실길 바라며,
2005, 성탄절을 앞두고
임경심드림
알타이 선교회 초청으로 2005년 6월 30일 - 7월 14일까지 러시아 극동지역인 블라디보스톡과 시베리아 지역의 몇몇 도시 그리고 몽골의 울란바토르를 방문하여 선교사님들 워크샵을 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전혀 생소한 나라였기에 선교사님들이 어떤 형편에 계실지 그래서 정확하게 무엇으로 도와드려야 할지 알지 못한 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며 몇몇 강의안과 검사 도구들을 챙겨 출발을 하였다.
서울에서 2시간도 되지 않는 거리에 이토록 색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공항에서 나오면서 느끼는 것이 말 그대로 슬라브계인 러시아인들은 첫눈에 보기에도 눈부실 정도의 타고난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젊은 여성들은 백옥 같은 흰 피부에 훤칠한 키 , 조그마한 얼굴에 분명한 이목구비, 걸어 다니는 수퍼 모델들 같았다. 행동거지는 다른 서구나라와는 좀 다르게 수동적이어 보이면서 다소 보수적이어서 더욱 우리 눈에는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예를 들면 교회에서 통역을 통해 러시아 자매들에게 말을 걸면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고개를 숙이거나 얼굴이 빨개지거나 하면서도 자신들의 느낌이나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을 잘 했다. 그런데 이런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일 뿐, 이들 안에는 우리가 상상 못할 민족적 자부심, 자존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2차 대전당시 온 세계를 점령하다시피 했던 독일을 유일하게 이긴 나라, 특히 이 기념일은 온 나라의 제일 큰 경축일이며 금년에는 50주년이었는데 강대국 정상들이 다 초청이 되어져 와서 성대하게 기념식을 하였다고 하며 그런 것을 온 나라에 중계하였다. 그런 것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라면서 자긍심을 키우게 한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사 속에 나오는 문학가, 음악가, 미술가 등 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한 나라로써 굳이 이념을 떠나 타민족에 대한 우월감이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인지 경제적인 이유에서인지 외국 관광객들을 배려한 어떠한 서비스도 없었다. 배려는 고사하고 트집만 잡지 말았으면 하는 심정이 생기기까지 했다. 한국에서 비자 받을 때 방문하겠다고 허락받은 도시이외의 곳을 가게 되면 불법여행자가 되는 것이었다. 또 숙소도 반드시 나라에서 정해진 곳 중에서 선택을 하여야 하고 그곳 인증을 받아야 했다. 사회주의국가의 강한 기운을 느꼈다. 우리 일행도 블라디보스톡을 떠날 때 불시 검문을 받고 비행기 이륙시간에 임박할 때까지 체류증이며 머문 곳의 확인 등을 검사받기도 하였다.
이런 땅에서 이런 사람들에게 한국인으로써 선교할 때 얼마나 힘들까하는 느낌이 강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더군다나 러시아 국교는 러시아정교회인데 개신교를 거의 이단시해서 개신교도들이나 선교사들이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인종적, 민족적, 문화적, 장벽을 넘어 블라디보스톡에서 만난 한국선교사님들은 러시아인 여인들을 처럼 학생들을 자식처럼 친밀하게 더불어 지내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접했다. 참으로 존경스럽기만 했다.
도착한 다음날 저녁 주로 부인선교사님들이 한국선교사님이 운영하시는 교회에 12명 정도 모였다. 우선 탈진, 스트레스 등을 알 수 있는 간단한 검사부터 시작하고 나서 그 내용이나 결과가 의미하는 바들을 설명과 함께 돌아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들을 하도록 하였다. 이 분들은 그 결과가 자신들을 이해해 주는 것이라고 느끼면서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들을 생각해 보며 그간 서로 기도만 해오던 아픔들을 털어 놓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그것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겪고 있었다는 사실에 매우 위로를 받고 격려를 받았으며 또 서로 당신은 매우 자신감 있고 별 문제없어 보였는데 그런 고통이 있었냐면서 내 자신이 무슨 말을 할 것도 없이 그들 스스로 문제들을 이해하고 해결점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 내가 한 역할 이었다.
