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여성 문제

박현선 (고려대 북한연구소 연구교수)


왜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이 탈북하는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익숙한 땅을 등지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탈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쉽게 신변의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여성의 몸으로 탈북하는 것은 보통의 '용기'로는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일이다. 그렇다면 왜 북한여성들은 목숨을 건 엄청난 탈북을 감행하는 것일까? 더욱이 북한을 탈출하는 여성이 남성의 3배에 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을 찾아보자.

첫째, 북한 여성들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탈북하기 때문이다.

가족의 식량을 구하고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북한을 탈출하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90년대 중반의 경제난 이후 가족 부양을 남성이 아닌 여성들이 책임지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국가로부터 식량이나 임금을 받을 수 없어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은 보름에서 한 달씩 걸려 농촌에 가서 식량을 구해 오거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장사를 시작하였다. 그 역할의 담당자는 다름 아닌 여성들, 즉 어머니나 딸들이었다.

특히 장사는 북한 주민 10명중 9명이 경험이 있을 정도로 일반화된 생계 수단이 되었다. 여성들이 하는 장사는 주로 집에서 토끼, 닭과 같은 가축이나 '남새'(채소)를 길러 시장에 파는 것이다. 토끼 한 마리의 가격이 10년 근무한 소학교(과거의 인민학교, 한국의 초등학교에 해당) 교사의 한달 임금과 맞먹는 북한 현실에서 장사가 성행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만약 장사를 할 수 없으면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본가로, 어머니는 친정으로, 자녀는 길가에 버려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 여성들은 돈을 모아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탈북하는 것이다. 이 때, 여성들은 잠시 중국 등지에서 돈을 모아 다시 북한으로 간다는 생각에서 일시적으로 북한을 나온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여성들은 중국과 북한의 국경 수비 강화, 북한의 송환자 처벌 등으로 북한에 돌아가지 못하고 가족과 연락도 두절된 상태에서 탈북자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가족의 생계를 남성이 아닌 여성들이 책임지는 이유는 두 가지로 들 수 있다. 먼저 북한에서 직업의 의무가 남녀에게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남성이라면 무조건 직장에 나가야 한다. 만약 특별한 이유 없이 6개월 이상 직장에 나가지 않으면 교화소(우리의 교도소)에 가야 한다. 미혼 여성들도 남성과 같이 직장생활이 필수적이다. 그렇지만 여성이 결혼하면 직장생활은 선택사항이 된다. 집에서 '가두여성'(가정주부)으로 있거나 직업을 갖거나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따라서 결혼한 여성들은 직장과 무관하게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북한 남성들은 가부장제적 권위의식과 '체면'을 내세워 장사를 기피한다. 반면 여성들은 자식을 비롯한 가족을 굶길 수 없다는 책임의식 때문에 장사에 뛰어든다. 여성들이 가족에 대한 부양의식을 갖는 것은 식사를 준비하는 주체로서 문제의 심각성을 가장 먼저 깨닫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한에서 6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여성들의 가정에서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둘째, 경제난 이후 북한 산업시설의 마비로 유휴 여성노동인력이 증가하여 여성의 탈북기회가 상대적으로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18세 이상의 남성들에게 군복무는 의무사항이기에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전체 노동력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8년을 기준으로 47.5%에 달한다. 이처럼 많은 여성들이 경제시스템이 붕괴되자 가장 먼저 실업자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셋째, 중국에서 시장경제 발전에 따라 농촌 총각의 결혼문제가 심각해지고 도시 유흥가의 여성 서비스직이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인신매매 조직이 활동하여 북한 여성들을 거래하는 것이다. 재중 탈북여성의 상당수가 인신매매 조직을 통해 탈북한 것으로 추정될 정도이다. 북한의 미혼여성들은 시집가서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거나 아니면 돈을 벌어 가족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인신매매 조직에 자신을 팔거나 혼자 탈북하기도 한다.

