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바른 용어
[바른 교회 용어] 

아래 자료는 기독교 용어 연구위원회의 연구자료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흔히 쓰는 말들 중에서 잘 못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 바로잡자는 안을 내 놓은 것입니다. 설명을 보시려면 링크를 클릭하십시요.

기도와 관련된 용어
  1. 당신→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2. 기도 드렸습니다(기도하였습니다)→기도 드립니다(기도합니다)
  3. 주여. 하나님 아버지시여→주님. 하나님 아버지
  4. 우리 성도님들이→ 저희들이, 교회의 권속들이… 등등
  5. 대표 기도→기도 인도
  6. 사랑의 예수님→ 사랑의 하나님
  7. 참 좋으신 하나님→거룩하신, 은혜로우신, 전능하신, 진실하신, 자비로우신…하나님
예배. 예식 분야
  1. 사회자 → 인도자(예배시)
  2. 성가대 → 찬양대
  3.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용불가(설교시)
  4. 대예배→주일 예배
  5. 열린 예배→열린 집회
  6. 예배봐준다→사용불가
  7. 준비찬송→사용불가
  8. 예배/예식/기도회→구별사용
  9. 헌금→봉헌
  10. 축제→ 잔치 (때에 따라 절기행사, 축하행사...)
  11. 하나님의 축복 → 하나님이 주신 복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 하나님! 복 주시옵소서
장례 분야
  1. 소천(召天)하셨다 →별세(別世)하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숨을 거두었다.
  2.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3. 미망인→ 고인의 부인, 고인의 유족
  4. 칠성판(七星板)→ 고정판 또는 시정판
  5. 영결식, 고별식 →장례예식
  6. 삼우제(三虞祭)→ 첫 성묘(省墓)
회의 용어
  1. 고퇴→고퇴 또는 의사봉
  2. 자벽→지명, 임명
  3. 증경→전(前)
  4. 휘장 분배→꽃 증정
교회생활
  1. 당회장 → 담임목사. 당회장(당회 회의 때)
  2. 예수 → 예수님 성령 → 성령님
  3. 전야제 → 전야 축하행사
  4. 사모 →사모님


기도와 관련된 용어
  1. 당신→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은총으로…” “하나님 아버지, 당신께서 세우신 이 교회를…” 와 같이 하나님을 ‘당신’이라 부르는 것을 종종 보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만일 어느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향해 “아버지, 당신이 주신 돈으로 이것을 샀습니다.” 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말은 의당 다음과 같이 고쳐서 말해야 한다. “아버지, 아버지가 주신 돈으로 이것을 샀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직접 들으시는 분으로서 2인칭이다. 우리말 2인칭 ‘당신’은 결코 존대어가 될 수 없다. ‘당신’은 다만 3인칭에서는 극존대어로 쓰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3인칭이 될 수 없고 우리 간구를 들으시는 분으로서 2인칭에 해당되므로 ‘당신’이란 호칭은 안 된다.

  2. 기도 드렸습니다(기도하였습니다)→기도 드립니다(기도합니다)
    기도를 끝낼 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와 같이 동사 ‘기도하다’의 시제를 현재형으로 써야 하는데 요즈음 이를 ‘기도하였습니다’, ‘기도 드렸습니다’와 같이 과거형을 쓰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것을 본다.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5분이나 10분전에 기도를 시작했으므로 간구한 모든 말들은 문법적으로는 이미 과거 또는 현재완료가 되므로 동사 ‘기도하다’의 과거형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각도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 기도(祈禱)는 글자 그대로 그 핵심이 하나님께 아뢰는 우리의 간구다. 간구의 내용은 소원이며 소원은 미래 지향적이다. 이러한 미래 지향적인 소원을, 즉 우리의 바람을 ‘기도하였습니다’로 끝낼 수는 없다. 기도의 핵심인 간구의 내용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영원한 현재성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기도의 마무리는 과거가 아닌, 현재로 끝내는 것이 옳다.

  3. 주여. 하나님 아버지시여→주님. 하나님 아버지
    기도할 때 하나님을 향해 ‘주여’, ‘주님이시여’, ‘하나님이시여’, ‘하나님 아버지시여’ 라 부르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어법상의 문제가 있다. 즉 2인칭 존칭 명사에 호격 조사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 국어에서는 2인칭 존칭 명사에 호격 조사가 붙지 못한다. 2인칭에는 존칭이 아닌 경우에 한하여 호격 조사 ‘-아’나 ‘-야’가 붙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친구 사이나 아랫사람에게는 “복동아.” “철수야.” 와 같이 부를 수 있지만 손윗사람에게는 호격 조사를 붙일 수 없기 때문에 “아버님이시여.” “할아버님이시여.” 라 부르는 것은 불가하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존칭의 2인칭이 되기 때문에 이미 사어가 된 ‘-이여’, ‘-이시여’를 붙여서는 안되고 그저 ‘주님’,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로 해야 옳다.

  4. 우리 성도님들이→ 저희들이, 교회의 권속들이… 등등 국어 존대법에서는 청자(聽者)가 최상위자일 경우 다른 어떤 인물에게도 존대를 쓸 수 없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말은 바른 표현이 못된다. “할아버지. 형님이 가셨어요.” “아버지. 누님이 오셨어요.” 첫째 문장에 등장하는 인물은 청자인 ‘할아버지‘와 주어인 ‘형님’ 및 화자(話者)인 손자 ‘나’다. 여기서 청자인 ‘할아버지’가 최상위자이므로 ‘형님’과 ‘나’는 존대를 받을 수 없다. 둘째 문장에 등장하는 인물은 청자인 ‘아버지’와 주어인 ‘누님’과 화자인 ‘나’다. 여기서도 청자인 ‘아버지’가 최상위자이기 때문에 ‘누님’과 ‘나’는 존대를 받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위의 문장들은 다음과 같이 고쳐야 한다. “할아버지. 형이 갔어요.” “아버지. 누나가 왔어요.” 공중기도에서 기도 인도자는 회중과 동일한 입장, 동일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즉 기도 인도자는 회중과 동격이다. 그러므로 지존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서 회중을 가리켜 ‘우리 성도님들’이라 존대를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순히 ‘저희들’, ‘교회의 권속들’ 등으로 바꾸어야 한다.

  5. 대표 기도→기도 인도
    예배 순서 가운데 기도 시간이 되면 예배 인도자가 “우리를 대표해서 ooo님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ooo님이 기도하시겠습니다” “ooo님이 대표 기도를 하시겠습니다” 와 같은 안내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적절한 표현이 못된다. 온 회중이 머리를 숙여 무언의 기도를 할 때 한 사람이 소리를 내어 기도를 할 경우 우리는 이를 ‘기도 인도’라 부르는 것이 좋다. 기도 인도자는 기도의 대표자가 아니다. 이 기도 인도자는 그와 함께 머리를 숙인 다른 사람들과 분리될 수 없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또는 생각까지도 그들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기도 인도자는 대표로 뽑힌 어느 운동 선수와는 다르다. 그는 대표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것이 아니며 그와 함께 머리를 숙인 온 회중의 생각을, 즉 그들의 소원을 보다 깊게, 보다 하나님 뜻에 맞게 아울러 그 절차를 정리해 주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다. 기도 인도자가 기도할 때 회중은 결코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에게는 대표성이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에게는 대표성이 인정될 수 없다. 만인제사장의 사상은 하나님 앞에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는 신학사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기도에 있어서 ‘대표’, ‘대신’은 불가하다. 그러므로 ‘대표기도’, ‘대신하여 기도…’는 ‘기도 인도’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6. 사랑의 예수님→ 사랑의 하나님
    기도 서두에 ‘…하나님’ 대신에 ‘사랑의 예수님’, ‘고마우신 예수님’ 등으로 하나님 아버지가 아닌 예수님을 호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를 끝낼 때 반드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에게 우리의 소원을 아뢴 후 다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기도는 일차적으로 성부 되신 하나님 아버지께 성자 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아뢰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고 하신 말씀에 근거를 둔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도 그 서두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되어 있다. 역시 이 속에도 성부 하나님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우리 기도의 본임을 알아야 한다.

  7. 참 좋으신 하나님→거룩하신, 은혜로우신, 전능하신, 진실하신, 자비로우신…하나님
    기도 서두에 하나님을 부르면서 그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로 요즈음 ‘참 좋으신’과 같은 말이 사용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것은 재고를 요하는 말이라 하겠다. 즉 성경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로 쓰인 말들을 보면 ‘거룩하신’, ‘만유의’, ‘생명의’, ‘신실하신’, ‘의로우신’, ‘자비하신’, ‘영원하신’, ‘위에 계신’, ‘능력이신’, ‘진실하신’, ‘구원하시는’, ‘하늘에 계신’, ‘사유하시는’, ‘은혜로우신’, ‘보수하시는’, ‘지극히 높으신’, ‘홀로 하나이신’, ‘천지를 지으신’… 등과 같이 대부분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들이 수식어로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참 좋으신’은 이 범주에 들지 않는 수식어가 된다. 즉 ‘참 좋으신’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의 주관적인 감정, 정서로 느끼는 바대로 표현한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얄팍한 주관적인 감정으로 그 속성을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를 과장하여 발전시킨다면 ‘사랑스러운 하나님’(‘사랑의 하나님’과는 판이한 뜻이 된다.), ‘미운 하나님’, ‘야속한 하나님’, ‘귀찮은 하나님’… 등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배. 예식 분야
  1. 사회자 → 인도자(예배시)
    예배를 주관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사회(司會)라는 말은 회의나 의식을 진행하는 일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우리의 문화권에서는 사회자라고 하면 마땅히 일반 회의의 진행자를 의미한다. 교회에서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예배가 아닌 결혼예식이나 임직식 같은 인간 중심의 의식에서는 진행을 맡은 사람을 사회자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현장에서 사회자라는 명칭은 경건성의 결여를 느끼게 하므로 단순한 사회자(presider)의 개념을 넘어 예배 인도자(Worship Leader)로 부름이 타당하다. 인도(引導)의 사전적 의미는 “알려주며 이끄는 일”이므로 예배 인도라는 말을 회의에서의 사회와 구분지음이 타당하다고 본다. 본 교단 1998년 총회에서 통과된 표준 예식서에는 모든 예배의 진행자는 인도자(引導者)로, 성례전과 같은 예전의 경우는 집례자로 표기하였음을 밝힌다.

