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제사법

 

구약성경에 기록된 각종 사건과 율법과 제사의식은 신약시대 구원을 상징하는 예표와 상징과 모형입니다.
노아와 홍수심판,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여정,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탈출, 사울 다윗 솔로몬 왕의 행적,
유다의 멸망과 바빌론 포로시대, 스룹바벨 성전의 건축 등은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안겨다 줍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성막과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죄를 속죄하였으며, 간구를 올렸습니다.

성막은 죄 많고 불완전한 인간이 거룩하고 완전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곳입니다.
성막이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라면 제사법은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진리)입니다.
땅에서 난 썩어질 육신을 소유한 인간은 성막과 제사법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에서 난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성막과 제사법과 제물과 제사장은 모두 우리의 구원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요한 14/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

레위기 7/37 이것이 번제와, 음식제사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봉헌제와, 화목제의 법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방법)이며, 아버지로부터 생명(성령)을 나누어 주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 번제, 음식제사(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등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는 분리되었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고 원만하게 하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앞세워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히브리서 10/1~14 율법에는 다가올 선한 것들의 그림자는 있으나 그것들의 형상 자체는 없으므로 그들이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희생제물들로는 그 곳으로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랬더라면 그들이 제물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이는 경배드리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되면 죄들에 대한 의식이 더이상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나 이 희생제물들로 인하여 해마다 죄들을 다시 생각나게 하였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그가 세상에 오실 때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희생제물과 
예물을 바라지 아니하시고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주께서 죄로 인한 번제와 희생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니 
그때 내가 말씀드리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에 관하여 기록한 것과 같이) 주의 뜻을 행하려고 
내가 왔나이다.' 하였노라." 하셨도다. 위에 말씀하시기를 희생제물과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바라지도 아니하시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고 하셨으니,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드려진 것이라. 그때에 말씀하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소서, 
주의 뜻을 행하려고 내가 왔나이다." 하셨으니, 첫 번째 것을 폐하심은 두 번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 뜻에 따라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이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똑같은 제사를 자주 드리지만 
이것으로써는 결코 죄들을 제거할 수 없으나 이분은 한 번의 속죄제를 영원히 드린 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그 
후로는 그의 원수들을 자기 발판으로 삼으실 때까지 기다리시느니라. 이는 그가 한 번의 제사로써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기 때문이라.

 

* 목차

1. 제사의 의미

2. 번제 (burnt offering)

3. 음식제사 (meat offering, 소제)

4. 화목제 (peace offering)

5. 속죄제 (sin offering)

6. 속건제 (trespass offering)

 

 

1. 제사의 의미

인간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3가지 요소가 있는데 예물(the offering), 제사장(the priest), 예물을 드리는 자(the
offerer)이 그것입니다.
신약시대에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자가 인간이라면 예물은 흠 없는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이고, 제사장은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입니다.
예물을 드리는 자가 예물에게 안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예물을 드리는 자와 예물이 하나 된다는 의미입니다.

인간 사이에도 좋은 관계를 위해 자신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선물을 교환합니다.
만약 상대방이 원하는 선물을 하면 선물을 주는 자와 받는 자 모두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이자 아들인 인간은 창조주이자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화답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고 하나님은 이를 기뻐 받으십니다.

만약 서로 사랑한다고 말만 하고 주고 받는 것이 전혀 없다면 서로의 사이는 냉랭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부족한 인간이 온전하신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동물을 예물로 주셨지만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예수님을 예물 삼아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2. 번제 (burnt offering)

창세기 8/20 노아가 주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가운데서 취하여 제단에 번제를 드리더라.

창세기 22/2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네 독자 이삭을 이제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산들 
중에서 내가 네게 알려 줄 한 산에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시더라.

성경에 번제가 처음 언급된 것은 창세기입니다.
홍수심판이 끝난 후 노아는 제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과 새를 취하여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모리아 땅의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번제 제물로 드리려 했으나 천사가 만류하여 숫양을 대신 번제로 드리게 됩니다.

출애굽기 20/24 너는 땅의 제단을 나에게 만들어서 그 위에 너의 양들과 너의 소들로 번제와 화목제물을 바치라. 
내가 나의 이름을 기억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내려와 너에게 복을 주리라.

출애굽기 24/5 모세가 주의 모든 말씀들을 기록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따라 열두 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주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라. 모세가 피의 반을 떠서 
대야들에다 담고 피의 반은 제단 위에다 뿌리며 언약의 책을 가지고 와서 백성이 듣고 있는 데서 읽으니 그들이 말하기를 
"주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행하고 복종하리라." 하더라. 모세가 피를 떠서 백성에게 뿌리고 말하기를 "언약의 피를
보라. 이는 주께서 이 모든 말씀에 관하여 너희와 맺으신 언약이라." 하더라.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한 후 광야의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십계명을 지키고, 양들과 소들로 번제와 화목제물을 바치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고 나서도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이 때 언약의 피를 떠서 백성에게 뿌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할 것을 맹세하였으니 번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충성과 언약의 표시라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9/15 너는 또한 숫양 한 마리를 취하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에다 안수할지니 그 숫양을 잡고 
그 피를 취하여 제단 위의 주위에다 뿌리고 그 숫양을 각뜨고 그 내장과 다리는 씻어, 각뜬 고기와 그 머리에 두고 제단 
위에서 그 숫양 전체를 불사를지니 이것이 주께 드리는 번제니라. 그것은 향기로운 냄새니 주께 불로 드리는 제사니라.

레위기 8/18~21 또 그가 번제로 숫양을 가져오니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숫양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가 그것을 잡으니 
모세가 제단 주위에 그 피를 뿌리더라. 그가 그 숫양의 각을 뜨니 모세가 그 머리와, 각 뜬 것과, 기름을 불사르고 그가 내장과
다리들을 물로 씻고, 모세가 그 숫양 전체를 제단 위에서 불사르니 그것은 향기로운 냄새를 위한 번제희생으로, 주께 불로 
드리는 제사라.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그대로더라.

민수기 28/19 그러나 너희는 주께 번제로 불로 드리는 희생제를 드릴지니, 어린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어린 양 일곱 마리며, 그것들은 너희에게 흠 없는 것이어야 할지니라.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방법은 숫양 한 마리를 취하고 제사장이 양의 머리에 안수합니다.
그 숫양을 잡고 그 피를 취하여 제단 주위에 뿌리고, 그 숫양을 토막내어 내장과 다리는 씻습니다.
토막낸 고기와 머리를 제단 위에 두어 그 숫양 전체를 불사르는 것이 번제입니다.
번제는 불로 드리는 제사로 그 연기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출애굽기 29/42 이것은 너희가 대대에 걸쳐 주 앞 회중의 성막 문에서 계속 드릴 번제니라. 거기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고 
거기서 너에게 말하리라.

민수기 28/23 너희는 계속 드리는 번제인 아침 번제 외에 이것들을 드릴지니라.

레위기 9/24 주 앞에서 불이 나와서 제단 위에 있는 번제물과 기름을 불사른지라, 모든 백성이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

번제는 대대에 걸쳐 하나님 앞 회중의 성막 문에서 매일 아침 계속 드려야 합니다.
번제가 드려지는 곳에서 하나님은 인간과 만나고 말씀하십니다.
번제제물을 사르는 불은 인간이 지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불이 나와서 제단 위에 있는 번제물과 기름을 불사르며,
이로써 백성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실감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자신을 번제제물로 드릴 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오시는 성령의 불이 나를 사름으로써 정화시킵니다.

레위기 9/2~3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는 흠 없는 송아지를 속죄제물로, 흠 없는 숫양을 번제제물로 가져다가 주 앞에 드리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 말하기를 '너희는 숫염소를 속죄제물로, 또 흠 없는 일 년 된 송아지와 어린 양을 번제제물로 취하고

레위기 9/7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는 제단으로 가서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네 자신과 백성을 위해서 속죄하고,
또 백성의 제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해 속죄하되 주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라." 하더라.

레위기 5/7 만일 그가 어린 양을 가져올 형편이 못 되면 그때는 자기가 범한 허물을 인하여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주께 가져와서, 하나는 속죄제물로 또 하나는 번제물로 삼을 것이라.

번제는 속죄제사와 함께 드려지기도 하는데 흠 없는 송아지는 속죄제물로 흠 없는 숫양은 번제제물로 드립니다.
이는 속죄제를 통해 죄들을 멸하고 번제를 통해 죄성을 멸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온전한 속죄를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난한 자가 하나님께 숫양 제물을 드릴 형편이 못 되면 자기가 범한 허물로 인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와 하나는 속죄제물로 또 하나는 번제물로 드립니다.

레위기 12/6 그녀는 정결의 날들이 끝나면 아들이나 딸을 위해서 번제물로 일 년 된 어린 양 한 마리와, 속죄제물로 어린 
집비둘기나 산비둘기 한 마리를 회중의 성막 문, 제사장에게로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주 앞에 드려서 그녀를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그녀는 그 피의 유출에서 깨끗하게 되리라. 이것이 남아나 여아를 낳은 여인을 위한 법이니라.

여자가 사내 아이를 낳으면 33일동안, 여자 아이를 낳으면 66일동안 피의 정결을 지속하며 성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정결의 날들이 끝나면 아들이나 딸을 위하여 번제물로 일 년 된 어린 양 한 마리와 속죄제물로 어린 집비둘기나 산비둘기
한 마리를 제사장에게로 가져와 주 앞에 드려서 피의 유출로부터 깨끗해지는 정결례를 드립니다.
인간이 인간을 낳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짐승과 같은 육적인 행위이므로 하나님 앞에 속죄했던 것입니다.

레위기 15/28~30 그러나 만일 그녀가 그녀의 유출에서 깨끗하게 되었으면 그녀는 칠 일을 헤아릴지니 그 후에야 그녀가 
깨끗하게 되리라. 여덟째 날에 그녀는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가지고 회중의 성막 문까지 제사장에게
가져가리니 제사장은 한 마리는 속죄제물로, 한 마리는 번제물로 드려서 그녀의 불결한 유출을 위하여 주 앞에서 그녀를 
속죄할지니라.

여성이 생리 중이거나 유출병이 있을 때에는 영적으로 불결하여 몸에 닿은 옷이나 자리나 그릇은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유출이 그치면 7일이 지나야 깨끗해지며, 그녀는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가지고 성막의 제사장에게
가져갑니다.
제사장은 한 마리는 속죄제물로, 한 마리는 번제물로 드려서 그녀의 불결한 유출에 대하여 주 앞에서 그녀를 속죄합니다.

레위기 14/19~20 또 제사장은 속죄제를 드려서 그의 불결함에서 깨끗하게 될 자를 위하여 속죄하고 그 후에 번제물을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제단 위에서 번제와 음식제사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러면 그가 깨끗하게 
되리라.

문둥병자가 문둥병이 나으면 제사장으로부터 확인을 받고 새를 흐르는 물 위에서 잡아 그 피를 일곱 번 뿌리고 깨끗하다
선언하며 자기 옷을 빨고 털을 밀며 몸을 물로 씻어 깨끗하게 된 뒤 7일동안 장막 밖에 묵습니다.
여덟째 날에 그는 흠 없는 어린 숫양 두 마리와 흠 없는 일 년 된 어린 암양 한 마리와 음식제사를 위하여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십분의 삼과 기름 한 록을 취하여 성막에 가져갑니다. 
제사장은 어린 숫양 한 마리를 기름 한 록과 함께 속건제로 드리고, 속건제물의 피를 조금 취하여 깨끗하게 될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 위에 바릅니다.
마지막으로 제사장은 속죄제를 드려서 그를 불결함에서 깨끗이 속죄하고 그 후에 번제와 음식제사를 드려 깨끗하게 됩니다. 

레위기 22/18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말하라. 이스라엘이나 이스라엘의 타국인들
중에서 자기의 모든 서원과 그의 모든 자원하는 제사를 위하여 예물을 드리려면 그들은 주께 번제를 드릴지니

이스라엘 민족이나 타국인들은 자기의 모든 서원과 자원하는 제사를 위하여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면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번제를 드리는 목적은 감사, 헌신, 충성, 언약, 속죄, 정결, 서원, 자원 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번제는 모든 제물을 사르며, 인간이 하나님께 불로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입니다.
번제는 또한 성막에서 매일 계속 드려야 하는 제사입니다.

 

a) 번제의 특징

1. 번제는 향기로운 냄새의 예물입니다.

성막 제사는 크게 향기로운 냄새의 예물과 그렇지 않은 예물로 나뉩니다.
향기로운 냄새의 예물로는 번제, 음식제사, 화목제가 있고, 성막의 놋으로 된 번제단에서 불살라졌으며,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열납되는) 예물입니다.
향기로운 냄새가 없는 예물로는 속죄제와 속건제가 있고, 제물은 번제단에서 불태워지지 않고 일부는 진 밖에서 
불태워졌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죄와 상관 없이 인간이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며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죄로 인하여 죄인이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대신한 제물을 드리며 속죄와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예물이 흠이 없고 완전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첫 번째 부류는 하나님께 드리는 합당한 선물로써,
두 번째 부류는 나의 죄를 대신할 희생물로써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5/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를 내는 제물과 희생으로
드린 것같이 너희도 사랑 안에서 행하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를 내는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셔서 자신을 희생해 인류를 위해 헌신한 것이 하나님께 번제로 인정되어
향기로운 냄새를 내는 제물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어 자신을 번제제물로 불살랐듯이 우리도 자신을 희생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말라기 1/11~13 이는 해 뜨는 데부터 해 지는 데까지 내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위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에 향을 피우며 순결한 제물이 드려질 것이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가운데서 위대하게 될 것임이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는 "주의 상은 더럽혀졌고, 거기에 있는 과실, 곧 그의 식물은 멸시할 만하도다."고 말함으로써 그것을 
모독하였도다. 너희는 또 말하기를 "보라, 이 얼마나 따분한 일인가!" 하며 그 일에 코웃음 쳤도다.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그리하여 너희는 찢기고 절며 병든 것들을 가져왔으니, 이렇게 너희가 제물을 가져왔도다. 내가 너희 손에서 이것을 
받아들여야겠느냐? 주가 말하노라.

레위기 21/6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께 거룩하여야 하며 그들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지니라. 이는 그들이 주의 
제물들을 불로 드리며 그들의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자들이므로, 그들은 거룩할지니라.

성막의 제단은 하나님의 상(table)이고, 드려지는 제물은 하나님의 음식(식물)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찢기며 절며 병든 제물을 하나님께 바쳤다가 책망을 들었지만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순결한 제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 가운데서 위대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심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은 번제물로 기뻐 받으셔서 불을 내리시고 흠향하시지만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희생하기 싫어하며 자신의 유익을 좇은 사람은 멀리하시고 성령의 불을 주지도 않으십니다.

 

2. 번제는 '자원하여 드려'(offer it of his own voluntary)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be accepted) 예물입니다.

레위기 1/3~4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찌니라.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개역한글)

레위기 1/3~4 그의 예물이 소떼의 번제희생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 것이며, 회중의 성막 문에서 주 앞에 자원함으로 
드려야
 할지니라.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그것이 그를 위한 속죄로 주께 받아들여질 것이니라.
(한글 KJV)

레위기 1/3~4 If his offering be a burnt sacrifice of the herd, let him offer a male without blemish/ he shall offer it of 
his own voluntary
 will at the door of the tabernacle of the congregation before the LORD.
 And he shall put his 
hand upon the head of the burnt offering; and it shall be accepted for him to make atonement for him.
 (KJV)

번제는 예물을 드리는 자가 주 앞에 자원함으로 드리고, 문제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제사입니다.
이를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모두 '열납된다.'(
悅(기쁠 열) 納(들일 납), 기쁘게 받음)라고 표현했는데 정확한 해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의무감이나 억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사심 없이 모두 드려진 번제제물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온전히 순종하여 인류를 위한 번제제물로 드리셨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번제물로 기꺼이 받으셨습니다.

창세기 4/4 ~5 아벨도 자기 양떼 가운데서 첫배 새끼들과 그 살진 것을 가져왔더니, 주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더라. 그러므로 카인이 몹시 격노하고 안색이 변하더라.

레위기 22/18~20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말하라. 이스라엘이나 이스라엘의 
타국인들 중에서 자기의 모든 서원과 그의 모든 자원하는 제사를 위하여 예물을 드리려면 그들은 주께 번제를 드릴지니 
너희는 너희 자의로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라. 그러나 흠이 있는 것은 무엇이라도 드리지 말지니 
이는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못 할 것임이니라.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아니한 제물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양 제물은 받으셧으나 카인의 식물 열매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식물(물질)이 아닌 동물(인간)의 희생적인 생명을 받기를 원하시며, 제물 드리는 자의 마음이 순전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께 번제를 드릴 때 흠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순수한 마음으로 가장 좋은 것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번제는 제단 위에서 온전히 불태워졌습니다.

레위기 1/8~9 제사장 아론의 아들들은 각 뜬 부분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 불 위에 있는 나무에다 정연하게 놓을 것이나 
그 내장과 다리들은 물에 씻어 제사장이 모두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희생으로, 불로 드리는 제사가 되게 할지니 주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번제 제물은 제단 위에서 모두 불살라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이 점에서 번제는 음식제사나 화목제와 다른데 음식제사와 화목제는 부분적으로 태워졌습니다.
또한 속죄제나 속건제 제물은 제단 위가 아닌 성막 밖에서 불태워졌습니다.
따라서 번제는 하나도 남김 없이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순종하는 예수님과 같은 자세를 의미합니다.

마태 22/3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예수님은 우리가 마음과 혼과 생각을 다해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가진 모든 열정을 다하여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사랑은 유지되기 어려우며, 결국 여러 유혹과 시험과 환난에 넘어가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해야 하는 다른 이유는 하나님이 먼저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보살펴 주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

번제를 드릴 때 특히 희생물의 머리,기름, 내장, 다리 등이 명시되었습니다.
머리는 나의 생각을 나타내고, 기름은 능력과 힘을 나타내며, 내장은 마음과 감정을 상징하고, 다리는 행동을 상징합니다.
이와 같이 나의 생각과 힘과 마음과 감정과 행위를 다해 하나님을 위하고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번제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b) 번제에 드려지는 동물

레위기 1/2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 그들에게 말하라. 너희 중에 누가 주께 예물을 드리려면 너희는 가축 중에서, 곧 
소떼나 양떼 중에서 예물을 드릴지니라. 그의 예물이 소떼의 번제희생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 것이며, 회중의 성막 
문에서 주 앞에 자원함으로 드려야 할지니라.

레위기 1/10 만일 그 사람의 예물이 양떼, 즉 양이나 염소의 번제희생이면 그는 흠 없는 수컷으로 가져올지니

레위기 1/14 만일 주께 드리는 그의 예물이 새의 번제희생이면 산비둘기들이나 어린 집비둘기들로 드릴지니

번제에 쓰이는 제물로는 흠 없는 수컷 소, 수컷 양, 수컷 염소,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등입니다.
소는 힘을 써서 인간을 위해 노동을 하듯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양은 도살장에도 순순히 끌려가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항하지 않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염소는 양과 대비되어 하나님에게 불순종하는 죄인을 상징합니다.
비둘기는 죄 짓거나 악에 물들지 않는 순수하고 순결한 상태를 상징합니다.

잠언 14/4 소가 없는 곳의 구유는 깨끗하나, 수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이사야 53/7 그가 억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여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니, 그가 어린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가며, 
또 털 깎는 자들 앞의 양이 말 없듯이 그가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는도다.

마태 25/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마태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내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들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수하라.

번제에 드려지는 다양한 동물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소나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 같은 입장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소처럼 하나님의 일을 우죽히 해야 하고, 양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며, 염소 같은 죄인(옛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불사르며(처리하며), 비둘기처럼 순결해져야(성화되야) 합니다.

벧전 2/21~23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한 본을 
남겨 놓으시어, 너희로 그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셨느니라. 그는 죄를 짓지도 아니 하셨고, 그 입에는 간사함도 없으셨으며, 
모욕을 당하셨으나 다시 모욕으로 갚지 아니하셨고, 고통을 당하셨으나 다시 위협하지 아니하셨으며, 오직 의롭게 심판하는
분께 자신을 의탁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이에 있어서 모범을 보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소처럼 하나님의 일만 하셨고, 양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으며, 우리 죄를 대신한 염소와 같은 죄인으로
십자가에서 드려지셨고, 세상과 타협하거나 죄 짓지 아니하여 비둘기처럼 순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온전한 번제제물로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레위기 1/9 그 내장과 다리들은 물에 씻어 제사장이 모두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희생으로, 불로 드리는 제사가 되게 
할지니 주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에베소서 5/25  이는 그가 교회를 말씀에 의한 물로 씻어 거룩하게 하시고 깨끗케 하사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나타내서 점이나 주름진 것이나 또는 그러한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번제제물의 특징 중 하나는 내장과 다리들을 물에 씻은 다음 제단 위에서 불사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는 방법은 크게 물에 씻는 것과 불에 태우는 것이 있습니다.
내장과 다리는 특히 우리의 감정과 행위를 상징하므로 우리의 감정과 행위를 물로(말씀으로) 깨끗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도 말씀에 의한 물로 깨끗이 씻어 거룩하게 되고 깨끗하게 됩니다.

