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회사


제1장 근대 이전의 기독교와의 접촉
제2장 한국에 있어 카톨릭
제3장 수난 당하는 카톨릭
제4장 한국의 protestant church
제5장 한국 기독교인의 발생과 집회
제6장 한국 프로 테스탄트의 형성과 부흥
제7장 일제 치하에서의 교회
제8장 한국 교회의 수난사
제9장 한국 교회 재건과 분열
 


제1장 근대 이전의 기독교와의 접촉

 

 

1) 당나라를 통한 접촉


AD 431 에 에배소에서 기독론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 있었는데 그리스도는 인성과 신성을 함께 공유하지만 점진적 동화 과정을 통해 이루어 진다고 했다 가 에배소 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됨.Netorius 퍼시아 에뎃사 AD635년- 인도와 중국을 전파. 중국에서는 경교라함.nestorian 당시 중국 황제는 당태종. 당태종: 아라곤의 설교 감명, 파사사라는 교회 세워줌. 중국말로 아브라함. 왕이 관심을 가지므로 크게 번창

 

* 그때 우리나라는 신라시대(삼국통일을 꿈꾸던때) 우리나라는 당나라 힘입어 통일 이루려함.(신라의 김춘추 여러번 방문)


* 불교의 고승들이 당나라 여러번 방문.


* 1635 - 중국 서안부(북경)에서 대진 경교 유행 중국비 같은수도 이 비문에는 중국어와 시리아어로 736자(중국어, 시리아)로 기록되었음.

 

 * 1917년에 대진 경교 유행 중국비의 모조품이 금강산의 절에서 발견됨. 
 * 1956년 불국사 경내에서 돌 십자가가 발견됨
 * 1988년 경북 경산 지인면 일원리에서 어린양 안고 있는 것과 기도하는 석상이 발견됨. 
 * 마테오리치가 1595년에 어떤 서적을 대하게됨. 거기서 당나라에 경교 가 번창함을 알게됨.
 * 이런 여러가지 종합결과 당대 어떤 영향을 받았음이 틀림없음.                    


 

2) 몽고를 통해 접촉


징기스칸이 몽고를 세우고 지중해 근처 모슬렘 격퇴 할때 기독교 국가들은 당시 큰 골치거리 였던 모슬렘을 대신 물리쳐 줘서 고맙게 생각함. 몽고는 세계 제국을 제패하는데 모슬렘이 큰 장벽이라는 것을 깨달음.


* 당시 징기스칸은 야만인 - 그래서 서부 교회의 Innocent 4세는 1차로 선교사(카로핀)을 1246년에 보냄.


* Rubruc은 1253년 콘스탄티 노플을 떠나 몽고 수도 화림에 와서 사둔 탁(징기스칸의 아들)을 만남. 사둔탁이 기독교인 인줄 알았으나 아니였다.


* 루부룩은 징기스칸에게 개종을 권유하나 거절 당함.당시 몽고는 우리나라 통해 일본까지 침략할 야욕.

 


* 루부룩이 최초로 한국(Caulei)을 서방에 서신으로 알림.


Coree - Korea


3) 일본을 통해 접촉


* 1517년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이 일어나서 루터교가 확장.

 


* Ignatiu Loyola / Francis Xavier 예수회 :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
Francis Xavier 를 동방의 선교사로 파송함. 그는 인도의 고아 - 필리핀(80%이상이 카톨릭) -

일본으로가 구주에 상륙 1549년에 활공총이 복음과 함께 들어감.(1592년 임진란에 있어 타격적 무기)


* 그러나 일본을 통해 기독교 접촉. 오다노 부나가(일본 지도자) - 종교 관용책.
관용 이유 : 당시 불교가 강했기 때문에 한 종교가 커지면 강대해 지므로 한쪽 약화를 위해 신학교 부지까지 마련해 줌. (17세기 당시 일본에 30만의 신자가 있었다고 함.)


 

* 도요또미 히데요시 : 오사까 (한국인이 제일 많은곳)에서 예수회 신부들 을 모아 놓고 중국을 침공한 후 예수 믿겠다고 말함.


 

* 1592년 임진연에 전쟁 일으켜 우리나라 쳐들어옴. (20-25만의 군인을 이끌고 쳐 들어옴. 명나라 가는 길을 확보하려는 명목으로.)


 

* 이때 일본의 1군단장(고니까 유찌나가)- 세례명 어거스틴,이 선두로 쳐 들어 왔는데 그가 이끄는 많은 군인이 기독교인이 었다.이들이 20일 만에 서울에 다다르고 이들이 평양성까지 진격했다.그러나 명나라 군대가 내려와서 경남 웅천으로 일본군은 퇴각을 해야했다.


 

* 고니찌 유찌나가는 군인중 기독교인이 많으므로 교구장 피터 고메쯔에게 종군 신부를 보내 달라 부탁하니 세스 페데스 신부를 보내줌. 그는 우리나라에 오자 고메쯔에게 2편의 편지를 보냈다.
내용 : 1. 웅천에 도착한 일과 여정내역 2. 고니찌 유찌나가가 반갑게 맞 아주었 다는 내용과 일본 군인이 힘들게 있다는 말을 전함.


* 세스 페데스는 6개월 수 일본으로 돌아옴.


* 도꾸가와 이에야그(새통치자 출현함) - 기도교 엄청 박해 이때 많은 순교자를 발생. 일본 신자와 조선인으로 끌려가 믿은자도 순교함.


* 이 임진란 때문에 우리나라는 쇄국 정책을 고수함.(특히 일본에 대해)


결론 : 당나라, 몽고,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는 일찍 간접적으로 기독교 접촉.

 

제2장 한국에 있어 카톨릭: 선교사 들어 오기 전에 나가서 만나서 받아들임.


* 병자호란과 소현세자 1636년에 국호를 청이라한 만주의 여진족은 자기들의 요구를 안들어 준다고 10 만을 이끌고 임진란 40여년 만에 한국을 침공. 이때(인조14년)에 우리나라 조종 은 필사의 노력으로 대항 했지만 결국 남한산 성에 ㅉ겨가서 투항했다가 1637 년 정월에 남한산성에서 내려와서 삼정도에서 청 태종에게 3번 절하고 항복. 이때 인조의 소현세자와 대신들이 청의 심양으로 끌려감.

 


* 1644년에 끌려간지 7년만에 청이 명을 정복하고 수도를 심양에서 명 의 북경으로 천도(소현세자등도 같이 감)

 


* 그때에 베이징에 아담 샬(주교)이 묵고 있었는데 소현세자가 만나 친 분나눔.(2달동안) - 소현세자가 기독교 저술을 읽을 기회가 있었음.


* 아담 샬은 청나라 왕의 신임얻어 통감목사(벼슬)라는 위치에 까지감. 당시 예수회의 선교 정책은 어느나라에서 선교하든지 왕실과 고위층에 먼저 접촉하는 의도가 있었음.


* 소현세자가 귀국하게 됨. - 이때 서양문물, 기독교 서적을 아담 샬이 줌. 그것을 가지고 온 소현세자는 곧 죽게됨.

 


* 당시 척불 숭유로 인해 임진, 병자호란으로 당하자 조종에서는 이때부터 조선 경제의 개조책이라는 책도 만들고 새로운 학문들이 일어남.


2) 학자들의 교리연구


중국을 섬기던 조선에서는 사절단을 보내는 데 정초에 성절사, 원단사, 동지사, 천추사등을 북경에 파송했다.(사절단은 한 행차에 300- 500명 정도가 50일에걸 려 가서 50일 정도 머물고 돌아왔고 진상갈때에는 비단, 금, 은, 보석, 호피, 좋 은약 등을 가지고 갔다.)

 


* 1601년에 마태오리치가 설립한 성당이 있는데 그것이 남당이다. 아담 샬이 살던곳에 설립한 성당이 있는데 그것이 동당이다.

 


* 1603년 마태오리치가 쓴 '천주실의' 란 책을 그때 진상 갔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져옴.

 


* 조선조 시대에 주자학이 당쟁에 질리고 허례허식 하던때에 나라 기강 이 안 잡혀서 이때에 학자들이 '천주실의'를 가져오자 연구했다.

 


* 조선조 이 수광 이라는 사람이 '지봉유설'을 썼다.
지봉유설 - 천주교에 대해 설명함. 윤회를 부정하고 착한일에 보상이 있고 악 하자는 지옥에 간다는 이야기와 교황은 임기가 끝나면 좋은 사람을 투표로 뽑 고 이웃을 제 2의 나라고 하는 이야기를 설명하였다. 이수광은 마태오리치와 동 시대의 사람이다. 임진란 전후로 3차례의 명에 사신으로 갔다. 그때 과학책, 천 주교책을 가져옴.


* 당시 천주교를 서학이라 했다.(사람들이 서학에 관심을 많이 가짐)

 


* 유인용 - '어우야담' 제 1권에서 마태오리치의 천주실의를 언급함. 허균이 천주교를 믿는 것을 말하고 그 교가 동남의 오랑케에게 퍼져 믿는 자가 많은데 우리만 모르고 있다고 밝힘.

 


* 허균은 만주국에서 언젠가 쳐들어 올지 모른다는 말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처형 당했다 (그는 천주교인)

 


* 상제 상서를 정하상이 책을 바침.

우리나라 카톨릭에 대한 최초의 변증서 = 상제 상서
내용 : 3400자로 되 있는데 천주교를 변증하는 부분과 잘못된 오해 부분을 설명하고 마지막에는 우리도 임금의 자녀라고 긍휼을 구함.


* 당시 척불숭유 였는데 정하상은 이 책에서 불교를 공격했다. (즉 기독교가 불교와 다르다는 것을 말했다.- 강조)


3) 이승훈의 入信


한국 천주교의 발생지 : 경기도 광주, 양근(양평) 이벽, 이승훈, 권..가 여기서 모여 교리를 연구하였다.이벽의 누이 : 양근 고을의 정약전과 결혼 하였다.

