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글은 c3tv에 연제 하였던 글입니다.
디지탈시대의 중국선교와 중국교회의 이단 현황
목차 제1장 서론 제2장 다시 생각 해볼 중국교회의 선교정책 1. 중국의 경제 체제 변화 2. 중국 정부의 종교 정책 1).중국의 행정구역 2) 중국의 개황 3). 중국정부의 종교 정책 가. 기본 정책 나. 외국인의 종교활동 관련 정책 4) 외국인의 선교활동에 대한 중국의 입장 5) 참고사항 : 중국의 종교 관련 법령
가.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36조 나. 그 밖의 종교관련 법령 나. 종교활동 규제법령 주요내용
3. 중국선교에 대한 정책 변화
i. 삼자 (三自)교회 란 무엇인가? ii. 중국 의 정책적 변화와 종교 3). 왜 중국정부는 종교정책만은 중앙에서 관리하려 하는가? 4). 피룬궁은 어떤 단체인가? 5). 중국공산당의 탄압에 대한 파룬궁의 대응은 어떠했는가? 6) 중국식 공산당을 이해하는 선교정책이 필요하다 7) 중국땅에 맞는 선교정책 (1) 중국 교회가 처한 문제점 (2).문제점에 대한제언 제3장 중국교회의 이단 현황 (1).중국 정부의교회 관리 형태 (2).중국땅에서 자생한 이단 (3)외국에서 유입된 이단
제4장 결론 제1장 서론
필자는 지난 1년여 전에 있었던 뉴욕 무역 센타 911테러로 인하여 미국 방문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때에 [남가주 부흥교회]와 [미주 복음 방송국]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미주 지역 이단 실태와 대책 방안 그리고 한국에서 난립하고 있는 이단들의 현상에 대하여 강의를 한적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금번에는 중국지역에 만연하고 있는 [사스]라고 이름이붙혀진 괴질의 급속한 확장으로 중국방문을 꺼려하고 있는 싯점에 중국교회에는 한국기독교 이단들의 침투실태가 심각하다며 [이단과 대처 방안]에 대하여 강의 요청을 받았다. 중국 선교에 남다른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최 영배 목사님(국제 신학대학원 선교 담당 부총장, 중국 해서(海西)신학교 교장, 좁은문 교회 담임목사)의 중국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하는 진심어린 강연 요청은 [사스]의 두려움도 주의 만류도 전혀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필자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그동안 중국교회에 대한 현상에 대하여는 중국이 개방되어 교회의 문을 연지 20여년이 되었기 때문에 중국을 방문한 많은 목회자들과 중국에서 선교하고 있던 선교사들의 선교 보고를 통하여 입소문으로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중국교회의 실태와 중국 정부의 기독교에 대한 정책등에 대하여 알고 싶었고 조선족과 중국교회의 신앙 열정 정도를 알고 싶었다. 중국은 개방 정책을 펴기 시작하면서 종교에 대한 개방도 동시에 하였지만 그동안 들어왔던 소식들은 기독교에 대한 호의적 기사와 말보다는 기독교를 박해하고 선교사들에 대하여 공안 요원들의 감시와 핍박이 심하여 선교사들이 비밀리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는 소식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조선족 목회자들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궁금하였던 부분에 대하여 질문을 하면서 배우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금번 강의가 중국 동북 지역 삼성을 목회 할 수 있는 동북 신학교 1기생들을 대상으로 하루 8시간씩 3일간 24시간을 강의 하기로 계획 되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설래 이는 가슴을 안고 중국 남부항공에 몸을 싣고 2시간 10분동안 날아서 하얼빈공항에 도착하였을 때는 한국 시간 오후 8시 40분(중국시간오후7시40분)이었다. 중국 정부로 부터 공식 허가가 난 신학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한 [이단에 대한 강의]였지만 신학적 자질의 부족으로 어려움에 처하여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국제 라이프선교회] (회장)한태랑목사께 도움을 요청하여 중국어로 번역한 [루이스벌코프]의 [조직신학 개론]를 60권을 만들어서 55권을 가지고 들어 가는 모험을 하였다. 책을 가져 갈려고 하는 마음을 먹었 때부터 하나님께 기도하며 확신에 찬 마음으로 시도를 하였지만 가슴속에서는 하나님의 보호 하심이 없으면 모두 압수를 당하고 벌금을 물어야 할 처지 이므로 조마 조마한 마음은 하나님의 전적인 보호하심에 맡기는 기도로 꽉차 있었다. 통관대를 통과 하자 마자 앞사람이 책때문에 걸리었다. 그사이 자연스럽게 가방을 챙기어 나오려 하자 'book!' 하며 여직원이 내곁으로 다가 왔다. 그런데 왠일인지 내마음은 너무나 평안한 마음으로 사로 잡혀 졌고 나는 웃으면서 다가가서 손에 들었던 책가방을 열어 보여 주자 공항의 여직원은 앞쪽에 있는 책만 한권 꺼내들고는 웃으면서 펼쳐 보더니 가방 뒤쪽에 있는 강의 원고를 가리키면서 저것은 무엇이냐를 물어서 'notebook'라하자 의외로 인사까지 하면서 보내 주었다. 손에 들었던 가방에도 또다른 5권의 책이 있었고 다른 가방에도 많은 책이 들어 있었지만 하나님의 간섭에 의하여 여직원의 눈을 가리워주었고 내미소만 바라 본것같다. 통과가 되었다는 사실 앞에 감격과 감사가 내가슴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중국이 큰 나라다 라는 사실이 대하여 아직 실감을 하지 못한 필자는 마중 나온 00신학교 담당자로 있는 P선교사님의 영접을 받아 강의 장소 까지 중국 영업용 택시를 타고 달려 갔다. 위도상 우리 나라 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추울거라는 생각 때문에 겨울 옷을 준비하여 갔지만 바람만 조금 있을 뿐 추위는 느낄 수 없었다. 하얼빈 공항을 빠져 나간 택시는 하얼빈 시내를 가로 질러 시멘트로 만든 이차선 고속도로를 달려 가지만 끝이 나타나지 않았다. 좌우로 흐릿하게 보이던 끝없는 들판과 차창 밖으로 스치고 지나 가던 중국의 농촌 집들은 암흑으로 쌓여 졌고 가끔씩 반대편 차선으로 달려 내려 오는 트럭 들과 차들이 아슬아슬하게 피하여 지나 가곤 하였다. 중국의 고속도로는 휴게실이 없어서 쉴 수도 없고 다만 지계를 벗어 날 때마다 톨게이트가 있어서 도로비를 내느라고 차가 잠깐씩 멈출 뿐이었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젊은 중국인 기사(한족)도 피곤한지 준비한 물병을 연거퍼 들여 마시면서 상향등을 켜고 달려 오는 상대편 차의 기사들을 향하여 욕을 해대곤 하였다. 5시간 이상을 달렸을까? 선교사님 입에서 “이제 마지막 톨게이트입니다. 이제 약 20-30분이면 우리 집이 있는 M도시 입니다.” 하였다. 내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는 새벽 2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선교사님! 인천 공항에서 하얼빈 까지 오는 거리 보다 하얼빈에서 M도시 까지가 몇배나 시간이 더 걸리는군요” 하며 피곤한 웃음으로 큰 나라 임을 실감하며 웃었다. 한국으로 말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 만큼은 되는 듯하였다. “선교사님! 택시비는 얼마나 하나요?” “부담을 느낄가 봐 말을 하지 안으려 했는데… 한 사람 앞에 100원입니다. 초등학교 교사 한달 봉급이 500이니까 중국에서는 큰돈입니다. 그래서 서민들은 장거리만큼은 택시를 탈수 없으므로 기차를 많이 이용합니다. 큰 나라 이지만 철도망이 잘 발달 되어 있어서 전국 어디나 기차만 타면 갈 수 있습니다.” “아니 이 큰 나라를 기차를 타고 언제 갑니까? 비행기를 타면 빨리 갈수 있자나요”하자 “비행기는 서민들에게 있어서 그림의 떡입니다. 비행기를 한번 탈려면 북경까지 1000원은 주어야 하는데 서민들의 봉급 두어달치 입니다. 중국에서 여행을 할 때는 반드시 마실 물을 준비 하여야 하며 차를 타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와야 합니다. 그래서 한족들은 장거리 여행을 할 때 한 보따리씩 먹을 것과 물을 준비하고는 침대 칸에 자리를 잡고 잠을 자면서 갑니다. 침대칸도 4인이 들어 갈수 있는 1등급과 6인이 들어 갈수 있는 2등급이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침대 칸에 탈수 없으므로 우리나라 60-70년대에 달리던 등받이가 재 껴지지 않던 기차와 같은 차를 타고 하루고 이틀이고 갑니다.”라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새벽 두시가 훨씬 넘어서야 M도시 선교사님의 아파트에 도착하였다. 운전을 할 때 고속도로상에서 상대편 차의 기사들에게 하였던 태도 와는 달리 상상외로 친절한 중국인 택시 기사는 내 기내용 가방을 들고 아파트 입구까지 들어다 주는 등 매우 친절하게 말하였다. 첫인상 부터가 그 동안 들어 왔던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지기 지고 있었다.
