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서론: 성경 신학의 본질과 방법론

 

신학이란?

1. 어원적 정의: 하나님에 관한 학문이다.

2. 종교학적 정의

1) 종교를 주관적으로 이해하여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종교적 현상과 경험들의 총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취하면, 신학은 이미 사람의 정신적인 삶을 다루는 인류학 분야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될 것이다.

2) 종교를 객관적으로 이해하여, 하나님이 제시하였기 때문에 사람으로서 반드시 따라야할 정상적인 의무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면, 하나님이 어째서 다른 종교가 아닌 바로 이 종교를 요구하시느냐 하는 것이 의문이 들 것이고, 이 의문에 대답은 오로지 하나님의 본성과 뜻에서만 찾을 수 있을 것이므로, 결국 하나님을 다루게 되어 있는 것이다.

3. 신학을 하나님에 간한 학문으로 정의해 놓고 보면, 신학이 계시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이 뒤따르게 된다. 비인격적인 대상들을 과학적으로 다루는 경우에는 우리들 자신의 편에서 그 일을 주도한다. 하나님 속에 감추어진 그의 뜻의 내용은 오로지 하나님 편에서 자의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셔야만 비로소 사람의 소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족스럽게 알기 위해서 반드시 계시가 필요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처하여 있는 비정상적인 처지 때문이다.

 

신학의 네 가지 분과

1. 신학의 4가지 분과 : 주경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

2. 주경신학이 포괄하는 과목

1) 성경의 실질적인 내용 연구

2) 서론: 저자, 저작 연대와 배경, 가능한 전거 등 성경 각 권들의 기원에 대한 연구

3) 정경론: 성경 각 권들이 어떻게 하나의 성경으로 묶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연구

4) 성경신학 : 시공간 속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는 일을 연구함

3. 신적인 활동의 관점에서는 순서는 성경 신학, 정경론, 서론, 성경의 실질적인 내용 연구 이다.

 

성경 신학의 정의

성경 신학은 주경 신학으 한 분과로서 성경에 저장되어 있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 과정을 다루는 것이다.

 

 

 

 

1. 계시 과정의 역사적 점진성

계시란 구속의 역사다. 계시는 홀로 서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계시에 관한 한) 하나님의 또 다른 활동, 구속이라 부르는 그것과 불가분의 관계로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계시의 과정과 구속의 과정이 서로 전적으로 범위가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구속은 일부 객관적이요 중심적이며, 일부는 주관적이요 개인적이다. 객관적인 하나님의 행위들을 중심적이라 부르는 것은, 그것이 구속이라는 중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전 범위에 독같이 관여하며 또한 반복이 필요 없고 반복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주관적 영역에 속한 행위들을 개인적으로 부르는 것은, 그것들이 각 개인마다 별도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계시는 오로지 객관적이며 중심적인 구속 과정에만 수반되며, 그렇기 때문에 구속이 계시보다 더 나중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2. 역사 속에서 계시가 실질적으로 구체화 됨

계시의 과정은 역사와 공존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역사 속에서 구체화된다. 우리는 행위 계시를 말씀 계시 옆에 두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기억해야 할 점은 첫째, 이 두 가지 면을 지닌 행위들의 주목적은 계시를 초월하는 것이요,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관계되는 면을 지니며, 오로지 그 면에 의존해서만 교육적인 목적으로 인간에게 관계되는 것이다. 둘째, 행위 계시들은 절대로 자기 혼자 말하도록 내버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 계시들에 앞서서 혹은 그 뒤에 반드시 말씀 계시가 있는 것이다.