레위기 1/4~6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그것이 그를 위한 속죄로 주께 받아들여질 것이니라. 그가 주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며 제사장들인 아론의 아들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중의 성막 문 옆에 있는 제단 위 
사면에 뿌릴 것이며 또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니라.

요한 10/18 아무도 생명을 내게서 빼앗을 자가 없으나 내 스스로 그것을 내어 놓느니라. 나에게는 생명을 내어 놓을 권세도
있고, 또 그것을 다시 얻을 권세도 있노라. 이 계명은 내가 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니라."고 하시니라.

레위기 1/14~15 만일 주께 드리는 그의 예물이 새의 번제희생이면 산비둘기들이나 어린 집비둘기들로 드릴지니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에 가져다가 머리를 비틀어 끊어서 제단에서 불사르고 그 피는 제단 곁에다 짜낼지니라.

수송아지를 속죄의 번제물로 드릴 때에는 예물을 드리는 자가 번제물에 안수하고 직접 송아지를 잡습니다.
안수를 하는 것은 자신과 동일시 하는 것으로 결국 자신이 자신을 죽인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도 인류를 대신할 속죄제물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본래 죄인인 나의 옛사람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때에는 순종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새의 번제물일 경우 속죄의 의미가 아니기 때문에 안수도 없고 제사장이 새의 머리를 비틀어서 잡습니다. 

 

 

3. 음식제사 (meat offering, 소제)

레위기2/1~16 누구든지 주께 음식제사를 드리고자 하면 그의 제물은 고운 가루로 할지니 그 위에다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다 유향을 놓아서 제사장들인 아론의 아들들에게로 가져올 것이며 제사장은 거기에서 가루 한 줌과 기름과 모든 유향을
가져다가 그 기념물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불로 드리는 제사요, 주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음식제사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것이 될지니 그것은 불로 드리는 주의 제물 중에서 가장 거룩한 것이니라. 네가 화덕에 구운 음식제사의 
헌물을 가져오려면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누룩 없는 과자나 기름 바른 누룩 없는 전병으로 드릴지니라. 네 헌물이 
철판에 구운 음식제사라면 누룩 없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여러 조각으로 나눠서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그것이 
음식제사니라. 네 헌물이 튀김판에 구운 음식제사라면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 너는 이것들로 만든 음식제물을
주께 가져와서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와서 그 음식제사에서 기념물을 취하여 제단에서 
불사를지니 그것이 불로 드리는 제사요, 주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음식제사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것이 될지니 
그것은 불로 드리는 주의 제물 중에서 가장 거룩한 것이니라. 너희는 누룩을 넣어 만든 어떤 음식제물도 주께 드리지 말지니 
이는 불로 드리는 주의 어떤 제물에도 누룩이나 꿀은 불사르지 못함이라. 첫열매들의 헌물은 너희가 주께 드릴 것이나 
향기로운 냄새를 내기 위해 그것들을 제단에서 불사르지 말지니라. 음식제사의 모든 헌물은 소금으로 간을 맞추되 너는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음식제물에 부족하지 않게 할지니 너는 네 모든 제물과 함께 소금을 드릴지니라. 네가 첫열매들의
음식제물을 주께 드리려면 불로 말린 곡식의 첫열매의 푸른 이삭을 음식제사로 드리되 잘 익은 이삭에서 찧은 곡식이라야 
하며 너는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넣을지니 그것이 음식제물이니라. 제사장은 그 기념물, 곧 그 제물에서 찧은 
곡식 조금과 기름 조금을 모든 유향과 함께 불사를지니 그것이 주께 불로 드리는 제사니라.

레위기 6/14~23 음식제사의 법은 이러하니라. 아론의 아들들은 그것을 제단 앞에서 주 앞에 드릴지니라. 그는 음식제물의 
가루 한 움큼과 기름과 음식제물 위에 있는 모든 유향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그것을 불살라 주께 향기로운 냄새로 기념이 
되게 할지니라. 그 나머지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먹되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함께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회중의 성막 
뜰에서 먹을지니라. 그것은 누룩을 넣어 구워서는 안되나니 내가 그것을 불로 드린 내 제물 중에서 그들의 몫으로 그들에게 
주었음이며 그것은 속죄제물과 속건제물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거룩하니라. 아론의 자녀들 가운데서 모든 남자들만 그것을 
먹을지니 그것은 불로 드리는 주의 제사에 대하여 너희 후대를 위한 영원한 규례가 되리라.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다 
거룩하리라." 하시니라. 주께서 모세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제사니 그가 기름 부음을 받는 
날에 그들이 주께 바칠 것이니라. 영속하는 음식제사를 위해서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로 하고 그 반은 아침에, 그 반은 
저녁에 드릴지니라. 너는 그것을 기름으로 섞어 철판에다 만들지니 구워지면 너는 그것을 가져다가 음식제물의 구운 조각을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 주께 드릴지니라. 그의 아들 중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그를 대신하여 그것을 드릴지니라. 
그것은 주께 영원한 규례니 그것을 완전히 불사를지니라. 제사장을 위한 음식제물은 완전히 불살라야 하며 먹어서는
안되느니라." 하시니라.

음식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고운가루 위에 기름을 붓고 유향을 놓아 제사장에게 가져갑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 불사르는데 불로 드리는 제사이며, 주께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음식제사의 남은 것은 제사장의 것이 되며, 남자들이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함께 거룩한 성막 뜰에서 먹습니다.
제사장을 위한 음식제물은 완전히 불살라야 하며, 먹어서는 안됩니다.
음식제사는 불로 드리는 제물 중에서 가장 거룩한 것입니다.
화덕에 구운 음식제물이면 누룩 없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과자나 기름 바른 누룩 없는 전병으로 합니다.
헌물이 철판에 구원 것이라면 누룩 없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여러 조각으로 나눠서 그 위에 기름을 붓습니다.
영속하는 음식제사를 위해서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 중 절반은 아침에, 나머지는 저녁에 드립니다.
튀김판에 구운 음식제사라면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듭니다.
음식제사의 헌물에는 누룩이나 꿀을 넣지 말아야 하는데 이는 어떤 제물에도 누룩이나 꿀을 불사르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음식제사의 모든 헌물은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데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부족하지 않게 합니다.
매년 추수 첫열매들의 음식헌물을 드리려면 불로 말린 곡식의 첫열매의 푸른 이삭을 음식제사로 드리되 잘 익은 이삭에서
찧은 곡식이라야 하며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유향을 넣습니다.

레위기 9/4 또 화목제물을 위하여 주 앞에 제물로 드릴 수소와 숫양을 취하고, 기름 섞은 음식제물을 가져오라. 오늘 주께서
너희에게 나타나실 것임이니라.' 하라." 하더라.

레위기 9/17 음식제물을 가져와서 그 중에서 한 움큼을 취하여, 아침의 번제 희생제물에 더하여 제단 위에서 불사르니라.

민수기 15/24 회중이 지식없이 모르고 범죄하였으면 온 회중은 주께 향기로운 냄새로 번제를 드리는 방식대로 수송아지 한 
마리를 음식제사와 술붓는 제사와 함께 드리고, 속죄제를 위하여 숫염소 새끼 한 마리를 드릴지니라.

화목제물을 드릴 때에 기름 섞은 음식제사를 함께 드리기도 합니다.
아침의 번제 희생물에 더하여 음식제물 한 웅큼을 함께 드리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회중이 범죄하였을 때에 수송아지 한 마리를 음식제사와 술 붓는 제사와 함께 드리며, 속죄제를 위해 숫 염소
새끼 한 마리를 드립니다.

레위기 23/13 거기의 음식제사는 기름으로 섞은 고운 가루 십분의 이를 향기로운 냄새로 주께 불로 드리며, 술붓는 제사로는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쓸지니라.

민수기 4/16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의 직무는 등기름과 향기로운 향과 매일 드리는 음식제물과 붓는 기름이며 성소 
안에 있는 모든 것과 그 기명들 안에 있는 것들이니라." 하시니라.

음식제사를 드릴 때 고운 가루 십분의 이를 향기로운 냄새로 주께 불로 드리고, 술붓는 제사로는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사용합니다.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의 직무는 등기름과 향기로운 향과 매일 드리는 음식제물과 붓는 기름이며 성소 안에 있는
기명들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a) 음식제사의 특징

1. 음식제사는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레위기 2/2 제사장들인 아론의 아들들에게로 가져올 것이며 제사장은 거기에서 가루 한 줌과 기름과 모든 유향을 가져다가 
그 기념물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불로 드리는 제사요, 주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위기 2/9 그 음식제사에서 기념물을 취하여 제단에서 불사를지니 그것이 불로 드리는 제사요, 주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음식제사는 불로 드리는 제사이고,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음식제사는 속죄제사와 구별되지만 번제와는 일치합니다.
번제와 소제 모두 하나님께 드려지고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다는 점에서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번제는 자기 자신을 드리는 것이고 음식제사는 자신의 소유(물질, 시간 등)을 드린다는 점이 다릅니다.

 

2. 음식제사는 식물성 재료로 드려집니다.

레위기 2/1 누구든지 주께 음식제사를 드리고자 하면 그의 제물은 고운 가루로 할지니 그 위에다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다 
유향을 놓아서
 

음식제사의 재료는 고운 가루와 기름과 유향입니다.
다른 제사는 동물이 드려지는데 비해 음식제사에서는 식물이 드려집니다.
동물제사는 하나님께 동물의 생명이 드려지는데 비해 음식제사에서는 하나님께 식물의 곡식(열매)이 드려집니다.
이 점이 음식제사가 다른 제사와 다른 점입니다.

창세기 1/29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온 지면 위에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를 내는 나무의 열매가 있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그것이 너희에게 먹을 것이 되리라.

창세기 9/4 그러나 고기를 생명과 더불어, 즉 거기에 있는 피째 먹지 말지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모든 짐승의 손과 사람의 손에서도 내가 그것을 찾을 것이며, 모든 사람의 형제의 손에서도 내가 그 사람의 생명을 찾으리라.
사람의 피를 흘리는 사람은 사람에 의해서 자기의 피도 흘려지게 되리니, 이는 주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라.

레위기 17/11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으며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주어 제단 위에서 너희 혼들을 속죄케 하였나니 이는 
혼을 속죄케 하는 것이 피이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씨 맺는 채소와 씨를 내는 나무의 열매를 인간에게 주셨고, 그것들은 인간의 먹을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고기를 먹을 때 피째 먹으면 안되는데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육체의 생명을 해하면 하나님은 피 흘린 사람의 생명을 요구하게 됩니다.
특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피를 흘리게 한 사람이 속죄하기 위해선 자신의 피도 흘려야 합니다.

마가 12/30 그러므로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니라. 둘째는 이와 같으니, 곧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라. 이들보다 더 큰 다른 계명은 
없느니라."고 하시더라.
 

모든 율법과 계명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번제가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라면 음식제사는 이웃과 관련됩니다.
번제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생명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이고, 음식제사는 하나님으로 받은 물질(식물)을 하나님의 
지체인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b) 음식제사의 재료

1. 고운 가루

이사야 28/28 빵 만드는 곡식은 부수나니, 이는 그가 늘 타작만 하지는 않을 것이요, 그것을 수레바퀴로 부수지 아니하며 
기병들로도 그것을 부수지 않음이라.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곡식(밀)을 잘게 부수어 가루로 만들어야 합니다.
곡식은 빻아 가루로 만들어야 자유롭게 빵이나 떡을 만들 수 있습니다.
곡식이 가루로 만들어지는 것은 고난과 고통을 상징합니다.
나의 자아는 고난과 고통을 받으면서 잘게 부수어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히브리서 4/15 이는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할 수 없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기 때문이라.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역을 하시는 동안과 십자가에서 잘게 부수어지는 고난과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많은 시험을 받았지만 죄를 짓지는 않으셨습니다.
보통 사람이 고난을 겪게 되면 더 악해지기 쉽지만 예수님은 진리와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고난을 겪어야 하는 이유는 고난을 당해야 내 안에 감추어진 죄성이 드러나고 그것을 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골로새서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고운 가루가 주는 다른 교훈은 모든 가루가 균일하고 아주 작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동일하시고 흠 없이 완벽한 인격을 갖추셨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닦여지고 갈아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그것으로 인해 반드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자신의 성격에 모난 부분이나 결점이 있다면 말씀과 간구로 치유하여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2. 기름

레위기 2/1 누구든지 주께 음식제사를 드리고자 하면 그의 제물은 고운 가루로 할지니 그 위에다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다 
유향을 놓아서

출애굽기 28/41 그것들을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한 그의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붓고, 그들을 성결하게 하고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그들로 제사장 직분으로 나를 섬기게 할지니라.

출애굽기 40/9 너는 붓는 기름을 가지고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부어 그것과 거기에 있는 모든 기명을 거룩하게 하라. 
그러면 그것이 거룩하게 되리라.

음식제사를 드릴 때 고운 가루 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기름은 제사장이나 왕이나 선지자가 될 사람에게 부었으며, 거룩히 구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성막에 있는 기명에도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고운 가루에 기름을 붓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거룩히 구별된 제물이란 뜻입니다.

누가 10/34 그가 그 사람에게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 상처를 싸매 주고 자기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그를 돌보아 
주더라.

사도행전 10/38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께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어 주셔서 그가 두루 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며 
마귀에게 억압받는 모든 자를 치유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심이라.

요일 2/27 너희가 그분에게서 받은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히려 그 동일한 
기름 부음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며, 또 그 기름 부음은 진리이고 거짓말이 아니니 너희를 가르친 그대로 너희는 그분 
안에 거할지니라.

신약성경에서 기름은 치유와 성령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강도 만난 자 비유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맞아 상처 받은 자에게 기름을 부어 치유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어 주셔서 선한 일을 행하시게 했고 마귀 들린 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거듭난 성도에게도 기름 부음으로 상징되는 성령님이 내주하셔서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3. 유향

레위기 2/1~2 누구든지 주께 음식제사를 드리고자 하면 그의 제물은 고운 가루로 할지니 그 위에다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다 유향을 놓아서 제사장들인 아론의 아들들에게로 가져올 것이며 제사장은 거기에서 가루 한 줌과 기름과 모든 
유향을 가져다가 그 기념물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불로 드리는 제사요, 주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위기 2/11 너희는 누룩을 넣어 만든 어떤 음식제물도 주께 드리지 말지니 이는 불로 드리는 주의 어떤 제물에도 누룩이나 
꿀은 불사르지 못함이라.

음식제사의 마지막 재료는 유향입니다.
유향은 값비싼 향품이며 지속적으로 좋은 향기를 풍깁니다.
유향으로 인해 음식제사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됩니다.
반면 음식제사에 누룩이나 꿀은 넣어 불사르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태 26/7 한 여인이 매우 값진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앉아 식사하시는 주의 머리 위에 붓더라.

고후 2/15 이는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나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향기이기 때문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도 여인이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 위에 부었습니다.
예수님은 전 생애 동안 죄를 짓지 않고 사심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심으로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위선적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뒤에서 음모를 꾸미고 욕심을 챙김으로써 하나님께 악취를 풍겼습니다.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은 신자에게나 불신자에게나 변함 없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4. 소금

레위기 2/13 음식제사의 모든 헌물은 소금으로 간을 맞추되 너는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음식제물에 부족하지 않게 
할지니 너는 네 모든 제물과 함께 소금을 드릴지니라.

민수기 18/19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바치는 거룩한 것들에서 모든 들어올리는 제물은 내가 너와 네 아들들과 네 딸들에게 
영원한 규례로 주었나니, 그것은 주 앞에서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한 소금의 언약이니라." 하시니라.

음식제사의 모든 헌물은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언약의 소금이 음식제물에 부족하지 않게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이라고 했는데 소금은 언약의 표시입니다.
모든 제사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를 인간이 드리면 하나님은 그것를 기뻐 받으시고 복을 주십니다.

마태 5/13 너희는 땅의 소금이라. 그러나 그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쓸모없어진 소금은 밖에 내어버려져
사람들의 발에 밟힐 뿐이니라.

음식제물에 소금은 사용하고 누룩은 사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소금은 음식을 상하지 않게 하고, 누룩은 음식을 상하게 합니다.
따라서 소금은 음식제물이 부패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영적인 소금에 절여져 있어서 세상의 죄악에 물들지 말고 언제나 순수하고 정의로우며 깨끗해야 합니다.

 

 

4. 화목제 (peace offering)

레위기 3/1~17 만일 그 사람의 헌물이 화목제의 희생제물이고 그가 수컷이든 암컷이든 간에 그것을 소떼에서 취한 것이면 
그는 흠 없는 것을 주께 드릴지니 그는 그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중의 성막 문 앞에서 그것을 잡을 것이요 제사장들인 
아론의 아들들이 제단 위 사면에다 피를 뿌릴지니라. 그는 화목제의 희생제물 중에서 주께 불로 드리는 제사를 드릴 것이며 
내장을 덮고 있는 기름과 내장 위의 모든 기름과 옆구리에 붙은 두 콩팥과 그 위에 있는 기름과 간 위의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 내고 아론의 아들들은 그것을 제단 위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번제희생으로 불사를지니라. 그것이 주께 불로 드리는 제사요,
주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만일 주께 드릴 화목제의 희생을 위한 그의 제물이 수컷이든 암컷이든 간에 양떼에서 취한 것이면 
그는 흠 없는 것을 드릴 것이며 그가 그의 제물로 어린 양을 드리면 그때는 주 앞에 그것을 드릴지니 그가 그 제물의 머리에 
안수해서 회중의 성막 앞에서 그것을 잡고 아론의 아들들이 그 피를 제단 위 사면에다 뿌릴지니라. 그는 화목제의 희생제물 
가운데 주께 불로 드리는 제사를 드릴지니 그 기름, 즉 등뼈 가까이에서 떼어낸 엉덩이 전체와 내장을 덮고 있는 기름과 내장 
위의 모든 기름과 옆구리에 붙은 두 콩팥과 그 위에 있는 기름과 간 위의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 내어 제사장은 제단 위에서 
그것을 불사를지니 그것이 주께 불로 드리는 제사의 음식이니라. 만일 그의 제물이 염소이면 그는 주 앞에 그것을 드릴지니라.
그는 그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중의 성막 앞에서 그것을 잡을 것이요, 아론의 아들들은 그 피를 제단 위 사면에다 
뿌릴지니라. 그는 그것에서 그의 예물을 드릴지니 주께 불로 드리는 제사니라. 즉 내장을 덮고 있는 기름과 내장 위의 모든 
기름과 옆구리에 붙은 두 콩팥과 그 위에 있는 기름과 간 위의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 내어 제사장은 그것들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그것이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 불로 드리는 예물의 음식이요 모든 기름은 주의 것이니라. 너희가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기름과 피를 먹지 않는 것이 너희 후대를 위해 영원한 규례가 되리라." 하시니라.

화목제는 주로 번제와 함께 드려지며, 하나님과 좋은 관계성을 위해 드려지는 제사입니다.
화목제물이 소이면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성막 문 앞에서 그것을 잡으며, 제사장이 제단 위 사면에 피를 뿌립니다.
화목제의 희생물 중에서 내장 주위의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과 간 위의 꺼풀을 제사장이 제단 위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번제 희생으로 드리는데 이것은 주께 불로 드리는 제사요 주께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희생제물이 양이면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성막 문 앞에서 그것을 잡으며,  제사장이 제단 위 사면에 피를 뿌립니다.
화목제의 희생물 중에서 등뼈 가까이서 떼어낸 엉덩이와 내장 주위의 기름과 옆구리의 두 콩팥과 그 위에 있는 기름과
간 위에 있는 콩팥을 제단 위에서 드리는데 이것은 주께 불로 드리는 제사의 음식입니다.
화목제물이 염소이면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성막 문 앞에서 그것을 잡으며, 제사장이 제단 위 사면에 피를 뿌립니다.
화목제의 희생물 중에서 내장 주위의 기름과 옆구리에 붙은 콩팥과 그 위에 있는 기름과 간 위의 꺼플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는데 그것은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 불로 드리는 예물의 음식입니다.
모든 기름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처소에서 기름과 피를 먹지 말아야 합니다.

