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의 포교를 통해 본 선교적 통찰
생활속에 파고드는 이단ㆍ사이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1>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전문>
21세기를 맞아 사회가 발전하고 변화하는 만큼 이단과 사이비 운동 또한 본질은 변함이 없으면서도 그 활동의 반경이나 포교 전략은 엄청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최근 이단과의 싸움은 재래적 전투와 같은 양상도 있으면서 때로는 전선(戰線)이 사라져 버린 테러전과 같이 변해가고 있다. 경제 활동과 스포츠 문화 활동의 범위를 넘어 공교회의 모습을 가장하기도 하고 지역 개발 이슈에 먼저 뛰어들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이단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종교 문제와 관련해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고 올림픽과 같은 대규모 국제 행사를 앞두고 있는 중국 또한 인접 국가인 한국의 이단 문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지속적인 종교 포럼을 열고 있다. 지난 6월에 열린 포럼에 참석했던 심리학 선교학 윤리학 등 각계의 학자와 이단 연구가들의 원고를 특집으로 연재한다. <편집자주>
김 영 신 교수
서울장신대/ 실천신학
20세기 기독교 영성 분야의 최고 권위자라고 할 수 있는 헨리 나우웬 (Henri Nouwen)에게 있어서, 도시적 실존에서 영적 자유를 누리는 삶은 그의 필생의 주제였다. 그는 그 구체적인 훈련의 길로 다양한 방식의 고독한 영성의 길과 공동체 훈련을 제시하였다. 이는 영성에 대한 열망과 공동체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요청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현대사회에는 세속화의 현상과 종교적 열망이 혼재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풀러신학교 선교신학 교수 윌버트 쉥크 (Wilbert Shenk)는 세속화 (secularization)와 신성화 (sacralization)를 동전의 양면과 같은 '문화적 쌍둥이'라고까지 설명한다. 현대인들은 높은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성이 종종 기독교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교회는 세속화라는 과정을 겪으면서 교인 수의 감소와 교회의 영향력 축소를 가져왔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세속적인 현대 문화는 오히려 종교적 영성에 대한 열망을 잉태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속화와 신성화의 이 두 싸움에서 교회는 동일하게 큰 패배자가 되었다고 쉥크는 뼈아프게 진단한 바 있다.
미션 네트워크의 대표 이안 프라이스 (Ian Price)는 선교 사역의 중요한 네 가지 영역으로 소속감(Belonging), 신앙(Believing), 행동(Behaving), 존재(Becoming)를 지적한 바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초대 교회의 선교 사역만을 놓고 보더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신앙이 전파되기 위해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성령은 교회 공동체에 주어졌으며 소속감을 가진 초대 교회들의 실천적 행동을 통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된 존재로 역할을 다하며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거룩한 존재로 변화되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대한 신앙(Believing) 영역에 있어서 교회는 확고한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소속감(Belonging)을 위한 공동체 영성의 개발과 훈련, 행동(Behaving)을 위한 바른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윤리 회복, 그리고 존재(Becoming)를 위한 개인적 영성의 회복과 훈련은 선교적 갱신에 있어서 필요한 신앙적 요소라고 하겠다.
이단 사이비 종교는 일반적으로 사회적인 불안과 정치적인 혼란, 도덕적인 해이와 기존교회의 역할 상실 등과 같은 현상의 결과로 인해 사람들이 불안과 허무감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며 희망을 잃게 될 때 생성되고 번성한다. 또한 급격한 사회변화가 있을 때, 이단과 사이비 종교의 포교가 빈번해지는 예를 역사적으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세계적인 선교신학자 레슬리 뉴비긴 (Lesslie Newbigin)은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계몽주의 이전의 사회에서는 이단이라는 개념이 절대적인 기준에 반대하는 소수라는 의미를 가졌지만, 후기 계몽주의 사회 이후에 와서는 모든 사람이 이단적 입장에 설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도전받고 있다"고 까지 말했다.
