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낳은 우리 아이, 통일인으로 키우고 싶어요."
겨울햇살이 유난히 따스하던 지난달 10일, 김상균(가명, 37) 이명숙(가명, 28)씨 부부에게 첫 아들 현우가 태어났다. 북한이탈주민으로 중국에서 만나 결혼한 뒤 한국 땅에 발을 디딘지 4년만에 또 다른 결실을 맺은 것이다. 아이를 품에 안은 이명숙씨는 "우리 아이만은 떳떳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키우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우리나라에 둥지를 튼 북한이탈주민수가 6천명을 넘어섰다. 2002년 1천2백명, 2003년 1천4백명, 2004년 1천8백명 등. 최근 3년사이에 입국한 사람만 4천명을 웃돈다. 이런 추세라면 몇년대에 북한이탈주민의 수가 1만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90년대만 해도 이들은 귀순용사, 북한동포 등으로 국민적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 베트남 등 제3국을 통한 대규모 입국이 잦아지면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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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오목교 인근에서 통닭집을 운영하는 김상균씨 부부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오후 2시면 문을 열어 새벽 2시에 함께 귀가한다. 김씨는 탈북 전 러시아, 중국 등지에서 10년 넘게 무역을 했다. 러시아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그지만 한국에서 직장을 얻기란 쉽지 않았다. 30여곳에 이력서를 넣어 어렵사리 작은 무역회사에 취직했으나 그마저 2년 만에 퇴사했다. 같은 동료들끼리 경쟁하는 조직문화에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퇴사 후 북한이탈주민 직업훈련기관인 자유시민대학에 다니며 창업교육을 받아 지금의 가게를 냈다. 김상균씨는 "통일이 되면 러시아, 중국을 넘나들며 다시 무역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97년 탈북, 2002년 입국해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조영희(가명,33)씨는 "남쪽에 와서 배고픔은 면했지만, 행복하진 않다."고 말한다. 춥고 고단한 북에서의 삶을 버리고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왔지만 당장의 허기를 면했을 뿐 소외감과 상대적인 박탈감은 더 하다. "남한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느낄 때마다 이곳에 온 것이 후회된다"며 "통일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북한이탈주민이 제대로 된 직장을 잡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 수준. 한국의 경기침체와 실업문제가 이들에게도 예외일 리 없다. 작년 북한이탈주민후원회와 인크루트가 북한이탈주민 79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북한이탈주민 사회적응 실태조사'에 따르면 무직인 경우가 36%에 달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적응하지 못하는 탓이 크다. 경제활동을 한다고 해도 이들은 대부분 단순노무직이나 아르바이트일을 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의 경제활동을 돕기 위해 정부는 올해부터 현행 생계지원방식을 장려금제도로 전환할 예정이다. 최근 발표된 통일부 개선안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에게 지급되는 2천8백만원의 초기정착금을 내년 1월부터 1천만원으로 줄이고, 직업훈련이나 자격취득에 적극적인 탈북자들에게 장려금이 추가 지급되는 방식으로 바뀐다.
탈북청소년들의 교육문제도 심각하다. 지난해까지 입국한 탈북청소년은 모두 8백여명. 이 가운데는 가족이나 보호자 없이 홀로 입국한 무연고 청소년도 2백여명에 달한다. "보통 학생들처럼 일반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어도 갈 만한 학교를 찾을 수 없었어요." 올해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새내기가 되는 최금희(22)양은 검정고시로 꿈에 그리던 대학에 합격했다. 2001년 한국에 온 최양은 처음보는 교과서와 호기심어린 시선에 적응할 자신이 없어 정규학교를 포기하고 독학으로 고입, 대입검정고시를 차례로 패스했다. 최양은 그나마 학업의지가 남다른 경우고 대다수 탈북청소년들은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탈북청소년 중,고등학교 취학률을 보면, 중학생 나이의 청소년 167명 가운데 49%인 82명만이 한국에서 중학교에 다니고, 고등학생 나이의 412명 가운데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27명으로 6%에 불과하다.(교육인적자원부 2004년 통계) 이들은 적게는 3개월 많게는 3~4년씩 중국에 체류하는 동안 학업을 중단했다가 한국에 온다. 다시 학교에 들어가더라도 나이 어린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교과과정을 따라가지 못해 곧 중도탈락하게 된다.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셋넷학교 이강철(가명,20)군 역시 "학교수업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친구들이 있는 탈북청소년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현재 셋넷학교와 같은 탈북청소년교육기관은 전국에 10여 군데. 그 형태는 셋넷학교, 하늘꿈학교와 같은 대안학교형, 돈보스꼬센터, 마자렐로센터와 같은 직업훈련학교형, 안산 다리공동체와 같은 생활공동체 등이다. 하지만 몇몇 기관을 제외하곤 정규과목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기에는 시설이나 교사가 턱없이 부족하다. 셋넷학교 교장 박상영씨는 "탈북청소년들에게 중간디딤돌이 될 교육기관이 절실하다"며 "탈북청소년대안학교의 효과적인 지원방안과 학력인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는 탈북청소년의 교육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경기 안성에 기숙형 한겨레학교(중고등학교)를 짓고 2006년 첫 입학생 2백 8십여명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사회에 발을 디딘 탈북청소년들이 지방의 기숙사에 얼마나 자발적으로 입학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북한이탈주민들은 북한과 한국 사회에서 똑같이 소외받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성장해온 사회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전쟁터에 몸을 내던졌고 또 다시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한다. 모든 것이 낯설고 막막하다. 멀고도 험한 사선을 넘어 꿈에 그리던 땅에 왔으나 그 꿈은 점점 흐려지고 현실은 너무나 또렷하게 삶을 짓누른다.얼마전 정부는 북한이탈주민,탈북자 등의 용어를 '새터민'으로 바꾸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제는 정부지원책 뿐아니라,이들을 시민의 일원으로 수용하려는 사회전체의 분위기가 필요하다. 오래 잊고 지낸 가족이 고향집에 온 것처럼, 체제와 이념으로 분단된 마음의 강을 훌쩍 건널 수는 없을까. "우리를 편견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세요. 모두가 이 땅에서 살기위해 눈물겹게 노력하고 있어요." 한 북한이탈주민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글,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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