 

3. 계시 속에서 볼 수 있는 역사적 과정의 유기적 본질

계시의 점진적 진전은 유기성을 띤다. 유기적 과정은 씨앗의 형태에서 시작하여 충만한 성장을 이루는 데까지 지속된다. 그러나 우리는 질적인 면에서 씨앗이 성숙한 나무보다 덜 완전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런 특성은 처음 등장할 단계에서도 진리가 구원론적 충족성을 지닐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해 준다. 구속의 움직이 유지적 성격을 띠고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가므로, 계시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성경에서 심한 정도의 가변성과 상이성을 들추어내는 일은 성경의 절대성과 무오성을 믿는 믿음에 치명적인 해가 될

 

것이라고들 주장한다. 그러나 진리는 본래 풍성하고 복잡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러하시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문제를 삼는 태도는 전체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본성과 세상과 그와 관계에 대한 그릇된 견해에 근거한 것이요, 이신론적인 사고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그의 의도에 따라 계시의 모든 기관들을 사용하시고 통제히시므로, 그것들 하나하나를 정확한 목적에 맞추어 형성시키신 것이다.

 

4. 성경 신학의 연구를 결정지어주는 계시의 네 번째 면은 그 실질적인 적용성에 있음

하나님의 자기의 자기 계시가 우리에게 주어진 주된 목적은 지성적인데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해서 드러내신 모든 것은 그의 백성의 실질적인 신앙적 필요들에-그것들이 역사의 과정 속에서 제기됨에 따라서-부응하여 주어진 것이다.

 

성경 신학이라는 명칭으로 계속 지칭되어온 갖가지 것들

처음에는 조직 신학 연구에 동원된 증거 본문들을 모아 놓은 뜻을 지칭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 다음에는 경건주의자들이 교의학의 극단적 스콜라주의적 방법론에 대응하여 사용하였다.

요한 가블라에 의해서 성경 신학의 구체적인 차이이점이 성경 본문을 역사적으로 다루는 원리에 있는 것으로 올바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가블러가 속한 학파는 이성주의 영향을 받았다. 여기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점은 진리와 믿음의 영역에서 하나님에 대항하여 부당하게 자기주장을 내세운다는 사실이다.

진리를 역사적으로 추적해 들어가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과거에는 하나의 장점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근본적인 경건이 결핍된 상태로 그런 일이 해해지자, 그 자체를 신학이라 부를 권리조차 스스로 상실하고 말았다.

진화론적 철학에 의하여 영향 받은 오늘날 성경 신학은 첫째로 진화의 가설이 세계의 전개 과정에서 찾는 질적인 진보가 종교적 진리의 출현까지 확대된다는 점이다. 둘째로 진화론 철학은 실증 철학과 한 가족이다. 실증 철학은 현상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것이 없다고 가르친다.

 

주도적인 원리들

1) 계시의 무오한 성격을 이 용어를 정당하게 신학적으로 사용할 때에 필수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격적이시며 의식적이라면, 그가 자기를 드러내실 모든 양상이 그의 본성과 목적을 오류 없이 표현하는 것이라는 추론이 불가피해진다.

2) 성경 신학은 계시라는 기반의 객관성을 인정해야 한다. 진정한 의사소통이 하나님에게서 사람에게 외부로부터 온다는 것을 뜻한다. “주관적 계시”란 곧 성령께서 인간의 잠재의식의 깊은 곳에서 내적으로 활동하심으로써 거기서부터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특정한 생각들이 나오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는 내부로부터 오는 것들의 범주에 집어넣는 현대의 경향에 대해 경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3) 성경 신학은 영감의 문제에 대해 깊이 관여한다. 성경 신학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그 주제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계시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권위에 의해서 “진리‘로 보게 되는 한 가지 요인으로서 영감의 사실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성경 자체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완전 영감”이거나 아니면 전혀 아무 영감도 아니거나 둘 중의 하나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계시들의 신빙성은 그 계시들이 나타나는 역사적 정황의 신빙성 여부에 전적으로 달려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성경이 우리에게 그 자신의 유기체의 철학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성경 신학”이라는 명칭에 대한 반론들 (문자 그대로 번역하자면 “성경적 신학”이다)