뉴비긴의 이러한 경고는 개인적 영성과 공동체의 소속감에 대한 선교적인 대안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이단 사이비 종파는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소속감에 대한 관심과 필요를 포착하여 그들의 포교활동에 이를 이용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통일교 등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개인적 이단이나 샤만적인 이단과는 달리 공동체적인 이단(the communal cult)은 그들의 역할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가질 만한 요소들을 갖고 있고 또한 포교에 열정적이기 때문에 대중성을 띠게 된다. 극명한 한 예로, 본 교단 총회가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문선명 집단이 주최하는 '피스컵 축구대회'와 같은 행사가 바로 현대의 문화적 코드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 이단집단의 포교 활동이다. 신앙 (Believing) 이전에 소속감 (Belonging)에 대한 현대인들의 욕구와 심성을 자극하는 이단 나름대로의 효과적인 포교활동이라고 하겠다.
또한 이단 사이비 종파들은 대부분 신비적인 체험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따르는 무리들도 이러한 신비적 현상에 매료되거나 이를 염원하면서 광신적인 열기로 들떠 있는 상태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성적인 사고는 설득력을 상실하며 맹목적인 신앙으로 치닫게 된다. 이단 사이비 종파의 교주들이 과대망상증에 걸린 것처럼 추종자 자신들도 자신의 위치와 신분을 객관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단 사이비 신도들은 개인 스스로의 내적 구원의 확신에 따라 행동하게 되며 믿는 바에 대해 교만해지는 습성을 갖고 있다.
그 결과, 보편타당한 기존신앙의 원리를 무시하고 주관적인 인식에 근거한 몰입상태에 빠진다. 이단 사이비 종파들은 개인의 실존에서 건전한 영적 자유를 얻게 하려고 하기보다 불행하게도 종교적 열망을 비뚤어진 양태로 악용하고 있다.
뉴비긴이 그의 책 'Open Secret (열린 비밀)'에서 지적하듯이, 선교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교회의 진정한 갱신은 역사적으로 교회의 선교적 개입 (missionary engagement)과 함께 이루어졌다. 갱신과 선교는 기독교 정체성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교회는 세속화 (secularization)와 신성화 (sacralization)라는 두 가지 전투에서 모두 승리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의 이름으로 문화를 변혁하는 것은 교회에 주어진 가장 어려운 과제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교회의 선교적 사명은 변하지 않았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단 사이비 종파들은 그들의 포교활동에 있어서 왜곡되었지만 현대인들의 신성화 (sacralization) 현상에 대해 나름대로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단의 포교를 통해 보이는 문화적 현상에 대해 우리는 나름대로 명민하게 선교적인 통찰을 얻어야하겠다.
문화를 개혁하는 교회의 선교적 과제가 아무리 어려운 난제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교회는 역사적으로 지혜롭게 그 전통에 내재되어 있는 신앙적인 뿌리와 긍정적인 요소들을 잘 활용하여 왔다. 신앙의 공동체로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로 서고자하는 거룩함에 대한 열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믿고 있는 복음의 뿌리이다. 교회는 계속되는 선교적 갱신을 통해 모든 문화적인 도전을 극복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생활속에 파고드는 이단ㆍ사이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 2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유영권교수
연세대 연신원/목회상담학
한국의 개신교는 이 땅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되는 기간에 괄목할 만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거리에는 밤마다 십자가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지만 진정으로 이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그리고 질적으로 성장한 모습을 갖추고 각 교회 교인들이 건전한 믿음으로 사회를 올바르게 변혁시키는 역할을 담당해 왔는지 반성해본다.