 


* 이벽이라는 사람은 성격이 열화 같은 사람이다.1777년 에 서학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이 한강터에 외진곳 주어사라는 곳에서 교리 연구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100리를 걸어 왔다고 함.

 


* 走魚寺에서 천주교 교리를 연구했는데 천주교 교리 서적이 너무 빈약 해 중국에 가서 도움 요청을 하자고 결정함.

 


* 이승훈은 아버지가 그당시 북경에 갈 일이 있어 같이 따라감.(이벽은 이때 이승훈에게 가서 이번에 갈때 천주교 교리서 많이 가져오라고 부탁함.)

 


* 이승훈은 북경에 가자마자 북경의 천주당에 갔다. 그래서 돌아올때는 많은 천주교 서적들을 가지고 옴.


* 이승훈은 강원도 평창 사람으로 25세에 진사 급제하고 1789년에 평택 현감이다.


* 이승훈은 북경의 남당에 찾아갔다.
(여기서 교리를 배우고 1784년에 예수회 신부였던 루이스 글라몽에게 영세를 받 는다.) 그래서 이승훈에게 영세명을 주었는데 베드로란 이름을 주었다.

 


* 이승훈이 영세 받고 돌아올때 성화, 묵주, 책 가지고 돌아옴.

 


* 이승훈의 전교 : 이승훈이 돌아온 5년만에 신도 4000명이 불어나고 이들은 1785년 봄 서울 진 고개에 중인(당시 천민, 중인, 양반) 김범우 라는 사람이 자기 집에서 교리 연구를 학자들과 하고 있었다. 여기서 중국 신부에게 안수 받을 신부를 요청함.

 


* 조선 정부 형조 판서는 진고개의 예배당을 급습하여 양반은 훈방하고 김범우 는 충청도를 유배하여 그곳에서 타계함. - 최초의 순교자. (김범우의 집에 지금 의 명동성당이 서있음)


 

4) 주문모 신부의 입국과 전교

 


* 1785년 김범우 집 급습으로 많은 사람이 배교 하기 시작함. 이때 이승훈, 이벽도 배교함.

 


* 시간이 지나 핍박이 줄어들자 다시 돌아옴. 그리고 성직자의 필요성을 느낌. 그래서 북경의 주교에게 요청.

 


* 주베아 주교는 중국사람 주문모 신부를 조선에 파견. 주 신부는 윤유일, 지향 의 인도로 밀입국함.(엽부로 가장)

 


* 1795년 1월 한성에 잠입해 들어옴. 한성에서 조선말을 배우고 부활절 전날밤에 몇 사람에게 영세줌.

 


* 한영익이라는 개심을 가장한 자가 주 신부를 관가에 고발함. 그래서 조선 조정이 주신부의 체포령 내림.

 


* 믿음 좋은 신자 하나가 주신부를 가장해 자수함.(최이길 이라는 사람인데 턱수염이 없어 들켜서 처형당함.)

 


* 주 신부는 가장을 하는데 상복도 입기도 하고 남의집 헛간에서 있기도 하는 데 그러는 동안 신도는4천에서 1만으로 늘어남.

 


* 또 배교가 있자 주 신부는 국외 탈출 하려다 그냥 스스로 자수함. 1801년에 마침내 새해 남터에서 참수형 당함.

 

제3장 수난 당하는 카톨릭


1) 수난을 불러온 요소


a. 조상제사의 문제


유교 사상의 뿌리가 되는 사상은 효이다(효는 백행지본이다.) 그러므로 불효는 일천가지중에 가장 큰 죄이다.그리고 효중에 큰 부분이 제사이다. 중국의 마테오리치가 중국에서 선교할때 조상제사는 정치적의식이요 기독교는 유교의 발전이라고 했다.(배타 방지위해) 그러다 보니 종교가 혼합적 이다. 후에 선교사 도미니크 일행이 잘못된 이런것을 보고하자 교황 이노센 트 10세가 제사금지를 내림.

 


* 조상제사 때문에 첫 희생자는 윤시충 이다. 윤시충은 전라도 사람으로 25세에 진사급제하고 서울에 올라와 김범우 집의 교리연구에서 감화 받고 3년후 입교함.그리고 모친이 별세 했을때 상복 입고 호곡하고 위폐를 모시지 않고 제사도 드리지 않았다. - 이사실이 관가에 알려지자 윤시충과 외종형 권상연은 같이 처형당함. -


 

* 그당시 천주교 믿는 자는 패륜 외도라 하여 박해 했다.


b. 붕당적 요소(당시의 당파 싸움으로 인한 박해)


영조때 부터 천주교가 들어 왔는데 해서, 관동 지방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때 는 사색 당쟁이 극심하던 때이다. 영조왕은 당쟁 화를 절감해서 당쟁을 줄일려고 힘을썼고 정조 대왕도 성품이 어질어서 당쟁을 줄일려고 힘을썼다.


* 사도 세자문제 발생시 시파(세자 동정하는파) - 남인 이라는 천주교도가 많이 가입해 있었다.숙종때 남인 세력이 약화됨. 남인에 속해 있으면 등용길이 막혔다.


 

* 이런 남인에게 우호적인 재상인 채재공이 있었는데 1799년 사망했다. 정조대왕이 또 사망하자 천주교 박해가 터졌다.


 

* 정조 아들 순조(11세)가 왕에 오르자 정순왕후(정조의 첩)가 순조 뒤에서 정 치를 함. 이때 천주교에 대한 무서운 박해가 시작됨.


 

* 채재공이 죽자 죽은후 관직까지 박탈함.(1801년)


 

* 1801년 이때는 서학을 박해하는 교서를 발표함.(서학은 인륜에 반역하고, 교황 은 장가도 들지 않고 아들도 안 낳고 밑의 똑똑한 자를 뽑아 자기의 위치를 넘 겨 준다고 하는데 이것은 조선의 세습 윤리와 안 맞아 박해 해야 한다고 함.)

 

c. 황사영의 백서가 문제됨


한국 카톨릭의 4대 박해가 있었는데,


1. 신유 박해(1801년) : 황사영(경상도 창원사람)은 정약전의 형 정약용이?

 


* 주신부에게 영세 받음. 17세에 진사 급제를 함. 박해가 시작되자 충북제천 으로 피신해 있다가 그를 찾아온 황심을 만남.


(천주교 구하기 위해 북경의 주교에게 편지 보내자고 약속. 그 편지는 길이 62 센티 폭 38센티의 비단에다 작은 글씨로 만 삼천자의 글로 보냈는데 내용은 박 해와 참상을 보고 하는 것인데 그만 도중 들켜서 조선 조정에 밝혀짐)

 


* 이 백서가 들켜 카톨릭은 매국종교로 지탄 받게됨.


백서 내용 :


1). 조선 천주교의 실상을 기록하고, 그래서 많은 순교자가 생겼 다는 내용.

 


2). 당시 정계의 사색 당쟁의 실상을 기술. 박해의 이유는 당쟁 때문이 라고 말하고 이것 때문에 경제적으로 교인이 열악하다고 기술.

 


3). 중국의 신도 1명을 택해 북경 지대에 점포를 개설해서 청국과 조선 사이에 통신 연락을 하게하고, 북경의 청국 황제를 움직여서 조선 왕으로 하 여금 서교를 받아 들이게 하도록 압력 부탁, 또 중국의 공주를 조선조 왕자에 게 정략 결혼시켜 조선을 굴복 시키고 서학을 받아들이도록 부탁, 또 군함과 군수 물자를 실고 와서 이 나라를 치라고 부탁. 나라는 망해도 천주교는 전파 되야 한다고 함.

 


* 황사영은 1801년 27세의 나이로 모반죄에 의해 참수되고 이 사건으로 300명 이 순교하였다. 이것을 신유박해라고 한다.

 


* 신유박해 이후 서학의 창대를 염려하여 쇄국 정책을 조선에서는 실시. 북경 외의 모든 문을 닫아 버림.


* 헌조의 명을 따라 발표된 책들이 : 척사윤음이 나왔고 대외쇄국강저, 안정복 (천학고), 천학문답, 김치진(척사론)


2. 기해 박해(1839)

 

* 신유박해 후에도 흩어지지 않고 북경 주교에게 성직자 보내 달라고 신자들 이 요청.

 


* 정약종 아들 정하상이 있는데 1816년 2차례 걸쳐 북경의 신부에게 요청 했 으나 여의치 않음.

 


* 1827년 정하상의 편지가 라틴말로 번역되 교황에게 알려져 그레고리 16세 (교황)은 조선교구를 북경 교구에서 분립 하기로함.


* 초대 주교로 브르기에를 임명함.- 1831년


* 그레고리 16세 교서에서
첫째로 교회를 양떼로 보지 않고 목장으로 봤다.
둘째로 성직자는 공고 교리, 성례전을 위해 파송한다.
(즉 천주교는 교리와 구역을 더 중시함을 알수 있다.)

 


* 브리기에는 부임 하지도 못하고 객사함.

 


* 1835년에 1대 주교가 객사하자 블란서에서 신부들을 파송하는데 그중 모팡이 라는 신부가 상복 차림으로 압록강 통해 상륙.


* 2대 주교로 앙베르가 우리나라에 잠입해 옴. 샤스텡이라는 블란서 신부가 그후 또 옴.


* 이 세사람의 신부를 통해 카톨릭 부흥.

 


* 헌종 5년 (1839)에 2차 박해 시작.
당시 영의정 이지현이 사학박멸을 주장하자 순원 황후가 허락. * 정하상을 비롯한 100명의 교도가 서소문 밖 형장에서 순교 당했고 나머지 세 신부는 한강변 새남터에서 순교 당했다. * 상제 상서를 정하상이 책을 바침.

 

우리나라 카톨릭에 대한 최초의 변증서 = 상제 상서
내용 : 3400자로 되 있는데 천주교를 변증하는 부분과 잘못된 오해 부분을 설 명하고 마지막에는 우리도 임금의 자녀라고 긍휼을 구함.