제2장 다시 생각 해볼 중국교회의 선교정책 1.중국의 경제 체제 변화 중국은 냉전체제가 와해된 이후 군사력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감소됨으로써 더 이상 국제질서가 과거와 같이 미국과 러시아에 의해 주도되던 상황이 계속되지 않게 되고,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 유럽,일본 및 중국 등에 의한 다국체제가 새로이 형성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또한 구소련 붕괴이후 경제력을 중심으로 하는 종합국력이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요인이라는 사실이 입증되게 됨으로서 세계 각국이 경제발전에 매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냉전이후 국제관계에서 경제력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국가간 경재의 중심이 군비경쟁에서 종합국력의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인식하면서 중국은 기존의 폐쇄적인 경제체제에서 개방적인 체제로 변환되면서 대외적인 안보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의 경제발전전략은 1978년 11월 중앙공작회의와 12월 중국 공산당 제11기 3중전회를 기점으로 급격한 변화를 보여왔으며, 당시 회의를 통해 결정된 사안은 다음과 같다. (1).중요한 기본적 사상으로 유지되어왔던 좌편향과 인식의 문제들을 시정한다. (2).더이상 계급투쟁을 강령으로 삼지 않으며, 사회주의 현대화건설을 위해 노력한다. (3).농업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 (4). 국민경제의 비례 불균형과 경제관리 체제와 권한의 과도한 집중화 현상을 해결한다 라며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로 발전하여 갔다. 그 결과 2002년에 중국의 GDP는 세계 4위로 올라 서고, 이를 구매력 기준으로 평가하면 미국을 앞지르고 일본의 2배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경제적 진보주의와 정치적 보수주의 사이의 격렬한 충돌이 있었다.그로 인하여 민주주의에 대한 분출과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인하여 빈부의 격차가 생겨 나면서 공산주의 경제 체제와 맞지 않는 사회적 현상으로 인하여 불만 세력들에 의하여 1989년에 천안문에서 거대한 사건이 터지기도 하였다. 이때 당시 실력자인 등소평은 자기 후계자로 지목했던 호요방과 조자양을 민주화 세력에 동조하였다 하여 자기 손으로 숙청하는 모순에 빠지게 되었고 여기에 대하여 서방 세계의 반발이 일어 나면서. 개방과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경제개혁과 민주화를 지향하는 정치개혁을 어떻게 적절히 조화시켜 나가느냐 하는 심각한 고민을 하면서 중국의 정치, 사회는 평온한 것 같고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중국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넜고 지금의 변화의 방향 즉, 국제화, 정보화, 민주화의 방향을 거역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중국은 계속적인 변화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2.중국 정부의 종교 정책 우선 중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 인가? 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념적이거나 역사 적인 것은 학교 교육 을 통하여 조금은 알고 있으나 그러나 중국의 크기나 역량에 대하여는 피부로 감지 하지 못하고 막연하게만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1).중국의 행정구역 행정구역을 크게 성(省), 현(縣), 향진(鄕鎭)의 3급체제로 나뉘어 통치를 하고 있다. 省 級 : 22성, 4직할시, 5자치구, 2특별자치구 (중국은 대만을 23번째 성으로 간주) 22개성 - 화북구 : 하북성, 산서성 - 서북구 : 섬서성, 감숙성, 청해성 - 동북구 :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 화동구 : 강소성, 절강성, 안휘성, 강서성, 복건성, 산동성 - 중남구 : 하남성, 호북성, 호남성, 광동성, 해남성 - 서남구 : 사천성, 운남성, 귀주성
직할시 : 북경, 천진, 상해, 중경 자치구 : 내몽고, 신강위구르, 서장, 광서장족, 영하회족 자치구 특별자치구 : 홍콩, 마카오 -州 級(총 337개) : 113地區, 30자치구, 8맹(내몽고) 185시 -縣 級(총 2181개) : 260시, 1748현, 114자치현, 51旗, 3自治旗, 3특구, 1공업구, 1林區 -市轄區(총 650개) : 35직할시 시할구, 615성(자치구), 할시시할구 -鄕, 鎭: 향은 농촌의 말단단위이며, 진은 도시의 말단단위
2) 중국의 개황 국 명 : 中華人民共和國(People's Republic of China: PRC) 건국일 : 1949. 10. 1 수 도 : 北京 (인구 1,200만명, 97년 현재) 면 적 : 약 960만㎢ (한반도의 44배, 세계 3위) 남북 : 남사군도(23˚N) .....흑룡강(53˚32´N), 5,500㎞ 동서 : 파미르고원(73˚E)...우수리강(135˚E), 5,500㎞ 영해 : 12해리(1958.9.4 선언, 1992.2.25 영해 및 접속수역법 제정공포) 국경선총길이 :20,280㎞(한국,러시아,몽골,중앙아3국 ,아프카니스탄,파키스탄,인도,네팔,부탄,미얀마,라오스,베트남 등 14개 국가와 육지접경) 인 구 (99년 기준) 12억 5,909 만명 (세계인구의 약 1/5) 증 가 율 : 1.006%, 인구 밀도 : 125명/㎞
민 족 : 漢族과 55개 소수민족 9120만명으로 전인구의 8.0% 조선족 : 192만명으로 소수민족의 2.6%(북경에 약 10,000명) 언어 : 중국어 (민족 자치구에서는 소수민족언어병용) 국정공휴일 : 신정(1.1), 춘절(음력 1.1-3), 노동절(5.1-3), 국경절(10.1-2)종 교 : 불교, 도교, 회교, 기독교 등 정 치 정 체 : 노농연맹에 기초한 인민민주독재의 사회주의 국가(93년 신헌법 제1조 규정) 정부형태 : 공산당 일당 독재(형식상 8개 정당존재) 의 회 : 단원제(전국인민대표대회) 행정구역 : 22개성, 4개직할시, 5개자치구 (중국은 대만을 23번째 성으로 간주) - 97.7.1,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인수받아 특별행정구 설치 - 99.12.20, 포르투갈로부터 마카오 인수받아특별행정구 설치
이렇게 복잡하고 거대한 행정구조 때문에 경제나 정치 체제는 자치구에 대부분 이향하는 형태의 행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종교 정책만은 자치구에 유임하지 않고 중앙에 종교국을 두어서 각 종교를 규제하며 치리 하고 있다. 그리고 종교국은 각성과 자치구마다 지국을 두고 각 종교마다 양회를 두어서 관리하고 있다. 즉 기독교 양회에서 목사를 안수하고 파송하며 교회를 치리하게 한다. 교회 설립은 한 지역에 한 교회를 원칙으로 한다. 그래서 방대한 지역에서는 모교회에 달린 지교회(처소 혹은 가정교회)를 두어 모 교회가 관리를 하다가 지교회가 성장하면 종교국에서 심사하여 교회로 승격시키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3). 중국 정부의 종교 정책 가. 기본 정책 중국은 1982년 제정〈신헌법〉36조에서 종교신앙의 자유 및 정상적인 종교활동에 대한 국가의 보호를 규정하는등 중국공민에 대한 기본적인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종교를 믿지 않을 자유를 보장하고, 종교를 이용하여 사회질서, 공민의 신체건강 및 국가 교육제도를 방해하는 활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는 등 국가와 사회질서의 틀 속에서 종교활동을 할 것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나. 외국인의 종교활동 관련 정책 중국은 기독교계 '삼자 신학원'을 통해 목회자를 독자적으로 양성, 운영하는 등 종교문제에 관한 외세 개입을 배격하고 있다. -〈신헌법〉36조는 '종교단체와 종교사무는 외세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 2000.9.26 제정한〈외국인 종교활동 관리규정 시행세칙〉에서는 외국인의 중국인에 대한 선교활동 등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4) 외국인의 선교활동에 대한 중국의 입장 가. 외국인의 중국인에 대한 선교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실정법에 따라, 일부 한국인의 선교 활동은 90년대 초부터 중국 당국의 직접적인 제재를 받은 바 있다. 92년 이래 동북3성 등지에서 한국인에 의한 기독교 활동을 다수 적발, 한국 교회 관련 조직과 집회 및 연락장소 조사, 대형 기도회 등 집회활동 저지, 종교선전물 다량 압수 등 조치를 취한 바 있으며 최근 중국 당국은 우리측에게 중국내 한국인들에 의한 '불법선교 문제'를 여러 차례 제기하고, 이를 자제 시켜 줄 것을 요망하기도 하였다.