레위기 7/11~15 그가 주께 드릴 화목제의 희생제물의 법은 이러하니라. 만일 그가 감사함으로 그것을 드리려면 그는 기름에 
섞은 누룩 없는 과자와, 기름 바른 누룩 없는 전병과,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튀긴 과자를 감사의 희생제물과 함께 
드릴지니라. 과자 외에도 그는 자기 제사를 위하여 누룩 있는 빵을 그의 화목제의 감사의 희생제물과 함께 드릴지니라. 
그는 그 전체 헌물 중에서 하나씩 주께 들어 올리는 제사로 드리고, 그것은 화목제물의 피를 뿌린 제사장의 것이 될지니라. 
감사함을 위한 화목제 희생제물의 고기는 그것을 드리는 그 날에 먹어야 하며, 그는 아침까지 조금도 남겨 두지 말지니라.

화목제의 제물로 식물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기름에 섞은 누룩 없는 과자와 기름 바른 누룩 없는 전병과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튀긴 과자를 감사의 희생제물과
함께 드립니다.
과자 외에도 누룩 있는 빵을 화목제의 감사의 희생제물과 함께 드립니다.
전체 헌물 중에서 하나씩 주께 들어 올리는 제사로 드리고, 그것은 화목제물의 피를 뿌린 제사장의 것이 됩니다.
감사함을 위한 화목제 희생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어야 하며, 아침까지 조금도 남겨 두지 말아야 합니다.

신명기 27/7 너는 온전한 돌덩어리들로 주 너의 하나님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주 너의 하나님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또 
너는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서 먹고 주 너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강을 건널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릴 것을 지시합니다.
이 때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서 먹dmau 주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이를 놓고 볼 때 화목제는 구원이 완성된 단계에서 하나님과 풍성한 교제를 통해 기쁨을 나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난과 희생과 슬픔을 겪고 나면 나중에 받게 되는 것은 주와 함께 누리는 영광과 복과 기쁨입니다.

레위기 6/12 제단 위의 불은 그 안에서 타게 하여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매일 아침 그 위에다 나무를 피울 것이요, 
그 위에다 번제물을 정연하게 놓고 그 위에다 화목제의 기름을 태울지니

레위기 7/20~21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자기 안에 불결함이 있는데 주께 속한 화목제 희생제물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은 
자기 백성에게서 끊어질 것이요 또한 어떤 불결한 것, 곧 사람의 불결함이나, 어떤 불결한 짐승이나, 어떤 가증하고 불결한 
것을 만진 사람이 주께 속한 화목제의 희생제물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도 자기 백성에게서 끊어지리라." 하시니라.

화목제는 주로 번제와 함께 드려지는 것으로 보아 화목제는 번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풍성한 교제를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연합해 옛사람을 버리고 새생명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자가 안에 불결함이 있거나 불결한 것을 만진 사람이 화목제의 희생제물의 고기를 먹으면 자기 백성에게서 끊어지게 됩니다.
이는 십자가 보혈의 대속과 중생과 성화의 과정을 거쳐 죄들과 죄성을 멸해 거룩해진 사람만이 하나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권리를 얻게 됨을 의미합니다.

레위기 7/32~34 너희는 또 너희 화목제 희생제물의 오른쪽 앞다리를 들어올리는 제물로 제사장에게 줄지니라. 아론의 
아들들 중에서 화목제의 피와 기름을 드리는 자가 그 오른쪽 앞다리를 자기 몫으로 가질지니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
희생제물에서 흔드는 가슴과 들어올리는 앞다리를 취하여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받을 영원한 규례로 제사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었느니라." 하시니라.

화목제 희생제물의 오른쪽 앞다리는 들어올리는 제물로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은 그것을 자기 몫으로 가집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 희생제물 중에서 흔드는 가슴과 들어올리는 앞다리는 제사장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제사장은 생업을 갖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거룩히 구별된 자들입니다.
이 시대에도 제사장과 같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체와 같으므로 돌아 보아야 합니다.

로마서 3/25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의 피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가운데서 
이전에 지은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그의 의를 선포하려 하심이요,

요일 2/2 그는 우리의 죄들을 위한 화목제물이시니, 우리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들을 위한 것이니라.

요일 4/10 여기에 사랑이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의 아들을 우리 죄들을 
위하여 화목제물로 보내신 것이라.

인류를 구원 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우리의 죄들을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여기서 화목제물은 모든 제사의 완결이기 때문에 번제물과 속죄제물의 의미를 포함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들의 사함을 받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어진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화목제물 되신 예수님(은혜와 진리)을 먹으며 하나님과 풍성한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a) 화목제는 예물을 드리는 자와 제사장과 하나님이 예물을 모두 함께 먹습니다.

화목제는 번제나 음식제사와 같이 불로 드리고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화목제만 갖고 있는 특징으로는 예물을 하나님과 제사장과 예물을 드리는 자 몫으로 나누어 먹음으로써 교제를 나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 제사장, 인간 모두가 화목제 예물을 먹고 만족을 누리며 풍성한 교제를 나눕니다.

레위기 3/3 그는 화목제의 희생제물 중에서 주께 불로 드리는 제사를 드릴 것이며 내장을 덮고 있는 기름과 내장 위의 모든 
기름과 옆구리에 붙은 두 콩팥과 그 위에 있는 기름과 간 위의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 내고 아론의 아들들은 그것을 제단
위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번제희생으로 불사를지니라. 그것이 주께 불로 드리는 제사요, 주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위기 7/31~33 제사장은 그 기름을 제단 위에 불사를 것이나 그 가슴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것이 될지니라. 너희는 또 
너희 화목제 희생제물의 오른쪽 앞다리를 들어올리는 제물로 제사장에게 줄지니라. 아론의 아들들 중에서 화목제의 피와 
기름을 드리는 자가 그 오른쪽 앞다리를 자기 몫으로 가질지니라.
 

레위기 7/15 감사함을 위한 화목제 희생제물의 고기는 그것을 드리는 그 날에 먹어야 하며, 그는 아침까지 조금도 남겨 두지
말지니라. 그러나 그의 제사의 희생제물이 서원이나 자원하는 예물이면 그는 그 희생제물을 드리는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 날에도 먹을 것이나 그 희생제물의 고기의 남은 것은 삼일째에는 불로 사를지니라.

먼저 하나님을 위해서는 희생물 가운데 내장 주위의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과 간 위의 꺼플을 제단 위에서 불살라 
주께 향기로운 냄새로 드립니다.
제사장을 위해서는 희생물의 가슴을 주고 오른쪽 앞다리를 들어올리는 희생물로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자기 몫으로 가집니다.
마지막으로 제물을 드리는 자는 화목제 희생제물의 고기를 그 날에 먹습니다.
그러나 희생제물이 서원이나 자원하는 예물이면 희생제물을 드리는 날과 다음 날에도 먹고, 희생제물의 남은 고기는 
삼일째에 불로 사릅니다.

요한 6/53~56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또 
그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안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을 가졌나니 
내가 그를 마지막 날에 살리리라. 이는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임이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며 나도 그 사람 안에 거하느니라.

계시록 3/20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으며 그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

인간 사이에도 함께 식사를 하면서 좋은 교제를 나누듯이 하나님과 제사장(중보자, 예수님)과 인간도 화목제물(예수님, 
진리, 은혜, 사역)을 함께 먹으며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고 하셨고,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도 그 안에 거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면 예수님이 나에게로 들어오셔서 나와 함께 먹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특정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음식의 구성성분이 나의 구성요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주는 육신의 쾌락을 위한 것들을 받아들이지 말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진리와 은혜를 받아 영적인
생명을 갖고 온전하고 거룩하게 자라야 합니다.

 

b) 화목제는 예물을 드리는 자도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합니다.

번제와 음식제사는 온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제사입니다.
그러나 화목제는 예물을 드리는 자도 하나님과 함께 먹으며 함께 기뻐하고 즐거움에 참여합니다.
이는 먼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상)을 주시고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하게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마태 25/20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나와 말하기를 '주여, 주께서 나에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나이다.
보소서, 그것들 외에도 내가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나이다.'라고 하더라.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기를 '잘하였도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내가 너로 많은 것들을 다스리도록 하리라. 네 주인의 기쁨에 동참하라.'고 하더라.

여호수아 6/19 그러나 모든 은과 금과 놋과 철 기명들은 주께 바쳐서 그것을 주의 보고로 들여와야 하리라." 하더라.

여호수아 8/27 이스라엘은 주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주의 말씀대로 그 성읍의 가축과 탈취물만을 그들을 위한 
전리품으로 취하였더라.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주인이 여행 간 동안 장사를 해서 다섯 달란트를 벌어 남기니 주인이 칭찬을 하면서 그 종이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므로 더 많은 것을 다스라게 하며, 주인의 기쁨에 동참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도 여리고성을 함락할 때는 모든 탈취물을 하나님께 드렸고, 아이성을 정복할
때에는 그들이 나누어 가졌습니다.

요한 17/10 나의 모든 것은 아버지의 것이오며 또 아버지의 것은 나의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내가 그들 안에서 영화롭게 
되었나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은 아버지의 것이고, 또 아버지의 것은 나의 것이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먼저 나와 내 소유를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면 아버지의 아들이자 천국의 상속자로 아버지의 모든 것을 맡아 다스리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자신을 희생하기는 싫어하고 영광만 바라는 심리가 있는데 이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욕심입니다.
사리사욕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면 때가 이르러 하나님께서 무한한 복과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5. 속죄제 (sin offering)

출애굽기 29/10~14 너는 수송아지 한 마리를 회중의 성막 앞으로 가져오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여 회중의 성막 문 옆, 주 앞에서 그 송아지를 잡을지니 너는 그 송아지의 피를 가져다가 네 손가락으로 제단의 뿔에다
바르고 모든 피를 제단 바닥 옆에다 쏟을지니라. 너는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위에 있는 꺼풀과 두 콩팥과 그 위에 있는 
기름을 취하여 제단에서 그것들을 불사르라. 그러나 송아지의 고기와 그 가죽과 똥은 진영 밖에서 불사를지니 이것이 
속죄제사니라.

속죄제사는 인간이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입니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하는데 하늘나라에서 죄에 대한 형벌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밖에 없는 내 목숨을 죄를 지을 때마다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내 죄를 짐승(양, 염소, 송아지)에게 안수하면서 전가하고 잡은 다음 생명을 상징하는 피를 제단의 뿔에 바르고 
내장과 기름을 제단에서 불사르며 나머지 고기와 가죽과 똥은 진영 밖에서 불사르는 속죄제사를 드립니다.

레위기 4/1~12 주께서 모세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말하라. 만일 어떤 사람이 무지로 인하여 
마땅히 해서는 안되는 일에 관한 주의 명령들을 거역하여 그 중 어떤 일을 어겨 행하고,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백성의
죄에 따른 죄를 지으면, 그때는 그가 범한 자기 죄로 인하여 흠 없는 어린 수송아지를 가져와서 주께 속죄제물로 드릴지니라. 
그는 수송아지를 주 앞 회중의 성막 문에 끌고 와서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고 주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취하여 회중의 성막에 가져와서 손가락으로 그 피를 적셔 성소의 휘장 앞, 
주 앞에서 일곱 번 피를 뿌릴 것이며 또 그 제사장은 회중의 성막 안에 있는 주 앞 향제단의 뿔에도 그 피를 바르고 그 
송아지의 모든 피에서 약간을 회중의 성막 문에 있는 번제단 밑에 쏟을지니라. 또 그는 속죄제물로 드린 송아지의 모든 
기름을 떼어낼지니, 내장을 덮고 있는 기름과 내장 위의 모든 기름과 옆구리에 붙은 두 콩팥과 그 위에 있는 기름과 간 위의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 내되 화목제의 희생제물인 수송아지에서 떼어낸 것같이 할 것이요 제사장은 번제단 위에서 그것들을
불사를지니라.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그 머리와 그 다리와 그 내장과 그 똥, 즉 수송아지 전체를 그는 진영 밖, 
재 버리는 곳인 깨끗한 곳으로 옮겨 나무 위에서 불로 사르되 재 버리는 곳에서 그는 사를지니라.

속죄제사는 드리는 사람에 따라 그 형식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가장 먼저 나오는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 온 회중과 대비되는 말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특정한 개인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이 무지로 인하여 주의 명령을 거역하거나 제사장이 죄를 지으면 자기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어린 수송아지를 
가져와서 주께 속죄제물을 드립니다.
속죄제를 드리는 사람은 수송아지를 성막 문으로 끌고 와 머리에 안수하고 수송아지를 잡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그 수송아지의 피를 취하고 손가락으로 그 피를 적셔 성소의 휘장 앞 곧 주 앞에서 일곱 번 피를 뿌리며, 
성막 안에 있는 향단 뿔에도 그 피를 바르고, 모든 피에서 약간을 번제단 밑에 쏟습니다.
그는 송아지 내장 주위의 기름과 옆구리에 붙은 콩팥과 그 위의 기름과 간 위의 꺼플을 화목제 희생물과 같이 떼어내고, 
제사장이 번제단 위에서 그것들을 불사릅니다.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모든 고기와 머리와 다리와 내장과 똥 즉 수송아지의 나머지 전체를 진영 밖, 재 버리는 곳으로 옮겨 
나무 위에서 불사릅니다.

레위기 4/13~21 그리고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무지로 인하여 범죄하고 그 일을 집회의 눈에서 감추면 그들은 해서는 
안되는 일에 관한 주의 명령 중에서 어떤 것에 거역하여 행하였으니 그들은 유죄가 되느니라. 그들이 그 명령을 거역하여 
죄를 지은 그 죄가 알려지면 그때 회중은 그 죄로 인해 어린 수송아지를 바칠지니 회중의 성막 앞으로 그것을 끌고 와서 
회중의 장로들이 주 앞에서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수송아지를 주 앞에서 잡을 것이요,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수송아지의 피를 회중의 성막으로 가져다가 제사장은 자기 손가락으로 그 피를 적셔 휘장 앞 주 앞에서 일곱 번 
뿌릴지니라. 또 그는 그 피에서 약간을 회중의 성막 안, 주 앞에 있는 제단 뿔에 바르고 그 모든 피는 회중의 성막 문에 있는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그는 그 수송아지에서 기름을 모두 취하여 단 위에서 사를지니라. 그는 그 수송아지를 속죄제의
수송아지에게 한 것같이 할지니 이것으로 그렇게 할지니라. 제사장이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리니 그들은 용서함을 받으리라. 
그는 그 수송아지를 진영 밖으로 옮겨 처음 수송아지를 불사름같이 불사를지니 그것이 회중을 위한 속죄제니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집단적으로 무지로 인하여 범죄하였는데 깨닫지 못하였거나 주의 명령 중에 어떤 것을 거역하여 행하면 
그들은 유죄가 됩니다.
그들의 죄가 알려지면 그 죄로 인해 어린 수송아지를 성막 문 앞으로 끌고 와서 회중의 장로들이 주 앞에서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수송아지를 주 앞에서 잡습니다.
제사장은 수송아지의 피를 성막으로 가져다가 자기 손가락으로 그 피를 적셔 휘장 앞에서 일곱 번 뿌립니다.
그는 그 피에서 약간을 성막 안 제단 뿔에 바르고 그 모든 피는 번제단 밑에 쏟습니다.
수송아지의 기름은 단 위에서 사르는데 속죄제의 수송아지에게 한 것과 같이 합니다.
제사장이 그들을 위해 속죄하면 그들은 용서를 받고, 수송아지의 나머지는 진영 밖으로 옮겨 불사릅니다.
이것이 회중을 위한 속죄제입니다.

레위기 4/22~26 어떤 치리자가 무지하여 해서는 안되는 일에 관해, 주 그의 하나님의 명령들 가운데 어떤 것을 거역하여 
행함으로써 범죄하여 죄가 되거나 자기가 지은 죄를 깨닫게 되면 그는 흠 없는 숫염소 새끼를 제물로 가져다가 그는 그 
숫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그들이 주 앞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그것을 잡을지니 그것이 속죄제니라. 제사장은 자기 
손가락으로 속죄제물의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는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그는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의 
희생제물의 기름같이 불사를지니, 제사장이 그의 죄에 관해서처럼 그를 위하여 속죄하면 그는 용서함을 받으리라.

어떤 치리자(정치적인 지도자)가 무지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행함으로써 죄를 범하거나 자신이 지은 죄를 깨닫게 
되면 그는 숫염소 새끼를 가져다가 그 숫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번제물 잡는 곳에서 잡습니다.
제사장은 자기 손가락으로 속죄제물의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는 번제단 밑에 쏟고, 모든 기름을 화목제 
희생제물의 기름같이 불사릅니다.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하면 그는 용서를 받습니다.

레위기 4/27~35 만일 일반 백성 중 어떤 사람이 무지하여 마땅히 해서는 안되는 일에 관한 주의 명령들 가운데 어떤 것을 
거역함으로써 범죄하여 죄가 되거나 그가 지은 자기 죄를 깨닫게 되면 그는 자기가 지은 죄를 위하여 흠 없는 암염소 새끼를 
제물로 가져와서 속죄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번제의 장소에서 속죄제물을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제물의 
피를 찍어 번제단의 뿔에 바르고 그 모든 피를 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그는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의 희생제물에서 기름을 
취한 것같이 하여, 주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 제단 위에서 그것을 사를지니라.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하면 그는 
용서함을 받으리라. 만일 그 사람이 속죄제물로 어린 양을 가져 오려거든 흠 없는 암컷을 가져다가 그는 그 속죄제물에 
안수하고 그들이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속죄제물로 그것을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자기 손가락으로 그 속죄제물의 피를 찍어 
번제단의 뿔에 바르고 그 모든 피를 번제단 밑에 쏟을지니라. 그는 또 화목제의 희생제물에서 어린 양의 기름을 취하였던 
것처럼 그 모든 기름을 취하여 주께 불로 드리는 제사에 따라 제사장이 제단 위에서 그것들을 불사를지니라. 제사장이 그가 
범한 그의 죄를 위하여 속죄하리니 그가 용서함을 받으리라.

일반 백성 중 어떤 사람이 무지하여 주의 명령들 가운데 어떤 것을 거역하여 범죄하거나 자신이 지은 죄를 깨달으면 그는 
자기가 지은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암염소 새끼를 제물로 가져와 머리에 안수하고 번제의 장소에서 잡습니다.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제물의 피를 찍어 번제단의 뿔에 바르고, 모든 피를 제단 밑에 쏟으며, 모든 기름을 취하여 주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 제단 위에서 사릅니다.
제사장이 그를 위해 속죄하면 그는 용서를 받습니다.
속죄제물로는 흠 없는 암컷 어린 양도 사용할 수 있고, 제사방법은 위와 같습니다.

레위기 5/7~10 만일 그가 어린 양을 가져올 형편이 못 되면 그때는 자기가 범한 허물을 인하여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주께 가져와서, 하나는 속죄제물로 또 하나는 번제물로 삼을 것이라. 그가 제사장에게 가져오면 제사장은 
먼저 속죄제를 위한 것을 드릴지니 제사장은 그 머리를 목에서 비틀어도 둘로 쪼개지는 말며, 그는 제단 옆에 속죄제물의
피를 뿌리고 그 나머지 피는 제단 밑에 짜내리니 그것이 속죄제니라. 그는 두 번째 것을 그 방식에 따라 번제물로 드릴지니, 
그 사람이 지은 죄 때문에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하면 그가 용서함을 받으리라.

어린 양을 가져올 형편이 못 되는 가난한 사람이 자신이 범한 허물로 인하여 속죄제사를 드리기를 원한다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집 비둘기 두 마리를 주께 가져와서 하나는 속죄제물로, 다른 하나는 번제물로 삼습니다.
제사장은 새의 머리를 비틀어 죽이지만 둘로 쪼개지는 말며, 제단 옆에 피를 뿌리고 나머지 피는 제단 밑에서 짜냅니다.
제사장이 범죄한 사람을 위해 속죄하면 그는 용서를 받습니다.

레위기 5/11~12 그러나 그가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올 수 없으면, 그때에는 그 범죄한 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속죄제물로 가져와서 자기 제물을 드릴 것이요 그 위에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놓지 말지니 이는 
그것이 속죄제임이라. 그가 그것을 제사장에게 가져오면 제사장은 그것을 기념물로 한 움큼을 집어서 주께 불로 드리는 
제사에 따라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그것이 속죄제니라.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도 가져올 수 없는 형편의 사람이 범죄하면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속죄제물로 드리는데 그 위에 기름을 붓거나 유향을 놓지 않습니다.
제사장은 그것을 기념물로 한 웅큼을 집어서 주께 불로 드리는 제사에 따라 제단 위에서 불사릅니다.

 

a) 속죄제는 향기로운 냄새의 예물이 아닙니다.

속죄제의 예물은 번제와 같이 흠 없는 예물이지만 향기로운 냄새를 내는 예물은 아닙니다.
번제와 화목제 같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예물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됩니다.
그러나 속죄제와 속건제는 인간의 죄를 대신한 제물이기 때문에 향기로운 냄새가 없습니다.
번제나 화목제는 하나님께 드려지기 위해 번제단에서 불살라지지만 속죄제는 형벌은 받은 후 진영 밖에서 불살라집니다.

 

b) 속죄제 헌물은 진 밖에서 불살라졌습니다.