 


* 당시 척불숭유 였는데 정하상은 이 책에서 불교를 공격했다.(즉 기독교가 불 교와 다르다는 것 말함-강조)


3. 병오 박해(1846)


이 박해전 1845년 앙베르 주교의 후임으로 페레올 주교가 조선 사람으로 최 초의 조선 안수 받은 김대곤 신부와 한성에 잠입한다. 6개월후 김대곤은 외국인 신부 안내 신부라는 일을 하다 군교에게 잡혀 들어감. 1846년 김대곤 신부 처형(살려주려고 했으나 끝내 믿음 지킴) 이 이후로 많은 무서운 박해가 시작 되었는데 이것이 병오박해이다.


4. 병인 박해와 블란서(1866)

 

이때 우리나라는 동학 난으로 많은 시련을 격을때 동북쪽(두만강) 강변에 러 시아가 자꾸 통상하자고 압력을 가했다. 당시 대원근의 측근이 카톨릭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한성에 베르노 주교가 있었는데 로마 교황청에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 대원군이 카톨릭에 관대한 생각이 있음과 대원군의 부인은 천주교에 상당한 지식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부인은 아들 왕자가 황제에 등극할때 미사 드려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또 왕자의 유모는 영세까지 받은 여자였다 한다. 베르노 주교는 한성에서 열심히 전도한 결과 1865년에는 12명의 선교사와 평 신도 2만 3천으로 늘었다. 당시 상황이 이래서 김기호, 홍범주 등이 의논해서 조, 영, 블 의 3개국이 동맹하여 방하책을 대원군에게 건의했다.


명성황후(대원군의 며느리) 는 비밀리에 베르노 주교에게 블과 교섭해서 외세 에서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 남종삼(조선의 독실한 카톨릭 지도자)을 대원군이 접촉하는 등 카톨릭과 많은 교제가 있었다. 그런데 희소식은 오지않고 베르노 주교는 카톨릭은 정치적 개입을 원치 않고 방하 책이라는 자체도 부족하다 하여 묵살 하였다. 여기에 존심이 상한 대원군이 옛 감정이 살아나고 척외사상과 서학금지 상소문이 빗발쳤다. 또 당시 우리가 존중하는 청도 천주교 배척 분위기 여서 더욱 그럼.


*그래서 새남터에서 7명의 선교사와 베르노 주교가 죽는다.서문에서는 조선의 신도들이 많이 죽음.
한국 통사에는 교도 12만명이 죽었다고 기록하였으나 다른 자료 종합결과 8천명 정도라함.(3년 동안)
이것으로 인해 블란서 군대를 우리에게 보내 전쟁하도록 하는 원인이다. 니델이라는 선교사가 포교들을 피해 충청도 해안으로 빠져나가 2명의 신 부는 거기남겨 두고 니델과 조선교도들은 아산에서 어선을 빌려타고 중국 산동 성의 지프라는 곳에 다다르게 된다. 이곳에 도착한 조선 교도들은 커다란 블란서 군함을 보고 이것으로 조선 을 위협하여 천주교를 널리 펼치자고 말했다.


이 조선인 11명중 4명은 중국 3대 도시중 하나인 천진의 블란서 공관에 찾아가 공사인 블란서 제독(로쓰)를 만나서 한국 박해를 보고했다. 이에 분개한 블의은 청국 총리에게 보고하고 니델을 통역삼아 군함을 몰고 강화도에 침공했다.(병인양요) 이것을 계기로 전국에 조서를 내려 어린아이까지 죽임.


* 병인박해와 미국 1866년 7월 평양 대동강에 국적이 미국인 제너럴 셔먼호가 평양 대동강에 들어왔다.(군함이 아니라 상선) - 여기에 로버트 토마스 목사가 타고 있었다. (런던 선교회 소속 선교사) 한강인줄 알고 대동강에서 있다 물이 빠져 남아있다 평양 관군괴 제너럴 셔먼호가 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평양 시민이 모두 합류하여 상선을 불태워 모두 죽였다. 이 일이 있은후 1871년에 북경에 주지하던 미국 공사 F 로 라는 사람이 청 국의 총리 아문을 통해 조선 정부에게 셔먼호 사건을 묻게했다.


- 조선정부는 조선은 외국 상선이라 해서 다 적대한 것은 아니다. 1855년, 1865년에도 미국 함정이 황해도, 평안 연안에 표류했을때 도와주고 헤어질때 술까지 했을 정도다.따라서 우린 의심 받을것이 없다. 단지 우리 허락없이 통상 하려고해서 불가피 했다고 밝혔다.-


미국 극동 함대 소장 로져스는 군함 4척을 이끌고(1871) 강화도 해역을 통해 광성진 까지와 싸움 벌어졌다.(한성 수비대와) 이것으로 외교 문제 발생하자 대원군은 일본에게 쇄국을 다시 재천명 했다. why? 당시 조선은 외교를 몰랐으며 일본 외에는 설명할 곳이 없었고 일본이 다른나라에게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헤밀턴 피시(미국 국무 장과)는 일본 정부를 통해 조선의 쇄국 정책을 듣고 이제부터 미국과 조선관계는 일본이 좀 처리해 달라고 부탁. - 1905년의 을사조약, 1910년의 한일합방의 배경이 됨.-


cf.여기에 대해 로빈슨이라는 유명한 역사학자는 고대 로마 기독교인들이 당한 고난보다 한국의 4대박해때 고난이 더컸다고 말했다. 스테판 나일 박사는 책에서 조선 카톨릭 역사는 가장 로멘틱하고 믿지 못할정 도의 수난시대라고 말함.


* 조선 천주교의 신앙 형태
조선 천주교는 철저히 수난과 박해로 얼룩져 있고 4대 박해를 거쳐오는 동 안 피맺힌 헌신과 형극을 거치면서 신앙형태가 생겼다.


(1) 이들 교회는 수난을 통해 오면서 상류에서 하류층으로 신앙의 계층적 구 조로 변모 되었다.

 


(2) 중류적인 감각에 호소하고 민족 주체의식이나 고유의 민족의식에 접촉함 으로서 조선적 기독교에 언문(한글)을 중시하게 되다.(천주교 서적이 많이 한글 로 되있다.)

 


(3) 1850년대 와서 천주교가 하류층으로 파고들어 격정적이고 종말적인 위기 의식으로 변모됨. 그래서 마침내 저들은 박해로 인해 종교의 내면화 지향적이다.

 


(4) 1919. 3. 1일에 개신교 교도들은 많이 참여했으나(33인중 16명) 천주교 교 인은 전혀잠잠.(박해에 그동안 질림)

 

제4장 한국의 protestant church


1. 시대적 상황


우리는 반만년 역사를 가졌으나 근래에 들어 종교적으로 심한 허탈감을 느낌.(고려조 : 불교, 조선조 :유교) 그러나 기독교가 전래되기 약간 이전은 종교적 공백기 였다.당시 멕킨지는 당시 서울에는 종교적 행사가 없었다고 보고한다. 1866년 전쟁이 일어나고 1871년 로져스 함대와 전투를 벌이고 운양호를 몰고 온 일본군이 무력시위하여 1876년 한일 강화조약을 맺으며 계속해서 미, 일, 러시아와 수호조약을 맺음으로 당시 조선이 운둔국(세계속에서 알려지지 않 은 나라)으로 알려지기 시작함.


* 1884년 갑신 정변을 계기로 해서 망명 생활후 돌아온 일본 수신사 박영효 가 일본 요꼬하마에서 조선 선교사로온 스크렌톤 목사(감리교)를 만남. 박영효는 당시에 우리나라에 선교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선교사들이 와서 교육등 문화적인 필요를 채워달라고 부탁함.우리 재래 종교는 한물 갔다고 말함.


* 1886년 한블 수호 조약에서 조약문 속에는 교회라는 말이 들어갔다. (나중 이단어 하나 때문에 미국 선교사들이 전도할때 쉬웠다.)


2. 유럽 christian들의 도래


1) 벨트브레와 하멜 일행이 오게됨.

 

1627년 네델란드 사람 벨트브레 일행 3사람이 동해안에 상륙함으로 시작. 이들은 동양에서 무역하고자 네델란드에서 일본으로 가다가 파선하여 경주 앞 바다에 표류. 이들은 물을 얻기 위해 표류했다가 억류되게 ㄷ고 살아가던 도 중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 났을때 같이 상륙한 2사람은 참전했다가 전사했 고 벨트브레만 남았는데 전공이 인정되어 한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이다. 벨트브레가 표류한지 이십몇년이 지나 1653년에 하멜 일행이 본국을 떠나 일 본으로 오다가 또 표류해 제주도로 오게 되다. 일행 64명중 36명만이 살아 남았고 제주도에서 14년가 억류되 살다가 15명이 탈출하여 본국으로 돌아갔다. - 하멜의 기사에서 보면 그들이 프로테스탄트 였음을 알수있다. -


2) 바실홀과 멕스웰의 내한.


1816년 영국 정부가 중국에 파송하는 William이라는 군함이 있었는데 Amhert 사절단이 있었다. 함장은 Maxwell, Bashall 사절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중국에 도착하여 암 홀스트 사절을 내려놓고 본국에서는 한국 서해안을 탐사 하라 는 명령을 받았다. 같은 해에 한국 해안에 와서 해도를 작성했다. 이들이 마량진 앞 갈곳에 들렸을때 문정의 임무를 띤 첨사 (조대복)이 가서 물어 볼때 이 조대복에게 성경을 줌.(King James Version) - 최초로 한국 에 전달된 성경. - 바실홀은 돌아가서 책을씀.


3) 선교 개척자들의 한국인 접근


(1) 칼 큐츠라프 -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독일의 할례대학에서 졸업. 화란 교회 소속 선교사로서 일하기 시작함.