  2. 성가대 → 찬양대
    우리 한국 교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전담한 찬양대를 최근에 ‘성가대’로 많이 부르고 있다. 이 말은 출판사들이 흑인영가와 복음송을 합하여 출판하면서 ?성가곡집?이라 부르는데서 보편화되었다. 실제로 1960년대까지 우리 한국 교회는 찬양대라는 이름이 통용되었고 성가대라는 이름은 없었다. 그러나 일본의 ‘세이카다이--성가대(聖歌隊)’가 그대로 직수입되면서 성경에도 없는 '성가대’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성가라는 말은 불교를 비롯하여 모든 종교에서 부르는 노래이며, 우리의 ‘찬양’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행위에 속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성가대’라는 용어는 성경의 정신과 우리의 고유한 이름인 ‘찬양대’로 바꾸어 부름이 타당하다.

  3.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용불가(설교시)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는 한 인간이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를 위하여 어떤 사실이나 바람을 주님의 이름으로 빌고 원하는 뜻을 표현한 말이다. 이러한 표현이 설교 가운데서 진행되는 것이 타당한가를 연구 검토시킨 바 있는 본 교단 총회는 1981년 65회 총회에서 다음과 같은 연구보고서를 채택한 바 있다. 먼저,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하기에 설교에 인간의 기도식 기원이나 기도 등의 형식을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설교는 설교대로, 기도는 기도대로, 축도는 축도대로 하는 것이 좋다. 셋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의 사용은 회중에게 자극을 주고 흥분시켜 “아멘”으로 응답하지 않고는 안 되게 만들어 설교의 질서를 문란케 하고 미신적 기복 사상을 키워 줄 우려가 있다. 넷째, 설교의 근본 목적이 흐려지고 회중들에게는 설교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아멘”을 하게 하는 식으로 유혹되기 쉽다. 연구위원회는 이상과 같은 내용을 보고하면서 설교시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를 하지 않도록 건의하였고 총회는 이를 아무 이의 없이 통과시킨 바 있다. 이러한 결정은 매우 적절한 것으로서 한국교회의 설교 사역을 바로잡는 일이라 보아 설교시에 이 말의 사용을 억제함이 타당하다고 본다.

  4. 대예배→주일 예배
    예배는 하나님께서 창세 이후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구속의 크신 사랑을 깨달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감사함으로 응답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데 있어서 큰 예배가 있고 작은 예배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놀라운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려드리는 응답의 행위가 예배일진대, 거기에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주일 낮에 드리는 예배를 지칭하여 대예배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많은 교회들이 주일 낮에 드리는 예배 때에 가장 많은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온 말인 것 같다. 그러나 분명히 대예배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논리적으로 대예배가 있다면 소예배도 있다는 말인데, 어떠한 예배도 하나님 앞에서 소예배일 수가 없다. 그 예배가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한에 있어서, 어떤 예배도 소예배일 수가 없다. 다만 예배일뿐이다. 물론 시간별로 예배를 구분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주일 예배라든지, 주일 저녁(오후) 찬양 예배라든지, 혹은 시간에 따라 1부 예배, 2부 예배라고 부르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대예배”라는 용어는 합당한 말이 아니다.

  5. 열린 예배→열린 집회
    열린 예배라는 용어는 1990년대 이후에 한국 교회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원래 이 예배는 “구도자 예배”(Seeker's Service)로 알려진 집회의 형태로, 서울의 한 대형교회를 통하여 소개되면서 한국 교회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본래 열린 예배라는 용어는 “구도자”라는 부자연스러운 번역 대신에 1990년대 초에 유행하던 “열린”이라는 단어로 의역한 것으로 “구도자의 집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열린 예배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예배의 자리에 나아올 수 있도록 배려하는 형식과 접근 방법을 택한 구도자의 집회를 말한다. 그러므로 열린 예배가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엄밀하게 따져서 예배라기보다는 “전도집회”이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의 구속 사건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불신자들, 혹은 구도자들은 아직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은 사람들이요,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직 예배드릴 자격도 없고, 예배드릴 마음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예배드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은 신령과 진리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사랑에 응답하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다. 또 한 가지 예배의 기본 정신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에 대해 감사로 응답하는 드림에 있지, 예배를 통해서 무엇을 받거나 추구하는 데 있지 않다. 그런데 이런 면에서 볼 때 열린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응답의 행위여야 하지, 인간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에 예배가 회중지향적이 되고, 예배의 근본적인 목적이 드림에 있지 아니하고, 무엇인가 그 예배를 통해서 얻어내는데 목적이 있다면 --비록 그것이 영혼구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을 위한 집회이지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아니다. 그러므로 열린 예배라는 용어는 차라리 “열린 집회”로 부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이후에 많은 교회에서는 불신자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한 “구도자의 집회”와는 별도로 신자 중심의 “열린 예배”를 드리고 있다. 즉 구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전도 집회로서의 열린 예배의 개념보다는 기존 신자들에게 새로운 생동감을 주는 예배로서의 열린 예배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예배는 주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기존의 형식적이고 딱딱한 전통적인 예배를 벗어나서 잔치적이고 시각적이며 회중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많이 격려하는 생동감 넘치는 예배인데, 이를 가리켜서 “열린 예배”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대로 “열린 예배”라는 용어 자체가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가능하면 “열린 예배”라는 용어의 사용은 삼가는 좋겠다. 의미상으로도 “열린 예배”가 있다면 “닫힌 예배”도 있다는 말인데, 무엇이 열린 예배이고, 무엇이 닫힌 예배인가? 또 무엇에 대해서 열려있고, 무엇에 대해서 닫혀있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굳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활기 있는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열린” 이라는 용어보다는 “젊은이 예배” 혹은 “찬양 예배” 등으로 사용하고, 열린 예배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6. 예배봐준다→사용불가
    흔히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개업예배를 봐준다” “구역예배를 봐준다”는 표현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우리의 응답 행위이다. 즉 예배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깨달은 사람이 참된 감사와 찬양과 헌신과 고백의 응답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나를 대신하여 예배를 봐준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예배는 구원의 은총을 깨달은 내가,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와 감격으로 드리는 행위요, 응답하는 행위이지, 누군가가 나를 대신하여 드리거나 봐주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치 “점을 봐준다”는 미신적인 용어를 상기케 하는 “예배봐준다”는 표현은 예배 신학적으로 볼 때에 받아들일 수 없는 잘못된 용어이다.

  7. 준비찬송→사용불가
    찬송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곡조가 있는 시이다. 찬송은 하나님 앞에 곡을 붙인 성도들의 경배의 표현이며, 기도이며, 때로는 성도들의 신앙고백과 결단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을 생각하고 감사의 응답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모이면 열심히 찬송 부르는 것을 성도의 바른 자세로 알고 찬송을 열심히 부른다. 그러나 이렇게 찬송의 생활이 습관화 되다보니 때때로 찬송의 목적이 변질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준비찬송”이라는 말에서 찾아보게 된다. 교회에서 “다같이 준비 찬송을 부르면서 앞자리부터 채우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하나님께 영광과 경배를 드려야 할 찬송을 자리를 정돈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간주하는 이런 말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찬송을 시간을 메우기 위한 수단이나 자리를 정돈하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준비찬송”이라는 용어는 마땅히 사용해서는 안 된다.

  8. 예배/예식/기도회→구별사용
    한국교회는 어느 나라의 교회보다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이다. 그래서 예배와 각종 기도회로 한 주일에 여러 차례 모인다. 주일 낮을 비롯하여 주일 저녁, 수요일 저녁, 금요일 밤, 그리고 매일 새벽 등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의 열심은 세계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모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혼란스럽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모든 모임에 예배라는 명칭을 붙여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심지어는 돌, 회갑, 추모 등의 모임에도 예배라는 명칭을 붙임으로써 진정한 예배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배와 예식과 기도회를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신 창조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구속의 은총을 깨닫고 감격하여 드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응답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결코 인간을 위한 모임이거나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예배와 예식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돌, 회갑, 추도, 입학, 졸업, 결혼, 입당, 임직, 교회 창립 등의 행사를 할 경우에는 예식으로 표현하고, 예배와 혼동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도를 목적으로 모이는 수요 저녁 모임과 금요 철야 혹은 심야 모임 그리고 매일 새벽 모임 등은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 그리고 새벽기도회 등으로 명시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하여 본 교단 총회를 통과한 ?표준예식서?의 정신을 따라 다음과 같이 정리함이 타당하다고 본다. 주일예배, 주일 저녁 찬양예배, 주일학교 예배, 수요기도회, 철야기도회, 경건회(각종 회의 시작 전)

  9. 헌금→봉헌
    한국 교회의 예배 순서 가운데 “헌금”이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가 있다. 이 순서는 원래 봉헌을 말하는 것이다. 기독교 예배 속에서 봉헌의 순서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봉헌의 의미는 단순히 돈이나 예물을 드리는 행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봉헌은 하나님의 은총 앞에 성도들이 드리는 응답적 행위를 총칭하는 말이다. 즉 봉헌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정성을 다하여 경청한 무리들이 스스로 우러나는 감사의 응답으로 내어놓는 모든 마음과 정성의 표현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순서를 “헌금”이라는 용어로, 즉 단순히 돈을 바치는 행위로 지칭하는 것은 봉헌의 의미를 아주 축소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헌금”이라는 용어보다는 “봉헌”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이 마땅하다.

