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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국제학술대회-특강(이향규)

 

남북 관계의 발전과 재외동포 2세 통일교육
: 먼 길 돌아온 이웃, 새터민

                                                   이향규(무지개청소년센터 부소장)

남한에 사는 북한사람들 : 귀순용사에서 보통사람으로

남북한 간에 견고한 휴전선이 만들어진 이래 오랫동안 이 사선을 넘은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한때, 남한사회는 이들을 ‘월남귀순용사’라고 부르며 대대적으로 환영하였다. 이 시기에 ‘귀순용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은 해외에서 근무하는 외교관이나 외화벌이꾼, 험난한 육로나 해상을 통해 밀입할 수 있는 군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용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건장한 남자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남한으로 입국하는 탈북자들의 상황은 양적으로 질적으로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양적으로 급속히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용사”가 아닌 “보통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 북한의 만성적인 경제란은 더욱 심각해졌다. 더욱이 1995년부터 두 해간 겪은 사상초유의 물난리로 기근이 발생하고 아사자가 속출하는 극심한 식량난이 벌어졌다. 이 시기에 생존을 위해 북한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들어가는 월경자들이 급속히 증가하였다. ‘식량난민’이라 불릴 수 있는 이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일시적으로 체류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중 일부는 중국 체류 후 남한으로 이주하는 선택을 했다. 1994년에는 54명, 1997년에는 86명으로 증가하더니 2002년 이후로는 매해 1천 명 이상이 남한 땅으로 오고 있다. 이 수는 2007년 상반기가 되면 약 1만 명가량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탈북 경로가 제도화되자, 이제 군인과 외교관 등 특수한 신분의 사람들이 아니라, 주로 함경남북도 출신 조중(朝中) 국경지대에 사는 보통사람들이 탈북자의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가족 단위 탈북이 늘어나면서, 어린이와 노인을 포함한 전 연령층의 사람이 남한으로 오게 되었다.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남한에 거주하는 북한주민의 양적 질적 변화는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의 변화를 가져왔다. 냉전시대에 ‘월남귀순용사’라고 불리던 이들은 그 수가 늘고 ‘용사’가 아닌 민간인이 증가함에 따라 ‘귀순북한동포’, ‘탈북자’, ‘북한이탈주민’ 등으로 불리었다. 2004년에 통일부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로, ‘새터민’이라는 용어를 제정하였다. ‘탈북’이라는 말의 부정적인 어감을 불식하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이주한 사람들이라는 긍정적인 뜻을 담고자 하였다. 용어의 변천은 북한 주민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반영한다. 북한 주민을 보는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 색채가 약화되고, 대신 우리 사회로 건너온 이주민이라는 성격이 강조되고 있다. 새터민은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 한반도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건너온 이주민(migrant)이다.

새터민 청소년 이해하기

새터민 가운데 20세 이하의 아동, 청소년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해 약 20퍼센트정도이다. 2005년 현재 20세 이하 탈북자 수는 약 1,300명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은 어른과 달리 새로운 사회에 비교적 쉽게 적응하고 잘 동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새터민 청소년의 경우에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북한에서의 기근, 탈북 과정의 상흔, 남한사회에서의 소외가 중층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1) 신체 발달 상황

남한에 사는 10대 새터민 청소년들은 북한 기근이 한창인 1990년대에 태어나고 그 시기에 영유아기를 경험하였다. 영유아기에 극심한 영양 부족으로 신체 발달이 지체되었다. 1998년, 유럽연합(EU), 유니세프(UNICEF), 세계식량계획(WFP)이 공동 조사한 바에 의하면, 만 12개월에서 36개월 사이의 북한 영유아 가운데 40퍼센트가 급성영양결핍상태였다. 8세 이하 아동의 60퍼센트 이상이 수년간 영양 결핍의 결과 생기는 만성영양결핍과 저체중 상태에 있었다. 북쪽 어린이들의 전국적 평균 신장을 남쪽 어린이의 신장과 비교해보니 7세아를 기준으로 이미 12센티미터의 차이가 났다.
새터민 청소년과 남한 청소년의 체격 차이는 뚜렷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3년 말까지 남한에 입국한 20세 미만의 탈북 아동·청소년 가운데 283명의 신장과 체중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박순영, 2005), 새터민 청소년과 남한 청소년의 체격 차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새터민 청소년의 신체 발달은 남한 청소년에 비해서 현저히 지체되어 있다. 새터민 아동‧청소년은 모든 연령대에서 남한의 동일 연령 집단에 비해 평균키와 몸무게가 적다. 특히 16세전후의 청소년의 키 차이는 15센티미터나 차이가 난다. 둘째, 발달지체는 여자의 경우보다 남자의 경우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극심한 영양 부족은 남자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셋째, 영양 부족은 몸무게보다 키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남북한 청소년의 경우 몸무게 차이보다 키 차이가 훨씬 심각하다. 그리고 영양 상태가 좋아지면 체중의 경우 정상 회복이 가능하나 신장이 급속히 커지는 것은 어렵다. 더욱이 성장기가 완료되기 시작하는 나이에는 영양 상태가 향상되어도 키는 잘 크지 않는다.
성장기 영양 결핍으로 인한 신체발육부진은 그 자체로 생물학적으로 큰 문제를 가져온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특히 남한 사람들은 키와 외모에 대한 관심이 크고, 큰 키와 작은 얼굴, 긴 다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신체가 평균보다 왜소한 새터민 청소년들은 많은 경우에 남한사회에 편입된 후에 신체적 차이 때문에 열등감과 소외감 등 부적응을 경험하게 된다.  