나. 중국 정부는 한국인 선교사 등에 의한 선교 문제를 중국 주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관련 중국법에 따라 엄중 대응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다. 특히, 동북3성 지역에서의 선교 문제를 중점 감시를 하고 있는데 요즘에는 탈북자들을 돕는 문제로 선교사들과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으며 이단들의 지하 교회로 침투로 인하여 가정 파탄 삼자교회와의 갈등이 많이 일어 나서 건전한 선교사들까지도 집중 단속 대상이 되어 있다. 5) 참고사항 : 중국의 종교 관련 법령 가.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36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종교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어떠한 국가기관, 사회단체 또는 개인도 공민이 종교를 믿도록 혹은 믿지 않도록 강제할 수 없고, 종교를 믿는 공민과 믿지 않는 공민을 처벌할 수 없다. 국가는 정상적인 종교활동을 보호한다. 어떠한 개인도 종교를 이용하여 사회질서를 파괴하거나 공민의 신체건강을 해치고 국가교육제도를 방해하는 활동을 할 수없다. 종교단체와 종교사무는 외세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나. 그 밖의 종교관련 법령 외국인 종교활동 관리규정 시행세칙(국가종교사무국령, 2000.9.26 선포) 종교활동 장소 등기판법(종교활동 장소 등기 규칙, 국가종교사무국령, 1994.4.13 선포) 외국인 종교활동 관리규정(국무원령 제144호, 1994.1.31 선포) 종교활동 장소 관리조례(국무원령 제145호, 1994.1.31 선포) 기타 각 지방 종교사무국에서 제정한 조례 등
다. 종교활동 규제법령 주요내용 외국인 종교활동 관리규정(13개 조, 국무원령 제144호, '94.1.31) - 외국인 종교단체 설립 및 예배를 위한 집회소, 종교학원 운영 금지 - 중국 공민중 신도의 확대 발전이나, 성직자의 임명 등 선교활동 금지 - 개인적 용도 외의 종교관련 서적, 녹음물, 비디오의 반입 금지 종교활동 장소 관리조례(20개 조, 국무원령 제145호, '94.1.31) - 사원, 교회내에서의 정상적인 종교활동만 인정 - 내.외국인의 집회장소 사적 설치.관리 불가 - 종교활동 장소를 설치하려면 반드시 사전 등록 의무 외국인 종교활동 관리규정 시행세칙(국가종교사무국령, 2000.9.26) - 제17조 : 외국인은 중국 내에서 다음과 같은 전교활동을 할 수 없다. 중국공민을 종교 교직자로 위임하는 행위 중국공민을 대상으로 종교신도를 확장하는 행위 종교활동 장소에서 자의적으로 강론, 설교하는 행위 비준을 받지 않고, 법에 의거해 등기된 종교활동 장소 이외의 다른 장소에서 강론, 설교하거나 종교집회 활동을 진행하는 행위 종교활동 임시장소에서 중국공민이 참가하는 종교활동을 거행하는 행위 (다만, 초청을 받아 종교활동을 주재하는 중국 종교 교직자는 제외) 종교 간행물, 종교음향.영상기기, 종교 전자출판물 등 종교용품을 제작 또는 판매하는 행위 종교 홍보물을 배포하는 행위 등. 3. 중국선교에 대한 정책 변화 위의 자료를 살펴 보면 중국선교에 대하여 만은 다른 지역과는 다른 선교 정책의 변화가 있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위에서 밝힌 대로 중국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중국만의 독특한 경제 정책를 가지 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성장하고 돌아 가는 나라이며 일당 공산주의라는 사회주의적 정치 제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개방하면서 자본주의적 삶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종교정책도 [종교신앙의 자유 및 정상적인 종교활동에 대한 국가의 보호를 규정하는 등 중국공민에 대한 기본적인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라고 하면서도 일반적인 교회 정치제도와 치리제도를 거부하며 일반적으로 교회가 갖고 있는 전도 방법을 거부하면서 중국 정부는 교회로부터 자전(自傳) 자양(字養), 자치 (自治) 할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반적 상식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중국만이 가지는 독특한 형태의 제도 아래 있는 나라에서 어떻게 하면 선교사들이 다치지 않고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 않는 범위 안에서 중국교회를 섬길 것이가? 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러나 중국교회의 모습을 살펴보면 1949년 마오쩌뚱이 중화인민 공화국을 수립 한 후 모든 외국 선교사를 쫓아 내고 약200만명에 이르는 기독교인을 처형하면서 중국 땅에는 교회도 기독교인도 없다고 했으나 1979년 중국이 개방의 문고리를 열 때 2000만의 신자가 있었고 지금은 중국인구 약10%(13억)가 기독교인이라고 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한계로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하는 땅이다. 1) 삼자 (三自)교회 란 무엇인가? 중국에서 합법적으로 인정한 교회를 삼자 교회라고 한다. 삼자란 자전, (自傳)자양(字養), 자치 (自治) 를 일컫는다. 중국 선교사 네비어스가 주창한 선교 정책 중 하나로서 네비어스는 당시 한국교회의 대표적 선교사였던 언더우드의 요청으로 1890년 6월 우리나라를 방문히여 강연을 하면서 독립 자립 진취적인 토착교회의 설립을 강조했고 북장로회는 이를 기초로 1895년 8개항의 원칙을 세워서 자진전도(自進傳道) 자력운영(自力運營) 자주치리(自主治理)라는 선교 개념으로 토착화 시켰던 사람이다. 네비우스는 중국교회를 선교하면서 중국교회의 토착화와 자립정신을 기초로 교회를 운영하여야 한다는 선교정책을 펼쳤던 사상을 중국 당국이 교회를 개방 하면서 받아 드린 제도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교회를 종교를 담당하는 종교국의 관리와 통제를 받게 했으며 교회와 정부는 늘 같은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신학교육 역시 정부가 인정하는 신학교에서 신학 수업을 받은 사람만이 정부 종교국 산하에 있는 기독교양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으며 외국이나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목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신학교는 3가지 형태의 신학교가 있다. 첬째로 중앙에 있는 남경신학교를 졸업하면 중국 전역 어디에서든지 목회를 할 수 있으며 둘째로 자신이 속하고 있는 자치구의 신학교를 졸업하면 자신이 속한 자치구에서 목회를 할 수 있다. 즉 예를 들면 동북구에 있는 동북신학교를 졸업하면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의 3성에서 목회 할 수 있다 셋째로 지역의 향(鄕)이나 진(鎭)에 있는 지방 신학교를 졸업하면 그 지역의 성에서만 목회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엄격한 규정에 의하여 종교 정책이 펼쳐지면서 교회를 옥죄고 있는듯한 모습으로 비쳐지면서 삼자교회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교회가 인식하는 삼자교회는 종교를 이용하여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곳으로까지 인식 되어 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한국 사람들이 가지는 공산당에 대한 관습적인 인식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삼자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는 조선족 목회자를 만나면서 지금 중국교회의 놀라운 변화를 알 수 있었으며 한국교회가 오해를 풀고 중국당국과 부딪히지 않고 선교 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에 대한 연구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2). 중국 의 정책적 변화와 종교