  10. 축제→ 잔치 (때에 따라 절기행사, 축하행사...)
    우리말 큰 사전에서는 '축제'를 “축하하고 제사지냄”이라고 단순하게 풀이하여 실어 놓았으나 이가원과 임창순의 ?東亞漢韓中辭典?에서는 "축제란 제사 이름이니, 묘문(廟門) 안과 밖에서 이틀에 걸쳐서 드리는 묘문제로서 조상을 사당 안에서 제사지내고, 그 다음날 사당 밖에서 지내는 제사이다“라고 정의해 놓았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마을 제사를 영어의 Celebration 과 Festival 같은 축하행사를 보면서 자신들이 제사에서 마음놓고 떠들고 소리지르면서 춤추는 고유한 행사와 모양새가 비슷함을 알고, 1928년에 '축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그들의 사전에 도입한 바 있다. 이상과 같은 축제의 문제점을 보면서 이제는 성경대로 잔치, 또는 때에 따라 절기행사, 축하행사 등으로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예를 들어 성령 축제→성령 잔치, 부활절 축제→부활절 절기 행사, 성탄 축제→성탄 축하 행사 등이다. 참고로 공동번역에서는 57회, 표준 새번역에서는 13회에 걸쳐 무분별하게 축제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으나 개역 성경과 개역 개정판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11. 하나님의 축복 → 하나님이 주신 복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 하나님! 복 주시옵소서 한국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복에 관한 표현들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축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저 사람은 축복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축복된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상과 같은 표현들을 볼 때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복을 비는 존재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라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다음의 성구에서는 하나님이 복을 비는[祝福] 분이 아니라 복을 주시는[降福] 분임을 잘 밝히고 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 지라"(개역 한글판 창 12:3) "그가(멜기세덱)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개역 한글판 창 14:19)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는 “하나님! 복 주시옵소서” 또는 “복 내려(베풀어) 주시옵소서"로 바로잡음이 타당하다.

장례 분야
  1. 소천(召天)하셨다 →별세(別世)하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숨을 거두었다.
    최근에 한국 교회 어느 지도자의 죽음을 알리는 광고에서 “고 000 목사님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소천하셨다”는 문장을 보게 되었다. 한국 교회의 역사와 전통에서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교회에서 발표한 이러한 광고는 매우 부끄러운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소천(召天)이라는 어휘는 우리말 사전에도 없는 신조어로서 교회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이해한다. 이러한 의미의 표현이라면 이 어휘는 능동형으로 사용할 수 없고 수동형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소명(召命)이나 소집(召集)이란 단어의 경우 능동형일 때 그 주체는 부르는 존재를 말한다. 예를 들면 목사가 되기 위하여 신학교를 찾은 학생이 “나는 소명했다”고 말하지 않고 “나는 소명을 받았다”고 표현한다. 비록 사전에도 없는 어휘이지만 굳이 이 단어를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 “소천을 받았다”로 해야 한다. 그러나 이토록 실수가 많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보다 한국 교회가 지금까지 불러온 대로 죽음을 알리고자 하는 경우는 “별세(別世)하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로 사용함이 적절하다고 본다.

  2.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고인의 명복이라는 표현은 우리의 장례문화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온 용어이다. 그런 까닭에 누구나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의 교회에서도 흔히 사용하고 있는 현장을 보게 된다. 예를 들면 어느 장례예식에서 목사가 “이제 침묵으로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드립시다” 하는 경우도 있었고, 조문객이 문상을 하면서 유족들에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고 인사를 한다. 그러나 '명복(冥福)'이라는 용어는 우리 기독교에서 사용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이 말은 불교의 전용어로서 불교 신자가 죽은 후에 가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곳을 명부(冥府)라 하는데 거기서 받게 되는 복을 가리킨 말이다. 곧, 죽은 자들이 복된 심판을 받아 극락에 가게 되기를 바란다는 불교의 내세관에서 통용되는 용어이다. 이러한 용어가 지금껏 교회에서 종종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의 교회에서는 그러한 용어 대신 순수하게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든지, 또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와 같은 말로 유족을 위로함이 타당하다.

  3. 미망인 → 고인의 부인, 고인의 유족
    미망인(未亡人)이라는 용어는 순장(殉葬)제도에서 유래된 말이다. 순장이란 어떤 특정한 사람의 죽음을 뒤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강제로 죽여서 먼저 죽은 시신과 함께 묻는 장례 풍속을 말한다. 이러한 풍속은 고대 중국의 은나라와 이집트를 비롯하여 아프리카 지역에서 성행하였다. 특히 인도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따라 분신 자살하여 순장되는 ‘사티?라는 풍습이 1829년 법으로써 금지되기까지 존속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의 22대 지증왕 3년(주후 502년)에 왕명에 의하여 순장 금지되기까지 이러한 제도가 존속되었다. 이런 순장제도가 성행할 때나 쓰일 수 있었던 ‘미망인’ 이라는 용어의 뜻을 풀어 보면 “남편이 죽었기에 마땅히 죽어야 할 몸인데 아직 죽지 못하고 살아 있는 여인”이라는 뜻이 된다. 이러한 용어의 뜻을 알았을 때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말임을 깨닫게 된다.

  4. 칠성판(七星板)→ 고정판 또는 시정판
    우리의 장례문화에 변화가 일고 있으나 아직껏 가정에서 죽음을 맞은 경우가 많으며 그 때마다 목회자가 직접 시신을 다루는 일이 많다. 이때 시신이 반듯하게 굳어지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널빤지를 시신 밑에 깔고 손발의 위치를 반듯이 잡아 준다. 여기에 사용되는 널빤지 사용의 전통적인 관례가 이 널빤지에 북두칠성을 본 따서 일곱 개의 구멍을 뚫었다 하여 ‘칠성판’이라 부른다. 흔히 우리 교회에서도 적당한 이름을 못 찾아 ‘칠성판’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 유래는 별이 인간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지배한다는 도교의 믿음에서 시작되었다. 우리의 교회가 이러한 토속 신앙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시신을 고정시키기 위한 것이기에 순수하게 ‘고정판(固定板)’ 또는 ‘시정판(屍定板)’으로 부름이 타당하다.

  5. 영결식, 고별식 →장례예식
    인간이 세상을 떠났을 때 진행하는 예식을 칭하는 용어로서 ‘영결식’. ‘고별식’. ‘발인식’ 등 다양한 명칭이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이 담고 있는 뜻이 우리의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영결식은 ‘영원히 이별한다’는 뜻이며 고별식은 ‘작별을 고한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는 교리와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있기에 이러한 표현은 적당하지 못하다. 그리고 발인식은 시신을 담은 상여가 집에서 떠남을 뜻하기에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한다. 이러한 용어의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하여 본 교단 총회에서는 표준 예식서를 통하여 이미 장례예식으로 정리하였기에 이제는 모두가 ‘장례예식’이라는 용어로 통일하여 사용해야 한다.

  6. 삼우제(三虞祭)→ 첫 성묘(省墓)
    우제(虞祭)란 장례를 마친 뒤에 지내는 제사로서 우리의 장례문화에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다. 이 때의 제사는 세 번 갖게 되는데 그것을 초우(初虞) 재우(再虞) 삼우(三虞)라 한다. 이 중에 아직도 삼우제라는 이름은 교회 안팎에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의 삼우제는 장사 지낸 뒤 3일 만에 묘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관례로 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성묘란 시체를 묻고 뫼를 만드는 일, 즉 산역(山役)이 잘 되었는가를 살피는 것이 주목적이다. 아직도 매장 문화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 한국 교회에서는 가족들이 3일만에 성묘를 하는 일이 보편적이다. 이러한 실정을 감안하여 본 교단의 표준 예식서에는 삼우제라는 이름을 ‘첫 성묘’로 부르도록 하였는데, 매우 적절한 용어라고 본다.

회의 용어
  1. 고퇴→고퇴 또는 의사봉
    한국의 장로교회는 정규 회의에 사용하는 의사봉(議事棒)을 ‘고퇴’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이 용어는 국가나 사회 기관에서 전혀 사용하지 않는 명칭이며, 한국 교회 가운데서도 장로교회에서만 제한적으로 쓰고 있는데 그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07년 9월 17일, 평양 장대재 교회에서 대한 예수교 장로회 노회를 창설하는 회의가 열렸던 때의 일이다. 절차위원장이 은으로 십자를 면에 새기고 청홍으로 태극을 머리에 그리고 광채 있는 은으로 띠를 띤 견고한 ‘마치’를 마삼열 회장에게 전달했다. 회장은 이 물건이 영원토록 대한 장로교 노회의 마치가 될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이 ‘마치’란 이름이 속되다는 의견이 있어 회장은 기일, 한석진 두 사람에게 이름을 개정하도록 임무를 맡겼다. 두 위원은 이틀 후 회의에서 ‘나무마치 퇴(槌)’자와 ‘고두’라 할 때 쓰는 ‘두드릴 고(叩)’자를 합하여 ‘고퇴’라 정했음을 보고하였고, 이것을 길선주 회원의 동의로 받아들였다. 이처럼 ‘고퇴’라는 명칭은 대한 예수교 장로회 노회에서 작명되어 결의 과정을 거친 것이므로 공식적 효력을 가진 용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용어가 노회 창설 때 제작된 의사봉에 대한 개별 명칭으로 지어졌고, 기독교적 의미를 포함하지 않은 이름이며, 장로교회 밖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특수용어임을 고려하여, 장로회 총회의 상징적 의사봉 만을 ‘고퇴’라 부르고 그 외에는 ‘의사봉’이나 ‘사회봉(司會棒)’이라는 현대적 용어로 바꾸어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2. 자벽→지명, 임명
    교회 회의록에 종종 ‘회장 자벽’이라는 기록이 보이고, 심지어 ‘자백’이라고 잘못 써 놓은 사례까지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고어에 유래를 두고 있어 현대에 와서 거의 세력을 잃어버린 말을 교회가 고수하다보니 이처럼 생소한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자벽(自?)이란, 장관이 자기 뜻대로 관원을 추천하여 벼슬을 시키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이는 <수교집록(受敎輯錄)> <조선철종실록(朝鮮哲宗實錄)>에서 용례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벽 행위는 각 관아의 우두머리가 아무런 기준도 없이 자기 사람들을 특정한 자리에 대거 기용함으로써 심각한 폐단을 가져오게 되었다. 따라서 이 용어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 의미나 정서가 결코 긍정적일 수 없었다. 이 말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의장이 임의로 어떤 임원을 임명하는 일’로 바뀌었으나 어감은 여전히 부정적으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는 각종 회의에서 굳이 이 용어를 고집하고 있다. 대체로 회의 벽두에 특별위원을 선정하는 경우에 국한하여 사용되고 있는데, 회장의 자의임명이 불가피한 형편이라면 ‘회장 자벽’이라는 용어 대신에 ‘회장 임명’또는 ‘회장 지명’으로 고쳐 쓰는 것이 좋겠다.