2) 심리 정서 상태

새터민 청소년들이 북한을 떠나 남한으로 오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통일부의 조사에 따르면, 탈북 후 남한 입국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2.5년 정도 걸린다. 새터민의 1/4 정도는 6개월 이하의 짧은 기간 안에 남한으로 입국하지만, 4년 이상 시간이 걸리는 사람들도 1/4이나 된다. 탈북 경로도 험난하다. 북한이나 중국에서 직접 남한으로 오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은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에 숨어 지낸 후 태국, 캄보디아, 몽골 등에서 남한으로 입국한다. 이 세 국가로 가기 위해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게 된다. 태국으로 가기 위해, 북한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미얀마 국경을 넘는다. 캄보디아를 가기 위해 중국에서 베트남을 거쳐 캄보디아로 들어간다. 몽고로 들어가기 위해 사막을 횡단한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체포와 북송의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이 기간 동안의 긴장된 경험은 탈북 어린이와 청소년의 심리 정서 상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어린이들은 탈북하기 이전 북한에서부터 굶주림과 가족 해체의 고통을 경험한다. 북한의 식량난이 가장 심각했던 1990년대 후반에는 가족이 각각 식량을 구하러 가면서 뿔뿔이 흩어지거나, 가족 중에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기는 등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최근에는 가족 중 일부가 먼저 탈북하여 남한에 입국한 이후에,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을 초청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영구적이든 일시적이든, 가족 해체의 경험은 미성년 아동과 청소년에게 심각한 불안과 심리적 상흔을 야기시킨다.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에 정착하기 전까지의 과정은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북조선에서 왔다는 것이 들통 나지 않도록, 조선어를 사용하는 것을 극도로 억제한다. 생존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것을 학습한다. 북한을 떠나 중국을 떠돌고 여러 국경을 넘어 동남아 국가를 거쳐 한국으로 오면서, ‘내가 누구인가’,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 등과 같은 근본적인 정체감의 혼란을 경험하기도 한다.  
남한에 도착하게 되면, 이전까지 늘 따라다녔던 체포와 북송의 공포에서부터 벗어난다. 새로운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보려는 희망을 갖게 되고, 먼저 온 가족과 친척을 만나기도 한다. 처음에 정보기관에서 조사를 받고, 통일부의 새터민 정착 지원 센터인 하나원에서 3개월간 초기 정착 교육을 받은 이후에, 전국의 정착지로 떠난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탈북한 이후 체포의 공포로 자기 자신의 존재를 숨겨 왔던 청소년들은 정작 남한에 정착한 이후에도, 자신의 출신을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의 존재를 감춘다는 것이다.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과 말씨가 다르다는 사실로 인해 남한 친구들로부터 차별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자신이 북한 출신임이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생활이 시작된다.
학교생활에서 자신들에게 익숙한 북한 언어의 억양이나 사투리가 남한 아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드러날까 봐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는 데 대단히 조심스러워 한다. ‘자신 숨기기’로 인한 언어 소통의 문제는 결국 또래 집단 간의 친구 사귀기에 있어서 심리적 스트레스로 작용하게 되는데 자신이 북한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더구나 실제로 밝혀졌을 때 남한 아이들의 싸늘한 시선, 관계 형성에 있어서 예전과 다른 상대적 거리감은 고민이나 경험을 마음 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많은 경우 결국 자퇴라는 소외의 길을 선택한다.
어린 나이에 경험한 장기간의 영양 부족과 가족 해체, 북한 탈출과 은신 과정에서의 긴장, 남한 생활에서의 부적응 등 힘든 경험은 새터민 청소년들의 마음에 많은 상흔을 남긴다. 키와 용모가 왜소함에서 느끼는 심리적 위축은 특히 청소년기에 더욱 심각한 상처가 된다. 자아 정체감을 형성해야 할 시기에, 자신의 존재 자체를 숨기거나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건강한 성장에 매우 치명적이다. 새터민 청소년이 느끼는 심리적인 부적응의 많은 부분은, 우리 사회가 좀더 열린사회가 되고, 타자에 대한 관용과 공존의 정신을 갖게 될 때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터민 청소년의 심리적 적응의 문제는 개인적인 것이 아닌 사회적인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3) 학교 교육 상황

