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정책을 위한 러시아 동포사회의 인식과 역할
강 니콜라이 (동북아평화기금 사무국장)
1. 고려인이란
?
고려인이란 1860 년대부터 조선반도에서 러시아로 이주하여 지금까지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공화국 전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을 부르는 총칭이라 하겠다.
조선반도에서 한인들이 해외로 떠나간 이주역사가 가장 오래된 고려인은 140여년의 이국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회적으로나 물질적으로는 아직도 정착되지 못하고 어려운 시련을 겪고 있는 유랑민족으로 생각된다.
그 동안 고려인들은 세차례의 대량이주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1차이주 – 1860년대부터 기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러시아의 넓은 땅을 보고 두만강을 건넜고 1900년대에는 일제를 반대하는 독립운동가들이 항일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연해주와 북간도로 떠났다. 1919년에 대한민국의 망명정부가 블라지보스톡에 있었고, 조선총독이었던 일본놈 이도 히로부미 (이등방문)을 를 처단하기 위해 안중근 열사도 연해주에서 단지동맹을 맺고 하얼빈으로 떠났다. 항일과 독립을 위한 고려인들의 투쟁역사는 지금 학자들에 의해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연해주 우스리스크에 차려지고 있는 한인이주 14주년 기념관에는 독립운동 역사 박물관을 꾸리기 시작했다.
근면한 고려인들은 주로는 농민으로서 자리를 잡아 나갔고 연해주에서 한민족의 문화도 전통도 잊지 않으려 학교도 세우고, 신문도 잡지도 한국어로 발간하였고 지식인도 사회지도자들도 배출하였다
2차이주- 1937년 10월부터 약 2개월동안에 걸쳐 연해주와 극동에 살고있던 18만명의 고려인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중앙아세아로 이주시킨 것은 스탈린 정책에 의해 단행된 고려인의 강제 추방이었고 이로 인한 인적 물질적 사회적 손실은 헤아릴 수 없는 정도이다.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의 처지는 문자 그대로 유형살이었다. 2차대전이 1945년에 끝났음에도 불과하고 1957년까지 지정된 자기 거주지를 옮길 자유까지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도 우리 한인들은 매마르고 허황한 초원을 물을 끌어올려 옥토로 만들고 농장을 꾸려 전 소련에서 벼농사의 정상에 올라 명예를 떨쳤고, 잘 살고 가장 교육수준이 높은 우수민족으로 인정 받게 되었다.
3차이주 – 소련의 붕괴는 고려인들의 또 새로운 재난을 가져왔다. 소련이라는 나라를 구성하고 있던 15개의 민족별 공화국들은 독립을 선언하고 소련에서 이탈하여 독립을 선언하게 되었으며 이 나라들에서는 민족주의가 고개를 쳐들게 되었으며 타민족에 대한 배타적 관계는 다민족 사회의 질서를 문란 시켰으며 민족간 전쟁까지 초래하였다. 대표적인 전쟁이 우즈베키스탄 페르가나 지역에서 일어난 국내 전쟁이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민족 배타적 사회분위기는 어데나 마찬가지라 하겠다. 러시아어밖에 모르는 고려인들은 거주국가의 말을 모르는 민족으로서 타민족 혹은 제2의 민족으로 되었다. 이과 관련하여 모든 불이익이 고려인들에게 돌아오게 된것이다. 이것이 고려인들의 3차 이주의 동기이다. 이주민을 러시아에서는 피난민, 부득이한 이주민, 이주민, 이렇게 세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피난민의 자격에 해당하는 이주민들은 해당한 절차를 거처 국가로부터 피난민증을 교부 받고 소정의 국가지원을 받는다 (거처 보장 등).