넷째, 셋째 이유와 관련하여 여성 탈북자들이 남성보다 중국에서 돈을 벌기가 쉽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에는 여성들이 대부분 가족과 함께 북한을 탈출하였지만, 90년대 후반부터 여성들이 단독으로 탈출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의 90%이상이 중국에 체류하는데, 그들은 중국에서 친척이나 지인의 도움을 받거나 아니면 중국에서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 중국은 탈북자를 난민이 아닌 '불법체류자'로 보기 때문에 여기서 탈북자들이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중국에서 남성과 결혼하거나 식당이나 노래방, 유흥업소에 취업하기는 용이하다. 여성 탈북자들이 남성보다 쉽게 돈을 마련하여 한국으로 올 수 있어 한국에 입국하는 여성 탈북자가 늘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지적이 여성 탈북자들이 남성보다 더 안락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섯째, 북한 여성들은 장사를 하면서 자본주의 경제에 눈을 뜨고 자신의 삶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의식을 많이 갖게 되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에는 먹을 것이 없어 생존을 위해 탈출하는 생계형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한 '미래지향적' 탈북이 증가하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이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 가족을 부양해도 밥 짓고 청소하고 아이 키우는 일은 여전히 자신의 몫이고 남편이나 남성에게 절대 복종해야 하는 상황을 불합리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북한은 평등을 지향한다는 사회주의 국가지만, 남성위주의 가부장제적 질서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기에 여성들은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끝으로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강제송환되었을 때, 여성은 남성보다 처벌을 약하게 받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사상오염 교육, 정치심사 등을 철저하게 받고 구류도 엄격하게 적용된다. 반면에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처벌에 대한 부담이 적은 상태에서 끊임없이 탈북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 탈북자는 중국에서 어떻게 생활하나?

현재 중국에 체류하고 있는 탈북자의 75.5%는 여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동북 3성 지역은 90.9%가 여성이라고 한다. 북한과 중국이 체결한 '밀입국 범죄자 상호인도협정'과 '국경지역 관리협정'에 따라 중국내 탈북자는 적발시 북한으로 강제송환되고 있다. 여성 탈북자는 강제송환을 피하기 위해 농촌에서는 결혼으로, 도시에서는 취업으로 신변을 보장받고 돈도 벌려고 한다. 이러한 여성 탈북자들은 기본적으로 인신매매, 불법감금의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인신매매에 거래되는 여성들은 나이, 용모, 건강상태, 결혼 여부에 따라 최소 1,000위안에 매매된다.

먼저 중국에서의 결혼생활을 보자.

대부분의 여성들은 중국의 농촌총각이나 장애인, 가난한 사람들에게 결혼 상대자로 팔려간다. 중국에서 탈북자는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혼인등록을 하거나 자녀가 출생해도 호구에 올릴 수 없다. 대부분 돈으로 거래를 한 것이기 때문에 부부라도 인격적으로 동등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소유물로 취급한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는 다시 팔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모든 결혼생활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부부가 서로 애정으로 가족을 꾸리고 자녀를 키우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인신매매의 경우가 아니라도 신변을 보장받기 위해 조선족이나 중국인과 결혼하는 경우도 있다.

둘째, 유흥업소나 식당 등에서 일하는 경우를 보자.

결혼 상대자로 팔려가는 경우는 대부분 농촌지역인데 반해 도시에 체류하는 여성들은 술집, 노래방 등의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 외에도 식당에서 설거지나 점원으로 일하기도 하고, 일반 주택에서 식모나 보모일을 하거나 간병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보통 여성들은 한 달에 245위안을 받지만, 유흥업소에서는 363위안을 받는다. 남성 탈북자가 농사, 가축 돌보기, 벌목공, 탄광, 건설 등의 3D 업종에서 일하며 중국인 평균임금의 30-50% 수준인 월 220위안을 받는 것에 비하면 여성들의 임금 수준이 좀 더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사실과 진실에 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재중 여성 탈북자가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거나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여성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라는 점과 그것만을 부각시켜서도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가족과 함께 탈북하였거나 중국에 친인척이 있는 경우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고, 그렇지 않더라도 여성 스스로 장사를 하거나 식당일 등을 통해 생활을 유지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중 여성 탈북자 문제를 다룬 글이나 보도는 이러한 성착취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인식이 보편화된다면 여성 탈북자 전체에 대한 선입견을 확산시키고 이들의 사회적응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본다. 특히 한국에 입국하는 여성들 대부분이 중국을 거쳐오는데, 중국에서 왔다면 무조건 '성문제'가 있다는 공식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에 들어온 여성 탈북자가 취업이나 결혼을 하려고 할 때, 신뢰할 동료나 만족할 결혼상대자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 탈북자의 성문제가 중요할지라도 이 문제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것이다.

