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원 선교사 】
러시아 사할린에서 교도소 선교.
천국체험 간증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서)


사할린 섬

1. 소개

극동 러시아에 위치한 사할린 섬은 종전에는 일본령이었지만, 종식 후 연방법에 따라 사할린 섬으로 추방자들과 러시아인, 한국인, 유 대인, 여러 민족들이 어지럽게 섞여 이동되어 살게 되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산이 가로질러 놓여 있으며 남북 길이가 1000km 너비가 약 24에서 160Km나 되므로 섬 내에서 여러 기후가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기온이 겨울에는 영하 20도에서 26도까지 내려가며 섬 전반 에 걸쳐 도로라는 것이 제대로 없어 교통에 취약하지만 남부는 도로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
1869년부터 사할린은 러시아에서 추방당한 죄수들과 혁명가들이 오는 곳이었다. 제2차 세계 전쟁이 1945년에 끝난 후 섬 전체가 소련 사회공화국의 소유가 되었고, 1991년 소련 해체 후에 러시아 연방의 소유로 남아있다. 1995년 5월에 강력한 지진이 섬의 북부에 일어나 네테고스크 마을을 파괴되고 1800명 이상의 사람들을 죽었다.

한국인이 사할린에 정착한 동기가 된 징용 :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일본제국은 전쟁수행을 위하여 국민 생활의 말단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지배 체제를 확립하였다. 노동자에 대하여는 노무수급조정령과 중요 사업장 노무관리령에 의하여 국가의 직접 지배 시책을 시행하여 징용제도로써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였다. 징용령에 의하여 강제노동에 끌려간 사람의 수는 1941년에 26만(한국인 5만), 1942년에 31만(한국인 11만), 1943년에는 70만(한국인 12만)에 이르렀고, 1944년에는 여자 정신대를 포함하여 약 200만 명의 학도 동원까지 실시하였다. 이렇게 징용으로 끌려나간 사람들 중에 희생된 자의 수가 적지 않았으며, 현지에 눌러 앉은 채 귀국을 하지 못하고, 사할린 동포의 경우처럼 아직도 고생을 하며 귀국을 희망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서 아픈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 보게 한다


2. 인구

● 사할린 섬 : 600,000
● 한국인 : 40,000
● 유대인 : 10,000(공식적) 30,000(비공식적)
● 수도(Juzhno-Sakhalinsk 유즈노 사할린스크) 80,000
● 유대인 2,000
Juzhno-Sakhalinsk에는 대형 한인교회가 5섯 개가 있고, 그 중 한국감리 교회는 한국농업학교(자선단체?)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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