부인 선교사들에게서 흔히 있는 어려움은 실질적으로 선교사역이라거나 전도는 앞장서서 매우 적극적으로 하는데 비해서 선교 팀이나 개척되는 교회에서의 위치나 인정은 매우 낮아 자기정체감의 위기 또는 갈등이 많았다. 대부분의 선교사부인들은 국내에서는 매우 적극적으로 사역에 참여하던 분들이고 단기선교 등을 통해 선교에 부르심을 사역에 있어서 공적인 역할, 또는 의사결정권 등이 남편 선교사들에게 편중되면서 오는 갈등은 대부분 부부갈등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러시아는 여성이 매우 기득권을 갖고 있는 나라여서 이런 우리나라 정서적 갈등이 상대적으로 심각하게 여겨지는 것 같았다. 여기에 참여했던 대부분이 다음에는 꼭 부부동참 워크샵을 개최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또한 1년 내내 습도가 높고 기후가 흐리며 일조량이 적은데다 스트레스 상황이 심각하여서 인지 약간의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분들도 꽤 되었다. 또 이런 압박을 표현하지 못해서 인지 신체화 전환증세도 많이 있었다. 이런 것들에 대한 여러 상식적이고 필요한 지식들도 전해 드렸지만 일시적이어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구심이 생겼다.
이곳은 북극과 가까워 필자가 방문한 시기가 백야현상이 일어나는 때였다. 강의를 오후에 시작하여 저녁 7시 정도까지 였는데 아무리 해도 너무 밖이 너무 밝은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밤 11시였다.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내 자신이 생각의 전환이 되지 않았다. 시간을 지키지 못한 것,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것, 이렇게 환한 밤중이 있다는 것, 왜 이들은 알려주지 않았을까 등등 잠깐 사이에 너무도 많은 스트레스가 몰려 왔다. 그런데 이들은 시간이 넘어가는 것을 알았지만, 필요한 시간이라고 느꼈고 또 내가 알면서도 더 해준다고 여겨서 고맙게 생각했고 그래서 아무도 미동을 하지 않고 그냥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들은 이런 실수 또는 스트레스가 한 두가지가 않일텐데 .. 나의 실수를 내가 어떻게 대하는가의 모습 자체가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강의요 학습이려니 생각하며 러시아에서의 소중한 타문화 경험으로 간직하기로 하였다.
그러면서 1시간도 뱅뱅 돌다가 잘못하면 마중 나온 분도 못 만나고 국제 미아가 되겠다 싶었다.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건물 밖으로까지 나와서 다시 헤매다가(그래도 왜 그러는지 검문하는 경찰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짐이 들락거리는 gate에서 우왕좌왕하는데 한국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그 분은 우리를 마중 나오신 선교사님이었다. 너무도 놀랐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었는지.. 서로 놀라서 사정을 알고 본 즉, 우리가 타려 했던 버스 중 첫 번째 버스는 출입국장으로 가는 것이었고 우리가 탄 두 번째 버스는 이곳을 경유지로 온 사람들이 타고 가서 다른 비행기로 갈아 타는 곳으로 가는 버스였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내렸던 곳에 입국서비스가 없었다. 이 분은 우리가 나오기를 목이 빠지라 기다리다가 간혹 그런 실수를 한 사람을 기억해 내고 혹시나 하고 우리가 있던 장소를 왔다가 그래도 없어서 밖으로 나와 집에 가려던 참에 왠 동양인들이 힐끗 보여 말을 걸었던 것이다.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없었다면 도대체 어떤 일을 겪어야 했을지 아찔하다. 주님의 도우심이었다. 우리 일행은 그야말로 탈진이 되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빨리 고향땅으로 가고 싶은 생각만이 간절했었다. 이런 잠깐의 여행도 이러니 하물며 이곳에 살면서 사역을 해야하는 선교사님들은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러시아어로 직원들에게 마구 말하면서 우리 짐을 찾아 주시던 선교사님이 왜 그리도 대단하고 존경스러워 보이던지 몰랐다.
육아에 대한 부담과 탈진이 주증세였다. 육아에 대한 이야기 역시 부부관계에 대해서 많은 내용이 와닿았다. 이들도 매우 갈급해 하면서 나눔의 시간을 더 갖기를 갈망하였다. 아이들로 인하여 자신에게 투자할 시간이 없음이 더 문제시 되었다. 이곳에서는 인생주기와 인격발달 등을 중심으로 이들이 지금 투자하는 시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강조하게 된 것 같다.