또한 중국의 공식적인 기본입장은 탈북자를 체포하여 강제송환할 뿐 아니라, 탈북자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거나 돕는 자국인에게 무거운 벌금과 실형을 내리고 외국인들의 경우 해외추방까지 선고하는 강경책을 펼치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은 비공식적으로는 여성 탈북자들에 대해서는 남성에 비해 훨씬 관대하게 처리한다. 이는 여성 탈북자들이 중국의 심각한 성비 불균형으로 인한 결혼문제를 해소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인권문제로 주목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 탈북자의 한국사회 적응이 정말 어려운가?

한국에 들어오는 탈북자는 2000년 312명, 2001년 583명, 2002년 1,141명으로 2000년 이후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2003년 들어 7월까지 705명이 입국하여 현재까지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는 총 3,836명에 달한다. 2002년 이후 국내에 들어오는 탈북자 중 여성 탈북자가 남성보다 더 많아지고 있다. 중국내 탈북자의 75.5%가 여성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여성 탈북자 수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2000년까지는 가족과 함께 입국하는 여성 탈북자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미혼 여성이 단독으로 입국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가족과 함께 입국한 여성 뻠舅湄湧?가족과 생활하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경우에 비해 정서적,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얻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에서 실시한 1998년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여성 탈북자들은 한국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에 어느 정도의 적응력(56.3%)을 보이고 있으며, 한국생활에 만족(64.7%)하고 한국생활에 상당한 자신감(70.6%)을 보이고 있다. 여성 탈북자들은 남성 탈북자들에 비해 탈북자들간에 대화나 교류를 활발히 하여 한국사회에서의 고립감과 소외감을 잘 극복하고 있는 편이다.

반면 여성 탈북자들의 한국사회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분야는 경제적 적응이다. 심리적, 사회적 적응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여지가 있으나, 경제적 적응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이상 문제가 더 심화될 뿐이다. 한국에 정착한 시간이 길수록 경제적 어려움이 더 크다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여성 탈북자들의 취업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본 연구자가 2000년에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1990년 1월에서 1999년 12월까지 입국한 여성 탈북자 126명중 북한에서 직업이 있었던 경우는 71명으로 전체의 56.3%를 차지한 반면, 한국에서 직업을 가진 사람은 42명으로 전체의 33.3%를 차지할 뿐이다. 한국에서의 취업률이 20% 이상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렵게 취업을 하였더라도 이들의 80%는 월평균 100만원 미만을 받는다. 이들이 속한 가구별로도 100만원 미만을 받는 경우가 68%에 달한다. 한국여성의 개인별 월 평균 수입이 100만원인 점을 고려할 때, 여성 탈북자의 평균임금이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 탈북자가 돈벌이나 직장생활에서 적응하는 비중도 각각 20.0%, 29.4%에 불과하여 경제적 적응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취업한 여성 탈북자 42명의 직업구성을 보면 사무직이 15명(35.7%)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자영업 9명(21.4%), 판매·서비스직 7명(16.7%) 등의 순이다. 사무직이라고 해도 고정직이 아닌 계약직이나 임시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영업은 주로 작은 식당이나 상점을 하지만 이것도 매우 영세한 상태이다. 판매·서비스직의 경우 판매원, 보험설계사, 주차관리, 파출부 등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사항은 북한에서 의사, 건축설계사, 품질감독원, 탁아소 소장, 기자, 무용배우 등의 전문관리직에 종사했던 여성들은 한국에 와서 기자가 된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직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인 여성 탈북자들의 취업을 늘리는 방안이 기본적으로 모색되어야 하겠지만, 북한에서 전문관리직이나 기술직에 종사했던 여성들의 전문지식과 기술을 한국사회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북한에서의 학력을 인정하여 한국에서 시험을 볼 자격을 인정하는 방안은 의사의 경우를 비롯하여 일부 시행되고 있다. 이 외에 자격증 인정 후의 특별 채용, 경력인정을 통해 직업재교육을 받은 후 특별채용을 하는 방안 등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성 탈북자들의 거주형태를 보더라도 1998년 기준으로 74%가 영구임대주책에 거주하고 있다. 본 연구자가 2000년 여성 탈북자들에게 '한국의 가족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점' 대해 조사한 결과 경제적 문제가 80.0%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다음으로 주택문제 10.0%, 자녀교육문제 5.0%를 차지하였다.