레위기 4/11~12 그 수소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머리와 다리와 내장과 똥 곧 그 수소의 전부를 진영 밖의 재를 버리는 곳 
즉 청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나무 위에서 불로 태우되 곧 재를 버리는 곳에서 태울지니라

레위기 4/8~10 또 그는 그 죄 헌물 수소에서 모든 기름을 취할지니 곧 그는 내장을 덮은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하되 화평 헌물의 희생물의 수소에서 취한
것같이 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들을 번제 헌물 제단 위에서 태울 것이며

번제와 화목제 예물은 번제단 위에서 불살라진데 비해 속죄제 헌물은 진영 밖의 재를 버리는 곳 나무 위에서 불로 태웠습니다.
이는 죄에 대한 철저한 심판과 응징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속죄제 헌물의 내장 주위의 기름과 간의 꺼플과 콩팥을 번제단 위에서 태웁니다.
이는 속죄 헌물이라 할지라도 그 중 일부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히브리서 10/12 이분은 한 번의 속죄제를 영원히 드린 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히브리서 13/12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자기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느니라.

고후 5/21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한 영원한 속죄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지셨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속죄 헌물이 진영 밖에서 불살라졌듯이 예수님은 자기 피로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속죄양은 흠이 없어야 하듯이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한 예수님을 우리를 위하여 죄인을 삼으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하나님의 의를 우리가 믿음으로써 구원 받게 하려 함입니다.

벧전 2/24 그가 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들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낫게 되었느니라.

벧전 3/18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리심을 받으사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신 이유는 우리가 죄들에게는 죽고 의에게는 살게 하려
하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들로 인하여 속죄의 고난을 받으심으로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지만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리심을 받으사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려 하심입니다.

 

c) 속죄제는 죄들이 아닌 죄성을 위한 제사입니다.

속건제가 죄들을 위한 제사인데 반해 속죄제는 죄성을 위한 제사입니다.
인간은 악한 본성인 죄성을 갖고 있는데 이로 인해 각종 죄들을 짓게 됩니다.
속죄제에서는 죄의 특별한 행위보다 죄를 지은 특정한 인물이 강조됩니다.
이에 반해 속건제에서는 인물은 나타나지 않고 죄에 대한 특정한 행위가 언급됩니다.

에베소서 2/3 그들 가운데서 우리 모두가 이전에는 우리 육신의 정욕들 가운데서 행하였으며 육신과 마음의 욕망을 이루어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본래 진노의 자녀였느니라.

인간은 율법과 계명을 어겨 죄들을 짓는 자신을 보며 자신이 죄성을 가진 죄인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죄들을 용서받더라도 계속 죄들을 짓는 자신을 보며 자신이 구제불능의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 입장에서 볼 때 욕신의 정욕과 마음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본래 진노의 자녀입니다.
율법의 목적은 인간이 이를 지킴으로써 의로워지라는 것이 아니라 이를 지킬 수 없음을 깨닫고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6. 속건제 (trespass offering)

레위기 5/6 그가 지은 자기 죄를 위하여 그는 주께 속건제물을 가져와야 하리니, 양떼에서 암컷으로 어린 양이나 염소 새끼를
속죄제물로 드릴지니 제사장은 그의 죄에 관해 그를 위하여 속죄할지니라.
 

율법을 어긴 사람은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어린 양이나 염소 새끼를 속건제물로 드려 속건제를 드리고, 제사장은
그의 죄에 관해 그를 위해 속죄합니다.
속건제는 영어로 trespass offering인데 trespass는 ' 죄를 범하다' 또는 '법을 어긴다'는 뜻입니다.

레위기 5/15~19 "만일 어떤 사람이 무지함으로 주의 거룩한 물건들에 잘못을 저지르거나 죄를 지으면, 그때 그는 주께 그의 
속건제를 위하여 성소의 세켈에 따라 네가 정한 은 세켈에 상응하는 것으로 양떼에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를 자기 허물을 
위해 끌어올지니 그가 거룩한 물건에 행한 손상을 갚되 거기에다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속건제의 숫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죄하리니 그가 용서함을 받으리라. 또 어떤 사람이 주의 명령들에 의해 행하는 것이 금지된
이런 것들 중에 어떤 것을 범하여 죄를 지으면 비록 몰랐을지라도 죄가 되나니 그는 자기 죄악을 담당할지니라. 그는 네가 
정한 값으로 양떼 중에서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로 제사장에게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가 잘못하고 몰랐던 일에서 그의 
무지에 관해 그를 위하여 속죄하리니 그가 용서함을 받으리라. 그것이 속건제이니 그가 분명히 주를 거역하여 잘못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무지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물건들에 잘못을 저지르거나 죄를 지으면 그는 속건제를 위하여 정한 은 세켈에
상응하는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를 자기 허물을 위해 드리고 거룩한 물건에 행한 손상을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줍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속건제의 숫양으로 그를 위해 속죄하며 그는 용서함을 받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주의 명령들에 의해 금지된 어떤 것을 행하여 죄를 지으면 몰랐더라도 죄가 되므로 자기 죄악을 담당합니다.
그는 정한 값으로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로 제사장에게 가져오고 제사장이 그의 무지에 관해 속죄하면 그가 용서를 받습니다.

레위기 7/1~7 마찬가지로 이것이 속건제의 법이니 그것은 지극히 거룩하니라. 그들이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속건제물을 잡고 
그는 그 피를 제단 위 사면에 뿌릴 것이요 그 모든 기름을 드리되 엉덩이와, 내장을 덮고 있는 기름과 옆구리에 있는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과, 간 위의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 내어 제사장은 주께 불로 드리는 제사를 위하여 제단 위에서 그것들을 
불사를지니 이것이 속건제니라. 제사장들 가운데 모든 남자만 그것을 먹되 거룩한 곳에서 먹을 것이요 그것은 지극히 
거룩하니라. 속건제와 속죄제는 마찬가지니, 이 둘은 한 가지 법에 따르며 속죄를 한 제사장이 그것을 가질지니라.

거룩한 속건제를 드릴 때에는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속건제물을 잡고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립니다.
엉덩이와 내장을 덮는 기름과 옆구리에 있는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과 간 위의 꺼플을 떼어 내어 제사장이 주께 불로 드리는
제사를 위하여 제단 위에서 그것들을 불사릅니다.
제사장들 가운데 남자만 고기를 먹되 거룩한 곳에서 먹습니다.

레위기 14/12~29 제사장은 어린 숫양 한 마리를 취하여 기름 한 록과 더불어 속건제를 드리되 주 앞에 흔드는 제사로 
그것들을 흔들지니라. 제사장은 그 어린 양을 속죄제물과 번제물을 잡는 거룩한 곳에서 잡을 것이며 속죄제물은 속건제물과 
마찬가지로 제사장의 것이니라. 그것은 지극히 거룩한 것이라. 제사장은 속건제물의 피를 조금 취하여 깨끗하게 될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 위에 바를지니라. 또 제사장은 기름 한 록에서 조금 취하여 자기 
왼손 바닥에 붓고 오른쪽 손가락을 왼손에 있는 기름에 찍어, 그 손가락으로 그 기름을 주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요 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깨끗하게 될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 위, 속건제물의 피 위에 
바를 것이며 또 제사장의 손에 있는 기름의 남은 것은 깨끗하게 될 자의 머리 위에 부어서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주 앞에서 
속죄할지니라. 또 제사장은 속죄제를 드려서 그의 불결함에서 깨끗하게 될 자를 위하여 속죄하고 그 후에 번제물을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제단 위에서 번제와 음식제사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러면 그가 깨끗하게 되리라.
만일 그가 가난해서 그만큼 구할 수 없으면 자기를 속죄하기 위해 흔드는 속건제를 위하여 어린 양 한 마리와, 음식제사를 
위하여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십분의 일과 기름 한 록을 취하고 그가 구할 수 있는 대로 산비둘기 두 마리와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취하되 한 마리는 속죄제물로, 한 마리는 번제물로 할지니라. 그는 여덟째 날에 자기의 깨끗함을 위하여 그것들을 
회중의 성막 문 주 앞 제사장에게로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속죄제의 어린 양과 기름 한 록을 취하여 주 앞에 흔드는 제사를 
위하여 제사장이 그것들을 흔들 것이며 제사장은 속건제의 어린 양을 잡아서 그 속건제물의 피를 조금 취하여 깨끗하게 될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 위에 바를지니라. 제사장은 그 기름을 자기 왼손 바닥에 
부어서 왼손에 있는 기름을 오른쪽 손가락으로 조금씩 찍어 주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요 제사장은 자기 손에 있는 기름을 
깨끗하게 될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 위, 속건제물의 피를 바른 자리에 바를 것이며
제사장의 손에 있는 기름의 남은 것은 깨끗하게 될 자의 머리 위에 부어서 주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할지니라.

제사장은 어린 숫양 한 마리를 취하여 기름 한 록과 더불어 속건제를 흔드는 제사로 드립니다.
제사장은 어린 양을 속죄제물과 번제물을 잡는 거룩한 곳에서 잡고, 속죄제물과 속건제물은 제사장의 것입니다.
제사장은 속건제물의 피를 조금 취하여 깨끗하게 될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 위에
바릅니다.
제사장은 기름 한 록에서 조금 취하여 자가 왼손 바닥에 붓고 오른쪽 손가락을 왼손에 있는 기름에 찍어 그 손가락으로 기름을
주 앞에 일곱 번 뿌리며, 손에 남은 기름은 깨끗하게 될 자의 머리 위에 부어서 그를 위하여 주 앞에서 속죄합니다.
제사장은 속죄제를 드려서 불결함에서 깨끗하게 될 자를 위하여 속죄하고 번제물을 잡습니다.

만일 그가 가난해서 속죄제물을 구할 수 없으면 속건제를 위해 어린 양 한 마리와 음식제사를 음식제사를 위해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십분의 일과 기름 한 록을 취하고 산비둘기 두 마리와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취하되 한 마리는 속죄제물로
다른 한 마리는 번제물로 합니다.
그는 여덟째 날에 자기의 깨끗함을 위하여 그것들을 회중의 성막 문 제사장에게 가져오고, 제사장은 속죄제의 어린 양과
기름 한 록을 취하여 주 앞에 흔드는 제사를 위하여 제사장이 그것들을 흔듭니다.
제사장은 속건제의 어린 양을 잡아서 그 속건제물의 피를 조금 취하여 깨끗하게 될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 위에 바릅니다.
제사장은 기름을 자기 왼손 바닥에 부어서 왼손에 있는 기름을 오른쪽 손가락으로 조금씩 찍어 주 앞에 일곱 번 뿌리고,
제사장이 자기 손에 있는 기름을 깨끗하게 될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 위 속건제물의
피를 바른 자리에 바르고, 제사장의 손에 있는 기름의 남은 것을 깨끗하게 될 자의 머리 위에 부어서 주 앞에서 그를 위해 
속죄합니다.

 

a) 속건제는 사람이 범한 죄들을 용서받기 위한 제사입니다.

레위기 6/2 "만일 어떤 사람이 죄를 짓고 주를 거역하여 잘못을 저질러, 자기에게 간수하도록 맡긴 것이나 폭력으로 빼앗은 
것에 대해 이웃에게 거짓말하거나 자기 이웃을 속였거나 잃어버린 물건을 찾고도 그것에 관하여 거짓말하고 거짓되이
맹세하며, 어떤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의 하나라도 행하여 그로 인해 죄를 지으면 그가 죄를 지었고 그에게 죄가 있으니 그는 
그가 폭력으로 탈취해 간 것이든 속이고 가진 것이든 간수하도록 그에게 맡긴 것이든, 그가 찾은 잃어 버린 물건을 그는 
돌려줘야 할 것이요 또한 그가 거짓으로 맹세한 모든 것에 대하여 원래대로 거기다가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줘야 하며, 
그의 속건제 날에 그 물건이 속한 사람에게 돌려줄지니라. 그는 자기의 속건제물을 주께 가져와야 할지니 양떼에서 네가 
정한 값으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를 속건제를 위하여 제사장에게로 가져올지니라. 제사장이 주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하리니 그가 잘못을 저질러 행한 모든 것 중 어떤 것에 대해서도 그 죄가 그에게 사해지리라." 하시니라.
 

속건제는 속죄제와는 달리 죄를 범한 사람보다 사람이 범한 낱낱의 죄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죄들은 율법을 범한 행위로 절도, 강도, 거짓말, 거짓맹세 등입니다.
이웃에게 피해를 입혔으면 그것을 변상 또는 배상해야 하며,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를 속건제로 드립니다.
제사장이 주 앞에서 그를 위해 속죄하면 잘못 행한 모든 죄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습니다.

 

b) 속건제에는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해 성소의 세겔로 보상 또는 배상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레위기 5/15~16 "만일 어떤 사람이 무지함으로 주의 거룩한 물건들에 잘못을 저지르거나 죄를 지으면, 그때 그는 주께 그의 
속건제를 위하여 성소의 세켈에 따라 네가 정한 은 세켈에 상응하는 것으로 양떼에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를 자기 허물을 
위해 끌어올지니 그가 거룩한 물건에 행한 손상을 갚되 거기에다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속건제의 숫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죄하리니 그가 용서함을 받으리라.

만일 어떤 사람이 무지함으로 주의 거룩한 물건들에 잘못을 저지르면 그는 주께 그의 속건제를 위하여 성소의 세켈에
따라 정한 은 세켈에 상응하는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를 드리고, 거룩한 물건에 행한 손상을 갚되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주며, 제사장은 속건제의 숫양으로 그를 위해 속죄합니다.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는 한 방법은 자신이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해 보상하거나 배상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0/13 계수받은 자들 중에 드는 모든 자가 바칠 것은 이것이니 성소의 세켈대로 반 세켈이라. (한 세켈은 이십 
게라라.) 반 세켈은 주께 봉헌되어야 할지니라.

출애굽기 38/24 성소의 모든 작업에 쓰인 모든 금은 예물로 드린 금까지 합하여 성소의 세켈에 따라 이십구 달란트와 
칠백삼십 세켈이요

레위기 27/3 너의 정한 값은, 이십 세부터 육십 세까지의 남자이면, 너의 정한 값은 성소의 세켈로 은 오십 세켈이 될 것이며

레위기 27/25 네가 정한 모든 값은 성소의 세켈대로 하되 이십 게라가 한 세켈이 될지니라.

민수기 3/47 너는 한 명에 다섯 세켈씩 받되 성소의 세켈에 따라 받을지니라. (한 세켈은 이십 게라니라.)

민수기 18/16 일 개월 이후부터 대속해야 할 사람들은 네가 정한 값대로, 성소의 세켈대로, 오 세켈의 돈으로 대속할지니, 
한 세켈은 이십 게라니라.

성소의 세켈은 율법과 성막에서 사용되는 화폐단위입니다.
한 세켈은 이십 게라로 성소의 세켈은 이스라엘 민족이 속전세를 내거나 성물을 드릴 때 사용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정한 모든 값은 성소의 세켈대로 해야 합니다.
성소에서 쓰이는 돈과 세상에서 쓰이는 돈이 달랐기 때문에 환전상이 있었고, 예수님은 카이사의 것은 카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라고 했습니다.

레위기 6/4~5 그가 죄를 지었고 그에게 죄가 있으니 그는 그가 폭력으로 탈취해 간 것이든 속이고 가진 것이든 간수하도록 
그에게 맡긴 것이든, 그가 찾은 잃어 버린 물건을 그는 돌려줘야 할 것이요, 또한 그가 거짓으로 맹세한 모든 것에 대하여 
원래대로 거기다가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줘야 하며, 그의 속건제 날에 그 물건이 속한 사람에게 돌려줄지니라.

다른 사람의 물건을 폭력으로 빼앗거나 속임수로 가져왔을 경우 그에게 물건을 돌려줘야 할 뿐만 아니라 거짓으로
맹세한 모든 것에 대해 오분의 일을 더해 돌려줘야 하며, 그의 속건제 날에 그 물건이 속한 사람에게 돌려줍니다.
따라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 것에 보상할 뿐만 아니라 오분의 일을 더하여 배상해야 합니다.
현재 법에도 보상과 배상의 개념이 있듯이 온전한 속죄를 위해서는 보상과 배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창세기 47/23~24 그리하여 요셉이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보라, 내가 오늘 파라오를 위하여 너희와 너희 땅을 샀노라. 자, 
여기에 너희를 위한 씨앗이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릴지니라. 추수 때가 되면 너희는 오분의 일을 파라오에게 주고 네 
부분은 너희 것으로 하여, 들의 씨앗으로 삼고 너희의 식량과 너희 집안의 식량과 너희 어린 것들의 식량으로 삼으라." 하니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 흉년이 들 것을 예견하고 풍년 때 곡식을 모아 두었습니다.
이집트 전역에 기근이 들자 이집트 백성이 자신의 돈과 가축과 땅을 팔아 요셉으로부터 식량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팔 것이 없자 이집트 백성은 파라오의 종이 되기를 간구했습니다.
이 때 요셉은 추수 때에 오분의 일을 파라오에게 주고 나머지를 이집트 백성의 것으로 하는 토지제도를 시행하게 됩니다.

출애굽기 22/4 만일 도둑질한 것이 확실히 그의 손에서 산 채로 발견되면 그것이 소든지, 나귀든지, 양이든지 그는 두 배로 
갚을지니라.

신명기 14/22 너는 마땅히 해마다 밭에서 나는 모든 소산에서 십일조를 바칠 것이며

오분의 일은 십분의 일의 두배로 자신의 잘못을 배상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칠 때에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드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10은 단위의 완전수로 십분의 일은 전체를 대표합니다.
십일조가 하나님께 감사와 헌신의 표시로 드리는 번제나 화목죄와 관련이 있다면 십이조(오분의 일)는 하나님께 지은
죄에 대한 속죄제나 속건제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참고 서적 : 성경의 제사법 (앤드루 죽스, 생명의 말씀사)

* 관련 자료 : 성막 제사법

 

 

 

 

가족치료 이론들

-1950년대 이후 가족을 하나의 체계로 보면서 발달하기 시작함

1. 정신분석적 사고에 기초를 두고 일반적인 체계이론을 도입한 가족치료 접근법
-Ackerman이 대표적인 치료가임

2. 가족을 하나의 정서단위로 본 가족치료 접근법
-Murray Bowen(1913-1990)이 대표적 학자로 가족치료 모델중 가장 포괄적인 견해를 가 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됨

3. 의사소통이론을 기초로 한 가족치료 접근법
-V. Sarir: 경험적 가족치료이론이라고 하기도 함
-J. Haley: 의사소통 이론에서 더 나아가 전략적 가족치료이론을 발전시킴

4. 구조적 가족치료 접근법
-Minuchin이 대표적 학자로 빈곤한 가족에게 적용 가능한 새로운 개념과 틀을 많이 발 전시킴

5. 해결중심단기 가족치료
-De shazer와 Insoo Berg의 관점으로 문제의 원인을 제거 하려하기보다 내담자가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적응 기법을 긍정적으로 확대, 적용하려는 시도를 함
Bowen 가족치료의 개념과 정상성의 관점

1. 개념
Bowen은 한 개인의 정서적 질병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전된 것이며 이러한 부적응적 관계의 원형은 가족관계로부터 파생된다고 보았다. 불안을 갖는 개인은 가족 안에서 익힌 비효과적인 대처 방법만을 반복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치료적 관계(상담)를 통해 자신의 가족과 거기서 파생된 정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면 불안 해소가 가능하여 바람직한 대인관계와 성공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다고 여긴다.

2. Bowen이 보는 건강한 개인과 인간관계 :


1) 이상적 개인 -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고 자신의 생활에 책임을 지는 내적 지향적인 사람을 성숙하고 이상적인 사람으로 본다. 이런 사람은 이성과 감정의 분리와 자신 과 타인의 정서 분리가 가능한 정서적 분화 상태에 있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객관적 이며 자신의 주관을 갖고 생활하는 성숙한 삶이 가능하다.

2) 건강한 결혼 - 배우자 모두 분화수준이 높아 자율성을 가지고 정서적인 사랑을 할 수 있어 건강한 결혼 생활의 유지가 가능하다.

3) 이상적 부모 - 자녀에게 자신의 정서를 투사하여 부모가 원하는 대로 성장하도록 강 요하지 않고, 한 사람의 개별적 인격체로 성장하도록 양육하는 부모로 자녀의 분화를 허용할 수 있어야 한다.