노보시비리스크에서 하룻밤을 자는 열차로 12시간 이상 남쪽으로 가니까 러시아의 연방공화국으로 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언어를 포함한 알타이언어권의 어원의 나라인 알타이공화국의 수도인 알타이리스크에 닿았다. 가는 역까지는 안내를 받았고 또 우리가 내릴 역에 바로 아는 분이 나오기로 하여 역과 역 사이에는 우리 일행만이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 비행장에서의 일 같은 것이 또 일어난 것이다. 아주 끔찍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러시아 인들이 도와주었다. 오히려 시골 아주머니 같은 분이 우리를 신기해하면서도 손짓 발짓으로 우리가 타야할 기차, 예약 된 좌석을 찾아가는 일, 자고 먹고 내리는 데에 필요한 아주 복잡한 절차 등을 안내해 주었다. 어느 나라든 역시 아줌마 배짱이 제일이다. 가는 동안 서로의 언어는 전혀 몰랐지만, 아줌마들만의 의사소통 법으로 그 집안 대략적 소개, 또 여행 목적정도까지 서로 상통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처음으로 러시아인에 대한 정을 느끼게 된 것이다.
한국선교사님께서 이곳에서 이 나라 태생인데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고려인을 전도하고 양육하고 신학공부까지 시켜서 동역자로 키웠고 이제는 팀으로 함께 사역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특히 그 도시는 이야기를 들으니 거의 우울증의 도시였다. 한 마을은 세집건너 한명씩 자살자가 있을 정도였다. 그곳에 복음으로 돌보고 사랑을 주고 하니 한국선교사님들이 어머니요 아버지 같은 존재였고 이들은 20년씩 아프던 우울증 심인성 질병에서 나음을 얻었다. 성령님께서 이들을 통한 사랑을 보여 주심으로 일어난 치유 이시리라. 이런 마을은 대대적으로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고 이 부족인들 중에 선교사가 되어 같은 민족이 있는 다른 나라로 파송되기도 하였다. 한국인 선교사, 고려인계 러시아인, 원주민, 슬라브계 러시아인들이 혼합된 곳이라서 인지 보다 개방적이고 자유롭고 낙천적인 분위기였다. 주님의 역사도 강하게 일어났다.
이곳에서 필자는 이 들에게 심리검사나 이론 적인 강의가 별 의미가 없어 보였고 다만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양 드리고 이들의 수고와 애씀을 인정하고 감사하고 위로하며 함께 식사하고 나누는 시간을 갖었다. 이것으로 충분했다. 이들도 필자에게도 너무도 진한 친밀감 유대감 감동 같은 것이 교통됨을 느꼈고 헤어질 때도 마치 형제를 두고 떠나는 듯한 아쉬움 등을 서로 느끼고 함께 기도하기로 하였다. 돌아와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을 이 시간 회개하면서 그들이 더욱 주님의 능력과 은혜로 그들 자신 스스로를 돌보며 사역을 잘 감당하시도록 기도한다.
머물던 도시에서 3일간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횡단열차의 전체 운행시간의 1/3 밖에는 안된다니 놀라
울 수밖에 없었다. 거기는 미리 책도 사서 읽으면서 약간의 지식을 습득을 했지만 사실 내가 알고 있었던 것 보다 훨씬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는 도시였다. 재정러시아 시기에 젊은 소장파귀족들이 부패한 왕정에 맞서 구테타를 일으켰는데 실패로 돌아가자 그 많은 귀족들을 유배시킨 시베리아 유배지가 바로 이곳이었다. 곳곳에 그 당시 귀족죄수들이 살던 건물들이 있었다. 이 도시 전체가 감옥이었던 가 보다. 이 도시를 떠나면 죽음의 땅이었기에 이 도시 안에서 나갈 생각을 못했고 이 안에서는 자유를 누리며 음악, 문학, 예술을 꽃피웠고 건물도 귀족출신답게 아름답게 유럽풍으로 지어서 살았던 것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톨스토이가 이런 유배인 지인에게 보낸 편지들도 전시되어 있곤 했다. 이런 죄수들의 몸으로도 역사속에 자취를 남기고 문화와 예술의 족적을 남겼는데 오늘 날 미약해 보이지만 이 그리스도의 대사인 선교사님들도 이 나라 역사에 변화와 영향을 주는 인물들이리라는 교훈을 받았다.
기대하던 바이칼호수를 찾았는데 정말 파도가 없는 바다 같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 맑기는 세계에서 최고라 할 정도로 깨끗함이 보존되어 있었다. 그곳은 한달이라 하였다. 그 기간만이 해가 나는 기간이라 온 도시가 해수욕장 같았다. 그냥 수영복차림으로 일상을 하는 듯 보였다. 노출증들이 심하다 했는데 이유를 들으니 이해가 되었다.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우리 사고의 틀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고, 자신의 투사 현상의 정도를 보여 줄 뿐이다.