자바 수마트라(인도네시아)중심으로 중국인 상대로 선교 함.(중국옻, 음식 잘적응)
자바 수마트라에서 - 마카오로 선교지 옮김 - 네델란드 선교회를 떠나 프리렌쓰 미션네리로서 활동함.
1832년에 선교의 방향을 한국의 서해안으로 돌려 7월 17일에 황해도 - 백령도 - 원산도에 도착( 만나는 사람마다 의약품, 병고쳐줌, 전도함)
홍주 목사 이민회를 통해 왕에게 성경과 서적 보냄.
홍주 목사 서생 양씨의 도움을 얻어 최초로 성경을 번역(주기도문을) 참고: 이것은 비공식. 공식 1884년


 

(2) 토마스 목사(정식적으로 안수 받아 오신 목사)의 내한

 

큐츠라프 목사가 아산만에 온지 33년만에 온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는 스코틀랜드 사람 토마스이다(런던 선교회에서 1863년 중국 상해 선교사로 파 송되어 왔는데 1865년 중국 지프로 옮겼다. 이때 한국 선교를 자청했다. 1866년 제너럴 셔먼호가 한국을 간다는 소리를 듣 고 통역관으로 자청. 관군이 화공을 맞고 대동강에서 죽음)


 

*이때 배가 타던때 한문 성경을 강 언덕에 던졌는데 관군중 1나가 한권을 가지 고 있는데 조카가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이영태)


 

*나중 이늘서 박사가 성경번역시 도와 주었다.
토마스 목사를 배에서 끌어내 한강 근처에서 목을쳐 죽임.목을 친 사람은 박춘곤인데 나중에 회계하여

1899년 세례받아 평양 초대 교인 이됨. 그후 평양은 한국 개신교의 예루살렘이라 일컬어짐.


(3) 로쓰와 멕킨타이어의 고려문 전도(런던 선교회 소속)


중국 만주의 우장과 봉천(심양)에는 한국 교회 설립에 전초 기지 역할을 했다.
특별히 우장은 최초의 한인 수세자를 배출한 곳이다.
봉천은 최초의 한국 성서가 번역된 곳.
로쓰와 멕킨타이어는 처남 매부지간(중국 우장을 거점으로 한국 선교 연구함)
마침 조선의 의주 청년 4사람이 , 한약 약장사를 위장하여 중국을 방문했다.
의주에서 강건너 50킬로미터 떨어진 고려문(중국과 물품교환 하던장소)에 갔 는데(서양 문물을 배울려는 의도로) 마침 1873년 봄 로쓰 목사가 중국인 서기를 대동하고 고려문 방문. (이때는 조선사람이 외국사람 만나는 것도 불법일때) 여기서 의주청년들을 만남. 로쓰는 그들에게 후한 급료를 주는 대신 한국언어와 역사를 가르쳐 달라고 함.

 

 

 

 

 

 

 

금식기도 해야 할 신체적인 40가지 이유들


1. 과도한 전분의 음식과 설탕의 섭취는 몸에서 알코올로 바꾸어진다.  술에 취해 있는 자가 술을 찾듯 음식중독에 걸려 몸에 ‘습관적 배고픔’이 형성되어 음식에 취해 있어 음식을 찾게 된다.몸에 꼭 필요한 참 배고픔과 구별되는 정욕적 배고픔이 형성되어 식도락에 빠진다.3 일 금식은 음식의 탐욕에서 벗어난다. 금식 3일째는 위장이 거의 비어 있는 상태가 된다.

2. 병든 육체에 과다한 영양공급은 병을 키운다. 금식은 질병들을 굶기게 한다.

3. 금식은 에너지를 보존한다. 에너지의 보존이 잘 안되면 병자는 회복이 잘 안된다.

4. 15년 이상 장에 달라붙은 숙변은 금식으로 대량 떨어진다. 동물에는 없는 사람만이 갖고 있는
    엄청난 숙변이 있음을 알고 나면 인간은 동물보다 더 금식해야함을 안다.
    일반 장청소법으로도 숙변은 잘 안 떨어지는 것들이 많다.

5. 주기적인 금식은 금식의 방법과 회수에 따라 다르나 20-40년간의 생명을 장수케 한다.

6. 금식은 심장을 쉬게 한다. 심장이 쉬지 않은 것 같으나 한번 심장박동의 십분의 일의 짧은 시간대 쉬었다가
   다시 박동을 반복한다.  심장에 낀 지방질과 막힌 담액질 형성을 분해해 준다.

7. 장속의 영양흡수기관인 융털이 정화되고 건강해져 영양분의 흡수력을 높여준다.
보통 섭취한 음식물의 30% 정도의 영양분을 흡수하는데 비해 사흘 금식기도 후에는 70%까지 흡수율이 증강된다.

8. 질병으로 인한 두통이 아닌, 일반적인 두통은 금식하라는 확실한 신호이다.

9. 금식 중에는 혈관이 넓게 열려져 혈액순환이 잘된다.

10. 카페인, 중금속 등의 유해물질은 배설이 잘 안되고 몸에 축적된다. 금식으로 쉽게 배설된다.

11. 산성체질이 금식으로 다량의 산 물질을 배설하므로 체질이 개선된다.

12. 금식 후에는 자연식이 좋아지며 식생활이 자기 몸에 유익한 음식만을 섭취하게 되 식생활에 변화가 옴.

13. 금식으로 호르몬 분비가 정상화되며 부신피질의 호르몬이 반출되어 질병치료에 도움을 준다.

14. 금식 후에는 불면증이 사라지며 짧은 잠을 자도 깊이 잠을 자게 된다.

15. 백혈구가 증가하여 식균력이 최고 10배까지 증강하여 면역체계가 강화되어 질병을 이기게 된다.

16. 금식 중에는 오히려 위장에 들어가야 할 혈액이 두되에 있으므로 뇌가 정화되어 명석해 지며 생각의 집중력,
     암기력, 효율적인 연구 등에 유효하다.

17. 혈액을 깨끗이 한다.

18. 정상적인 장을 갖는다. 오랫동안 금식하지 않는 자중에 대부분 사람들의 장은 음식물이 정체되어 확장되어 있거나 협착되어 있어 변형된 장을 갖고 있다.

19. 소화기관은 금식으로 방학을 맞아 휴식을 취한다.

20. 금식으로 장은 탄력을 회복 해 늘어진 장이 금식으로 인한 수축작용으로 정상위치로 환원된다.

21. 금식과 철저한 보호식의 승리자는 음식에 욕심이 없다. 간단하고 단순한 어떤 음식도 달게 먹게 된다.

22.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픈 줄 모르고 식욕이 동하지 않아 습관적으로 음식을 먹는 자는 금식기도로 정상적인식욕을 회복한다.

23. 아무리 변비가 없이 변을 잘 보더라도 장에는 2~3%가 남게 된다. 금식은 배출능력을 강화시켜 배설을
     원활히 해준다.

24. 청소년 때 일찍부터 금식으로 몸을 정화하면 암, 고혈압, 당뇨병 등 대부분의 음식과용으로 인한 성인병 등은 예방이 되며 잘 걸리지 않는다.

25. 세포를 정결케하여 자연스럽고 젊어 보이게 해주며, 젊음을 유지한다.

26. 금식기도와 자연식으로 몸을 단련한 사람을 성기능이 강화되어 노년에도 성생활에 지장이 없다.
    성을 합리적으로 바로 쓰게 되며 만족감이 증강한다.

27. 금식 초기에는 독소제거로 인한 신진대사의 과정에서 쇠약해지기도 하나 독소가 제거된 후
     적적한 음식섭취 후에는 전보다 훨씬 강한 육체가 된다.

28. 입과 몸에 악취가 나는 사람은 금식하라는 신호이다. 특별한 질병으로 인한 악취이외의 대부분의 악취는
    금식기도로 제거된다.

29. 마른 사람은 뚱뚱한 사람보다 더 금식해야 한다. 신진대사가 약하기 때문에 마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2~3주 금식으로 마른 사람들이 금식 후 체중이 는다.

30. 무리하게 살을 빼면 영양불균형으로 인해 부작용을 초래하며, 얼굴에 주름이 많이 생긴다.
    금식은 뚱보의 원인인 지방질과 과잉축적된 영양분을 제거해 주므로 안전하게 살을 뺄 수 있다.

31. 나이가 많아질수록 금식을 더 해야 한다. 신진대사가 느려지는 노년에는 신진대사를 왕성하게 해주는
금식으로 노화를 방지해야 한다. 나이 많다고 금식 못할 자는 한 명도 없다. 모세는 80세에 두 번씩이나 40일을 금식했으나, 죽을 때에도 젊은이 못지 않게 건강했다.(신34:7) 예수님의 초림시 금식기도로 주님의 오심을 예비한 안나는 나이 100세가 넘는 고령이지만 교회에서 밤낮 금식기도하였다고 한다.(눅2:36-37)

32. 만성피로가 사라진다.

33. 장이 어린아이 장과 같아진다. 장기금식 후 방귀 냄새가 어린이의 변의 냄새와 같다.

34. 피부가 깨끗해지며, 홍안소년의 얼굴이 되기도 한다.

35. 생리의 주기나 색깔과 양이 정상화된다.

36. 종양 등을 자연스럽게 작게 해주며 제거시켜준다.

37. 금식 후에는 고기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고기를 잘 먹으나 양이 많이 줄어든다.

38. 거친 호흡, 불결한 호흡이 금식 2주 내외에 사라지며 그 금식 후에는 어린이의 호흡과 같이 부드럽고 깨끗하게 된다.

39. 음식을 절제하면 모든 것을 절제할 줄 아는 자신감을 얻고 자기 존중감, 높은 자존감을 얻는다.