삼자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는 목회자들의 입을 통하여 중국 교회의 선교 실상을 듣고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중국 정부는 천안문 사태 이후 서방세계로부터 [인권문제]와 [종교문제]를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아 왔다. 6.4천안문사태 (六.四 天安門事態)는 [당서기장을 역임했던 후 야오빵 (胡耀邦: 1915-1989)의 죽음을 계기로, 89년 천안문광장에서는 100만명이 넘는 학생 시민들이 모여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처음에는 후야오방(胡耀邦) 전 당 총서기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였으나, 곧 중국 지도부와 관료들을 비판하는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이어졌다. 이는 중국정부 수립 이후 처음 일어난 대규모 반정부 시위이자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지도력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었다. 중국 정부는 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댓가를 치렀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유혈진압을 지시했다는 비난을 무릅써야 했고, 그동안 인민의 벗으로 절대적 지지를 받던 인민해방군도 바로 자신들의 벗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다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다. 당시 진압과정에서 사상자가 얼마나 나왔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대략 200명에서 1000명까지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서방 세계의 집요한 공격에 대하여 미국을 방문중인 강택민 중국국가 주석 겸 총서기는 1일 천안문사태당시 중국정부의 잘못이 있었음을 간접 시인했다. 江주석은 이날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시 하버드대에서 연설을 마친 뒤 '중국 정부는 왜 천안문사태 당시 탱크를 투입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우리에게 결점이 있을 수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다'['천안문 사태 中정부 실수'(중앙일보, 1997. 11. 3.)] 고 말해 오류를 간접적으로 시인하기 까지 하면서 인권문제가 점점 향상 되어 오다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유치 경쟁을 할 때 중국의 인권문제,티베트 강제점령,사형제 도,안전 문제 등 집중적으로 거론되면서 이 문제점을 시정한다는 전제하에서 유치에 성공 하였기 때문에 현제 중국은 인권문제와 종교문제에 대하여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즉 이제 과거의 중국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국 교회들과 성도들의 가슴속에 있는 중국공산당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불식이 우선 되어김재관 교수(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월간 에머지( emerge) 에서 [장쩌민의 정치체제의 보수성과 그 특징] 이렇게 기고하였다. ”200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 공산당이 당·정 개혁과 실질적인 정치체제 개혁을 주저하는 데는 몇 가지 현실적 이유가 있었다. 첫째, 정치개혁의 궁극적 목표와 그 긴박성에 대해 최고지도자 내부에서 현격한 의견 차이와 대립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비교적 자유주의적 정치색을 띤 리루이후안 정치협상회의 주석과 장쩌민의 의견 대립이라든가 당내 보수원로들과 신진개혁 세력들간의 갈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리루이환李瑞環 정치협상회의 주석은 장쩌민의 '강정치'論의 정치적 의도를 간파하고 '강정치'論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거나 인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9)라면서 장쩌민의 정치적 보수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둘째, 소련 공산당의 개혁을 시도했던 고르바초프가 자신의 본래 의도와 달리 소련 자체의 붕괴를 낳았던 것과 똑같은 결과가 중국에서도 나타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셋째, 미국과 나토 세력 그리고 대만이 중국공산당을 전복시키려 획책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가령 1999년 5월의 駐유고 중국대사관 피격 사건은 이런 위기감을 한층 고조시킨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결국 중국공산당을 한층 더 보수화시키는 대내적 공고화 효과도 없지 않았다고 보인다. 넷째, 경제발전에 오로지 모든 역량을 집중하려는 治國전략, 즉 '경제중심주의' 때문이다. 다섯째, 1980년대 후반과 달리 90년대는 국민들의 정치개혁에 대한 적극성이 많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여섯째, '중국민주당' 사건과 '파룬궁' 사건은 정치개혁에 제동을 건 국내적인 직접적 요인이라 할 수 있다. 2000년 이전까지 장쩌민 체제의 특징을 몇 가지 개념어로 종합적으로 집약하면, 첫째, '새장형(鳥籠型조롱형)' 정치개혁 모델을 지향한다. 여기서 '조롱형'이란 '중국의 정치개혁에는 넘을 수 없는 제도적 제약과 장벽이 있다는 의미'이며, 이 때 제도적 '제약'이란 소위 '4항 기본원칙(사회주의 노선 견지, 인민민주주의 독재 견지, 중국공산당의 영도력 유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의 견지)'을 말하고, 이 원칙 때문에 정치개혁이 최종적 심급에서는 보수성을 띨 수밖에 없다.
둘째, 보수주의 성향의 정치체제이다. 여기서 조작·정의한 '보수성'이란, 중국공산당이 '4항 기본원칙'에 근거하여 체제옹호를 하는 정치행위를 일컫는다. 보수성은 마치 당근과 채찍같이 강온(强溫) 양면의 정치속성을 띤다고 할 수 있다. 가령 '4항 기본원칙'에 벗어나는 기층 혹은 반체제 성격의 운동에 대해서는 강경탄압으로 대응하지만, 이 원칙의 틀 내에서 이루어지는 시민의 정치행위에 대해서는 '당의 영도성 관철'이란 차원에서 온건하게 대응하는 그런 양면적 보수성을 말한다. 이런 특징은 중국민주당에 대한 탄압이라든가 파룬궁 사건에서 볼 수 있다.
셋째, 新권위주의neo-authoritarianism 통치방식을 띤다. 장쩌민의 新권위주의 정치체제는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는 다원주의를 용인하지만, 정치적으로 '당 주도의' 권위주의 정치형태를 유지하는 체제를 일컫는다. 이 체제의 특징은 강력한 중앙집권에 입각한 '先경제발전 後민주주의발전' 전략, 제한된 다원주의, 기본적 상징체계로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유지, 공산당의 국가동원력 유지 등으로 나타났다.
중국이 당면한 현실의 각도에서 보면, 장쩌민의 정치개혁 구도는 다분히 '중국 특유의 國情을 이유로 → 강력한 중앙집권적 新권위주의 정치체제 유지 → 先경제발전 → 제한적 민주제 → 後 분배정의 및 전면적 민주제 실시(즉 後정치발전)'로 가는 중국특유의 민주주의 발전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주룽지 총리 역시 이런 新권위주의 권력기반 위에서 경제발전과 정치발전을 분리시키는 점진적 발전모델(싱가포르형 발전모델)을 선호한다고 한다.
장쩌민의 핵심 정치브레인들 가운데 가령 당중앙 정책연구소 부조장인 왕후닝王 寧 같은 사람들은 市場化 개혁과정에서 경제와 정치는 분권화될 수밖에 없고 지방이익이 국가이익을 압도할 경향이 짙기 때문에, 그리고 불완전한 시장메커니즘과 사회문화적 낙후성이 결국 정치적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新권위주의적 정치체제가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개혁개방과 경제발전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효율적인 권력구조를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장쩌민의 최근 행보에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기존의 태도와는 판이하게 다른 진보적인 발언과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첫째는 덩샤오핑 이론을 계승 발전시킨 장쩌민 이론체계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이른바 '三個代表論삼개대표론'이고, 둘째는 연이은 폭탄선언인 이른바 '신흥 자산계급의 입당 허용설'이다. 이 두 가지는 21세기형 장쩌민 체제의 새로운 자기변신인 동시에 제4세대 집권 엘리트의 과감한 개혁적 드라이브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장쩌민 정치체제는 보수에서 개혁으로 대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의 물결이 중국인들의 피부에 닿을 만큼 진행 되어져 있다는데 선교 정책의 포커스가 맞추어져야 한다.