  3. 증경→전(前)
    ‘증경(曾經)’이란 용어는 우리나라에서는 사용하지 않았고, 중국의 고대시가에 기원을 둔 특수한 말이다. 증(曾)은 ‘일찍이’라는 뜻이고, 경(經)은 ‘지내다’라는 훈을 가지고 있으므로 ‘일찍이 지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고대 중국 당나라의 시인이었던 노조린(盧照隣)이라는 사람의 작품 <장안고의(長安古意)>에서 ‘증경’이라는 시어가 나오는데, ‘증경학무도방년(曾經學舞度芳年)’ -일찍이 춤 배우느라고 젊은 시절을 보내었다네- 정도이므로 그다지 심오한 뜻을 갖고 있지 않다. 한자어를 전통적으로 존중하며 차용하기 좋아했던 선비들이 이런 희귀한 용어를 우리나라에 들여왔고, 한국 교회도 교단을 위하여 일한 경력이 있는 분들에게 경의를 표시하고자 이 단어를 부각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교회 바깥에서는 이 용어를 전혀 쓰지 않고 있어 ‘증경대통령’ ‘증경총장’ ‘증경사장’이라는 호칭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직 교회에서만 ‘증경총회장’ ‘증경노회장’으로 부르며 심지어 ‘증경청년회장’이라고까지 하여 이 단어를 남용하는 실정이다. 신분을 존중하기 위해 중국의 고대어를 써야 할 이유는 없다. ‘전총회장’이라고 하여 존대의 정도가 손상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4. 휘장 분배→꽃 증정
    총회나 노회에서 개회를 선포한 직후 ‘휘장 분배’라는 순서를 갖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는 점차 이를 생략하는 추세이지만, 역대 회장들과 주요 임원들이 일제히 단상으로 올라가 도열하면 이어서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여성들이 등장하여 임원들의 가슴에 꽃을 꽂아 드리는 모습은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휘장(徽章)’이란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모자나 의복에 붙이는 표를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표지(標識)’라고도 할 수 있고, 이미 익숙해진 영어 단어로 ‘배지(badge)’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회의 초반에 원로회원에게 상징적인 지위를 부여하고자 배지 대신 가슴에 꽂아 드리는 꽃은 결코 휘장이라 할 수 없으며, 이 순서 또한 매우 형식적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분배(分配)’라는 용어 역시 재고되어야 한다. 분배는 고르게 나누어준다는 뜻이므로, 원로들에게 표지를 고루 나누어주는 순서라는 의미는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굳이 이 순서를 사용하려 한다면 ‘꽃 증정’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가장 타당하리라 본다.

교회생활
  1. 당회장 → 담임목사. 당회장(당회 회의 때)
    많은 교회에서 담임 목사를 당회장으로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예배순서를 실은 주보나 교회 게시판에 당회장 000 목사라고 기록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의 어느 교회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다. 원래 당회장이란 영어의 Moderator로서 토론이나 회의의 사회자 또는 중재자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그래서 당회 회의를 주관하는 목사를 비롯하여 노회와 총회의 회의를 주관하는 사람을 모두 ‘모더레이터’라고 부른다. 그러기 때문에 당회를 주관하는 순간에는 목사를 ‘당회장’이라고 부를 수 있으나 그 외의 시간이나 장소에서는 ‘목사’ 또는 ‘담임목사’로 부름이 타당하다. 이 호칭이 바로잡아지지 않으면 장로를 언제 어디서나 ‘당회원’으로 불러야하는 모순을 낳게 된다.

  2. 예수 → 예수님 성령 → 성령님
    우리의 언어문화는 윗분들을 호칭할 때 ‘님’자의 사용을 엄격하게 가르친다. 특히 자신이 섬기는 신의 존재를 호칭할 때는 ’님‘자 또는 그 이상의 존칭어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불교의 신도들은 ’부처님‘ ’부처님 오신 날‘과 같이 철저히 ’님‘자를 사용하여 높임의 뜻을 나타낸다. 우리의 기독교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되 그 위(位)는 성부 성자 성령으로 구분하게 되어있다. 성삼위가 동격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가지고 한동안 논쟁이 활발히 전개된 바 있다. 그러나 325년 니케야 공회의에서는 제2 위격 예수님의 신성문제가 확정되었고,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는 제3 위이신 성령님의 신성문제를 확정하였다. 이로써 삼위일체의 교리는 기독교에 정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성삼위는 동격이신데 어느 위에는 ‘님’자를 붙여 호칭을 하고, 어느 위에는 그렇지 아니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나 ‘예수님’ 뿐만 아니라 ‘성령님’을 호칭할 때도 ‘님’자를 사용함이 타당하다고 본다. 이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희생’ ‘성령님의 역사’로 언어의 순화를 가져 올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3. 전야제 → 전야 축하행사
    이 용어는 ‘축제’라는 말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미 ‘부활절 축제’ ‘성탄 축제’라는 용어를 ‘부활절 절기행사’ ‘성탄 축하행사’ 등으로 바꾸어 써야 할 필요성을 밝혔으므로, 부활절 전날 밤에 갖는 행사도 당연히 ‘부활절 전야제’ 대신 ‘부활절 전야 축하행사’라고 불러야 한다. 전야제는 전날 밤에 여는 축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각종 제사가 새벽에 열리는 점을 감안할 때 그 앞날의 밤은 이것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보름이나 중추절 같은 명절의 전날은 밝은 달을 바라보며 축하의 행사를 펼치기에 적절했었다. 성경에는 어떤 행사에서 전야에 모여 축하 자리를 마련했다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현대의 교회에서는 부활이나 성탄처럼 새벽에 이루어진 일을 축하하기 위한 전야 행사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이런 행사를 가리키는 용어는 ‘전야제’ 대신 ‘전야 축하행사’라고 하여 제사의 성격을 배제하고, 밤 깊은 시간까지 축하한다는 순수한 의미를 담는 것이 좋겠다.

  4. 사모 →사모님
    예로부터 스승을 높여 사부님이라 했으며 이에 걸맞게 스승의 부인을 높이어서 사모님이라 불렀다. 그런데 요즈음 교회 안에서는 목사 부인도 사모님이라 부르고 있다. 선생이 자신을 사부라 부를 수 없듯이 선생이나 목사도 자기 부인을 사모라 부를 수 없다. 그러므로 어느 목사가 자기 부인을 가리켜 사모라고 한 다음과 같은 표현은 잘못 된 것이다. “우리 집 사모는 다녀왔지요” 또한 선생 부인이나 목사 부인들도 자신을 사모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그런데 최근 목사 부인들이 모여서 “사모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는데 이 “사모회”는 바람직한 용어가 아니다. 왜냐하면 목사 부인들이 자신을 사모라 지칭했기 때문이다. 이 “사모”는 주로 제자나 평신도들이 선생 부인이나 목사 부인을 높여 불러 주는 말이기 때문에 실제 사용 될 때는 “사모님”이 될 수밖에 없다.

 


 

기독교 용어, 바르게 사용합시다.

주제

그릇된 용어

바른 용어

기도

당신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기도드렸습니다(기도하였습니다)

기도드립니다(기도합니다)

주여, 하나님 아버지시여

주님,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님들이

저희들이, 교회의 권속들이

대표 기도

기도 인도

사랑의 예수님 (기도 첫 호칭으로)

사랑의 하나님

참 좋으신 하나님

거룩하신, 은혜로우신, 전능하신

진실하신, 자비하신...하나님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

사용 불가

중보 기도

중보적 기도, 이웃을 위한 기도

예배

예식

사회자(예배시)

인도자

성가대

찬양대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용불가

대예배

주일예배

열린예배

열린집회

예배 봐준다

사용불가

준비찬송

사용불가

예배/예식/기도회

구별사용

헌금

봉헌

축제

잔치 (때에 따라, 절기행사, 축하행사)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주신 복

하나님! 복 주시옵소서!

룻기서,욥기서,잠언서,아가서

룻기,욥기,잠언,아가

시편○장○절

시편○편○절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설교시)

사랑하시는 하나님(기도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하는 하나님

주기도문 외우겠습니다.

사도신경 외우겠습니다.

주님 가르쳐주신 대로 기도하겠습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제사,제단,제물

예배,성단,예물

영(0)시예배,자정예배

송구영신예배

... 기도로 폐회합니다.

... 기도로 예배를 마칩니다.

... 기도로 기도회를 마칩니다.

예배의 시종을 의탁하옵고

주장하시고, 인도하시고

주제

그릇된 용어

바른 용어

장례

소천하셨다

별세하셨다.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숨을 거두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미망인

고인의 부인, 고인의 유족

칠성판

고정판, 시정판

영결식, 고별식

장례예식

삼우제

첫 성묘

회의

고퇴

고퇴, 의사봉

자벽

지명, 임명

증경

전(前)

휘장 분배

꽃 증정

교회

생활

당회장

담임목사, 당회장(당회 회의 때)

예수, 성령

예수님, 성령님

전야제

전야축하행사

사모

사모님

천당

하나님의 나라, 천국, 하늘나라

입신

사용불가

하나님의 몸된 교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수양회

신앙수련회

태신자

전도 대상자

안집(‘안수집사’의 줄임말)

사용불가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주님 안에서 문안합니다.

주님 안에서 문안드립니다.

