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7일 오전 9시, 성남 서울공항 활주로에 정부 특별전세기 한 대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탑승자들은 베트남에 불법 체류 중이던 북한이탈주민 1진 230명. 목숨을 건 긴 여정을 마치고 마침내 한국 땅에 안착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듯 밝은 표정들이다. 그러나 이들을 맞는 국내 분위기가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대량입국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이들을 사회, 경제적 ‘부담’으로 여기는 여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경제도 어려운데 굳이 이들을 데려와야 하느냐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엇갈리는 인식은 이들에 붙여지는 다양한 명칭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이들은 탈북자로 불리기도 하고, 때로는 귀순동포, 북한난민, 자유북한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탈북 입국자 1만명 시대’가 성큼 다가온 지금, 과연 우리에게 이들은 무엇인가. 주머니를 털어 도와줘야 할 구호의 대상일 뿐인가, 아니면 통일 시대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소중한 자산인가. | |||||
구호의 대상 아닌 통일시대 대비한 자산으로 바라봐야
“아무리 가난해도 어려운 사람을 그냥 쫓아 보내지 않는 게 한국 정서 아닌가요. 탈북자들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들인데 우리가 받아주지 않으면 어디로 가겠어요?” 경기 구리시에서 무역회사에 다니는 박모(42)씨는 북한이탈주민을 수용하는 데 큰 불만은 없다. 4천만원 가까이 지급된다는 정착금도 당연히 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자신의 현재 처지를 생각하면, 그리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박씨는 다니던 회사의 미수금이 늘면서 월급이 20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몇 년 전 병원비로 돌려쓴 현금서비스 2천만원은 아직도 빚으로 남아 있다. 누군가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조만간 꼼짝없이 신용불량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남대문시장에서 30년째 청바지 소매점을 하는 서동기(61)씨는 좀 더 직설적으로 불만을 쏟아낸다. “내집 먼저 단속하고 남을 도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서울역 지하도에 가면 요즘도 점심 얻어 먹으러 줄을 서는 노숙자가 300명이 넘는데, 이들은 나 몰라라 하면서 북한 사람들 ‘왕창’ 받아들이는 게 말이 됩니까. 그 사람들 자기만 살겠다고 나온 사람들 아니에요?.” 서씨의 매장은 요즘 매일 적자다. 매상이 지난해에 비해 30% 이상 줄어 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점원을 따로 두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서씨는 한국에 가면 떼돈을 벌 것처럼 생각하는 북한이탈주민의 인식이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가 볼 때, 한국에 와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 “우리도 일자리가 없어 난리 아닌가요?” 북한이탈주민을 바라보는 이중적 시각 고려대 윤인진 교수는 이런 최근 분위기에 걱정이 앞선다. 윤 교수는 “지난 7월27일과 28일 이틀 동안 정부가 특별전세기까지 띄우며 요란스럽게, 468명의 북한이탈주민을 데려왔는데 과연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는지 의문”이라고 아쉬워한다. 대상자들을 좀 더 분산시켜 입국시키거나, 일반 항공기를 이용해 ‘조용히’ 처리하는 게 더 바람직했다는 생각이다. 그는 “요즘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탈북자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린리고 식은땀이 난다는 탈북자들이 적지 않다”고 전한다. 윤 교수가 지난 2002년 전국 8개 대학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인식을 잘 보여준다. 응답자의 52.7%가 ‘북한이탈주민이 늘어나면 세금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북한이탈주민의 증가가 실업이나 일탈 같은 사회 문제로 이어질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36.3%로 가장 많았다. 이는 대부분 북한이탈주민 문제를 경제적 부담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흥미로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탈주민이 통일 이후 남북한 통합에 기여할 것(48%)이라고 보면서도, 중국 등에 머물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을 국내로 데려와야 한다는 데는 유보적인 태도(중립 41.9%)를 보인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이를 “북한이탈주민의 수용이라는 추상적인 명제에는 동의하면서도, 세금 부담처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윤 교수는 대량입국 사건 이후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강화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이번 대량입국은 최근 북한이탈주민의 국내 입국 증가 추세를 고려한다 해도 상당히 이례적인 ‘사건’이다. 1994년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을 탈출해 넘어온 ‘귀순동포’의 수는 한 해 8~9명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94년 이후 북한의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급증하기 시작해 지난해에만 1281명의 북한이탈주민이 한국 땅을 밟았다. 올해는 이번 대량입국을 제외해도 상반기에만 이미 760명이 국내에 들어왔다. 전문가들이 국내 입국자 수가 앞으로도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이번 경우와 같은 대량입국 사태가 본격화할 것인지에는 의견이 엇갈린다. 박성애 북한이탈주민후원회 상담팀장은 “이번 경우는 동남아시아의 특정 국가에 누적돼 있던 인원을 한꺼번에 데려오기 위한 특별조처의 성격을 갖고 있다”며 “모두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국내에 들어올 사람들이었다”고 설명한다. 북한이탈주민 문제에 질적 변화가 발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북한주민이 대량탈북을 하고, 이들이 곧바로 국내에 입국하는 ‘극적인’ 상황이 실제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단언한다. 윤인진 교수의 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윤 교수는 “휴전선이나 해상을 통하지 않는 한, 대량탈북과 대량입국은 불가능하다”며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국가재난상태로 다른 차원의 대책이 동원돼야 하는데, 북한의 붕괴를 전제하지 않는 한 그렇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한다. 그는 또 “대량입국 사건에 정부나 베트남 모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이번과 같은 일이 자주 생기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덧붙인다. 중국 체류 이탈주민 10만명 어디로? 그러나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분석은 다르다. 현재 10만명으로 추산되는 중국 체류 북한이탈주민들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국내 입국자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대량입국 사태가 이들의 한국행 선택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중국에 ‘불법체류’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의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외교통상부는 2만~3만명, 비정부단체들은 30만명으로 추산한다. 