40.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와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청소하는 데에는 금식기도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Sola Scriptura (쏠라 스크립츄라)                                   ▷오직 성경

Sola Fide (쏠라 피데)                                                     ▷오직 믿음

Sola Gratia (쏠라 그라티아)                                            ▷오직 은혜

Solus Christus (쏠루스 크리스투스)                                ▷오직 그리스도

Soli Deo Gloria (쏠리 데오 글로리아)                               ▷오직 하나님께 영광

 

 

 

라틴어 주기도문, 사도신경

 

Pater noter, qui es in caelis (빠떼르 노스떼르, 뀌 에스 인 챌리이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Sanctificetur nomen tuum (상띠피체뚜르 노오멘 뚜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Adveniat regnum tuum (아드베니아뜨 레에늄 뚜움)

[나라이 임하옵시며]


Fiat voluntas tua (피아뜨 볼룬따아스 뚜아)

sicut in caelo et in terra (씨꾸뜨 인 챌로오 에뜨 인 테라아)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Panem nostrum quotidianum da nobis hodie (빠아넴 노스뜨룸 꾸오띠디아눔 다 노오비이스 호디에에)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et dimitte nobis debita nostra (에뜨 디미떼 노오비이스 데비따 노스뜨라)

sicut et dimittimus debitoribus nostris(씨꾸뜨 에뜨 디미띠부스 데비또리부스 노스뜨리이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et ne nos inducas in tentationem (에뜨 네 노오스 인두까아스 인 뗀따치오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sed libera nos a malo (세드 리이베라아 노오스 아 말로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Amen (아아멘)

[아멘]


p.s : (생략된 후렴부는 찾는 중입니다.-_-)

p.s 2: 라틴어를 최대한 원 발음에 가깝게 한글로 표기하면 제가 보기에도 좀 어색합니다. 사실 스페인어나 이탈리아어 같은 라틴계 언어에서는 모두 강자음을 거센소리가 아닌 된소리로 발음 하는데도 한글 표준 표기법에서는 민족 정서상 이유로 거센소리로 표기 하고 있고, 우리도 거기에 익숙하기 때문일 겁니다.


라틴어 사도신경

Symbolum Apostolorum  

심볼룸 아포스트롤로룸


CREDO in Deum Patrem omnipotentem, Creatorem caeli et terrae.

끄레도 인 데움 파트렘 옴니포텐템, 끄레아토렘 첼리 엣 떼레.


Et in Jesum Christum, Filium eius unicum, Dominum nostrum,

엣 인 예숨 크리스툼, 필리움 에이우스 우니쿰, 도미눔 노스트룸,


qui conceptus est de Spiritu Sancto, natus ex Maria Virgine,

뀌 콘쎕투스 에스트 데 스피리투 상토, 나투스 엑스 마리아 비르지네,


passus sub Pontio Pilato,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

파수스 숩 폰티오 필라토, 끄루치픽수스, 모르투스, 엣 세풀투스,


descendit ad inferos, tertia die resurrexit a mortuis, ascendit ad caelos,

데스첸딧 아드 인페로스, 테르치아 디에 레술렉시트 아 모르투이스, 에스첸딧 아드 첼로스,


sedet ad dexteram Dei Patris omnipotentis,

세뎃 아드 덱스테람 데이 파트리스 옴니포텐티스,


inde venturus est iudicare vivos et mortuos.

인데 벤투루스 에스트 유디차레 비보스 엣 모르투오스.


Credo in Spiritum Sanctum,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sanctorum communionem,

끄레도 인 스피리툼 상툼, 상탐 에끌레시암 카톨리캄, 상토룸 꼬뮤니오넴,


remissionem peccatorum, carnis resurrectionem, vitam aeternam. Amen.

레미시오넴 페카토룸, 까르니스 레술렉치오넴, 비탐 에테르남, 아멘.  (다음)


라틴어 주기도문

Oratio Dominica

오라치오 도미니카


PATER noster, qui es in caelis, sanctificetur nomen tuum. Adveniat regnum tuum.

파테르 노스테르, 뀌 에스 인 카엘리스, 상티피쎄뚜르 노넴 툼, 아드베니앗 레그눔 툼,


Fiat voluntas tua, sicut in caelo et in terra.

피앗 볼룬타스 투아, 시쿹 인 카엘로 엣 인 테라.


Panem nostrum quotidianum da nobis hodie,

파넴 노스트룸 꾸오티디아눔 다 노비스 호디에,


et dimitte nobis debita nostra sicut et nos dimittimus debitoribus nostris.

엣 디미떼 노비스 데비타 노스트라 시쿹 엣 노스 디미띠무스 데비토리부스 노스트리스.


Et ne nos inducas in tentationem, sed libera nos a malo. Amen.

엣 네 노스 인두카스 인 텐타치오넴, 세드 리베라 로스 아 말로. 아멘.  (다음)

 

 

 

라틴어 주기도문

 

Pater noter, qui es in caelis (빠떼르 노스떼르, 뀌 에스 인 챌리이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Sanctificetur nomen tuum (상띠피체뚜르 노오멘 뚜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Adveniat regnum tuum (아드베니아뜨 레에늄 뚜움)

[나라이 임하옵시며]


Fiat voluntas tua (피아뜨 볼룬따아스 뚜아)

sicut in caelo et in terra (씨꾸뜨 인 챌로오 에뜨 인 테라아)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Panem nostrum quotidianum da nobis hodie (빠아넴 노스뜨룸 꾸오띠디아눔 다 노오비이스 호디에에)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et dimitte nobis debita nostra (에뜨 디미떼 노오비이스 데비따 노스뜨라)

sicut et dimittimus debitoribus nostris(씨꾸뜨 에뜨 디미띠부스 데비또리부스 노스뜨리이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et ne nos inducas in tentationem (에뜨 네 노오스 인두까아스 인 뗀따치오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sed libera nos a malo (세드 리이베라아 노오스 아 말로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Amen (아아멘)

[아멘]

 


대안 연구공동체 파이데이아에서 라틴어 강의가 열립니다. 좋은 인문학 강의들을 종종 소개해 왔던 그린비가 이번에는 고전어 강의를 들고 나타난 셈이죠. ^^ 동양고전을 읽을 때 꼭 필요한 것은 한자에 대한 지식인 것처럼 서양고전을 읽을 때 꼭 필요하고, 조금이라도 알아두면 독서할 때 매우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라틴어와 헬라어입니다.(무려 독일 대학에서는 학위취득시 이 두가지 언어를 꼭 패스하게 합니다.) 아래 소개된 강좌 개요를 읽어보시고,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신청하면 아주 좋을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강의 개요 : 왜 라틴어를 배우는가.

- 동양에 한문이 있다면 서양에 라틴어가 있다 -

라틴어는 고전 그리스어와 더불어 서구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언어다. 라틴어는 로마 제국의 융성과 더불어 지중해에 인접한 나라들의 국제어로 통용되면서 서양의 정신문화와 생활전반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 이후 서양의 중세 1000년, 르네상스 시기, 근대를 거치면서 라틴어는 신학, 법학, 철학, 문학, 역사, 의학, 음악, 예술분야의 학술어로서 유럽 문화의 곳곳에 스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같은 역사와 문화 전통 아래에서 라틴어는 전통을 숭상하는 영국을 비롯하여 미국,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서양 대부분의 중고교 교과과정에서 대학 진학을 위한 필수과목이나 선택과목으로 교수되고 있다. 대학 입학이나 졸업, 석․ 박사 과정 입학 허가나 수료를 위한 필수 조건으로 라틴어 능력 검증을 부과하고 있는 곳도 많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양권에 한자(한문)가 있다면 서양에는 라틴어가 있는 셈이다.
 
- 라틴어 공부는 서양 언어와 문화 이해의 첩경이다 -

대안연구공동체가 국내 청소년과 일반인들에게 라틴어를 가르치려하는 첫째 이유는 실제 효용 때문이다. 라틴어는 현대 유럽 로만어(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루마니아어)의 모어(母語)다. 라틴어 문법을 배우면 서양의 언어가 기능하는 방식을 이해하면서 문법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영미와 유럽 언어의 문법 구조를 익힐 수 있다. 이 때문에 라틴어를 배우면 영어와 로만어 학습에 흥미를 느낄 뿐 아니라 이 언어들을 훨씬 쉽게, 그리고 빨리 익힐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적잖은 학자들과 국내의 일부 철학자, 신학자들이 어렵잖게 10개 국어 안팎의 다언어를 구사하는 것도 라틴어 학습에 힘입은 바 크다.

영어 학습에도 라틴어가 매우 유용하다. 많은 영어 어휘들, 즉 영어 단어의 60% 정도가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라틴어 단어를 익히면서 애매하게 알고 있던 영어 단어의 뜻도 정확하고 분명하게 알게 된다. 라틴어를 모어로 하는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등의 학습에 라틴어의 학습의 효과가 더 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영국이나 미국의 중고교가 라틴어 학습을 하는 주요 목표로 외국어는 물론 자국어 학습의 효과를 내걸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한자 3000자를 익히면 이 글자로 조합된 수십 만 개의 한자어 단어를 어렵잖게 유추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영어 단어의 라틴어 비중은 전문 영역으로 갈수록 더욱 커진다. 자연과학(의학, 약학, 동물학, 식물학 등)과 인문학(문학, 법학, 신학, 철학, 언어학, 역사학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음악, 미술, 건축, 전기, 기계 등의 예술 및 기술 분야와 항공우주과학, 컴퓨터공학 등 첨단 과학 분야에서도 라틴어에 어원을 둔 어휘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따라서 라틴어는 모든 유럽 언어를 이해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서양에서 유래된 학문을 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언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라틴어를 모르는 채 전문 영역을 공부하는 것은 한국이나 중국, 일본에서 한자를 모른 채 전문 영역을 공부하는 것과 같다. 영미나 유럽으로 유학한 학생들이 학업에 애를 먹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라틴어를 모르기 때문인 경우도 많다.