Bowen이론의 기본개념 및 원리들


1. 분화


Bowen 이론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으로 융합이라는 말과 반대의 의미를 가진다. 가족은 감정체제이므로 가족구성원들은 서로에 대해서 감정반사행동(emotional reactivity behavior!)을 하게된다.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깊은 감정을 공유하면 할수록 서로간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감정적 융합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융합이 커지면 상대방의 행동이나 감정에 대한 반사적 반응은 더욱 커지고 깊어지며, 이것은 아주 미묘한 행동에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나는 행동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행동에 다양하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작은 외부자극에도 쉽게 화를 내는 등 감정의 동요를 보이는 사람들은 감정반사행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원 가족과의 정서적 분화가 잘 되지 않은 결과이다.
정서적 분화는 자아의 형성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사람들은 유아 시절 주변의 중요한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를 형성해 나가기 때문에 아주 어린 시절 자아의 기본 구조가 어느정도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되는 자아는 진짜 자신(solid self)과 가짜 자신(pseudo self)의 두 가지 모양으로 나타난다. 진짜 자신은 자신에 대한 신뢰와 확신으로 타인들과의 관계로 인해 변화되지 않는 특징이 있어 자신이 원하는 바를 타인에 의해 영향 받지 않으며 수행해 나갈 수 있는 자아이다. 가짜 자신은 타인들과의 관계로 인해 쉽게 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목표를 세웠다 하더라도 타인의 영향이나 환경의 지배를 많이 받아 성취하기가 어렵다.

분화의 수준은 진짜 자신과 가짜 자신의 비례로 나타나며 전자의 비율이 높을수록 분화의 수준이 높아진다. 또한 분화는 지적체제와 감정체제사이의 비율에 의해서, 느낌체제와 감정체제사이의 비율에 의해서도 나타내진다. 지적체제가 감정체제보다 더 많이 작동하는 경우 타인들과의 감정 분리가 용이할 때 분화의 수준이 높다고 본다.
한편 분화의 수준은 아래에 제시된 이론적 수치로서 표현할 수도 있다.
분화지수 특성들

가장낮은 자아분화수준(0 - 25)

·자아융합의 정도가 심하여 주위사람들의 감정이나 반응에 민 감하고 의존적임.·긴장, 불안, 스트레스 상황에 적응 못하며 타인에게 심한 정서 적 애착을 보임 ·관계체계에 불만족시 신체적 정신적인 질병이나 사회적 역기 능을 유발함

낮은 자아분화수준(25 - 50)

·자기 존중감이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있음 - 자기신념과 의견은 있으나 긴장과 스트레스상황에서 영향을 받아 쉽게 변함 ·생활은 관계지향적으로 사랑과 인정받기위해 대부분의 에너 지를 사용 ·관계체계가 균형을 상실했을 때 증상과 문제가 발생함. (우울증, 성격장애, 약물중독, 알콜중독, 정서적 문제 등)

보통의 자아분화 수준(50 - 75)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문제가 있어도 극복할 수 있음 ·지적체계와 정서적 체계사이가 충분히 분화 되 있어 불안이 증가해도 자율적으로 자기를 지키고 기능함 ·생활에 질서가 있고 폭넓은 사회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함

높은 자아분화수준(75 - 100)

·현실적으로 드물지만 완전한 성숙함을 나타내고 높은 수준의 독립성을 가지고 기능함 ·타인들과 친근한 정서적 관계를 맺으면서도 확고한 자아정체 감 유지, 타인의 신념과 가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삼.

분화수준이 낮을수록 정서적 융합이 강하게 나타나며 의존성이 높고 불안이 높게 나타나게 된다. 분화를 한다는 것은 사고, 감정의 분리와 나와 타인과의 분리를 의미한다고 할수있겠다.


2. 삼각관계

가족 또는 감정체계의 가장 작은 단위로서 두 사람의 관계체계에서 발생된 스트레스를 해결하여 균형을 유지하려는 시도의 하나이다. 따라서 분화가 낮을수록, 관계가 중요할수록 삼각관계가 빈번히 나타나고 그 형태가 견고하다.

한 예로 남편과 부인의 갈등이 있을 때 부인은 남편에게 화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남편과의 직면이 두렵거나, 직면 뒤의 부작용이 더 크다고 생각하여 남편과의 직접적 갈등을 회피하고) 남편을 닮았다고 생각하는 아들을 야단치게 된다. 이렇게 아들을 대신 야단침으로써 부인은 남편에게 가지고 있는 화를 간접적으로 해소하여 부부 관계는 안정을 유지 할 수 있게된다. 반면 아들은 자신이 엄마를 화나게 만들었다고 여겨 부모들에게 죄송함을 느끼고 완벽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는 등의 감정상태를 가지게 된다. 결국 삼각관계로 부부는 안정을 찾지만 아들은 희생양이 되며 이 삼각관계에 참여한 세 사람 모두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객관적으로 볼 수없게된다.

삼각관계는 사람이 아닌 대상과의 관계에서도 형성된다. 부부 갈등시 남편은 일에 몰두함으로서 부인을 회피할 구실을 찾고 동시에 일에 빠짐으로서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을 달랠 수 있다. 남편과 부인 그리고 일의 삼각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부인은 남편이 일에 몰두하는 것에 더욱 불만을 갖게 되고 남편은 불만을 토로하는 부인을 피해 더욱 일에 몰두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게 된다. 이 경우 두 사람은 갈등의 결과로 나타난 일(앞에서 남편대신 야단을 맞는 아들이나 일)을 갈등의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갈등해결의 시도가 별로 효과를 발휘할 수 없게되다(이 경우 부부 갈등이 원인이기 때문에 야단 맞는 아들이나 남편의 일을 원인으로 보아 상담을 하면 증상이 조금 완화되는 듯 하다가 곧 다른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삼각관계의 형성은 일시적으로 불안, 긴장, 스트레스가 감소되는 효과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족의 정서체계가 더욱 혼란 되고 문제가 왜곡되어 나타나 효과적인 대처를 어렵게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자신과 타인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게 되고 지적체계와 정서적체계가 융합되기 때문에 기타의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불안을 원가족 체계에서와 똑같이 제 삼자와의 의존적 관계(융합)를 통해서만 극복하려하기 때문에 불행한 삼각관계는 일생을 통해 지속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습득된 삼각관계는 유동적인 성격을 가져 가족들의 상황이나 주제에 따라 다른 방식, 다른 사람으로 바뀌며 나타난다.


3. 핵가족 정서체계

한 가족이 가지고 있는 감정적 연결의 강도와 질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가족 구성원들은 감정적(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서로에게 아주 강하게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반대로 약하게 연결되어있기도 하다. 가족들의 분화수준이 높을수록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편하고 힘든 감정을 혼자서 잘 처리할 수 있거나 가족이 돕더라도 타 구성원이 그 감정에 빨려들어가지 않으며 도울수 있어 어느 한 구성원의 감정에 밀착 되거나 융합되지 않는다. 반면 가족들의 분화 수준이 낮아 가족이 한 덩어리의 정서 체계를 갖고 있으면 구성원 한 사람의 감정은 모든 타 구성원의 감정을 지배하게된다(그런 감정에 끼지 못해 죄의식을 갖는 것 또한 감정적 영향을 받는 것이다).

이런 가족은 가족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독립된 감정과 행동을 하기 어렵게 된다. 개개인의 분화 수준이 낮을수록 가족들에게서 발생되는 불안과 불편한 감정을 다루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가족은 감정적으로 더욱 강하게 연결되어 한 덩어리고 기능하고자 하는 경향을 갖게된다. 또 가족은 그 가족 특유의 정서적 색깔을 갖게 되는데(예, 학력, 돈, 권위 등 특별히 중요시 여기는 분위기) 이는 한 개인의 일생에 영향을 미치며 새롭게 이루는 핵 가족의 자녀들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4. 가족투사

가족들간에 감정적 갈등을 다루기 어렵거나 인지의 힘을 통해서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 가족구성원이 자신의 불안을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 전가하는 과정을 말한다. 즉 부모의 불안이 자녀에게 이전되는 것이다. 투사과정의 강도는 불안의 정도와 정비례하며(부모의 불안이 높으면 저녀에게 많이 투사함) 흔히 특정 자녀에게 집중되어 나타나는 경향이있다.

투사의 대상이 되는 자녀는 출생순위, 성별, 부모의 정서 상태, 부모와의 감정적 친밀도 등에 의해 선택된다. 출생순위의 측면에서 장남, 장녀가 투사의 대상이 되기 쉬우며 투사의 대상이 되는 자녀는 분화의 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부모와 융합되어 성장하게 된다. 이때 투사의 대상이 된 자녀는 부모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진정한 자신이 되기 보다는 가짜 자신을 많이 가진 자아를 형성하여 분화 정도가 낮은 성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1) 투사 과정의 단계

느낌/ 사고
- 부모는 무언가 불안을 느끼고 그것은 자녀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검사/ 딱지 붙이기
- 부모는 자신의 불안에 딱 들어맞는 자녀의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고자 하며, 찾아낸 후 딱지를 붙이게된다.

바꾸려고 한다.
- 부모는 잘못된 자녀를 바꾸어 보려고함; 자녀는 자신을 잘못된 부분이 있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겨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5. 다세대 전수과정

한 사람의 자아분화 정도는 현재 속해있는 세대에서만 영향 받은 것이 아니고, 과거의 여러 세대를 거치며 행해졌던 가족투사 과정을 통해 형성되며, 핵가족에서 가족투사의 주요 대상은 한 자녀이다.

Bowen은 만일 계속적인 세대를 통하여 가장 큰 손상을 받은 자녀를 추적한다면 분화수준이 점점 낮아지는 개인들의 계보를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런 과정은 가장 낮은 사회계층을 이루는 사람들, 즉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설명하기도 한다


6. 형제순위

이 개념은 W. Toman이 1961년에 발표한 정상적인 형제순위에 따른 성격적 특성에 관한 연구를 Bowen이 가족 체계에 적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특정한 자녀가 어떻게 가족 투사과정에서 대상으로 선택되느냐 하는 것을 이해할 새로운 차원을 제공하고, 개인이 결혼생활에 어떻게 적응하며, 가족치료를 할 경우 어떻게 반응 할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는 좋은 자료로 삼을 수 있다.


7. 정서적 단절

사람들이 해결하지 못한 정서적 애착(융합)을 처리하는 한 방법으로 정서적 단절을 설명한다. 과거 혹은 주변의 중요한 사람과의 정서적 단절은 자기 자신이 타인과 융합되어 소멸될 것이라는 불안을 종식시키기 위해 선택하는 한 방법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결혼생활과 자녀성장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정서적 단절을 꾀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융합을 필요로하는 의존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원가족과 단절을 한 반면, 자신의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더욱 의존하려는 경향을 나타내게 되고 자신이 만든 핵가족의 성원들에게 한정된 자원만을 제공하는 불이익을 주게 된다는 면에서 바람직 하지 못한 방법이다.

보모와 정서적 단절을 하는 사람은 부모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고 부모로부터 독립하기위해 멀리 달아난다. 이런 사람들은 충동적으로 결혼할 수 있고, 결혼에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멀리 달아나는 경향이 있다. 재혼을 하여도 마찬가지이며, 일시적 동거생활을 하기쉽고, 심해지면 방랑자, 부랑자, 은둔자가 되거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혼자 살기도 한다.

정서적 단절과 관련된 특징들을 Hall(1991)은 ?불안이 높은 경우에는 잦은 감정단절이 생긴다
단절이 가족 내에서 다루어지고 가족들간에 감정 교류가 추진되는 경우에 분화수준이 올라간다.
부모와 조부모 사이에 감정단절이 있는 경우에 부모들은 자녀들과 감정단절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 한 관계에서 감정 단절의 강도가 강하면 그 만큼 관계에서 융합이나 미분화의 강도가 강해진다.

8. 사회적 퇴행


가족에 대한 기본 이론을 보다 큰 사회의 정서적 기능영역으로 확장한 것이다. 가족과 마찬가지로 사회도 비분화와 분화의 두 가지 상반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즉 사회도 불안이 증가하면( 인구팽창과 천연자원의 고갈, 소외감 등) 동질화와 분화의 균형이 깨어지면서 전체에 대한 관심은 상실되고 하위집단끼리 융합되기 시작하여 정국의 불안, 비행, 폭력, 불신 등이 심화된다고 보았다.


4. 치료적 개입


1. 가족치료 목표
내담자의 불안을 감소시키고 정서적 분화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따라서 불안의 원인이 되는 융합을 찾기위해 그 융합이 일어나는 방법인 삼각관계와 정서적 단절을 우선적으로 찾는다. 증상에 초점을 두기보다 증상과 관계되어 나타나는 인간관계의 패턴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정서를 찾고자 한다.

2. 분화를 증진시키는 방법

1) 가족도표를 그려 가족정서와 가족체계를 이해하도록 한다.
전체 가족 내에서의 부모를 이해하고 나와 부모와의 관계를 이해한 후 기타 가족에 대해서도 체계 내에서 반응하는 사람으로서 이해한다. 핵가족을 이룬 부부가 만난 시점에서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는 시간까지, 남편과 부인의 형제 출생 순위, 원가족에서 형제의 정서적 과정, 부모의 과거와 현재의 기능 등을 평가하며 부모의 건강, 교육, 직업, 형제와 관련된 영역 등을 가족도표를 그려가며 정보를 수집하고 사정하며 그것을 기초로 평가해 나간다.

결국은 사정과 평가를 해 나가면서 치료도 동시에 행해지게 된다. 가족도표를 통해 가족 안에서 생기고 있는 삼각관계, 가족 투사의 대상, 형제 순위의 영향 등을 살필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서 내담자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련의 정서와 신념이 단편적이며 주관적인 관점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고 객관적 시각으로 일련의 사실을 다시 평가함으로서 감정반사행동으로 나타나는 자신의 불안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2) 개인적으로 관계를 갖도록한다.
행사등 특별한 상황에서 자주 집으로 가서(긴장 하에서는 불안이 증가하여 평소 드러나지 않던 삼각관계가 드러나므로) 친밀하지 않은 사람과 개인적 시간을 갖고 얘기하도록 노력한다. 처음에는 가족들의 저항이 있을 것이나(대결, 회피 등의 방법으로-이것 자체가 강한 정서를 갖고 융합되는 것임)서서히 반복적으로 시도한다. 특히 원가족과의 문제가 있을 때는 혼자 가도록 한다. 책가족과 함께 가면 집단과 집단의 만남이 되어 (핵가족이 일종의 짐이 될 수 있으므로) 중립적 감정을 유지하기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3) 한 사람의 인격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대부분 어머니이다. 때문에 어머니의 원가족에 대해 더 많이 알도록하여 어머님에 대한 객관적이고 다각적인 이해를 높이도록 노력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어머님에게 하는 감정반사행동을 제어하기 수월해 진다.

4) 탈 삼각관계를 이루도록한다.
특히 어머니 아버지 자녀의 삼각관계를 깨도록 해야한다. 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어머니와 거리를 가지도록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5) 자신이 믿고있는 신념을 점검해 본다.
자신이 갖고 있는 신념이 어디서부터 유래된 것인가, 그 신념은 지금도 유용하고 효과적인 것인가, 실천 가능하고 현실적인 것인가 등을 점검해보고 필요하다면 버리거나 새로운 신념을 더 추가하도록 한다. 일단 점검이 끝났으면 신념대로 실천하도록 노력하라.

6) 중용적 태도를 견지하도록한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며 "나"의 신념과 감정을 견지 하도록 노력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공격하지 말고 나를 방어하지 않고 위축되지 말아야 한다.
즉,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감정반사행동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5. 정리


Bowen 이론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은 "비 분리된 가족자아 집합체"와 "삼각관계"이다.
Bowen의 전형적인 가족치료 방법은 두 성인과 치료자로 구성된 체계를 가지고 시작한다. 성숙하고 분화가 잘된 한 배우자를 선정하고 일정기간 그 사람과 치료를 진행하는 것으로 상담자는 내담자가 여지껏과는 다른 관점으로 갈등을 생각하도록 질문한다. 즉 문제가 있는 관계에서 어떻게 자신의 역할을 변화시킬 것인지를 발견하도록 하는 질문을 한다. 오랫동안 지속된 정서적 삼각관계를 깨뜨릴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가족내에 있는 가족 성원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선택된 가족 성원이 변화하면 다른 성원들도 똑같이 변화될 수 밖에 없다. 새로운 평형상태에 도달하기 전에 혼돈과 어려움을 경험 하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각 성원들은 더 높은 수준의 자기분화를 성취하게 된다.

한국의 가족은 핵가족의 구조속에서 살면서도 실제적인 의식구조는 확대가족에 소속되어있어 일반적으로 자녀들이 결혼한 후에도 부모와 정서적으로 강한 유대관계를 오랫동안 잘 유지하는 것을 가치롭게 여기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한국 가족에서는 어머니가 주로 자녀에 대한 가정교육과 생활훈련을 하며 일상생활을 돌보고 있어 자녀와 강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가족관계, 역할분담, 정서적 감정표현, 세력의 배분, 남자 중심의 윤리관과 도덕관 등을 기초로 할 때 여자인 어머니가 소외되고 무력하며 존중받지 못하는 위치에서 위로받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자녀들에 대한 애착과 보람이었다.

따라서 한국 문화에서는 자녀를 삼각관계로 끌어들이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밖에 없었으며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비 분화된 가족자아 집합체"가 당연한 것이며 가치로운 것으로 받아 들여 졌었기에 Bowen의 개념을 중심으로 한국가족을 평가 한다면 대부분의 가족이 역기능적 가족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생길 것이다.

본인의 경험에 따르면 대부분의 가족들은 어머님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가족정서에 그런대로 맞추어 잘 성장했다고 여기지만 자신의 핵가족을 이루고 난후에는 여러 가지로 갈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여겨진다. 따라서 급변하는 현실 사회에서 한국적인 것만을 고집하는 것은 문제의 뿌리를 알아 제거하는 것을 어렵게 하기 때문에 한국의 전반적 성향을 알아 특정 가족을 비난해서도 안 되겠지만 동시에 바람직한 방향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가족관계 치유

제 1 장 가족관계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셨을까? 그렇지 않다고 보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전지 전능하심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요, 둘째는 다른 모든 동물들을 암수 한 쌍씩 지으신 하나님이 오직 사람만 짝없이 지으시진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는 피조물이기에 아담으로 하여금 자신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끼고 따라서 돕는 배필을 지어주셨을 때 그 소중함과 감사함을 알며 서로 사랑하게 하시기 위함이셨을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관계를 형성하고 산다. 물론 다른 동물들도 서로 관계를 맺고 살지만 그들보다 더 깊고 차원 높은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고 살아가도록 하셨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인간관계의 출발점이고 가장 기본이 되는 관계는 역시 가족관계이다. 따라서 가족관계는 다른 모든 인간관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의 제도가운데 맨 처음 만드신 것은 가정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공생애의 첫 발자국을 가정이 시작되는 가나의 혼인잔치로 옮기셨다는 점은 우리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족관계가 화목할 때는 심리적 안정을 이루어 매사에 자신을 가지고 적극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가정은 인생의 출발점이요 모든 싸움을 싸우고 마지막에 돌아와 쉴 수 있는 안식처이다. 까닭에 화목한 가정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한 사람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나 직장에서나 일을 하거나 즐거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을 것이며 그 결과는 자명한 일이라 할 것이다.
또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든든한 후원자들이 집에 있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자신 있게 일을 추진해 나갈 수 있다. 특히 밖에서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사랑하는 아내가 정성껏 저녁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며 귀여운 아이들이 아빠를 반기며 뛰어나온다면 하루의 피곤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만다. 그러므로 가정의 화목은 곧 심리적 사회적 안정과 직결된다.

1. 화목하지 못한 가족관계가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

첫째, 소극적인 사람은 가족들과 만나기를 기피하는 등 우울증의 증세가 나타난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보이지 않고 어떤 문제건 기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사람들과 접촉하거나 대화하는 것을 꺼리며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매사에 용기를 잃고 부딪히는 환경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특히 지금은 옛날과는 달리 온 가족이 방을 각각 따로 쓰고 있고 식사시간도 서로 달라 웬만큼 화목한 가정이 아니면 함께 모여 오순도순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다. 이럴 경우 가정이 병들면 어른은 어른대로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집에 들어오기를 싫어하고 일단 집에 돌아오면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꼭 닫아버린다. 그리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컴퓨터 게임과 같은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게 된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한 지붕에 사는 가족이지만 내막을 보면 남과 같이 ‘나 홀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연세대 여성연구소 손승영(孫承瑛) 전문연구원은 “우리 사회는 가족 구성원들이 가정에서 욕구를 충족시키기보다 사회 안에서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려 한다. 예컨대 수험생들은 집보다 또래집단이 모이는 독서실을 선호했고, 남편은 집에서 술을 마시기 보다 술집에서 먹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등이다” 라고 하였다(중앙일보 1996. 11. 11 기획기사 참조).