새터민 청소년의 남한 학교생활은 순탄하지 않다. 우선 학교 공부가 너무 어렵고 달라서 못 따라간다. 새터민 학생의 기초 학력 수준은 남한 학생보다 현저히 떨어진고, 학력 부진 현상은 상급 학교로 올라갈수록 심해진다. 모든 과목에서 학업 성취 수준이 낮지만 특히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의 학력 결손이 두드러진다. 서울에 거주하는 초등학교 5, 6학년, 중학교 1, 2, 3학년 새터민 청소년 75명의 학력 수준을 평가한 연구에 따르면(김미숙, 2004) 중학생의 학력 저하 현상이 초등학생의 경우보다 훨씬 심각하다. 국어와 수학 가운데에서는 수학에서 학력  격차가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새터민 중학생의 경우 수학과목에서 최소 기초능력 기준인 60점에 도달하지 못하는 비율이 80퍼센트를 넘는다.
새터민 학생들의 학업 부진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 남한과 북한의 교육 제도가 달라 남한에서는 배우지만 북한에서 배우지 않는 과목들이 있고, 북한에서 배운다 할지라도 난이도나 기본 관점이 매우 상이한 경우가 있다. 특히 역사 과목의 경우 그러하다. 선행 학습이 부재한 상태에서 새로운 과목을 학습해야 하는 것은 학업 부진의 요인이 된다.
둘째, 교수 용어가 매우 다르다. 북한은 1966년에 평양말을 기준으로 표준어를 제정하는 언어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른바 ‘문화어운동’이라고 하는 이 조치에 의해 대부분의 한자어와 외래어가 한글전용어로 전환되었다. 한편 남한에서는 외래어 사용이 점차 증가하는 편이고, 한글 단어의 경우에도 대부분 한자 어원을 가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말의 차이는, 탈북 학생들이 남한의 학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태를 야기하였다. 예컨대 수학의 경우 남한에서는 ‘등식’이라고 하지만, 북한에서는 ‘같기식’이라고 한다. 남한에서 ‘포물선’은 북한에서 ‘팔매선’이다. 결국 교수 용어의 차이로 인해서 북한 학생들이 학습 사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결과 과제 수행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셋째, 남한과 북한의 수업 방식이 다르다. 남한의 교육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국어와 영어, 사회과 등 주로 언어 능력과 관련된 교과이다. 그런데 새터민 청소년들은 듣고 말하고, 발표하는 수업이 많을수록 학업을 따라가기 어렵다. 남북한 언어가 이질화되어 소통되지 못하는 표현이 많을 뿐만 아니라, 북한에서는 발표수업의 경험을 해 본 바가 거의 없어 수업 방식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넷째, 새터민 청소년들은 북한에 있을 때부터 수년간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1990년대 초반 이후 기근으로 인해 북한의 학교 교육은 매우 파행적으로 운영되었다. 더욱이 이들은 탈북 이후 중국과 제3국을 떠돌면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였다. 탈북 학생들이 난민이 되어 제3국에 장기체류했던 경험은 장기적 학습 손실뿐만 아니라, 생활습성상의 독특한 속성을 만들어내고, 이 속성이 이들의 학교 적응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아무 데나 자고, 되는 대로 먹고, 가고 싶은 곳에 가는 생활을 하다가, 남한의 학교에서 꽉 틀에 짜인 틀 속에 자신을 맞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한 학생들과는 달리 ‘공부하는 습관’이 들지 않은 이들 탈북 학생들이 남한 학교에서 학교수업을 이해하고 따라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새터민 청소년들은 전혀 다른 북한의 학교에서 교육받았고, 남한 입국 전에 탈출과 은신, 유랑이라는 독특한 경험을 하고 남한 학교에 재입학한다. 그러나 남한 학교는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지 못하다. 우선 남한 학교 배치 정책부터 문제가 있다. 새터민이 남한 학교에 입학할 때 어떤 학년에 배정되느냐는 그가 북한에서 몇 년간 학교를 다녔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은 학제가 달라서, 남북한 수학 연한을 기계적인 기준으로 삼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더욱이 새터민 청소년의 대부분이 학습 공백기를 갖기 때문에, 남한 학교에 입학하는 경우 자신의 나이보다 두세 살 어린 학년에 배치된다. 교육부의 자료에 의하면(2004. 7) 일반 학교에 재학 중인 새터민 청소년이 자기 나이 남한 학생들과 공부하는 경우는 4.8퍼센트에 불과하고, 75퍼센트가 2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나고, 심한 경우 6살까지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학교는 지식을 학습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곳이다. 학교에서 또래 집단과 자연스러운 상호 작용을 통해 사회화되는 것은 새터민 청소년들에게 매우 필요하다. 그러나 새터민 청소년들은 학급 동료들과 친구를 하기에는 나이가 많고, 체격도 작고, 공부를 못 따라가고, 이전 삶의 경험도 너무 판이해서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결국 학교를 자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1999년에서부터 2004년 3월까지 입학생 중 중도 탈락한 학생의 비율을 보면, 새터민 중학생의 경우 13퍼센트, 새터민 고등학생의 경우 12.5퍼센트에 달한다. 같은 기간 남한 학생의 중고등학교 평균 중도 탈락률은 중학교의 경우 1.1~1.9퍼센트, 일반 고등학교의 경우 1.1~1.7퍼센트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새터민 청소년의 취학률은 매우 낮다. 교육부의 자료에 따르면, 중학교 취학률은 57.9퍼센트이고, 고등학교 취학률은 10.9퍼센트에 불과하다. 남한 학생들의 경우 고등학교 취학률이 98퍼센트에 달하고, 대학 진학률의 경우에도 80퍼센트에 육박한다. 남한사회가 학력을 매우 중시하는 사회임을 감안하면, 새터민 청소년들의 낮은 학력은 이들이 이후 사회 생활을 하는 데 있어 큰 걸림돌로 작용하게 됨을 예상할 수 있다.  