서양 문명과 문화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도 라틴어는 필수적이다. 라틴어에는 서양 문명의 원류로 오늘날까지 인류 문화에 영감을 제공하는 그리스, 로마의 문화를 비롯해 신화와 종교, 풍습, 속담과 격언 등 유럽 문화의 뿌리가 담겨있다. 라틴어를 배우면 서양 문명을 더욱 논리적이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사고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의 사상과 생각을 보다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 라틴어는 현대 영미와 유럽에서 결코 죽은 언어가 아니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라틴어는 아직도 라틴어로 학위 수여식을 하는 대학이 있을 만큼 전통을 숭상하는 영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유수의 공․사립학교에서도 필수과목, 또는 선택과목으로 활발하게 교수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공․사립학교는 라틴어 학습의 목적으로, 라틴어로 된 고전의 해독 외에 영어의 문법, 문장, 어휘에 호기심을 유발하고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이탈리아어에 보다 폭넓은 시각을 제공하며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라틴어는 문화교육부(Kultusministerium)가 정한 세부 규정에 따라 인문계 중고교 과정인 김나지움(Gymnasium)에서 제2외국어나 제3외국어 선택과목으로 가르친다. 전통 인문계 중고과정인 일부 알테스 김나지움(Altes Gymnasium)에서는 라틴어를 필수 과목으로 규정한 곳도 있다. 라틴어를 배운 학생들은 대학입학자격시험(Abitur)을 통해 국가로부터 능력을 검증받는다. 수능시험에서 ‘라틴어 인증시험(Latinum)’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보통 주당 2~3회 수업 기준, 3~5년을 이수토록 하고 있고 ‘고급 라틴어 인증시험(Grosses Latinum)’은 5~9년을 이수토록 하고 있다.

대학의 신학, 철학, 역사학부(사학, 고고학, 인류학 등)와 인문 ․ 어문학부(영문학, 독문학, 불문학, 미술사학, 음악학)등의 입학이나 졸업 사정, 석․박사 과정 입학이나 학위 수여 사정에서 필수로 부과한다. 수능에서 국가 공인 인증시험을 거치지 못한 학생들은 ‘국가공인 추가 보충 수능시험(staatliche Ergänzungsprüfung zum Abitur)’을 통해 라틴어 능력을 검증 받을 수도 있다. 대개의 대학은 김나지움에서 라틴어를 이수하지 않은 학생들이 ‘국가공인 추가 보충 수능시험’을 준비하도록 하기 위해 라틴어 집중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스위스에서도 김나지움에서 라틴어 과목을 개설하여 가르치고 있다. 라틴어 인증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최소 3년(9~12학년, 주당 3시간 수업 단위) 동안 라틴어 수업을 이수토록 규정하고 수능시험(Matur, 필기/구술)을 통하여 라틴어 능력을 인증한다. 스위스의 라틴어 초급 인증(Kleines Latinum)은 대학의 유럽언어 전공 학부, 사학과, 철학과, 신학과 및 몇몇 인문학부의 입학 허가, 또는 졸업 조건이다. 각 대학은 이를 충족하지 못한 학생을 위해 라틴어 코스를 개설,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라틴어는 달리 역사학, 미술 사학뿐만 아니라 법학과, 의학과, 치의학과, 수의학과의 전공에도 능력 인증을 요구한다. 오스트리아의 라틴어 인증은 보통 김나지움에서 최소 4년 동안 라틴어 과목을 성공적으로 이수한 경우 면제되나 그렇지 않을 경우 정해진 기간 동안 라틴어를 이수해야 한다.

이처럼 라틴어는 유럽과 영미권에서 결코 죽은 언어가 아니며 아직도 살아 숨 쉬는 언어다. 적잖은 학과의 전공과 직업에도 반드시 필요하나 굳이 이런 전공을 하지 않더라도 일찍 배워두면 그만큼 쓸모가 많다.

대안연구공동체가 영어를 비롯한 여타 외국어 공부만으로도 허리가 휘는 이들의 사정을 모르지 않으면서 라틴어 강좌를 개설한 것은 수강생들이 진정한 공부의 재미를 만끽하게 하기 위해서다. 라틴어 공부는 영미와 유럽의 외국어 공부에 큰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아직까지도 세계를 지배하다시피하는 서양의 역사와 문화, 학문에 대한 이해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수 있다.
 
- 라틴어는 쉬운 언어다 -

그렇다면 라틴어는 어려운 언어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발음과 철자를 따로 익혀야 하는 영어나 프랑스어와는 달리 라틴어는 대부분 철자대로 발음하고,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다. 듣기(청취), 읽기(독해), 쓰기(작문), 말하기(회화)능력을 두루 익혀야 하는 다른 외국어와는 달리 주로 문장의 구조를 파악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고 번역하는데 주력하므로 다른 언어보다 훨씬 적은 노력으로 배울 수 있다.

다른 외국어에 비해 라틴어 학습에서 요구되는 단어와 어휘 수는 한정되어 있다. 게다가 이미 알고 있는 영어 단어의 상당수가 라틴어에서 유래하므로 단어를 외우기도 쉽다. 문법 또한 아주 정교하고 논리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배우기가 어렵지 않다. 정선된 고전 작품들도 그리 많지 않아 이 중 몇 권만 읽으면 고급 라틴어 해독능력을 갖추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귀스타브 모로, <헤라클레스와 히드라>

2. 담당 교수 : 이진경 박사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및 감리신학대학원 석사, 독일 빌레펠트 소재 베텔신학교 신학박사, 서울장신대와 훔볼트 평생교육원 등지에서 라틴어 및 신학 강좌 담당

3. 진행
- 개강 : 2012년 3월 3일 토요일
- 매주 토요일 오후 3시~6시까지(3시간) 10강
- 10강×3(30강)을 마칠 경우 유럽과 영미에서 치르는 인문학 학위를 위한 자격시험에 합격할 수 있음.

4. 교재
- 이진경 박사가 독일에서 공부한 교재를 번역해 재편집한 자료를 씀.
- 강의 시작 전, 수강생들에게 배부함.

5. 강의 장소
-
대안연구공동체(서울 마포구 서교동 464-46 서강빌딩 2층)

6. 수강료  
- 30만원 (10강×3시간)
<문의 : 02-777-0616(대안연구공동체), paideia21@gmail.com>

※ 수강에 관한 문의는
대안연구공동체 홈페이지 혹은 전화로 하시면 됩니다. 그린비 블로그에서는 신청을 받지 않습니다~
 
 


 

 

 

라틴어 학습 1



먼저 라틴어의 모음을 두 가지 종류로 모아 익히는 것이 발음을
익히고 사용하는 데에 편리할 것이다.
1] a, o, u.
2] e, i, [y]

A: 단모음일 때는 문제가 없을 것이고, 다음에 e 가 따라와서 중모음이
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때는 우리말의 'ㅔ' 로 발음한다.
예를 들면 caelum [coelum] = '첼룸' aeternum = 에떼르눔.

그러나 e 위에 " 이 붙으면 중모음이 되지 않고 독립된 두 개의 모음이 된다.
따라서 a"er = '아에르' 로 발음한다. (e 위에 " 타이핑하는 법을 몰라 글씨
모양이 이상, 죄송 천만)

C: 위의 제1군의 모음이 붙으면 약한 'ㄲ' 의 발음이 된다.
casa = 까사; co = 꼬; cu = 꾸

위의 제2군 모음이 붙으면 'ㅊ' 의 발음이 된다.
Cicero = 치체로; civis = 치비스; caelum = 첼룸.

뒤에 'h' 가 붙어 약한 'ㅋ' 처럼 발음된다.
Christus = 크리스투스; chorus = 코루스; mich = 미키

E: 한국말의 'ㅔ' 와 같이 발음한다.
Deum = 데움; Dies = 디에스

F: 영어의 F 와 같이 아래 입술을 물고 발음하는 것을 잊지 말 것
femina; fabula;

G: 모음 제 1군이 붙으면 약한 'ㄱ' 소리가 나고;
Gallia = 갈리아; Gasbal = 가스발

모음 제 2군이 붙으면 'ㅈ' 소리가 된다:
Gemma = 젬마; Gemini = 제미니;

조심: g와 n의 중자음은 뒤에 모음이 따라와
gna [냐]; gni [니]; gno [뇨]로 발음된다.
Agnus = 아뉴스; magnum = 마늄; lingua = 링과

그러나 독일권에서는 아그누스, 마그눔으로 발음한다.
우리 교회는 이태리식의 발음을 따른다.
(누군가 라틴어 발음은 일반적으로 독일어처럼 발음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는데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

H: 한국 말의 'ㅎ' 로 발음하면 된다. 단 h 앞에 c, p, 혹은 r 이 올 때도 있으며,
이 때 Ch 는 'ㅋ'로 발음 Christus = 크리스투스;
ph 는 'f' 로 발음. Philosophia (Ph 와 f 발음은 아랫입술을 문다)

J: 'l' 로 발음. Jesu = 예수; justum = 유스뚬

K: 드물게 사용하는 글자로 'ㄱ' 혹은 'ㅋ' 으로 발음,
Kyrie = 기리에 혹은 키리에

L: 반드시 혀를 입천장에 부친다는 것을 잊지 말 것.
그렇지 않으면 r 발음이 된다.

N: 우리말의 'ㄴ' 과 같이 발음. 그러나 뒤에 c 가 따르는 경우,
한국말의 'ㅇ' 이 된다.
sanctus = 상뚜스 (상크뚜스가 아님)

P: 이태리어와 독일어, 영어의 발음이 약간 다르다: 이태리식을 따른다.
이태리어에서는 가벼운 'ㅃ' 으로 발음하고 독일어나 영어에서는 'ㅍ' 으로 발음.
Panis = 빠니스; pange = 빤제 ; apostolus = 아뽀스똘루스

Q: Q 는 항상 뒤에 u 가 같이 따른다.
usque = 우스꿰; qua = 꽈; quo vadis? = 꿔 바디스

R: 영어에서와 같이 절대 혀를 입천장에 붙이지 말라.

S: 우리말의 초성으로서의 'ㅅ' 소리와 같이 발음;
Sabula = 사불라; sane = 사네

이 발음을 독일에서는 'ㅈ' 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는 데 우리는 이를 피하자.
예를 들면 Bizet 의 Agnus 를 들으면 '미제레레 노비스'라고 발음한다.