둘째, 파괴적인 사람은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어떤 부부에게 의견 차이가 생겼다. 처음엔 조용조용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다가 언쟁으로 번졌고, 종래에는 격해져서 남편이 아내를 때리려 하자 그 아내는 욕질을 하면서 문을 박차고 도망쳤다. 화가 머리 끝까지 솟은 남편이 뒤따라 좇아가다가 부인이 보이지 않자 문 밖에서 놀라 눈이 둥그래진 아들에게 “야 이놈아, 그년이 어디로 갔니?”하고 묻자 겁에 질린 아들은 “예! 그년이 저쪽으로 도망쳤어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물론 얼떨결에 오고간 순간적이고도 매우 짤막한 대화(?)이긴 하지만 화목하고 단란해야 할 가정에서의 폭언과 폭력은 이미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 여성의 전화’가 지난 1995년 한해 동안 받은 15,300건의 전화상담 중 구타와 관련된 상담이 3,200건(21.1%)이나 되었는데(동아일보 1996. 5. 13) 1996년에도 총 23,753건 중 5,808건(24.5%)으로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이다(1997. 5 22 중앙일보). 따라서 여성계에서는 ‘가정폭력 방지법’ 제정을 위한 노력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처럼 폭력과 폭언은 자녀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미국 같은 나라는 ‘아동학대 보호법’이 잘 발달되어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내 자식 내가 때리는데 누가 말리느냐’는 유교적 사고방식이 강하기 때문에 가정에서의 자녀 학대는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셋째, 반항적인 사람은 가정을 이탈하게 된다
경찰청은 지난 1995년에 전국 5백97개 학원가에서 6만 7천여 명의 학원폭력배를 적발, 이 가운데 1만 8천여 명을 구속하고, 약 5만 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발표했다. 학생폭력서클도 1천여 개에 이르고, 이들에게 돈을 털리거나 폭행 등을 당한 피해 학생이 전학생의 7.2%인 61만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1996. 2. 15 중앙일보).


이 학생들은 대부분 원만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란 학생들이며, 이런 가정에 불만을 품고 집을 뛰쳐나온 가출 청소년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학생들은 대부분 또래집단을 형성하여 폭력서클을 만들고 용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학생들의 돈을 빼앗거나 남의 집 담을 넘어 훔치기도 하기 때문에 사회문제로 비화하게 된다. 요즘에 중앙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소설 ‘브이(V)세대’는 이런 가출 청소년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가출은 비단 청소년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가정의 불화를 참지 못하고 가출을 하는 주부들도 적지 않다. 지난 1996년 10월 결혼하여 시부모를 모시고 새살림을 시작한 동소문동의 서모씨(필자의 교회 교인)는 시부모와의 갈등, 종교적 갈등(가족은 모두 기독교인이며 본인은 남자와 교제를 시작하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다)을 이기지 못하고 친정으로 발길을 옮기기를 수차례, 6개월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에는 가출을 해 버리고 말았다.

넷째, 극단적인 사람은 이혼을 하거나 심지어 자살이나 살인을 하는 등 자포자기하게 된다.
통계청이 세계 가정의 날(1993. 5. 15)을 맞아 발표한 ‘가정현황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20년간 이혼이 4배 가까이 증가하면서 이혼부부들의 평균 동거기간이 결국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짧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혼자 사는 가구가 15년간 3.6배나 증가, 1백만 가구를 넘어서고 소년소녀 가장도 지난해 7천3백22명으로 8년전보다 50%나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992년의 경우 5만 7천쌍이 이혼, 72년(1만2천쌍)보다 3.75배 증가했다.

또 우리 나라 이혼부부의 평균 동거기간은 8.4년으로 미국(9.1), 일본(10.8년), 프랑스(13.4년) 브라질(16.9년)등보다 훨씬 짧은 것으로 나타나 쉽게 만나 쉽게 헤어지는 ‘냄비사랑’이 만연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가정의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쉽게 파탄으로 몰고 가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옛날에는 시집살이를 견디지 못하고 친정으로 돌아오면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다시 시댁으로 돌려보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친정부모들이 “그렇게 속썩이고 살 필요가 있느냐? 그냥 집으로 들어와 버려” 하고 오히려 이혼을 부추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보다 더 심한 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자살을 하거나 상대방을 살해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빈발하다는 것이다.


지난 1996년 4월 자신의 딸(丁美淑, 48세)이 동거중인 남자(吳원종, 50세)에게 매맞고 사는 기구한 삶을 보다 못해 살해 한 노모(李相姬, 72세)가 있어 세인의 관심을 끈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딸은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수를 하였으나 17일만에 어머니가 진범으로 밝혀져 쇠고랑을 차야 했다.
‘내가 진범’이라며 서로 살인혐의를 뒤집어쓰려 했던 ‘비운의 모녀사건’은 새삼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였다. 짐승 같은 사위의 폭력 앞에서 딸을 보호해야 한다는 본능적인 모성은 살인을 택한 것이다. 이 사건을 놓고 서울대 이용식(李用植)교수 등 다수의 국내 형법학자들은 李할머니를 벌할 수 없다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연약한 부녀가 남편의 거듭되는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살인을 택할 수밖에 없을 때 정당방위를 인정하던가, 계속되는 위난(危難)앞에 생명․신체에 대한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동은 다소 과잉수단을 선택하더라도 책임 지울 수 없다는 소위 면책적 긴급피난(免責的 緊急避難)이론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런 법논리에 더해 李할머니가 72세의 고령이란 점까지 참작한다면 李할머니는 불구속상태에서 재판 받도록 하는 것이 일반정서에 합치된다는 생각이었다(1996. 5. 10 중앙일보). 결국 재판부는 李여인을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여 풀어주었다.
또한 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동안에도 19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지금까지 18년동안 매질을 일삼아온 남편(崔東富․41․노동)을 견디다 못한 아내가 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윤선화(尹善花․37․서울 관악구 신림동)씨는 지난 21일 새벽(1997.5.21) 술에 취해 돌아온 남편이 항상 그랬듯이 신을 신은 채로 방에 들어와 발로 차고 주먹을 휘두르다 잠이든 남편의 가슴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것이다(1997. 5. 22. 중앙일보). 좀 오래된 이야기지만 지난 1989년 7월 17일 오후6시쯤 경북 성주군 선남면 성원리 정연택씨(34) 집 안방에서 정씨의 장녀 미희양(당시 성주중앙초등학교 6년)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싸움이 잦은 것을 비관 “엄마는 제발 아빠와 싸우지마. 아빠는 술 먹지 마”라는 메모를 남기고 음독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2. 화목하지 못한 가족관계가 신앙적으로 미치는 영향

첫째, 믿음이 약한 사람 특히 남편들은 신앙을 등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특별한 소수의 가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가정들이 남편들은 아내에게 이끌려 교회에 다니고 있다. 이런 경우 대개 “나 오늘 교회에 안가!” 하는 말은 아내를 위협하는 좋은 무기가 된다. 남편이 이렇게 나오면 아내들은 대부분 사정하고 달래서 데려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도가 지나치다보면 여자들도 “교회는 나를 위해서 가는가, 당신 맘대로 하라”고 나온다. 결국 가정 불화가 남편으로 하여금 교회를 멀리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1993년 12월 고려대학교 인촐기념관에서 열린 ‘한국사회학대회’에서 광주대 노치준 교수(포도원교회 집사)는 ‘종교의 차이로 인한 가족간의 갈등 연구’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해 관심을 모았는데 그는 종교갈등의 결과는 관계단절, 소원한 관계, 계속 갈등, 개종 또는 신앙생활 포기, 평화적 공존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이지만 부부간의 종교적 갈등의 경우 33%는 개종을 하거나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경향을 보이며, 고부간에는 개종이나 포기가 34%에 이른다고 했다. 그런데 특이한 사실은 이 경우 시부모가 며느리의 신앙을 따라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하는데 그는 그 이유를 “젊은 며느리들은 종교적 헌신도가 강한 기독교인이 많고, 시부모의 경우 종교적 헌신도가 상대적으로 약한 비기독교인이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둘째, 반면에 믿음이 좋은 사람 특히 여인들은 광신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박모 집사(40세)는 고등학교 때 만나 사귀다가 결혼에 성공한 여인이다. 그러나 결혼 후 사소한 일로 말다툼이 잦아지더니 10여년 만에 남편은 아이 둘과 아내를 버리고 이혼을 하여 다른 여자와 살고 있다. 홧김에 찍어준 도장이 화근이 되어 재산과 남편을 잃은 이 여인은 아이 둘을 친정에 맡겨두고 병원에 간병인으로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 포천에 아파트를 장만하고 여름 방학 때는 친정에 있는 두 아이들을 데려올 꿈에 부풀어 있다. 이 분의 경우는 오히려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들과 헤어져 외롭게 살면서 더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 신앙생활에도 열심이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많은 신자들은 처음에는 더 신앙에 열심을 내지만 이것이 현실도피성 광신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목사의 지도를 받으며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기보다는 기도원을 전전긍긍하면서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려는 경우가 있다. 아니면 오직 교회, 오직 신앙밖에 모르는 사람, 그래서 대인관계나 사회성이 결여된 비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 쉽다.

셋째, 자녀들의 경우는 이런 부모들의 신앙생활에 거부감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광명시에 있는 모 장로교회 목사의 아들은 학생시절에는 아버지가 섬기는 교회에서 학생회장을 지내는 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군에 다녀온 후부터는 교회를 자주 빠지더니 이제는 아예 교회에 발걸음을 돌리지 않고 있다. 아버지가 주일 낮예배를 인도하고 집에 돌아와 보면 다 큰아들은 집에 누워 뒹굴며 TV나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가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과 가정에서의 일상생활이 상반되는 것을 느낀 아들이 아버지에게 실망과 회의를 느낀 나머지 반항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이 청년은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면서 다만 아버지에게 반항을 하는 것 뿐, 어느 교회든 다시 나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심한 경우는 자녀들이 종교적 탈선을 하여 이단종파에 빠져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제 2 장
관계를 치유하는 방법과 그 결과

가족관계를 치유하는 방법은 역시 병원에서 의사들이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에서 그 원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의사들은 환자가 찾아오면 일단 철저한 진찰을 하게 된다. 특히 대형 종합병원에서는 여러 가지 진단 장비나 기술이 있어 오랜 시간 철저한 검진을 실시하여 병명을 분명히 밝혀낸 후 치료를 하기 시작한다. 급한 환자가 있다고 해서 눈으로 대충 훑어보고 경험과 상식에 의해 치료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런 의사가 있다면 언젠가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될 것이다
이 부분은 데이빗 씨맨즈(David A. Seamands) 박사의 저서 ‘상한 감정의 치유(Healing for Damaged Emotions)’에서 자료를 얻었음을 밝힌다.

첫째, 바른 진단이 필요하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탈선 학생을 상담해 보면 가출하고 성격이 비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감추어진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서 때로는 그 사람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 할 때도 있다.
데이빗 씨맨즈 박사는 그의 저서 ‘상한 감정의 치유’에서 인생의 나이테가 있다고 하였다. 즉 큰 나무를 잘라 나이테를 보면 가물었을 때, 비가 많이 왔을 때, 혹은 번개를 맞았을 때 등 해마다 나무의 성장 기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 성장할 때의 갖가지 체험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의 나이테 속에 기록이 남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본인이 알고 있는 어느 부부는 결혼 후 신혼여행에서 여자가 잠자리를 완강히 거부해 결혼이 파탄에 이를 뻔 한 경우가 있었다. 그녀는 어릴 때 자기에게 친절히 대해주던 남자에게서 성추행을 당할 뻔 한 경험이 남아있어 무의식 중에 남편까지도 거부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원인을 하나 하나 지적해 주는 의사들과는 달리 본인 스스로 원인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그래서 문제를 진단하는 ‘부부 점검표’라든지 ‘좋은 부모 착한 자녀가 되기 위한 점검표’ 등을 만들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진단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바른 처방이 필요하다.
일단 본인 스스로 문제의 원인을 바르게 진단하였다면 절반의 치유는 이루어 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자는 사람이 아니고 성령이시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하였다(롬 8:26). 그러나 이렇게 성령께서 치유하시는 과정에서 우리가 해야 할 역할도 있다.

 

①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문제의 책임을 전적으로 상대방에게 돌리려 한다. 그러나 교통사고의 대부분이 쌍방과실로 처리되는 것처럼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의 대부분 역시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②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23 이하에서 평생을 벌어도 갚을 길이 없는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신하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그는 이 엄청난 빚을 탕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00데나리온의 빚을 갚지 않는다고 친구를 옥에 가두었다. 이 사실을 안 임금은 다시 이 신하를 잡아 옥에 가두며 일만 달란트의 빚을 다 갚기 전에는 나올 수 없다고 하셨다. 이 말씀의 핵심은 무엇인가? “너희가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 하셨다. 사실 내가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으면 그 일로 인해 우리 자신은 더 큰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③우리의 문제를 치료하는 양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른 방법으로 치유를 시도한다면 그것은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그때마다 적절한 말씀을 주셔서 문제를 치유하게 하신다. 이런 극적인 경험을 한 시편 기자는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 107:20)

셋째, 서로의 신뢰가 필요하다.
질병을 치료는 환자와 의사가 서로 신뢰하는 가운데서만 가능하다. 만약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수술을 하겠다고 할 때 선뜻 수술실에 몸을 맡길 수 있겠는가? 환자가 의사를 믿고 처방에 따라 약을 먹고 의사의 지시를 따라주어야 속히 치료가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요구를 한다 해도 믿고 따라주는 용기가 있을 때 이미 문제는 절반 이상 치료된 것이다. 또한 신뢰란 가족 서로의 신뢰도 필수적이다. 서로 마음 문을 열고 마음속에 있는 문제들을 꺼내 놓고 진솔하게 서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가정환경도 조성되어야 한다.

제 3 장
관계 갈등을 겪고 있는 성도들의 목회지도

1900년대 목회는 심방중심의 목회였고, 1950년대 이후 설교가 목회의 중심이었다가 1970년대 이후 제자훈련과 같은 양육 프로그램이 목회의 큰 변수를 가져왔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흘러갈수록 더욱 다양화된 목회 현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시대의 변화와 함께 많은 가정들이 흔들리고 있다.


첫째, 남녀에게 동등한 학문의 기회가 주어지고 여성의 지위가 신장됨에 따라 가부장(家父長)적 가정의 기본 질서가 흔들리면서 위협을 받고 있다. 따라서 아버지의 권위가 약해져가면서 가정에 어른이 없어졌다. 이것이 곧 독일의 정신 분석학자 미처를리히가 말하는 ‘아버지 없는 사회’다. 칼럼니스트 김성우 씨는 그가 쓴 글에 아버지의 권위가 없는 사회를 걱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권위가 없는 사회는 어른의 기침 소리가 없는 사회다. 저마다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떠들어도 일갈(一喝)할 목청이 없고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날뛰어도 야단칠 회초리가 없다. 아래위가 없이 모두 동격이요, 질서도 규율도 없이 난장(亂場)판이다.”(송길원 목사 설교집 ‘그래도 아버지 노릇은 하고 살아야죠’에서 재인용) 안타까운 것은 남자들이 이런 시대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여성들의 취업이 쉽고 수입이 늘게 되자 이혼율이 점점 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고전 가운데 한(恨)을 주제로한 이야기들이 많은 것처럼 우리의 옛 여인들은 맺힌 한을 가슴에 품고 참으며 살아왔다. 여기에는 유교적 교훈의 영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여인들의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위자료가 없이는 이혼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속썩이는 남자와 사는 이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속편하고 차라리 돈을 모으고 산다.


셋째,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삶에 대한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다. 부모는 굶어도 자녀들은 유명 브랜드의 좋은 옷을 입힌다. 따라서 자녀세대는 부족함이 없는 세대이다.

넷째, 자녀들이 하나 혹은 둘밖에 없는 독자시대이다. 따라서 너무 위해주다 보니 버릇이 없다. 자기밖에 모른다. 자녀가 가정에서 가장 어른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특성은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기 고집이 세고 남을 생각해주거나 양보할 줄을 모른다. 한때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얻을 수 있고 … ”하는 ‘아! 대한민국’이란 노래가 ‘전두환 주제가’라는 풍자가 있었는데 이젠 오히려 아이들이 불러야 할 주제가가 아닐지 모르겠다.
다섯째, 부모가 모두 취업전선에서 뛰다보니 집은 있지만 가정은 없다. 서로 바쁘고 피곤하니 함께 만나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다. 또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미안하니 요구하지도 않은 용돈을 넉넉히 준다. 이것이 또 다른 탈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상과 같은 현대 가정의 문제점들을 누가 치유하며 누가 지도하겠는가? 학교나 학원은 이제 진학을 위한 한 과정에 불과하다. ‘선생은 있지만 스승은 없다’는 말을 한다. 여기에 교회의 책임과 역할이 있는 것이다. 교회는 관계갈등을 겪고 있는 성도들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최근에는 이런 필요성을 인식한 분들에 의해 많은 연구와 교육, 그리고 정보가 제공되고 있고 필요성을 인식한 교역자들이 관심을 갖고 대처하고 있어 앞날이 어둡지만은 않다.
여기서는 가정사역 전문가들이 소개하는 몇몇 사역이나 프로그램들 중에서 우리가 시도하고 있거나 실시 준비중인 것들은 중심으로 살펴보아야 하겠다.

1. 장기적인 프로그램

(1) 부부학교 또는 부부성경공부
가정에 문제가 발생한 후 대책을 강구하는 것도 중요한 사역이지만 장기적으로 문제의 소지를 덜어줄 수 있는 예방적 사역이 중요한데 그 중 하나가 부부성경공부이다.
기존의 성경공부들은 대개 시간의 여유가 있는 주부들이 그 대상이었고 그 내용도 성경공부나 제자훈련에 국한되었다. 그렇게 하다보니 아내의 신앙은 점점 진보하는 반면 남편의 신앙은 상대적으로 점점 후퇴하고 있었다.
직장에 출근하는 남편들과 시간을 함께 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으나 퇴근 후 늦은 시간, 새벽 이른 시간, 혹은 주일 오후시간 등을 이용하면 큰 문제가 없다.
다행히 이미 부부성경공부 교재가 이미 나와있고 또 준비중인 교재도 있는 것 같다
•박중식 ‘크리스챤 부부생활 웍샵’ 새중앙교회
•웨인 맥 ‘부부생활 성경공부’ 두란노서원
•송길원 ‘아름다운 가정 설계’ 한국문서선교회

(2) 가정사역 전문가들의 세미나
물론 담임목사나 교회 안의 부교역자들이 특강형식을 빌어 실시할 수 있으나 비전문가와 전문가는 그 사역과 효율에서 큰 차이가 난다. 특히 부부문제나 가정문제 등은 예민한 사안들이어서 사정을 훤히 아는 사람들이 가르치면 자칫 오해를 하거나 시험에 들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이 분야의 전문가들을 교회로 초청하거나 가정사역 전문기관들이 시행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시킨다. 특히 소규모 교회에서는 강사를 초청하여 세미나를 가지려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이런 때 전문기관의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것은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①대표적인 세미나 및 모임
•메타맨(Metaman) 세미나(좋은 남자 만들기 운동 본부)
•아버지 학교(두란노서원)
•행복한 가정 만들기 세미나(기독교 가정사역연구소)
•아버지 모임(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

 

②대표적인 가정사역 단체들
•기독교 가정사역 연구소(0344-905-1009) •크리스쳔 가정사역센터(3476-5561)
•두란노 가정사역 상담연구원(797-5942) •두란노 어리이 연구원(795-5496)
•한국 예수문화원(325-5770) •가정문화원(444-2212)
•가정선교교육원(646-1426) •신성회 상담정보실(042-221-1513)
•인천 가정문화원(032-431-0691) •기윤실 가족상담소(887-1690)

(3)부부 자원봉사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부부라면(사실 시간이 남는 사람은 없다 시간을 아껴쓰는 것이다) 부부가 함께 양로원이나 정신․지체부자유자 수용시설, 병원 등에서 자원봉사를 하면 일의 보람도 느낄 뿐 아니라 현재의 삶에 감사하는 마음도 항상 새롭게 발견할 수 있어 일석이조(一石二鳥)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지난해인가 SBS-TV의 ‘세상 속으로’ 시간에 방영된 ‘34년전의 약속’에 방영된 부부는 비록 우리와 종교가 다른 사람들(로마 가톨릭)이지만 자원봉사를 통해 보람을 찾는 좋은 프로그램이어서 녹화를 하여 예배 후에 액정화면으로 보여주고 교회 자료실에 비치해 두었다.