더불어 사는 법 배우기, 통일의 준비

새터민 청소년들은 먼 길을 돌아서 우리 땅에 정착한 젊은 이웃이다. 그들은 자동차로 불과 3~4시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아시아 대륙을 종단해서 3~4년이 걸려 이곳에 온다. 새터민 수는 조용히 늘고 있는데, 이들의 남한 살이가 순조롭지만은 않다.
새터민의 남한 살이가 어려운 이유는 우선 남북한이 그동안 견고한 분단 체제를 유지하면서 서로 교류하지 않고, 이해할 필요도 없이 오랜 시간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지난 60여 년간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은 사회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살아왔다. 정치·경제적 틀이 다른 사회는 다른 문화를 만들어내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상이한 관행과 생활방식,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새터민의 경우 본래 한민족이기 때문에 단일한 문화를 공유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다름을 이해’하지 않고, ‘같음을 전제’하기 때문에 남한 주민과 새터민과의 소통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빈번해진다. 이제 이들을 다른 문화권에서 남한사회로 이주해 온 이주민으로 볼 필요가 있다.
남한 사회는 그동안 다른 사회에서 온 이주민을 받아들인 경험이 별로 없다. 여러 민족이 모여 근대 국가를 형성하고 오랫동안 이주민을 받아들인 경험이 있는 다른 서구 국가들의 경우에는, 여러 민족간의 잠재적 분쟁과 갈등을 조정하는 사회적 장치를 발전시켜 왔다. 한국의 경우, 이주민의 역사가 매우 짧다. 외국인노동자나 결혼이주자가 증가하여 외국인이 전체 인구의 1퍼센트 정도를 차지한 것이 최근의 일이다. 다른 사회에서 온 사람들을 맞아 함께 살아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살기보다는 “너희가 우리 사회에 왔으니 우리 기준에 맞춰라”라는 태도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주류문화의 변화 없이 상대방의 적응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늘 잠재적인 갈등과 분쟁의 소지를 남겨놓는 일이 된다.  
새터민 청소년들이 남한에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그들에게만 적응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사회의 학교와 지역사회가 이들에게 적응해야 한다. 주류 학교 체제 내에 새터민 학생들의 학교생활 적응을 돕는 적절한 지원 체제를 갖춰야 한다. 남한의 청소년들이 다른 문화권에서 온 친구를 그 자체로 존중해주는 성숙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사회적 네트워크를 갖지 못해 고립되어 있는 이들에게 기본적인 사회적 관계망이 제공되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심리적 상흔으로 고통 받고 끝없이 자기를 부정하며 위축되는 젊은이들이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체계가 갖추어져야 한다. 이런 사회가 만들어지면 새터민 청소년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소수자 집단, 나아가 다수자 집단 모두가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더 나아가, 먼 길 돌아 이웃이 된 이들이 이 사회에서 건강하게 뿌리박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를 보다 인간적이고 소통 가능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을 넘어서, 미래 통일 사회를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향규 | 다문화청소년을 위한 국가청소년지원센터 ‘무지개청소년센터’ 부소장
- 서울대 교육학과 졸업
- 서울대 교육학 박사
- 북한교육, 통일교육, 평화교육 전공
- (현) 서울대 교육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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