일용일(공일)

주일

그리스도인들이 쓰기에 바람직하지 못한 용어(도교, 불교, 무속, 토속신앙 관련어)

도로 아미타불, 공염불, 보살같다, 부처님 가운데 토막, 신선놀음, 도사

신주모시듯 한다, 명당자리, 넋두리, 도깨비 장난, 일진(日辰), 살(煞)

귀신같다(이다), 액(厄), 운수(運數), 운(運), 수(數), 재수(財數)

사주팔자, 터주대감, 손, 운명

참고: 변경된 새로운 기독교 용어,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교육부 편, 한국장로교출판사

 

1.이미 우리의 언어생활에 굳어져 바르게 고쳐 사용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바르게 사용하도록 주의하고 노력합시다.

2.지면 제약상, 위의 표에 용어의 그릇된 이유를 밝히지 못해 아쉽습니다. 

'신앙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가대와 찬양대의 차이/ 교회바른용어  (0) 2009.11.21
샤머니즘과 한국 기독교  (0) 2009.11.10
성지순례 / Holy Land  (0) 2009.06.07
성경말씀과 삽화  (0) 2009.06.07
성경의 각종 물건 상징   (0) 2009.05.21


예루살렘


베들레헴
아인카렘
헤브론
예리코(여리고)
길벗 쿰란
사해
마사다
소돔
텔 아비브
텔 카실
야포
아슈케론
케이사리아
메기드
하이파
아코
나사렛
다볼산
티베리아호
카펠나오
다브가(팔복교회)
스팟트
기봇 아예럿트 허셔홀
고랑
바냐스
베르세브
디모너
아브다드
에이럿트



KCM Menu: 

'신앙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샤머니즘과 한국 기독교  (0) 2009.11.10
기독교 바른 용어   (0) 2009.10.24
성경말씀과 삽화  (0) 2009.06.07
성경의 각종 물건 상징   (0) 2009.05.21
거룩한 문자 도안   (0) 2009.05.21

 

 

창 1:1
창 1:14-25
창 1:26-31
창 3:1-23
창 4:2-12
창 6:5-18
창 7:1-23
창 8:1-20
창 9:1-17
창 11:1-9
창 12:1-7
창 13:1-18
창 15:1-6
창 18:1-19
창 19:1-30
창 22:1-18
창 24:1-60
창 24:63-67
창 27:1-41
창 28:1-22
창 29:1-28
창 32:13-30
창 33:1-20
창 37:1-4
창 37:5-20
창 37:21-35
창 39:1-20
창 40:1-22
창 41:1-36
창 41:37-48
창 42:1-25
창 43:1-34
창 49:1-20
출 1:6-14
출 2:2-3
출 2:4-6
출 3:1-12
출 4:1-10:21
출 12:1-17
출 13:20-22
출 14:5-22
출 14:23-31
출 16:1-31
출 17:1-7
출 19:1-20:22
출 32:1-20
출 33:7-11
출 35:4-29
출 40:17-38
민 13:1-34
민 16:23-35
민 21:4-9
민 22:3-35
민 27:18-23
신 5:32-33
신 26:1-19
신 34:1-12
수 2:1-16
수 3:7-17
수 6:1-24
수 10:6-15
삿 7:1-24
삿 7:4-24
삿 13:1-16:28
삿 16:15-30
룻 1:1-17
룻 2:1-16
삼상 1:1-18
삼상 1:21
삼상 3:1-14
삼상 4:1-18
삼상 10:1
삼상 13:13-14
삼상 17:1-53
삼상 18:1-11
삼상 20:30
삼하 2:1-4
삼하 6:1-19
삼하 22:1
삼하 12:1-14
삼하 18:9
왕상 3:5-28
왕상 6:14-36
왕상 8:12
왕상 10:1-13
왕상 11:1-13
왕상 12:1

.

왕상 13:1
왕상 17:1-6
왕상 17:7-24
왕상 18:18-39
왕하 2:19-22
왕하 5:1-8
왕하 5:9-17
왕하 6:8-23
왕하 11:1-12:2

.

왕하 17:7-18
왕하 17:24
왕하 18:18
왕하 19:8-19
대하 34:1-8

.
.
.
.
.

단 1:1-20
단 3:24
단 5:5
단 6:1
단 6:12-28
.

에 2:1
에 2:8

.
.

욥 1:1-
욥 42:10

.
.
.
.

사 40:28-31

.

사 11:4-9

.
.

욘 3:1
미 7:1-18
미 5:1-10
눅 1:5-25
눅 1:57-80
눅 1:26-38
눅 2:1-7
눅 2:9-14
눅 2:15-20
눅 2:21-35
마 2:1-10
마 2:1-12
마 2:13-15
마 2:19-23
눅 2:40-51
막 1:1-8
마 3:11-17
마 4:1-11
마 4:12-22
요 2:1-11
요 2:13-23
요 3:1-21
요 4:1-42
눅 5:1-10
눅 5:17-26
마 5:1-16
마 5:17-37
마 6:16-34
마 7:15-29
눅 7:11-16
마 13:3-9
마 13:24-50
마 8:24
마 8:26-27
막 5:21-42
요 6:3-14
마 14:22-33
마 17:1-9
마 18:21-35
눅 10:25-37
요 10:1-18
눅 10:38-42
눅 12:13-21
눅 16:19-31
눅 15:3-7
눅 15:11-19
눅 15:20-32
요 11:1-50
눅 17:11-19
눅 18:10-14
마 19:13
막 10:46-52
눅 19:1-10
눅 7:37-50
마 21:1-10
눅 13:34
마 21:33-46
눅 14:12-24
마 22:15-22
마 22:36-40
막 12:41
마 24:4-42
마 25:1-13
요 15:1-7
눅 22:1-20
요 13:4-38
마 26:36-44
마 26:45-47
마 26:58-75
눅 23:1-23
눅 23:27-30
눅 23:48
마 27:62-66
마 28:1-8
요 20:3-9
눅 24:13
눅 24:33-49
요 21:1-17
행 1:3-11
눅 21:33
행 2:1-13
행 2:14-47
행 3:1-26
행 4:1-21
행 7:54
행 8:26-39
행 9:1-2
행 9:3-20
행 9:36-43
행 10:1
행 12:1-17
행 13:1-14:
행 15:36
행 16:16-39
행 17:22
행 18:23
행 19:23
행 20:17-38
행 23:1
행 27:9
행 28:23-31
계 1:1
  • 천지창조
  • 에덴동산
  • 사람을 지으시고 기뻐하심
  • 인간 타락
  • 가인과 아벨의 제사
  • 노아 방주 준비
  • 각종 동물들이 방주로 들어감
  • 방주에서 나온 비둘기
  • 무지개 언약
  • 바벨탑 사건
  • 부름 받은 아브람
  • 아브람과 롯의 결별
  •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하나님
  • 사라의 웃음과 출생 약속
  • 소돔의 멸망
  • 아브라함의 시험
  • 리브가를 만난 엘리에셀
  •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 야곱이 이삭의 축복을 받음
  • 사닥다리 환상을 봄
  • 야곱과 라헬의 만남
  •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 야곱과 에서의 재회
  • 야곱의 편애
  • 요셉의 꿈
  • 애굽으로 팔려 가는 요셉
  • 보디발 가정의 총무 요셉
  • 감옥의 바로 관원장들
  •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요셉
  •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 애굽에 온 형제들
  • 다시 만난 형제들
  • 야곱의 아들들을 축복
  • 애굽에서 이스라엘의 노예생활
  • 갈대상자에 모세를 띄워보냄
  • 바로의 딸이 갈대상자의 모세를 발견함
  •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과 모세
  • 재앙을 부르는 바로의 완악
  • 유월절
  •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 갈라진 홍해
  • 홍해에 수몰되는 애굽 군대
  • 때를 따라 양식을 주심
  • 므리바 반석의 기적
  • 시내산에 나타나신 여호와
  • 증거판을 깨는 모세
  • 모세의 기도
  • 여호와께 드릴 예물들
  • 성막의 건축이 완성됨
  • 포도송이를 가지고 돌아오는 정탐군
  • 징벌 당하는 반역자들
  • 불 뱀과 놋 뱀
  • 발람의 나귀
  • 새 지도자 여호수아
  •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대로
  • 첫 곡물과 십일조
  • 가나안을 조망하는 모세
  • 라합과 정탐꾼
  • 요단 강을 건넘
  • 여리고성 함락
  • 기브온의 구원 요청과 승리
  • 횃불 항아리와 나팔 전술
  • 삼백 용사를 선발하는 기드온
  • 사사 삼손
  • 최후의 삼손
  • 룻과 나오미
  • 이삭을 줍는 룻
  • 한나의 기도와 서약
  • 제단에 바치는 사무엘
  • 엘리에게 전해 준 하나님의 계시
  • 엘리의 죽음
  • 사울의 기름부음
  • 양 치는 다윗 / 사자를 죽임
  • 다윗과 골리앗
  • 요나단과 다윗의 언약
  • 사울을 죽이려는 병사
  • 다윗이 유다 왕이 됨
  •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옴
  • 다윗의 찬양
  •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심
  • 상수리나무에서 떨어져 죽는 압살롬
  • 솔로몬의 지혜로운 재판
  • 성전 건축이 완성됨
  • 성전 건축후의 설교
  • 스바 여왕의 방문
  • 솔로몬의 우상 숭배
  • 왕국 분열

  • 제사를 지냄

  • 우상을 섬기다가 징계 받는 여로보암
  • 엘리야의 첫 예언
  •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린 엘리야
  • 가뭄과 엘리야의 기도
  • 물을 고친 엘리사
  • 문둥병자 나아만
  • 예물을 거절하는 엘리사
  •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 요아스의 즉위식

  • 왕의 잘못

  • 성읍에 망대로부터 견고한 성에 이르도록 산당을 세우고
  • 사마리아에 이주시킨 이방 민족들
  • 왕의 말을 전하는 랍사게
  • 산헤립의 위협 편지
  • 요시야의 개혁과 율법책

  • 잡혀가는 장면
  • 하늘을 우러러 간구함
  • 왕이 종이를 태움
  • 노예로 끌려감
  • 성의 함락

  • 다니엘이 바벨론 왕궁에 등용
  • 풀무불 속의 네 사람
  • 왕궁 벽에 기록된 글자
  • 총리가 된 다니엘
  • 사자굴 속의 다니엘
  • 각종 기물을 돌려줌