(4)가족찬양대회
많은 교회에서 실시하는 평범한 프로그램이지만 준비하는 한 달간은 온 가족이 하나되어 찬양을 하는 좋은 기회를 만들어 준다. 다만 해를 거듭할수록 식상해질 염려가 있으므로 많은 연구를 하고 또 이웃 교회와 정보를 교환하여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5)가정예배
현대 가정에서 가족간의 갈등이나 마찰의 근본적인 주요원인은 충분히 대화를 나누지 못한데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흔히 가장은 직장에서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밤늦게 귀가한다. 그리고 가족과 짧은 대화를 나누며 얼마간 TV를 보다가 잠자리에 든다. 아침이면 다시 출근하기에 바쁘고, 밤이 되면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생활이 계속된다. 열심히 뛰지 않으면 도태되는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다.
가정에 충실하다 보면 직장에서 뒤지고 직장에 충실하다 보면 가정에 소홀해지는 것이 현대 가정의 특징이자 맹점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한 가정 선교기관의 잠정적 통계에 의하면 기독교 가정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가정예배를 드리는 경우는 10%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지켜지는 가정에서도 극히 형식화 된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위한 가장 전통적인 프로그램은 역시 가정예배이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많은 가정들이 꾸준히 실시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옛날 농경사회와 다르게 학생은 학생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서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어 함께 모일 시간을 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매일 할 수 없다면 일주일에 두세 번이라도, 온 가족이 다 모이지 못해도 모인 식구끼리는 예배를 한다는 자세만 가지고 있으면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록펠러씨의 아버지는 신앙이 매우 두터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 가족은 대가족으로 약 30명쯤 되었다고 하는데 그 전 가족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려야 할텐데 도저히 전 가족이 모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록펠러의 아버지는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냈다. 그것은 1주일에 한 번씩 가족 예배날을 정하여 그 시간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꼭 참석하도록 하였다. 불참했을 때는 벌금을 내게 하여 될 수 있는 한 가족예배를 드리게 하였다고 한다. 우리가 참고할 만한 이야기라서 소개한다.

(6)가정에 대한 설교
지금까지 교회에서 가정에 대한 설교는 5월 첫째 주일과 둘째 주일에 들을 수 있는 것이 전부였다. 하나님께서 천국의 모형으로 세우신 두 기관이 가정과 교회라는 관점에서 볼 때 교회생활에 대한 설교에 비해 가정생활에 대한 설교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지난 1996년 11월 27일 온누리교회에서 가진 ‘제1회 가정학술대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송길원 목사께서 밝힌 대로 “가정과 교회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가정사역의 회복은 교회의 회복이고 가정이 새로워지면 교회도 새로워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교회에서 성도의 가정생활에 대한 설교의 비중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

(7)기타
임산부를 위한 태교 목회, 불신 배우자 초청 세미나, 결혼 준비학교, 가족신문 만들기 등은 건전한 신앙가정을 위한 좋은 프로그램들이다.

2. 문제가정을 위한 단기 프로그램

(1)사랑의 편지 쓰기
부부문제나 자녀문제, 혹은 고부문제까지도 근본적인 원인은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행복하려면 ‘먼저 귀를 열고 다음엔 입을 열고 또 하나 마음을 열라’고 했다. 서로 연애할 적에는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오순도순 대화도 잘 나누며 마음도 터놓고 함께 재미있게 지내다가 결혼 후 세월이 지나면 서로가 마음의 문을 닫게 되고, 바로 이때 불행이 찾아온다. 솔직하게 서로의 가슴을 여는 대화가 오늘을 복되게 하는 지름길인데 막상 대화를 하자니 쑥스럽고 쉽지 않다. 이때 가장 쉬운 방법이 사랑의 편지를 쓰도록 하는 것이다.
평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쓰게 되면 상대방에게 편지가 도착하기 전에 편지를 쓰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된다. 이 편지 쓰기는 비단 부부사이뿐 아니라 자녀 혹은 고부사이에도 잘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참고로 현재 시중에는 두란노서원에서 발행한 ‘사랑 가꾸기를 위한 편지 노우트’(송길원)가 예쁘게 꾸며져 나왔는데 앞뒤로 부부가 서로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2)상담실 운영
사랑의 편지 쓰기가 본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라면 상담실을 운영하는 것은 목회자나 상담전문가들이 문제해결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본인들이 직접 찾아와 상담실을 두드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 때는 이미 시기적으로 늦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교인들을 돌아보면서 상담이 필요한 사람은 찾아가는 것이 좋다.

또한 상담함을 설치하여 언제나 답답한 문제를 써넣게 한다거나 상담 전화를 개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기서 문제는 목사나 사모가 전문상담 교육을 받지 않으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요즘은 상담전문교육기관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서 1-2년 정도 교육을 받으면 상담에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목사보다는 사모가 이 일을 맡아주면 목회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상담이 빈번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프라이버시에 관계된 상담은 회피하려고 한다. 따라서 전문 상담기관과 연결시켜주는 방법도 좋은 방법이다. 이런 상담센터들은 대부분 무료로 운영되고 있어 이용하는데 경제적인 부담이 없어 권하기도 좋다.

참고로 서울지역에 있는 여성을 위한 상담센터는 다음과 같다.

①가정문제 상담
•며느리전화 577-5657 •사랑의전화 712-8600 •여성법률상담소 587-3233
•서울가정법률상담소 782-3427 •생명의전화 916-9191 •영양상담의전화 842-2466
•한국여의사회상담전화 716-1662 •여성노동상담센터 269-5763 •한국노인의전화 722-8007
•한국가족치료연구소 652-2862(부부성격차이,우울증,주부의 성격)•성폭력상담소 263-6471
②자녀교육 상담
•가정의전화 274-1626 •청소년대화의광장 730-2000
•서울YMCA청소년상담실 591-6060 •신나는전화 336-6233(초등학생자녀)
•아동걱정전화 543-1500 •따르릉선생님 325-6450(초등학생자녀)
③취업 상담
•여성자원금고 3662-4271 •YWCA일하는여성의집 951-0187(취업기술지도도 실시)
④이런 곳에서 해결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전화하여 상담할 곳이 한 곳 있다

 


 

이단의 포교를 통해 본 선교적 통찰  

 


생활속에 파고드는 이단ㆍ사이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1>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전문>
21세기를 맞아 사회가 발전하고 변화하는 만큼 이단과 사이비 운동 또한 본질은 변함이 없으면서도 그 활동의 반경이나 포교 전략은 엄청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최근 이단과의 싸움은 재래적 전투와 같은 양상도 있으면서 때로는 전선(戰線)이 사라져 버린 테러전과 같이 변해가고 있다. 경제 활동과 스포츠 문화 활동의 범위를 넘어 공교회의 모습을 가장하기도 하고 지역 개발 이슈에 먼저 뛰어들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이단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종교 문제와 관련해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고 올림픽과 같은 대규모 국제 행사를 앞두고 있는 중국 또한 인접 국가인 한국의 이단 문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지속적인 종교 포럼을 열고 있다. 지난 6월에 열린 포럼에 참석했던 심리학 선교학 윤리학 등 각계의 학자와 이단 연구가들의 원고를 특집으로 연재한다. <편집자주>




김 영 신 교수
서울장신대/ 실천신학


20세기 기독교 영성 분야의 최고 권위자라고 할 수 있는 헨리 나우웬 (Henri Nouwen)에게 있어서, 도시적 실존에서 영적 자유를 누리는 삶은 그의 필생의 주제였다. 그는 그 구체적인 훈련의 길로 다양한 방식의 고독한 영성의 길과 공동체 훈련을 제시하였다. 이는 영성에 대한 열망과 공동체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요청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현대사회에는 세속화의 현상과 종교적 열망이 혼재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풀러신학교 선교신학 교수 윌버트 쉥크 (Wilbert Shenk)는 세속화 (secularization)와 신성화 (sacralization)를 동전의 양면과 같은 '문화적 쌍둥이'라고까지 설명한다. 현대인들은 높은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성이 종종 기독교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교회는 세속화라는 과정을 겪으면서 교인 수의 감소와 교회의 영향력 축소를 가져왔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세속적인 현대 문화는 오히려 종교적 영성에 대한 열망을 잉태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속화와 신성화의 이 두 싸움에서 교회는 동일하게 큰 패배자가 되었다고 쉥크는 뼈아프게 진단한 바 있다.

미션 네트워크의 대표 이안 프라이스 (Ian Price)는 선교 사역의 중요한 네 가지 영역으로 소속감(Belonging), 신앙(Believing), 행동(Behaving), 존재(Becoming)를 지적한 바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초대 교회의 선교 사역만을 놓고 보더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신앙이 전파되기 위해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성령은 교회 공동체에 주어졌으며 소속감을 가진 초대 교회들의 실천적 행동을 통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된 존재로 역할을 다하며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거룩한 존재로 변화되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대한 신앙(Believing) 영역에 있어서 교회는 확고한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소속감(Belonging)을 위한 공동체 영성의 개발과 훈련, 행동(Behaving)을 위한 바른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윤리 회복, 그리고 존재(Becoming)를 위한 개인적 영성의 회복과 훈련은 선교적 갱신에 있어서 필요한 신앙적 요소라고 하겠다.

이단 사이비 종교는 일반적으로 사회적인 불안과 정치적인 혼란, 도덕적인 해이와 기존교회의 역할 상실 등과 같은 현상의 결과로 인해 사람들이 불안과 허무감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며 희망을 잃게 될 때 생성되고 번성한다. 또한 급격한 사회변화가 있을 때, 이단과 사이비 종교의 포교가 빈번해지는 예를 역사적으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세계적인 선교신학자 레슬리 뉴비긴 (Lesslie Newbigin)은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계몽주의 이전의 사회에서는 이단이라는 개념이 절대적인 기준에 반대하는 소수라는 의미를 가졌지만, 후기 계몽주의 사회 이후에 와서는 모든 사람이 이단적 입장에 설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도전받고 있다"고 까지 말했다.

뉴비긴의 이러한 경고는 개인적 영성과 공동체의 소속감에 대한 선교적인 대안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이단 사이비 종파는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소속감에 대한 관심과 필요를 포착하여 그들의 포교활동에 이를 이용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통일교 등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개인적 이단이나 샤만적인 이단과는 달리 공동체적인 이단(the communal cult)은 그들의 역할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가질 만한 요소들을 갖고 있고 또한 포교에 열정적이기 때문에 대중성을 띠게 된다. 극명한 한 예로, 본 교단 총회가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문선명 집단이 주최하는 '피스컵 축구대회'와 같은 행사가 바로 현대의 문화적 코드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 이단집단의 포교 활동이다. 신앙 (Believing) 이전에 소속감 (Belonging)에 대한 현대인들의 욕구와 심성을 자극하는 이단 나름대로의 효과적인 포교활동이라고 하겠다.

또한 이단 사이비 종파들은 대부분 신비적인 체험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따르는 무리들도 이러한 신비적 현상에 매료되거나 이를 염원하면서 광신적인 열기로 들떠 있는 상태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성적인 사고는 설득력을 상실하며 맹목적인 신앙으로 치닫게 된다. 이단 사이비 종파의 교주들이 과대망상증에 걸린 것처럼 추종자 자신들도 자신의 위치와 신분을 객관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단 사이비 신도들은 개인 스스로의 내적 구원의 확신에 따라 행동하게 되며 믿는 바에 대해 교만해지는 습성을 갖고 있다.

그 결과, 보편타당한 기존신앙의 원리를 무시하고 주관적인 인식에 근거한 몰입상태에 빠진다. 이단 사이비 종파들은 개인의 실존에서 건전한 영적 자유를 얻게 하려고 하기보다 불행하게도 종교적 열망을 비뚤어진 양태로 악용하고 있다.

뉴비긴이 그의 책 'Open Secret (열린 비밀)'에서 지적하듯이, 선교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교회의 진정한 갱신은 역사적으로 교회의 선교적 개입 (missionary engagement)과 함께 이루어졌다. 갱신과 선교는 기독교 정체성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교회는 세속화 (secularization)와 신성화 (sacralization)라는 두 가지 전투에서 모두 승리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의 이름으로 문화를 변혁하는 것은 교회에 주어진 가장 어려운 과제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교회의 선교적 사명은 변하지 않았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단 사이비 종파들은 그들의 포교활동에 있어서 왜곡되었지만 현대인들의 신성화 (sacralization) 현상에 대해 나름대로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단의 포교를 통해 보이는 문화적 현상에 대해 우리는 나름대로 명민하게 선교적인 통찰을 얻어야하겠다.

문화를 개혁하는 교회의 선교적 과제가 아무리 어려운 난제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교회는 역사적으로 지혜롭게 그 전통에 내재되어 있는 신앙적인 뿌리와 긍정적인 요소들을 잘 활용하여 왔다. 신앙의 공동체로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로 서고자하는 거룩함에 대한 열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믿고 있는 복음의 뿌리이다. 교회는 계속되는 선교적 갱신을 통해 모든 문화적인 도전을 극복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생활속에 파고드는 이단ㆍ사이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 2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유영권교수
연세대 연신원/목회상담학

한국의 개신교는 이 땅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되는 기간에 괄목할 만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거리에는 밤마다 십자가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지만 진정으로 이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그리고 질적으로 성장한 모습을 갖추고 각 교회 교인들이 건전한 믿음으로 사회를 올바르게 변혁시키는 역할을 담당해 왔는지 반성해본다.

얼마 전 사이비 종교 교주로부터 성폭행 당한 이야기를 하는 여성들의 괴로워하는 모습, 그리고 한 이단 교회 신도들의 폭력적인 모습들을 보면서 그들도 한 때는 기존교회에 출석하던 순진한 교인들이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과연 이들이 어떤 이유로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되었을까? 기존교회의 어떤 면들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니 어떤 불만을 가졌기 때문에 사이비 종교로 옮겨갔을까? 라는 질문을 가진다. 이 글을 통해 사이비종교에 빠지는 이들의 심리적 분석과 함께 이들을 돌보는 방안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기존교회에서 보여지는 폐쇄적인 성향으로 인해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기성교회 지도자들에게 심리적 상처를 받은 경우 사이비 이단에 빠지는 경향을 가진다. 어느 구역공동체에서는 자신의 수준에 맞는 사람들 끼리 모여 자신들만의 편안함 때문에 경제적 수준이 낮거나 자신들의 문화와 맞지 않는 새 구역원이 들어 올 경우 일부러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구역도 있다고 한다. 교회가 대형화 되어 한 교인이 어느 공동체에 소속되기가 힘든 구조 속에서 외로워하는 교인들에게 이단들은 교묘하게 접근하여 심리적 위안과 강력한 소속감을 제공해준다.

둘째로 명확하고 체계적인 교리교육의 부재를 지적하고 싶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성경에 관한 궁금한 점들에 대해 가려운 곳을 긁어 주듯이 명확하고 속 시원하게 해석해 주는 이단의 편협적인 성서해석에 넘어간다. 왜 어느 정도로 배운 지식층들도 그렇게 편협한 성서해석에 속아 넘어갈까? 기존 교회에서 체계적인 성경공부를 하지 않았던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이단과 사이비 종교의 성경공부를 보면 무척 체계적인 성경공부 조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단 성경공부의 특이한 점은 성경공부 자체가 단지 교육을 위한 것 뿐만 아니라 집단상담적 요소가 가미되어 성경공부 구성원들 간에 단단한 응집력을 가지게끔 운영된다는 것이다. 필자가 상담한 이단에 빠진 여신도는 자신이 빠진 곳이 이단인줄 알면서도 그 곳에서 느낀 사랑과 소속감 때문에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았다. 집단상담적 요소가 가미된 성경공부에서는 지금까지 토로하지 못하였던 자신들의 비밀스런 이야기도 나누는 신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이러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자신들만 문제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같은 인생의 짐을 지니고 있다는 문제의 보편성(universality)을 확인하고 안도감을 갖고 위로를 받는다.

셋째로 대인관계 갈등이나 개인적 상흔이 있는 경우 이단과 사이비에 빠지기 쉽다.

대학생들이 이단과 사이비종교에 많이 빠지는 데 자신의 진로에 대한 불안과 정체성에 대하여 혼란에 빠져 있을 경우 확실한 미래와 대답을 제공해 주는 이단과 사이비에 빠져 심리적 위안을 추구한다. 필자가 상담한 이단에 빠진 사례들을 보면 가족들 간에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 가족들로부터 받지 못하는 심리적 위안을 사이비 집단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가족관계가 서로 양육적이고 안아주는 환경이라면 사이비 집단에 빠졌어도 다시 나오는 데 수월한 경향을 보인다. 한편 개인적으로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거나 잊을 수 없을 만큼의 큰 상흔을 가지고 있을 경우 이러한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신비하고 마술적인 힘들에 의지하려고 한다. 무의식적으로 자신 안에 있는 개인적 상흔들을 치유해 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게 되어 사이비 교주들이 현실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비극적 현실을 뛰어넘어 이상형의 세계로 이끌고 나갈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투사 (Projection)한다.

넷째로 IMF 이후 경제적 상황의 위기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현재의 어려운 상황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심리 때문에 이단과 사이비에 빠져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현대인들이 지니고 있는 특성 중에 하나로 인내력의 부재와 충동성을 들 수 있는데 이로 인하여 한 개인의 위기나 스트레스를 이기는 능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이러한 인내력의 부족은 자신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이단과 사이비집단에 빠지게 만들어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깊게 고민하며 자신이 처한 스트레스 상황을 이겨나가는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충동적으로 우선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극을 제공하는 곳을 찾게 된다.

위와 같은 사이비 집단에 빠지게되는 요인들에 대하여 교회에서 제공할 수 있는 대처방안을 몇 가지 제안하고자한다.

첫째로 교회 내에서 소공동체 활동을 통하여 교인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한다. 현재 사이비와 이단 집단에 빠지는 계층들 중에 경제적으로 하류계층이나 못 배운 사람들 뿐만 아니라 많이 배우고 경제적으로도 풍부한 사람들도 볼 수 있다. 왜 부족한 것 없는 사람들이 이단과 사이비 집단에 빠질까? 이들은 한국의 자유경쟁 속도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인하여 어디엔가 소속되어 정서적 안정감과 충족감을 받고 싶은 것이다. 교회가 사회에서 스트레스 받은 사람들에게 영적 안녕과 심리적 평안감을 주어야 할 텐데 교회에서 조차도 총동원 주일, 장로투표 등 경쟁체제의 논리로 운영되는 모습 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위안 보다는 더 긴장과 경쟁의 느낌을 가지게 된다. 점점 고립화되고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한국사회에서 교회만큼은 그들에게 위안과 평안을 주어 소속감을 심어 주어야한다.

둘째로 체계적인 성경공부를 강화해야한다. 교회에서 실시하는 성경공부 내용에 어떻게 성경적 가르침을 실생활에 적용할지에 대한 구체적 사례와 함께 교인들의 생활에 적용될수 있는 성경공부 내용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성경공부를 시행하는 데 있어 내용 전달만 하는 성경공부가 아닌 집단상담의 요소를 가미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어 서로 들어주고 치유해 줄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혼자만 가지고 있다가 다른 사람과 나누면서 무게를 줄일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문제와 고민을 들으면서 자신의 문제에 대한 심각성과 민감성도 줄어들게 되어 자신의 문제를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셋째로 이단과 사이비 집단에 빠졌다 다시 나온 사람들을 사랑과 인내로 감싸주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단과 사이비 집단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신학적 논쟁을 하다보면 벽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는 것 처럼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이들에게는 든든하게 자신들을 믿어주고 이해한다는 느낌을 주어야 이단과 사이비에 대한 의구심을 느낄 때 빠져나올 수 있는 지지대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한 이단의 전략 중 기존 교회에 들어가서 열심히 봉사하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자신이 이단에 빠졌다고 자백하면서 목회자가 이단에 빠진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어떻게 목회자가 교인에게 이렇게 소홀하게 대할 수 있느냐, 우리 목회자는 사랑이 없다"는 형태로 비판하여 교인들 간에 분열을 조장하는 전략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이단에 빠졌다가 다시 교회에 돌아가더라도 기존 교인들의 냉랭한 태도와 이상한 사람을 보는 듯한 눈초리가 이들을 다시 이단에 빠지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된다. 이들이 다시 돌아와서 교회에서 설 땅이 별로 없다. 이들이 다시 돌아올 때 마치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의 마음처럼 너그럽게 포용하고 안아주는 태도와 환경을 조성한다면 다시 이단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넷째로 예방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평신도들은 어떤 교회가 이단인지 잘 모른다. 심지어 목회자들도 이단에 대해서는 언론을 통해서 소식을 듣고 정작 전문가여야 할 목회자들에게는 이단에 대한 정보와 전문적 지식이 결여된 것을 볼 수 있다. 목회자들의 연장교육에 이단과 사이비에 대한 정보와 교육이 제공되어야 하고 일반 교인들에게도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이단과 사이비에 대한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는 앞만 보고 성장위주로 달려왔다. 마치 70년대, 80년대 고도의 경제성장으로 인하여 한국사회 곳곳에 상처 난 공간들이 많이 생긴 것 처럼 한국교회의 괄목할만한 성장의 과정에 질적인 돌봄의 부재로 생겨난 흔적이 사이비와 이단집단일 것이다. 현재 한국의 이단과 사이비 집단의 양적 팽창은 기존 교회에서 해야 될 일들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주는 하나님의 사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기본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선한 천사들은 종입니다(히 1:14). 하나님은 그 천사들을 봉사 혹은 성도를 '돕는 것(diakonian)'을 위해 보내시고, 그렇게 봉사할 때 천사들은 우주라는 하나님의 전에서 '제사장직을 맡은 사자(leitourgika pneumatata)'로 기능을 합니다.