3) 왜 중국정부는 종교정책만은 중앙에서 관리하려 하는가? 이처럼 공산당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개혁 정책을 펼치면서 중국정부가 종교정책에서만은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과거 중국 왕조의 멸망엔 늘 백성들의 반란(민란)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나라 말 ‘황건적의 난’이나 청나라 말 홍수전의 ‘태평천국의 난’이 그 예다. 파룬궁은 기공(氣功 )의 한 조직으로 종교적인 성격을 띤다. 월간) 에머지 http://emerge.joins.com)에 소개된 파룬궁에 대하여 살펴 보면 대략 이렇다. 창시된지 7년만에 중국 공산당 파룬궁 회원 수가 중국 전역에 많게는 7천만 정도(적게는 대략 4∼5천만 명)에 달한다는 것은 이 조직이 이미 수적으로도 중국공산당당원(약 6천4백만)을 능가하기 때문에 향후 중국공산당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체제도전세력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 조직을 방치할 경우 과거의 '태평천국의 난'처럼 확대발전하지 않으리란 보장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중국공산당은 어떤 명목으로든 이 단체와의 전쟁을 통해 발본 색원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외국의 적대 세력이 파룬궁 회원을 뒤에서 조종하여 국가를 쓰러뜨리려 한다는 이유다. 또 이들이 정치세력으로 커나가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한 조치라는 견해도 있다. 중국 정부가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과거 중국 왕조의 멸망엔 늘 백성들의 반란(민란)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 한나라 말 ‘황건적의 난’이나 청나라 말 홍수전의 ‘태평천국의 난’이 그 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민란의 대부분이 종교와 관련돼 있다는 점이다. 백련교, ·대도회, ·삼합회 처럼 종교를 바탕으로 한 비밀단체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청나라 말께 중국 대륙을 휩쓸었던 의화단도 그 가운데 하나다. 민란에는 반드시 모임이 필요한데 모임엔 종교만큼 효과적인 수단도 없기 때문에 종교적인 성격이 큰 힘을 발휘한 것이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무신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은 이 같은 종교에 대해 너그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각종 사이비 종교단체의 모임을 엄하게 단속해 왔다. 1999년 4월 25일 있었던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벌인 파룬궁의 대규모 시위에 중국 정부가 예민했던 것도 이 같은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왕조를 흔드는 각종 민란을 겪었다. 그러다 보니 날로 커지는 파룬궁 조직을 그냥 두었다간 언젠가는 정권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4). 피룬궁은 어떤 단체인가? 이 단체는 불교적 성격을 띤 일종의 氣功조직으로서, 중국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종교조직이나 단체는 아니었다. 기본이념과 강령을 보면, 기본이념은 불교의 카르마(karma, 業: 사람들의 선하고 악한 행동이 현세와 내세의 운명을 결정한다)에 기초해 '영원성'을 믿기 때문에 종말론적인 서구적 세계관을 배격한다. 호흡수련과 명상을 통해 건강증진은 물론 병을 고칠 수 있고 심지어 '內功'으로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심지어 모든 약을 배격하는 극단주의로 흘렀다. 기본신조는 '진실·친절·인내'라고 한다. 파룬궁은 과거의 비밀결사체인 '의화단'이나 '태평천국의 난'과 구별짓기 위해 정치적 강령이나 정치적 목적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당국으로부터 탄압의 빌미를 아예 없애려 했다. 형성시기는 주로 89년 천안문 사태이후로 90년대 접어들면서 급속도로 전파된다. 주요 구성층과 조직구성상의 특징을 살펴보면 주로 노인층이 많고 상당수의 퇴직한 당 간부와 군인들, 정리 휴직된 노동자와 사영기업주 등 각계각층을 망라한다. 다음으로 기층조직은 10명 단위의 세포조직 형태를 띠며, 개인들은 다른 세포의 리더나 도시 및 전국적 차원의 조직지도자와 연계할 수 없다고 하며, 베이징만 해도 1천여 개 이상의 세포가 존재한다. 특히 중국공산당이 주목하는 대목은, 과거 1930∼40년대 중국공산당이 지하조직의 형태를 띠던 때와 유사하며, 비밀결사조직의 양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중국공산당 중앙을 바짝 긴장시켰다. 또한 현대적 통신매체(인터넷, 핸드폰 등)을 이용해 조직을 동원하고 기밀을 유지하기 때문에 쉽게 추적하기가 어렵다. 최근 들어 인터넷(http://falundafa.org)을 통해 해외에도 적극적으로 이 단체를 선전하고 있다. 이 단체가 대중 흡입력을 갖는 원인을 살펴보면, 파룬궁 수련이 주로 노인층들에게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치료할 수 있다는 일종의 '만병통치효과panacea'와 永生의 길을 보장해준다는 매력 때문이다. 다음으로 파룬궁이 개혁개방이후의 현대화 과정에서 인민들의 황폐화된 정신적 공백을 메울 수 있고, 나아가 이미 시대착오적인 이념으로 식상해버린 공산당 이념을 대체할 수 있는 代案이념 혹은 대안적 삶의 양식을 제공한다는 적극적 측면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 요소 외에 부정적 측면으로 미신적 요소를 들 수 있다. 기공의 효과를 과학의 수준을 넘어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신도들로 하여금 일체의 약을 못 먹게 하고 오로지 기공으로만 치료하게 하기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보도가 있었다. 아플 때도 의사와 상담할 필요가 없고, 단지 교주 李洪志(미국 거주: 49세)7)의 책(중국 내에서는 禁書)을 읽음으로써 치료될 수 있다는 '反과학주의'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중국정부가 미신적 邪敎집단으로 몰아 2년 넘도록 대대적인 탄압을 펴고 있다. 그럼 중국공산당은 어떤 식으로 파룬궁에 대처해왔는가? 중국공산당은 정치적 통합과 경제적 발전을 계속 추진시키기 위해 사회적 안정은 필수적이라는 근본전제 하에서 파룬궁을 처리하려고 했다. 장쩌민은 이 단체를 '반체제(反體制)세력과 똑같은 체제 도전세력으로 규정'8)하고, 기공수련의 명분으로 사회적 안정을 위협하는 자들을 의법(依法)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95∼96년에 종교 사무국에서 이 단체를 불법단체로 규정한 바 있는데, 중국공산당은 순수한 기공단체(중국 내에 10여 단체가 존재)만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의 각종 언론 매체들은, 과학, 유물론, 미신타파 등의 기치 하에 각종 학술단체와 여론매체를 활용해 이 조직이 사이비 종교단체이자 미신적 성격의 기공단체라는 이데올로기 선전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한편, 교주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을 이용, 이 조직이 자생적 조직이기보다는 외부(美CIA)의 지원을 받는 세력임을 강조해 국내의 입지기반을 약화시켜왔다. 이 조직내부로부터 상당수 공산당 간부와 당원의 이탈을 먼저 종용하여 본 단체를 고립화 시킨 후 타격하는 전술(divide & strike)을 구사했는데, 가령 이 단체에 가입한 당원들로 하여금 자아비판을 하게 함으로써 이 조직의 자체붕괴를 촉진시키기도 했다. 중국공산당은 아예 교주(이홍지)를 국내로 소환해 본 단체의 존립근거를 와해 시키려 기도하기도 했다.
5). 중국공산당의 탄압에 대한 파룬궁의 대응은 어떠했는가? 1999년 6월 25일자 《South China Morning Post》는 중국공산당 중앙과 파룬궁 사이의 접전이 제2라운드에 접어들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특히 파룬궁 신도들은 중앙지도자들에게 청원서의 형식을 빌어 이 단체의 합법성을 획득하고 중앙으로부터의 탄압의 예봉에서 벗어나려 했다.