특히 바이칼 호 주변에는 더 북극에 가까운 곳에서 여름 휴가를 온 사람들이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처음이지 마지막으로 러시아에서 영어로 말을 걸어온 사람을 만났다. 외국인처럼 보이자 어디서 왔냐고 영어로 물어보는데 그 어렵던 영어가 모국어처럼 들리는 순간이었다. 그 비키니 차림의 여성은 독일계 러시아인으로 러시아 위쪽에 있는 그린랜드라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1년에 한번 돈을 모아서 온가족이 이곳에 와서 해를 보고 가는 것이 삶의 큰 낙이었다. 그곳은 영하 40-50도의 날씨가 일 년이면 반 이상이란다. 이쪽에서 궁금한 것이 많은데 그녀는 우리 쪽에 대해 물어 보느라 오히려 여념이 없었다. 필자가 거기서 만났던 선교사님 중에도 다음 사역지로 그곳을 정해 놓고 기도하고 계시던 분이 있었다. 놀라운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니고서는 그런 마음을 갖는 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선교사는 부르심을 받고 거기에 응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을 더 하게 되었고 국내에서 선교에 부르심을 받은 젊은이들을 훈련할 때 그 소명의 부분이 오염되지 않았는지 함께 점검하고 식별하고 나아가도록 도와야할 책임감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었다.
기마의 나라 몽골
이루쿠츠크에서 밤 2시에 비행기를 타고 새벽 5시에 울란바토르에 도착을 했다. 배웅하고 마중하는 사람들에게도 미안하고 잠도 설치고 왜 이렇게 불편한 시간대에 비행을 하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추측컨대 가난한 나라여서 좋은 시간대는 공항을 빌리기도 어려운가 보다하는 생각을 가졌는데 그것도 역시 내 선입관이요 사고의 틀이었다. 이 울란바토르는 매우 고지대에 있어서 기류의 변화가 극심하다고 한다. 맑았다가도 회오리바람이 몰아치고 해서 항공기가 돌아가는 예가 빈번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기류가 제일 조용하고 잠잠한 시간대가 이른 새벽이라는 이유였다. 또 이곳은 건조한 그야말로 광야였다. 돌아보면서 예수님이 사셨던 곳이 이렇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광야에 그나마 푸릇푸릇한 풀이나 나무들은 밤과 낮의 일교차로 인해 맺어지는 새벽이슬의 수분덕분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시편의 새벽이슬의 의미가 바로 가슴 깊이 다가왔다. 우리나라처럼 홍수, 폭풍, 장마 등에 젖어 사는 민족에게는 이슬이 깨끗하고 영롱하다는 이미지로 다가오지만 이런 몽골같이 광야의 나라는 이슬은 곧 생명인 것이었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내가 스트레스 측정을 위해 사용하는 검사도구중에는 비그림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만 결과가 매우 다르게 나오는 것이었다. 알고 본 즉 이 나라는 비라는 것이 매우 좋은 의미의 것이다. 어느 손님이 왔을 때 비가 오면 그것은 행운을 갖고 오는 손님이라 매우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또 우산이라는 것이 없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맞고 일부러 다 나가서 비를 환영한다고 한다. 그러니 이 문화에 젖어 있는 선교사님들에게도 빗줄기를 스트레스 요인으로 측정하는 검사에서는 결과가 전혀 예상 밖으로 나왔던 것이다.
준비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 같았다. 열악한 환경 안에서도 서로 돕고 격려하고 나누고 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물론 매우 힘든 과정들을 거친 분들, 겪고 있는 분들이 있었다. 아무쪼록 모든 선교사님들께서 이 모든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했던 일의 한 부분을 함께 감당하신다는 마음으로 계시길 기도한다.
헨리 나우엔은 <마음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소리>라는 그의 저서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의 몸을 빌려 인간이 되셨다. 성령이 마리아에게 임하시자 마리아의 영혼과 몸의 적대관계가 사라지고 화합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하나님의 성령이 인간의 영혼과 화합하게 되었고 인간의 육체는 부활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인간의 몸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품안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다.” 고 쓰고 있다. 예수님의 성육신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 선교사님을 통해 몸으로 직접 그들의 땅에 가서 그 땅의 사람들과 하나님사이가 화해되고 그들이 영원한 주님의 자녀가 되는 중요성이 성탄절을 하루 앞둔 이 시점에서 더욱 가슴깊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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