얼마 전 사이비 종교 교주로부터 성폭행 당한 이야기를 하는 여성들의 괴로워하는 모습, 그리고 한 이단 교회 신도들의 폭력적인 모습들을 보면서 그들도 한 때는 기존교회에 출석하던 순진한 교인들이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과연 이들이 어떤 이유로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되었을까? 기존교회의 어떤 면들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니 어떤 불만을 가졌기 때문에 사이비 종교로 옮겨갔을까? 라는 질문을 가진다. 이 글을 통해 사이비종교에 빠지는 이들의 심리적 분석과 함께 이들을 돌보는 방안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기존교회에서 보여지는 폐쇄적인 성향으로 인해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기성교회 지도자들에게 심리적 상처를 받은 경우 사이비 이단에 빠지는 경향을 가진다. 어느 구역공동체에서는 자신의 수준에 맞는 사람들 끼리 모여 자신들만의 편안함 때문에 경제적 수준이 낮거나 자신들의 문화와 맞지 않는 새 구역원이 들어 올 경우 일부러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구역도 있다고 한다. 교회가 대형화 되어 한 교인이 어느 공동체에 소속되기가 힘든 구조 속에서 외로워하는 교인들에게 이단들은 교묘하게 접근하여 심리적 위안과 강력한 소속감을 제공해준다.
둘째로 명확하고 체계적인 교리교육의 부재를 지적하고 싶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성경에 관한 궁금한 점들에 대해 가려운 곳을 긁어 주듯이 명확하고 속 시원하게 해석해 주는 이단의 편협적인 성서해석에 넘어간다. 왜 어느 정도로 배운 지식층들도 그렇게 편협한 성서해석에 속아 넘어갈까? 기존 교회에서 체계적인 성경공부를 하지 않았던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이단과 사이비 종교의 성경공부를 보면 무척 체계적인 성경공부 조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단 성경공부의 특이한 점은 성경공부 자체가 단지 교육을 위한 것 뿐만 아니라 집단상담적 요소가 가미되어 성경공부 구성원들 간에 단단한 응집력을 가지게끔 운영된다는 것이다. 필자가 상담한 이단에 빠진 여신도는 자신이 빠진 곳이 이단인줄 알면서도 그 곳에서 느낀 사랑과 소속감 때문에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았다. 집단상담적 요소가 가미된 성경공부에서는 지금까지 토로하지 못하였던 자신들의 비밀스런 이야기도 나누는 신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이러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자신들만 문제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같은 인생의 짐을 지니고 있다는 문제의 보편성(universality)을 확인하고 안도감을 갖고 위로를 받는다.
셋째로 대인관계 갈등이나 개인적 상흔이 있는 경우 이단과 사이비에 빠지기 쉽다.
대학생들이 이단과 사이비종교에 많이 빠지는 데 자신의 진로에 대한 불안과 정체성에 대하여 혼란에 빠져 있을 경우 확실한 미래와 대답을 제공해 주는 이단과 사이비에 빠져 심리적 위안을 추구한다. 필자가 상담한 이단에 빠진 사례들을 보면 가족들 간에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 가족들로부터 받지 못하는 심리적 위안을 사이비 집단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가족관계가 서로 양육적이고 안아주는 환경이라면 사이비 집단에 빠졌어도 다시 나오는 데 수월한 경향을 보인다. 한편 개인적으로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거나 잊을 수 없을 만큼의 큰 상흔을 가지고 있을 경우 이러한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신비하고 마술적인 힘들에 의지하려고 한다. 무의식적으로 자신 안에 있는 개인적 상흔들을 치유해 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게 되어 사이비 교주들이 현실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비극적 현실을 뛰어넘어 이상형의 세계로 이끌고 나갈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투사 (Projection)한다.
넷째로 IMF 이후 경제적 상황의 위기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현재의 어려운 상황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심리 때문에 이단과 사이비에 빠져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현대인들이 지니고 있는 특성 중에 하나로 인내력의 부재와 충동성을 들 수 있는데 이로 인하여 한 개인의 위기나 스트레스를 이기는 능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이러한 인내력의 부족은 자신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이단과 사이비집단에 빠지게 만들어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깊게 고민하며 자신이 처한 스트레스 상황을 이겨나가는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충동적으로 우선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극을 제공하는 곳을 찾게 된다.