S 다음에 c 가 따라오고 모음이 붙을 때(이 때의 발음은 C의 발음을 참조)
조심해야 한다.
schola = 스콜라; scala = 스깔라; scu = 스꾸

제2군의 모음이 따라오면 Sci = 쒸; sce = 쒜;
scientia = 쒸엔씨아; Scena = 쒜나

아마 라틴말 성가 노래에서 가장 무시당하고 있는 발음일 것이다.
제일 마지막 음절에 's' 가 오면 거의 발음하지 않고 있다. 언제나 발음해야 한다.
Deus meus = '데우스 메우스' 를 '데우 메우' 로 발음하는 성가대원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러나 마지막 음절의 이 발음, 즉 '스' 소리는 나야 하지만 강하게 발음하면 절대로
안 된다. 왜냐하면 강하게 발음할 경우 '스' 라는 음절이 하나 더 생기기 때문이다.
마치 '데웃스 메웃스' 하듯이 마지막 음절에서 입을 다물고 발음하면 절대로 마지막
'스' 에서 입을 열 수도 없고 강하게 발음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런 식 아니면 이런
느낌으로 발음하도록 하자.

'Gratias agimus tibi' 의 경우에 위의 S 발음에서와 언급한 바와 같이 마지막 음절에
붙은 s 도 발음해야 한다. 그러나 절대 강하게 발음하면 안 된다. Gratias agimus의
이 가사에서 '스' 를 발음하면서는 절대로 '아지무스' 의 '아' 발음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만약 그라씨아에서 숨을 쉬고, 아지무스를 다시 시작한다면 몰라도 (그러면 악보와는
다른 쉼표가 생긴다) 그냥 연결시켜 노래하면 자연스럽게 '그라씨아사지무스' 가 될
것이다. '그라시아스 아지무스' 내지는 '그라시아스 사지무스' 가 아닌 것을 살펴주어야
겠다. '스' 와 '아' 가 합해져서 '스아' 내지는 '사' 로 변했다. 틀림없다.

T: 이 발음도 독일어군, 이태리어권이 다르게 발음한다.
이태리식의 약한 'ㄸ' 으로 발음하자.
toccare = 똑까레; tono = 또노; tonsura = 똔수라

T 다음에 모음이 따라올 때 조심해야 한다. 한국말로 설명이 약간 곤란하지만 (왜냐하면
발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씨' 로 발음하기로 하되 이 '씨' 는 입을 조금
다물고 혀로 아랫니 뒤에 대고 발음하면 되겠다.
gratia = 그라씨아 그러나 그랏씨아 같은 기분;
scientia = 쒸엔씨아;

문제는 또 한 가지. 그러나 ti 의 i 가 액센트를 받거나 그 앞에 s, x, t 가 오는 경우
이 때에는 원래 발음인 'ㄸ' 로 한다. 예를 들면 짐승이라는 bestia 는 베스띠아이다.
hostia = 호스띠아 [성체].

그 다음의 글자들은 여러분이 다 아시리라 믿는다.

U 는 'ㅜ' 로, V 는 영어의 v (따라서 아래 입술을 물어야).
Y 는 'ㅣ' 로, Z 는 우리말의 'ㅈ' 을 강하게 발음하면 된다.

 

 

 

 

 



 

 

 


 

 

 

[Jonathan Edwards 1703~1758]

 

조나단 에드워즈는 미국 청교도 신앙을 물려받은 위대한 신학자이며 '대각성운동'으로 신앙부흥운동을 일으킨 인물로 19세기 선교확장 시기의 선구자로서 어거스틴과 칼뱅 이후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신학과 목회, 부흥과 영성, 그리고 지성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심오한 경지에 이르렀던 선구자입니다. 경건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70가지 결심문"을 통해서 땅끝선교의 사명을 받은 준비된 모든 선교사님들과  믿음의 형제자매님들에게 새로운 영성속에 세계선교와 개인과 가정, 교회 사역을 감당하자고 다짐하는 결심을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70가지 결심문

나는 하나님의 도움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이 결심문(Resolution)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한 그리스도를 위해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이것을 지킬 수 있도록 내게 능력 주시기를 겸손하게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잊지 말고 매주 한번씩 이 결심문을 읽자.

전생애 동안 최우선적으로 힘쓸 일
1.나의 전생애 동안 하나님의 영광과 나 자신의 행복과 유익과 기쁨에 최상의 도움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자. 지금 당장이든지 아니면 지금부터 수많은 세월이 지나가든지간에 시간은 전혀 고려하지 말자. 내가 해야 할 의무와 인류 전체의 행복과 유익에 최상의 도움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자. 내가 부딪히게 될 어려움이 무엇이든지간에 또한 그 어려움이 아무리 많고,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그렇게 하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찾음에 대하여
2. 위에서 언급한 사항을 잘 지키기 위해 도움을 주는 어떤 새로운 수단이나 방법을 찾기 위해 계속적으로 노력하자.

결심문을 지키지 못했을 때
3. 혹시라도 내가 넘어져 점점 무감각해져서 이 결심문 중 어떤 내용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면, 다시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회개하자.

하나님의 영광에 도움되지 않는 일들에 대하여
4. 하나님의 영광에 도움되는 것이 아니면 영혼에 관계된 것이든지 육체에 관계된 것이든지 또는 적든지 많든지간에 어떤 것이라도 절대로 하지 말자. 만일 내가 그런 일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자.

시간 사용에 대하여
5. 한 순간의 시간도 절대로 낭비하지 말고 그 시간을 가능한 한 최대로 유익하게 사용하자.

삶의 자세와 태도에 대하여
6. 내가 살아 있는 동안 힘껏 살자.

생애의 최후 순간이라고 가정했을 때
7. 만일 내 생애의 최후 순간이라고 가정했을 때, 하기가 꺼려지는 것이면 절대로 하지 말자.

다른 사람의 실패를 보았을 때
8. 모든 면에서 즉 말과 행동에 있어서 아무도 나만큼 그렇게 악하지는 않은 것처럼, 또한 내가 다른 사람과 똑같은 죄를 범하고, 똑같은 잘못과 실수를 범한 것처럼 행동하자. 다른 사람의 실패를 나 자신의 잘못을 살피는 계기로 삼고, 나의 죄와 비참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기회로만 삼자.

죽음에 대한 묵상
9. 매사에 나의 죽음과 죽고 난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자.

고통스러울 때
10. 고통스러울 때는, 순교의 고통과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자.

풀리지 않는 신학적 문제를 만났을 때
11. 해결해야 할 어떤 신학 원리가 있을 때, 만일 상황이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그 문제 해결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즉시로 하자.

교만과 허영심에 빠졌을 때
12. 만일 내가 교만이나 허영이나 이런 것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어떤 것을 좋아하고 있다면 즉시로 그런 것들을 버리

자.

이웃 사랑의 실천에 대하여
13. 도움과 사랑을 꼭 받아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찾기 위해 노력하자.

복수심에 대하여
14. 절대로 복수심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지 말자.

분노에 대하여
15. 비이성적인 인간에게는 아무리 사소한 화라도 내지 말자.

다른 사람에 대한 비방에 대하여
16. 절대로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말자. 그렇게 하는 것은 다소간 다른 사람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것이며, 실제로 아무런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

임종의 순간에 비추어 본 삶의 자세
17. 내가 죽게 되었을 때 ‘그 일을 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살자.

최고도로 헌신한 상태에 비추어본 삶의 자세
18. 내가 최고로 헌신한 상태일 때, 그리고 내가 복음과 천국에 대해서 가장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그때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언제나 그렇게 살자.

최후의 순간에 비추어본 삶의 자세
19. 마지막 나팔 소리를 듣기 전, 최후의 한 시간도 남지 않았을 때, 하기가 꺼려지는 것은 절대로 하지 말자.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하여
20. 먹고 마시는 것은 엄격하게 절제하며 살자.

다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보았을 때
21.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 가운데 내가 판단하거나 생각하기에 경멸받을 만한 행동이나 비열한 행동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절대로 하지 말자.

천국을 준비하는 삶
22.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나의 힘, 능력, 활력, 열심, 적극성을 다하여 가능한 한 천국에서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2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닌 것같이 생각되는 일을 할 때는 매우 신중하게 행하자. 그리고 그 일의 원래 의도와 계획과 목적이 무엇인지 원인을 파악하자. 만일 그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일은 4번째의 결심문을 어기는 것으로 간주하자.

나쁜 행동을 고치는 문제에 대하여
24. 내가 어떤 현저한 나쁜 행동을 할 때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철저하게 추적하자. 그런 다음 더 이상 그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또한 나쁜 행동의 원인이 되는 것과 내 힘껏 싸우도록 하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에 대하여
25.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를 조심스럽고도 지속적으로 찾아내자. 그런 다음 내 모든 힘을 다해 그것과 싸우자.

구원의 확신을 약화시키는 것들에 대하여
26. 내 구원의 확신을 약화시키는 것들을 발견하면 버리자.

게으름에 대하여
27. 절대로 고의로 어떤 일을 태만하게 하지 말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태만은 예외지만 말이다. 자주 내 태만을 점검하자.

성경 연구에 대하여
28. 성경을 아주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자주 연구하자. 그렇게 해서 깨닫고 쉽게 이해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라가자.

잘못된 기도에 대하여
29. 절대로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것이라고 바랄 수 없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하거나 기도로 인정하거나 기도의 간구라고 하지 말자. 또한 하나님께서 받아주실 것이라고 바랄 수 없는 것을 죄 고백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실천적 삶에 대한 매주 반성
30. 지난 주보다 신앙과 은혜를 실천하는 삶이 더 나아지도록 매주마다 노력하자.

비판에 대하여
31. 결코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어떤 말을 하지 말자. 그러나 성도의 명예를 아주 실추시키거나, 인류에 대한 사랑을 아주 저해하는 것에 대한 비난은 정당하다. 또한 극도로 교만하거나 나의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서 그리고 황금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에 대해서는 정당하다. 종종 내가 다른 어떤 사람을 비난했을 때는 이 결심문에 비추어 엄격하게 검사해 보자.

충성된 삶에 대하여
32. 잠언 20장 6절에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라고 기록된 말씀이 비록 부분적으로라도 내게 해당되지 않도록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나의 믿음(trust)에 충실하자.