  • 아리따운 에스더
  • 왕궁으로 부름을 받은 에스더

  • 돌의 운반과 건축
  • 말씀의 선포

  • 욥의 시험 세 친구와 부인
  • 욥의 축복

  • 노루와 사슴
  • 말씀을 경청함
  • 두루마리 말씀을 봄
  • 말씀의 선포

  •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긍휼

  • 불로 연단되는 기구

  • 어린양과 사자와 맹수들과 함께 놀음

  • 선지자의 외침
  • 길을 떠나는 사람들

  • 니느웨 멸망을 선포하는 요나
  • 미가의 기도와 응답
  • 메시야 출생 예언
  • 천사가 세례 요한 탄생 예고
  • 세례 요한의 출생
  • 마리아에게 나타난 천사
  • 호적하러 고향으로 돌아가는 요셉과 마리아
  • 목자들에게 예수의 탄생을 알림
  • 예수의 탄생
  •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심
  • 동방박사 세사람
  • 동방박사의 경배
  • 애굽의 피난
  • 예수의 어린시절, 요셉과 목수일을 함
  • 성전에서 묻기도하고 가르치기도 하심
  • 세례요한의 회개 선포
  • 세례받는 예수님
  • 시험받으시는 예수님
  • 제자들을 부르심
  • 가나의 혼인잔치
  • 성전을 청결케 하심
  • 니고데모의 질문
  • 사마리아 여인과 생수
  • 어부 제자들을 부르심
  • 지붕을 뜯고 내리는 중풍병자
  • 산에서 팔복을 말씀하심
  • 복음과 율법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
  • 들의 백합화와 믿는이에 대한 약속
  • 모래위에 지은집과 반석위에 지은집
  •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림
  • 씨 뿌리는 자의 비유
  • 배에 등대하셔서 가르치심
  • 풍랑을 만난 배
  • 바다를 잔잔케 하심
  • 야이로의 딸을 살림
  • 오병이어의 기적
  • 물위를 걸으심
  • 변화산 사건
  • 용서에 대하여
  • 선한 사마리아인
  • 선한 목자 예수
  • 마리아와 마르다
  •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 잃은 양의 비유
  • 두 아들의 비유
  • 돌아온 탕자
  • 죽은 나사로를 살림
  • 한 문둥병자의 답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
  • 어린이에게 축복
  • 소경 바디매오를 가르침
  • 뽕나무 위에서 예수를 만나 삭개오
  • 예수께 향유를 부은 여인
  •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심
  •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 큰 잔치에 대한 비유
  • 바리세인의 질문
  • 새 계명을 가르치심
  • 가난한 과부의 온전한 연보
  • 그리스도의 재림과 징조
  • 열 처녀의 비유
  • 예수의 가르치심,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
  • 최후의 만찬
  •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 사랑과 겸손에 대한 가르침
  • 겟세마네의 기도
  • 예수께서 잡히심
  • 베드로 예수 부인
  • 빌라도에게 심문 받음
  •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
  • 십자가에 달리심
  • 무덤에 장사되심
  • 예수의 부활을 천사가 전함
  •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심
  •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잡이
  • 예수님의 승천
  •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 오순절 성령의 강림
  •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고침
  • 베드로와 요한이 산헤드린 법정에 서다
  • 스데반이 돌아 맞아 순교함
  •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
  • 사울(바울)의 개종
  • 다메섹에서 만난 예수님
  •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
  • '신앙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독교 바른 용어   (0) 2009.10.24
    성지순례 / Holy Land  (0) 2009.06.07
    성경의 각종 물건 상징   (0) 2009.05.21
    거룩한 문자 도안   (0) 2009.05.21
    성경속 거룩한 동물 상징  (0) 2009.05.21

    성경의 각종 물건 상징

     




    Noah's Ark(노아의 방주)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 그리고 그 심판 속에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구원의 약속과 예비를 상징한다. 또한 구약 성경에 나타는 하나님의 약속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type)이기도 하다. (창세기 7장)





    Ark of the covenan(언약궤) "Ark"의 글자적 의미는 "대형상자, 궤"를 뜻한다. 언약궤는 성막(구약 출애굽 때 만든 성막)의 가장 중요한 성물이다. 성막 안 언약궤에 하나님께서 현존하시며, 그의 영광이 나타는 곳이다. 언약궤는 아카시아 나무 상자이며, 순금으로 겉이 싸여져 있고, 순금으로된 속죄판( mercy seat, 시은좌)이라 불리는 뚜껑으로 덮여있다. 속죄판 위에는 황금으로 만든 두 그룹(cherubim, 파수꾼, 천사(?))이 날개를 펴고 뚜껑을 덮고 있다. 언약궤 안에는 모세의 십계명 돌판, 만나가 담긴 단지, 아론의 지팡이가 들어있다. 구약의 언약궤가 모세의 율법을 속죄판이라는 뚜껑으로 덮여 있고, 가려져 있는 것 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으로 그의 백성들이 율법의 죄에 대한 심판에서 가려지고, 해방됨을 상징하며, 언약궤의 두 그룹 사이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여주시고 계시다.(출애굽기 25장)





    Three Arks(세 개의 보물상자) 세 개의 보물상자는 예수 탄생을 경배하였던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받힌 보물상자이다. 박사들은 세 보물 상자를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성경에는 동방박사의 수가 3명이라는 기록은 없지만 세 보물에 근거하여 3명의 동방박사라고 한다.) 황금 - 왕 중 왕 , 유향 - 주세주, 몰약 - 예수의 십자가 고난(죽음)





    Banner(깃발) Banner는 승리의 상징이다. 보통 Banner 에는 죄와 죽음에 승리하신 그리스도 부활의 승리의 상징으로서 하나님의 어린양(Agnus Dei)의 그림을 그려 넣는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환상 속에 십자가를 보고 난 후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그의 깃발에 십자가를 그려 넣어, 전쟁에서 승리하였다고 한다. 때론 세례요한 같은 성자의 상징으로도 쓰인다. 이사야 11:12 주님께서, 뭇 나라가 볼 수 있도록 깃발을 세우시고, 쫓겨난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깃발을 보고 찾아오게 하시며, 흩어진 유다 사람들이 땅의 사방에서 그 깃발을 찾아오도록 하실 것이다.





    Beehive(벌집) 벌집은 다소 현대적 상징으로서 교회를 상징한다. "벌집은 정육각 기둥 모양의 독방이 병렬적으로 묶여 소반을 만들어 벌집을 형성한다.(두산백과사전)" 벌집은 각자 다른 독방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함께 같은 벌집을 만든다. 마치 성도들은 각자의 서로 다른 영적 은사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지만, 함께 하나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어가는 것과 같다.(고린도 전 12:12)





    Bell(종) 종은 예배로의 부름과 세상에 선포되어지는 복음을 상징한다.





    Book(책) 책은 보통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상징한다. 열려진 책은 진리 혹은 계시를 묘사한다. 닫혀진 책은 성도들의 이름을 담고 있거나, 최후의 심판, 성자들의 말씀을 담긴 것을 묘사한다. 책을 들고 있는 사도는 신약성경을 저자들이다. (구약성경의 저자들은 보통 두루마리 성경을 들고 있다) 세례 요한, 스데반, 맛디아, 제자 시몬 등의 성자들은 보통 책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절기: 삼위일체





    Candle(초) 초는 예수님의 말씀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8:12)"에 집중하도록 한다. 제단에 있는 두 개의 초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나타낸다. 성도들 역시 세상의 빛으로 부름받았다. (마태 5:14)





    Candlestick(촛대 -일곱가지) 일곱가지 촛대는 보통 -"menorah" 라 불리며 유대교 회당에서 많이 쓰인다. 기독교에서 일곱가지 촛대는 성령의 7 가지 은사를 묘사한다. 지혜, 총명, 모략, 권능, 지식, 하나님을 경외하는 함, 하나님 안에서 기뻐함 (wisdom, understanding, counsel, might, knowledge, fear of the Lord, and delight in the Lord.-이사야 11:2)





    Censer(향로) 향로는 예배에서 향을 담아 태우는 용기이다. 이것은 향이 위로 피어오르듯이 성도들의 기도도 하늘로 향해 올라가는 것과 성도들이 하나님께 향을 받치는 것을 상징한다. 시편 141:2 내 기도를 주님께 드리는 분향으로 받아 주시고...





    Chalice (성배) 성배는 성만찬을 상징한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심을 상징한다.(마태 26:27)





    Chalice and Cross(십자가가 있는 성배) 십자가가 있는 성배는 주님께서 고난의 잔을 받으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심으로 희생제물이 되신 그 순종의 상징이다. 성배 위에 끝이 뾰족한 고난의 십자가(Passion Cross)를 둔다. 마태 26:39 (겟세마네에서)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절기: 사순절, 성 월요일, 목요일, 금요일





    Circle(원) 원은 시작과 끝이 없기에, 영원함을 상징한다. 보통 신에 대해 표현할 때 원의 상징을 사용한다.





    Circles - Entwined(셋 얽혀있는 원) 세 원이 얽혀있는 이 문양은 삼위일체의 상징이다. 원은 성부 성자 성령의 영원한 속성을 묘사하고, 세 원이 얽혀 있는 것은 세 위격(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의 일체임을 상징한다.





    Coat and Dice (옷과 주사위) 옷과 주사위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한다. 십자가의 달리신 예수님의 겉옷은 네 몫으로 나누어 병사들이 차지하고, 속옷은 제비를 뽑아 한 병사가 차지하였다(요한 19:23-24). 이것은 시편 22:18의 메시야적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절기 : 성(고난)주간





    Coins(동전) 동전들은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30개의 동전과 돈주머니는 유다의 배신을 묘사한다.(마태 26:14) 절기 : 사순절, 고난주간





    Crook(손잡이가 구부러진 지팡이) 목자들의 지팡이는 선한 목자되시는 예수님을 생각나게 한다.(요한 10:11-16). 또한 이것은 다윗 왕의 상징으로도,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를 경배한 목자들의 상징으로도 사용되었다. 귀하게 장식된 지팡이는 "Crosier"(프랑스어로 십자가를 나르는 자 "Cross Bearer"라고 부르며 주교나 대수도원장의 교회적 지위와 권위의 상징으로 쓰인다.