위와 같은 사이비 집단에 빠지게되는 요인들에 대하여 교회에서 제공할 수 있는 대처방안을 몇 가지 제안하고자한다.
첫째로 교회 내에서 소공동체 활동을 통하여 교인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한다. 현재 사이비와 이단 집단에 빠지는 계층들 중에 경제적으로 하류계층이나 못 배운 사람들 뿐만 아니라 많이 배우고 경제적으로도 풍부한 사람들도 볼 수 있다. 왜 부족한 것 없는 사람들이 이단과 사이비 집단에 빠질까? 이들은 한국의 자유경쟁 속도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인하여 어디엔가 소속되어 정서적 안정감과 충족감을 받고 싶은 것이다. 교회가 사회에서 스트레스 받은 사람들에게 영적 안녕과 심리적 평안감을 주어야 할 텐데 교회에서 조차도 총동원 주일, 장로투표 등 경쟁체제의 논리로 운영되는 모습 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위안 보다는 더 긴장과 경쟁의 느낌을 가지게 된다. 점점 고립화되고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한국사회에서 교회만큼은 그들에게 위안과 평안을 주어 소속감을 심어 주어야한다.
둘째로 체계적인 성경공부를 강화해야한다. 교회에서 실시하는 성경공부 내용에 어떻게 성경적 가르침을 실생활에 적용할지에 대한 구체적 사례와 함께 교인들의 생활에 적용될수 있는 성경공부 내용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성경공부를 시행하는 데 있어 내용 전달만 하는 성경공부가 아닌 집단상담의 요소를 가미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어 서로 들어주고 치유해 줄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혼자만 가지고 있다가 다른 사람과 나누면서 무게를 줄일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문제와 고민을 들으면서 자신의 문제에 대한 심각성과 민감성도 줄어들게 되어 자신의 문제를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셋째로 이단과 사이비 집단에 빠졌다 다시 나온 사람들을 사랑과 인내로 감싸주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단과 사이비 집단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신학적 논쟁을 하다보면 벽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는 것 처럼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이들에게는 든든하게 자신들을 믿어주고 이해한다는 느낌을 주어야 이단과 사이비에 대한 의구심을 느낄 때 빠져나올 수 있는 지지대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한 이단의 전략 중 기존 교회에 들어가서 열심히 봉사하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자신이 이단에 빠졌다고 자백하면서 목회자가 이단에 빠진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어떻게 목회자가 교인에게 이렇게 소홀하게 대할 수 있느냐, 우리 목회자는 사랑이 없다"는 형태로 비판하여 교인들 간에 분열을 조장하는 전략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이단에 빠졌다가 다시 교회에 돌아가더라도 기존 교인들의 냉랭한 태도와 이상한 사람을 보는 듯한 눈초리가 이들을 다시 이단에 빠지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된다. 이들이 다시 돌아와서 교회에서 설 땅이 별로 없다. 이들이 다시 돌아올 때 마치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의 마음처럼 너그럽게 포용하고 안아주는 태도와 환경을 조성한다면 다시 이단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넷째로 예방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평신도들은 어떤 교회가 이단인지 잘 모른다. 심지어 목회자들도 이단에 대해서는 언론을 통해서 소식을 듣고 정작 전문가여야 할 목회자들에게는 이단에 대한 정보와 전문적 지식이 결여된 것을 볼 수 있다. 목회자들의 연장교육에 이단과 사이비에 대한 정보와 교육이 제공되어야 하고 일반 교인들에게도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이단과 사이비에 대한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는 앞만 보고 성장위주로 달려왔다. 마치 70년대, 80년대 고도의 경제성장으로 인하여 한국사회 곳곳에 상처 난 공간들이 많이 생긴 것 처럼 한국교회의 괄목할만한 성장의 과정에 질적인 돌봄의 부재로 생겨난 흔적이 사이비와 이단집단일 것이다. 현재 한국의 이단과 사이비 집단의 양적 팽창은 기존 교회에서 해야 될 일들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주는 하나님의 사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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