평화를 만드는 삶
33. 다른 면에서 손해가 지나치게 발생하지 않는다면 평화를 만들고 평화를 유지하고 평화를 지키는 방향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도록 하자. 1722년 12월 26일

진실한 언어생활
34. 이야기하면서 어떤 사실에 대해서 말할 때는 반드시 참되고 단순한 진실만을 말하자.

내가 지킨 의무에 대한 의심이 생길 때
35. 내가 지킨 의무에 대해서 의심이 많이 생길 때마다 그 일로 내 마음의 고요함과 평안함이 깨어지면 의문 사항들을 기록하고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자. 1722년 12월 18일

다른 사람을 평가 절하하는 것에 대하여
36.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나쁘게 말하지 말자. 단 그렇게 하는 것이 잘했다고 말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경우는 예외다. 1722년 12월 19일

매일, 매주, 매월, 매해마다 반성할 일
37.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내가 게으름을 피웠는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내가 나 자신을 부인했는지에 대해서 자문해보자. 또한 매 주말, 매 월말, 매 연말에도 그렇게 하자. 1722년 12월 22일, 26일

주일을 경건하게 보내는 일에 대하여
38. 주일에는 절대로 농담이나 우스개 소리를 하지 말자. 1722년 12월 23일 안식일 저녁

합법적인 일을 하는 문제에 대하여
39. 절대로 합법성에 의문이 많이 제기되는 일은 하지 말자. 동시에 그런 일을 하고 난 후에는 그 일이 합법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생각하고 조사하자. 또한 만일 내가 어떤 일을 하지 않는 것이 합법적인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일도 마찬가지다.

먹고 마시는 일에 대한 반성
40.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먹고 마시는 일에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지 자문해보자. 1723년 1월 7일

매일, 매주, 매달, 매해의 마지막에 반성해야 할 일
41. 매일 ,매주, 매달, 매해의 마지막에, 어떤 면에서 더 낫게 행동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자문해보자. 1723년 1월 11일

재헌신에 대한 다짐
42. 세례 받을 때 하였고, 성찬식에 참여할 때 진지하게 하였던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종종 새롭게 하자. 그리고 오늘 1월 12일 나는 진지하게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새롭게 하였다. 1723년 1월 12일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 아래 사는 삶
43. 오늘부터 죽을 때까지 내 인생이 나의 것인양 행동하지 말고 전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하나님의 것인양 행동하자. 토요일에 깨달은 것과 일치하게 행동하자. 1723년 1월 12일

신앙 우선적인 삶 1
44. 다른 어떤 목적도 아닌 신앙만이 나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자. 신앙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어떤 환경 속에서도 행동하지 말자. 1723년 1월 12일

신앙 우선적인 삶 2
45. 신앙에 도움되는 것이 아니면 그 어떤 것에도 절대로 쾌락이나 고통, 기쁨이나 슬픔 등을 느끼지 말자. 어떤 감정도, 조금의 감정도 품지 말자. 그리고 그런 것과 관련된 어떤 환경도 만들지 말자. 1723년 1월 12일, 13일

부모님과 가족들에 대한 태도
46. 부모님에게 어떠한 걱정이나 심려도 끼쳐드리지 말자. 말이나 눈동자에 가능한 한 전혀 내색을 하지 않도록 해서 그런 결과가 생기지 않도록 하자. 그리고 특히 가족 중 누구에 대해서도 똑같이 존경심을 가지고 그렇게 하도록 조심하자.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 개발
47.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선하고, 보편적으로 부드럽고, 친절하고, 조용하고, 평화롭고, 만족하고, 편안하고, 자비롭고, 관용적이고, 겸손하고, 온유하고, 순종적이고, 의무를 다하고, 부지런하고 근면하며, 자애롭고, 침착하고, 인내하고, 절제하고, 용서하고, 진지한 성품에 도움되지 않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지 말자. 그리고 항상 이러한 성품이 되도록 하자. 그리고 매 주말마다 내가 그렇게 실천했는지의 여부를 엄격하게 점검하자.

철저한 자기 점검에 대하여
48. 내가 참으로 그리스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임종의 순간에 이 문제에 대해서 회개할 무관심의 죄를 조금도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아주 세밀하고도 부지런하게 그리고 가장 엄격하게 내 영혼의 상태를 조사하도록 하자. 1723년 5월 26일

조심스러운 삶
49. 만일 내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만 있다면 절대로 잘못을 하지 않도록 하자.

내세에 비추어본 삶의 자세
50. 내가 내세에 들어갔을 때, 그렇게 한 것이 최선이었고, 가장 지혜로운 것이었다고 판단하게 될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도록 하자.

임종의 순간에 비추어 본 삶의 자세
51. 죽을 때 내가 뒤를 돌아보면서 ‘이런 일을 했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면에서 그렇게 하자. 1723년 6월 8일

노인이 되었을 때에 비추어본 삶의 자세
52. 나는 종종 노인들이 자기가 인생을 다시 살 수만 있다면 어떻게 살겠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노인이 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그때 가서 내가 ‘이런 일을 했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생각되는 바로 그런 일들을 하자. 1723년 6월 8일

주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의 삶
53. 내가 가장 기분이 좋은 상태일 때 모든 기회를 이용해서 내 영혼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던지고 맡기자. 주님을 신뢰하고 의뢰하자. 완전히 주님께 헌신하자. 이로써 내가 나의 구속주를 알므로 내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1723년 6월 8일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았을 때
54. 어떤 사람을 칭찬하는 내용을 들을 때마다 나도 그런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되면 그 일을 본받도록 노력하자. 1723년 6월 8일

천국과 지옥을 맛본 사람처럼
55. 이미 천국의 행복과 지옥의 고통을 맛본 사람처럼 행동하도록 최선을 다하자. 1723년 6월 8일

자신과의 싸움에 대하여
56. 아무리 내가 실패하더라도 내 안에 있는 부패와의 싸움을 절대로 포기하지도 말고 또한 긴장을 조금도 풀지도 말자.

불행한 일을 만날 때
57. 불행과 불운에 대한 염려가 생길 때 내 의무를 다했는가를 돌아보고 의무를 다하도록 결심하자. 그리고 그런 사건들이 일어난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자. 할 수 있는 한 나는 내 의무와 내 죄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자. 1723년 6월 9일, 13일

대화를 나눌 때
58. 대화를 나눌 때 불쾌하거나 초조하거나 화난 표정을 짓지 말고 사랑스럽고 즐거우며 친절한 모습을 보이도록 하자.1723년 5월 27일, 6월 13일

나쁜 성격이 표출되려고 할 때
59. 나쁜 성질과 분노가 더 치밀어 오를수록, 더많이 노력해서 좋은 성격이 드러나도록 행동하자. 그렇다. 그럴 때, 비록 다른 측면에서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고, 다른 때는 경솔하게 될 때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좋은 성격을 드러내도록 하자

감정이 불안정하게 될 때
60. 감정이 극도로 불안정하게 되기 시작할 때마다, 그리고 아주 미미한 정도라 하더라도 내가 내면적으로 편하지 않은 느낌을 가지게 되고, 또 감정이 밖으로 일관성 없이 표출될 때는 나 자신을 엄격하게 점검해보자. 1723년 7월 4일, 13일

게으름 극복에 대하여
61. 핑계가 무엇이든지간에 -사실 게으름은 핑계거리를 만들도록 하는 경향이 있지만- 신앙에 온전하게 집중하지 못하도록 내 생각을 흐트러뜨리고 풀어지게 하는 게으름에 빠지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주께 하듯 일하는 자세
62. 결코 어떤 일을 의무감으로만 하지 말고, 에베소서 6장 6~8절에 따라서, 기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자. 어떤 사람이 어떤 선한 일을 하든지간에 그는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자. 1723년 6월 25일,7월 13일

완벽한 성도의 삶을 살기 위한 노력
63. 어떤 순간에도, 모든 측면에서 인격의 어떤 부분이나 어떤 환경 아래서도, 언제나 성도다운 참 빛을 비추며 탁월하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는, 완벽한 성도가 세상에 단 한 명 있다고 가정할 때, 만일 내가 그 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내 힘껏 노력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자. 1723년 1월 14일, 7월 13일

하나님을 추구하는 마음
64. 바울 사도가 말하는 ‘말할 수 없는 탄식’과 시편 기자가 시편 119편 20절에서 말하는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하는 마음’이 내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있는 힘을 다하여 이것들을 항상 지키도록 하자. 또한 나의 소원을 아뢰기 위해 간절히 노력하는 것이 약해지지 않도록 그리고 그러한 열심을 반복적으로 내는 것이 약해지지 않도록 하자. 1723년 7월 23일, 8월 10일

맨톤의 시 119편 설교를 실천하는 삶
65. 전생애 동안 이것을 있는 힘을 다해 연습하자. 즉 맨톤 박사(Dr. Manton)의 시편 119편 설교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열린 마음을 가지고 나의 모든 죄와 유혹과 어려움과 슬픔과 두려움과 희망과 소원 그리고 모든 것과 모든 상황 속에서 나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나의 영혼을 하나님께 열어놓자. 1723년 7월 26일, 8월 10일

친절한 태도
66. 어느 곳에서나 어느 누구에게나,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항상 친절한 태도와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자. 의무상 다르게 행동해야 할 때는 예외다.

고난을 통해 유익을 얻는 법
67. 고난 후에는 고난으로 인해 내가 더 나아진 점이 무엇인지, 어떤 유익을 얻었는지, 또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스스로 묻도록 하자.

솔직한 죄고백
68. 약점이든지 죄든지간에 내 안에서 발견되는 모든 것을 나 자신에게 솔직히 고백하자. 만일 그것이 신앙에 관련된 것이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필요한 도움을 간구하자. 1723년 7월 23일, 8월 10일

타산지석
69.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볼 때, 나도 저렇게 했으면 하는 것들을 항상 행하도록 하자. 1723년 8월 11일

유익을 끼치는 언어 생활
70. 내가 하는 모든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하자.

 

<1723년 8월 17일 Jonathan Edwards>.

 

 

 

-중국과 북방선교지 소식-
http://blog.daum.net/smmission
by 영혼의 사랑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