    Crown(왕관) 왕관은 왕의 권위를 상징하며, 보통 왕중 왕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디모데 전 6:13-16). 또한 신앙의 상급인 영생을 "생명의 면류관"으로 묘사한다(계시록 2:10). 세 왕관은 아기 예수를 경배한 동방박사의 상징이다. 절기 : 부활절, 그리스도 왕 주일





    Crown of Thorns(가시면류관) 가시면류관은 예수님의 고난을 상징한다. 보통 예수님의 십자가 형틀과 함께 그려진다. 가시면류관은 우리에게 "유대인의 왕 만세!"를 외치며 조롱하던 병사들을 생각나게 한다.(마태 27:27-29) 절기 : 사순절, 고난주간





    Dagger(단도) 단도는 배신의 성경적 상징이다.





    Door(문) 문은 요한복음(10:7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에서 가져온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또한 기도에로의 초대이며(마태 7:7 '문을 두드려라 ...열어주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인격적 관계를 맺으시는 사랑의 상징(계시록 3:20 '보아라, 내가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이다.





    Doorposts(문설주) 양의 피가 발라진 문설주와 상인방(문의 가로대)은 첫 번 유월절(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실 때 장자의 죽음으로 이집트를 심판하셨다. 그 때 문입구에 양의 피를 이스라엘 집은 심판을 면하였다. 출애굽기 12:21-23)을 묘사한 상징이다. 이 구약의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을 미리 암시한 사건이다. 절기 : 고난주간





    Ewer and Basin (물병-주둥이가 넓은 물단지 와 대야-물동이) 물병과 대야는 청결(순결) 예식을 묘사한다. 물병과 대야는 전혀 다른 의미의 두가지 성경적 사건을 생각나게 한다. 그 하나는 예수님께서 성만찬 후 대야를 가져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제자의 도(봉사)를 몸소 행하여 가르치셨다. (요한 13:1-20) 다른 하나는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의 피(십자가 형 재판)에 대한 자기 책임이 없음을 보이기 위해 물을 가져다가 자기 손을 씻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위해 죽으신다 것을 몰랐다. (마태 27:24) 절기 : 사순절, 고난주간





    Eye(눈) 보고 계신 눈동자는 모든 것을 아시고, 어디든 계신 하나님을 상징한다. 후기 르네상스 동안에, 눈동자는 빛 광선이 있는 삼각형 안에 그려졌고, 이것은 무한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묘사한다.





    Flame(Fire 불길-불) 불길의 혀는 성령의 상징이며, 성령의 기름부음과 권능의 상징이다. 오순절에 제자들의 머리 위에 임하였던 성령의 강림을 묘사한다.(사도행전2:1-4) 불은 또한 영적인 열정을 상징한다. 한편 불길은 지옥의 고통을 묘사하기도 한다. (마태 25:41) 성자들이 불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은 그(녀)의 신앙적 열심을 묘사한 것이다. 절기 : 성령강림절(오순절)





    Flame(Seven fold 7-불길) 7-불길은 성령의 7가지 선물을 의미한다.. - 지혜, 총명, 모략, 권능, 지식, 하나님을 경회하는 함, 하나님 안에서 기뻐함 (wisdom, understanding, counsel, might, knowledge, fear of the Lord, and delight in the Lord. 이사야 11:2-3) 절기 : 성령강림절(오순절)





    Flaming Sword(불칼) 불칼은 심판의 상징이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후, 하나님께서 천사(그룹)들과 불칼을 동산 동에 세워 생명나무를 지키게 하셨다. (창세기 3:24)





    Fountain(분수) 분수, 혹은 우물은 예수님을 생각나게 한다. 예수님께서 수가 마을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청하시며, 그 여자와의 대화 중에 예수님 자신이 '살아있는 물'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 14장) 요한 4:13-14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





    Gate(문) 문은 여러가지 의미를 지닌다. 열려진 문은 천국의 입구 또는 하늘의 안식으로 들어갈 수 있는 복음의 초대를 상징한다. 문은 또한 죽음의 문과 영생에서 분리된 것을 묘사한다.(마태 16:18, 이사야 38:10) 문은 추방(에덴동산에서)을 상징할 수도 있다.(계시록 22;14) 문은 최후의 심판 때에 저주(심판)에서 정의(선함, 의)를 구별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 부셔진 문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의해 정복된 죽음 지옥 권세를 상징한다.





    Hand of God - Manus Dei (하나님의 손-권능)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 아버지의 상징이다. AD 8C 동안 유일한 하나님의 상징으로 사용하였다. '하나님의 손'은 성경에 많이 나오는 단어이며, 하나님의 권능으로도 번역되었다. 하나님의 주권, 섭리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손은 각 손가락의 접히거나, 뻗힌 형태에 따라 여러 의미를 나타낸다. 5 손가락 모두를 움켜쥔 형태는 하나님의 보살핌을 상징한다. 엄지, 검지, 가운뎃손가락은 뻗히고,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접힌 형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상징이다. 검지는 뻗히고, 가운뎃손가락을 꼬아서 C를 만들고, 엄지를 약지와 새끼손가락에 끼워 다른 C를 만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그리스어 약자를 나타내기도 한다.





    Harp(하프) 하프는 다윗이 사울왕의 정신병을 쫓기 위해 하프를 연주한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사무엘 상 16장) 하프는 시편의 상징이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든 악기의 상징이다.





    Keys(열쇠) 열쇠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하는 교회의 권위를 상징한다. 두 개의 열쇠는 이중의 의미를 묘사한다. 하나는 회개한 죄인들에게 열린 하나님나라를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에게 굳게 닫힌 하나님나라를 의미한다. 뒤집어진 십자가에 그려진 열쇠는 베드로의 상징이다. 베드로는 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으며(마태 16장), 베드로는 순교할 때 감히 예수님과 같이 될 수 없다고 부탁하여 십자가에 뒤집혀 매달려 순교하였다.





    Ladder(사닥다리) 사닥다리는 예수께서 십자가형을 받을 때 쓰인 기구 중의 하나이기에,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한다. 보통 해면을 꿴 갈대와 함께 그려지는 바, 이는 십자가의 예수님에게 신포주를 해면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한 것을 묘사한다.(마태 27:48) 또한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하여 도망치던 중 베델에 잠들었을 때, 꿈에 천사가 사닥다리(층계, 계단)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본 것을 생각나게 한다. (창세기 28장)





    Lamp(등불) 등불은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의 상징으로 쓰인다. 마태 25장에 나오는 열처녀의 비유(지혜로운 다섯 처녀, 어리석은 다섯, 다섯 지혜로운 처녀들은 등잔에 기름을 가득 담고, 깨어 신랑을 기다렸다.)에서 유래된 상징이다. 때론 구약 성경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현존의 상징으로 쓰이며, 그 의미는 촛대와 같다. 등불은 팔레스틴 지방의 오일램프 모양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Lamps-Seven(7개의 등불) 일곱 개의 등불은 성령의 일곱가지 선물을 의미한다.. - 지혜, 총명, 모략, 권능, 지식, 하나님을 경회하는 함, 하나님 안에서 기뻐함 (wisdom, understanding, counsel, might, knowledge, fear of the Lord, and delight in the Lord. 이사야 11:2-3) 절기 : 성령강림절(오순절)





    Loaves and Fishes(빵과 물고기)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는 예수님의 기적으로 오천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의 상징이다.(마태 14:) 또한 생명의 양식(떡)이신 예수님을 묘사한다.(요한 6:)





    Luther's Seal(루터의 봉인) 이 봉인은 루터에 의해 고안된 것이다. 가운데 검은 십자가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신 예수그리스도의 참혹한 희생을 상징한다. 붉은 심장은 신앙에 의해 생기는 사랑, 기쁨 평화를 상징한다. 하얀 장미는 천사와 축복받은 영혼들은 상징한다. 푸른 바탕은 천국의 기쁨에 대한 희망을 상징한다. 금색 원 둘레는 영원한 천국의 기쁨을 상징한다.





    Mortar and Pestle (절구와 공이) 약제사의 절구는 의사인 두 성인 , 성 Cosmas(?)와 Damian(나환자의 성인)의 상징이다. 때때로 성 누가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Nails(못) 못은 예수님의 십자사 형에서 사용된 것이다. 이에 예수님의 고난을 상징한다. 못은 보통 세 개를 그리는데 이는 에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 임을 상징한다.





    Nimbus(Halo, 후광) 후광은 예수님이나 성인들의 머리 뒤에 원 모양으로 그려진다. 단순한 원 모양의 후광은 영원성을 상징한다. 예수님 머리 뒤에 세 갈래의 광선과 함께 그려진 후광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상징한다.





    Oil(기름-올리브) 구약성서에서 기름(올리브)은 주를 위해 성결 예식을 행할 때 쓰이며(레위기 8:10-13 ), 하나님의 부르심의 상징인 바 주께서 특별한 임무를 주기 위해 사람을 기름부어 선택하신다. (사무엘 상 10:1,시편 89:20) 신약성서에는성도들 안에 내재하시며,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는 성령의 상징이다.





    Pearl(진주) 진주는 하나님 나라의 상징이다. 이는 예수님의 비유 '값진 진주' 에 근거하였다. 마태 13:45-46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다.") 또한 마태복음은 진주를 하나님의 말씀의 상징으로 사용하였다.(마태 7:6 "진주를 돼지 앞에에 던지지 말아라").





    Plumb Line(다림줄, 추가 달린 수직 측량 줄) 다림줄은 이사야와 아모스 예언자에 의해 사용된 심판의 상징이다. (아모스 7:7-8) 때때로 다림줄을 들고 있는 예수님을 그리는 바 이는그가 인간 영혼의 재판관 임을 상징한다.