여성 탈북자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겪는 경제적 어려움은 생존문제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들은 북한에서 가족의 실질적인 부양자였던 것처럼, 한국에 와서도 생활을 책임지는 경우가 많다. 여성 탈북자들의 경제적 적응은 그들 자신뿐 아니라 그 가족의 생활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이다.

여성 탈북자의 대부분은 종교생활을 한다. 중국 등의 제3국에서 교회나 종교관련 NGO(비정부기구, 시민단체)의 도움을 계기로 종교를 갖게 된 경우도 있고, 국내에 입국한 후 '하나원'에서 교육받을 때 종교를 갖는 경우도 있다. 이들 중 일부는 한국교회에서 신도가 된 탈북자들에게 일정한 지원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종교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든 이들의 종교는 기독교에 집중되어 있다. 종교생활 외의 사회활동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최근 여성 탈북자들 중 한국의 여성단체나 탈북자단체에 참가하고 있는 비중이 늘어가는 추세이다. 앞으로 이들이 각종 시민단체 참여를 확대해 나간다면 한편으로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한다는 의의를 갖게 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단체가 여성 탈북자의 후원자 내지는 사회와 이들을 잇는 연결망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 탈북자의 가정생활은 원만한가?

북한에서 생활했던 탈북자들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체제 변화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탈북자들은 이중적 태도를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인 개인의 노력에 따라 보상받는 사회, 풍요로운 사회, 자유로운 사회 등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은 정당한 대우를 못 받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벽과 같은 사회로 본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탈북자 가족은 부부간, 세대간 갈등을 겪고 있다.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한국으로 체제가 바뀐 것은 인정하지만, 가족에 대해서는 가족성원간에 상반된 생각을 하고 있다. 주로 부부관계에서 남편들이, 그리고 부모와 자식관계에서 부모들이 북한에서와 같은 가족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반면 부인이나 자녀들은 새로운 환경에 맞는 보다 평등하고 개방된 관계를 원하고 있다.

먼저 부부관계를 보면 북한에서 남편은 절대적인 권력자이다. 부인이 남편을 '주인'이라고 부를 정도다. 북한에서는 남편이 부인이나 자녀를 구타해도 국가나 사회로부터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북한 남편들은 집안에서 문짝 고치기나 땔감 구하기 정도의 일 외에는 어떤 가정일도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 같은 남성우위의 가부장제적 부부관계가 한국에서도 지속되기는 힘들다. 부인들은 자신들이 가족을 부양하는 일이 많은데도 남편들이 북한에서와 같은 권위를 지키려 하는 것에 자연히 불만을 갖게 된다. 부부싸움이 잦아진다. 남편들은 남편대로 "내가 이런 대우 받으려고 목숨 걸고 남쪽에 왔는가. 한국에 와서 부인만 좋아졌다"고 말할 정도이다. 심한 경우 이혼까지 한다. 한국사회에서 2002년 인구 1,000명당 3건의 이혼이 발생하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높은 이혼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탈북자 부부의 이혼을 쉽게 만드는 환경이 된다. 북한에서 90년대 중반의 경제난으로 이혼하는 사례가 늘어나긴 하지만, 여전히 정치범이나 심각한 질병이 없는 한 이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으로 세대간 갈등도 매우 심각하다. 북한에서 자녀는 부모 말에 절대 복종한다. 자녀들은 특히 아버지를 공경하고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일례로 식량이 부족할 때 식사를 하는 순서를 비교해보면 '남편-시부모-자녀-부인'으로 나타난다. 부모공경이라는 '가부장제적 상식'을 벗어나 시부모보다 남편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북한의 청소년들은 부모의 생각이 국가의 원칙과 다를 때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설문 결과(박현선, 현대 북한사회와 가족, 한울아카데미, 2003) '부모의 말을 따른다'가 93.9%, '국가적 원칙에 따른다'가 4.9%로 나타난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녀들이 한국에 오면 부모에게 반항하고 부모를 무시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탈북 청소년들은 부모에 대해 양가감정을 갖는다. 북한의 학교에서 한참 사회주의 이상과 혁명정신을 배우고 믿고 있던 상황에서 자신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부모를 따라 북한을 탈출하였기 때문에 부모를 '사회주의 조국'을 배신한 사람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반면 자신의 부모를 자식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위험한 탈출을 감행하였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탈북 청소년들은 한국에서 생활할수록 부모가 무능하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탈북한 부모들은 대부분 북한에서 중학교(과거의 고등중학교, 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를 졸업하고 노동자나 농민으로 일하던 사람들이라 한국에 와서 직장을 갖기도 어렵고 한국사회의 문화에도 뒤떨어진다. 자녀가 영어나 인터넷을 물어도 답을 해줄 수 있는 부모는 별로 없다.