그러나 대체로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이 추정하는 10만명이 실제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을 거쳐 동남아시아에 체류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은 현재 5천명선으로 파악된다. 이들의 경우 대부분 한국행이 유력하다. 북한이탈주민이 입국을 원할 경우, 정부가 이를 거부하고 돌려보내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윤여상 소장은 “이번처럼 전세기를 띄워 적극적으로 데려오느냐 마느냐는 다른 문제지만, 우리 정부가 북한이탈주민의 수용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법적, 제도적으로나 명분상으로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한다. 북한이탈주민이 오면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 역시 제3국을 통해 들어오는 북한이탈주민의 전원 수용 원칙을 분명하게 지키고 있다. 윤 소장은 “이번 대량입국이 우리 정부나 시민사회의 대응능력을 평가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향후 북한이탈주민의 국내 입국 규모를 가늠하는 데 결정적인 변수는, 중국에 머물고 있는 10만명의 성격이다. 이들은 중국에서는 불법체류자 신분이기 때문에 정확한 실태 파악이 쉽지 않은 상태다. 이우영 영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중국 체류자 대부분은 중국에서 돈을 벌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라며 “한국을 희망하는 비율이 아직은 낮은 편”이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북한과 중국 국경의 감시가 엄격해져 북한이탈주민의 수도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박성애 팀장도 “막연하게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중국에 건너왔다 발이 묶인 사람들이 많다”고 분석한다. 반면 윤여상 소장은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그는 “처음부터 한국에 가기 위해 국경을 넘는 사람이 적은 것은 분명하지만, 중국에 오래 체류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한국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말한다. 중국 생활에 익숙해지면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도 적응이 어렵고, 장기 체류자의 경우 북한에서도 엄격하게 처벌한다는 것이다. 윤 소장은 중국에 있는 북한이탈주민 10만명 가운데 70~80%는 안정된 신분을 찾아, 어떤 식으로든 한국으로 오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일부에서는 새로운 대안으로 북한이탈주민의 난민 지위 인정을 제시한다. 북한이탈주민이 합법적으로 중국에 머물 수 있는 길을 터놓자는 것이다. 그럴 경우, 이들을 굳이 한국으로 데려와야 할 부담이 없어진다. 그러나 이 방안의 실현 가능성은 전적으로 중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 난민 지위 인정은 중국이 결정할 사항이기 때문이다. 이우영 교수는 “중국이 난민 지위를 인정할 경우, 대량 탈북사태를 유발할 수 있고, 이것은 북한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며 “북중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못 박는다. 북한이탈주민의 난민 지위 인정은 중국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소수민족 문제를 자극할 가능성도 많다. 때문에 북한이탈주민 정책은 국내 입국자들의 정착 지원 체계를 재정비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 입국자수 자체는 사실상 우리의 통제권 밖에 있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윤여상 소장은 “입국 예상 규모에 맞춰 적정한 인력과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현행 정착 지원 체계는 북한이탈주민의 ‘자립’보다는 ‘보호’나 ‘구호’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입국자수가 한 해 수십 명에 불과할 때 만들어진 낡은 체계가 상당 부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박성애 팀장은 “북한이탈주민이 갖는 의미가 그동안 크게 바뀌었다”며 “예전에는 체제 우월성을 상징하는 귀순용사였지만, 지금은 자활이 필요한 생활보호 대상자에 가깝다”고 말한다. 또한 박 팀장은 “과도한 지원은 오히려 자립의지를 저해하고, 일반 저소득층과의 형평성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며 “지원제도를 새롭게 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7월23일, 통일부도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제도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정착금을 줄이는 대신 직업훈련이나 자격취득, 취업 장려금을 신설해 자립의욕을 고취한다는 것이 기본 줄기다. 그러나 북한이탈주민의 국내 정착과 사회적응은 사회적인 지원과 관심 없이는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이우영 교수는 “정부의 정책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북한이탈주민 지원을 위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대표적인 사례로 북한이탈주민 적응교육기관인 ‘하나원’ 문제를 든다. 그는 “하나원은 이스라엘의 주민정착 프로그램을 모델로 한 것인데, 이스라엘은 교육시설이 일반 마을에 들어가 있는 반면, 우리는 뚝 떨어진 외진 시골에 있다”며 “강의나 교육 프로그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생활하며 느끼는 것 자체가 훨씬 중요한 교육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사회적인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하나원 같은 시설을 서울에 만든다고 하면 주민들이 다 들고일어날 것”이라고 꼬집는다. 새로운 정착지원 체계 마련 시급 윤인진 교수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접근을 강조한다. 윤 교수는 “북한이탈주민을 지금처럼 우리 사회의 새로운 소외계층으로 방치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이탈주민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은 통일 이후 수천만 명 단위에서 이루어질 사회, 문화적 통합을 준비하는 ‘예비 과정’이라는 것이다. 남북한 통일비용은 연구자에 따라 편차가 크지만, 통일 이후 10년 동안 최소 2천억달러에서 최고 3조5500억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 어떤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수치다. 윤 교수는 “북한이탈주민에 재정 지원을 하고 관심을 갖는 것은 단순한 복지 차원의 지출이 아니라, 남북통일과 통합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더 큰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투자”라고 강조한다. 이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관심이 ‘인천공항까지의 관심’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정말 관심이 필요한 것은 그들이 우리 사회에 발을 디디는 바로 그 순간부터다. 장승규 기자(skjang@economy21.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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