2. 연해주 고려인의
현황:
1989년도에 연해주에는 8450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었고 소련이 붕괴되면서 대량 이주가 시작되었고 1992년부터 1994년에 걸처 대랑 인구이동이 있었다. 현재의 연해주 고려인의 총수는 4만명에 도달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고려인이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논거는:
1. 1만여명이 국적이 없이 무국적자 혹은 외국인의 STATUS 지위에서 살고 있고,
2. 이들 절대다수는 집이 없으며, 일자리고 못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3. 가지고 온 얼마 안되는 금품은 몇 달이 안가서 다 써버리고 생계유지에 급급한 사회의 하단 계층으로 굴러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초보적 자료에 의하면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고 허덕이는 고려인 수는 연해주에서만 10500 이 넘는다. 이것은 총 고려인수의 1/4을 초과하고 있다.
국적이 없으면 취업권이 없고, 의료보험도, 사회보험에서도 제외되며 사회, 경제생활에서 아무 혜택도 권한도 가지지 못한다. 물론 이것은 무국적자인 고려인에게만 그런 것은 아니고 심지어 러시아 땅인 이곳에서 러시아인 이주민도 똑 같은 현황에 있다.
고려인의 국적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에서도 외면하지 않고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뿌찐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고려인의 국적문제를 해결 할데 대한 의견을 제출한 바 있으며 여러가지 계통으로 노력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3.
고려인의 정착의 길
고려인 정착의 방향과 주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이루어 진다고 생각한다. 즉 이들이 살아남기 위하여 무엇부터 해결해 나가야 할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사는 해 왔으나 살아가기에 불편한 것부터 찾아보면 될 것이다.
1. 집마련: 돈을 너무 적게 가지고 와서 살아갈 집이 없다.
2. 일자리: 집은 셋방은 을 얻고 들었는데 돈을 벌려니 적당한 일자리를 구할수 없다. 원인은 국적이 없는 까닭이다.
3. 국적을 얻는데는 평균 빨라야 1년, 보통은 수년! 이 기간에 이들이 당하 는 불이익은 대단히 크다
러시아 국가도 고려인 정착을 위해 일련의 조치를 취했다.
1993년3월 “재러 고려인의 명예회복에 관하여”란 연방법을 채택함으로서 이주해 오는 고려인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였고 1998년도부터 연해주청은 이주해 오는 고려인들을 농업분야에 정착시킬 방안으로 6개 마을에 군인들이 사용하던 군막사를 고려인 사회단체인 “연해주 고려인 재생기금”에 무료로 이양하고 이주민들을 입주 시켰다. 토지도 무료로 경작하도록 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프그램은 한국의 지원을 바탕으로 정착촌을 운영하면서 농사를 지어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었으나 얼마 안가서 한국의 지원도 끊어지고, 들어온 금액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여 결국 2-3년이 지나 모든 청착촌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이리저리 흐터져 나갔고 군막사 건물들은 국가에 반환됐다.
그 때로부터 2년이 지난 2004년, 한국의 시민단체인 “동북아평화연대”가 자기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고려인 농업정착 지원 프로젝트” 를 시작했다.
동북아평화연대의 농업정착지원 프로젝트에 따라 고려인들의 숫자는 연해주에서 앞으로 증가될 것이 확실하다.
시기를 맞추어 중앙아세아에 살고 있는 동포들이 러시아로 이주하는 것을 지원할 데 대한 러시아 대통령령이 2006.06.22에 발표되었고 이에 따라 자원이주 하려는 동포들에 대해 국가에서 물질적 혜택을 줄데 대한 구체적 시행령이 발표됨으로서 돈이 없어, 살곳이 없어 이주하지 못하고 있는 중앙아세아의 고려인들이 러시아를 향하여, 특히 조상의 뼈가 묻힌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올 기회와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고려인들의 이주 및 정착이 지금까지 시민단체나 이주민 자신들의 문제였다면 이제는 이 범위를 지나 러시아 국가의 과제로 등장하였다. 이것은 이주민 정착 지원에 대한 한국의 지원도 이제부터는 러시아 국가의 환영을 받을 현황으로 바뀌어젔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려인들의 숫자가 많아짐에 따라 이들과 해야 할 사업도 많아지고 있다. 고려인들은 러시아에서 그 숫자가 작은 소수민족에 속하고 있지만 우수한 문화와 고유의 전통을 가진 민속이란 점 외에도 상호 의지력이 강하고 단합심이 강한 민족으로서 이전부터 러시아 사회에 알려지고 있다,
이런 점을 과장하다 나머지 일부 한국의 국민들 속에서 고려인들의 “자치구”설을 전파시키는 자들이 여기 저기에서 나오고 있다. 이 설의 유해성에 대해 명확한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 당국도 민족별 자결을 우려하는 처지에 이런 설을 내놓는 것은 오히려 러시아 국가 당국으로부터의 고려인들에 대한 무근거한 주시를 받게 하고 고려인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하물며 한국인이 고려인의 자결을 논한다는 것은 현시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유해한 것이라는데 대해 언급해 둘 필요가 있다.