I. 하나님과 관련하여(IN RELATION TO GOD)
하나님과 관련하여, 천사의 첫째 사역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A.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한다(시 148:1-2; 사 6:3)
B.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한다(히 1:6; 계 5:8-13)
C. 그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뻐한다(욥 38:6-7)
D.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시 103:20; 계 22:9)
E. 그들은 하나님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욥 1:6; 2:1)
F.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이다(계 7:1; 8:2)

II. 새 시대와 관련하여(IN RELATION TO NEW EPOCHS)
하나님이 역사를 운행하시는 과정에서 새 시대를 도래하게 하실 때, 천사들은 아주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A. 그들은 땅이 창조되었을 때 함께 찬양했다(욥 38:6-7)
B. 그들은 모세에게 율법을 전할 때 참여했다(갈 3:19; 히 2:2)
C. 그들은 그리스도의 초림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마 1:20; 4:11)
D. 그들은 교회의 초기 시대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행 8:26; 10:3,7; 12:11)
E.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둘러싼 사건에 깊이 관련될 것이다(마 25:31; 살전 4:1)

III.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하여(IN RELATION TO THE MINISTRY OF CHRIST)
A. 탄생에서. 탄생예언(마 1:20; 눅 1:26-28) 탄생알림(눅 2:8-15)
B. 생애에서. 경고(마 2:13-15) 인도(마 2:19-21) 섬김(마 4:11; 눅 22:43) 보호(마 26:53)
C. 부활 후에. 돌을 옮김(마 28:1-2) 부활알림(마 28:5-6; 눅 24:5-7) 승천(행1:10-11).
D. 재림 시에. 휴거(살전 4:16) 재림(마 25:31; 살후 1:7) 가라지 분리 심판(마 13:39-40)

IV. 세계 열국과 관련하여(IN RELATION TO NATIONS OF THE WORLD)
A. 이스라엘 나라와 관련하여. 천사장 미가엘이 특별히 이스라엘을 지켜준다(단 12:1).
B. 다른 나라들과 관련하여. 나라들을 살피며(단 4:17), 지도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단 10:21; 11:1). 대환난 기간 동안에, 심판을 수행하는 자로서 활동한다(계 8-9장, 16장).

V. 악인과 관련하여(IN RELATION TO THE UNRIGHTEOUS)
A. 천사들은 임박한 심판을 알린다(창 19:13; 계 14:6-7; 19:17-18).
B. 천사들은 악인에게 심판을 내린다(행 12:23; 계 16:1).
C. 천사들은 의인과 악인을 분리할 것이다(마 13:39-40).

VI. 교회와 관련하여(IN RELATION TO THE CHURCH)
A. 기본 사역(Basic Ministry) 기본적으로 천사는 신자들을 돕는다(히 1:14).
B. 배경 사역(Background Ministry). 천사들은 현재의 상황에서 의사소통 및 교회에 유익이 되는 진리의 의미를 드러내는데 도움을 준다(단 7:15-27; 8:13-26; 9:20-27; 계 1:1; 22:6,8).
C. 특별한 사역(Specific Ministries)
1. 기도응답. 그들은 기도에 대한 응답을 가져다준다(행 12:5-10).
2. 구원. 그들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이끄는 데 도움을 준다(행 8:26; 10:3).
3. 관찰.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고난 등을 살펴본다(고전 4:9; 11:10; 엡 3:10; 벧전 1:12).
4. 위로. 그들은 위기의 순간에 위로를 한다(행 27:23-24).
5. 죽음의 순간에 함께 있음. 그들은 죽음의 순간에 의인들을 돌보아 준다(눅 16:22).

천사들이 현재에도 모든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그 사역을 수행하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앞서 언급한 사역들을 수행해 왔고 비록 우리가 정확하게 인식하지는 못할지라도 그 사역들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사용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분은 모든 일을 직접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많은 경우에 천사라는 중간자가 그 사역을 펼치도록 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은 천사들을 사용하여 일을 하든지 아니면 직접적으로 일을 하든지 상관없이 앞서 언급한 사역을 행하시는 분은 종국적으로 주님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사도행전 12:7-10과 11-17절을 비교해 보면, 비록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천사를 사용하여 베드로를 감옥에서 구원했을지라도, 그 자신을 구원한 분은 주님이었다는 베드로의 간증을 주목해 보십시오).

언젠가 스코틀랜드에 있는 어떤 오래된 교회에서 보았던 명문(inscription)은 이러한 사실을 균형적으로 잘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들을 다스리기에 충분할지라도,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은 우리를 살필 천사를 지정해 주셨다."

구원받은 사람들의 행동을 살피는 천사에 관한 언급은 아마 어떤 진리에 못지 않게 우리의 생각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천사가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즉 천사는 인격적으로 구원을 경험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이 구원의 결과를 목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구원이 구원받은 인간 안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관찰하는 방법뿐입니다. 그러한 사실로 말미암아 천사가 우리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참으로 세상, 사람, 그리고 천사라는 청중으로 가득 찬 '하나의 영화관(a theater)'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고전 4:9). 주님은 물론 천사들 앞에서도 모든 것이 발가벗겨지고 드러날 것이므로 항상 좋은 일을 행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 촬스 라이리(이한규목사 번역 발췌)

아내(남편)가 이단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할까?

 

필자에게는 이단에 관한 상담전화가 과거에 비해 더 많이 걸려오고 있다. 이는 이단들이 더욱 극성을 부리며 활동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단에 빠져있는 자녀, 부모, 아내, 남편, 심지어 교회의 중직자인 권사, 장로에 이르기까지. 더 나아가 전도사의 아들도, 목회자의 딸과 사모까지도 이단에 빠져 남모르게 눈물로 상담을 요청해 온다. 젊은 층은 대부분 대학 캠퍼스에서 미혹당하고 있다. 그 중에서 오늘은 아내(남편)가 이단에 빠졌을 때 어떻게 상담해야 효과적인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필자는 상담을 할 때마다 가슴깊이 묵상하는 교회가 있다. 요한계시록 2장에 나오는 에베소교회다. 에베소교회는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을 인하여 칭찬을 받은 교회다. 즉 이단에 대한 분별력을 가지고 잘 대응하여 교회를 비 진리의 오염으로부터 지켜낸 교회이다. 그래서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주님은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말씀하셨다. 흑백논리로 이단대응사역을 하다보면 상대를 정죄하기 쉽고 공격적 언사를 주로 사용하게 된다. 때문에 사랑이 식어지고 분노의 사람 또는 공동체(가족, 교회)가 되기 쉽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단대응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이 있어야 함을 발견할 수 있다.
 
1. 이단대응상담의 제 1원칙은 사랑이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이단에 빠진 자들을 대하는 가족이나 상담자들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나는 언제나 옳고 너는 잘못되었다”는 의식으로 대하는 태도이다. 물론 이단에 빠진 자들은 잘못 되었고 그들을 구원하려는 가족이나 상담자들은 바른 식견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서로 대화를 나눔에 있어서 “거봐 너는 또 틀렸잖아”라고 하며 상대를 계속 코너로 몰아가는 식으로 접근하면 상대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뿐만 아니라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하며 심리적으로 불쾌감까지 갖게 되어 지속적인 상담이 아니라 1회성 상담으로 실패할 경우가 많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고전 13:5).”
 
가족이나 친근한 관계의 사람이 이단에 빠졌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성경 교리나 해석에 대한 바른 지식 또는 이단 교리에 대한 이해도 없이 접근하면 정상적인 대화는 지속될 수 없다. 쌍방 간에 언성만 높이다가 아무 효과도 없이 끝나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성경도 모른다’는 약점까지 잡혀 대화의 주도권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이단전문가에게 이단교리에 대한 공부를 충분히 하고 대화해야 한다.
 
성경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즉 이단 교리에 대하여 충분한 성경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의 접근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면 “이단에 빠진 가족을 누가 사랑 없이 대하는 자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한다면 접근 방식도 무례히 행치 않는 즉 예의를 갖춘 접근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까운 관계일수록 예의가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단에 빠진 가족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부부간에 대화를 나누다가 심한 폭언까지 주고받고 폭력까지 휘두르고 나면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된다. 이때부터는 이단 상담에 대한 핵심본질에서 벗어나 미묘한 감정 대립에 빠져들어 상담을 미궁에 빠뜨리는 경우가 되기 쉽다. 극한 상황에서는 가출 또는 이혼의 위기에 처할 수도 있으며 법정에서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도 된다. 때문에 이단에 빠진 아내나 남편이 있으면 절대로 무례히 행하는 일이나 성내는 일이 없도록 감정을 절제하며 온유함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단에 빠진 아내나 남편이 있을 경우 처음에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갈수록 서로가 상처만 받게 된다. 점차 대화는 단절되고 서로가 보기도 싫어지며 부부관계에서 중요한 성관계도 거절하면서 부부가 아닌 의무적 관계로 전락한다. 차라리 한 지붕 아래 거하는 것이 저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이러한 부부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필요하다.
 
* 배우자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라.
* 배우자를 사랑하는 이유를 20가지 이상 찾아 종이에 적어보라.
(장점만이 아닌 단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라.)
* 특별한 데이트를 신청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배우자에게 사랑하는 이유를 고백하며 대화하라.
* 이단 교리에 대하여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함께 알아가는 자세로 임하라.
 
2. 이단대응상담의 제 2원칙은 영적전투 차원에서 접근하라.
 
이단상담의 제 1원칙은 사랑이며, 동시에 제 2원칙은 영적전투이다. 이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의도이다. 영적전투 차원에서의 이단상담은 다음의 3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피상담자들의 영적 진지를 점검한다. 둘째, 그들의 견고한 영적 진지를 새로이 구축한다. 셋째, 영적 전쟁의 전면전을 벌인다.
 
△ 영적진지 점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듯이 먼저 상대를 알고 자기를 알면 결코 패하지 않는다. 먼저 자신을 비롯하여 가족과 주변 사람들 가운데 이 문제로 함께 기도하며 연대하여 대응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가를 점검한다. 또한 그들의 신앙의 연조와 신앙의 지식 및 영성을 점검한다. 이러한 영적환경을 토대로 구출작전과 각자의 역할이 나오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단에 빠져있는 자의 상태를 점검한다. 언제부터 이단에 빠졌으며, 이단 교리를 얼마나 배웠으며, 이단 단체에서 어떤 직분으로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살핀다. 이 정보에 따라 상담의 주제들과 상담일정의 기간이 설정된다.
 
△ 영적진지의 새로운 구축

가족들이 너무 조급한 마음으로 인본주의적인 방법을 동원해 대응함으로 고성을 내며 폭언 폭력 등을 주고받는데, 이는 후일에 가정파탄 이혼소송 등에서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또한 교리논쟁에서는 이겼지만 인간관계가 깨져서 서로 헤어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믿는 가족들은 이단에 빠져있는 가족과의 갈등구조 인간관계를 풀어가면서 열린 대화가 가능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동시에 이단대응교리를 함께 공부하여 이단의 실체를 바로 알고 말씀의 전신갑주로 영적인 무장을 해야 한다.
 
이단교리도 조직적이며 논리적이고 짜임새가 있어 영혼을 빨아들이는 흡수력이 있다. 특히 성경구절의 짝짓기 논리로 구성되어 있어서 충분한 준비 없이 대응해서는 안 된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대응은 목회자라 할지라도 혈과 육이 나오고 패배를 가져올 뿐이다. 그런데 이단들은 폐쇄적이며 자료유출방지에 치밀한 신경을 쓰기 때문에 그들의 교재나 교주의 원 자료를 구하기가 힘들다.
 
사실 이단과의 전쟁은 첫째, 말씀 안에서의 교리전쟁이며 둘째, 그들의 거짓과 허구성을 드러내는 언론 전쟁이며 셋째, 명예훼손으로 소송해오는 법적 전쟁이다. 어떤 이단들은 무력시위 및 건달들을 동원하여 테러까지 일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단들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대응하지 않으면 설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제기해 온다. 그래서 원 자료에 의한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영적진지 구축으로 이단대응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 영적전쟁의 전면전 시도

어느 정도 영적 진지가 구축되고 말씀으로 무장하는 일이 이루어지면 비교교리 논쟁의 전면전을 벌인다. 먼저 가족들이 이단에 빠진 가족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끈기 있는 대화와 준비된 자료들을 활용하여 어느 정도 그들의 문제점들을 드러내면서 자연스럽게 전문 상담목사에게 인도한다.
 
상담목사와의 대화는 그동안 알고 싶었던 교리들에 대한 전반적인 질의문답으로 진행된다. 이단들은 미혹의 교리와 교주를 신격화하는 핵심교리를 가지고 있다. 그것도 이단별로 차이가 있으면서 공통분모가 있다. 먼저 대화의 거부를 막기 위해서 미혹의 교리에 해당되는 일반교리 부분부터 대화를 한다(말씀의 짝, 비유비사풀이, 이중아담, 십자가 우상, 안식일과 주일문제, 유월절 준수, 성탄절, 수건교리, 방언문제, 시한부 종말론 등이 그것이다).
 
다음은 이단들의 교주를 신격화 한 교리들에 대하여 그 허구성을 지적한다(시대별 구원자, 자칭 보혜사, 재림 주, 이긴 자, 새 이름, 무화과나무 교리, 다윗의 위 교리, 동방과 북방, 재림과 강림, 잘못된 삼위일체론, 새 예루살렘, 어머니 교리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질의문답 과정과 추가하여 해석하는 성경말씀에 의하여 피상담자가 바른 영의 눈을 뜨면 이단에서 탈퇴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그때에 끝으로 구원상담 공부를 통하여 그들의 구원교리가 얼마나 잘못 되었는가를 깨닫게 하고 이제는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감사와 감격 속에 신앙생활을 하도록 인도한다.
 
3. 이단대응상담의 사례(아내 또는 남편이 이단에 빠졌을 때)
 
※ 사례1. 부부가 함께 신앙생활 하다가 아내가 이단에 빠진 경우

지방에서 한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함께 신앙생활 잘하던 아내가 이단에 빠졌다는 것이다. 남편은 모태신앙이었고 아내는 중학시절부터 신앙생활을 하였다. 아내가 가정불화로 우울증에 빠졌을 때 방문한 이단들과 교제하다 보니 깊이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편이 모태신앙이기 때문에 성경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안다고 자부했는데 이단 교리를 이해할 수가 없어 대화가 되지 않아 숨겨오다가 본 교회 담임목사님과 상담을 했다. 약간의 도움은 되었으나 근본적인 치유는 되지 않아서 이단 전문기관의 소개를 받고 상담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늘 하던 대로 위의 두 원칙을 설명하고 남편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아내를 성경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자료와 자료 사용법을 설명하여 주었다. 정말 남편이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지 필자가 객관적으로도 느낄 정도로 최선을 다하여 자료를 받으며 대응방안을 수시로 상담 받고 실행에 옮겼다. 그리하여 아내를 상담전문가에게 인도하지 않고도 이단에서 탈퇴시킬 수가 있었다. 이단에 빠진 자의 배우자가 성경에 대한 많은 지식이 있을 경우에는 그만큼 이단대응이 수월하다. 영적 진지 구축이 튼튼하기 때문이다.
 
※ 사례2. 부부가 함께 신앙생활 하다가 남편이 이단에 빠진 경우

사무실에 들어와 보니 먼 지방에서 한 아내로부터 상담전화 요청이 있었음이 메모되어 있었다. 전화를 걸어보니 같이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던 남편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토요일 마다 어디를 정기적으로 나감으로 알아보았더니 이단교회에 나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교회의 이단성을 찾아보고 자료화하여 남편에게 이야기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오히려 정통교회 다니는 것을 중단하고 노골적으로 이단교회에만 열심히 다니더라는 것이다. 남편이 군에 근무하고 있는데 폭언 폭력이 두려워 가슴조이며 지낸다고 하였다.
 
아내가 남편에게 이 문제로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우선 아내에게 철저한 교리공부를 시도했다. 남편이 이단교회에 나가는 것에 대하여 반대도 하지 않고 그냥 방치한 상태에서 먼저 아내로 하여금 말씀의 반석 위에 서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되었을 때 정식으로 남편과 성경교리에 대해서 토론을 시도하였다. 감정이 개입되지 않도록 하며 따지는 식의 대화가 아닌 함께 알아가자는 차원에서의 대화를 시도하였다. “내가 잘 모르니 좀 가르쳐 달라”고 하면서 대화로 이끌어, ‘주장’보다는 차이가 나는 부분에 대하여 ‘반문’함으로 남편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였다.
 
그 과정에서 아내는 남편이 한 이불 속에 있다는 것조차도 용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단문제 이외에 다른 부분에서 부부생활이 정상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충고에 힘들어도 기쁨으로 웃음으로 대하였고, 남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잃지 않도록 힘썼으며, 성생활까지 오히려 유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번 진지하게 성경 토론을 한 후에 더 이상 토론은 없었으며 사랑관계만 문제가 없도록 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의 이단교회 나가는 발길이 끊겼고 이제는 이웃과도 함께 교제하는 좋은 가장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아마 성경 토론할 때 심겨진 말씀이 씨앗이 되어 역사하였지만 자존심 문제로 표면상으로 거부하다가 점차적으로 변화를 가져온 것 같다.
 
※ 사례3. 부부 중 아내만 신앙생활 하다가 이단에 빠진 경우

한 번은 불신남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정통교회 잘 나가던 아내가 교회를 바꾸었다 하여 알아보니 이단교회라는 것이다. 전혀 성경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먼저 위의 두 가지 원칙을 설명하고 그렇게 할 것을 동의를 받았다. 그리고 아내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 한다”고 고백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이해하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데 좀 도와 달라고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러면 반드시 남편을 전도하고 싶은 마음에 적극적으로 나올 것인데, 그때에 성경공부를 하고 싶은 데 당신이 나를 가르쳐 달라고 주문하라고 했다. 뜻밖의 제의를 받은 아내는 좋아서 가르치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공부하는 방식을 여러 가지 주제를 왔다 갔다 하면서 다루면 혼란만 일어나니 한 주제씩, 한 주제씩 충분히 공부하자고 하면 아내도 동의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성경공부는 시작되었고 다음 대화의 근거 자료를 남기기 위해 노트필기까지 하며 열심히 교리공부를 체계적으로 해 나갔다.
 
한 주제가 끝날 때마다 남편은 공부한 노트를 가지고 필자를 만나서 해당 교리에 대한 바른 성경 해석과 대응교리를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기 전에 아내와 함께 다시 전에 배운 부분에 복습하는 과정을 거치게 하는데 여기서 아내는 당황하게 된다. 남편의 예리한 성경해석과 이단교리가 잘못되었음을 입증하는 반문들로 인하여 답을 할 수 없어 당황하게 되며, 아내는 자신이 이단교회의 담임교역자에게 물어서 답해주겠다고 하며 상황을 모면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라고 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간다. 그리고 다음에 답을 알아왔는가를 반드시 확인을 하므로 이단교리의 거짓됨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인상을 갖도록 유도한다.
 
이와 같은 성경공부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아내는 여러 번의 판정패를 당하게 되면 이슬비에 옷 젖는다는 말과 같이 자신이 옳다고 믿던 신앙적 신념이 서서히 의심이 들기 시작하고 속에서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이 과정 속에서 수 없이 많은 갈등과 분노가 일어나지만 그럴 때마다 끈기 있게 인내하며 성경공부를 잠시 중단하고 가족나들이 또는 부부만의 특별외출, 외식 등을 하면서 관계회복을 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방식을 병행했다. 이로 인하여 성경을 알지 못하는 불신남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이단에서 구해낼 수 있었다.
 
※ 사례4. 부부 중 남편만 신앙생활 하다가 이단에 빠진 경우

남편만 신앙 생활하다가 이단에 빠지는 경우는 쉽지 않다. 또한 이러한 경우에 아내가 남편문제로 상담해 오는 경우도 거의 없다. 이런 경우가 생긴다면 위에서 설명한 사례2와 사례3의 경우를 잘 조절하면서 대응함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단대응상담은 획일적인 방법을 적용할 수는 없다. 이단에 빠진 자의 상황에 따라 기성복이 아닌 맞춤형 접근이 필요하다. 영적인 차원에서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관계가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얼마나 그 영적진지가 견고한지에 따라서 성패가 크게 좌우된다. 그리고 흑백논리로 상대를 정죄하는 경향이 없도록 하고 이단에 빠진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이단문제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는 최대한 더욱 사랑하며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영적진지가 견고하게 구축되지 않았으면 이단대응사역을 시도하지 말고 사랑관계만 이상이 생기지 않도록 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영적으로 전신갑주를 입으라.
 
교회와신앙  이덕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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