1) 이 명칭은 너무 폭이 넓다. 일반 계시를 제외하고는 신학은 모두가 성경에 근거를 두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2) “성경적”이라는 말을 그것 혼자만이 성경적 전거를 지니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고 다만 특수한 방법론을 지칭하는 말로-즉, 형식을 달리 바꾸지 않고 본래의 성경의 형식 그대로 진리를 재생시키는 방법을 뜻하는 말로-이해하면 된다고 답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 신학의 경우에는 그 원리가 역사적 성격을 띠며, 조직 신학의 경우는 논리적 성격을 띠는 것이다.

3) 그 명칭은 나머지 신학에 대한 명명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적절치 못한다.

이런 모든 이유로 볼 때에 “특별 계시의 역사”라는 명칭이 훨씬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용되어 이미 고정화된 명칭을 다른 것으로 바꾼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성경 신학과 신학의 다른 분야들의 관계

1) 성사(성경의 역사)와의 관계: 성사에는 구속이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계시를 끌어들이지 않고 구속을 다루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떤 특정한 행위들은 구속적인 동시에 계시적이기 때문이다. 이 두 영역은 존재의 영역과 지식의 영역이다. 존재의 영역에서는 세상을 올바른 상태로 돌리는 데에 구속의 과정이 채용되며, 지식의 영역에서 세상을 올바른 상태로 돌리는 계시의 과정이 사용된다. 전자는 성경의 역사를 후자는 성경 신학을 산출하는 것이다.

2) 성경 서론과의 관계: 특정한 경우들에서는 성경 문서의 연대와 저술의 상황들이, 계시의 체계 속에서 그 문서를 통해서 전해지는 진리의 위치를 결정하는 데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다.

3) 조직 신학과의 관계: 성경에 밀접하게 근거하는 면에 있어서는 둘 사이에 전혀 차이가 없다. 둘 사이의 차이는 변형을 이루는 원리들이 다르다는 것뿐이다. 성경 신학의 경우, 그 원리는 역사적 성격을 띠며, 조직 신학의 경우는 논리적 구성의 모습을 취하는 것이다.

 

성경 신학의 방법

성경 신학의 방법은 주로 역사적 발전의 원리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계시의 과정을 특정한 시기들로 구분하게 된다. 그 시기들을 임의적으로, 혹은 주관적인 선호에 따라서 결정해서는 안 되고, 계시 그 자체에서 드러나는 간격의 선들과 철저하게 일치하도록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주기성의 원리와 더불어, 각 시기들의 한계 내에서 진리의 여러 요소들이 함께 묶여지고 또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성경 신학 연구의 실제적 용도

1) 성경 신학은 특별 계시의 진리들의 유기적 성장을 밝히 드러낸다

2) 성경 신학은 이성주의적 비평의 가르침들에 대항하는 데 유용한 방어 수단을 제공해 준다.

3) 성경 신학은 진리를 그 본래의 역사적 정황 속에서 보여줌으로써 진리의 새로운 생명과 신선함을 부여한다.

4) 오늘날의 반 교리적 경향에 대해 성경 신학이 잘 대응할 수 있다. 종교의 자발적이고 감정적인 면들에 대한 강조가 너무 지나치게 두드러지고 있는 현실에서, 성경 신학은 우리의 종교적 구조에 교리적 기초가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증언해 준다.

5) 성경 신학은, 심지어 믿음의 근본적인 교리들조차도 혼자 고립되어 있는 몇가지 증거 본문들의 증언에 주로 의존하는 것으로 보이는 불행한 상황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준다.

6) 성경 신학 연구의 가장 높은 실제적인 유용성은 성경 신학 학도에게 유익이 되는 것과는 전혀 별개로 성경 신학 그 자체에 속하는 유용성이다. 모든 신학이 다 그렇지만, 성경 신학의 최고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신학은」하나님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하나님을 가르치며,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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