탈북 자녀들의 생활도 쉽지 않다. 사회주의에서 배웠던 내용과 자본주의에서 배워야 할 내용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수학을 제외하고는 영어, 역사, 과학 모두 따라가기 어렵다. 어려운 가정형편상 학원에도 잘 다니지 못한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북한 사투리를 쓰고 성적도 낮고, 같은 반 친구들보다 나이는 많지만 몸은 왜소하여 이른바 '왕따'를 당하기 쉽다. 집에 돌아와도 부모들이 '변했다'고 질책하여 탈북 청소년들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적응하기 힘든 상황이다.

자녀양육과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여성 탈북자들의 가족생활이 평탄치 않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들은 부부관계보다 자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라 더욱 그러하다. 또한 여성 탈북자들은 친척이나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가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주위의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다. 고민이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의논할 상대가 없고, 갑자기 가족이 아프거나 큰돈이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할 대상도 없다.



여성 탈북자 문제가 왜 중요한가?

여성 탈북자의 사회적응 문제가 한국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인권문제의 해결, 불평등 문제의 해소, 탈북자 가족의 사회적응력 제고, 남북한 통합모델의 개발 등이다. 구체적으로 보도록 하자.

첫째, 여성 탈북자는 북한과 중국 등지에서 기본적인 생존과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침해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비엔나 인권선언 및 행동강령」(1993)에서 인간은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주체임을 선언한 것과 같이 체제를 불문하고 인권은 인류보편의 가치로 지켜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한국사회가 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둘째, 한국사회에서 여성 탈북자는 한편으로는 탈북자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으로서 이중의 불이익을 받는 집단이다.

따라서 이들의 사회적응을 높이는 문제는 북한이라는 출신지역과 여성이라는 성별에 의해 차별 받는 소수집단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가 있다. 소수집단이란 성, 계층, 연령, 종교, 계층별로 불이익을 받거나 낮은 지위에 있는 집단을 의미한다.

셋째, 여성 탈북자는 최근 단독으로 입국하는 비중이 늘고 있지만, 대부분 가족 단위로 한국에 입국한 사람들이다.

여성 탈북자의 사회적응을 제고하는 것은 이들 가족의 적응력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여성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장사를 통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동일하게 한국에서도 가족 부양을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들은 자녀교육 및 가족관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여성 탈북자의 한국사회 적응의 성공 여부는 그들의 가족, 결국 탈북자 전체의 사회적응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인이라는 중요성을 지닌다. 또한 2002년부터 남성보다 여성 탈북자의 입국이 더 많아지고 있어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탈북자 문제 해결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넷째, 남북한의 정치, 외교적 통합은 단기간에 정부간 합의에 의해 이뤄질 수 있지만, 사회, 문화적 통합은 정치통합 이후 변화된 환경에서 공동체적 삶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적응력을 높였을 때 가능한 것으로 오랜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남북한 사회, 문화적 통합을 위해 탈북자의 한국사회에서의 적응력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북한 주민을 제한적으로나마 대표하는 탈북자가 한국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낸다면, 이를 기초로 통일 후 북한 주민들도 통일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남북한 주민이 함께 살 수 있는 통합모델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통일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가장 취약한 계층인 여성 탈북자가 한국사회에 잘 적응한다면 남북한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서독과 동독이 통일할 때, 여성과 노동자 등의 취약계층이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역사적 경험을 볼 때도 여성 탈북자의 지위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 절실히 필요하다.

결국 여성탈북자의 사회적응문제는 탈북자의 한국사회 적응이라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한국의 소수자 문제라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모델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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