교주와 신도들은 줄곧 이 단체가 정치조직이 아니라 순수한 기공 단체임을 강조하면서 중국공산당의 마녀사냥식 탄압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이미 중국공산당 중앙은 이 조직을 정치조직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단속과 함께 강경 진압해왔다. 이에 99년에 여름에 하북성의 신도 1만3천여 명은 스쟈좡(石家庄)에 모여 당국의 탄압에 항의하는 탄원서를 장쩌민 주석과 주룽지(朱鎔基) 총리에게 제출하기도 했는데, 탄원서에 따르면 당국이 신도들의 기공수련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당원인 경우에는 본 조직에서 탈퇴하지 않을 경우 당적을 삭제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으며, 직장인의 경우 그 단체에 계속 잔류할 경우 정리휴직을 시키려 한다고 고발했다. 이 탄원서는 이 단체가 단순한 기공단체이지 '종교단체'가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 신도들에 대한 탄압과 박해를 중지해줄 것을 중앙에 촉구했던 것이다. 향후 파룬궁의 미래를 전망해보면, 파룬궁 측은 수적·조직적 우세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정치단체'나 '종교단체'가 아니라 '단순한 기공단체'임을 주지시키는 선전활동을 벌임으로써 중국공산당 중앙 측의 탄압 명분을 없애는데 주력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각종 수단(탄원, 외부지원, 시위 등)을 통해 탄압의 예봉을 피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중국공산당 중앙과 파룬궁 사이의 접전은 단기간에 끝날 수 있는 성질의 대립이 아니고 어쩌면 장기전에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중국 현실에서 중국공산당에 대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띤 세력이 파룬궁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개혁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과정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최소한 2천만(도시실업자인구)에서 2억(유휴농민)에 달하는 체제불만 세력들이 파룬궁과 세력연합을 꾀한다면 이들 세력은 중국공산당에 최대 위협세력으로 등장할 것임에 틀림없다. 실제 파룬궁 내부에 실직자들과 농민세력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연대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파룬궁은 실업자대군을 등에 업음으로써 조직의 완강성과 전투성을 提高시킬 수 있을 것이고, 노동자들은 과거 80년대(특히 6·4 천안문 시기)의 연대세력이던 나약한 학생·지식인 집단보다 양적으로나 조직적으로 한층 더 튼튼한 후비대, 즉 파룬궁 세력을 얻게됨으로써 장차 중국공산당과 맞대응할 만한 대체권력세력으로 부상할 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런 잠재적 위기감 때문에 중국공산당이 탄압일변도의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이상에서 보듯, 이런 탄압은 사전의 조직적 여론공세와 사상투쟁의 방식을 통해 목적의식을 가지고 이루어졌기 때문에, 파룬궁의 대응은 수세적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공산당의 입장에서 보면 가차없는 타격만이 중국공산당의 존립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대책이었다. 이런 對敵 戰線에서 '공존의 여유'를 발휘하는 '똘레랑스'적 다원주의 태도를 보였다가는 오히려 장차 더 큰 화근을 낳을지도 모른다는 중국공산당의 철저한 현실인식이 파룬궁에 대한 타격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은 파룬궁 내부의 일반 순수 기공수련자들과 정치적 행위자(가령 반정부시위자와 그 주동자)들 사이의 구분을 하지 않은 채 무차별 강경진압에 나섬으로써, 본래 정치적 의도가 없었던 일반 수련자들에게 오히려 반정부 감정과 정치적 각성을 조장하는 난처한 국면에 빠지게 되고 말았다. 아울러 수많은 파룬궁 회원들을 감시, 적발, 처벌하는데 드는 엄청난 인적 자원과 비용은 상당한 재정압박을 가져오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파룬궁은 향후 중국공산당이 가장 처리하기 힘든 뜨거운 감자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6) 중국식 공산당을 이해하는 선교정책이 필요하다. 북한은 정권수립 초기의 반종교정책에서 1972년 헌법에 '반종교 선전의 자유'를 명기하고 1980년초 종교활동 규제완화 정책에 이르기까지 약 30년동안 종교말살정책이 지배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 보았듯이 중국정부는 [국가는 정상적인 종교활동을 보호한다. 어떠한 개인도 종교를 이용하여 사회질서를 파괴하거나 공민의 신체건강을 해치고 국가교육제도를 방해하는 활동을 할 수 없다. 종교단체와 종교사무는 외세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하였다. 여기에서 중국정부가 종교에 대하여 조건을 걸고 있는데 이는 종교가 사회질서를 파괴하고 신체건강을 해치고 교육제도를 방해하지 않아야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외세 부분에 대하여서도 선교사들의 나라에서 발생한 문화와 제도를 가지고 중국정부의 문화와 정책에 대항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 이다. 다시말하면 공산주의는 무실론주의를 표방하며 유물사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본주의적 사고를 가진 기독교의 사관과는 다르므로 외국 선교사들의 가르침을 배격하면서 중국 정부가 원하는 기독교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교도에 대하여는 분명한 핍박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중국당국과 마찰을 빚을 이유가 없는 종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들이 공산당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중국 정부가 인정하는 삼자교회를 피하면서 지하교회와 접촉하는 선교정책을 폄으로서 핍박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바울사도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왕을 위하여 기도 (딤전 2:2a) 하라 하였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조병수 교수(합동신학대학원 신약학)은 “왕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신자들이 기도해야 할 대상이다. 통치자와 권세자라고 해서 기도의 대상 밖에 놓일 수는 없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다 (요 19:11; 롬 13:1). 어떤 통치자와 권세자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신자가 왕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라고 하였다. 중국땅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서 이만큼 변화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할 일이다. 그러므로 중국 정부가 인정하는 삼자교회와 더불어 선교 정책을 펴면서 중국정부가 오해하고 있는 기독교의 본질을 점차적으로 이해 시켜나가야 한다고 본다. 이 부분에 대하여 삼자교회의 목사들도 주장하는 부분이다.
7) 중국땅에 맞는 선교정책 중국땅에서 성경의 권위가 손상되지 않고 문화접변 시에 혼합주의적 결과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한의 조심을 하면서도, 동시에 문화를 통한 복음전달에 있어서 성경의 의미가 온전히 전달되도록 노력하는 모델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서 기록된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신 하나님이 유일하신 자존 자 이시라는 사실을 중국의 문화적 틀에서도 배제 하지 않고 성경적 신관인 자존 자이시며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의미를 가진 사실을 잘 가르치는 사역이 중요하다. 어떤 의미로 이야기하면 중국땅은 복음이 척박한 선교지는 아니다. 이미 한국보다 먼저 복음 을 받아 드렸던 땅이다. 다만 반세기에 걸쳐서 공산주의 국가로서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은 정책에 의하여 발전하지 못하였던 것 뿐이다. 그래서 중국교회는 사역자 부족과 함께 신학서적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교회의 운영에 관한 행정적 범례가 미비하므로 이것들에 대한 보충과 협력에 관한 선교 정책이 필요하다. 타지역 처럼 그곳에 가서 성경을 번역하고 복음의 기초적 씨앗을 뿌리는 단계의 선교 사역지는 아니다. 중국선교 정책에 있어서는 타지역에서 이해 할 수 없는 정치적인 문제때문에 빚어 지는 종교와 정부와의 역사적 과제등을 풀어 나가고 배워야 할 숙제들이 많은 곳이므로 남다른 공부와 준비가 필요한 곳이다. (1) 중국 교회가 처한 문제점 현제 중국교회는 몇가지 차원에서 곤경에 처하여 있다. 첫째로 신학의 부재이다. 둘째로 설교를 위한 자료와 책 그리고 신학적 연구용 책이 절대 부족하다. 셋째로 훈련된 지도자가 절대 부족하다. 넷째로 이단에 대하여 무방비 상태이다. 다섯째로 기독교에 대한 중국 정부의 오해이다. 위의 5가지를 해결하기 위한 선교정책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2) 문제점에 대한제언 중국의 종교정책에서 보여 주었듯이 외국인의 지도를 철저하게 배제하면서 삼자 정책을 폈기 때문에 신학이라는 학문이 발달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의 성경을 보는 역량이나 설교로서 선포되는 메시지의 의미가 제한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이며 교회의 행정이나 목회 철학이 전무한 상태이다. 그래서 중국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신학과 목회에 대한 학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중국 땅에서 공개적으로 이들을 지도하기는 중국 당국과의 마찰을 피 할 수 없기 때문에 제언을 하고 자 한다. 첫째로 한국에서 선교사를 파송 하는 종교 단체나 교회에서 중국의 종교국 담당자들이나 기독교의 양회 지도자들과 협력 관계를 맺어야 한다. 중국의 종교국 당국자들은 기독교에 대한 편견와 오해가 많다. 그래서 이들을 한국에 초대를 한다든지 중국에서 모여 계속적 관계를 갖는다든지 하여 점차적으로 변화하게 만들어야 한ㄷ 둘째로 절대적으로 지하교회를 배제하고 삼자 교회 목회자들과 우호적 관계를 갖고 이들의 도움을 받아 선교 전략을 세워야 한다. 지하 교회는 이미 이단들 내지는 물질적 유혹에 많이 노출 되어 있다. 그러나 삼자 교회는 초기의 형태에서 많이 벗어나 교회의 모습으로 변하여져 있다. 국가가 인정하고 보장하는 속에서 삼자교회의 목회자들에게 복음을 잘 증거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선교의 한부분이라 생각한다. 이미 많은 부분 교회의 모습을 회복한 당이므로 그들 스스로 자신의 지역에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선진 목회력을 심어 주고 신학을 가르치는 것도 선교라 생각 한다.