    Quatrefoil(네 잎-클로버) 네 잎(클로버)는 사 복음서의 저자 -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상징한다.





    Rainbow(무지개) 무지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관대하심의 상징이다. 이 상징은 노아의 대홍수(창세기 9장)에서 유래된 상징이다. 하나님께서 다시는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지 않으신다는 약속(언약)의 표로서 무지개를 하늘에 두셨다. 무지개는 때때로 예수님의 왕관에 그려지기도 하하는데, 이는 그의 영광과 최후의 심판을 상징한다.





    Rock(바위) 바위는 보통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쓰인다. (마태 7장 - 반석위의 집) 모세가 광야에서 바위를 쳐 물을 내어 목말라 불평하던 백성들에게 물을 마시게 한 사건을 의미하기도 한다.(민수기 20장) 때론 그리스도를 향한 순종 또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상징할 수 도 있다. '예수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베드로(페트로스)의 이름이 '반석(페트라)'과 같기에 주께서 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을 말씀하셨다. (마태 16장)





    Scales(천칭 저울, 천칭의 접시) 천칭은 심판의 상징이다. 보통 재림 예수님의 최후 심판을 상징한다. 또한 미카엘 천사를 연상케 하는데, 미카엘 천사는 죽은 사람의 영혼의 무게를 재는 책무를 가졌다.





    Scepter(홀 笏) 왕의 홀(지팡이, 지휘봉)은 권위의 상징이다. 왕관과 같이 있는 홀은 모든 창조물의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창세기 49:10, 히브리 1:8) 절기 : 예수승천주일, 그리스도 왕 주일





    Scourge and Pillar(채찍과 기둥) 채찍은 그리스도 고난의 상징이다. 보통 기둥과 함께 그리는데, 이는 예수께서 기둥에 묶여 채찍을 맞았기 때문이다. (요한 19장) 절기 : 고난주간





    Scroll(두루마리) 두루마리는 여러 의미를 담고잇는 상징이다. 두루마리 안에는 선택받은 사람(구원받은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다. 따라서 두루마리는 최후의 심판과 영생의 종말론적 상징이다.(계시록 5:6-9) 때때로 구약성경의 기록자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성 야고보의 상징으로도 쓰인다.





    Seal(봉인) 봉인은 하나님의 약속 혹은 각인(Mark)상징이다. 하나의 봉인은 성결의 의미를 가진다. 구약의 제사장들의 '에봇'(제사장의 옷)과 모자에 12지파의 이름을 봉인(인장)처럼 새긴 보석을 달았다.(출애굽기 28장) 성도를 가리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으로 표하기 위해 인(봉인)한 사람으로 불리기도 한다.(고린도 후 1:20-22) 봉인은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힐 때 그 무덤 입구를 돌로 막고 로마병사들이 봉인 한 것을 묘사하기도 한다.(마태 27:62-66)





    7 Seals(일곱 봉인) 일곱 봉인은 최후의 심판의 상징이다. 이는 계시록 5장, 일곱 봉인이 있는 두루마리에서 유래한 것이다. 때때로 하나님의 어린 양이 일곱봉인이 있는 두루마리나 책을 가진 모습으로도 그려진다.





    Ship(배) 배는 교회의 상징이다. 믿음의 사람들을 대 홍수에서 안전하게 구해주신 노아의 방주에서 유래한 것이고, 예수님께서 풍랑을 잔잔케하여 제자들의 배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신 사건(마가 4장)에 서 유래한 것이다. 보통 돛에 십자가를 그려 진 배를 교회의 상징으로 사용하였다. 배는 또한 여러 성자들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되기도 한다.(성 유다 등) 큰 교회당의 회중 석을 "nave" 라고 하는데, 이는 라틴어로 "배"라는 뜻이다.





    Skull(두개골, 해골) 두개골은 육체적, 정신적 모든 죽음을 상징한다. 십자가 아래에 놓여있는 두개골은 보통 아담의 해골로 이해한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두 번째 아담인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고린도 전 15:20-22)





    Square(정사각형) 정사각형은 세상(지구)의 사방을 상징한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의 복음서 기자를 상징한다. 아주 적은 경우이지만 살아있는(죽은 성자와는 구별된) 사람에게 후광을 그릴 때 사각으로 그리기도한다.





    Steeple(뾰족탑) 교회의 뾰족탑은 성도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주목하여, 그 영혼이 하늘로 향하도록 도와준다. 뾰족탑은 중세기 고딕 교회 양식에서 유래하였다. 뾰족탑 위에는 보통 십자가를 달아 멀리서도 잘 보이며, 성도들을 그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그리스도를 기억하도록 도와준다. 또한 뾰족탑에 종을 달아, 그 종소리를 울려 성도들을 예배에로 초대하는 기능도 하였다.





    Sun of Righteousness(의로운 태양) 태양은 보통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특히 예언자적인 상징이다. 말라기 4:2 그러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할 것이니.. 절기 : 대강절





    Sword(검) 검은 여러 의미의 상징이다. 천칭 저울과 같이 그려진 검은 대천사장 미카엘의 상징이다. 악마와 불신앙에 대항하여 물리치는 것을 상징한다. 열려진 책과 함께 그려진 검은 성령의 검을 상징한다.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 복음의 진리를 상징한다.(에베소 6:17) 검은 성 바울과 검으로 처형당한 순교자들을 상징한다.





    Tablets of Ston (돌판) 돌판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의 그림이다. 이는 하나님의 법 (토라 - 모세오경 혹은 구약성경 전체)을 상징한다.(출애굽기 31:18) 십계명의 돌판은 보통 왼쪽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하여(1-4계명), 오른쪽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5-10계명) 법이 그려진다.





    Torch (햇불) 햇불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상징이다. 때때로 확신에 찬 순교자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Tower(탑, 성채) 탑 혹은 성채(Fortress)는 우리의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상징한다.(시편 94:22) 또한 삼위일체를 묘사하기 위해 성채의 창문을 세 개 만들도록 한 성 바바라를 상징하기도 한다.





    Trumpet(트럼펫, 나팔) 나팔은 '최후의 심판', '부활', '예배로의 부름' 의 상징이다. 나팔은 여호수아(여리고성을 돌며 나팔을 불었다 - 여호수아 6장)와 기드온(미디안과의 전쟁에서 나팔을 불며 기습 공격하여 승리하였다.. - 사사기 7장)을 생각나게 한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현존, 하나님을 찬양함, 성회, 전쟁에 나가는 하나님의 백성 등을 묘사한다.





    Wheel(바퀴) 바퀴는 하나님의 능력의 상징이다. 불타는 바퀴는 때때로 아담과 이브의 에덴 추방을 묘사할 때 쓰이기도한다. 에스겔이 본 환상처럼 하나님의 옥좌를 눈과 날개로 덮힌 불타는 바퀴로 그려지기도한다. (에스겔 1:15-17) 이 이유로 불타는 바퀴는 에스겔의 상징으로도 쓰인다.





    Yoke(멍에) 멍에는 보통 힘겨운 수고 혹은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수고를 상징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온유와 겸손의 뜻으로 쓰셨다. 멍에는 결혼과 같은 다른 사람을 향한 충성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마태 11:28-30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신앙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지순례 / Holy Land  (0) 2009.06.07
    성경말씀과 삽화  (0) 2009.06.07
    거룩한 문자 도안   (0) 2009.05.21
    성경속 거룩한 동물 상징  (0) 2009.05.21
    식물의 성경속 상징  (0) 2009.05.21
    1.


    Chi Rho
    Chi Rho -
    이 성스러운 문자도안(Sacred monogram)은
    초기 기독교 시대에 만들어져 가장 널리 쓰여지고 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 표시를 신도 간에 비밀신호로 사용하였다.
    그리스어 XPICTOC(Christ)* 의 처음 두글자로 도안한 것이다.
    *그리스어 X(Chi)는 영어로 Ch, P(Rho)는 R 로 표기한다.


    2.


    IHC
    IHC - 이 성스러운 문자도안(monogram)은
    그리스어 "Jesus" (IHCOYC)" 의 처음 세글자 IHC를 도안한 것이다.
    ' h ' 에 가로줄( ㅡ)을 넣어 십자가를 표현하였다.


    3.
    IHS
    IHS - 이 성스러운 문자도안(monogram)은
    위에서 소개한 IHC의 다른 형태이다.


    4.


    INRI
    INRI,
    라틴 글자는 로마총독 빌라도가 명령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았던 명패에 쓰인 글자이다.
    '유대인의 왕, 나사렛 사람 예수;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 의 첫 글자들이다.
    (요한 19:19)


    5.


    IX
    이 고대 문자도안은
    오늘날 교회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도안이다.
    그리스어의 '예수(IHCOYC)'의 ' I '와 '그리스도 (XPICTOC)' 의 ' X ' 처음 글자를 문자도안 한 것이다.


    6.


    Alpha and Omega(알파와 오메가)
    Alpha and Omega(알파와 오메가)는
    그리스어 알파벳의 처음과 마지막 글자 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영원성을 나타낸다.


    요한계시록 1: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표준새번역]
    절기 : 대강절, 예수승천주일


    7.


    Alpha Mu Omega
    이 문자도안은
    예수의 "어제 오늘 그리고 영원히(yesterday, today and forever)"를
    상징하기 위해 그리스어 알파벳의 처음, 중간, 끝 글자를 도안한 것이다.
    예수님의 영원성 뿐 아니라 우리 안에 현존하심을 강조한 상징이다.
    히브리서 13: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한결같은 분이십니다.


    8.


    Ecce Agnus Dei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의 라틴어 표기이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던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요한 1:29)라고 외쳤다.
    이 문장은 주현절(현현절)에 예수께서 메시야로서 오심을 상징하기 위해 쓰여졌다.


    x-text/html; charset=iso-8859-1" loop="10">


    '신앙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말씀과 삽화  (0) 2009.06.07
    성경의 각종 물건 상징   (0) 2009.05.21
    성경속 거룩한 동물 상징  (0) 2009.05.21
    식물의 성경속 상징  (0) 2009.05.21
    성경의 각종 새 상징   (0) 2009.05.2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