4. 평화정착에 대한 러시아 동포사회의 인식과
역할
통일의 필수조건으로서의 평화정착은 현시기 가장 중요한 과제란데 대해 고려인들은 의견을 같이 한다.
세상에도 드문 단일민족 국가였던 한반도는 2차대전 후 외세의 “혜택”으로 양단되었다.
그 때로부터 6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외세가 우리를 단합시켜 주리라고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없을 것이다.
분단시킨 후에도 대립을 첨예화 시켜 전쟁으로 이끌고는 강자들은 각각 자국의 이익에 맞게 “도와”줌으로서 우리를 서로 죽이는 국내전쟁을 3년반이나 치루게 하였다.
고려인들은 모국의 분단을 민족의 가장 가슴아픈 약자의 슬픔으로 느끼고 있다. 역사적인 2000년 6월15일 6-15 남북정상 공동선언의 첫 조항에는 “남과 북은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처 자주적으로 해결해 자가기로 하였다. 이것은 외세의 간섭도 영향도 받지말고 통일해야 한다고 이해한다.
금후의 과업은 서로의 신뢰와 인정을 쌓아 통일을 가로 막는 장애물을 양측이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또 어려운 과업일것이고
통일을 위해서는 이 어려운 운명적 과업을 해 나가야만 할것이라고 생각된다. 북측이 남측을 믿을 수 없는것은 코밑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것이고 남측이 우려하는 것은 북측이 미사일과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라 보여진다.
북측은 자신의 군사력으로 미국을 승리하려 한다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은 현시기 최대강국이다. 북한이 군사력을 보유하려는 것은 한국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간섭과 위헙으로
부터 자신을 고수하려는 응당한 자존심에서 출발하는것으로
이해한다.
남한에서 미군이 철수하면서
북한이 동시에 핵기술을 평화산업으로 돌린다면 신뢰문제의 1단계는
풀릴것으로 생각한다. 이 어려운 과업은 통일을 위해서는 언젠가는 풀려야만 할 과업인 것으로 이해한다. 어려운 과업인 맘큼 단계적으로 상대방의
실적을 서로 확인하면서 서로가 진행한다면 가능한 일이 아닌가
본다.
남북의 경제협력은 서로의 신뢰와 이해를 확인해 나가는
대로이다. 오늘의 개성공단은 통일로 가는 첫 걸음임을 고려인들은 잘 알고 있다. 이런 공단은 원산에도 함흥에도 더 생기고, TKR와 TSR이
연결되고… 대전에는 북한의 공예전문대학이 생기고 … 하면 우리의 신뢰가 더욱 깊어갈
것이다.
우리는 연방정부가 생기더라도 북측은
남측의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며 시장경제도 도입하고, 남측은 어떤 경우라도 북측의 체제유지는 물론 현 간부들의 사회적 존대와 물질적 혜택 등을
그 자손에 이르기까지 법으로 담보하는 등 을 내용으로 하여 신뢰
존중하는 제도 마련도 하는 연합정부가 세워저야 할 것으로 추상한다.
7천만 동포의 원한 조국의 통일을
앞당겨 우리의 후세대에 통일된 자주국을 넘겨 주어야 할것이고 나아가서는 우리도 통일을 보고 죽으면 우리의 원한도 풀릴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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