셋째로 디지털 시대에 맞는 선교 전략을 중국 목회자들이나 조선족 목회자들이 인터넷을 통하여 재교육을 시키거나 목회 자료 혹은 목회 전략을 배울 수 있도록 하면 안전하다. 한국에는 특히 조선족 목회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많이 있다. 중국도 컴퓨터가 많이 보급 되어 있고 초고속 통신망이 깔려 있고 과 전화 선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인터넷을 사용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나라 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을 재교육 시킬 수 있는 사이트 중에서 크리스챤 칼리지(www.christianuniv.com)는 한국의 유명한 신학교 30여명의 교수들이 심도 있게 강의를 하고 있으며 기독c3tv(wwwc3tv.co.kr)과 부설 [목회 정보 2000 ]그밖에 기독넷(wwwkidok.net)을 통하여 이들의 교육이 계속 된다면 시간과 금전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며 생산적인 선교 전략이 될것이다. 다만 중국 현지에는 아직 컴맹율이 높고 컴퓨터 보급이 많이 되어 있지 않고 도시가 초고속 통신망의 사용료가 생활비에 비하여 비싼 관계로 인터넷을 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부분을 한국선교 단체에서 중점적으로 선교 전략을 개발 할 필요가 있다.
넷째로 중국 당국과 협력하여 이단대책 협의회를 만들어서 자료를 각지교회에게 배부하고 교육을 시키어야 한다. 앞서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말하였듯이 중국 정부가 이단에 대하여는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탄압하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이부분을 기화로 해서 중국의 종교 당국자들에게 이단의 성경적 의미를 알리고 협력하여 기독교와 이단의 다른점을 분명히 하면서 이단 퇴치에 힘을 모아야 한다.
봄볕에 솟아 나는 새순 처럼 힘을 받지 못하고 있는 중국 땅의 교회들이 이단의 허구적 논리와 사탄적 힘에 휭청 거리고 있다.
제3장, 중국교회의 이단 현황
중국 정부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이단에 대한 가슴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교만은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허락 한다고 성문화 되어 있으매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면서 정부가 허락하는 범위에서 종교활동을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하에서 기독교 복음의 선명성이 매우 필요한 싯점이다. 그러나 중국 교회는 어떠한가? 얼마전에 국민일보에 [이단공격에 흔들리는 중국교회]라는 제하로 “이단을 뛰어넘어야 중국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라며 기사화 된 적이 있다. 필자도 삼자교회 목회자들에게 강의하면서 놀랐던 것은 한국에서 듣던 것보다 중국 현장은 이단들에 의하여 더욱 어지럽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1949년 당시 외국 선교사들을 중국당에서 쫓아 낼 당시에 200만명이던 기독교 신자들이 30여년동안 중국정부의 기독교 전멸화 운동에도 불구하고 1979년 개화의 문이 열리면서 2000만이었고 다시 30여년이 흐른 지금 중국인구의 10%가 믿는 1억을 훨씬 넘어 선 상태이다. 중국인들은 믿을려고 힘을 쓰고 있지만 바른 길이 제시 되지 못하고 유혹의길 아니 다른 길을 가르치고 있는 이단들이 더욱 조직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내세워서 중국땅의 영혼들을 방황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기독교 이단들은 성경 이외의 권위,지나친 행위의 강조,개인숭배 그리고 왜곡된 종말론 등을 주장하면서 건전한 교회를 파괴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삼자교회와 가정교회(일명 지하교회)간에 갈등 과 반목을 조성하고 교회와 교회간에 우월의식을 조장하는 등 교회를 와해 시키거나 변질시키는 일들이 벌어 지고 있다. 1)중국 정부의 교회 관리 형태 중국정부는 한지역에 한 개교회를 원칙으로 하여 교회를 세우게 한다. 그러나 땅이 워낙 방대하여 교회까지 출석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 되므로서 정부가 허락한 삼자교회 산하에 가정교회의 형태를 띤 처소를 잠정적으로 허락하여 삼자교회 목사가 파송한 전도사나 집사에 의하여 관리를 하게 한다. 그래서 한 목사가 많게는 수십개의 교회를 지도하는 실정이다. 그러다가 처소교회가 정부가 요구하는 수준만큼의 부흥하면 독립시켜서 또 다른 삼자교회를 허락한다. 이러한 정책과는 다르게 한국에서 파송한 선교사들은 삼자교회를 배격하고 조선족이나 한족등 원주민을 상대로 포교 활동을 벌여서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가정교회(일명 지하교회)를 만들고 중국 정부의 눈을 피하면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이단들은 이렇게 만들어 놓은 처소 교회(지하교회)의 어려움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서 공략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에는 많은 문제점을 만든다. 첫째로 중국정부가 기독교를 탄압하는 빌미를 제공한다. 둘째로 공식적인 지도자 양성이 안되므로 부제 현상이 이 일어 난다. 셋째로 삼자교회와 가정 교회간에 불화를 조성하게 한다. 넷째로 이단들의 침투기지가 된다. 다섯째로 소명의식을 가진 지도자들보다는 돈 때문에 복음을 수용하는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정부가 허락하지 않는 범위에서의 종교활동은 모두 이단시하고 있다. 만일에 중국에서 말하는 이단자들이 공안 당국에 잡혀 가면은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고문과 고통의 시간들이 계속 된다는 말을 들었다. 여기에 대하여 일부 사람들은 삼자교회를 공산당을 지지하는 교회로 매도하고 지하교회는 순교자적인 정신의 교회로 미화 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이 변하고 있으므로 중국 선교에 대한 개선책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2) 중국땅에서 자생한 이단 현제 중국에는 중국땅에서 자생한 이단과 외국에서 유입된 이단들에 의하여 중국교회는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호함파(呼喊派)’‘동방번개(東方閃電)’‘중생파(重生派)’‘삼반복인(三班僕人)’‘육신성도(肉身成道)’‘문도회(門徒會)’‘사도신심회(使徒信心會)’‘령령교(靈靈敎)’‘토론토의복(多倫多之福)’ (1).호함파(呼喊派)는 회개를 주장하는 단체로서 예배시 회개하는 울음소리로 인하여 시끄럽다고 공안 당국에 고발하자 들판이나 산에 모여서 울면서 회개하는 단체이다. 이들은 회개하면 은혜를 깨달으므로 많이 우는 사람이 신령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집회가 끝나면 신도들은 눈이 붓고 목이 쉴 때까지 울기도 하며 무릎이 다 벗겨져 피가 나기도 하며 심지어 자신의 얼굴을 때려가며 기도를 한다 또한 반중국 선전활동으로 “중국인민의 정권은 리창서우(李常受·호함파 교주)에게 주어야 한다”고 선포했다가 큰 핍박을 받고 있다.
(2). 중생파(重生派)’‘는 우리나라의 구원파들 처럼 중생을 강조하는 단체이며 중생파에 의해 세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며 교회의 세례를 거부한다 중생파 조직내 생명회는 매번 3∼7일의 집회기간을 갖는데 참석자들은 중도에 자리를 뜰 수 없다. (3). 령령교(靈靈敎)는 영지주의자들의 논리와 비슷하며 육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는 기본 취지를 바탕으로 설파하는 단체이다. . 또한 ‘이신득의(믿음으로 의롭게 됨)’를 믿지 않으며 영적인 춤을 추고 영적인 노래를 부르는 것을 강조한다. (4). 삼반복인은 결혼을 금지하며 부부는 별거할 것을 주장한다. (5). 사도신심회의 대표 쭤쿤(左坤)은 스스로 사도라고 지칭하며 사도의 직분자는 반드시 정권 인민 토지를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외국에서 유입된 이단 기독교의 이단은 대체적으로 기독교교리의 다양성을 배제 하고 편향적으로 해석하여 생겨난 이단들이 많다. 그리고 신비주의 적이고 기복적인 설파로 인하여 성경 중심의 이상적이고 객관적인 해석 보다는 체험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에 우월성을 갖는 집회를 하므로서 이적과 기사를 표면화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이단들은 성경을 말하지만 다른 성경을 강조하거나 ‘하나님’‘예수’ ‘성령’ ‘계시’ ‘전도’ ‘신유’ ‘방언’ ‘은사’등 몇가지 성경내의 명사와 문장 그리고 기독교 용어를 빌려와서 작위적 해석을 하거나 그것이 성경의 전부인냥 주장하여 교주의 지위와 영향력을 높여 교주가 곧 ‘하나님’이요 ‘선지자’ ‘능력자’ 라고 믿게 한다.
과거 한국교회가 신학적 서적이 부족하고 목회자가 부족하여 신학이 정립되지 못하였을 때 나타났던 극심한 신학 부족 현상이 이곳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즉 극단적인 ‘영적 은사’를 강조하거나 ‘극단적 신비주의’ ‘잘못된 종말론’으로 신도들의 돈을 갈취하는 현상과 함께 오히려 복음주의적인 목회자가 능력이 없는 자로 오해 받고 있는 실정이다. 여호와 증인, 제7일 안식일교회, 몰몬교 등 외래종교와 함께 한국교회에서도 물의를 일으켜서 각 교단으로부터 정죄함을 당한 하나님의교회(안상홍증인회),한국예루살렘교회(이초석),귀신론(김기동),만민교회 (이재록), 신천지교회(이만희), 산혜원(이태화) 다락방(유광수),할렐루야기도원(김계화)등은 많은 테이프와 자료들을 뿌리며 신학적 지식이 부족하고 중국당국의 정책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지하 교회 목회자와 믿음의 열망을 가진 조선족들에게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들보다 더 무서운 집단은 극단적인 신비주의적 집회를 하던 자들과 토속적인 미신적 신앙과 혼합주의 형태를 띤 자들이다. 빈아드 집회 처럼 사람을 넘어지게 하면서 성령의 능력이라고 한다든지 최면술과 마술을 동원하여 신비적 능력을 가진 능력자 인냥 행세하는 자들 그리고 안수를 빌미로 만병을 고쳐 준다고 허세를 부리는 자들이 많이 와서 활개를 치고 있었고 “예언 기도” “영성 상담” “은사 집회’등으로 기독교를 저질화 시키는 데 일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더 걱정은 이들이 와서 자신들은 [합동측 목사]아니면 [통합측]목사라고 대부분 자신들을 소개하고 있다 한다. 필자에게 한 삼자 교회 목사가 “왜 이상한 집회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합동측 아니면 통합측이지요?”하고 물어 왔다. 그래서 중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현재 합동측과 통합측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한국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이단과 광신적이고 신비적인 단체나 인물들은 다 중국땅에 들어와 있다고 보면 된다.
중국 정부가 모든 종교들에게 노방전도 등 공개적인 종교활동을 제한하고 있으므로 지하 교회에서 은폐 또는 비공개적인 활동으로 은밀하게 이루지고 있어서 이단들의 실체를 찾아 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또한 이단들의 강연 내용은 대부분 불미스러운 일로 물의를 빚는 교회의 오류를 비판하면서 자신들만이 구별됨을 강조하기 때문에 과거에 통일교나 전도관 운동 처럼 중국 교회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
제4장 결론 중국 선교에 대하여는 지금 까지 발표된 선교 정책의 틀을 벗어 나야 한댜. 수많은 선교사들이 중국 영혼들에 대한 열정 때문에 중국에 잠입하여 순교를 각오하고 영혼구령에 수고하고 있음에 대하여는 어찌 탓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중국현장에서 만난 선교사들의 마인드와 선교 현장에 파송한 교회나 단체들의 마인드가 지금처럼 갈림길에 서있어서는 안된다. 특히 선교지에 선교사를 파송한 단체나 교회들이 실적주의로 빠져서는 안되며 선교사들 역시 실적주의에 부응하기 위하여 현장에 맞지 않는 무리수를 두어서는 안된다. 중국선교는 지하교회 몇 개 세우고 탈북자와 조선족들을 지하교회당에 끌어드려서 몰래 몰래 성경공부 가르치고 그들에게 돈을 몇 푼 지불하는 형태가 되어서는 안된다. 삼자교회와 중국 당국의 불만은 선교사들이 자신들을 파송한 선교 단체나 교회에게 선교 보고를 위하여 돈으로 매수 한다고 불만을 터트리며 교인들을 버리고 있다고 까지 말하였다. 그뿐만아니라 이런 방법으로 이단들까지 침투하여 오히려 정부 당국 몰래 운영하고 있는 지하 교회는 이단들의 물질적 지원으로 인하여 이단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한다. 한국에 유력한 목회자 한 분은 “중국의 선교 할 필요가 없는 나라이다.”라고 까지 말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하여 첫째로 중국의 한족들은 과거 역사성의 인식이 남아 있어서 한국에 대하여 속국 정도로 이해하고 있으며 돈을 가지고 선교정책을 펴는 방법에 대하여 극도로 경계하며 비웃고 있다. 둘째로 중국에는 정부가 인정하는 삼자라는 교회 운영의 철학을 가지고 움직이는 교회가 있다. 셋째로 지금처럼 선교사들이나 파송 한 교회 및 단체들이 하는 선교 정책으로는 안 된다. 넷째로 중국정부의 지나친 탄압에 있다.라고 하였다. 결국 중국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이 이루어진 선교 정책에 의하여 중국 땅에서 선교사가 아닌 ‘사장’ ‘선생’ ‘ Mr00’등으로 불려지면서 숨어서 진행하는 선교가 만들어 낸 던 지하교회가 이단들의 침투 장소요 거점으로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중국 당국은 한국 기독교에 대하여 불만이 많으며 자제를 요청하기 이르렀고 무자비하게 핍박하고 있는 것이다. 현제 이단이 성행하는 지역의 중국 당국은 교회의 정상적인 활동까지 제한하고 있다. 이단퇴치를 위해 중국교회는 자체 홍보활동과 교회별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단 전파의 광범위성과 확산력에 비해 그 대처가 미약한 실정이다. 해외의 중국선교 기관들도 중국내 이단폐해에 대해 깊은 우려와 함께 관련서적과 자료들을 출간하기도 했으나 아직은 역부족이다. 중국 현지의 K선교사는 “신도들의 신앙기초가 연약한데다 목회자들도 매우 부족해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상태의 신도들이 이단의 미혹에 쉽게 넘어간다”고 말하고 “해외에서 유입되는 이단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현지교회에 알려 사전에 예방하도록 돕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이단시하는 단체들이 중국땅으로 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이단에 대비하기 위하여 각 교단과 단체가 [이단 사이비 대책회]를 만들어서 대응을 하고 있으나 불행이도 이단들의 로비의 대상이 되면서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고 있지 않음이 가슴 아픈일이다. 에스겔 선지자가 허물어져가는 이스라엘의 모습과 거짓 선지자들이 활개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하는 자들이 허탄 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으로 그 말이 굳게 이루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여호와가 보낸자가 아니라 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것이 아니냐”(겔13:6-7절)라며 거짓 평강만 외치며 백성들의 타락을 묵인하는 자들을 거짓 선지자라 하였다. 요즘 우리 한국교회 안에도 이와 같이 점괘를 통하여 영성의 척도를 재어 보는 사상이 만개하고 있으며 회개가 없는 죄악의 묵인속에서 거짓 평강과 축복만 비는 거짓 선생들이 판을 치고 있다. 진정한 평강은 회개와 참사랑의 실천에서 오는 것이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 맞는 선교 정책의 연구가 필요하다. 이제는 공상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들이 가상 현실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에서 최고의 IT강국인 우리나라이므로 교회와 선교 단체들이 이제는 나날로그 형태에서 벗어나서 이시대에 맞는 선교정책이 매우 필요하다.
중국교회는 한국이 복음화 되는 디딤돌이 되었던 교회이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도와서 다시금 일어 설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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